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1 - 5편 (5/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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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1 - 5편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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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화궁주(華花宮主).
군성초의 어머니가 심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가 방금 사용한 수법은 정말 다시 보기 어려운 쾌검이었다.
그는 쾌(快)란 말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깨닫고 있는 것 같더구나." "그러면……." "전일 그런 쾌검을 사용하던 인물이 하나 있었다." 화화궁주가 말했다. "쾌마, 통천삼십삼마의 일인이며 가장 강한 십마 중의 하나지.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을 텐데……." "분명한 건 저자는 쾌마 본인이 아니라는 거겠지요." 군성초는 비로소 자신의 옷이 경기에 터져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걸 알았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저자의 무공은 정말로 가공해요.
세상에 저런 고수가 있는데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니…… 이 일은 앞으로 큰 변수로 작용할 게 분명해요." 안에서 여러 사람들이 뛰어나오고 있었다.
무흔색투라는 색마가 침입할 거라는 말에 놀라 딸과 함께 깊숙이 숨어 있던 홍기찰과 그의 식솔들이었다. * * * 단황은 무흔색투를 반반한 바위 위에 내려놓았다.
무흔색투는 죽은 듯 두 눈을 감고 있었으며, 숨결도 극히 가늘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단황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주." 그의 옆에 전마가 나타났다. "어째서 적룡을 죽이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그 여자를 죽이기를 원하셨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마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었다. "적룡을 살려두신 건 잘한 일입니다.
아직은 마주께서 전면에 모습을 나타내실 때가 아닙니다." "그렇소." 단황은 심유한 눈을 들어 미명이 밝아오고 있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내가 나설 때가 아니오.
열세 개의 검은 구슬[十三黑珠]을 다 모을 때까지는 나는 진정한 신분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오." 단황은 의식을 잃고 있는 무흔색투를 보았다. "십삼흑주 중 이제 하나가 내 손에 들어왔소.
이자를 살릴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전마가 안아 들자 무흔색투의 팔이 덜렁 아래로 떨어졌다.
전마는 단황에게 허리를 가볍게 굽혀 보이고는 미명의 빛살을 밟으며 사라졌다. '십삼흑주.' 단황은 손가락 마디에서 으드득 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쥐었다. '나를 도와줄 십삼 인의 인재, 그들을 다 모으는 날 나는 천하를 이 손안에 거머쥘 것이다.' 심유한 눈속에 감추어진 거대한 야망.
그것은 동쪽 하늘을 발갛게 물들이며 떠오르고 있는 태양보다도 붉었다.
제 3 장 실종(失踪) 화주(火酒) 한 병이 바닥났다.
복금사와 함께 절을 올린 복청양은 나란히 무덤 앞에 앉았다.
누굴까? 비참하게 죽어간 일백여 복가장의 식솔들을 한데 모아 이처럼 가묘(假墓)를 만들어 준 사람이…….
비록 가묘라고는 하지만 엉성하기 그지없고, 잔디 한 점 입히지 않은 초라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이 안에 묻힌 영령들은 잠시라도 편안히 쉴 수 있을 것이다.
후일 자신들의 진정한 잠자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그 일은 복청양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그저 화주 한 병으로 이 쓸쓸한 마음을 달래야 한다.
울어야 할 것이다.
눈두덩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목구멍 가득히 뭔가 뜨거운 것이 채워져 있는 느낌이었다.
숨쉬기마저 힘든 이 답답한 가슴을 풀어버리려면 목구멍이 터지도록 통곡을 하면서 가묘를 부여안고 뒹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눈물샘이 아주 말라버렸는지 눈 전체가 까슬까슬하면서 모래알이 가득 든 느낌이 들 뿐이다.
그래서 복청양은 몸을 일으켰다.
복금사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가봐야겠다." 복금사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녀의 눈이 질문을 대신하고 있었다. "모용세가에 다녀오겠다." "나도 같이 가요." 복금사가 발딱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에서 새파란 섬광이 이는 것 같았다. "아니다.
