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3 - 10편 (10/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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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3 - 10편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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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쨌단 말이냐?" "백소저를 죽게 할 수는 없소." "어리석은 짓일랑 마라!" 면사여인이 차갑게 소리쳤다. "지금은 사람이 많이 죽어가는 때다.
한 사람이 더 죽는다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더구나 저 여자는 너의 적이 아니냐?" "내게 적은 없소.
당신이 내 친구가 아니듯이 백소저도 나의 적은 아니오." 복청양이 무겁게 말하며 뚜벅뚜벅 백아아를 향해 걸음을 옮겨 놓았다. "난 백소저를 죽게 내버려둘 수 없소." "하긴…… 저 여자는 네게 잘 대해 주었지……." 면사여인이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더 이상 복청양을 만류할 마음은 없는 듯했다. "하지만 서둘러라.
잘못하면 우리도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알겠소." 복청양은 백아아를 들쳐업었다.
그녀의 신체는 몹시 가벼워서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몸을 쓰는 복청양은 그녀를 업는 것만으로도 이마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여자의 입을 벌리거라."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면사여인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뭐 하려는 거요?" "시키는 대로 해라.
시간이 없다." 면사여인의 음성에는 어쩐지 거역하기 힘든 위엄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천성적인 것으로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듣는 사람에게 신뢰감을 안겨 주었다.
복청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백아아를 다시 바닥에 누인 후 손가락으로 그녀의 붉은 입술을 벌렸다.
그러자 면사여인이 그녀의 입에 재빨리 단약 하나를 밀어넣었다. "그게 뭐요?" 복청양이 놀라 물었다. "독초가 내뿜는 연기를 오래 마시면 몸을 상하게 된다.
심하면 이 여자는 영영 깨어나지 못하게 되는 수도 있다." 면사여인이 설명을 해주면서 복청양에게도 같은 단약을 내밀었다. "너도 이걸 입에 물어라.
하지만 삼키지는 말아라." 복청양은 면사여인을 빤히 보았다.
그러나 두터운 면사에 가려있는 그녀의 표정을 읽을 방법이 없다.
이윽고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면사여인이 주는 단약을 입에 물었다.
단약을 입에 물자 상쾌한 박하 냄새 같은 것이 나면서 정신이 갑자기 맑아졌다.
그토록 지독하던 악취도 한결 견디기가 쉬워졌다.
여인의 말마따나 단약은 악취를 막는 데 각별한 효용이 있는 모양이었다. "가자." 여인이 몸을 세우더니 훌쩍 신형을 날렸다.
그녀의 몸놀림은 지극히 신속한 것이어서 불길을 뚫고 나가는 데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복청양은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길이 춤을 추며 그녀를 피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단지 걸음을 옮기는 동작만으로 저 사나운 불길을 밀어내고 있었다. '대단하구나.' 복청양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면사여인이 절정의 호신강기로 불길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는 걸음을 빨리하여 면사여인의 뒤를 쫓았다.
다행히 여인이 앞에서 불을 막아주었기에 그가 만독화원을 통과하는 일은 생각처럼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오래지 않아 만독화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만독화원의 밖에는 사두마차가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마차 곁에는 청년이 쓰러져 있었는데 전신이 핏물에 잠겨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은 것 같았다.
물어 보나마나 면사여인의 솜씨다.
여인은 밖에 있는 청년을 먼저 제거하고 만독화원에 불을 지른 모양이었다.
복청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는 우울한 눈으로 면사여인을 볼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면사여인이 앞장서서 빠르게 걸었다.
그 뒤를 쫓는 복청양의 발걸음도 점차 빨라졌다.
처음에는 면사여인을 뒤쫓기가 다소 힘에 겨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기가 혈맥을 타고 힘차게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복청양은 달리면 달릴수록 기분이 점차 상쾌해졌다.
오랫동안 그를 짓누르고 있던 답답함이 점차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산길을 달리던 면사여인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가 적당하겠다." 산모롱이가 막 구부러지는 곳이었다.
왼쪽으로 숲이 있었고 반반한 바위가 여럿 보였다.
면사여인은 그 중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에 그 여자를 내려놓아라." "여기에 말입니까?" 복청양이 주저하자 그녀의 면사가 약간 흔들렸다.
복청양의 행동이 그녀의 노여움을 산 모양이었다. "그럼 언제까지나 그 여자를 업고 다닐 참이냐?" "하지만……." 복청양은 주저하다가 마지못해 바위 위에 백아아를 눕혔다.
흐린 달빛 아래 그녀의 창백한 얼굴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백아아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얼굴의 혈색은 아까보다 좋아 보였다. "됐다." 복청양이 백아아를 내려놓자 면사여인이 만족한 듯 말했다. "어서 가자.
