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시대
야설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야인시대 대본인데요.
11월4일방송하는 겁니다.
미리알면 재미없지만 성질 급하신분들 보세요.
29회 야인시대 미리보기
지난 회와 연결된다.
상하이가 두한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다.
일촉즉발의 위기감 속에 김영태를 비롯한 김무옥, 문영철들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뿐이다.
두한은 여전히 상하이를 노려보고 있다.
상하이: 같이 가는 거야.. 같이 가면 황천길이 외롭지는 않을 거야.
두한: ........
상하이: 두렵나?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눈앞이 캄캄해지나 보지? 그런 거냐, 김두한?
김영태: 이봐, 상하이..
두한: (제지하고는) 겨우 이 정도였나? 그래도 한 때는
종로에서 알아주는 주먹이라 들었는데.
상하이: 닥쳐!
발끈하며 총을 더 가까이 들이민다. 김무옥과 문영철들이 움찔한다.
상하이: 건방 떨지마, 이 새꺄..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빌어. 목숨을 살려달라구 말이야.
두한: 목숨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네 손에 죽겠다.
상하이: 뭐, 뭐야?
두한: 쏴라..
상하이: .이, 이 새끼가.
두한: 어서 쏴라. 뭐하고 있나, 상하이?
권총을 쥔 상하이의 손이 가늘게 떨고 있다. 두한은 상하이의 두 눈을 타는 듯 응시하고
있다. 숨막히는 정적이 잠시 흐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불안하게 눈동자가 흔들리던 상하이가 그대로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김영태: 안돼, 상하이!
김무옥: 두한아!
총구가 불을 뿜자 몇몇 이들은 아예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두한은 멀쩡하게 앉아 있고 총구는 엉뚱하게도 천장을 향해 있다.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상하이가 힘없이 권총을 떨어뜨린다.
상하이: 지독한 놈.. 내가 졌다.
두한: ........
상하이: (자조적으로 웃으며)흐흐흐흐.. 너를 쓰러뜨리고 영웅이 되고 싶었는데. 난
네 상대가 아니었어.
두한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집히는 대로 돈을 꺼내 놓는다.
상하이: ..?
두한: 떠나라. 넌 더 이상 종로에 남아 있을 자격이 없다.
두한은 싸늘하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상하이는 모멸감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두한들이 나가고 상하이는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그 모습에서...
씬 동 밖
두한과 김영태들이 밖으로 나온다. 상하이의 괴성이 여기에까지 들려온다.
멀리에서 보고 있던 시바루의 부하가 천천히 걸음을 돌린다.
씬 혼마찌깡 서재
마음을 읽어내기라도 하는 듯 하야시는 그렇게 나미꼬를 쳐다보고 있다.
하야시: 김두한을 만나고 왔다..?
나미꼬: 예, 형부.
하야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
나미꼬: 종로에 영업장을 둔 사장으로서 병문안차 갔었습니다.
그리고 형부의 진심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어요.
하야시:(미소).. 그래서 말이 통하던가?
나미꼬: 당장은 아니지만 그렇게 만들겠어요. 굳이 종로와 싸울 이유는 없지 않나요?
하야시: 처제는 사내들을 아직 잘 몰라. 김두한과 우리 혼마찌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있어.
나미꼬: .?
하야시: 그리고.. 처제는 지금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군. 사업은 사업이야.
사업에는 절대로 사적인 감정이 개입돼서는 안 돼. 앞으로는 그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나미꼬: ...?
씬 종로 거리
두한과 부하들이 오고 있다.
한참 동안을 쭉 참고 걷던 김영태가 기어코 한 마디를 던진다.
김영태: 두한이.. 오늘은 너무도 무모했네.
두한: ..
김영태: 이제껏 나는 자네의 결정에 따라왔어. 하지만 이번 일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
두한: 말씀하십쇼.
김영태: 상하이는 자넬 쏠 수도 있었어.
두한: 아닙니다. 상하이는 저를 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김영태: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나?
두한: 상하이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김영태: .....?
두한: 그 자는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절대
쏘지 못할 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김영태는 내심 놀란 듯 다시금 두한을 본다. 두한의 모습은 그렇게 커보인다.
김영태: 어쨌거나 이런 위험한 승부는 피해야 해. 자네 몸은 자네 혼자의 것이 아니야.
다신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겠네.
두한: ....
씬 마포 포구 전경
어둠 속으로 선착장의 모습이 윤곽으로 보여온다.
씬 마포패 사무실
마포패의 심복이 어두운 얼굴로 용식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다. 용식은 꽁초까지 타들어가는
담뱃재를 털지도 않는다.
용식: 멍청한 놈.. 기어이 그 지경이 되고 말았군.
되려 두한이만 더 키워준 꼴이 되어버렸어.
심복: 앞으로의 일이 걱정입니다. 다음 차례는 분명 우리가 될 겁니다. 애초부터
상하이를 받아 들였던 게 큰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용식: 후회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지금은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심복: 예, 형님.
용식: 우미관패는 이 대치상황을 끝내고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겠지. 지금까지 해온
것을 봐서 길게 끌지는 않을 거다.
우리에겐. 무릎을 꿇느냐 싸울 것이냐는 선택만 남았을 뿐이다.
심복: 하지만 형님, 싸운다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서대문이 무너지고 영등포와 노량진은
처음부터 우미관패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더구나 동대문 황소 형님도 이제는 두한이의
눈치만 보고 있는 듯 싶습니다.
용식: ......
심복: 형님께서 제안하신 각 패거리와의 공동 대응은 깨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건 시구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대세는 기울어졌습니다, 형님. 이제는..
용식: 물러서야 한다는 건가?
심복: 예, 형님.
용식: ....
심복: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두한이는 그래도 스스로 항복한 서대문 작두 오야붕에게
형님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용식: 먼저 칼을 뽑은 건 나야. 작두와는 입장이 달라. (사이) 내일 아침 일찍 시구문
짝코에게 애들을 보내. 내가 급히 보잔다고.
심복: ..예, 형님.
용식은 새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용식: 김두한이라.. 김두한.
