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3 - 15편 (15/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본문 바로가기

[야설록]천객 - 3 - 15편 (15/17)

💬 0 👁 4
☰ 목록
책갈피와 음성 읽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 인사하라는 뜻이다.
그 눈길을 받은 장경신이 몸을 일으켰다. "무당파의 제자인 장경신입니다.
여러 선배고인들께 인사여쭙니다." 장경신이 일동을 향해 일일이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올렸다.
그의 이런 태도는 겸손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어서 모든 사람들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장경신이 몸을 앉히자 이번에는 군성초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미모는 지극히 뛰어나서 이 자리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으나 표정은 얼음이 한 겹 앉은 것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볍게 까딱거려 인사를 대신했을 뿐이다. "화화궁의 군성초입니다." 그것이 다였다.
그녀는 차가운 눈길로 일동을 둘러본 뒤 자리에 앉았다.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모두들 말은 안했지만 군성초의 건방진 태도에 불쾌감을 느낀 듯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몸둘 바를 몰라한 건 화화궁주였다. '저것이 그 성질을 버리지 않고.' 화화궁주는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딸이라지만 군성초의 성질은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자네 차례일세." 허영대사가 남궁격을 돌아보았다. "예." 남궁격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포권했다. "철궁도의 남궁격입니다.
감히 무림삼룡이라 불리고는 있지만 미흡하기 그지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일동은 남궁격이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 앉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남궁격은 숨을 한 번 몰아쉰 뒤에 음성을 높였다. "이 몸은 비록 차기 회주의 후보 중에 한 사람이긴 하지만 철궁도의 도주 신분이니 당연히 이 자리에 앉아있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이미 여러 선배고인들께서 양해를 하신 줄 압니다.
하지만 제가 이 자리에서 십방좌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온당치 않으며 많은 무림동도들이 승복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몸은 이 자리를 물러나 저 친구들과 같은 자리에 서겠습니다." 남궁격이 성큼성큼 자리를 걸어 내려와 장경신의 옆으로 갔다.
거기에는 원래 하나의 의자가 더 준비되어 있었으나 그것은 형식적이었고 그가 앉을 자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청해서 그 자리로 내려간 것이다.
남궁격의 이러한 행동은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남궁도주, 도주는 정말로 그 자리로 갈 것이오?" 검제 금수근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남궁격이 담담하게 웃으며 장경신의 옆에 섰다.
그러자 장경신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남궁격을 바라보았다. "어서 오시오, 남궁형." 그러나 군성초는 여전히 오연하게 고개를 세운 채 남궁격을 보지도 않았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태도였다. '건방진 계집.' 남궁격은 약간 불쾌함을 느꼈지만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궁도주, 도주가 그 자리에 간 것은 다른 대리인을 내세우겠다는 건가요, 아니면 철궁도가 오늘 모임에서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건가요?" 화화궁주가 물었다. "당연히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지요.
철궁도는 오늘 십방좌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분들의 결정에 따를 것입니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불과 아홉 사람이 차기 회주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이런 자리에서 하나하나의 권리 행사는 곧바로 오늘의 결정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남궁격은 과감하게 그 유리한 고지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흥, 아무리 그렇더라도 나는 이 자리에 있을 거예요." 화화궁주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녀는 남궁격이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같은 압력이 자신에게도 미칠까 저어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남궁격이 뼈있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무당장문께서도 당연히 그 자리에 계셔야 할 줄로 압니다." "험, 험." 소진도장이 낮게 헛기침을 했다.
그의 얼굴이 약간 붉어진 것으로 보아 남궁격의 한마디가 그의 심사를 건드렸음이 틀림없다. "그럼, 모두 결정된 것이오." 다행히 허영대사가 어색해지려는 분위기를 바로잡았다. "남궁도주, 장시주, 군시주는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밖에 나가 기다리시오." "그러겠습니다." 세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예를 올리고는 몸을 돌려 나갔다.
정청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닫혔다. '이제 저 문이 다시 열릴 때 나는 단심백결회의 회주가 되어있을 것이다.' 남궁격은 뿌듯한 마음으로 정청을 나왔다.
아무리 태연하려고 해도 마음이 자꾸만 들떠 오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얼마나 기다렸던 자리인가.
