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의 눈을 가진 남자 <完>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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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의 눈을 가진 남자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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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끝을 위한 여행.


상철이 점점 다가오는것이 느껴진다.마치 사신의 한발짝 한발짝 처럼...수혁은 계속해서 피를 뿜어내는 옆구리를
움켜쥐었다.지릿한 통증. 항상 자신의 공사를 위해 헌신했던 상철은 이제 동료가 아니었다.유경의 총애를 받는
자신을 부러움과 시기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았던 동료들도 이제 자신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일 뿐이었다.

"그렇지...이바닥이 그렇겠지..."

칼을 든 상철의 손이 자신을 덮쳐오기 시작했다. 수혁은 가까스로 피해내며 상철의 손목을 왼손으로 휘둘러 쳐내
었다.자신의 피가 묻은 칼이 허공에서 궤적을 그리며 강물위로 떨어져 버렸다. 조직에 들어오기전 수없이 많은
운동을 한 탓이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익혀야만 했던 격투기였지만 이렇게 상철의 칼을 피할때 요긴하게 쓰
일줄은 수혁 자신도 몰랐던 일이었다.

"칼에 찔리고도 그런움직임을..."

상철이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항상 보아왔던 그의 쾌활한 표정이 아니었다.무언가에 홀린듯한 그 눈. 그저 수
혁을 제거하는것이 단 하나의 목표인것처럼 상철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뭐야...저 눈..."

수혁은 흡사 좀비를 보는듯한 기분나쁜 그들의 눈빛에 이를 앙 다물었다.아무리 자신이라 한들 칼에 찔린 상태에
서 모두를 상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게다가 등뒤는 강물아닌가. 계속되는 출혈에 아찔함을 느끼며 수혁은 앞에
있는 옛 동료들을 노려보았다.

"니들이 수혁이좀 잡고 있어라.칼이 없어도 죽일수는 있을테니까."

상철의 말에 뒤에 있던 인원들이 어슬렁 어슬렁 그를 향해 걸어왔다.수혁은 얼굴에 가득한 땀을 닦아내었다.이
를 악물자 고통도 점점 사그라 들기 시작했다.어차피 그들에게 죽거나 강물로 뛰어들어 죽거나 둘중 하나가 아
니겠는가.

"쳇...어차피 니들은 차유경의 개들일 뿐이지..."

수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셋이 달려들었다.그와 동시에 수혁의 발이 허공을 갈랐다.키가 큰 데다가 다리까지 긴
그인지라 중간에 있던 녀석의 턱을 옆으로 틀듯이 갈겨 버렸다. 하지만 그에게 달려들었던것은 지금 쓰러진 그
녀석 뿐만이 아니었다.멋진 발차기에 댓가로 수혁은 양옆에서 밀고 들어오는 주먹질에 얼굴을 가격당하고는 나
뒹굴렀다. 쓰러지자마자 자신의 몸위로 발길질이 쏟아졌다.

"정신을 놓아선 안돼...정신을..."

지극한 고통속에서 수혁의 발이 지면위로 스쳐 지나가며 주변의 인물들을 넘어뜨렸지만 그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수혁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아득해져가는 정신을 바로 잡으며 수혁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지금상황에서 생각하기도 참 우스운 일이었다.세상에 혼자 남겨져 방황하고, 거지같은 삶을 살다가 이 바닥에 들
어와서 그는 최고가 되었다.승승장구를 하고 있었고,또 유경의 비호가 있다면 더 크게 클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한명에게 느꼈던 감정때문에 자신은 수세에 몰리고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밑바닥으로 급격하게 추락
했다.되돌릴수는 없지만 되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하는 족속은 아니었다.

"비켜라...."

수혁이 조용히 중얼거렸다.무언가가 분노가 담긴듯한 그의 말투에 상철의 비롯한 일행이 움찔했다.고개를 숙이고
부르르 떠는 그 모습에 잠시 알수없는 공포를 느꼈지만 이내 무시하고는 수혁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비켜..."

수혁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흡사 독사를 보는듯한 눈빛에 좌중의 걸음걸이가 거짓말 처럼 뚝 하고 멈췄다.수혁
의 눈에서 알수없는 무언가의 기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비켜!!"