나 혼자 가겠다." 복청양이 완강하게 말했다. "너는 여기서 기다려라."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나도 같이 가겠어요.
가서 모용천우 그자의 낯을 보아야만 해요." 누군가에 의해서 점혈당해 그날의 싸움에 가담하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삼고 있는 복금사였다.
그날, 그녀는 그늘에 숨어있을 게 아니라 처음부터 당당하게 그자들의 앞에 나섰어야 했다.
그래서 설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오늘 같은 회한을 남기지는 말았어야 했다.
복금사는 복청양이 움직이기도 전에 먼저 앞으로 나섰다. "뭐해요? 어서 가지 않고……." "넌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니?" 복청양의 음성에 약간의 짜증이 담겨 있었다. "나는 모용천우와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아버님을 풀어 달라고 부탁할 참이다.
그런데 네가 가면 방해만 된다." "얌전히 있을게요." 복금사도 복청양 못지 않게 완강했다. "오빠가 명을 내리기 전에는 절대로 창에 손도 대지 않을게요.
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요." "정말이냐?" "약속해요." "그럼 좋다." 복청양이 복금사의 옆으로 왔다.
그는 그녀를 스쳐 앞으로 나가는 듯하더니 돌연 몸을 돌려 그녀의 허리춤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아!" 복금사가 무력하게 옆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그녀는 바닥에 닿기 전에 복청양의 팔에 안겨 있었다. "미안하다." 복청양은 두 눈을 감은 채 의식을 잃고 있는 동생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너를 나무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도 같은 심정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원한을 앞세울 때가 아닌데, 네가 가면 반드시 혈풍(血風)이 인다.
나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복청양은 가묘의 뒤로 돌아갔다.
가묘의 규모가 워낙 커서 한 사람쯤은 감추고도 남았다.
그는 부드러운 풀밭에 복금사를 내려놓았다. "금방 갔다오마.
늦어도 두 시진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 동안 너는 여기서 기다려라."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복금사의 귀에 속삭인 복청양은 몸을 돌려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겁던 복청양의 발걸음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빨라졌다. '설혹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금사의 혈도는 두 시진만 지나면 저절로 풀릴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 복청양은 이제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모용세가로 가는 것이다. * * * 모용세가.
안읍뿐 아니라 산서 지방을 통틀어 모용세가의 이름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산서성의 주민들치고 단심백결회의 이름은 몰라도 모용세가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모용세가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신망도 높았다.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모두 모용가주에게 부탁했다.
모용천우.
그는 산서성 사람들에게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정작 모용세가는 도읍에 위치하지 않고 산의 중턱에 외따로 떨어져 자리하고 있었다.
넓은 길이었다.
사두마차(四頭馬車) 두 대가 서로 비켜 가고도 사람들이 충분히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시원하게 뚫린 길이었다.
산의 중턱까지 이런 길을 닦자면 막대한 금전과 인력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모용세가로 향하는 이 넓은 도로는 모용세가의 위세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도 남았다.
오후의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마른 먼지가 풀썩풀썩 일었다.
길 왼쪽으로 모용세가라고 새겨진 커다란 오석(烏石)이 보였다.
벌써 세 번째 보는 표석(標石)이다.
표석은 십 리 밖과 오 리 밖에 있었으며 다시 여기에 세워져 있었다.
이게 마지막 표석이다. '다 왔다.' 복청양은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과연 모용천우를 만나면 마음먹은 대로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복가장을 멸문시킨 흉수라는 사실을 잊고 사리를 따져 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어려운 일이지만 해야만 한다. '그들이 먼저 나를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희망은 있다.
중요한 것은 아버님을 구해내는 것이다.
다른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 일주문(一柱門)이 보였다.
붉은 주사(朱沙)로 모용세가라고 쓰여져 있었다.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힘찬 필체다.
