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2 - 15편 (15/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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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2 - 15편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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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가 없는 계집이 어떤 일을 당하는지 아느냐? 모른다면 알게 해주지.
너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남궁격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백아아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백아아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도주, 제발……." "쓸모가 없어진 계집은 사내의 노리개가 되는 게 운명이다.
너는 진정 그렇게 되기를 원하느냐?" "도주, 이러지 마십시오." 백아아의 고운 얼굴이 일그러지며 이마에 땀이 흘렀다.
남궁격이 그녀의 젖가슴을 너무 아프게 거머쥐었던 것이다.
그의 더운 숨결이 느껴진다. '이자가 정말…….' 백아아는 암암리에 손가락을 세웠다.
남궁격은 그녀에게 밀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나친 자신감으로 방심하고 있었다.
이때 손을 쓰면 절대로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손을 쓰지 못했다.
남궁격.
천하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자.
그에 대한 두려움이 그녀의 손을 얼어붙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항하면 안 된다.
이자는 어쩌면 내가 손을 쓰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백아아, 나는 내게 협조하는 자에게는 상당히 너그러운 편이다.
하지만 적에게까지 관대하진 못한다.
어쩌겠느냐? 내게 협조하겠느냐?" "도주…… 전 정말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래?" 남궁격의 손이 움직였다.
그 순간 백아아는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전신이 뻣뻣해졌다.
혈도를 짚이고 만 것이다. "아……." 가벼운 신음을 흘리며 백아아가 침상으로 쓰러졌다.
그런 그녀를 남궁격이 냉소를 머금은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흥, 나는 그전부터 너를 안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야 기회가 왔구나." 남궁격이 허리를 숙이더니 그녀의 입술을 취했다.
그의 입술은 여자의 것처럼 매끄러웠고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아, 안 돼……." 백아아는 도리질을 하려 했으나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운이 없었다.
남궁격의 더운 입김을 온 얼굴에 받으면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백아아를 조롱하듯이 그가 천천히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금방 그녀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백옥같이 깨끗한 여인의 속살이었다.
가는 목에서부터 흐르는 부드러운 선은 가슴에 이르러 급격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풍만하게 솟아오른 두 개의 언덕.
그 위에 자주빛 유실이 숨을 죽이며 떨고 있었다. "흠……." 남궁격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제법이군." 그가 어깨의 선을 더듬어 내려가다가 덥석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탐스러운 젖가슴이 그의 무지막지한 손에 의해 이지러지고 있었다.
남궁격의 눈은 욕망으로 붉게 충혈되어 있는 반면 백아아의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아, 실수였다.
차라리 죽더라도 아까 모험을 해볼 것을…… 이대로 당해야 한단 말인가…….' 생각 같아서는 혀를 물고 자결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럴 기력조차 없으니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는 중에도 남궁격의 차가운 손은 거침없이 백아아의 전신을 유린하고 있었다.
그의 숨결이 점점 거칠어진다.
마침내 더 참지 못하겠던지 남궁격이 벌떡 일어나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바깥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주님." "누구냐?"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남궁격의 음성에는 감출 수 없는 신경질이 담겨 있었다. "잠깐만 나와 보시지요.
급한 전갈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직접 뵙고 말씀드릴 일입니다." "알았다." 어쩔 수 없음인가! 남궁격의 입에서 가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는 아쉬운 듯 백아아의 알몸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입맛을 다셨다. "흐흐, 조금만 기다려라.
내 곧 돌아와서 너의 몸을 뜨겁게 달궈 주마." 남궁격이 방을 나갔다.
넓은 방에는 이제 백아아 혼자였다.
안도의 숨을 쉴 여가도 없었다.
비록 당장의 위기는 넘겼지만 조금만 있으면 남궁격이 다시 돌아올 것이고 그때는 정말로 화를 면하기 어려웠다.
백아아는 진기를 돌려 막힌 혈도를 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단전에 고인 진기는 좀처럼 흐르지 않았다.
