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3 - 16편 (16/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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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3 - 16편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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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태도를 변경하실 분은 없으시오?" 허영대사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 늙은 것이 한 말씀 드리겠소." 이윽고 긴 침묵을 깨며 취우선인이 입을 열었다. "결국 화화궁의 군성초 소궁주는 제외되었소.
이제 남은 것은 두 사람 중에서 하나를 결정하는 것이오.
바로 무궁수사와 무당신검 중에서 말이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각기 셋의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으니 단심백결회의 차기 회주는 아무래도 대사께서 결정하셔야 할 것 같소이다.
소림사는 아직 의중을 밝히지 않았는데 과연 누구를 지지하시겠소?" "그럴까요? 노납이 지지하는 인물로 회주를 삼아도 이견들이 없으시겠소이까?" "이견이 있을 리 없지요." 진천창로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개방이 장경신을 지지하기로 한 것은 확실히 의외였다.
하지만 소림사가 무당파와 오랜 알력이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었기에 허영대사가 남궁격을 지지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자신이 지지한 장경신이 회주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을 보면서 그의 표정이 밝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흥, 우리 초아가 회주가 못 될 바에야 누가 회주가 되든 나는 상관없어요." 화화궁주가 몸을 뒤로 제끼며 냉담하게 말했다.
아마도 오늘의 모임에서 군성초가 화화궁의 지지밖에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것은 화화궁이 생긴 이래 가장 큰 치욕이었을 것이다. "대사께서 결정하십시오." 금수근도 밝은 표정으로 거들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좌중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진 것이다. "아미타불…… 참으로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소이다." 이제껏 앉아서 회의를 이끌던 허영대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한 자세로 두 눈을 감았는데 그의 이마에 주름이 깊이 패이고 있었다.
넓은 정청에 깊은 침묵이 감돌았다.
바야흐로 허영대사의 말 한마디로 차기 단심백결회의 회주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윽고 허영대사가 눈을 번쩍 뜨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무서운 안광을 흘렸다. "아미타불…… 이토록 큰짐이 노납에게 지워질 줄은 진정 몰랐소이다.
그러나 모두의 뜻이 그러하다면 노납은 부득불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소이다.
여러분도 그러했겠지만 노납은 이 일을 놓고 지난 며칠 동안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소이다.
그것은 사사로운 감정을 떠나서 과연 누가 단심백결회를 맡아야 단심백결회가 번창되게 할 것이며, 날로 그 기세가 더해질 십마의 도전에서 이겨낼 수 있는지, 그리고 천하만민을 위해 노납의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소이다.
그리고 많은 고뇌를 한 끝에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소이다." 허영대사가 모두의 눈길을 의식한 듯 숨을 깊이 몰아쉬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여 결정내린 일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소이다." "대사!" 금수근이 놀라 소리쳤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오?" "그것은 노납이 소림사를 떠나기 전에 한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외다.
그 방문객은 노납에게 한 통의 편지를 전하였는데 그 편지는 노납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분이 쓴 것으로 차기 회주로 누구를 밀어야 할지 조언이 들어 있었소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그 같은 편지는 노납 혼자만 받은 것이 아닌 모양이오.
아마도 개방의 무숙신개도 같은 편지를 받았으리라고 짐작되오이다." 허영대사의 눈길이 무숙신개에게 향하자 무숙신개가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움으로 붉힌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숙신개에게서는 자랑스러움이 넘치고 있었다. "대사, 그렇다면……." 추혼수 노강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벌개진 얼굴로 허영대사를 노려보았지만 감히 어쩌지는 못하겠던지 힘없이 다시 착석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주먹이 움켜쥔 채로 부르르 떠는 것을 보아 마음속의 노여움을 참지 못하겠는 모양이었다. "바로 그렇소이다." 허영대사가 한숨처럼 말을 뱉었다.
허영대사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은 일동이 일제히 소진도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작 얼굴 가득히 희색을 나타내야 할 소진도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눈길을 내리깔고 있었다. "노납이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겠소!" 허영대사가 갑자기 우렁차게 소리쳤다. "단심백결회의 차기 회주는 무당파의 제자인 무당신검 장경신으로 결정되었소.
이 결정은 최종적인 것이며 그 누구도 변경할 수 없소.
앞으로 전 무림동도는 장경신 회주를 충심으로 받들며 하나로 뭉쳐서 장차 닥쳐올 난관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오.
아미타불…… 장회주께 세존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깊은 침묵.
아마도 십방대동이 열린 이래 이 같은 침묵은 없었을 것이다.
오늘의 회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당연히 회주가 되리라고 생각한 남궁격을 누르고 장경신이 회주가 되다니…….
하지만 그보다도 좌중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바로 소림사와 개방을 움직였다는 그 신비인에 관한 것이었다. '과연 그가 누구란 말인가.