그렇지만 복청양은 그 필체를 보고 감탄하고 있을 만큼 마음이 넉넉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치대로라면 벌써 모용세가의 외곽을 지키는 고수들이 나타나 그를 막아섰어야 옳았다.
모용세가는 경비가 엄중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하기야 워낙 명망이 높은 무가이니, 그만큼 적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고 경비가 엄중하다고 해서 탓할 일은 아니다.
그는 모용세가의 고수들과 마주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 대답까지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보이지 않다니…….
그러고 보니 그가 이 길로 접어든 지 벌써 일 각 가까이 흘렀건만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전혀 느끼지를 못했다.
아니, 사람의 기척뿐 아니라 살아있는 어떤 생명체의 기미도 느끼지 못했다.
침묵의 땅! 황량한 마른 먼지가 일고 있는 모용세가는 마치 죽음처럼 깊은 침묵에 점령당한 저주의 땅처럼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그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일주문을 지나 안으로 달려갔다.
모용세가의 경내에서 경공을 전개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영문도 모르는 채 호가무사(護家武士)들의 공격을 받아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해진 복청양은 그런 걸 가릴 여유가 없었다.
거대한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줄잡아 수십 칸은 됨직한 대형 전각들을 품에 아우르고 있는 웅장한 저택.
이곳이 바로 모용세가다.
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다.
복청양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역한 피비린내를 그에게 실어다 주었다.
모용세가는 잠들어 있었다.
너무도 깊은 잠이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죽어 넘어진 시신들뿐이었다.
젊은 사람도 있고, 나이든 사람도 있다.
여인도 있었고, 어린아이도 있었다.
심지어는 짐승들까지 허연 배를 하늘로 향한 채 죽어 있었다.
도살(屠殺)! 너무도 참혹한 만행의 현장이 아닌가! 복청양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이 차갑게 젖어드는 걸 느껴야만 했다.
시체들에게서 흘러나와 흥건하게 고여있던 피가 그의 발목을 휘어감고 있는 것이다.
신음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으니 그 중 한두 명은 살아있을 법도 한데, 아무리 귀를 곤두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가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죽어 있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누가……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복가장이 당한 참변이 아무리 참혹하다고 하나, 지금 복청양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에 비한다면 약소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곳에는 적어도 복가장의 세 배는 되는 사람들이 죽어 있으므로…….
갑자기 복청양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는 안채의 대청 위에 쓰러져 있는 한 사람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 아래가 물컹 하면서 시신들이 밟혔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는 대청 위에 올라서자 무릎을 꿇고 앉으며 화려한 화복을 걸친 중년인의 시체를 안아 들었다.
역시 그랬다.
모용천우!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죽어 있었다.
입은 반쯤 열려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절규가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손에는 장검이 쥐어져 있었다.
가주의 보검이다.
한때 모용세가의 명성을 높여주었던 그 검은 허리가 부러져 있었으며 부러진 끝은 대청 벽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는 상대와 일전을 벌인 모양이지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은 게 분명했다. "누가 이런 짓을……." 비로소 의문이 소리가 되어 나왔다.
복청양은 모용천우의 시신을 내려놓고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리가 몹시 혼란스러운 것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누구의 짓일까? 누가 이처럼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단 말인가?' 혹시 이 일이 복가장의 참사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복금사는 음모를 꾸민 흉수가 복가장과 원한이 있어서 복가장에 누명을 씌운 것일 거라고 했다.
비록 누구에게도 원한을 살 만큼 모진 일을 한 적이 없는 아버지의 성품을 믿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아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용세가의 참변을 보았다면 복금사는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뭔가 음모가 있다.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음모가……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힘이 뒤에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이 복가장과 모용세가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왜? 무슨 목적으로?'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더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데 지금으로서는 그 힘의 실체를 알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복청양은 깊은 한숨을 쉬며 대청에서 내려섰다. '모용세가마저 이 지경이 되었으니 아버님을 어디 가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무량수불!" 갑자기 우렁찬 도호소리가 귀를 때렸다.