시간이 많지 않다." "백소저를 이대로 두고 간단 말입니까?" "너는 이 여자가 많이 걱정되는 모양이구나." 면사여인이 복청양을 빤히 보았다.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설사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산중에 혼자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마음이 여리고 인정이 많은 것은 장점이 될 수 있다만 때로는 단점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천하를 두렵게 하는 천노살성이 이토록 계집애 같은 심성을 지녔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면사여인의 목소리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복청양의 여린 행동이 그녀에게 그다지 불쾌함을 안겨주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 여자를 일으켜 앉혀라." 복청양에게 백아아를 안아 일으키게 한 면사여인은 뒤로 돌아가더니 백아아의 등에 가볍게 일장을 갈겼다. "윽!" 가벼운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백아아가 입에서 검은 피를 울컥 내뱉었다.
검은 피가 그녀의 앞자락을 적셨다. "되었다.
이제는 눕혀라." 면사여인이 다시 지시했다. "이 여인은 내상이 깊지 않다.
이제 곧 깨어날 터이니 걱정할 것 없다." "하지만……." "설마 나보고 이 여자가 깨어날 때까지 곁에 있어 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질문은 나중에 해도 된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말해줄 수 있다.
나를 따라가는 것이 너에게 손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면사여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실은 너를 만나고자 하는 분이 계시다." "그게 누굽니까?" "가보면 안다." 면사여인이 앞장서서 산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는 복청양이 따라오건 말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그러한 태도에는 복청양이 자신을 따라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어쩐다?' 복청양은 바위 위에 누워있는 백아아를 잠시 바라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녀가 깨어날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곁에 있다고 해서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어차피 백소저와는 가는 길이 다르다.
이쯤에서 헤어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을 굳힌 복청양은 면사여인을 따라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한 대의 마차가 달려간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마차였다.
뚜껑도 없는 마차 안에는 복청양이 얼굴에 죽립을 덮고 누워 있었고, 마부석에는 면사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저 고삐를 쥐고 있을 뿐인데도 말을 꽤나 능숙하게 몰고 있었다. "견딜 만하느냐?" 면사여인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심려하지 마십시오." 복청양이 죽립을 걷으며 대답했다.
그는 태양이 눈에 부셔 눈을 찡그렸다. "조금 갑갑할 것이나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
아직 너는 완전한 상태가 아니다.
회복기에 들어설수록 몸을 조심하는 게 좋다." "저는 괜찮습니다." 복청양은 마차에서 일어나 앉아 누런 황토길을 바라보았다.
길은 바싹 말라 있어서 마차가 지나가면 마른 먼지가 풀풀 인다.
만독화원을 떠난 지 벌써 사흘째였다.
그 동안 면사여인이 한 일은 마차를 빌려 복청양을 태우고 어디론가 향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바쁘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다지 서두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해가 지면 가까운 여각을 찾아 묵었고 날이 환히 밝은 뒤에야 출발했다.
여각을 떠날 때마다 마른 음식을 사서 가는 도중에 먹었으므로 간간이 말을 쉬게 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그 동안 면사여인과 복청양은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복청양은 면사여인이 말은 비록 무뚝뚝하게 하지만 마음은 상당히 다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다만 그것뿐이었다.
면사여인은 행선지를 알려주지도 않았고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다.
가끔 복청양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물으면 곧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얘기뿐이었다.
그래서 복청양도 결국은 질문을 포기했다.
그저 면사여인을 따라가며 이 행선지가 어디일지 궁금해 하고 있을 뿐이다.
조금은 기이한 일행이기도 한 그들은 그렇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 * * 몸을 일으킨 백아아는 얼굴을 붉히며 다급히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수습했다.
침상에 누워 있다가 뜻밖의 방문객을 맞이했기 때문에 그녀는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다. "그냥 누워 있거라." 단황이 말했다.
단황은 아무런 감정도 나타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저 심유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단순한 시선을 받은 백아아는 가슴이 천 근 맷돌로 눌리는 것 같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좀 어떠냐?" "견딜 만합니다." 백아아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뜻밖의 침입자로 인해 복청양을 빼앗기고 부상까지 입은 지금 그녀는 단황을 볼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이다.
들으니 며칠 내로 기동할 수 있겠더구나." "네……." "그럼 쉬어라." 단황이 몸을 돌렸다.
그는 방안에 들어온 이후 한 번도 앉지 않고 그저 백아아의 안부를 물은 후에 방을 나갔다. '마주…….' 백아아는 왠지 마음이 허전함을 느꼈다.
단황이 방에 있을 때는 방이 가득 찬 느낌이더니 그가 나가자 갑자기 방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녀는 스르르 침상에 몸을 뉘였다.
문득 복청양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위에 겹쳐지는 것은 방금 방을 나간 단황의 얼굴이었다. '저 두 사람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대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다.