누구이기에 이 같은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저 두 원로는 다른 사람의 강권으로 애초의 뜻을 굽혔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지 않는가.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얼굴들이다.
대체 누구이기에 저 두 사람을 움직일 수 있으며 그러고도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지 진정 모르겠구나.
무림에 그 같은 신비인이 존재하는지는 정말이지 몰랐다.' 신비인의 위력.
그것은 참으로 거대한 것이었다.
신비인의 말 한마디로 차기 회주가 결정되었다면 실상 앞으로 단심백결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장경신이 아니라 그 신비인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은 모두에게 일종의 두려움과 함께 야릇한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그러기에 자신들의 뜻과는 다르게 회주가 결정되었어도 그 결정에 크게 반발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둥둥둥둥! 둔중하게 울려퍼지던 북소리가 갑자기 급박하게 변했다.
정청의 문이 활짝 열리고 여덟 명의 고인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은 허영대사를 중심으로 하여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러자 연무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한동안 부산스런 소음이 요란했다.
그러나 이윽고 연무장은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깊은 물속처럼 조용해서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그들은 일제히 기대와 흥분이 담겨있는 시선으로 단심백결회를 다스리고 있는 십방좌를 바라보았다. "아미타불……." 마침내 허영대사가 두 손을 모으며 사자후를 터뜨렸다. "여러분이 고대하던 단심백결회의 새로운 회주가 결정되었소이다." 허영대사는 발표의 극적인 분위기를 높이려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단심백결회의 새로운 회주는 무당파의 제자인 무당신검 장경신이오!" 제 27 장 암습(暗襲)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우와아!" 거대한 함성이 일어나고 있었다.
함성은 파문처럼 번져 연무장 전체를 휩쓸었고, 마침내는 단심백결회의 거대한 전각들을 일제히 점령해 버렸다.
특히 새로운 회주를 배출한 무당파의 감격은 너무나 큰 것이어서 무당파의 제자 중에는 서로를 얼싸안고 껑충껑충 뛰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함성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망연자실하여 고개를 푹 떨구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철궁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낙심하여 어쩔 줄 모르다가 하나씩 소리없이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감격의 거대한 함성이 몰아치는 연무장에서는 그들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주시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오늘 그들의 낙심이 장차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 그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우지끈! 의자 하나가 박살이 나서 날아갔다.
의자는 강력한 힘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벽으로 날아가 그 형체마저 남아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의자에 이어 탁자가 조각이 되어 날았고, 이어 방안의 집기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벽에도 깊숙한 장인이 박혔다.
방안 전체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방안을 한바탕 폭풍우처럼 휘저은 남궁격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얼굴을 붉힌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 되었단 말인가.
도대체 뭐가!" 거의 광기에 사로잡힌 것 같은 남궁격의 고함에 국충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는 가능하면 축골공이라도 전개하여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는 입장이기에 그는 애써 몸을 반듯하게 세우고 남궁격에게 눈길을 주었다. "새로운 회주의 취임식은 한 달 후에 있을 예정입니다." 국충은 가라앉은 음성으로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보고했다.
그는 이러한 보고를 남궁격에게 전해야만 하는 자신의 입장이 지극히 원망스러웠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다.
만일 잘못하여 남궁격이 이성을 잃고 그를 쳐죽이기라도 하면 어쩌겠는가.
그때는 별수없이 맞아죽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래도 할말은 해야 한다.
혹시라도 전할 말을 전하지 못했다가 나중에 올 질책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지금 하는 편이 낫다. "그때까지 십방좌는 모두 단심백결회 내에 남아있을 예정입니다.
아마도 새로운 회주의 권위를 높여주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화화궁은 오늘의 결정에 반발하여 곧 궁으로 돌아간다 합니다." "화화궁이 돌아간다?" 남궁격이 멈칫 서며 국충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서 새파란 청광이 일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언제 광분했느냐는 듯이 차가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국충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척추를 타고 흘러감을 느꼈다.
남궁격은 광분하고 있을 때가 더 사람다웠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이러한 큰 좌절을 겪고도 광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그가 돌연 냉정을 되찾자 이제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국충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언제 간다 하더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내일 아침이 아닐까 합니다." "내일 아침이라…… 음…… 가서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해라." "그 말씀은……?" "그들이 언제 가는지 알아보란 말이다!"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인 남궁격이 바닥에 털썩 몸을 앉혔다.
방안에는 의자란 의자는 모두 부숴버려 그가 앉을 곳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국충이 허리를 굽신하더니 바삐 밖으로 나갔다.
그는 이 호굴에서 벗어나는 것이 한 생명을 건진 것 같은지 나가는 발걸음이 몹시 가벼웠다. "어리석은 것들." 혼자가 된 남궁격은 자신의 장인이 깊이 박혀있는 벽을 보며 중얼거렸다. "너희들은 큰 실수를 한 것이다.