수혁의 외침과 동시에 다가오던 이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수혁을 죽이려 했던, 그들의 우두머리격인 상철
마져도 자석에 끌려가듯 뒷걸음질을 칠 뿐이었다.멀리 자신의 차가 보였다.이 녀석들이 주춤거릴때 차까지 내달
려야만 한다.지금 자신이 도망갈수 있는 길은 그거 하나 뿐이다. 수혁의 말을 들은 녀석들은 더이상 수혁의 몸을
건드릴 생각조차 못하고 그가 다가올때마다 길을 트기 바빴다.

"저..언덕만 올라가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들에게 일시적으로 통안을 걸어버린 수혁은 옆구리의 통증을 참아내며 절뚝거리는 걸음으
로 언덕을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이제 자신의 차가 조금씩 보인다고 생각했을 때쯤 어떤 그림자가 자신의 머리
위로 드리우는것이 느껴졌다.

"다..당신은.."

그와 동시에 수혁의 얼굴위로 발길질이 꽃혔다.가까스로 기어올라갔던 수혁은 다시 언덕을 데굴데굴 굴러내려올
수밖에 없었다.그와 동시에 수혁을 걷어찬 인물이 천천히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수혁은 이를 악다물었다.
언제나 자신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어주던 인물. 이 조직의 창시자이자 이 바닥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이뤘던 남
자. 항상 속을 알수 없던 그 남자, 유경이 자신의 앞에 서있었다.




-
"사장님?"

부하직원의 되물음에 아현은 깜짝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앞에 있는 여직원이 결제서류를 내밀고 있었다.

"여기...서명을..."

"아..미안해요."

직원이 나가자마자 아현은 머리를 싸매며 한숨을 쉬었다.왜이렇게 자신이 멍해지는 것일까.

"바보같은...그런 사기꾼따위를 생각하면 안돼."

계속해서 머리에 떠오르는 한 남자 때문에 자신은 오늘 하루만해도 몇십번이고 멍해졌다.자신은 그 남자를 만나
지난 사랑의 아픔을 조금씩 잊어갔다.다시 열심히 사랑하고 싶은 의욕도 솟아나고 있었다.하지만 운명의 장난인
지 수혁에게 깊이 빠져들었을때쯤 그의 실체를 알아버린 것이다.아현은 마지막 한장남은 수혁과의 사진을 찢지
못하고는 지갑에 넣어버렸다. 해맑게 웃고있는 자신과 수혁의 사진.다정하게 수혁의 품에 안겨 행복한 미소를 짓
는 자신의 모습.가슴이 찢어질듯 아파왔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으려는듯 애써 냉정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가 너무 미웠다.하지만 떨쳐낼수 없다.어째서인지 밉다고 밉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의 존재는 자신의 가슴속에
더욱 크게 각인되고 있었다.연속되는 두번의 사랑실패.다시 사랑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져 들었다.
수혁이 자신을 만나러 왔을때 이야기라도 들어볼걸 이라는 생각마져 들었다.아현은 깊게 한숨을 쉬며 지갑속에
있는 수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디있니...너...."




-
"역시나...라고 해야하나."

유경이 조용히 입을 열며 수혁에게 다가왔다.수혁은 배를 움켜쥐고 천천히 일어나 유경을 노려보았다.

"순식간에 통안을 걸어서 빠져나갈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불안해서 와봤는데..오길 잘했군."

조용한 말투였지만 은연중에 깃들어 있는 살기에 수혁을 비롯한 주변에 있던 유경의 수하들은 몸을 움찔할수 밖
에 없었다.

"역시 당신이 시킨 짓이었군..."

수혁은 억울함에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아주 잠시나마 유경을 좋은사람으로 생각했었다.아니,솔직히 말해서 혼자
자란 수혁에게 있어서 친형같이 기대고 싶은 마음도 받았었다.

"당신밑에서 시키는 것은 다하며 일했어....지난 2년동안...그런데 어떻게..."

"난 너에게 기회를 줬다."

"기회?"

수혁은 이를 갈며 유경을 노려보았다.무시무시한 살기를 지닌 자신의 눈빛을 유경은 태연한 표정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당신은 키울 개가 필요했을뿐이야.여기 있는...이 녀석들처럼 말이야."

수혁의 말에 유경은 피식 웃으며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었다.

"확실히...니말이 맞는 지도 모르지.넌 특별했으니까."

