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4 - 3편 (3/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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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4 - 3편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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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경신은 그래도 그 평범해 보이는 주먹질에 담겨있는 오묘한 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라도 저 일격은 피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저 일격에는 현기(玄氣)가 숨어 있다.' "차앗!" 천노살성이 우렁찬 고함을 지르며 신형을 앞으로 폭사시켰다.
동시에 그의 손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좌우의 복면인들을 공격했다.
그의 우수는 흑오조로 복면인의 팔목을 움켜쥐려 하고 있었고, 좌수로는 회현잠영권을 작렬시키고 있었다.
조금 전의 일격이 누구나 볼 수 있게끔 느릿했던데 반해 이번의 일수는 기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어엇?" 그러잖아도 천노살성의 이름에 주눅이 들어있던 복면인들이었다.
그들은 몸이 굳어 변변한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복청양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기세를 늦추지 않고 곧장 국충을 향해 덮쳐갔던 것이다. "오냐, 기다렸다!" 국충이 흑시를 휘두르며 복청양을 맞이했다.
그의 흑시에서 검은 기류가 일어나며 일순 흑시 자체를 감추어 버렸다.
도대체 흑시가 어디를 공격하는지 모르는 상황하에서 날카로운 기운 하나가 복청양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그러나 복청양은 당황하지 않았다.
흑시는 본래 그 생김새의 한계로 인해 일종의 창처럼 유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창법이라면 그가 어릴 때부터 익혀온 것이 아닌가! 복청양의 손에 어느새 삼절묵창이 들려 있었다.
그는 삼절묵창으로 촘촘한 창영을 그려내며 국충의 공격을 봉쇄했다. "쇄금십팔창법이로군." 국충은 대번에 복청양의 초식을 알아보았다.
쇄금십팔창법은 바로 복가장의 비전절기가 아닌가.
하지만 복가장주인 복후정도 저 수법으로 큰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다.
상대의 초식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되자 국충은 담이 조금 커졌다.
그는 흑시를 어지럽게 흔들며 기세를 늦추지 않고 창영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그대로 파해하자는 것이었다.
하나 그게 바로 실수였다.
복청양이 그려내고 있는 창영은 세간에 알려져 있는 쇄금십팔창법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이미 쇄금십팔창법의 최고 단계인 십팔창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쇄금십팔창법은 원래 수비를 주로 하는 초식이라 창영이 열여섯 개로 늘어나면 빗방울도 스며들지 못한다.
하지만 창영이 열여덟 개로 늘어나면 방어 속에서도 가공할 반격의 기운이 숨어있는 것이다.
바로 그 반격의 기운이 두 갈래로 갈라져 국충의 가슴을 엄습했다. "억……."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국충은 뒤늦게 뒤로 물러나며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했다.
하지만 그게 그의 두 번째 실수였다.
공세를 펼쳤으면 아무리 상대의 반격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그 공세를 그대로 이어나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으며 요행도 바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함으로써 일순간 빈틈이 생겼다.
더구나 그는 자신있게 앞으로 닥쳐가던 참이었다.
앞으로 나가던 기세가 너무나 사나워 급작스럽게 뒤로 물러나자니 신형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빈틈을 여지없이 삼절묵창이 파고들었다.
싸악! 마치 잘 드는 가위로 종이를 베어내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급격하게 이어지던 움직임이 갑자기 정지되었다.
국충과 복청양은 불과 두 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주서 있었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따뜻한 호흡이 피부에 닿을 정도였다.
국충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어서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반면에 복청양은 얼굴 가득히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너무나 극명한 두 사람의 얼굴 표정에서 승부를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국충은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앞자락이 너풀거리고 있었으며 그리로 한 가닥 혈선이 비쳤다.
그러나 상처는 그다지 깊지 않은 듯 피가 많이 흐르지는 않았다.