너희들은 나를 회주로 뽑았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서로에게 좋았다.
오늘의 결정은 너희들의 일생에 가장 큰 실수가 될 것이다."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남궁격의 눈이 점점 가늘어지면서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다. "후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제이의 계획을 세워두기를 잘했다.
이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십방좌, 너희들이 나를 너무 구석으로 몬 것이다." 몸을 일으킨 남궁격은 뒷짐을 지고 방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안 된다면 변칙을 사용해서라도 나는 회주가 될 것이다.
단심백결회의 회주는 바로 나다.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남궁격의 가슴에 한 가닥 검은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아무리 침착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변수였다. '누굴까, 개방과 소림사를 움직인 사람이.
내가 아는 바로는 그럴 만한 능력을 지닌 사람은 없다.
절대로! 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런 인물은 분명히 존재했고 나의 모든 것을 파괴해 버렸다.
만일 그자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내가 이제껏 쌓아올린 탑이 모조리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자는 십마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다.
하지만 그자가 누구든간에 나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남궁격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궁격이다.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지켜오고 있는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그 자부심은 누구도 깨뜨릴 수 없다.
상대가 그 누구라고 할지라도.
설사 신이라도 그의 앞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 * * 산길을 두 대의 가마가 달려가고 있었다.
겨울답지 않게 따사로운 날씨였다.
태양은 중천에 걸려 있었고 구름 한 점 없다.
산길 곳곳에 널려있는 잔설만 아니라면 봄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 날씨였다.
가마를 메고 있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그것도 남자처럼 울퉁불퉁한 근육에 험상궂은 생김새를 한 여인들이었다.
그들은 몸에 찰싹 달라붙는 경장 차림이었는데 무거운 가마를 울러메고 산길을 나는 듯이 달리면서도 전혀 힘들어 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얼굴에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앞의 가마는 네 명의 여인이 울러메고 있었다.
가마는 상당히 화려했으며 여러 가지 모양의 칠채보주(七彩寶珠)가 주렁주렁 매달려 흔들릴 때마다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뒤의 가마는 조금 작았으며 불꽃처럼 붉은색이었다.
그러나 붉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어서 차라리 검소하게 보였다.
그래선지 뒤의 가마는 두 명의 여인이 메고 있었다.
두 대의 가마 앞에는 늙은 노파와 어린 소녀가 앞장서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 또한 다른 여인에 못지 않게 가벼웠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들이 상당한 능력을 지닌 여인들임을 알 수 있었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다.
화화궁.
이 가마들은 바로 화화궁주와 소궁주가 타고 있는 가마인 것이다.
화화궁주는 십방좌의 결정에 불복하여 단심백결회를 나와서 화화궁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녀가 이처럼 강한 반발을 보인 것은 분명 올바른 일은 아니었다.
잘못하면 십방좌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으며 그보다도 새로운 회주가 된 장경신에게 반대한다는 걸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장차 단심백결회 내에서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그녀는 더 이상 단심백결회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녀보다 더욱 강력하게 떠날 것을 주장한 것은 군성초였다.
군성초의 성질은 화화궁주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그들은 서둘러 단심백결회를 떠나오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험한 산길을 거의 내려왔을 때였다. "악!" 돌연 비명소리와 함께 앞의 가마가 기우뚱 옆으로 기울었다.
순간적으로 중심을 상실한 것이다.
가마를 메고 있던 교군 하나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서는 붉은 선혈이 철철 흐르고 있었는데 이미 절명한 것 같았다.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던 가마의 움직임이 일시에 정지되었다. "누구냐!" 선두에 섰던 노파가 죽장을 움켜쥐며 사방을 쓸어보았다.
그녀는 좌우의 숲을 단번에 훑고 있었는데 그 눈이 매의 그것처럼 날카로웠다.
동시에 가마가 땅에 내려졌고 다섯 명의 여인이 사방으로 산개했다.
그녀들은 어느새 손에 병장기들을 하나씩 들고 있었으며 둥근 원을 그리며 가마를 에워쌌다.
신속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움직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여인 하나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저쪽이다!" 암기가 날아온 방향이 왼쪽의 숲임을 알아챈 노파가 죽장으로 땅을 짚으며 훌쩍 몸을 날렸다. "할멈, 돌아와요." 가마 안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오지 않았다면 노파는 그대로 숲속으로 짓쳐 들어갔을 것이다.
