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의 눈을 가진 남자 <18부>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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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의 눈을 가진 남자 <1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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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부 - 어긋나는 운명의 굴레

-오빠 무슨일있는거야?왜 전화도 안받고 그래...꼭 연락줘 알았지?-

몇주가 지났다.수혁은 휴대폰에 남겨진 유라의 문자 메세지를 보고는 다시 휴대폰의 폴더를 닫아버렸다.그렇게 계속해서 돈을 받아낸 다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만나기 전에 단지 직업이라는 생각을 갖고 나가도,아현의 웃는 얼굴을 보면 수혁은 그런말을 도저히 꺼낼수가 없었다. 이제는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나...이 여자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

전부터 들었던 생각이지만 한없이 부정해 왔던 생각이기도 했다.태어나서 처음 느낀 감정에 수혁은 당황했다.이제까지의 여자는 돈줄이었을 뿐이거늘 어째서 일까. 수혁은 왜 자신의 가슴이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지 알수 없었지만, 아현역시 자신을 만날때 두근거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나 한여자에게 빠져있으니 유라의 문자메세지가 눈에 들어올리 만무했다.게다가 사후관리가 철저해야 하는 지율쪽도 전혀 신경을 안쓰고 있었다.덕분에 지율에게 주소를 쳐 줬던 이메일은 온통 그녀가 보낸 메일로 도배 되어 있었다.수혁도 계속해서 그녀들에게 신경을 써줘야 한다는 것도 알았지만 지금 수혁의 관심사는 단 하나 뿐이었다.

"조금만 기다려.너에게 당당한 모습으로...갈게."

한참이나 아현의 사진만을 바라보던 수혁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하지만 곧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져갔다.아현을 만난지 이제 한달이 훌쩍 넘어갔고,상철은 제촉을 해오고 있었다.큰 오다일수록 너무 장기적으로 갔다가는 코끼는 경우가 태반인지라 몸이 달은 모양이었다.하지만 수혁은 그녀를 만나는 행복에 젖어 모든것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보였다.하지만 어제 그녀가 했던 말에 수혁은 마음의 결정을 내린것이었다.

-수혁아-

-응?-

-우리...같이살까?-

-뭐?-

-나...섯불리 판단하고 싶지도 않고 두번 실패하고 싶지도 않아.같이 있고 싶어.그리고 가능하다면 사업이 안정되는 대로 우리 가정을 꾸리고 싶어.-


그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아현은 그런말을 던지고는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고 수혁은 꽤나 많은 담배를 태웠었다.어째서 일까.평소라면 그런말이 오다에게서 나온다면 잘 어르고 달래서 공사를 빨리 속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응 이라고 대답할뻔했다.사랑하는 그녀가 침대안에서 했던 속삭임은 그 어떤말보다도 달콤하고 감미롭게 들리는 엄청난 유혹이었다.

"하지만...난 거짓투성이야."

자신의 이름빼고는 아현이 알고있는 수혁에 대한 정보는 모두 거짓이었다.나이도 올렸고, 직업도 속였다. 한번도 그런것들에 대한 죄책감이란 녀석을 가져본경험이 없는 수혁은 한없이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웃는낮으로 아현을 만나고 집에 와서는 어김없이 술을 마셨다.세상과는 단절한것처럼 아현을 제외한 그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뜨면 또다시 괴로워했고 밤이되면 아현을 만나서 달콤한 시간에 젖어버리고 마는 이중생활이 계속되었다.

"이제는...이 방법밖에 없어."

수혁이 도달한 결론은 가히 충격적인것이었다. 가치관의 혼란까지도 가져왔던 아현이라는 여자때문에 수혁은 조직의 탈퇴를 결심했다.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비계의 은퇴를 결심한것 이었다. 수혁은 앞에 놓인 술잔을 또 한잔 비웠다.해는 뉘엿뉘엿 노을을 남기며 져가고 있었다.