이제 잠시 후면 천하가 내 손안에 들어온다.
오늘 모임에서 다섯 사람이 나를 지지할 것이다.
변수는 없다.
아니 설사 변수가 있다 해도 최소한 네 사람은 나를 지지할 것이다.
중원검보와 취우선인, 그리고 용호뇌권각과 소림사, 개방 역시 나를 지지하기로 했으니 승리는 틀림없다.
하지만 개방은 아직도 유동적이지.
무숙신개는 변심할지도 모른다.
하나 내가 이긴다는 사실만은 틀림없다.
이제는 그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한다.' "남궁형." 옆에서 장경신이 그를 불렀다. "참으로 어려운 결단을 내렸소.
나라면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오." "그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소?" 남궁격이 유쾌하게 웃었다. "흥, 뭐가 어려운 결단이야!" 차가운 목소리가 그들 두 사람에게 쏘아왔다. "보나마나 뭔가 엉큼한 수작을 부려 놨겠지.
그렇지 않다면 저 교활한 작자가 그렇게 쉽게 물러날 리가 없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군성초가 활활 불길이 이는 눈으로 남궁격을 쏘아보았다.
그녀는 남궁격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난다는 표정이었다. "하하, 아무래도 내가 소궁주에게 단단히 잘못 보인 일이 있나 보오." "흥, 그걸 몰라서 묻느냐?" "소궁주, 조금 지나치지 않소?" 장경신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군성초와 남궁격의 사이가 좋지 않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군성초의 태도는 확실히 조금 지나친 감이 있는 것이다. "당신이 나설 일이 아니에요." 군성초가 매섭게 장경신을 노려보았다. "분명히 말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저자가 회주가 된다면 앞으로 단심백결회의 일에 화화궁은 관여하지 않을 거예요.
단심백결회가 어떻게 될지 뻔한데 그런 망해가는 세력에 뭐하러 협조하겠어요?" "글쎄, 그 말이 지켜질지 봐야겠소." 남궁격도 더 이상 웃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지 무겁게 말했다.
순간 그의 눈에서 무서운 안광이 폭사되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오냐, 내가 회주가 되면 가장 먼저 제거되는 것이 화화궁일 것이다.
그리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너를 내 첩으로 만들고야 말겠다.
그래서 날마다 내 발바닥을 핥게 해주겠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
그러나 아직은 그 분노를 앞세울 때가 아니었다.
남궁경은 다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군성초가 몸을 돌리더니 휑하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허영대사가 절반도 타지 않은 향을 뽑고 새로운 향을 피웠다. "그럼 시작하십시다.
모두 알다시피 저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소이다.
그러니 이 일을 오래 끄는 것은 미안하기 그지없는 일이오.
모두 양해한다면 노납이 모두에게 돌아가면서 의사를 물은 후에 그 의견을 취합하여 결정을 내리고자 하는데 어떠시오?" "그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소이다." 소진도장이 말했다. "어차피 모두들 마음속에 결정을 내려두었을 테니 가장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 인물로 차기 회주를 삼기로 하지요." "좋소이다." 모두들 소리를 모아 동의했다.
그들은 전부 노회한 인물들이었다.
이런 일에는 필히 지지자가 갈리기 마련이고, 그 지지자를 일시에 변경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만일 뒷말을 없애기 위해서 만장일치제를 선택한다면 며칠 밤을 새워도 결말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가장 많은 지지를 얻는 인물로 결정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모두들 그 일의 불가피성을 알고 있기에 힘들여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마도 저 향이 꺼지기 전에 결정이 날 것이오." 허영대사가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인자하게 웃었다. "그럼 결정을 내립시다.
화화궁주께서 먼저 시작하시지요.
누구를 회주로 삼았으면 좋겠소이까?" "내 의견은 물을 필요도 없어요." 화화궁주가 딸만큼이나 냉담한 어조로 말을 뱉었다. "남궁격은 교활하기 그지없는 자예요.
그런 자가 회주 자리에 오른다면 장차 단심백결회가 어찌 될지는 불을 보듯 환한 일이죠.
난 남궁격이 회주가 되는 데 반대예요.
그리고 장경신은 대인의 풍모가 있지만 회주의 자리에 오르기에는 역시 부족한 인물이죠.