씬 우미관 외경 (아침)
씬 동 사무실
두한과 부하들이 앉아 있고, 문 앞에 영등포와 노량진에서 보낸 특사들이 와 있다.
노량진: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노량진 점박이 형님께서 보낸 박상두라고 합니다.
영등포: (고개 숙이며) 영등포에서 온 천만호라고 합니다.
두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김영태: 무슨 일들인가?
영등포: 저희 형님께서 지난 번 오야붕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말씀을 전해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노량진: 불쾌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두한: ...
김영태: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왔단 말인가?
영등포: 그리고.
영등포와 노량진의 특사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봉투 하나씩을 내어놓는다.
영등포: 저희 형님께서 보내신 세금입니다. 그 동안 밀린 것을 모두 넣었습니다.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상납할 것입니다.
노량진: 우미관 밑으로 들어오겠습니다. 저희들을 받아주십시오.
김영태: 뭔가 잘못 알고 있구만...
두 사람:........?
김영태: 우리 오야붕의 뜻은 이런 게 아니야. 이깟 돈 몇 푼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란 말일세.
노량진: 그게 무슨...?
김영태: 믿을 수 있는 충성을 보여야지. 충성 말이야.
영등포: ..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영태 형님?
김영태: 두 아우님들에게 할 말이 아닌 것 같네. 그만 돌아들 가.
영등포: (노량진과 시선을 교환하고) 저희들은 전권을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어떠한
조건이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김영태: 전권을 위임받았다?
김영태가 두한의 의중을 눈으로 물으면, 두한은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김영태: 좋아.. 그렇다면 몇 가지 일러두지.. 앞으로는 우미관의 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김두한 오야붕께서 세우신 법 말이다.
영등포: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김영태: 새로운 주먹으로 거듭나야 하는 어려운 일이 될 거야. 조만간 다시 경성 일대의
오야붕 회의를 가질 계획이다. 너희들 오야붕에게 가서 전해라. 만약 우리의 뜻과
어긋난다면 굳이 참석할 필요가 없다고.
노량진: 꼭 오실 겁니다.
영등포: 그렇습니다.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김영태: (두한을 향해) 오야붕,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두한: (봉투를 밀어 놓으며) 이것들은 다시 가져가시오.
두 사람: .........?
두한: 지난 일들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오. 그리고 앞으로 세금은
이제까지 받은 것에 절반만 받을 거라고 당신들 형님들께 전하시오. 나머지는 그쪽
아우들을 위해 쓰라고 하시오.
두 사람: .....?
김영태: 형님 말씀 못 들었나? 어서들 가져가.
영등포: 예. (챙기며)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등포와 노량진의 특사들이 밖으로 나간다.
김영태: 이렇게 기민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꽤나 몸이 달았던 모양이야. 동대문 황소도
편지를 보내 화해의 뜻을 비추고 있어. 이제 마포와 시구문만 남았네.
두한: ....
문영철: 가장 세력이 큰 두 곳만 남았군요.
김영태: 그들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진 않을 걸세. 용식이나 짝코는 주먹도 대단하고
자존심이 센 사람들이야.
두한: 먼저 마포로 가겠습니다. (일어서며) 그들한테 진 빚도 있구요.
김영태: 지금 말인가?
두한: 병원에 잠시 들렀다가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요. 영철이와 무옥이는 그 동안
애들 좀 모으고.
무옥: 잉, 알았구만.
두한이 상의를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씬 박인애의 집 외경
씬 동 거실
박인애와 오빠 미스터 박이 놀란 듯 눈이 커져 있다. 부친과 모친의 얼굴은 만족스러운
듯 밝은 표정이다.
박인애: 그게 무슨..? 저더러 선을 보란 말씀인가요?
인애부: 선이 아니다. 상견례라고 하지 않았느냐? 지체 높은 집안끼리의 혼사다.
이건 요새 흔히들 하듯이 한 번 만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헤어지는 그런 천박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야.
인애모: 그래, 인애야... 우리로서는 과분한 자리다. 네 시아버지가 되실 분은
중추원 참의시고 네 신랑될 사람은 총독부에 근부하는 촉망받는 청년이라는구나.
박인애: 하지만 전 아직..
인애부: 물론 조금은 당황스럽겠지. 하지만 이제 그럴 때가 되었어.
박인애: 하지만 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또 오라버니도 계시는데...
미스터박: 제가 생각하기에도 조금은 이른 것 같습니다.
인애부: 그런 이유라면 문제될 것 없다. 학업을 정 마치고 싶다면 우선 약혼식부터 올리고
학교를 졸업하는대로 식을 올리면 되지 않겠느냐?
박인애: 아버지.
인애부: 싫다는 말은 말거라. 우리에게 그만한 자리 찾기도 쉽지 않아. 이미 나는 결정했다.
혹여나 다른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 이 아비의 말 무슨 뜻인지 알아 듣겠지?
박인애: .......
씬 병원 외경
씬 동안
침대에 누워 있는 진영의 옆으로 개코가 수발을 들고 있다.
개코: 뭐 필요한 건 없어? 먹고 싶은 거든 뭐든 말만 해. 내가 구해다 줄 테니까.
정진영: 네가 무슨 돈이 있다구?
개코: 헤헤헤. 사실은 너한테 잘해주라구 두한이한테 오까네 좀 받았어. 이럴 때, 호강 한번
해 봐.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 보구.
정진영: 난 됐어. 그보다는 우리 어머니는 괜찮으신지 모르겠다? 걱정을 많이 하실텐데.
개코: 걱정하지 마. 내가 잘 말씀드렸으니까. 그리고 애들한테 시켜서 잘 보살펴 드리라고
했어. 너나 빨리 낫으라구.
정진영: 고맙다, 개코.
개코: 그 정도 가지구 뭘. 헤헤헤.
그때 문이 열리며 두한과 김영태가 들어온다. 정진영은 상체를 일으켜 앉는다.
정진영: 두한아..
두한: 아냐.. 그냥 누워 있어.