복청양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푸른 도복을 걸치고 도관을 머리에 쓴 늙은 도장이었다.
등에는 송문보검(松紋寶劍)을 메고 손에는 한 자루 불진을 들고 있었다.
가슴까지 늘어진 탐스러운 수염이 보기 좋다.
노도장은 모용세가의 중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가 자리잡고 있는 위치는 공교롭게도 마치 복청양의 갈 길을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침중한 안색으로 복청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량수불…… 죄업이로다.
죄업이야……." "무슨 말씀이신지요?" 복청양은 어려서부터 산속에서 생활을 하여 도인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수양이 깊고 인품이 높아서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 그의 말씨도 공손했다.
노도장은 형형한 안광이 이는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젊은 친구, 이 끔찍한 만행이 모두 그대의 짓인가?"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복청양은 그제야 노도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펄쩍 뛰었다. "도장께서 누구신지는 모르나 이 일이 소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큰 오해입니다.
소생도 이곳에 방금 도착했고 뜻밖의 참상을 접하여 놀라던 중입니다." "무량수불……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우측으로 석상(石像)이 있었다.
원래는 사자상이었으나, 지금은 난전중에 상단부가 달아나고 하단부만 겨우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노도장은 불진으로 석상에 앉은 돌먼지를 가볍게 털더니 몸을 앉혔다.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젊은 친구, 이리로 가까이 오게." 복청양은 조금 멈칫했지만 노도장의 인자한 미소를 보고 마음이 놓여 그의 곁으로 갔다.
노도장이 그의 손을 주의깊게 보고 있었다. "빈도는 소허라고 하는 사람이네.
자네는 이름이 무엇인가?" 소허도장(逍虛道長).
그는 십방좌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무당파에서도 신분이 극히 높은 인물이었다.
현 무당장문인 소진도장(逍眞道長)과는 사형제지간이며, 무당파의 최고배분인 소자배(逍字輩)의 남아있는 삼 인 중에 하나인 것이다.
예로부터 무당파는 소림사와 더불어 무림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었다.
더욱이 요즘은 단심백결회를 다스리는 십방좌의 한자리를 무당파가 차지하고 있으니 그 위세는 지난날에 비할 바가 아니다.
복청양으로서는 감히 우러러보기도 힘든 신분이었던 것이다.
복청양은 물론 소허도장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러나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 노도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히 두 손을 모아 포권했다. "소생은 복청양이라고 합니다." "복청양이라……." 소허도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의혹의 기운이 떠오르고 있었다. "자네도 보다시피 이 몸은 나이가 조금 들었네.
자고로 늙은 사람은 의심이 많다 했지.
하지만 늙은 사람이 의심을 할 때는 언제나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일세.
빈도는 자네의 해명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가 없군." "도장님의 그 말씀은……." "빈도는 단심백결회의 산서지부에 볼일이 있어 잠시 왔다가 이곳 모용세가와 복가장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 해서 진상을 알아보러 급히 달려오는 길이라네.
그런데 불행히도 한 발이 늦어 이런 참혹한 광경을 보게 되었군." 소허도장이 나직이 탄식했다.
그는 진정으로 죽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 같았다. "빈도가 여기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자네인데 자네의 손에 피가 묻어있고 자네의 성씨가 복가이며, 눈앞에 이토록 처참한 정경이 펼쳐져 있는데 어찌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있겠나? 자네는 빈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나?" '피라니…….' 복청양은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자신의 손에 흠뻑 피가 묻어있는 것을 보고 흠칫했다.
아까 모용천우의 몸을 뒤적이다가 묻은 피인 모양이다.
복청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도장님께서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건 오해이십니다.
소생이 복가장의 사람인 건 사실이나 오늘의 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그 말 믿어도 되는가?" "도장님과 소생은 초면인데 어찌 거짓 말씀을 올리겠습니까?" "세상에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지." 스릇 앉은 채로 소허도장이 움직였다.