단심백결회의 회주는 막중하기 그지없는 자리예요.
인자하기만 하다고 모든 일이 되는 건 아니죠.
단심백결회의 회주는 당연히 군성초가 되어야 해요.
내 딸이어서가 아니라 그 아이는 어려서부터 회주가 될 교육을 받았어요.
무공도 그 세 사람 중에 가장 강하고요.
게다가 결단력이 있으며 사람을 다스릴 줄도 알아요.
불의를 싫어하는 마음도 누구에 못지않죠.
단심백결회의 회주에 그 아이만한 적격자는 없어요." "궁주의 뜻은 잘 알겠소이다.
하지만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들어 봐야지요.
화산장문인의 의견은 어떠시오?" "나는……." 화산장문, 진천창로가 헛기침을 했다. "생각이 조금 다르오.
무궁수사가 회주의 지위에 오르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오.
하지만 화화궁의 소궁주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오."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요?" 화화궁주가 파르르 성질을 앞세우며 물었다.
그녀의 눈에서 독기가 뻗치고 있었지만 진천창로는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 그녀를 외면했다. "날수염적은 여자요.
여인의 몸으로 단심백결회를 다스린다는 건 문제가 많소.
더구나 날수염적은 그 성질이 지나치게 차가워서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기 어렵소.
단심백결회의 회주는 두려움으로 중인들을 다스려서는 아니 되오.
당연히 덕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야만 하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화산파는 무당신검을 지지하오." 무당장문 소진도장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천창로의 말이 그를 흡족하게 한 모양이었다. "좋소이다." 허영대사가 말했다. "그럼 취우선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지금은 난세외다." 생각해 둔 것이 있는지 취우선인이 지체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십마가 다시 준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오.
십마의 준동은 지난날 우리가 겪었던 그 엄청난 두려움을 다시 살아나게 하고 있소이다.
그러니 지금은 누가 회주의 자격이 있는가를 따질 때가 아닌 줄 아오.
그보다는 누가 단심백결회를 이끌고 십마와 싸워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를 먼저 고려해야만 하오.
그리고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단 하나뿐이오.
자고로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고 했소.
그 사람이 영웅인지는 나도 이 자리에서 장담할 수 없소.
하지만 영웅이 없다면 효웅이라도 있어야 이 난세를 수습할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사람이 효웅의 자질이 충분하다는 것은 이 몸이 자신있게 말할 수 있소이다." "취우선인이 말씀하시는 그 사람은 누구요?" "철궁도주외다." "아!" 허영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뜻이리라. "세 분의 고견은 잘 들었소이다.
모두 일리있는 말씀들이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 분은 각기 세 사람으로 갈렸구려.
이래서는 결정할 수가 없소이다.
다행히 남은 분들의 의견도 들어야 하니 결정을 내리는 건 잠시 뒤로 미루겠소이다." 허영대사가 눈길을 소진도장에게로 돌렸다. "소진도우, 도우의 생각은 어떠시오?" "무량수불……." 소진도장이 무겁게 도호를 외웠다. "빈도는 별달리 드릴 말씀은 없소이다.
무당의 장문인이 된 자로 무당의 제자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천하인들에게 우리 무당은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외다.
그러니 빈도는 당연히 장경신을 지지하오.
무당의 제자가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장문인이 된 자로서 자파의 제자를 믿지 않는다면 누구를 믿겠소이까." "당연히 그렇겠지요." 허영대사가 충분히 공감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이제는 검제 금보주의 차례요.
금보주는 누구를 회주로 삼았으면 좋겠소이까?" "제가 과연 여러 선배고인들 틈에서 이런 말씀을 드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금수근이 겸허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굳이 제 의사를 밝히라니 말씀드리지 않을 수도 없군요.
모두들 아시다시피 우리 중원검보는 얼마 전에 천노살성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남궁도주가 우리 중원검보를 도와 보여준 능력은 진실로 대단한 것이었지요.
남궁도주는 천하를 두려움에 떨게 한 천노살성을 어렵지 않게 사로잡아 그 지혜로움을 과시했소이다.
비록 그 후에 모종의 일이 생겨 그자를 놓치기는 했지만 그때의 일은 이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소이다.
남궁도주야말로 오늘날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지휘력을 갖춘 인물입니다.
