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4 - 7편 (7/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본문 바로가기

[야설록]천객 - 4 - 7편 (7/17)

💬 0 👁 10
☰ 목록
책갈피와 음성 읽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눈가림을 위해 저토록 많은 사람들을 버리다니……." 천노살성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궁수사도 마음이 상당히 간악한 자로군요." "그걸 이제 알았나?" 지마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쓸 만한 놈이야.
적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의 후계자로 삼았을지도 모르는 놈이지.
교활하고 잔인하며 이리 같은 마음씨를 지니고 있는 자니까.
어쨌든 그자는 지금 모든 힘을 저 안에 집결시키고 있네.
저 안에서 우리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지." "그럼 앞으로가 힘이 들겠군요." "힘이 들 것도 없네." 지마는 남궁격을 높이 평가한 것과는 달리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단심백결회는 우리 손에 들어오네.
남궁격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일만은 막을 수가 없지.
이미 쾌마가 거느리고 있는 제이진과 패마의 제삼진이 단심백결회의 뒤로 돌아가고 있네.
검마의 제사진, 전마의 제오진, 혈마의 제육진도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을 테고, 쇠마가 거느리고 있는 제일진은 남궁격의 목에 비수를 들이댈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겠지.
문제는 그들과 어떻게 시간을 맞추느냐는 것인데, 그 일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걸세." "어련하시겠습니까?" "후후, 삼십 년을 준비해 온 일일세.
실패는 있을 수가 없지." 지마의 웃음 속에는 짙은 피비린내가 풍겼다.
그것은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저 수많은 사람들이 흘리는 피보다도 훨씬 강렬한 것이었다.
삼십 년의 집념, 그것은 너무나도 무서운 것이기에.
마침내 단심백결회의 제이저지선이 완전히 괴멸되었다.
그리고 천노살성을 선두로 한 흑의인들이 산을 짓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검은 파도가 밀려가는 것 같은 무서운 기세였다.
제 31 장 단심혈겁(丹心血劫) 천노살성은 차가운 눈으로 단심백결회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심백결회는 많은 전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각의 크기는 제각각이었는데 그 중에는 상당히 큰 규모인 것도 있고 작고 초라해 보이는 것도 있었다.
큰 규모의 전각은 십 년 이내에 건축된 것이고 작은 전각들은 단심백결회가 처음 창건될 당시에 세워진 것이었다.
그것은 단심백결회의 변천사를 간접적으로 웅변해 주는 것이나 같았다.
단심백결회의 처음 창립 목적은 이 땅에 정의의 깃발을 세우는 것이었기에 커다란 전각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기거할 수 있으면 되었고 모여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면 족했다.
또한 단심백결회의 건물들이 그처럼 초라한 것은 창립자인 천품신성 악자량의 검소한 성격과도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천품신성이 사라지고 난 후, 시간이 흐르면서 단심백결회에는 점차 화려한 전각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순수함이 사라지고 일종의 권위의식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단심백결회는 금릉에서 동북쪽으로 삼십 리쯤 떨어진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곳은 요새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갈 수 있는, 통행이 자유로운 곳이었다.
하기야 처음부터 단심백결회를 요충지에 세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 동안 단심백결회의 권위에 도전한 세력은 전무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단심백결회는 창건 이후 가장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단심백결회의 주위에는 단단한 목책이 둘러쳐져 있었으며 그 주위로 호성하(護城河)가 흐르고 있었다.
목책은 생나무를 잘라서 엮은 것으로 아직도 송진이 흐르고 있었고, 호성하 주위에는 땅을 판 시뻘건 흙덩어리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목책과 호성하는 남궁격이 회주가 된 후 서둘러 구축한 것으로 조잡하고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단심백결회를 지켜주는 든든한 힘이 되고 있음은 분명했다.
목책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고 목책 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십마가 쳐들어오고 있음을 모를 리 없건만 단심백결회는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기이한 일이다.
하지만 그 조용한 침묵 속에 내포되어 있는 폭풍전야의 긴장을 읽지 못할 만큼 천노살성은 어리석지 않았다. "이제 어쩌죠?" 천노살성이 지마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쩌긴, 끝장을 내야지.