숲을 향해 곧장 몸을 날리던 노파가 죽장으로 땅을 짚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동작은 너무도 신속하여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눈빛만은 여전히 형형하게 숲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떤 놈들이 감히!" 벼락 같은 노성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간이 부은 자들이겠지요." 침착한 음성과 함께 두 대의 가마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
앞의 가마에서 나온 것은 화려한 궁장을 걸친 화화궁주였고, 뒤의 가마에서 나온 것은 여전히 붉은 옷으로 몸을 감싼 군성초였다.
군성초는 손에 염적을 들고 있었는데 그 아름다운 얼굴이 노기로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두 모녀는 나란히 서서 왼쪽의 숲을 바라보았다. "어떤 고인들이신지요? 암습을 할 배짱은 있어도 얼굴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말인가요?" "흐흐흐!" 나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숲이 흔들리더니 세 사람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손에 장검을 들고 있었으며 몸에는 도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은 하얀 복면으로 가리워져 있어서 누군지 알 수는 없었다. '도인들이란 말인가?' 화화궁주의 얼굴에 잠깐 의혹이 깃들인다. "어느 도장의 도인들인지는 모르나, 흥! 내가 누구인지 알기나 하고 이런 짓을 하는 거요?" "후후, 알지! 알고말고." 중앙에 선 복면인이 중얼거렸다. "화화궁을 지키고 있는 암캐가 아닌가?" "암캐라고?" 노성과 함께 군성초의 교구가 흔들하더니 어느새 복면인들의 앞으로 짓쳐 들어갔다.
그녀의 염적이 허공에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헛!" 그녀의 동작이 이처럼 빠를지는 짐작도 못했는지 중앙의 복면인이 다급한 숨소리를 뱉어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다행히 양쪽의 복면인들이 검을 휘두르며 좌우에서 군성초를 협공했다. "흥!" 냉랭한 코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척! 쩔그랑 쩡! 몇 차례 강렬한 쇳소리가 나더니 두 복면인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부상을 입지는 않았으나 상당한 타격을 받은 듯 낭패스러운 모습들이었다.
반면에 군성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딱딱했다. "이것은 무당파의 소청검법, 너희들은 무당파의 도사들이냐?" "흐흐, 곧 죽을 계집이 그것은 알아서 무엇하느냐?" 중앙의 복면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좌우의 복면인들도 자세를 가다듬어 다시 나섰다.
그들의 일신에서 풍기는 기도는 결코 무시할 만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군성초는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흥, 누가 죽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하지만 고고한 척하는 무당파의 도사들이 이런 짓을 하다니 정말로 놀라운 일이로구나." 염적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녀는 이미 강한 살심을 일으키고 있기에 눈앞의 상대를 하나도 살려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못했다.
어느 틈엔가 복면인의 수효가 불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장검을 손에 들고 있었고 도복 차림이었는데 그 수효가 무려 삼십에 달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화화궁주가 노기를 이기지 못하여 소리쳤다. "누가 너희를 보냈느냐? 장경신의 짓이냐, 아니면 소진이라는 그 말코 도사냐?" "궁금하면 저승에 가서 알아보거라." 누구의 입에선가 음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게 신호이기라도 한 것처럼 삼십여 명의 검수들이 일제히 여인들을 덮쳐갔다. "감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화화궁주가 노성과 함께 쌍장을 어지럽게 뿌렸다.
그녀의 기세는 극히 사나운 것이어서 장세에 휘말린 두 명의 복면인이 금방 바닥에 뒹굴었다.
하지만 그것은 격렬한 싸움의 전주에 불과했다.
군성초는 다섯 명의 복면인들과 어우러져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무공은 하나같이 일류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것이었으며 일종의 연수합격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군성초가 연이어 가공할 절기를 펼쳐내도 그들을 일거에 물리치지는 못했다.
군성초가 휘두르는 염적의 위력은 지극히 패도적이어서 다섯 명의 도사들과 싸우면서도 어렵지 않게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그들 틈에서 몸을 빼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화궁주는 세 명의 복면인과 어우러져 있었다.
그녀는 적수공권으로 다가드는 복면인들을 물리치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화화궁주의 무공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을 피하면서 우회하여 다가들고 있었다.
그 때문에 화화궁주 역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면서도 싸움을 끝내지는 못했다.
또 하나의 격렬한 싸움은 노파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노파는 다섯 명의 복면인들과 어우러져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꿀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화화궁주보다도 더한 위세를 보이며 상대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화화궁이 우세한 건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다섯 명의 교군과 남은 어린 소녀는 복면인들에게 둘러싸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복면인들의 능력은 그녀들의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강력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사력을 다하여 버텨도 순간순간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만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악!" "윽!" 연이어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군성초와 싸우던 두 명의 복면인이 반신이 까맣게 탄 숯덩이가 되어 쓰러지고 있었다.
겁을 모르고 달려들다가 그녀의 혼염공에 당한 것이다.
자신에게 닥쳐오던 압력이 한결 감소되자 군성초는 여유를 가지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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