"많은 댓가를 치러야만 하겠지."

수혁은 유경이 보통인물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자신을 총애하는 조직의 총수이지만, 그는 속을 알수 없는 사람이었고, 엄청나게 냉정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방대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쉽에 엄청난 인맥. 수혁은 그 사람과 대적해서 조직을 빠져나갈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조직을 빠져나갔다는 전례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하지만 조직내에서 유경은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고 지금 자신은 그 신을 거역하려 하는 모험을 감행해야 했다.유경 정도의 사람이라면 사람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골로 보내는것은 손바닥 뒤집기 보다 더 쉬운 사람이었다. 수없이 많은 제비들이 오다를 잘못만나 혼인빙자 간음이나 사기죄로 감방행을 선고받았을때도 어찌된 일인지 유경이 나서면 쉽게 풀려나기 까지 했다.조직내에서의 그의 힘은 절대적이었고, 자신은 그 절대자의 신뢰를 한몸에 받는 사람이었지만, 조직을 탈퇴한다는 소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그는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았다.

"부딪혀 봐야겠지."

수혁은 결심한듯 양복상의를 챙겨 입고는 밖으로 나갔다.술을 마셨지만 운전에는 지장이 없을거 같았다. 게다가 음주단속을 하기엔 너무나 쌩뚱맞은 시간이 아닌가.수혁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유경은 음지 생활을 하는 사람답지 않게 사교계에도 많이 참석하는 바쁜인물이었다.때문에 수혁은 오늘 미리 약속을 잡아두어야만 했었다.신호에 걸려 휴대폰을 슬쩍 바라본 수혁은 부재중전화가 한통도 없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점심시간때는 전화하곤 했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아현의 전화가 없다.바쁜 그녀지만 단 1분이라도 시간이 나면 자신의 연인에게 전화하곤 했었는데...이상하게 오늘은 단 한통도 없었다.바쁜데다가 사람도 많이 만나는 아현이었기에 수혁은 폐가 될까 먼저 전화를 하지 않았다.

"바쁜일이 있는건가?전화가 왔으면 좋겠는데..."

만약 지금 통화를 한다면 마지막으로 하는 통화가 될지도 모른다.수혁의 선택은 모아니면 도인 극단적인 선택이었기에 전혀 허무맹랑한 생각이 아니었다.

"씨발.오늘따라 왜이렇게 하늘이 이뻐보인다냐."

수혁은 실소를 뿜으며 담배를 피워물었다.늘상 그렇다싶이 약속장소는 상철의 가게 안이었다.자신이 있는 세계의 너무도 거대한 존재를 만나야 하는 수혁은 자신의 운명에 모든 걸 걸어볼 도박을 하기위해 천천히 엑셀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완전히 보험도 없는 도박은 아니었다.수혁에게도 나름 생각이 있었다.유라에게서 시험해보았던 자신의 경지.박사장말을 빌리자면 통안이라는 녀석이 있지 않은가.아현을 만나는 동안 잊고 있었지만 유라의 덕분에 이제 조금씩 컨트롤이 가능해지고 있었다.만약 극단적인 경우로 치닫게 되면 유경에게 통안을 걸 생각이었다. 수혁이 최악의 조건에서도 이런 선택을 감행한것은 순전히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이야..이게 누구야.수혁이 형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상철의 가게 남직원이 차에서 내리는 수혁을 보고 싹싹하게 인사를 했다.수혁은 대충 받아주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유경이 형님은?"

"아 지금 기다리시다가 사장님하고 술한잔 하고 계세요.늘상 머무는 방에 계세요."

"이거 주차좀 부탁할게."

"네!들어가십쇼 형님!"

수혁은 대충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유경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크게 심호흡을 한 그는 문에 두번 노크를 했다.

"어 그래.들어와라."

문이 열리고 유경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 있는 상철의 모습이 보인다.

"아따 거 새끼!연락 드럽게 안되네.와서 앉아."