오늘 해가 저물기 전에 모든 것이 끝날 걸세." 지마가 흑마를 돌아보았다.
그게 신호였음인가.
흑마가 십여 명의 흑의인을 동반하고 몸을 날려 단심백결회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호성하의 너비는 일 장 남짓으로 웬만한 경공술을 익힌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건너뛸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중에는 넓은 곳도 있고 좁은 곳도 있었으나 흑마는 그것을 가리지 않고 그냥 몸을 날려 호성하를 건너뛰었다.
흑마와 그 일행이 막 호성하를 넘을 때였다.
돌연 목책 위에서 무수한 화살의 소나기가 쏟아졌다.
화살은 보통 화살이 아니라 쇠로 만든 강전으로, 철궁도의 철궁위대가 사용하는 것이었다. "흥!" 흑마가 나직한 코웃음소리를 내며 넓은 소매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토록 무섭게 날아오던 강전들이 맥없이 밑으로 추락했다.
강전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흑마 일행은 한 사람도 강전에 당하지 않고 무사히 호성하를 넘을 수 있었다.
그들이 발을 땅에 딛자 다시 머리 위에서 화살이 쏟아졌다. "어린애 장난이로군." 흑마가 노성을 지르며 몸을 솟구쳐 올렸다.
그는 이번에도 소매를 흔들어 강전들을 격추시키고 있었다.
순간 무수한 폭음소리가 일어나며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쾅쾅쾅! "크윽!" "으악!" 비명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연기를 뚫고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호성하를 넘어 이쪽으로 건너오고 있었다.
흑마였다.
그러나 조금 전의 위세는 간곳이 없고 그는 지극히 낭패한 모습이었다.
옷은 갈기갈기 찢어졌으며 강철 같은 몸에는 여기저기에 핏자국이 엿보였다.
수염은 까맣게 그을려 금방 불구덩이에서 나온 사람 같았으며 전신 역시 숯처럼 변해 있었다.
호성하를 넘어갔다 다시 넘어온 사람은 흑마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흑의인들은 호성하 곁에서 숯덩이로 변해 있었다.
처참한 모습이다.
첫번째 강전은 다만 눈속임이었고, 두 번째의 강전 끝에 폭약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걸 깨닫지 못한 흑의인들이 힘으로 쳐내다가 그만 봉변을 당한 것이다. "크윽!" 호성하를 건너온 흑마의 신형이 휘청했다.
요행히 죽음을 면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우야!" 그 광경을 본 백마가 벼락같이 소리지르며 몸을 날렸다.
그러자 뒤에 있던 흑의인들이 따라서 움직였다.
그들은 흑마를 마중하듯 유성처럼 달려갔다. "제법이군." 그 광경을 보고도 지마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이 모든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쉽지 않겠는데요." 천노살성이 지마를 돌아보며 우려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야 어차피 약간의 저항은 있는 게 당연하니까.
괘념할 것 없네." "이놈들!" 백마의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백마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마치 염라국에서 환생한 사자처럼 무서운 기세로 호성하를 넘어갔다.
슈슈슛! 백마와 그 일행의 신형이 허공에 뜬 순간 호성하 속에서 가느다란 화살들이 솟아올랐다.
화살은 그 굵기가 겨우 대침만 했으며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엇?" 목책 위에서 날아올 강전에만 신경을 쓰고 있던 백마는 의외의 사태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급히 신형을 뒤집으며 몸을 위로 빼올렸다.
두 팔을 벌린 채 허공 높이 치솟아 오르는 그의 모습은 한 마리 대붕을 연상시켰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백마를 추적하던 가는 화살들이 힘을 잃고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처럼 절묘한 신법으로 화를 면한 사람은 오직 백마 하나뿐이었다.
나머지 흑의인들은 호성하 아래에서 솟아오른 가는 화살에 맞아 그대로 물속으로 추락했다.
백마가 낭패한 모습으로 호성하 이쪽에 내려앉고 있었다.
두 번의 공격.
