[야설록]천객 - 2 - 8편 (8/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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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2 - 8편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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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통천삼십삼마는 죽으면 죽었지 스스로 투항할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마옥은 원래의 의지와는 달리 그 목적이 변질되어 무림에 해악을 끼치는 흑도의 고수들을 가두는 데 쓰이게 되었다.
천품신성의 뜻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었으나 어쨌든 사람을 가둔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삼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제마옥에 갇힌 흑도의 인사는 일백에 조금 못 미쳤다.
모두들 그 이름만 들어도 세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거마들이었지만 그들 중에는 단심백결회의 통치에 반감을 보인 정도 인사도 있다는 소문이었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아무튼 태행산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제마옥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두려움이었다.
한 번 들어가면 시체가 되기 전에는 결코 나올 수 없다는.
아니, 죽은 후에도 그 시체는 절벽 아래로 던져져 짐승의 밥이 되게 한다던가.
제마옥은 거기에 갇히는 사람이나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나 다같이 몸을 떨게 하는 증오의 대상이기도 했다.
복청양은 계곡의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좌우로 험준한 절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하늘의 해를 보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흙은 기이하게도 검은색이었는데 조금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그나마 흙을 구경하기는 힘들었고 크고 작은 바위들로 가득했다.
경공을 전개하지 않고는 지나가기 어려운 곳이다. '세상에, 이런 곳이 존재한단 말인가!' 복청양은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어려서부터 산에서 생활해 온 그였다.
산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곳은 또 다르다.
산은 산이되 생명이 없는 산.
제마옥으로 가는 길은 죽음의 땅이었다.
복청양은 계곡에 들어서면서부터 전신의 공력을 극도로 끌어올린 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가 주워 들은 지식으로는 제마옥은 경비가 극히 엄중한 곳이었다.
이곳에는 많은 단심백결회의 고수들이 파견나와 있어서 설사 하늘을 나는 새라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한다고 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인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므로 그가 긴장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계곡에 들어선 지 한 시진에 가깝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은 고사하고 그 흔한 뱀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다.
설마 하니 이곳이 정말로 죽음의 땅이란 말인가? '이상하군.' 시간이 흐르면서 복청양은 더욱 더 긴장감이 전신을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뭔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압박감이 숨막히게 만들었다.
그런 느낌은 계곡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그리고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했다.
이제는 차라리 누구라도 좋으니 어서 나타나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응?" 문득 그가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우측에 있는 커다란 바위였다.
바위는 검은빛을 띠고 있었고 높이가 거의 일 장이나 되는 거대한 것이었는데 그 위에서 한 줄기 물 같은 것이 흘러내리는 것이 햇빛에 반사되어 보였던 것이다.
검은빛을 띠고 있어서 바위의 원래 빛깔과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 액체, 그것은 피였다. "저건?" 복청양의 눈이 빛을 내더니 훌쩍 몸을 날렸다.
그는 어느새 일 장을 치솟아 바위 위에 우뚝 서 있었다.
바위 위는 움푹 들어간 화덕 모양으로, 사람이 숨어있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 사람은 손에 원통 모양의 암기를 든 중년인이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그 눈에는 놀람의 빛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는 산 사람이 아니었다.
무참하게도 등판이 으스러져 죽음을 당한 시체였다.
아마도 이곳을 지키는 사람으로 무엇인가를 보고 크게 놀랐는데, 미처 어떠한 행동을 하기도 전에 기습을 당해 죽은 모양이었다.
그 사람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흥건하게 고여 아래로 조금씩 넘치고 있었다.
만약 그런 흔적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사람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럴 수가……." 복청양은 그 중년인의 몸에 손을 대보았다.
차갑다.
시신 특유의 섬뜩한 느낌이 손을 통하여 어깨까지 전달되어 온다. '죽은 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피가 아직 응고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렇게 오래 된 것은 아니다.