나는 남궁도주가 회주가 되기를 원합니다." "으음." 작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극히 미미한 것이었으나 금수근만은 그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소진도장이 내지른 신음이기에. '다 틀렸다.
중원검보가 남궁격을 지지한다면 오늘의 일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구나.
용호뇌권각은 본래 철궁도와 가깝고 개방도 무당파와는 등을 돌린 사이이니 더 들을 필요도 없겠다.' "잘하는구나.
잘해." 날카로운 교성, 그것은 화화궁주가 내지른 소리였다. "모두들 작당을 하기로 입을 맞추었군 그래.
흥! 우리 초아가 어디가 모자르다고 이러는 거야!" "궁주! 좀 자중하시오." 허영대사가 무겁게 화화궁주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분노로 새파랗게 질려있던 화화궁주가 찔끔하여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분통이 터져도 이 자리에서 함부로 성질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걸 아는 까닭이다.
더구나 허영대사의 위엄은 그녀로서도 거스르기 힘든 것이 아닌가! "순서에 따라 다음은 개방 차례요.
방주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흠흠." 무숙신개가 헛기침을 했다.
그가 입을 벌리자 지독한 냄새가 정청에 진동했다. "컬컬, 이 보잘것없는 거지에게 의견을 물을 때가 다 있군 그래.
하지만 거지는 거지야.
거지라면 밥만 얻어먹으면 그만이지, 이처럼 긴요한 자리에서 무슨 할말이 있겠어?" 무숙신개는 괴상한 웃음을 흘리더니 허리춤에서 호로병을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그는 호로병을 기울여 술을 마셨는데 한 모금이 만만치 않은 듯 목젖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하여간 하는 짓 하고는……." 화화궁주가 얼굴 앞에 가볍게 손을 저어 불만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런 동작을 취한 것은 그녀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감히 무숙신개의 앞에서 불쾌감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커어, 술맛 좋다!" 무숙신개가 걸판지게 트림을 한다. "세상에는 술만 있으면 제일이오.
알겠소? 다른 것들은 모두 쓰레기란 말이오.
오늘 이처럼 한 자리에 모여 이러쿵저러쿵 하는 걸 보니 정말 구역질이 나는구려." "그럼 방주는 오늘 일에 아무런 의견이 없으시단 말씀이오?" 허영대사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무숙신개가 아무리 기이한 행동을 해도 그는 그 모든 것을 다 포용하는 듯했다. "누가 그렇다고 했소!" 무숙신개가 허영대사에게 하얗게 눈을 흘겼다. "하여튼 땡초는 나설 자리나 안 나설 자리나 가리지 않고 나서서 골치라니까.
어험, 험.
그러나저러나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죄송하게 되었소." 허영대사가 너그럽게 웃었다.
아마도 이 무림에서 허영대사를 땡초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은 무숙신개가 유일할 것이다. "그래, 모두 쓰레기란 말이오.
소위 무림삼룡이라고 불리는 새파란 애송이들도 쓰레기요.
조그만 명성에 취해서 잘난 척을 하는 꼴이란…… 캑, 정말 눈뜨고는 못 봐주겠더군." "그래서 어쨌단 말이오? 개방은 누굴 지지하는 거요?" 참다 못한 진천창로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끝없이 이어지는 무숙신개의 궤변이 그의 비위를 건드렸던 것이다.
무숙신개가 진천창로를 보며 싱긋 웃는다. "모두 쓰레기란 말이오.
아참, 이 얘기는 아까도 했었지.
그 중에서도 특히 화산판가 뭔가 하는 문파를 세워 놓고 하늘이 낮다고 활개짓을 하는 것들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지." "이거야 원……." 진천창로가 얼굴을 붉혔지만 신통하게도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숙신개에게 타박을 주었다가는 그 입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올지 저어한 것이다. "커흠, 흠.
아무튼 우리 개방의 의견을 물으니 한마디 해야겠는데…… 군성촌가 뭔가 하는 계집은 내 비위에 안 맞아.
계집이라면 그저 방안에 얌전히 틀어박혀 바느질이나 할 것이지, 공연히 치마폭을 펄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꼴이란 정말 가관이거든." "방금 그 말은 본 궁주도 포함되는 건가요?" 이번에는 화화궁주가 성질을 낼 차례였다.