상철의 말에 수혁은 평소처럼 궁시렁대지 않고 유경의 옆자리에 앉았다.언제나 처럼 깔끔한 정장차림에 본래의 나이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유경이 살짝 미소를 짓는다.

"동생놈 얼굴보기 이렇게 힘들어서 살겠냐.한잔 받아라."

"죄송합니다 형님."

수혁은 살짝 목례를 하고 유경의 잔을받아 한잔 들이켰다.

"적적하면 기집애들좀 부를까?"

"아닙니다.오늘은 드릴말씀도 있고..."

"아참.내가 깜박했다.그래...할말이란게 뭐길래 형을 보자고 한거야?"

온화함까지 느껴지는 유경의 표정.하지만 수혁은 그안에 감춰진 유경의 무서운면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는 살짝 숨을 고른뒤 입을 열었다.

"조직을.....나가겠습니다."

술잔을 입에 가져가려던 상철의 동작이 뚝 하고 멎었다.동공이 점점 커지며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유경역시 표정이 굳어버렸고 그렇게 우울한 적막이 잠시간 계속되었다.

"뭬..뭬야?강수혁 너 미쳤어?얼른 사과드려임마!"

하지만 유경은 손을 살짝 들어 상철의 말을 저지했다.

"계속 말해보거라."

수혁의 앞에 놓인 잔에 또 한잔의 술이 따라졌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그동안 키워주신거에 대한 은혜를 모르는바 아니지만...이제 이 생활도 그만두고 싶습니다.죄송합니다."

"너...너이자식..너 낮술했어?"

"상철이 너는 조용히 있어봐라."

씩씩거리던 상철도 유경에 의해 얌전해 졌다.유경은 앞에 있는 술잔을 들이키고는 조용히 되물었다.

"이유가...있을거 같은데.들어볼까?"

유경의 질문에 수혁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그저 심란한 마음뿐이었기에...한참지나도 대답을 하지 않는 수혁을 보고 유경이 말했다.

"사랑을....하고 있는거냐?"

이 질문역시 수혁은 대답하지 못했다.상철의 동공은 더욱 크게 벌어졌고 뭐라도 이야기하고 싶어 죽겠는 모양이었지만 유경의 앞에서 경솔하게 입을 놀리지 않았다.

"그런것....같습니다."

"지금의 오다로군.성아현이라는...그여자..."

유경은 조직내의 선수가 누구에게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도 모두 알수 있는 인물이기에 수혁은 아현의 이름에 놀라지 않았다.당장 따귀를 맞거나, 욕을 먹거나 할줄 알았던 그였기에 오히려 침착한 유경의 태도가 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잔 따라봐라."

"네.형님."

수혁은 공손하게 유경의 잔을 채웠다.유경이 품안을 뒤적거렸고 상철이 잽싸게 담배를 하나 꺼내 물려주고 불을 붙여주었다.

"흔치는 않지만...가끔 있는 일이지.이 바닥에 오래있다보면...그렇게 놀랄일도 아니다."

수혁은 놀라운 눈으로 유경을 바라보았다.생각외로 담담한 표정의 유경이 말을 이었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거거든.냉정이란 놈을 유지하기 힘들지.잘 나가던 제비들이 은퇴하는건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야.관리만 잘하면 40대까지 해먹을수 있는게 이 직업이지.
다들 사랑에 빠져서 이 바닥을 뜨려고 한다.자신의 직업에 대한 괴리감이 느껴지거든.사랑하는 사람앞에서는 말이야."

정확히 자신의 이야기였기에 수혁은 묵묵히 유경의 말을 경청했다.

"니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하지만 넌 너무 가능성이 무한해.젊고 능력도 있지.내가 전성기때도 너만큼 공사를 잘하진 못했어.그게 아쉬울뿐이야."

"죄송합니다 형님."

유경은 하얗게 재로 변해가는 담배를 비벼껏다.