복청양은 어느새 삼절묵창을 거둬들여 맨손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왜……?" 국충이 넋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왜 그랬지?" 방금 국충은 복청양의 삼절묵창이 자신의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그로서는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복청양이 돌연 창초를 검초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 순간적인 변초 덕분에 국충은 심장이 산적처럼 꿰이는 대신 가벼운 상처를 입고 끝난 것이다.
국충으로서는 한순간에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왔다고 할 수 있었다.
복청양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단 두 걸음을 이동하는 것으로 국충과 장경신의 사이를 차단했다. "가거라." 그가 짧게 말했다.
국충이 다시 한 번 그를 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돌리며 흑시를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욱!" 짧은 비명소리를 내며 국충이 무릎을 꿇었다.
더운피가 그의 손을 적시고 아래로 흘러내린다. "앗!" 복청양이 놀라 급히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채 한 걸음도 가기 전에 다시 신형을 멈추어야만 했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짓이다.
주인의 가슴을 깊이 찌른 흑시 위로 더운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워낙 치명적인 급소를 깊이 찔렀으므로 그를 구원한다는 것은 이미 틀린 노릇이었다. "흐흐…… 복청양." 국충이 무릎을 꿇은 채로 복청양을 돌아보았다. "이제 나는 너에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 스르르 국충이 앞으로 무너졌다.
그는 몸을 옆으로 하여 바닥에 쓰러지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숨을 거둔 것이다. "왜?" 복청양은 멍하니 선 채 국충의 시신을 바라보며 방금 그가 한 말을 똑같이 중얼거렸다. "왜 그랬지?" "아마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뒤에서 조용한 음성이 들려왔다.
장경신이었다. "이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는 어차피 살아날 길이 없었다.
남궁격이 용서하지 않았을 테니까.
차라리 너의 손에 죽었으면 떳떳했을 텐데 그는 그러지도 못했다.
그러니 자결을 택한 것이다.
결국 너의 자비는 자비가 아니었다." 휭! 바람이 분다.
절벽 위에는 그들 둘과 국충의 시신뿐이었다.
다른 복면인들은 국충이 자결을 하자 황급히 부상당한 동료들을 업고 달아난 것이다. "이해할 수 없군." 복청양이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 이처럼 가볍게 버리다니.
아무리 중요한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보다 중할 수는 없는데……." "사람의 생명이 중하다고?" 장경신이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복청양을 보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천하의 천노살성이 그런 얘기를 하다니, 우습군.
그리고 목숨에 연연하면 졸장부가 된다.
장부라면 적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과감하게 목숨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목숨보다 중할 수는 없소.
나는 목숨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이 세계가 싫소." "흥!" 장경신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더 이상 그런 쓸데없는 일로 복청양과 논쟁을 하기가 싫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저러나 날 도와준 의도가 무엇이냐? 대체 무슨 속셈이 있는 거냐?" "속셈이라고?" 복청양이 장경신을 빤히 보았다. "어째서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럼 없단 말이냐?" "하긴…… 속셈은 있소.
당신이 회주 자리에서 쫓겨났으니 아무래도 나와 함께 가야 할 것 같소." "너와 함께 간다?" 장경신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마치 벌레를 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복청양을 보고 있었다. "날 어디로 데려가겠다는 것이냐?" "그건 가보면 알 거요.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분이 계시오." "누굴 만나야 한다? 이제 보니 쇠마에게 데려가겠다는 뜻이로군.
아니면 쇠마의 배후에 있다는 그 신비인이냐?" "그럴지도 모르지." 복청양은 자신에 대한 장경신의 오해가 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경신뿐 아니라 무림인이라면 다 그렇다.
그래서 굳이 그 오해를 풀려고도 하지 않았다. "누굴 만나든 당신은 나와 함께 가야 하오.
갑시다." "나는 가지 않겠다." 장경신이 말했다. "천노살성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 굴욕스럽기는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나는 단심백결회로 갈 것이다.
정히 날 데리고 가고 싶다면 죽여서 시체를 끌고 가거라." "두 가지 다 마음에 안 드는 걸.