그러나 그 두 번의 공격이 아무런 소득없이 끝나버린 것이다. "와아!" 목책 위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아무도 없던 목책 위에 어느새 무수한 머리가 나타나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철궁위대를 포함한 단심백결회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십마의 공격에 짓눌려 의기소침해 있다가 연속하여 두 번의 승리를 거두자 기세가 높아진 것이다. "기관이 있군." 하지만 지마의 음성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어떻게 할 건가?" 짙은 회색 안개 덩어리 하나가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환마였다. "왜, 두려운가?" "두렵긴……." 안개 속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정도가 두렵다면 애당초 여기에 오지 말았어야지." "그 말이 옳네." 지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늘을 보았다.
태양은 어느새 중천에 떠 있었으며 핏물 속에 잠겨있다가 금방 위로 올라온 것처럼 기이한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시간이 되었군." 지마가 중얼거렸다. "장난은 끝났다.
자, 이제 단심백결회의 피를 마시러 가자!" 지마가 손을 높이 들자 그때까지도 조용히 서 있던 흑의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단심백결회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백여 명에 달하는 흑의인들이 일제히 질주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그 중에는 지마도 있었고, 한 번 매운맛을 본 흑마와 백마도 있었으며 천노살성도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방금까지 있던 환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콰콰쾅! 우렁찬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심백결회 쪽에서 울린 폭음이 아니었다.
흑의인들이 들고 온 폭약을 호성하 속으로 던져넣은 것이다.
물결이 춤을 추면서 거꾸로 솟구쳐 올랐다.
호성하는 금방 바닥을 드러냈으며 그 속에 설치되어 있던 기관들도 기능을 상실했다.
그리고 그 위를 넘어 흑의인들이 단심백결회로 짓쳐 들어가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 화살의 소나기가 쏟아졌다.
강전의 어떤 것은 그냥 강전이었고 어떤 것은 폭약을 내장하고 있었다.
육안으로 그 차이를 분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기에 흑의인들은 감히 강전을 맞받아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절묘한 신법으로 피하면서 목책에 달라붙고 있었다.
흑의인들이 목책에 바싹 달라붙자 철궁위대도 더 이상 강전을 날리지 못했다.
그들이 계속 강전을 날리기 위해서는 신체의 대부분을 밖으로 노출시켜야만 했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아래에서 암기의 소나기가 날아왔던 것이다.
그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차앗!" 흑마와 백마가 고함을 지르며 일제히 몸을 날렸다.
그들은 발끝으로 목책을 차며 위로 오르고 있었는데 그들의 발이 닿는 곳에는 어김없이 깊은 홈이 파였다.
그리고 그 홈을 딛고 흑의인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내려가라!"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목책 위에서 강력한 경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러자 흑백쌍마가 코웃음을 치며 그 경기를 받아쳤다.
그러나 경기는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더구나 그들은 위로 올라가는 중이고 경기는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그 위력이 배가되었다. "큭!" 흑백쌍마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래로 뚝 떨어졌다.
그러한 상황은 흑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흑의인 중에는 더욱 비참한 처지에 처한 자도 있었다.
목책을 타고 올라가는 데 멀쩡하던 목책에서 돌연 긴 창이 불쑥 솟아나와 그들의 배를 찌른 것이었다.
뜻밖의 봉변을 당한 흑의인들은 아래로 떨어지지도 못하고 그대로 목책에 매달린 채 산적이 되고 말았다. "어쩌죠?"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목책을 뚫는 데 실패하자 천노살성이 다급히 외쳤다.
그는 긴 묵창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강전을 쳐내지는 못하고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다.
그의 백의는 이미 새카맣게 변했으며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낭패한 모습이었으나 다행히도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걱정할 것 없네.
이제 곧 끝날 테니까." 지마가 의미있는 말을 중얼거릴 때였다.
돌연 단심백결회 내에서 요란한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그토록 단단하게 닫혀있던 목책의 문이 활짝 열렸다. "되었군." 그 모양을 보고 지마가 미소를 흘렸다.
목책 안에는 짙은 회색 안개로 전신을 가린 환마가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십여 명의 백의인들이 시체로 변해 있었다.