"마지막으로 물어보마.그 생각....정정할 마음이 전혀 없는거냐?"

"죄송합니다...이말씀밖에는 드릴말씀이 없습니다.키워주신 은혜는 죽을떄까지 어떻게 해서라도 갚겠습니다."

"은혜를 갚으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럼 이렇게 하자."

수혁이 고개를 들었을때 유경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하루 더 시간을 주겠다.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다시 이야기해라.만약 니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면...나도 잡지 않겠다.마음이 바뀌지 않았다면 전화를 하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전 이미..."

"그러니까 단 하루만 생각을 해보란 말이야.사표를 내는건 직원마음이지만 그 사표를 수리해주는건 사장마음인거 몰라?"

장난스럽게 웃기까지 하는 유경의 표정.수혁은 더이상 말하는게 의미가 없을것 같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아.건배한잔 하고 일어나라."

"네?"

"그 여자에게 가봐야 할거 아냐 임마.형 그렇게 눈치없는 사람아니다."

"네...형님."

수혁은 유경이 따라준 마지막잔을 비웠다.침통한 표정의 상철은 무턱대고 입안에 술을 털어넣었지만 수혁은 날아갈듯한 기분이었다.자신의 생각외로 너무나 쉽게 풀려버린 일.

"이제...아현이에게 좀더 당당해 질수 있다..."

"전...이만 가보겠습니다 형님.시간뺏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나가봐라."

수혁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문을 닫고는 나갔다.상철은 한참이나 허망하게 수혁이 나간 자리를 바라보더니 이내 신경질이 났는지 잔에 콸콸 양주를 따라 원샷해 버렸다.

"형님...진짜 그냥 나가게 해주시는겁니까?"

상철의 물음에 유경은 대답하지 않고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무언가를 생각할때 유경을 건드려서는 안되는걸 잘 아는 상철이었기에 꾹 참고 대답을 기다렸다.유경의 입이 열리기 까지는 꽤나 오랜시간이 걸렸다.

"상철아."

"네 형님."

"모든 조직은 말이야.룰이라는게 있다.조화라는 녀석이지.그 룰을 깨면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도려내야 할수 밖에 없는거다."

"그...말씀은...."

"2년전의 일...기억하지?"

상철은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수혁이 들어오기전 그와 똑같은 말을 유경에게 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우리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위해선.조직내의 일원은 끝까지 가야하는거다.외부로 우리의 존재가 발각되면 모두 자멸하는 거거든."

"그...그렇다면 수혁이는 왜..."

"기회를 준거다.뛰어난 녀석이라는거 너도 알고 있지?"

상철은 유경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렸다.확실히 중개인인 자신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수혁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그의 등장은 확실히 조직에 있어서 획기적인 개혁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하루를 줬다. 녀석의 대답이 바뀌길...기다려야겠지."

"저..만약...대답이 같다면...."

조심스레 묻는 상철의 질문에 유경은 말없이 술잔을 또 한잔 비웠다.

"불문율에 예외란 없다...하지만...그렇기엔 너무 아까운 녀석이니...대답이 바뀌길 기대하는수밖에 없겠지."





-
수혁은 날아가듯 아현의 회사로 차를 몰았다.술냄새를 없에기 위해 아이스크림도 꾸역꾸역먹고 껌까지 씹었다.차안에 비치된 향수를 뿌리는것도 잊지 않았다.늘상 만나던 그녀 회사앞 커피숍에 도착한 그는 아현에게 간단하게 문자를 보내고는 커피숍안으로 들어갔다.

"어라?"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수혁은 들어가자마자 적잖이 놀라야만했다.항상 자신이 앉는 자리에 너무나 아름다운 아현이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이상한 점이 있다면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그녀의 어두운 표정.

"언제왔어?먼저와서 기다리고 있었어?"

웃으며 말을 건 수혁이었지만 아현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장난스레 말을 걸었던 수혁은 살짝 아현의 눈치를 살폈다.