그는 몸을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복청양의 곁까지 근접하여 맥문을 거머쥐려고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 복청양은 놀라 소리치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소허도장의 다가섬도 빨랐지만 그의 대응이 워낙 적절해서 소허도장은 그만 허공을 움켜쥐고 말았다. "호오!" 소허도장이 탄성을 토해냈다. "과연 모용세가를 멸문지경으로 몰아넣을 만한 재간이군.
빈도는 자네와 같은 나이에 그런 재간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몇 보지 못했네." "그건……." 복청양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그는 그제야 소허도장이 그를 시험하려 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차라리 그냥 잡혀줄 걸 그랬나?'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다. "소생이 약간의 재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어찌 모용세가와 비교될 수 있으며 더구나 수백의 인명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부디 도장께서는 깊은 통찰력으로 헤아려 주십시오." "자네 말도 일리가 있네." 소허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네는 빈도의 입장도 생각해야 되네.
자네는 비록 무고하다고 하지만 정황으로 보아 가장 큰 의심을 받아야 함은 어쩔 수 없네.
모용세가가 이 지경이 된 마당에 모용세가와 깊은 원한이 있는 복가장의 사람이 이곳에 있었는데 빈도가 그를 보고도 그냥 놓아 보냈다고 하면 천하의 그 누가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겠나?" "그도 그렇군요." 복청양은 일이 곤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허도장의 난처한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소생이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빈도는 죄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지는 않네." 소허도장이 무겁게 말했다. "그러니 일단 빈도를 따라 산서지부로 가세.
가서 조사를 받는다면 진실은 곧 드러날 걸세.
빈도가 약속하지." "산서지부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지금 당장은 곤란합니다." "어째서 그런가?" "멀지 않은 곳에 소생의 동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소생이 가지 않으면 동생이 크게 걱정할 것입니다.
그러니 동생을 만나 안심시킨 후에 스스로 산서지부로 가서 오늘의 일을 해명하기로 하지요." "하하…… 젊은 친구, 자네는 빈도를 너무 가벼이 취급하는구먼." 소허도장이 하늘을 보며 껄껄 웃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 속에는 숨길 수 없는 노여움이 타오르고 있었다. "소생이 어찌…… 당치 않습니다." "그럼 이게 빈도를 우롱하는 게 아니고 무언가? 지금 놓아주면 후일 스스로 산서지부로 걸어 들어오겠다니, 빈도가 아무리 어리석다 하나 그런 간교한 말에 속을 만큼 바보는 아닐세." "아닙니다.
소생이 도장님을 속이겠다는 게 아니라……." "닥쳐라!" 소허도장이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며 불진을 휘둘렀다.
맹렬한 바람소리를 내며 불진이 복청양의 어깨를 때렸다.
워낙 거리가 가까웠으므로 소허도장의 돌연한 공격은 그만큼 피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복청양은 어깨를 아래로 내리는 동작으로 어렵지 않게 불진을 피해내며 성큼 뒤로 물러섰다. "도장님, 이러시면……." "네가 내 손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뿐이다.
그것은 실력으로 나를 이기는 것이다!" 휙휙! 불진이 매서운 바람소리를 냈다.
소허도장은 연속으로 세 번을 후려치고 두 번을 찔렀는데, 그 다섯 차례의 공세가 모두 치명적인 사혈만을 노리고 있었다.
소허도장은 복청양이 이번 일의 흉수라고 굳게 믿고 손에 인정을 두지 않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군.' 무작정 피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복청양이 손가락을 곧게 하여 소허도장의 가슴을 찔렀다.
그의 손끝에서 매서운 경풍이 일어났다. "엇!" 소허도장이 다급한 소리를 지르면서 불진을 가로휘둘렀다.
복청양의 손목을 휘어감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기미를 알아차린 복청양은 손을 회수하며 연속으로 일곱 번의 발길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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