최소한 오늘 당한 것이다.' 불길한 생각이 복청양의 머리를 스쳤다.
그와 동시에 하나의 영상이 떠오른다.
그것은 너무도 익숙한 영상이었다.
그가 직접 본 것이므로…….
모용세가.
그 커다란 장원 안에 무수히 쓰러져 있던 시체들.
무려 삼백이나 되는 그 많은 시신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놀라움의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이 먼 태행산에 와서 갑자기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거세게 도리질을 한 복청양이 휙 몸을 날렸다.
그는 이제는 조심하는 것도 잊고 빠른 속도로 계곡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는 중에도 연신 주위를 둘러보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과연 그랬다.
불과 백여 장도 가지 못하여 다시 세 구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바위 뒤 은밀한 장소에 숨어있었는데 복청양이 미리 그들이 숨어있을 만한 곳을 찾아 확인해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나이도 제각각이었고 지닌 병장기도 제각각이었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있었다.
그것은 한결같이 놀라는 빛을 띠고 있으며 기습을 당해 죽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이들은 누군가의 공격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들이 공격을 받았다는 것은 제마옥에 무슨 변고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지난날 모용세가에서 일어난 것과 비슷한 종류의 변고가…….
모용세가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복청양은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제마옥이 있었다.
제마옥은 천험의 장소에 위치한 작은 성채로 전체가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많은 인원을 동원한 집단 공격을 받더라도 쉽사리 허물어질 것 같지 않은 단단한 요새였다.
그런데 그 성채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제마옥을 가로막고 있는 석문은 산산이 부서졌고 그 파편 사이로 몇 구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침입자와 상당한 격전을 벌인 모양이었지만 침입자의 능력이 그들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뒤, 저 제마옥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랬던가? 진정 그랬던가……." 복청양은 긴 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그 동안 그의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 구름이 한 겹 벗겨진 느낌이다.
이제는 의심할 여지도 없다.
모용세가를 피바다로 만든 자와 이곳 제마옥을 친 자는 동일인이었다.
동일인의 소행이 아니라면 이렇게 같은 일이 두 번씩이나 반복될 리 없었다.
그리고 그자는 개인이 아니라 다수였다.
개인이라면 혼자서 이런 엄청난 일을 벌였을 리 없으므로.
그는, 아니 그들은 언제나 복청양이 그곳에 이르기를 기다려 이런 짓을 저질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를 제마옥으로 보낸 자가 바로 흉수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손노인, 그자가 흉수였다.
그리고 그자는 복가장을 멸문지경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틀림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자는 복가장을 멸문시켜 복청양을 움직이게 만든 뒤에 그의 궤적을 따라가며 이런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이 칠대공적의 소행이란 말인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칠대공적은 무서운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다섯의 힘으로 제마옥을 쑥밭으로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복청양은 그들과 헤어진 뒤 곧장 이리로 달려왔다.
그러니 그들이 그를 앞질렀다고 믿기도 어렵다. '이 모든 일은 최소한 두어 시진 전에 일어난 것이다.
칠대공적이 나보다 그만큼이나 앞설 수는 없다.' 그렇다면 손노인에게는 칠대공적보다도 더 큰 능력을 지닌 수하가 있다는 뜻인가?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의 수하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손노인의 능력을 직접 본 그가 아닌가? '아니다.
이 일은 어쩌면 손노인의 짓이 아닐지도 모른다.' 복청양은 다시 생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천수벽뢰가 한 말 때문이었다.
그들이 복종하는 주인은 따로 있다는, 손노인은 결코 그들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는……. '그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칠대공적의 주인이 바로 이 모든 일의 흉수일지 모른다.
칠대공적을 수하로 부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일이라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자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단 말인가? 그것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아무튼 이 모든 일은 손노인을 만나보면 알게 될 것이다.' 복청양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한 떼의 인물들이 나는 듯한 신법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고약하게 되었군.' 아마도 복청양의 머리가 지금보다 빠르게 움직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제마옥을 향해 달려오는 일단의 인물들을 보자마자 모용세가에서 마주쳤던 소허도장이 떠올랐고 그 순간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은 모용세가에서 벌어졌던 일과 너무도 흡사했다.