"왜그래?무슨일이라도 있어?"

수혁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싹 가셔버렸다.아현은 처음 골프장에서 봤을때처럼 너무나 차가운 표정이었다. 약간 울기까지 한듯 눈가는 빨개져 있었다.

"너...나한테 할말 없니?"

"할...말?"

"그래.할말."

수혁은 눈에띄게 당황했다.확실히 그녀의 표정과 어투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말을 하는건지.."

"넌...어디까지가 진실이니?"

아현의 목소리가 떨린다.당장이라도 울것같은 그녀의 표정에 수혁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나이도 거짓. 게다가 그 골프장...니 이름으로 되어있지도 않았어.차유경이라는 사람이 주인이었고....니가 사장이라던 회사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아. 설명할 수 있겠어?"

굵은 땀방울이 등을타고 흘러내렸다.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수혁이 아는 아현은 그런걸 시시콜콜 조사할 여자가 아니었다.그런 성격도 없는 여자일뿐더러, 그럴시간도 없는 여자아닌가. 안절부절하는 수혁을 보며 아현은 침통한듯 고개를 돌렸다.

"내가 들은 말이....사실이구나."

"누구한테...들은거야?"

"그딴게 중요해?난...너를...결혼까지 생각했는데...나는..."

드디어 아현의 눈망울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수혁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것이 느껴졌다.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의 볼에 손을 대고 눈물을 닦아주고 싶지만 거부를 당할거 같아 두렵다.

"미안해 아현아.미안해."

"내 이름 부르지마."

"넌...너무...뛰어난 여자고...그래서 속였어...내가 너무 부족해 보여서.."

"듣기싫어."

"아현아.."

"니가 부족해서 속였다고?그렇게 철저하게?세미프로 자격증까지 위조해가면서 철저하게?"

수혁은 고개를 숙였다.운명의 톱니바퀴는 지금 너무나 심하게 어긋나 있었다.승승장구 하던 자신의 인생은 오늘하루 몇십차례나 꼬이고 있었다.

"그...자식이구나..."

떠오르는 용의자는 한명뿐.자신이 흠칫 두들겨 주었던 옷가게 사장이었다. 그때 자신의 차를 타고 돌아갔고, 번호판으로 조회를 해본 모양이었다.그리고 아현의 귀에 위조되었던 자신의 정보가 들어갔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믿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이 확인해 보았을 것이다. 결국 이런 전개를 위해 그녀의 연락은 없었던 것이라는 생각에 수혁은 눈앞이 캄캄해 지는것을 느꼈다.

"어떤 이유로든.나한테 접근해서 했던 니 모든말이 거짓이라는 거...정말 참을수 없어."

"그렇지 않아.다 거짓은 아니야...다..."

"그럼 이건뭔데?"

유라의 매장에서 그녀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사진,그녀와 모텔에 들어가는 사진이 자신의 앞에 놓여진다.수혁은 절망감에 돌아버릴것만 같았다.

"자...그럼 뭐가 진실인데?말해봐."

"너를 사랑한다고 했던거.."

수혁은 가슴속에 있는 이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심장이 무언가에 지린듯이 아프다.그녀는 울고 있었지만 눈망울은 너무나 냉정했다.수혁은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끊을때 확실한 그녀.자신의 모든것이 되어버렸던 그녀가 떠나갈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혁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신...내 앞에 나타나지마."

"아현아..제발.."

"내 이름 부르지마....나쁜자식..."

아현은 눈물을 닦고는 핸드백을 들었다.수혁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지만 아현은 강하게 저항했다.

"이거 놔!"

"기회를 줘 아현아.미안해.나한테 진실되게 갈수 있는 기회를 줘.나 정말 너 사랑해.진심이야."

아현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처음봤을때의 그 눈처럼.그녀의 눈은 의지로 가득차 있다.

"진실이란말...알기는 하는거니?"