진기가 흐르려고 하면 제압당한 혈도가 벽이 되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안간힘을 쓰자 그토록 견고하던 벽도 점점 엷어지는 것 같았다. '됐다.' 백아아의 얼굴에 한 가닥 화색이 돌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 식경쯤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그렇게는 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백아아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 시간이었다.
마침내 제압당한 혈도가 열리고 전신이 자유로워졌다.
벌떡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백아아는 서둘러 흩어진 옷을 주워 입었다.
남궁격의 더러운 손이 자신의 순결한 육신을 마구 희롱했다는 걸 생각하자 얼굴이 붉어지면서 극심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가 앞에 있기만 하다면 당장 생사를 불문하고 겨루고 싶었다.
그러나 백아아는 무모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개인적인 원한보다는 이곳을 탈출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무새를 정리한 백아아는 문가로 가서 바깥의 동정을 살폈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호흡소리로 보아 둘이다.
그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방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호흡이 가늘고 길며 규칙적인 것으로 보아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는 고수인 것 같았다. '어떻게 한다?' 백아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시간을 끌면 남궁격이 올 것이다.
그와 마주친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 '할 수 없다.
무모할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부딪쳐 보는 수밖에!' 결심을 굳힌 백아아는 살며시 방문에 손을 갖다 대었다.
순간 답답한 신음소리와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윽!" "헉!" 놀란 백아아가 뒤로 물러난 것과 방문이 벌컥 열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복공자……." 백아아는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아마도 그녀의 생전 이렇게 놀라 보기는 처음이리라.
방문 앞에 흑의를 걸친 복청양이 우뚝 서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복공자가 어떻게 여길……?" "괜찮소?" 복청양이 물었다.
그의 발 밑에는 두 명의 철궁위대가 쓰러져 있었다. "아무 일도 없는 거요?" 그제야 백아아는 조금 전의 일이 생각나 얼굴이 빨개졌다.
하늘이 도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는가! "전 괜찮아요." "그럼 됐소.
어서 갑시다." "어딜?"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야 하지 않소.
시간이 없소." 복청양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더니 훌쩍 몸을 날렸다.
백아아는 얼떨떨한 채 그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복도를 가로질러 이내 밖으로 사라졌다.
텅 빈 복도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남궁격이었다.
그는 웃음기어린 눈으로 두 사람이 사라진 방향을 보고 있었다. "이거 의외로군.
백아아에게 달아날 기회를 준 것뿐인데 뜻밖에도 천노살성이 나타나다니…… 이거야말로 한 화살로 두 마리의 새를 잡은 셈이 아닌가!" 혼잣말을 중얼거린 남궁격이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았다. "준비는 되었느냐?" "예, 도주." 어디선가 응답이 들려왔다. "서둘러라.
저들을 놓쳐서는 아니 된다." "염려 마십시오." '흐흐…… 이제야말로 십마의 본거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저 계집이 내 길을 안내하는 한 실수란 있을 수 없다.' 남궁격은 문득 입이 간지러워졌다.
자꾸만 웃음이 기어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경솔하게 웃음을 터뜨리지는 않았다.
제 18 장 음모일단(陰謀一端) 키작은 관상수들로 가득 찬 낮은 담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누구냐?" 두 사람이 관상수의 숲을 통과하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다짜고짜 두 자루의 창이 뻗어왔다. "비켜라." 복청양이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낮게 외쳤다.
그와 동시에 그는 어느덧 상대의 앞으로 다가서며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평범한 주먹질이었다.
그저 손등으로 상대의 얼굴을 때리는 동작으로 어린아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흥!" 상대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 왼손을 칼처럼 세워 다가오는 손목을 베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복청양의 손이 기묘한 각도로 꺾이더니 상대의 안면을 강타했다. "억!" 상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마도 이빨이 서너 개는 부러졌을 것이다. '저건?' 백아아는 순간적으로 경이의 눈빛을 흘렸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기묘한 권법.