복청양은 이미 그녀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해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단황 또한 그녀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인물이다.
복청양의 존재가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있다면 단황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러므로 그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아아……." 백아아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문 밖에는 지마와 가개풍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황이 밖으로 나오자 두 사람이 허리를 숙였다.
가개풍은 진심으로 공경하는 빛이었지만 지마의 태도는 약간 뻣뻣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았다.
단황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햇살이 따뜻하다.
가을이 깊어감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늦더위가 심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런 날씨였다. "마천성은 어떻게 되어 가느냐?" 단황이 문득 가개풍을 돌아보며 묻는다. "벌써 칠 할 이상이 진행되었습니다.
일이 예상보다 빨리 진척되니 이대로 간다면 해를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해를 넘기지는 말아야지." "노력하고 있습니다." "빨리 보고 싶군.
마천성의 그 웅장한 모습을." 가개풍이 허리를 숙였다.
그것이 대답 대신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여보인 가개풍이 총총히 멀어져 갔다. "모든 일이 예정대로 진행되는군." 가개풍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단황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지마가 대답한다. "가개풍이 황금대장의 전 재력을 마천성 축성에 쏟고 있습니다.
그러니 차질이 있을 리가 없지요." "이 해가 가기 전에 마천성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오." 단황이 무겁게 말했다. "그리고 마천성이 완공되는 그 날, 천하는 내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오." "명심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리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자면 천노살성이 필요하오.
그러나 그자의 종적이 묘연하니……." "지금 전력을 투입하여 찾고 있는 중입니다." "천노살성을 데려간 여인의 정체는 알아내셨소?" "그게 아직……." "느낌이 그다지 좋지 않소." 단황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구릿빛 상체가 햇빛에 번들거렸다.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소.
그것은 청룡의 사람도 아니고 금룡이나 적룡의 수하도 아니오.
단심백결회의 그 누구도 그런 자를 거느리고 있지 않소.
하지만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오." "그렇습니다." "나는 그것이 불쾌하오." 단황이 걸음을 멈추며 지마를 똑바로 보았다. "내가 모르는 일이 있다는 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불쾌하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내게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싫소.
이 일은 반드시 명확하게 규명이 되어야 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천노살성을 끝내 찾지 못할 경우에도 대비를 해야 할 것이오.
천노살성이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모든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오." "그런 일은 없을 것이지만 만에 하나,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대책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아직은 말씀드릴 단계가 아닙니다." 지마가 말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간에 천노살성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단심백결회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손으로 단심백결회를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래야 하오." "그리고 단심백결회가 천노살성의 손에 무너지는 날, 그는 마주님의 손에 죽게 될 것입니다." 지마의 음성은 나직했지만 그 뜻을 알아듣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단황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황산의 석해(石海)가 유명하다지만 송해(松海)만은 못하고, 송해가 아무리 절경이라도 운해(雲海)만은 못하다.
황산(黃山) 천도봉(天都峯)에 올라본 사람이라면 발 밑에 펼쳐진 기막힌 정경에 그만 탄성을 터뜨리고 말 것이다.
층층이 겹을 이룬 구름이 안개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라 산허리를 휘어감으며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여 아래로 흐르거나 혹은 위로 치솟는다.
황산의 유일무이한 지배자인 구름은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그것은 때로는 흐느끼고 때로는 춤을 추고 때로는 영롱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
운유애(雲流崖).
천도봉이 구름 속에 뜬 하나의 외로운 섬이라면 운유애는 구름 속에 은밀하게 숨어있는 작은 이단자였다.
미세한 수분의 입자가 아름다운 여인의 달콤한 유혹처럼 촉촉하게 다가드는 긴 계곡을 가까스로 빠져나가자 거짓말처럼 정경이 변화하면서 넓은 단송림(短松林)이 모습을 나타냈다. "아!" 복청양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선경(仙境)이었다.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너무도 아름답고 믿기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으므로.
단송림 위에 쏟아지는 햇살은 맑은 은빛이 아니었다.
칠채(七彩)의 보색(寶色)이 면사처럼 단송림을 뒤덮고 있었다.
하늘하늘 춤추며 떠오르는 수분의 입자에 햇살이 투과하면서 생겨난 현상이었다.
단송림 속에는 새들이 모여서 지저귀고 있었고 짐승들이 뛰놀았다.
짐승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 복청양이 가까이 가도 전혀 꺼려 하는 기색이 없었다.
단송림을 통과하자 작은 공지가 나타났다.
공지에는 몇 채의 초가가 있었는데 초가의 외양은 검소하기 그지없었지만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다.
초가는 단송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서 마치 숲의 일부분인 양 보였다.
맑디맑은 냇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고, 냇물 주위는 온통 화려한 꽃밭이었다.