정진영: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의사선생님 말씀이 조금씩 움직이는 게 오히려 좋대.
두한: 그래..? 아무튼 고맙다 진영아.
정진영: 내가 뭘.
두한: 내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구.. 진영이 네가 죽지 않고 살아서 더욱 고맙다.
정진영: ...
김영태: 정말일세.. 얼마나 자네걱정을 했는지 아는가? 지켜보는 사람이 다 안타까울
지경이었다네. 정말이지 자네 두 사람의 우정에 감탄을 했네.
정진영: ..
두한: ..
김영태: 그나저나 개코가 고생이 많구만..
개코: 헤헤헤. 뭘요? 그냥 옆에 붙어만 있는거죠, 뭐,
두한: 피곤해 보인다. 들어가서 좀 쉬어라.
개코: 아냐.. 그것보다.. 진영이가 너한테 할 말이 있다는데.
두한: 할 말이라니..?
정진영: ..지난 번에 얘기했던 거 말이야. 날 우미관패로 받아줘.
두한: 진영아.
진영: 많이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야.. 허락해줘, 두한아.
두한: ..
김영태: 이미 결심을 굳힌 것 같으니 허락하게. 사실 우리한테는 진영이처럼 똑똑한
친구가 필요해.
개코: 그래 두한아.
두한: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정진영: 물론이야.
두한: ..좋아.. 하지만 다시 공부가 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나도록 해.
정진영: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김영태: 잘 결정했네.. 기회를 봐서 정식으로 우리 식구들에게 소개를 시키도록 하겠네.
개코: 헤헤헤. 이런 날은 축하주라도 한 잔 마셔야 하는 건데.
김영태: 이 친구가 퇴원하면 근사하게 환영연을 해야지.
개코: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형님. (진영에게) 축하한다, 진영아.
정진영: (손을 내밀며) 고맙다, 두한아.
두한은 그 손을 힘주어 잡는다. 그렇게 뜨겁게 맞잡은 두한과 진영의 손에서..
씬 권번 외경
씬 동 설향의 방
설향의 옆으로 모로 누워있던 애란이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애란: 생각할수록 열통이 터져서 못 참겠네. 두한 오라버니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니..
설향: 그 이야기는 그만 하기로 했잖아?
애란: 자꾸 끓어오르는데 어떡하니? 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설향: ..
애란: (한숨) 그래.. 내가 왜 니 속을 모르겠니.. 들여다 보진 않았지만 아마 그 속이 시커멓게 탔을 거다.
설향: 내 걱정 말고.. 너나 앞으로 영철씨한테 잘해.
애란: 잘해주긴 개뿔이나 잘해줘? 마음 같아선 확 걷어차고 싶지만 옛정을 봐서 참고 있는
거야. 그 인간 허우대만 멀쩡해 가지고 쫓아다닌 여급년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어이구 내가 그년들 머리끄댕일 죄다 뽑아놓은 걸 생각하면.
그때 권번 선생 소리가 들려온다.
권번선생: 설향이 안에 있냐?
설향: 예, 어머니..
문이 열리고 권번선생이 보자기로 싼 물건을 들고 들어온다.
권번선생: 무슨 수다들 그렇게 재미있느냐? 어디 나도 한 번 들어보나꾸나.
애란: 아, 아니에요, 어머니.. 근데 어머니 그건 뭐예요?
권번선생: 어떤 손님께서 설향이 네게 주라고 보낸 것이라는구나. 받거라.
설향: .제게요?
권번선생: (끄덕인다) ...
애란: 세상에.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네. 설향이 넌 좋겠다.
권번선생: 그러니까 너도 좀 조신해봐.. 방정맞지 좀 말구
애란: 어머니두 참..
권번선생: 그럼 쉬거라..
권번선생이 일어나 나가고 나면.
애란: 뭐해? 어서 풀어보지 않구..
설향이 풀어보면 편지와 함께 빛깔이 고운 옷 한 벌이 싸여 있다.
애란: 우와.. 곱다.. 이거 엄청 비싸겠는데.. 와.. 이건 또 뭐야? 편지두 있네.. (펼쳐보며)
그대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보내오. 일본에서 정운경
설향: ..
애란: 혹시 그 사람 아니니? 맞지?
설향: ..
애란: 맞구나.. 와.. 그 사람 너한테 완전히 빠져버렸나봐. 이야.. 진짜 곱다. 너무 이뻐..
설향: 그렇게 이쁘니?
애란: 그럼.. 니 눈에는 이게 고와 보이지 않니?
설향: (가만히 옷을 애란 앞으로 밀어 놓으며) 네가 입어.
애란: . 왜? 내가 왜 이걸 가져?
설향: 나한텐 필요 없어..
애란: 듣기 싫어, 이것아.. 왜, 아직도 두한 오라버니 땜에..?
설향: ..
애란: 정신 차려. 너만 그러면 뭐해? 너만 지조를 지키면 뭐하냐구?
설향: .(눈물).
애란: 울긴 왜 울어? 그렇게 속상하면 두한 오라버니한테 가서 따지란 말이야.
그 년 머리끄댕이를 죄 뜯어놓던지. (울먹이며) 울긴 왜 우냔 말이야? 왜?
설향: ......
씬 사쿠라
애절한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나미꼬가 바에 걸터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나미꼬: (술잔을 내밀며) 한 잔 더.
웨이터: 낮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사장님?
나미꼬: 이 정도로 취하진 않아요.
웨이터가 나미꼬의 잔에 양주를 따른다. 잠시 후 시바루가 들어와 외롭게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나미꼬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천천히 다가간다.
시바루: 사장님.
나미꼬: (돌아보며) 어서 와요. 그렇지 않아도 술친구가 필요했는데.. 한 잔 할래요?
시바루: .
나미꼬: 왜 그렇게 빤히 봐요? 아 참.. 시바루상은 술을 마시지 않죠? 내가 깜빡했네요..
시바루: 이런 모습은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나미꼬: 호호호.. 술 마시는 게 뭐가 어때서요?
시바루: ...