그녀는 언젠가 저런 수법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단황의 손에 의해 시전되는 수법을…….
그때 단황은 어떤 고인에게서 그 권법을 전수받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는 자신이 시전한 권법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권법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미처 놀라움을 나타내기도 전에 복청양이 손을 잡아끌며 담을 넘었다.
그들이 이제 남궁격의 소굴을 벗어난 것이다.
어둠 속.
두 개의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피처럼 붉은 홍의를 걸치고 손에는 불꽃 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피리를 들고 있는 여인.
바로 날수염적 군성초였다.
그녀는 황급히 달아나는 두 사람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었다. "천노살성……." 낮은 음성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역시 죽은 게 아니로구나.
헛소문이었어.
그럴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좀 뜻밖이다." 그녀는 무궁수사 남궁격의 움직임이 수상하여 그의 근거지를 엿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수확을 거둔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다시 몇 개의 그림자가 담을 넘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곧장 복청양과 백아아가 사라진 곳으로 질주해 갔다. '저건?' 아무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없는 차가운 미소가 군성초의 입가에 피어올랐다. '흥! 남궁격, 네가 제법 수작을 부리는구나.
그러나 나 군성초가 있는 한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대로 둔다면 모든 공은 남궁격이 차지하게 되고 그녀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된다.
그것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좀 아쉽지만 일단은 천노살성을 수중에 넣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저 교활한 자에게 뒤통수를 얻어맞는다.' 군성초는 급히 몸을 날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이었고 그녀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앞에 한 사람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극히 추악하게 생긴 노인이었다.
그러나 외모의 추악함보다는 입가에 흐르는 미소가 더욱 음흉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몸서리를 치게 만들었다.
무흔색투 유빈.
그가 아니라면 누가 있어 저처럼 뱀이 기어가는 듯한 미소를 흘릴 수 있다는 말인가! "무흔색투 네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 웃음부터 나오는 게 상례였다.
지금의 군성초가 바로 그랬다. "흥, 제법 대담해졌구나.
네가 제 발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 "상황은 수시로 변하는 것이다, 군가 계집아!" 무흔색투가 입가에 음침한 미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럼 언제까지나 너는 고양이이고, 나는 쥐 신세로 도망만 다닐 줄 알았더냐?" "그래서? 네가 갑자기 호랑이라도 되었다는 말이냐? 이거야말로 자다가 하품을 할 노릇이군." 말을 끝냄과 동시에 군성초의 염적이 무흔색투의 가슴을 노리고 뻗어갔다.
속전속결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것이다.
사실 그녀는 무흔색투의 출현에 약간 당황하고 있었다.
지금은 서둘러 복청양의 뒤를 쫓아야 하는 때가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시간을 허비하다가는 실기(失機)하고 만다.
그녀가 급히 서두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무흔색투는 선뜻 뒤로 물러서 여유있게 군성초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이크! 이것아, 우리 얘기나 하고 손을 쓰자." "얘기는 무슨 얘기.
이 아가씨는 오늘 너의 심장을 꺼내기로 작정했다." 군성초는 서둘러 무흔색투를 압박해 갔다.
이 색마는 경공이 뛰어나기 때문에 일단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게 하면 뒷감당이 어렵다.
그러나 그녀는 초식이 채 펼쳐지기도 전에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언제 나타났음인지 어둠 속에서 체구가 거대한 여인 하나가 빙글빙글 웃고 있었던 것이다. "만대모!" 만대모의 곁에 다시 한 사람이 늘어났다.
붉은 머리를 가슴까지 늘어뜨리고 있는 물고기처럼 생긴 여인이었다. '적발수룡까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칠대공적이 한 자리에 셋이나 나타나다니.' "군성초." 뒤에서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마치 목덜미에 비수를 들이대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움직이지 마라.