제마옥을 쑥밭으로 만든 자들이 다시 돌아올 리 없으니 저들은 분명 단심백결회의 인물들이다.
그리고 저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지난날 소허도장이 그랬던 것처럼 그를 범인으로 몰지 않겠는가? '지금은 일단 피하는 게 수다.' 복청양은 힘껏 달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조금 늦어 이미 저들의 눈에 뜨인 모양이었다. "게 서라!" 쩌렁쩌렁한 고함이 뒤를 쫓아왔다.
그와 함께 제마옥으로 향하던 인물들이 방향을 바꾸어 복청양의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낭패로구나!' 달아나지 않았으면 또 모를까, 일단 달아나기 시작한 이상 저들에게 붙들리면 변명할 길이 없어진다.
꼼짝없이 누명을 덮어쓰는 것이었다.
복청양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신법을 전개했다.
그러나 그는 곧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있는 것은 거대한 절벽이었다.
마치 칼로 산허리를 싹둑 베어낸 것 같은 단애(斷崖).
아무리 아래를 굽어보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천야만야한 낭떠러지가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더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었다. "아미타불!" 우렁찬 불호소리가 터져나왔다.
회색빛 승복을 걸친 열여덟 명의 승려들이었다.
그들은 각기 손에 선장과 계도를 들고 있었으며 두 줄로 길게 늘어서서 복청양의 퇴로를 봉쇄하고 있었다.
그 중 비교적 체구가 작은 승려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아미타불…… 빈승의 불명은 허수라 하오.
시주가 바로 천노살성이오?" "그렇소." 복청양의 음성은 조금 퉁명스러웠다.
그는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하고 있었다.
완전히 모용세가의 재판이었으므로……. "시주의 명성은 귀가 아프도록 들었소.
하지만 시주가 제마옥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진정 빈승이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일이오." "이 모든 일을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대사께선 믿지 않으시겠죠?" 그러자 허수대사(虛首大師)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의 천노살성이 자신이 한 일마저도 부인하는 비겁한 인물이 아니었으면 좋겠소." "대사의 말씀이 지당하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복청양이 우수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흐릿한 권영이 일어나며 허수대사의 어깨를 때렸다.
바로 천산오조의 회현잠영권이다.
그러나 그 권세는 느리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피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복청양은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 열여덟 명의 승려들은 그의 퇴로를 가로막고 있으며 비켜줄 마음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말로 해결하기도 이미 틀린 노릇이니 선공하여 틈새를 만든 후에 달아나자는 것이다.
그러나 복청양이 강호에 조금만 견문이 있었더라도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았을 것이며 그렇다면 그런 경솔한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림십팔나한(少林十八羅漢).
현재 십방좌의 제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소림사의 최정예들로 이들은 모두 허자배(虛字輩)의 승려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허자배는 소림사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천자배(天字輩) 다음으로 사실상 소림사의 중추를 이루고 있었다.
소림장문인 허영대사(虛永大師)도 바로 허자배가 아닌가! 좀처럼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소림십팔나한이 직접 출동한 것만 보더라도 단심백결회가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
허수대사는 복청양의 느릿느릿한 권세가 어깨를 향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넓은 소매를 흔들어 구릿빛 두 팔을 뽑아내더니 평평하게 위로 밀어올렸다.
펑 회현잠영권은 허수대사의 쌍장에 막혀 무력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복청양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연속으로 삼지를 찌르고 이장을 갈겼는데 그 수법 하나하나가 모두 독랄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허수대사가 다급히 승포를 흔들며 피했다.
그와 동시에 양쪽에 있던 두 명의 승려가 선장을 휘두르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게 신호였음인가.