나미꼬: 시바루상. 시바루상은 누군가를 사랑해 본적이 있나요? 그 사람만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마냥 행복해지고. 그러다가 갑자기 견딜 수 없이 외로워 지는 그런..?
시바루: ..
나미꼬: (웃으며) 그럴 줄 알았어요. 시바루상의 관심은 오로지 무도 뿐이겠죠.
내 말이 맞죠?
시바루: .
나미꼬: 재미 없어.. 왜 그렇게 사람이 말이 없어요? 하긴 과묵한 게 매력이기는 하지만..
종로는 좀 어떻던가요?
시바루: . 다시 시끄러워질 모양입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나미꼬: 그래요? 무슨 일일까.? (사이) 하여간 대단한 사람들이예요. 김두한 그 사람
말이예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 것인지.. 상하이 같은 독종을 그렇게 굴복
시켰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예요.
시바루: 그건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우리 오야붕께서는 절대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미꼬: 그렇겠죠. 형부는 치밀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김두한은 누가 뭐래도 조선의
오야붕 감으로 손색이 없는 사람이예요. 형부도 빨리 그걸 인정하고 이제는 종로를 포기하는 편이 훨씬 현명한 처사일텐데..
시바루: ....?
나미꼬가 다시 술 한모금 마시고 나서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시바루가 의아한 듯 본다.
나미꼬: 갑자기 그 사람 생각이 나서요. 그 와싱턴이라는 사람 말이예요. 이럴 때 술친구로
제격인데. 참, 그 사람 어떻게 됐죠?
시바루: 아사히마찌 패들이 데려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미꼬: 그럼 그 사람이 정말로 아편을 훔쳤단 말이예요?
시바루: 조만간 밝혀지게 되겠지요. 아마 지금쯤 곤욕을 치루고 있을겁니다.
나미꼬: 그래요..?
씬 아사히마찌패 건물 외경
와싱턴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씬 동 지하 창고
백열등이 희미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와싱턴은 천장에 매달린 채, 아사히마찌의 야쿠자들에게 고문을 당하고 있다.
야쿠자1: 다시 묻겠다. 아편은 어디다 뒀지?
와싱턴: 아.. 아편.. 이라니요? 전.. 그런 거.. 모릅니다. 믿어주십시오.
야쿠자2: 몰라? 그럼 내가 기억나게 해주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야쿠자2가 다시 한 번 사정없이 채찍으로 와싱턴의 등짝을 내리친다.
와싱턴은 죽을 듯 비명을 지르며 그만 기절하고 만다. 야쿠자1이 물을 끼얹는다.
야쿠자1: 피곤하게 굴지 말고 어서 불어. 아편을 내놓기 전엔 넌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가.
와싱턴: 사.. 사람을 잘.. 못 보셨습니다. 전.. 그냥 사업갑니다.
야쿠자2: 아무래도 안되겠군. 더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와싱턴: 제발.. 살려주십시오.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야쿠자1: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할 수 없지.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 준비해..
야쿠자들이 와싱턴이 묶인 줄을 풀면 와싱턴이 무너지듯 쓰러진다. 쓰러진 와싱턴을 일으켜
의자에 앉히는 야쿠자들.. 전기고문 도구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와싱턴의 눈이 점점 공포에 젖는다.
와싱턴: (벌벌 떨며) 안돼.. 안돼..
야쿠자2: 가만 있어.. 네가 아직 상황 파악이 잘 안되는 모양인데.. 여기가 어디인 것 같으냐? 바로 저승이야..
와싱턴: 잠깐.. 잠깐만..
야쿠자1: 뭐야?
와싱턴: 당신들.. 지금 실수하는 거요.. 종로 우미관에서 김두한이.. 내 아우요. 내가..
이렇게 당하는 걸 알면.. 당신들 가만두지 않을 거요.
야쿠자2: 김두한이 네 아우라고? 이 자식 정말 웃기는 놈이구만..
야쿠자1: 시작해..
그러나 야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와싱턴의 두 팔에 전기고문 기구를 끼우고 스위치를 올린다. 와싱턴이 다시 한 번 죽을 듯 비명을 지른다.
와싱턴: 사, 살려주십쇼.. 제발..
야쿠자1: 김두한 같은 거물을 아우로 두신 분께서 왜 이렇게 비굴하십니까?
야쿠자2: 그러게.. 곧 부하들이 큰 형님을 구하러 오실텐데 말이야.. 하하하..
야쿠자들 그런 와싱턴을 한참동안 비웃으며 다시 스위치를 올린다. 와싱턴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뻗어버린다.
씬 종로 전차길
두한이 수십명의 부하들과 함께 전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그
덩치들에 질려 슬슬 눈치를 보며 피해간다. 멀리에서 종소리를 울리며 전차가 다가오고 있다. 전차가 정차하면 두한들이 곧바로 전차에 오른다
씬 마포 포구/어느 음식점 앞
마포패 용식의 심복 부하들이 잰걸음으로 다가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부하들이 인사도
받지 않은 채 급히 안으로 들어간다.
씬 동 안
창 밖으로 포구를 드나드는 고깃배들의 모습이 보여온다. 시구문 짝코와 마포 용식이 시켜놓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무겁게 앉아 있다.
용식: 종로애들이 이리로 오고 있다고..?
심복: 예, 형님.. 종로에 감시를 붙여놓은 애들이 급히 연락이 왔습니다.
용식: ..알았다. 나가봐라..
심복이 대답하고 나간다.
짝코: 두한이놈이 그예 쳐들어오는 모양이구만..
용식: 이미 예견했던 일이 아닌가?
짝코: 이제 어쩔 셈인가?
용식: 가만히 앉아서 당할수야 없지..
짝코: 하지만.. 우리 둘이 힘을 합친다고 두한이를 이길 수 있을까?
용식: 물론 정면 대결은 승산이 없지. 하지만..
짝코: 정면대결이 아니라면? 상하이처럼 치사한 짓을 하자는 것이야?
용식: 그럴 리가 있겠나? 이대로 물러서는 것도 체면이 서지 않으니 한 번 부딪쳐는 봐야
한다는 걸세.