"특별?"

"그래.넌 내 색깔로 물들이기가 힘이 들더군.내 힘이 네 녀석의 능력과 부딪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뭐....라고?"

수혁은 유경의 말에 온몸이 굳어지듯 경직되어 버렸다.태연하게 내뱉어 버린 유경이지만 수혁은 그 말뜻에 담긴
의미를 알수 있었다.그제서야 상철과 조직원들이 자신을 죽이려 할때에 넋나간 표정이었는지 알것만 같았다.그리
고 어째서 유경에게 비 상식적으로 생각될 정도의 충성을 보였는지도 알것 같았다.

"다..당신도.....심안을...."

유경은 수혁의 중얼거림에 피식 웃었다.그랬다.유경은 심안의 능력자였다.게다가 자신보다 몇배를 상위하는...

처음 상철이 유경에게 자신을 소개했을때, 자신은 이미 유경의 심안에 걸려있었다.물론 다른 녀석들처럼 완벽하
게 걸리지 않았다.자신 역시 매료안의 능력자였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자신은 유경에게 걸린 그 순간부터 본인도
모르는 동안에 충실한 그의 개가 되어있었다. 다른 조직원들처럼 목숨을 바쳐 충성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끌렸
던 것도, 자신답지 않게 그의 앞에서 예를 갖췄던 것도, 모두 유경과 처음 눈을 마주친 그 순간부터 일어난 일이
었다.

"이제 알다니.똑똑한 너 답지 않구나."

"도대체...당신은 정체가 뭐야...도대체..."

인간 유경이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수혁이었다.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감겨있던 유경의 두 눈이 천천히 떠지며
수혁의 눈으로 향했다.

"눈을 마주치면 안돼...눈을 마주치면...!"

하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유경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수혁은 이를 악물었다.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평소보다 약간 저음의 유경의 목소리가 천천히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
다.

"그럼 이제.....조직을 위해서 죽어라."





자신이 서있는 곳은 드넓은 벌판이었다.하지만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지옥인가?"

수혁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잿빛 하늘과 푸른 들판이 너무나 매치가 되지 않는다.바람소리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느껴졌지만 모두 생기를 잃은 이 세상의 음색이 아닌듯한 느낌이다.

"모...몸이..."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수혁은 힘겹게 고개를 틀었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마치 십자가 처럼 생긴 구조물에
자신의 몸이 묶여 있다.아무리 애를 써봐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누군가와 싸우는 꿈을 꿀때에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처럼,수혁의 몸은 용을 써봐도 자신의 것이 아닌것마냥 움직여지지 않는다.

-으억!-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 다가와 날이선 날카로운 일본도로 자신의 복부를 찔렀다.하지만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벙
어리가 된것처럼 자신의 말은 목젖에서 걸려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앞에 있던 그 남자는 다시 칼을 뽑아든다.
그리고 또 한번 자신의 배속으로 날이 선 칼을 쑤셔넣었다.

-으어어억!그만해...그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전달될리 없다. 그 남자는 그렇게 몇번이고 수혁의 몸속으로 칼을 쑤셔넣었다.수혁은 정
신을 잃을것만 같았다.아득하게 눈이 감길때쯤.자신을 찌르던 그 남자의 형상이 일그러졌다. 옆에 끝없이 펼쳐진
벌판도,새도,나무도 마치 풍경화가 그려진 종이를 구기는 것처럼 형상이 심하게 일그러졌다.자신의 앞에 펼쳐졌
던 영상이 소용돌이 치며 마치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신생아처럼 너무나 눈이 부셨다.




"여...여긴!"

자신의 차 속이었다.옆구리의 고통도 그대로였다.수혁은 식은땀 범벅인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밖으로 유
경의 모습이 보였다.

"이...이건....."

박사장이 말한 환상안이었던 것일까.유경의 눈과 마주친 그 순간부터 수혁은 엄청난 악몽을 꾸어버린 것이다.그
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양 손이 뒤로 묶인체로 자신의 차안에 갇혀 있었다.

"5단계의 눈을....가진 남자...."

유경은 조용히 담배불을 붙였다.창문이 닫혀 있었지만,그가 하는 말은 똑똑히 수혁의 귀에 들렸다.

"니 할미가 묻힌 이 강에...같이 묻어주마.마지막 배려라 생각하고 받아라."