난 당신을 죽이지도 않을 것이고 당신을 꼭 데려가야겠소." "하하! 좋구나." 장경신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얼굴에 서글픔이 가득 넘실거리고 있었다. "맹수가 덫에 걸리니 여우한테 놀림을 받는구나.
그러나 나 장경신을 죽이기는 쉬워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자, 어서 날 죽여라." 장경신이 가슴을 불쑥 내밀며 성큼 다가왔다.
정말로 죽일 테면 죽이라는 태도가 아닌가! 복청양은 순간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은 고집이 너무 세구나.' 고집이 세다는 것은 나무랄 일이 못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쓸데없는 고집으로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네놈의 그 똥고집은 여전하구나." 그때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장경신의 안색이 대변했다. "아저씨……." 만리추종 섭등.
그가 멀지 않은 곳에서 다소 성난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만리추종은 장경신에게로 다가오며 얼굴에 가득한 노여움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사람이 어리석어도 분수가 있지.
어찌 적과 친구를 구분하지 못한단 말이냐? 천노살성이 위험을 무릅쓰고 너를 구했건만 도리어 하는 말이 나를 죽여라? 잘하는군, 잘해.
죽는 게 그렇게 소원이란 말이냐!" "아저씨가 이곳에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상황이 너무나 급격하게 변해서인가.
장경신은 입가에 미소를 흘리는 것도 잊고 말했다. "더구나 아저씨가 천노살성과 한패거리가 될 줄은 더욱 몰랐습니다.
아무리 이해관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인심이라 하지만 아저씨까지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나를 오해하는 것은 좋지만 너의 목숨만은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만일 네가 고집을 부려 끝내 단심백결회로 돌아간다면 너는 결코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설마 하니 남궁격이 네놈을 살려둘 것 같으냐?" "그건 제 문제지 아저씨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장경신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아무튼 나는 단심백결회로 돌아갈 겁니다." "이거야 원.
구제 못할 녀석이로군." 만리추종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장경신의 고집에는 그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는 장경신에게로 다가오더니 그의 몸을 살펴보았다. "점혈을 당했느나?" "그렇습니다." 장경신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스스로 혈도를 풀지는 못하냐? 너라면 그럴 능력이 있을 텐데?" "모르겠습니다.
시도해 보지 않았으니까." "하긴……." 장경신의 고집스러움으로 보아 허영대사가 짚은 혈도를 스스로의 힘으로 풀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또 하나의 자존심이었다. "어디, 될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한 번 너의 혈도를 풀어 보마." "마음대로 하십시오." 장경신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겁니다.
혈도가 풀리면 내 손에 가장 먼저 죽을 사람은 바로 저기 있는 천노살성이라는 것입니다." "천노살성이 너를 구해주었는데도 말이냐?" "개인적인 일로 인해 대의를 그르칠 수는 없습니다.
천노살성은 무림의 공적이니 반드시 내 손에 죽어야만 합니다." "허…… 무슨 논리가 그 따위냐." 만리추종이 결론을 못 내리고 복청양을 돌아보았다.
강호에 경험이 많은 그도 이처럼 고약한 경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어쩔까? 이 녀석의 혈도를 풀어주어야 할까?" "그럼 장회주가 정말로 나를 해칠까요?" 본인을 앞에 두고도 복청양은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이 태연하게 물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만리추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더라도 일단은 혈도를 풀어주는 게 좋겠군요.
우리는 어차피 저 사람을 어르신께 데려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장회주가 지금처럼 무공을 쓸 수 없다면 앞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자.
생각 같아서는 좀더 고생을 시키고 싶지만 그럴 수야 없지." 만리추종이 장경신의 몸을 살피며 몇 군데 혈도를 두드렸다.
그러나 그는 곧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런…… 안 되겠다.
이 녀석의 혈도는 불현대비봉혈법(佛現大悲封穴法)으로 제압당해 있다.
이 수법은 불가비전이라 내 재주로는 어떻게 손쓸 수가 없다." "그럼 어쩌지요?" "별수없지 않느냐.