대체 환마가 어떤 방법으로 목책 안으로 들어가 문을 열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단심백결회의 그 완강한 저지선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와아!" 목책이 열리자 흑마가 괴상한 고함소리를 내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이제까지 당한 분풀이라도 하듯이 가공스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백마가 따랐다. "안 돼! 너무 경솔하다!" 지마가 다급히 소리를 지른 것은 그 순간이었다.
성질을 이기지 못하여 안으로 질주하던 흑백쌍마는 지마의 고함소리를 듣고 멈칫했다.
그들은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하들이야 미처 따라오지 못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당연히 필사적으로 저지해야 할 단심백결회 놈들이 하나도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마치 방금 비질을 한 것처럼 깨끗하기만 했다. '이건?' 뭔가 불길한 생각이 백마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해랏!" 백마가 다급히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로 날렸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꽝! 꽈르르 꽈광! 번천지복.
엄청난 폭음이 단심백결회를 뒤흔들었다.
땅이 뒤집히고 흙기둥이 삼 장이나 허공으로 치솟았다 가라앉았다.
시야를 온통 흙먼지가 가로막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짙은 화약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런 빌어먹을……." 이윽고 흙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지마는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없었다.
흑백쌍마가 있었던 자리에는 깊숙한 구덩이 하나가 파여있을 뿐 두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간간이 떨어져 있는 살점이 그 두 사람의 최후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흑백쌍마, 십마 중의 이 인이며 한 시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두 거마는 이렇게 죽었다. "당했네……." 어느새 지마의 곁으로 다가온 환마가 신음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회색 안개는 말끔하게 사라지고 그의 진신이 드러나 있었다.
거대한 화약의 폭발은 환마에게도 심각한 타격을 입힌 것이다. "으…… 목책이 뚫리고 우리가 쳐들어올 경우를 대비하여 이런 곳에 화약을 묻어두다니…… 목책이 열리는 순간 방심한 게 실수였지만 놈은 그것까지도 계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마가 주먹을 움켜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는 분명 상대에게 한 방 먹은 것이다. "하하하!" 문득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마가 웃음소리에 끌려 고개를 들어보니 남궁격이 목책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하하! 지마, 큰소리 치더니 겨우 이건가!" "남궁격!" 지마가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교활한 놈, 실력도 없는 놈이 잔꾀만 늘었구나.
그런 데 숨어있지 말고 나와서 승부를 겨루자!" "하하! 정의는 이긴 다음에 찾는 것이다.
패한 뒤에 아무리 정의를 부르짖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
지마, 너는 여기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이곳에 온 것이 네 일생일대의 실수가 될 것이다.
봐라!" 남궁격이 옆에 세워 놓은 붉은 깃발을 뽑아 흔들었다. "와아!" 우렁찬 함성이 일어난다.
전각 그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걸인들이었으며 선두에는 무숙신개와 이충개가 서 있었다.
하지만 걸인들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 중에는 금수근을 포함하여 백의를 걸친 검수들도 다수 섞여 있었는데 모두가 중원검보의 고수들이었다. "나오너라." 남궁격이 다시 푸른 깃발을 흔든다. "아미타불!" 우렁찬 불호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왼쪽에서 가사를 걸친 승려들이 꾸역꾸역 몰려나오고 있었다.
선두에 선 것은 허영대사와 허수대사였으며 소림십팔나한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소림사의 승려들만이 아니었다.
추혼수 노강과 용호뇌권각의 고수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더 보고 싶은가?" 이번에는 백기를 흔들었다.
그러자 우측에서 일단의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진천창로 육등손을 선두로 하여 화산파의 고수들과 철궁도의 고수들이 섞여있는 연합군이었다.
세 방향에서 쏟아져 나온 고수들은 그 수효가 줄잡아 삼천에 달했다.
엄청난 수효의 고수들이 전각 사이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후후, 지마! 어떠냐?" 고수들을 출동시킨 남궁격이 의기양양하여 말했다. "너희 십마도 이제는 끝이다.
지난날 천품신성이 미처 하지 못한 일을 나 남궁격이 해내는 것이다." "남궁격, 너는 너무 오만하구나!" 지마가 중얼거렸다.
그는 처음의 당황하던 모습과는 달리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고 있었다. "겨우 이런 허수아비들을 내세워 우리를 겁주려 하다니.