함부로 움직이다간 나의 검이 무정하다고 원망하게 될 것이다." "암혼이로군." 돌아보지 않고도 군성초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직감이었지만 눈앞에 칠대공적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덕분이기도 했다. "날 아는군." 뒤에서 음성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 경고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걸?" "흥! 이 아가씨가 너희들의 엄포에 떨 줄 알았더냐?" 군성초의 음성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칠대공적 중 사 인을 눈앞에 두고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내심은 바싹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하나나 둘이라면 모르지만 넷을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어렵다.
저들이 합격하기로 작정했다면 오늘 이 자리를 무사히 벗어나기는 힘들겠구나.' 이미 복청양에 대한 미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와서 안간힘을 써본들 멀리 간 그를 뒤쫓기는 어렵다.
지금은 그저 난데없이 나타난 칠대공적에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때다. "너희들이 이렇게 떼거지로 몰려온다 해서 이 아가씨가 눈 하나 깜짝할 줄 알았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물론, 물론 천하의 날수염적이 간이 크다는 건 다 알지." 무흔색투가 이죽거렸다. "하지만 장담하지.
우리 넷이 함께 손을 쓴다면 너는 십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흥, 과연 그럴까?" "하하하…… 무흔색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대화상이 힘을 합친다면 너를 오초 이내로 죽일 수 있다." 깨진 종이 울리는 것 같은 굉량한 웃음소리.
중 하나가 우죽우죽 걸어나왔다.
양손에 동절굿공이와 동솥을 나눠쥐고 있는 동정화상이었다. "갈수록 가관이군." 이번에는 군성초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넷이나 다섯이나 결국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군성초, 내 너를 잡아 뼈를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다만……." 적발수룡이 앞으로 나서며 이를 갈았다.
그녀의 붉은 머리칼이 사자의 갈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은 잠시 참기로 하지.
너는 우리와 같이 가주어야만 하겠다." "어디로 가자는 말이냐?" 군성초는 염적을 아래로 힘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심 혼염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여차하면 기습으로 하나를 죽이고 여기를 빠져나갈 작정이다. '눈앞의 자들보다 보이지 않는 암혼이 문제다.
내가 움직이는 순간 그자도 움직일 텐데 그자의 검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성공하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실패하면 죽음뿐이다.
그녀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감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분이 널 보고자 하신다." "누가 나를?" 군성초는 다소 의외였다.
대체 누가 그녀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칠대공적을 보내 데려오라 한단 말인가! "그게 누구냐?" "우리의 주인이시다." "주…… 인이라고?" 이번에 군성초가 삼킨 놀라움은 정말로 큰 것이었다.
대체 누가 있어 천하의 칠대공적을 수하로 부릴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직접 듣지 않고 적발수룡이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믿지 못할 일이다. "그게 대체 누구냐?" "흐흐, 너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분이시다." "내가 본 적이 있다고?" 한 사나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야만인처럼 상반신을 벗어부치고 있던 사나이.
그는 야수처럼 거친 모습이었지만 태산처럼 거대한 기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단 일합으로 그녀의 화조열사를 막아낸 가공할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을 대해 왔지만 그처럼 강한 인상을 남긴 사나이는 없었다.
지금도 그 사나이를 떠올리기만 하면 전신에 전율이 일지 않는가! 그는 강한 자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구를 강하다고 인정해 본 적이 없었다.
남궁격은 교활하기는 했지만 강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경신은 장중하긴 했지만 그것 역시 강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단심백결회를 지배하고 있는 십방좌도 각기 특색은 있지만 그녀가 보기엔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나이는 강했다.
강하다는 것은, 특히 완벽에 가깝도록 강하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지고지순의 미였고 절대 가치였다.
강함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그 어떤 명분도, 그 어떤 가치도 강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녀는 강함을 좋아했다.
그래서 강해지기 위하여 지금까지 쉬지 않고 노력했다.
그리고 한때는 자기 자신이야말로 진정으로 강하다고 여긴 적도 있었다.