짝코: ......?
용식: 내게 생각이 있네. 밤새 고민을 많이 했지.
짝코: 뜸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봐.
용식: 자네 식구 중에서 쓸만한 애들로 열 명만 추려보게.
짝코: 애들을...?
용식: 그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야..
짝코: ...?
씬 비너스 외경 (첨가)
씬 동 안
김이수와 최동열 맥주 두어병을 놓고 앉아 있다.
김이수: 그래서 그 어른이 자네를 만나러 오셨던 게로구만.. 두한이 때문에 상심이 크셨던 게야..
최동열: .
김이수: 허긴 왜 아니겠는가? 그 가문이 어떤 가문인가? 하지만 말이야.. 하는 한편으론 그런 아이가 종로에 있어 마음이 놓이네.
최동열: 마음이 놓이다니..?
김이수: 백야의 아들이 일본놈들이 판치는 경성 한 복판에 떡 버티고 있다니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최동열: 허허허. 하여간..
김이수: 이 사실을 떠들고 다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조선 백성들에게도 그런 작은 희망이나마 줄 수 있다면 말이야.
그때 임동호가 다가온다.
임동호: 또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는가?
김이수: 이게 누구야? 돌파리 의사 선생이 납시셨구만 그래..
최동열: 앉게.
김이수: (노래하듯) 아.. 조선의 희망이여.. 조선의 희망이여.. 부디 그 불빛을 꺼뜨리지 말아다오..
임동호: 이 친구 몇 병 마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또 취했구만.. 중독이야. 알코올 중독이라구.
최동열: ...
씬 삼청동 마당
오씨가 물을 길어다 배추를 씻고 있다. 배추라고 해 봐야 시들이 김치를 담글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잠시 후 오무라와 김서태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무라: 안녕하시오? 그 동안 잘 계셨소?
오씨: .. (싸늘해지며) 무슨 일이오?
오무라: 요시찰 집안이 아니오. 달리 이유가 있겠소? (둘러보다가 배추를 보고) 이런이런..
아니 이런 걸 어떻게 먹을려구 씻는단 말인가? 긴또깡이 이놈 알고보니 참으로 못됐구만..
저는 부하들을 데리고 허구헌날 술을 퍼마시고 다니면서 가족들에겐 이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단 말인가? 에잉..
그 때 조모의 호통소리가 집안을 울린다.
조모: 무슨 망발을 지껄이고 있는 게냐? 네 놈들이 무엇을 안다고?
김태서: 뭐라?
오무라: 오 긴또깡의 할머니가 아닌가? 그 성미는 여전하시구만..
조모: (내려와) 예가 어디라고 함부로 더러운 발을 들이미는 게냐? 내 집에서 썩 나가거라.
오무라: 아아.. 너무 그러지 마시오. 우리라고 뭐 좋아서 여길 온 줄 아시오?
조모: 내 집에서 나가라고 했느니라.
오무라: 긴또깡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소. 요사이 긴또깡이 통 다녀가지 않은 모양이오..
하긴 뭐 싸움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겠지..
조모: 듣기 싫다. 어서 썩 나가지 못하겠느냐?
오무라: (이리저리 둘러보며 마당을 거닐며) 그 때문에 우리가 편해지긴 했소. 조선팔도의
오야붕이 되었으니 따로 감시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오. 그런 불량배들은 우리 고등계가 아닌 사법계에서 알아서 다 처리해 주니까.. 하하하..
조모가 물 한 바가지를 그대로 오무라의 얼굴에 끼얹어 버린다.
오무라: 이.. 이런..
조모: 이제 좀 정신이 드느냐?
오무라: 이런 미친 할망구를 보았는가? (조모를 때리려고 손을 치켜 드는데)
김태서: 참으십쇼. 정신 나간 노인넵니다. 미와 경부님께서도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공연히 일을 만들지 말라구요. 그만 가시죠.
오무라: .. 빠가야로. 두고보자.
오무라 분함을 누르고 돌아서 나간다. 조모는 여전히 의연하다.
오씨: 어머님..
조모: 잡귀들이 다녀 갔느니라. 소금 내다 뿌리거라..
그렇게 조모도 돌아서 안으로 들어간다. 오씨의 모습에서.
씬 마포 포구
두한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포구로 들어선다. 그물을 손질하던 어부들이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며 불안하게 쳐다본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경계를 서던 마포와 시구문의 졸개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 앞을 막아선다.
김영태: 비켜라..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마포와 시구문 패거리들은 상대가 되지 않음을 직감하면서도 길을 내주지는 않는다.
두한은 그대로 그들을 향해 나아간다. 마포, 시구문패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싸울
태세를 갖추는데, 그때 뒤에서 낮지만 위압적인 일성이 들려온다.
심복: 멈춰라! (다가와 인사하고는) 어서 오십쇼.. 저희 아이들의 무례를 용서하십쇼.
김무옥: 그려.. 진작부터 이렇게 나왔어야제.. 손님을 맞는 태도가 영 글러먹었당께..
심복: 저희 형님께서 김두한 오야붕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가시죠.
김영태: (예리하게 눈을 빛내며) 우리가 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심복: 시구문 짝코 형님께서도 와 계십니다. 저를 따라 오십쇼.
김영태: 감히 누구를 오라 가라 하는 것인가? 이 분은 우미관의 오야붕이시다. 두 분 형님께서도 예의가 무엇인지는 알고 계실텐데..
심복: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김영태: 지금 당장 두 분 형님께 직접 나오시라고 전해.
심복: (움직이지 않는다)
김영태: 어서!
두한: 그만 두십시오. 누가 오고, 누가 가면 어떻습니까? (심복에게) 지금 어디에들 계신가?
심복: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심복의 안내를 따라 두한과 우미관패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하지만 김영태는 왠지 개운치 않은 표정이다.
씬 어느 창고 앞
두한들이 그 곳에 이르고 있다. 문 앞에는 마포 패거리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심복이 다가가자 그들이 문을 연다. 김영태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창고 안을 살핀다.