그 말과 동시에 그는 등을 돌리며 사라져 버렸다.그와 동시에 차가 조금씩 미끄러져 강물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룸밀러로 보니 상철을 비롯한 일행들이 차를 밀어대고 있었다.자신의 차가 있던곳은 뭍이 아닌 언덕이었다.이대
로 추락해 버리면 엄청 깊은곳으로 다이렉트로 가라앉아 버리고 말것이다.

"브..브레이크를..."

발이 뻗어지지 않는다.발마져 밧줄로 동여매져 벨트 부분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아득한 언덕끝으로 내몰릴때쯤 수혁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번지점프를 하는것처럼 자신과 자신의 차가 자유낙하하는 느낌이 들었다.차가 엄청나게 진동하는 감촉이 느껴진다.시커먼 강물이 앞유리를 통해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죽는다...."

수혁은 미친듯이 몸부림을 쳤다.신발끈 같은 제질로 뒤로 손이 묶여 있는 탓에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게다가 옆
구리의 통증은 더더욱 심해지고 있었다.식은땀이 얼굴을 뒤덮기 시작했다.자신이 탄 차는 점점 깊은곳으로 가라
앉아 가고 있었다.이대로라면 차에 물이 차던,질식을 하던,어떤 방식으로도 자신을 죽고 말것이다.

"끝인가."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웠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마져 들었다.그동안 살아왔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휙휙 스쳐 지나
갔다.어렸을적에 할머니의 모습, 고등학교때 같이 방황하던 녀석들의 얼굴, 어설프게 남수짓을 하다가 상철을 만
나고, 그동안에 자신을 거쳐갔던 수많은 오다들의 얼굴, 그리고 민정,리나,지율,유라의 얼굴.....

"아현아..."

마지막으로 그녀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머리속에 떠올랐다.그녀는 잘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자신이 이
렇게 죽어준다면 그녀역시 유경이 건들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씨발..그게 아니야...그게 아니라고..."

아득해지던 수혁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자신이 상철의 팔을 쳐내서 칼을 강물에 빠뜨리지만 않았다면,자신은
아마 유경의 환상안에 걸린 그 동안에 심장을 찔려 죽었을 것이다.그나마 자신의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나
았다.적어도 살수 있는 약간의 가능성은 있지 않은가?

"할머니...나를...좀 도와줘!"

수혁은 뒤로 묶여 있는 손으로 정신없이 주변을 더듬거렸다.이제 조금씩 차안이 습해지는것이 느껴진다.이제 곧
물이 차오를 것이다. 계속해서 더듬거리는 수혁의 손에 뒷주머니의 불룩한 느낌이 전해진다.

"라이타...라이타다!"

움직일때 마다 옆구리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흘렀지만 수혁은 이를 악물로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300원짜리
라이타가 자신의 목숨을 구할지도 모른다.수혁은 가까스로 라이타를 움켜쥐었다.놓쳤다가는 마지막 희망까지 사
라질지 몰랐다.애써 심호흡을 한 수혁은 뒤로 묶인 상태에서 라이터를 켜기 시작했다.

치지지지...

자신의 손을 묶은 줄이 타들어가는게 느껴졌다.물론 자신의 손목까지 같이지지고 있었지만 그딴 아픔따위는 참아
내야만 했다.점점 손목의 속박이 헐렁해지는것이 느껴졌다.

"됐다!"

수혁은 나머지 끈들은 힘으로 벌려 끊어 버리고는 서둘러 다리에 묶인 밧줄들을 풀어대었다.얼마나 깊이 들어왔
는지는 모르지만,열심히 수영을 하면 지면위로 올라갈수 있을지도 모른다.

"씨발.더럽게 단단히도 묶어놨네."

수혁은 욕을 지껄이며 다리에 묶인 밧줄을 풀어내었다.물속에 있으니 차문이 쉽게 열리지 않을지도 몰랐다.하
지만 어떻게든 살아야만 했기에 수혁은 차문을 따고는 걷어차기 시작했다.몇번이고 반복하니 시원한 느낌이 들며
차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수혁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안해본 운동이 없는 그였지만 지금 이상황에서 정신
을 못차리면 시퍼런 강물의 먹이가 되어버릴 것이다.자동차 룸밀러에 걸린 아현의 사진에 살짝 입을 맞춘 수혁은
차문을 박차고 시퍼런 물속으로 삼켜져 버렸다.