그냥 데리고 가는 수밖에.
그 어른이라면 이 지랄맞은 봉혈법을 풀 수 있을 테니 일단은 끌고 가자.
여기는 오래 머물 곳이 못 되니 서두는 게 좋겠다." "난 안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지." 만리추종이 손을 뻗더니 가볍게 장경신의 몸을 쳤다.
그러자 장경신이 신음소리도 없이 쓰러졌다.
그로서는 두 번째 당하는 굴욕이었다. "천하의 장경신인데……." 만리추종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요 며칠간의 일을 이 녀석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일신의 영욕이 이처럼 급격하게 교차된 경우는 아마 다시는 없을 테니……." "그렇겠죠." 복청양이 울적하게 말했다. "어쨌든 노선배께서 늦지 않게 연락을 해주셔서 장회주를 구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야 약간의 운이 작용한 덕분이지, 어찌 나의 공로라고 할 수 있겠느냐?" 복면인들에게 잡혀가는 장경신의 뒤를 추적하면서 복청양에게 전갈을 보내는 것은 만리추종으로서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 일을 해내었고 그 결과 장경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이렇게 되면 장경신을 중심으로 하여 단심백결회를 하나로 묶으려던 악대협의 의도는 물 건너간 셈이 아니냐?" "그렇지요." "남궁격, 그자가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할 줄은 몰랐다.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을 위해 대의를 망치다니!" 만리추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이 나서 못 견디겠는 모양이었다.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워낙 끝이 없으니……." 아쉽기는 복청양도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의 노심초사가 이처럼 허망하게 무너질 줄은 그도 역시 몰랐다. "이제 와서 이 녀석이 단심백결회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미 그른 대세를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어서 악대협께로 데려가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장경신에게로 다가간 만리추종이 그를 등에 업었다.
만리추종은 왜소한 몸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힘을 들이지 않았다. "제가 업지요." 그 모양을 보고 복청양이 말했다. "어차피 교대를 할 건데 누가 먼저 업든 무슨 상관이냐." 불쑥 말을 던진 만리추종이 몸을 날렸다.
그는 한 사람을 등에 업고도 조금도 어려움없이 산을 달려 내려갔다.
한숨을 쉰 복청양이 그의 뒤를 따랐다.
일출의 밝은 햇살이 산정을 물들이고 있었다. * * * 단심백결회 내에 있는 남궁격의 처소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것은 남궁격의 일신에서 풍겨오는 가공할 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살기에 짓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복면인 하나가 그의 앞에 부복해 있었다. "천노살성이 와서 장경신을 데려갔다고?" 남궁격의 목소리는 깊은 동굴에서 울려나오는 것처럼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은 그가 극도로 분노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그렇습니다, 도주." 복면인이 바닥에 구멍이라도 있다면 기어 들어갈 자세로 납작 엎드려 말했다.
그는 전신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는데 너무나 큰 두려움 때문에 거의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국대장은 스스로 자결을 했다?" "그, 그렇습니다." "천노살성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고?" "아, 아닙니다.
천노살성은 대장님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냥 가라고 했는데 대장님께서 수치를 못 이겨 자결을 하신 것입니다." "흠, 복청양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한 위인이다." 남궁격은 복청양이 여태껏 단 한 사람도 해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천노살성이라는 가공할 별호가 얼마나 우스꽝스런 것인가도. "그리고 국대장은 충신이다.
그는 내게 충성을 다했다.
본 도주는 결코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남궁격의 눈에 순간적으로 새파란 청광이 일었다. "국대장이 그처럼 자신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보일 동안 너희는 대체 무엇을 했느냐?" "죄, 죄송합니다, 도주!" 복면인의 머리가 땅에 닿았다.
쿵쿵,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은 복면인이 머리로 바닥을 찧는 소리였다.