흥, 십마가 뭐 단심백결회에 놀러온 줄 아느냐?" "지마, 아직도 입은 살아있는 모양이다만 네가 지꺼릴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글쎄, 그게 뜻대로 될까.
결국은 꿩 잡는 게 매겠지.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 중얼거린 지마가 환마를 돌아보았다.
그는 어느새 여유를 되찾아 조금도 흔들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어떤가? 자네, 두렵나?" "흥! 내 눈에는 모두 허깨비로 보이는 걸!" 환마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의 몸 주위로 다시 짙은 회색 안개가 뭉게뭉게 일어나고 있었다. "무궁수사 저자가 오합지졸을 믿고 큰소리를 치는 모양인데 한 번 혼을 내줘야 하지 않겠나?" "물론이지." 환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얘들아, 가자." "와아! 난전중에서 살아남은 흑의인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앞장선 환마의 뒤를 따라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런 어리석은……!" 남궁격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환마를 선두로 한 흑의인들이 용감하게 진세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들의 기세는 몹시도 사나운 것이었으나 그 수효가 워낙 적었기에 마치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부나방과 같은 형국이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다. "우와!" "십마를 쳐라! 하나도 남기지 말고 주살하라!" 엄청난 함성이 일었다.
정면에 있던 개방과 중원검보의 고수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환마는 연달아 절초를 구사하여 십여 명을 쓰러뜨렸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환마와 흑의인들의 모습은 이내 중인들에게 둘러싸여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군." 결과가 뻔한 싸움이라 남궁격은 아예 그쪽을 보지도 않았다.
환마가 아무리 경천동지의 재간을 지니고 있다 하여도 혼자의 몸으로 저 엄청난 수효의 고수들을 이겨내지는 못할 것이다.
남궁격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지마, 저자는 어째서 가만히 있는 것이지? 같이 싸우거나 상황이 불리하다는 걸 알았으면 하다못해 도망치기라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지마의 곁에 있는 저자는 천노살성이 아니다.
비록 천노살성과 많이 닮기는 했지만 다른 자다.
그것도 여자 같다.
여자가 남장을 하고 천노살성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진짜 복청양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때 지마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마치 시간을 가늠하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차!' 순간 남궁격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발을 굴렀다. "이런 멍청한! 저들은 십마의 주력이 아니다.
비록 지마를 포함하여 십마가 다수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쇠마를 포함한 다른 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천노살성까지 없으니 그럼 그들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멍청하게 중얼거린 남궁격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으…… 실수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후후,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군." 지마가 목책 위를 올려다보며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그 역시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환마가 있는 방향은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깨달음이 너무 늦었다.
어리석은 자." 지마의 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우와아!" "와!" 어디선가 거창한 함성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단심백결회 곳곳이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불길은 뒤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방으로 퍼져나갔으며 도저히 잡을 길이 없었다. "회주님, 큰일났습니다!" 중년인 하나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남궁격의 앞으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쇠마를 포함한 십마가 여섯 방향에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의 저지선은 무너졌으며 후방이 뚫렸습니다!" "이런……." 남궁격의 얼굴은 잿빛이었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청기와 백기를 들어 미친 듯이 휘둘렀다. "뒤를 막아라.
적의 기습이다!" "흐흐, 늦었다." 태산 같은 체구의 거한 하나가 소림사 승려들의 뒤를 파죽지세로 무찌르며 짓쳐오는 것이 보였다.
패마였다.
그 뒤로 다시 검마가 일대의 흑의인들을 동반하고 쳐들어왔는데 그들의 수효는 줄잡아 수백은 되어 보였다.
허를 찔린 소림사와 용호뇌권각의 연합군은 변변히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여기도 있다!" 전마가 거느리는 일진, 그리고 쾌마가 거느리는 일진이 화산파와 철궁도의 연합군을 등 뒤에서 덮쳤다.
💬 한 줄 댓글 0
비회원 · 이 글에 하루 1개만 등록 가능
HTML/스크립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댓글은 최대 120자이며 페이지를 이동하지 않고 바로 등록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Copyright © webstoryboard.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