-
"아잉...주인님 이러시면..하앙..."

메이드복을 입은 소녀가 중년남성의 손놀림 하나하나에 다리를 벌리며 반응해왔다.하지만 농락당하는것은 그 소
녀 한명뿐이지 않았다.연이어 시커먼 자지를 입에 물고 고개를 앞뒤로 흔드는 소녀,그리고 그 소녀의 옆에서 연
신 온몸을 혀로 핥아대는 소녀까지....

"가만있어 이년들아.니년들은 내 스트레스 해소감일 뿐이니까."

중년남성은 거칠게 음담패설을 내뱉으며 소녀들 농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쾅!

한뭉텅어리로 뒤엉켜 연신 움직이던 살색의 육체들의 움직임이 굉음으로 뚝 하고 멎어 버렸다.남자는 거칠게 욕
을 내뱉으며 일어섰다.

"에이 썅!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또 한명의 메이드복을 입은 소녀가 현관에서 부터 달려나왔다.

"주..주인님 손님이..."

"손님?"

모처럼 자신의 휴일을 방해할 인물따윈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게다가 이 저택의 위치를 아는 사람도 적어도 자신
의 회사 내에서는 없다.

"어떤자식이...."

그의 말문이 뚝하고 멎었다.자신의 앞에 나타난 남자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몇달전 당돌한 표정으로 자신
을 찾아왔던 그 애송이.차림새는 깔끔했지만 왠일인지 얼굴이 많이 상해있었다.그리고 연신 자켓위에 있는 옆구
리를 움켜쥐고 있다.

"오랜만입니다.박사장님."

"그때...그 녀석이로구만."

박사장은 간만의 유희에 방해를 입은것은 좀 불만이었지만 이내 손을 양옆으로 휘저었다.그걸 본 여자들은 조용
히 그의 곁에서 물러나 버렸다.

"대충...소식은 들었다만."

"앉아도 될까요?"

"그래라.난 키큰 녀석이 서있는거 딱 질색이니까.야! 거기 차좀 내와라!"

박사장은 주방을 향해 소리지르고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쩌다가...그런 꼬라지가 된거냐?잘나가던 녀석이 말이야."

수혁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앞에 시녀가 가져다준 뜨거운 커피가 나왔지만 수혁은 묵묵히 무표정으로 일
관할 뿐이었다.

"오다와...사랑에 빠졌다고 들었다."

"그렇게..됐습니다."

"역시나 아직은 어린 녀석이군."

"뭐라하셔도 할말은 없군요."

허공에 연기가 자욱해질때쯤 수혁도 품안에서 담배를 한대 피워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유경이라는 사람도....심안의 능력자라는 것을...그것도...훨씬 위를 상회하는..."

박사장은 놀라지 않았다.수혁이 유경을 알았던건 고작해야 2년이지만,자신은 10년전부터 유경을 봐왔던 사람이었
기 때문이었다.

"니 녀석이 나에게 심안에 대해 들었던것처럼, 날 각성시켰던것은 유경이었다."

"그랬군요."

수혁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치료받은 옆구리는 아직 다 낫지 않은 것인지.중간중간 통증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로써도...그 녀석은 건들수 없다.너무 무서운 존재가 되어버렸어.그녀석은..."

"언젠가.복수는 해야겠죠."

"뭐?"

수혁의 차가운 표정에 박사장은 실소를 지어보였다.

"이제 다시 일어설 기반조차 없는 녀석이..."

그저 농담이겠거니 하고 박사장은 가볍게 넘겨 버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날 찾아온 목적이 뭐냐?다시 안올것처럼 나가더니."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해외로 나가려고 합니다.도와주십쇼."

"해외..라?"

"아시잖아요.여기선 더이상 살수 없겠죠.제가 살아있는걸 안다면 또다시 절 죽이러 찾아올테니까."

"그렇겠지.아마 유경이 놈이라면 벌써부터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여튼.뉴질랜드로 가려고 합니다.박사장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해외로 가는데 뭐가 필요하다는 거지?"

"박사장님 회사의 건물이 없는곳은 전세계에 극히 드물다고 들었습니다.그만큼 성공한 사업가시니까요."