그러나 남궁격은 복면인의 가련한 처지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힘이 자랐다면 당연히 장경신과 천노살성의 수급을 들고 왔어야 할 것이며 힘이 자라지 않았다면 너희도 국대장의 뒤를 따랐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런데 감히 내 앞에 살아서 돌아오다니……." "도주, 속하는 그저 도주께 이 사실을 보고드리려고……." "닥쳐라!" 남궁격이 소리쳤다.
그렇게 화를 내고 있는데도 그의 얼굴은 조금도 붉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창백해지고 있었다. "보고를 하러 왔으면 보고가 끝났으니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회주! 그 말씀은……." "설마 내가 직접 손을 대야 한다는 말이냐?" "아, 아닙니다." 복면인이 힘없이 말하더니 무릎을 꿇은 채로 몸을 바로 세웠다.
그는 더 이상 떨고 있지 않았다.
다만 기운이 없어 보일 뿐이었다. "도주, 그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잘 가거라." 남궁격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둔탁한 소리를 들었다.
복면인이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바닥에 부딪혀 낸 소리였다.
하지만 남궁격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고 바닥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피를 보지도 않았다.
마치 그 모든 일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무능한 것들." 불쾌한 한마디를 던진 그는 몸을 일으켜 방 뒤쪽에 나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 뒤에는 한 노인이 서 있다가 남궁격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조금 옆으로 비켜섰다.
노인은 몹시 큰 키에 깡마른 체구를 가졌으며 붉은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턱에는 수염이 한 올도 없었는데 얼굴이 온통 주름살투성이였다.
마치 뼈 위에 가죽자루를 덮어씌워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노야." 남궁격이 노인을 정면으로 보며 입을 열었다. "노야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진정 무능한 것들이지." 노야(老爺)는 이가 하나도 없는 입을 벌려 흐물흐물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야.
그처럼 간단한 일조차 해결하지 못하다니." "그렇소." 남궁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별수없이 노야께서 나서 주어야만 되겠소." "내가?" 노인의 음성이 높았다.
그러나 목소리와는 달리 그다지 놀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럴 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는 투다. "어쩔 수 없소.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은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소.
장경신이 살아있다면 그는 나의 심복지환이 될 것이오.
더구나 그가 천노살성과 손을 잡는다면 그 후환은 무궁무진하오.
어쩌면 그들은 내가 이제까지 이뤄놓은 것들을 일거에 무너뜨릴지도 모르오." 남궁격은 조금 의기소침해 있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그가 이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장경신의 탈출소식이 그에게 충격을 안겨준 모양이다. "장경신은 반드시 죽어야 하오.
그리고 천노살성도 같이 죽었으면 하오.
해줄 수 있겠소?" "할 수 있겠느냐고? 내가?" 노인의 입가에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자신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졌다는 것조차 불쾌하게 느낀 모양이었다. "내가 직접 나서는 데도 그런 애송이 둘을 해치우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천노살성은 만만한 자가 아니오.
그리고 장경신은 그보다 한 수 더하오." 남궁격이 말했다. "아무리 노야라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하오." "흠…… 도주는 나를 믿지 못하는군."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요.
아무리 노야라고 하나 일대 일이라면 몰라도 이대 일은 무리요.
그러니 칠화섬검수(七花閃劍手)를 동원하시오." "칠화섬검수?" 노인이 처음으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진정 그들까지 동원을 해야 한단 말이냐?" "그렇소.
노야와 칠화섬검수라면 그들을 벨 수 있을 것이오." 말을 마친 남궁격은 몸을 돌려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다시는 노인을 바라보지 않았는데 조금 전까지의 공경하던 태도와는 달리 그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노인은 그런 것쯤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방에는 어느새 시체와 핏자국이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감쪽같은 상태였다.
남궁격은 의자에 앉을 생각도 하지 않고 활짝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하늘이 파랗다. '고노야와 칠화섬검수는 철궁도의 마지막 힘이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보면서도 마음이 밝아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들마저 실패한다면 그때는 대책이 없다.
어쩌면 그들이 실패하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궁격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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