그 사나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하지만 그 사나이를 만난 순간 그녀는 진정으로 강하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았다.
그리고 그 강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군성초는 극성까지 끌어올렸던 혼염공을 슬며시 거두고 염적을 품속에 넣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따라오겠느냐?" "안내해라." "흐흐, 생각보다는 영리한 계집이로군.
네가 만일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면 우리는 너를 죽여 시체라도 끌고 갔을 것이다.
그분의 명은 절대로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므로." 무흔색투가 몸을 돌리더니 앞장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는데 군성초가 따라오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군성초가 말없이 그 뒤를 따랐고 나머지 칠대공적이 그녀를 에워싸고 보조를 맞추었다.
군성초가 가장 신경을 쓴 암혼은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암혼이 저 어둠 속 어딘가에서 살기어린 눈을 번쩍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 * 백아아가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얼굴은 파리했으며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평소의 그녀였으면 이 정도로 지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남궁격에게 한바탕 곤욕을 치른 뒤여서인지 심신이 극도로 허약해져 있었다. "좀 쉬었다 가요." 복청양은 묵묵히 뒤를 돌아보았다.
옅은 어둠이 깔려있는 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다행히 뒤따라오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남궁격이 그들의 도주를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럽시다." 백아아의 상태로 보아 더 이상 재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그는 길 옆의 돌로 가 몸을 앉혔다.
백아아도 그 곁에 앉았다.
그녀는 땀으로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 달은 없었다.
아마도 인시쯤 되었을 것이다.
날이 샐 시각도 멀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죠?" 문득 백아아가 물었다. "뭐가 말이오?" "어떻게 제가 거기에 있는 줄 알았냐고요?" 대답이 없었다.
복청양은 작은 돌멩이를 집어 앞으로 던지고 있었다.
돌멩이가 나무에 맞아 딱 소리를 내었다. "하긴 어리석은 질문이로군요." 백아아가 중얼거렸다. "절 미행한 거죠? 그렇죠?" "그렇소." "후후, 이제 보니 복공자도 꽤 영리해졌군요.
그런 술수를 다 부릴 줄 알고……" "그게 다 당신들한테 배운 거요." "뒤따라 왔으면서 소벽과 소옥이 죽는 걸 보고만 있었다는 말인가요?" 그녀의 음성에는 약간의 비난이 담겨 있었다.
복청양이 정말로 두 소녀가 죽어가는 걸 방관만 하고 있었다면 그는 비정한 사람이었다.
목적을 위해서 사람의 생명이 사라지는 걸 묵과한다면 그게 다른 사악한 인간들의 행위와 무엇이 다르랴.
백아아는 지금 그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복청양의 얼굴이 몹시 침울해졌다. "그건…… 본의가 아니었소.
나는 당신이 눈치챌까 봐 가까운 거리에서 미행하지를 못했소.
그렇기 때문에 내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는 그 두 아가씨는 이미 죽은 후였소." "그랬군요." 백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게 설사 변명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그 일로 복청양을 계속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 지나간 일이 아닌가.
그리고 두 소녀를 보호하지 못한 데는 누구보다도 그녀의 책임이 더 크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이번에는 복공자가 날 인질로 삼을 건가요?"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에 백아아가 물었다.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오." 복청양이 말했다. "난 당신이 나를 그 주인이라는 사람한테 안내해 주기를 바라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궁금한 게 많소.
그리고 그 의문들은 그 사람만이 대답해 줄 수 있는 일들이오." "그럴 수는 없어요." 의외로 대답이 쉽게 나왔다.
전혀 망설이는 기색이 없다. "어째서 안 된다는 거요?" 복청양은 가슴속에 치밀어 오르는 노여움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그를 속였고 이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가증스럽긴 하지만 화를 낼 일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목적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백아아는 다르다.
그녀는 그를 속여서는 안 된다.
어째서 그런가 하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기분이었다.
그가 그녀를 신뢰하는 만큼 그녀도 그에게 뭔가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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