열여덟 명의 승려, 소림십팔나한이 일제히 발동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복청양을 중히 여기고 사정을 봐주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열여덟 명의 승려가 일제히 발동하자 하나의 진세가 형성되었는데 바로 소림사가 자랑하는 소나한진(小羅漢陣)이었다.
복청양은 순식간에 진세의 한가운데에 갇히게 되었다.
복청양이 어떠한 신법으로 어디로 이동하던 그는 결코 진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진세는 복청양을 가운데에 가두고 언제나 두 자루의 선장과 두 자루의 계도가 일제히 상과 하를 찔러왔다. '대단하구나!' 몇 초 겨루지 않아 복청양은 소나한진의 위력에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펼치는 초식은 마치 대해에 조약돌 하나를 던져넣은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시간이 갈수록 압력만 가중되었다.
선장과 계도가 돌아가는 속도는 눈이 부시도록 빠른 것이었으며 그 위력은 거대한 바위도 단번에 부숴버릴 만큼 막중했다. "타앗!" 복청양의 입에서 한마디 용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손에 삼절묵창을 들고 있었다.
삼절묵창이 펼쳐내는 쇄금십팔창법은 원래 수비를 주로 하는 것이었다.
촘촘한 창영이 그려지자 그토록 무섭게 들이치던 소나한진도 일시에 위력이 크게 감소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일시적인 현상일 뿐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가중되는 압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압력은 더욱 더 가중되었다.
척! 쩔그랑! 마침내 삼절묵창과 두 자루의 계도가 부딪쳤다. "윽!" 복청양은 팔목까지 저려오는 통증에 하마터면 삼절묵창을 놓칠 뻔했다.
이 승려들의 완력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급히 두 걸음을 물러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두 자루의 계도가 베어 나왔다.
이번에는 복청양도 어느 정도 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삼절묵창을 비스듬히 하여 계도를 막아내며 흑오조로 상대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하나 상대의 팔이 그의 수중에 들어오려는 순간 다시 두 자루의 선장과 두 자루의 계도가 덮쳐왔다.
그가 손을 거두지 않으면 상대를 제압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그는 당장 피떡이 되고 말 것이다. "손해보는 장사를 할 수야 없지." 복청양은 급히 몸을 돌려 쇄금십팔창법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며 왼손으로는 기록장을 펼쳤다.
기이한 장세가 전면의 승려를 덮쳐가자 그 승려가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공백을 다시 선장과 계도가 메우고 있었다.
순식간에 오십여 초가 교환되었다.
십팔나한의 얼굴에 은은히 놀라는 빛이 떠올랐다.
설마 하니 복청양이 소나한진에 걸려들고도 이토록 오래 버틸지는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놀라기는 복청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 진세를 돌파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기운이 빠지고 지쳐오건만 진세가 펼치는 위력은 조금도 감소되지 않았다.
그는 마치 거대한 태풍의 눈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눈의 한가운데는 조용하지만 그 주위에는 엄청난 암경이 몰아치고 있어서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그의 얼굴에 초조한 빛이 가득했다. '더는 버틸 수 없다.' 이것은 소허도장이나 동정화상 같은 개인과 싸울 때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소나한진의 위력은 소수의 힘을 극대화시켜서 전문적으로 고강한 무공을 가진 자를 상대하게끔 고안되어 있었다.
더구나 소나한진에는 소림사의 천 년 전통이 이룩한 기묘한 변화가 숨어 있었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발버둥쳐 보았자 쉽게 파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하앗!" 복청양은 삼절묵창을 두 자 길이로 줄여 전면의 승려의 얼굴을 찔러갔다.
그 승려는 다급히 피했지만 삼절묵창의 기세가 워낙 빨라 어깨가 그대로 창끝에 노출되고 말았다.