"그래서?"

"반면에 전 아무것도 없지요.그냥 몸만 딸랑 간다면 말입니다.가서 머물곳도,필요한 보증인도,아무것도 없으니
까요.보증인없는 외국인이 집을 구하고 자리를 잡을순 없을테니까."

"한마디로...뉴질랜드에 정착할까지 빽이 되어달라?"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박사장은 피식웃으며 앞에 있는 냉수를 들이켰다.

"재밌는 녀석이로군.보면 볼수록..."

보통 저정도 부탁을 하면 말을 잇기 힘들어 하기 마련이다.우물쭈물하며 굽신대기 바쁘다.그러나 수혁은 달랐다.
마치 누가 보면 박사장이 예전에 수혁에게 신세를 졌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뻔뻔하게 부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겠지만.

"언제까지 해주면 되는거냐?"

"내일모레 출국할 생각입니다."

"정말 니들 제비새끼들이란...늘상 날 귀찮게 하는군."

박사장의 말에 수혁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마지막 희망이었던 박사장이 일을 원만하게 처리해줄것 같았기 때문이
었다.인사를 하려던 수혁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듯 고개를 들고 말을 이었다.

"아 참.여쭤볼게 있습니다."

"아이 썅..또 뭐냐 귀찮게."

"박사장님은....심안이 안통했던 적이 있습니까?"

"뭐?"

"아무리 걸어도,마치 아무도 없는 허공에 거는 것처럼, 전혀 발동이 되지 않았던 적이 있냐는 뜻입니다"

한동안 멍해있던 박사장은 알수없는 표정을 지으며 쇼파에 몸을 묻었다.

"네놈은...있었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알것같구나."

"네?"

"니가 사랑했다는...그 오다였지?"

"그걸 어떻게.."

"너...꽤나 똑똑한 놈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바보였구만."

"뭐라 하셔도 상관없습니다만,이유는 빨리 말해주시죠.기다리는거 별로 안좋아합니다."

"크크큭."

살짝 조소를 흘린 박사장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수혁을 바라보았다.

"본디 심안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

"당연한거 아닙니까.상대의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이죠."

"그래.그리고 그 능력은 심안의 혈통을 지닌 사람의 뇌파에서 비롯된다."

"뇌파요?"

"그래.뇌파를 눈으로써 방출하는거지."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아이썅.존나게 골통인 녀석이네. 이미 니 놈이 그 여자에게 마음이 빼앗겨 있는데 그 여자를 조종하는 뇌파가
방출될꺼라고 생각하냐?"

수혁은 뒷통수를 한대 맞은 충격이 들었다.멍해진 수혁은 아랑곳않고 박사장이 말을 이었다.

"크게보면 심안이란 상대의 마음을 빼앗는 능력이다.하지만 넌 그 여자에게 이미 마음이 빼앗겨 있었다.그러니
그여자를 조종할수 있는 능력이 방출될 리가 없는거라고.이 멍청한 녀석아.그게 지금 니 파멸의 원인이다.알아
먹었냐?"

"그렇다면..."

"이제야 이해를 한 모양이구만.심안(心眼)이란건 본디 무심(無心)에서 비롯된다.니가 그 새파란 나이에 그 경지
에 다다른 것도, 니가 사랑이나 우정같은 감정따위는 모르고 자란 무심자였기 때문이다. 감정에 흔들리는 녀석은
아무리 혈계혈통을 지녔다 해도 심안을 깨우칠수 없어.그게 이유다."

수혁은 조금씩 고개를 끄덕였다.한때 아현이 자기보다 몇배를 윗도는 심안술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던 그였
다.하지만 몇배를 윗도는 술사라 할지라도 조금은 심안이 먹혀들기 마련이었다.자신도 유경에게 완전히는 아니지
만 이미 세뇌당한 상태였기도 했듯이...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이미,성아현이라는 여자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자신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답..감사합니다.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제가 여기 오래있다가는 박사장님한테도 좋을게 없겠죠."

박사장 역시 유경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서는 안된다는 뼈가 있는 말이었다.수혁의 말에 그는 피식 웃어버렸다.

"건방진 녀석이구만.근데...그 땅에는 혼자 갈 생각이냐?아무리 내가 도와줘도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거다.거긴
지구 반대편이라고."