수혁은 차가운 그녀의 목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손목을 잡은 손을 스르르 놓고 말았다.그가 고개를 떨구자 마자 아현은 몸을 돌려 커피숍안을 빠져나갔다.온몸에 힘이 풀렸다. 미치도록 사랑한 그녀는 냉정하게 돌아섰고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고 있었다.붙잡을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너무나 냉정해보였던 그녀의 눈이 심장을 관통하는 칼이 되어 자신을 난도질했다. 더욱 견딜수 없는것은 처음바닷가에서 봤을때처럼 슬픈표정도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질려 버렸다는 듯한 무관심이 가득한 그 눈.미움은 정으로 바꿀수 있지만 그녀는 자신에 관한 모든것을 털어버린것이다.

"어쩌다...이렇게 되었을까."

늘상 사이좋게 있던 단골커플이 싸운 모습에 직원들은 수혁을 보며 수근대었지만 수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한동안 넋을 잃은 사람처럼 그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이제...내게 남은건...아무것도 없구나."





-
한적하게 강물이 흘렀다.너무나 청명한 날씨의 햇살이 수면위로 무수히 반사되며 눈을 찔러대었다.아직은 더운 날씨지만 스산한 바람이 머리를 흩날려 주었다.주인없는 나룻배가 뭍위에 떠있다.늘상 수혁이 애용하는 배였다. 이 강은 바로 수혁의 할머니의 유골이 뿌려진 그만의 사색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나왔어.좀...내꼴이 그렇지?"

수혁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할머니의 대답인것일까.바람이 불어 머리를 날린다.

"결국...잘 안돼버렸어.이렇게 될줄은 몰랐는데...벌 받았나봐 나."

몇번이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는지 모른다.하지만 수혁은 그녀를 볼 수 조차 없었다.조금 이르지만 수혁은 떠나야만 할거 같았다.예전부터 멀리 떠나려고 했지만 약간은 이른감이 없지 않았다.

"내가 이 나라를 뜨지 않으면...아현이도 위험해질지 몰라."

유경이란 남자를 수혁은 아직 백퍼센트 신뢰할수 없었다.다시 들어간다는 대답도 주지 않았다.때문에 자연스레 탈퇴는 되었겠지만 자신의 옆에 아현이 있다면 그들이 자신과 아현의 행복을 눈뜨고 그냥 지켜보기만 할지는 의문이었다.

"할머니의 평생 소원이었는데...나만 가서 미안해.그래서 오늘은...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보러왔어."

수혁은 배가 묶여있는 밧줄을 끌르며 중얼거렸다.이제 슬슬 외국으로 나가야만했다.자신의 존재자체가 깨끗하게 없어져 주는 것이 모든것을 위해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준비는 되있었다.어떻게 해야할지도 갈피를 잡은 그였다.

"으윽!"

밧줄을 푸르던 수혁은 옆구리에 지릿한 통증에 그대로 주저앉았다.자신의 옆구리를 쑤시고 들어왔던 그 무언가가 다시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불쾌한 느낌이 들어온다.
뜨끈한 느낌이 든다.옆구리에서 피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너...너..."

뒤를 돌아보자 상철이 서있었다.그리고 약간은 낮이 익은 다른 조직의 일원들도.

"미안하다 강수혁.니가 올바르게 선택만 했어도..."

상철이 들고 있던 칼에서 피가 떨어진다.모래위에 흩뿌려져 검붉은 궤적을 그리면서...

"너...이자식.."

수혁은 신음을 참으며 밧줄이 묶인 말뚝을 잡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그동안 보았던 상철의 표정은 찾아볼수 없었다.늘상 장난스런 미소를띄며 욕을 하곤했던 익살스런 모습따윈 없다.마치 죽음을 관장하는 사신처럼 냉정한 표정으로 천천히 칼을 들어올릴뿐.

"미안하다.수혁아.여기서....사라져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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