그 순간 삼절묵창의 길이가 여섯 자로 늘어났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갑작스런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억!" 답답한 신음소리와 함께 그 승려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바로 그 순간 복청양은 삼절묵창을 다시 두 자 길이로 줄이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것은 초식이라고도 할 수 없는 굴욕적인 자세였지만 워낙 적절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뒤이어 날아오는 두 자루의 선장과 두 자루의 계도를 피할 수 있었다.
복청양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미처 신형을 바로잡기도 전에 막강한 장세가 덮쳐왔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계도와 선장으로 이루어진 공격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엇!" 미처 피할 여가가 없어진 복청양은 무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막강한 암경에 정면으로 마주쳤다.
펑 폭음소리가 요란했다.
복청양은 술 취한 사람처럼 어깨를 흔들며 급급히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다행히 뒤에서 덮쳐오는 공격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당할 뻔했다. '이럴 수가…….' 복청양은 상대의 장세가 너무도 강력함에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
네 명의 승려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가 마주친 장세는 한 사람이 발출한 게 아니라 네 사람이 동시에 발출한 것이었다.
일종의 연비장(連臂掌)으로 네 사람의 공력이 하나로 합해진 것이었다. "차앗!"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세 줄기의 압력이 덮쳐왔다.
열두 명의 승려가 각기 네 명씩 짝을 이루어 연비장을 발출한 것이다.
세 줄기의 장세는 복청양이 움직일 수 있는 세 방향을 차단하고 있었다.
펑 다시 폭음이 요란했고 복청양은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나고 있었다.
또다시 압력이 덮쳐왔다.
이제 상대의 의도는 명백했다.
그들은 세 방향에서 줄기차게 복청양을 압박해 오고 있었으며 오직 뒤로 물러나는 길만을 열어두고 있었다.
한 번씩 장세가 마주칠 때마다 복청양은 어김없이 뒤로 물러나야만 했는데 그의 뒤에는 아득한 단애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소림십팔나한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연비장을 이용하여 복청양을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의도를 훤히 알면서도 복청양은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그것만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것이다. "타앗!" 마침내 소림십팔나한의 전 공력이 담긴 세 줄기의 장세가 무서운 위력으로 복청양을 덮쳤다.
삼절묵창을 거둬들인 복청양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장세에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의 우수는 천산오조의 기록장을 펼치고 있었고 좌수는 회현잠영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펑 꽈르릉! 장세와 장세가 마주치는 순간 복청양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함을 느꼈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르르 뒤로 물러나는 그의 발 아래에서 암석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아앗!" 다급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복청양은 무너지는 암석을 차올리며 신형을 위로 뽑아올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세 줄기의 장세가 그를 덮쳤고 다시 한 줄기의 장세가 위에서 아래로 찍어누르고 있었다.
꽝! 콰르르 퍼펑 거대 무비한 회오리바람이 벼랑을 진동했다.
소림십팔나한의 전력을 다한 연비장에 걸린 복청양은 입에서 선혈을 뿜으며 끈 떨어진 연처럼 뒤로 훌훌 날아가고 있었다. "아아악!" 길고 긴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천야만야한 낭떠러지였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보아도 그 끝을 모르는 깊고 깊은 절벽이었다.
구름이 허리를 감고 안개가 솜뭉치처럼 엉켜있는 아득한 벼랑이었다.
복청양은 그 아래로 훨훨 떨어지고 있었다.
이내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미타불……." 소림십팔나한이 일렬로 나란히 서서 합장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극히 침중하였으며 조금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미타불…… 이로써 천노살성의 악명도 끝이구려." "아미타불…… 부디 극락왕생하시구려.
그대의 죄가 미운 것이지 그대가 미워서 이런 것은 아니니……." "어서들 가세나.
비록 부득이한 일이었으나 손에 피를 묻혔으니 백일 면벽은 불가피할 것이오." "아미타불……." 등을 돌리는 소림십팔나한의 뒷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 * * "클클클……." "큭큭! 어떠냐, 내 예상이 맞지 않았느냐? 저 녀석은 결국 석 달을 넘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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