심복: 여깁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두한이 성큼성큼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김영태와 그 부하들도 그 뒤를 따라가려는데
심복이 손으로 제지한다.
심복: 오야붕들의 자립니다. 다른 분들은 여기서 기다리십쇼.
김영태: ......?
두한: 그렇게 하십쇼.
김영태도 어쩔 수 없이 한 발 물러선다. 두한이 안으로 들어가면 마포패들이 조심스럽게
문을 닫는다. 두한이 조금은 어두컴컴한 창고 안으로 몇 발짝 다가서려는데 순간 창고문이 잠기며 동시에 그곳에 숨어있던 이십 여명의 마포와 시구문 패거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제서야 두한은 사태를 짐작하고 표정이 굳어진다. 짝코와 용식도 한쪽에 서서 두한을 지켜보고 있다.
용식: 반갑네, 두한 아우님. 내가 마포의 용식일세.
두한: 마포는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하십니까?
용식: 하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그럼 어디 실력을 좀 구경해볼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패거리들이 두한을 조여든다. 그들 중에는 몽둥이를 든 자도
있고, 체인을 손에 감고 있는 자도 있다. 두한은 싸울 자세를 갖추며 예리하게
눈빛을 빛낸다. 어느 순간 패거리들이 기합을 지르며 두한을 공격하면서 일대 접전이 펼쳐진다. 두한은 치고 받고 날으며 그들을 하나씩 잠재우기 시작한다. 짝코와 용식이 그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씬 동 밖
김영태가 안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당황한다.
김영태: 뭔가? 지금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거야?
문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창고 문은 단단히 잠겨 열릴 줄을 모른다. 김영태는 그대로 심복의 멱살을 쥔다. 그곳을 지키던 마포의 졸개들은 벌써 뒷걸음질치며 달아난다.
김영태: 문을 열어. 어서 열란 말이다.
심복: 안에서 열기 전에는 나도 어쩔 수 없다.
김영태: 이런.. 비열한..
김영태가 심복의 턱을 날려 버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김영태: 뭣들 하고 있어? 어서 저 문을 부숴라.
동시에 문영철과 김무옥들이 문을 향해 몸을 던진다.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순간 김영태의 눈에 한쪽으로 쌓아 놓은 거대한 통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김영태: 저 통나무를 가져와. 어서..! 시간이 없다.
우미관패들이 정신없이 통나무를 향해 달려간다. 당황한 김영태의 모습에서...
씬 다시 창고 안
접전이 계속되고 있다. 벌써 여럿이 나가 떨어졌고, 나머지 패거리들은 비로소 상대의 무서움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온다. 그러나 두한도 땀을 비오듯 쏟으며 무척 지친 모습이다. 아무리 두한이라지만 전문 싸움패 20여명과 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용식과 짝코가 신음처럼 탄성을 터뜨린다.
용식: 대단하구만... 정말 대단해.
짝코: 구마적을 쓰러뜨렸다고 했을 땐 그저 운이 좋은 놈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저런 괴물은 처음 보는구만.. 하지만 더 이상 버티기는 어려울 거야.
용식: ................
다시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다. 이제 두한도 얻어맞는 횟수가 늘어난다. 그러나 두한은 이를 악물고 최후의 힘을 다해 사내들과 맞서 싸운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온전한 패거리들은
서넛 정도 밖에는 남이 않았다. 용식이 지긋이 이를 악문다. 다시 한 판에 싸움이 벌어질 찰라.......
용식: 그만들 해라.
패거리들: (행동을 멈추고 용식을 본다)
용식: 그만 해.
패거리들이 조용히 물러선다. 용식과 짝코가 두한에게 서서히 다가온다.
용식: 마포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네.. 인사가 지나쳤다면 용서하게. 우리는 자네가 진정한 오야붕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알아보고 싶었네...
두한: ...........?
그때 와장창 문이 부서지며 쏟아져 들어오는 김영태들이 용식과 짝코를 향해 달려들 태세를 취한다. 두한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한다.
용식: 두한이 자네가 우미관의 오야붕일세. 조선 최고의 주먹이야. 우릴 받아 주겠나?
두한은 대답없이 잠시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만 본다. 짝코와 용식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무릎을 꿇는다. 모두들 어찌된 영문인지 의아한 표정이다. 두한은 그들을 그렇게 내려다 보고 있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씬 어느 고급 레스토랑 외경(낮)
씬 동 안
박인애의 가족과 이군의 가족들이 둘러 앉아 상견례를 하고 있다. 이군은 지적이고 다소
날카로운 용모로 은테 안경을 쓰고 있고, 그의 부친은 중추원 참의라는 지위에 걸맞게
여유로운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모친 역시 귀부인다운 치장을 하고 있다.
인애부: 참으로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각하... 총독부 내에서도 전도가 유망한 청년이라 들었습니다.
이군부친: 하하하. 박회장이야말로 아리따운 따님을 두셨소이다. 볼수록 참해 보이는구려...
박인애: ..........
인애부: 아직 어린 아입니다. 앞으로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이군부친: (흐뭇하게 보다가) ... 잘 어울리는 한 쌍이오. 안 그렇소? 허허허....
이군모친: ........네...(미소)
이군 역시 박인애의 미모에 반한 듯 미소를 머금은 채 박인애를 본다. 그러나 박인애의 시선은 아래를 향한 채 움직일 줄 모른다. 그 모습들에서.....
씬 종로 회관 앞
출입문 좌우로 우미관의 어깨들이 도열해 있다. 그 앞으로 경성 일대의 오야붕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김무옥과 문영철이 차에서 내리는 오야붕들을 안내하고 번개, 삼수, 병수, 털보들은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김영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삼수를 부른다.
김영태: 삼수야.
삼수: 예, 형님...
김영태: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다. 오야붕을 모셔오너라...
삼수: 예, 형님... (달려가면...)
김영태: 우리도 그만 들어가자....
그들 모두 안으로 향하면.....
씬 동 안
용식과 짝코, 작두를 비롯한 경성 일대의 모든 오야붕들이 자리해 있다. 상석은 아직 비어 있다. 김영태를 비롯한 우미관패들은 다소 상기가 되어 있는 표정들이다. 그 때 삼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삼수: 김두한 큰형님께서 오셨습니다.