꽃밭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 있었는데 그 중 태반은 복청양이 이름도 모르는 것이었다. "따라오너라." 면사여인이 말했다.
그녀는 냇물을 끼고 돌아 정면에 자리잡고 있는 초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굳이 경공을 전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듯 그녀의 걸음은 상당히 느렸다.
복청양은 경치에 취하고 향기에 취해서 다소 멍청해진 기분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단 말인가!' 면사여인은 황산 아래에서 하루를 묵었고 산에 들어와서도 다시 하루를 노숙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야 이런 별천지로 복청양을 안내한 것이다.
그녀는 이곳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이 있다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복청양은 그 인물을 만나러 가고 있는 중이다.
초가 앞에 한 동자(童子)가 쭈그리고 앉아 약을 달이고 있었다.
동자는 부채질로 불기를 조절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속세의 사람 같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는 동자마저도 선계(仙界)를 닮아가는 모양이다.
무슨 약인지는 몰라도 약향이 지극히 향기롭다.
면사여인이 다가가자 동자가 몸을 일으키며 두 손을 모았다. "이제 오십니까?" "사부님은 안에 계시느냐?" 면사여인이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차갑기 그지없던 그녀였지만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어쩐 일인지 그 차가움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사조(師祖)님은 후원에 계십니다.
전갈을 올릴까요?" "아니다." 면사여인이 움직이려는 동자를 막았다. "내가 직접 가보마." 면사여인이 복청양을 흘끗 돌아보았다.
따라오라는 뜻일 게다.
복청양은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후원이라는 곳은 공지를 빙 돌아가자 나타났다.
정갈한 분위기를 풍기는 청석정(靑石亭)이 하나 보였다.
청석정 앞에는 푸른빛이 도는 연못이 있었고 그 위에 둥근 다리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리 위에 한 사람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한 사람은 아니었다.
두 명의 동자와 한 노인이었다.
동자들은 앞에서 보았던 동자와 똑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는데 그 움직임이 몹시 진중해 보였다.
그리고 노인은 검소한 베옷에 하반신을 하얀 수건으로 덮고 사륜거(四輪車)에 앉아 있었다.
나이는 얼마나 되었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탐스러운 수염을 가슴까지 드리우고 있었고 얼굴은 동안(童顔)이었다.
눈썹도 머리칼처럼 하얀 것이 거진 턱까지 늘어져 있다.
머리에는 문사건(文士巾)을 쓰고 있었다.
노인의 주변에는 많은 새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새들이 섞여 있었는데 그것들은 노인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 어떤 것은 노인의 어깨에 올라앉아서 부리로 깃털을 고르고 있었다.
노인이 움직여도 날아가지 않는다.
그림 같은 광경이었다.
아니, 그림보다 더했다.
아무리 뛰어난 화공(畵工)이라도 이처럼 완벽하게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모습을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므로.
먼발치에서 노인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복청양은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여몄다.
그는 산에서 오래 생활해 온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짐승들이 인간과 마음을 터놓고 지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짐승들은 누구보다도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것들은 자신에게 사심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용케도 가려낸다.
그것은 거의 본능적인 것이었다.
때문에 심성이 유리알처럼 깨끗하고 어린애 같은 동심을 지니고 있어야만 비로소 짐승들은 마음을 연다.
그런데 이 노인은 완벽하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복청양의 존경심을 우러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복청양과 면사여인이 청석정으로 다가가자 노인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그의 입가에 가만히 미소가 떠올랐다. "은조로구나." 나직하긴 했지만 누구에게나 또렷이 들리는 음성으로 노인이 말했다.
제 24 장 고인(古人) 은조(隱鳥)라고 불린 면사여인이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숙였다. "사부님……." "그러잖아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일은 조금 힘들었나 보구나." "제자가 무능하여 사부님께 심려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은조의 음성에는 지극한 공경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건 너의 잘못이랄 수 없다." 노인이 온화하게 말하며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동자가 사륜거를 밀어 앞으로 나왔다. "저 아이가 복청양이냐?" 노인이 이번에는 복청양을 보고 있었다.
그러자 복청양이 비로소 앞으로 나서며 예를 올렸다. "후배 복청양이 노선배님을 뵙습니다." "그래, 그래……." 그윽이 복청양을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감돌았다. "좋은 재목이로구나."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노인의 음성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은조야, 너는 실수를 했더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은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노인의 조용한 질책이 그녀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준 모양이었다. "밖에 손님이 와 있다.
손님을 동반하고 오다니 너답지 않구나." "그럴 리가……." 은조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뒤를 보았는데 믿어지지 않는다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신기한 것은 그녀가 노인의 말에 전혀 이의를 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웬만하면 그럴 리 없다고 반발할 만도 한데 은조에게는 노인의 말이 절대적으로 들리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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