그러나 그녀는 진천창로처럼 파르르 하지는 않았다.
방금 그가 혼나는 꼴을 본 까닭이다. "누구누구 할 것 없이 계집은 다 똑같지, 어흠." "그래요? 좋아요.
개방이 과연 대단하긴 대단하군요." 화화궁주가 날카롭게 말을 던지며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세간에 이르기를 개방의 무숙신개는 상종 못할 인물이라더니 정말이로구나.' 이 자리가 단심백결회의 차기 회주를 결정하는 자리만 아니었어도 그녀는 벌써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중차대한 자리였기에 그녀는 애써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장경신이라는 작자는 혼자만 잘난 체하는 위인이지.
그자는 이 세상에 자기 혼자만 있는 것처럼 행동한단 말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역겨운 것은 그 사부라는 것들이야.
도복을 걸치고 다니는 말코 도사 중에 이 어르신네의 비위에 맞는 인물은 하나도 없지.
그들은 전부 위선자야.
그들에게 거지옷을 입혀서 길거리에 세워 놓으면 과연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겠군." "구걸이라면 우리 무당파의 제자들도 꽤 하지요." 소진도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개방과 무당파의 불화는 세간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는 개방이 장경신을 지지하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독설을 퍼부어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커흠, 흠.
무림삼룡 중에는 남궁격이 사내답지.
그 녀석도 쓰레기임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자기의 야망을 감추지는 않거든.
생각해 보란 말야.
누구나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싶어하고 똥이 마려우면 측간에 가지 않나? 그게 사람의 본능이야.
마찬가지로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야망이지.
그런데도 그런 뻔한 마음을 굳이 숨기고 군자연하는 것은 정말로 보아주기 어려운 일이거든.
그런데 남궁격은 그런 속셈을 감추지 않는단 말야.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어." "그럼 무숙신개께서는 남궁도주를 지지하겠구려." "누가 그렇다고 했소?" 허영대사의 말에 무숙신개가 벌컥 성질을 냈다. "나야 남궁격 그 녀석을 회주 자리에 앉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
그 녀석은 머리도 제법 좋은 편이어서 여간해선 실수를 하지 않거든.
십마라는 괴물들과 싸우기에는 그 녀석보다 적격자는 없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어떤 사람이 어제 내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더군.
이 어르신네는 평생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살아왔지만 그 사람의 부탁이라면 거절할 수가 없단 말이야.
그래서 이 어르신네는 별수없이 장경신을 회주 자리에 앉히기로 했단 말씀이야.
정말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무숙신개가 말을 끝내고 다시 술병을 들어 술을 마셨다.
그의 얼굴이 정말로 우울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번 결정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었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개방이 오랜 불화관계에 있는 무당파를 지지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방금 무숙신개가 한 말이었다. "방주에게 그런 부탁을 한 사람이 누구요?" 참다 못해 진천창로가 물었다.
그는 방금 무숙신개에게 모욕을 당하였지만 가슴속에 이는 궁금증은 그러한 모욕감을 억누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커흠, 흠.
그게 누군지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벌써 했지 여태 있었겠어? 하여간 우리 개방은 장경신을 지지한다.
더 할말은 없소." 무숙신개가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더 할말이 없다는 뜻이고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 다시 그의 입을 열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개방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했소이다." 다행히 허영대사가 눈치 빠르게 말했다. "그럼 이제 용호뇌권각의 노각주만이 남았구려.
각주의 생각은 어떠시오?" "개방이 장경신을 지지한 것은 정말 의외요." 노강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는 이 돌연한 사태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변했다 해도 우리 용호뇌권각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소.
우리는 남궁도주를 지지하오." "알겠소이다." 허영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로써 모든 분의 입장이 정리된 셈이구려.
화화궁은 날수염적 군시주를 지지하고 무당파와 개방, 화산파는 무당신검 장시주를 지지하며 용호뇌권각과 현황산동, 그리고 중원검보는 무궁수사 남궁 도주를 지지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소이까?
💬 한 줄 댓글 0
비회원 · 이 글에 하루 1개만 등록 가능
HTML/스크립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댓글은 최대 120자이며 페이지를 이동하지 않고 바로 등록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Copyright © webstoryboard.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