그 소리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난다. 두한은 말끔한 정장 차림에 상의 포켓에는 하얀 손수건이 꽂혀 있다. 두한이 상석으로 가 선다.
두한: 반갑습니다, 김두한입니다.
그러자 박수 소리가 터져나온다. 당당한 두한의 모습이다.
두한: 앉으십시오. 모두들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어려운 말은 할 줄 몰라서 솔직하게 털어 놓겠습니다.
오야붕들: ............
두한: 오늘 여러 선배님들께 무례를 무릅쓰고 모이시라고 한 것은 화해를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은 어제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오늘부터는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이제가지 제가 건방지게 굴었던 점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의 욕심이나 단순한 세력 확장 때문에 이런 싸움을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
두한의 말을 듣고 있는 용식과 짝코, 작두들의 표정이 자뭇 진지하다.
두한: 조선 주먹의 한 사람으로서 호시탐탐 종로를 노리고 있는 일본 주먹패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여러 선배님들께서는 자존심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일본주먹패에게 종로를 내준다는 것은 그 자존심을 파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김영태: ...........
두한: 조선 주먹은 이제 단결해야만 합니다. 선배님들께서 이 김두한이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목숨을 내놓고 종로와 여러 선배님들의 자존심을 지켜드릴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 열띤 연설에 오야붕들이 박수가 쏟아지고 있다.
씬 혼마찌깡 정원
하야시가 정원을 거닐고 있다. 미우라와 가미소리가 조용히 뒤를 따르며 보고를 올리고 있고, 무사들이 그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다.
미우라: 경성 일대의 모든 오야붕들이 지금 종로에 집결해 있습니다. 이것으로 김두한은 사실상 조선 주먹계를 완전히 통일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야시: ............
가미소리: 그 동안 강하게 반발하던 마포나 시구문패도 이제는 김두한을 명실상부한 오야붕으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하야시: 내 예상보다도 훨씬 빨랐군.
가미소리: .........예?
하야시: 김두한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바이다. 하지만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그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야. 그것은 힘만 가지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두한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한데 그것이 뭘까?
가미소리: ...........?
하야시: 김두한이라는 사내가 점점 더 궁금해지는구만.
미우라: 어쨌거나 종로로 진출하려던 사업 계획이 더욱 어렵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영업장인 사쿠라도 본격적인 도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야시: .............
가미소리: 만일 종로와 전면전을 벌여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 오게 되면 사람이 더 필요할 듯 싶습니다. 본토에 연락을 취해 미리 쓸만한 무사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야시: 가미소리....
가미소리: 하이 오야붕.
하야시: 너는 혼마찌의 2인자다. 겨우 이만한 일로 당황해서야 되겠는가?
가미소리: 죄송합니다.
하야시: 더 보고할 것이 있는가?
미우라: 예. 아사히마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쪽에서 제공한 단서로 아편을 강탈했던 범인을 잡았다고 합니다. 오야붕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하야시: 그 사안은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보고를 할 것도 없다.
미우라: 예.
하야시는 다시 평온한 모습으로 정원을 둘러본다. 그 모습에서....
씬 아사히마찌 지하창고
처참한 몰골의 와싱턴이 의자에 묶여 계속 기침을 해댄다. 곧 죽을 것처럼 그의 동공은 희미해져 있다. 야쿠자1이 담배 한 개피에 불을 붙여 와싱턴의 입에 물려준다.
야쿠자1: 너같은 조센징 하나쯤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야. 알아?
와싱턴: ...............
야쿠자1: 이렇게 죽는다는 게 억울하지 않나? 나는 너한테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 살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자백하면 목숨을 보존해 준다고 하지 않았나?
와싱턴: 정말로..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
야쿠자1: (혀를 차며 도리질)정말 끝까지 가보자는 건가? 엉? 좋아. 원하는 대로 해주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와싱턴: (공포에 떨며) 제발....사.. 살려 주십쇼....
그 때 야쿠자들이 창고 문을 열고 누군가를 끌고 들어온다.
야쿠자2: 잘 봐. 이 자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와싱턴이 보면 중국인 아편 밀매업자가 역시 만신창이가 되어 비틀거리고 있다. 와싱턴이 절망적으로 고개를 꺾는다.
씬 종로 여관 (밤)
아사히마찌의 야쿠자들이 입구로 들어닥친다. 영문을 모르는 여관 조바가 그들을 막아선다.
조바: 누.. 누구세요? 누구시냐구요?
야쿠자1: 샅샅이 뒤져라..
야쿠자들이 대답하고 그대로 조바를 밀치고 여관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방에 있던 투숙객들이 모두 밖으로 쫓겨 나오고 여관 복도는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한다. 지긋이 나이를 먹은 여관 주인이 입구에 서있는 야쿠자1에게 거칠게 항의한다.
여관주인: 이게 무슨 짓이오? 당신들 누구요?
야쿠자1: .........(아무런 대꾸도 없다)
여관주인: (다가오며) 이보시오, 당장 그만 두지 못하겠소?
그러자 야쿠자 2가 여관 주인을 밀쳐버린다. 주인이 벌러덩 자빠지며 죽는 소리를 한다.
여관주인: 어이쿠.. 이 놈들이 사람을 치네....
조바: (여관주인을 부축하며) 아저씨, 괜찮으세요?
잠시 후, 야쿠자 한 명이 검은 가방 하나를 들고 나온다.
야쿠자사내: 찾았습니다.
야쿠자1: 그래?
야쿠자1이 가방을 건네받는다. 가방을 열면 아편이 빼곡이 들어 있다. 야쿠자 1이 그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씬 종로 회관 앞
길가에는 택시가 대기해 있고 두한들이 용식과 짝코 일행을 배웅하고 있다.
용식: 이렇게 헤어지기는 좀 아쉬운 걸... 이보게 두한 아우님, 어디 가서 딱 한 잔만 더하는 게 어떤가?