박사장에 물음에 수혁은 구겨진 옷을 탁탁 털어 피며 박사장의 시녀들이 들어간 방을 바라보았다.

"아뇨.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박사장님과 같은 방법을 써야겠지요."







-

1년후.

뉴질랜드의 북섬에 위치한 웰링턴.전세계에서 가장 자연과 가깝게 살고 있는 나라.집앞으로는 오염되지 않은 맑
은 강물이 흐른다. 아기자기한 집들이 늘어선 도로변에서는 그들 나름대로의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이들로 가득
했다. 우리나라 팬션들이 모두 뉴질랜드의 집을 토대로 디자인하는것만 봐도,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알수 있
을 것만 같다.수혁은 조용히 창가에서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석양이 지는 저녁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보.뭐해요?"

창문을 바라보는 그의 허리를 민정이 조용히 감싼다.30대를 넘어선 얼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깔끔한 피부.수
혁을 바라보는 표정에는 사랑과 존경의 감정이 동시에 담겨있었다.

"아..그냥.석양보는게 좋아서.당신 너무 무리하지마.뱃속에 아기를 생각해서라도."

"피.이제 겨우 3개월도 안됐는걸요."

민정은 부끄러운듯 살짝 웃었다.수혁은 민정의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여보!!"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해맑은 표정의 지율과 유라가 있었다.지율은 그대로 수혁의 품에 돌진해서 품
에 안겨버린다.

"아이쿠.이러다 다쳐.어디갔다 왔니."

"헤헤.형님이랑 같이 장보고 왔어요."

지율이 말한 형님이란 유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유라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수혁을 바라본다.자연스레 수혁의
시선이 밖에서 정원을 가꾸고 있는 유리나를 향했다.더운지 나시티 한장을 걸치고 열심히 정원수를 다듬는 유리
나의 모습.하얀 피부가 햇살과 어우러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수혁은 자신의 앞에 있는 네명의 부인들을 바라보았다.넷은 모두 자신에 대한 각각 다른 정보를 갖고 있었다.
민정에게 있어서 자신은 30대의 보석수입상이었고, 리나에게 있어서는 20대의 자선사업가였다. 지율에게는 피부
과 전문의 였으며, 유라에게는 젊은 청년사업가 였다. 하지만 그런것은 그 어떤 제약도 되지 않았다. 네명이 한
명의 지아비를 섬기는 것 역시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도 어려운일이 아니었다.그녀들은 모두 자신의 통안에 묶
여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뉴질랜드 행을 순순히 따랐다. 나이순으로 정리도
쉽게 이루어졌다.민정이 첫번째 부인이었고, 그 뒤가 유리나와 유라,지율의 순서였다.

"저기....그런데..."

부끄러운듯 유라가 입을 열었다.좌중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오늘밤은...누구랑..."

차마 마지막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여인들의 시선이 다시 수혁을 향했다.그는 곤란한듯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지율이랑은 어제 같이 잠자리에 들었으니..."

그 말은 지율은 자동 탈락이란 뜻이다.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민정이는 임신중이니까 무리하면 안돼고."

그녀는 현모양처형 여성답게 지율처럼 대놓고 아쉬운 표정을 짓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안타까운 모양이다.

"리나는 오늘 정원일로 힘들었으니 피곤할거고....오늘은 유라의 방으로 갈게."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그..그럼 우리 저녁 준비할게요!"

유라는 시무룩한 지율을 끌고는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럼 여보.저도 주방일좀 도울게요."

민정도 주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많은 재산을 가진 네명의 여인이 자신과 함께 있다.물론 통안을 써서 예전 오다
들도 더 데려올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건 나중에 해도 크게 문제될 일은 없었다. 심안을 가진이상, 어떤 사
업을 한다고 해도 망할일은 없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수혁은 가슴 깊이 큰 허전함을 느끼고 있었다.

"잘 있을까...그녀는..."

해맑게 웃는 그녀.아현이 오늘은 더더욱 생각났다.하지만 예전같은 설렘과 그리움이 아니다. 수혁은 완벽하진 않
지만 처음 조직에 들어갔던 그때처럼 무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수혁이 살짝 고개를 돌렸을때, 정원일을 마친 유리나가 현관으로 들어오며 아름다운 눈웃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게는....너무나 아름다운 그녀들과....이 눈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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