짝코: 그래.. 지금 들어가기엔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아.
두한: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이들 드셨습니다.
용식: 아니야, 아니야... 아직은 멀쩡하다구. 자, 보라구...
두한: (미소) 다음에 제가 다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들의 부하들에게) 뭐하고들 있나? 어서 형님들 모시지 않고.
용식: 허 아직은 괜찮다니까 그러는구만.. 허허.. 이거야..
짝코: 아우님께서 뭔가 일이 있으신 모양일세. 우린 그만 가세.
짝코와 용식이 아쉬운 표정으로 택시에 오르면... 곧바로 택시가 출발한다.
김무옥: 저 양반들이 얼마 전까지만 혀도 우리를 못잡아 묵어서 안달을 했던 사람들이 맞냐?
문영철: .....(미소)..그러게 말이다.
김영태: 어쨌든 큰 산 하나를 넘었네... 이제 두한이 자네는 명실상부한 조선 최고의 오야붕으로 인정을 받은 것일세.
두한: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질 겁니다.
의미심장한 두한의 표정에서.........
씬 우미관 앞
극장은 이제 문을 닫았다.
번개와 삼수, 병수, 털보들이 그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
번개: 이거 우리만 쏙 빼놓고 형님들끼리 한잔 하고 계시는 거 아니야?
삼수: 임마, 형님들이 그렇게 의리 없는 분들이시냐?
그 때 누군가 저만치에서 뛰어오고 있다. 종로여관 조바다.
조바: 형님들.. 형님들..
병수: 뭐야?
털보: 글쎄..종로여관 조바 아이 같은데... (다가오면) 임마, 호떡집에 불이라도 났어? 왜 호들갑이야?
조바: 형님들, 쪽바리 야쿠자 놈들이 우리 여관에 쳐들어왔어요. 방이란 방은 죄다 뒤집어 엎고, 주인 아저씨도 그 자식들한테 얻어 맞으셨어요.
번개: 뭐야?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그때 두한들이 다가온다. 모두들 고개를 숙여 맞는다.
김영태: 무슨 일이냐?
병수: 형님, 큰 일 났습니다. 일본패 녀석들이 이 아이가 있는 여관에 쳐들어와 난장판을 만들어 놨답니다.
두한: ............?
김영태: 그게 무슨 소리야?
번개: 어서 자세히 말씀드려...
조바: 그게.. 어떤 쪽바리 놈들이 우리 여관에 쳐들어와.. 주인 아저씨를 때리고, 상해에서 오신 와싱턴이라는 손님방에서 가방을 훔쳐 갔습니다.
김영태: 가방을 훔쳐가?
조바: 예, 순사들에게 신고를 하려다가 그 놈들도 한통속일 것 같아.... 여기로 온 겁니다.
두한: ...........?
씬 우미관 사무실
두한과 부하들이 모여 있다. 조바아이도 한 구석에 앉아 있다.
김무옥: 가방이라, 가방.. 그 속에 뭔가 중요한 것이 들어 있었던 게 틀림없는디.....
김영태: ... (뭔가 짚히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와싱턴은 지금 어디 있나?
조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요 며칠 여관에 들어오시지 않았어요.
김영태: 그래...?
털보: 저기.. 실은 저희들이 얼마 전에 중국인촌에서 봤습니다. 그 때 어떤 일본놈들한테 끌려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두한: ...............?
김영태: 뭐야? 그걸 왜 이제 얘기하는 거야?
털보: .........
번개: 죄송합니다, 형님........ 요즘 워낙 정신이 없어서..... 저희들이 보고 드린다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두한: ...........
김영태: ......... 대충 감이 잡히는구만. 그 가방속엔 아마 아편 덩어리가 들어 있었을 게야.
김무옥: 그걸 워떻게 아신다요?
김영태: 내 짐작이 맞을 거야. 그리고 와싱턴을 납치하고 여관에서 가방을 가져간 자들은 아사히마찌 패들이 분명해....
두한: 아사히마찌 패라고 하셨습니까?
김영태: 경성에서 아편을 밀거래하는 조직은 그 자들밖에 없어.
두한: 어딥니까? 그 자들이 있는 곳 말입니다.
김영태: 섣불이 나섰다간 낭패를 볼 수가 있네... 잘못하면 일이 커질 수도 있어.
두한: 이 김두한이 종로에 있는 한 그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김영태: 두한이... 이건 아사히마찌의 일이야. 그들과의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곧 전면적인 전쟁을 의미하네.
두한: 경계를 넘은 건 그 자들이 먼저였습니다.
김영태: 문제는 혼마찌 패들이야. 나와바리는 다르지만 그들은 뿌리가 같은 야쿠자들이야.
하야시 또한 가만 있지 않을 걸세.
두한: (일어나며) 상관없습니다. 아사히마찌로 안내해 주십시오.
김영태: 두한이.....
씬 아사히마찌 패거리 사무실
아사히마찌의 두목 다나까가 가져온 아편을 보며 흡족해하고 있다.
다나까: 수고들 했다. 물건을 되찾았으니 본토에서도 이제 좀 마음을 놓겠군 그래.
야쿠자1: 그렇습니다, 오야붕.
다나까: 그 동안 하는일마다 신통치 않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이번 일로 체면이 좀 서겠어.
하하하. 혼마찌의 하야시 오야붕에게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해라. 쓸만한 선물을 하나 준비해서 말이다.
야쿠자1: 알겠습니다. (사이)
그런데 와싱턴이라는 그 자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다나까: 조용히 없애버려. 혹시라도 이 일을 떠들어 대기라도 하면 골치를 썩을 테니까.
야쿠자1: 하이.
씬 동 창고
와싱턴이 의자에 묶인 채 앉아 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야쿠자들이 들어온다.
야쿠자1: 데리고 나와...
사내들이 묶인 줄을 풀고 와싱턴을 데리고 나온다.
와싱턴: 아, 아편은 찾으셨습니까?
야쿠자1: 물론...진작 불었으면 그런 고생은 안 해도 됐잖나?
와싱턴: 그럼 이제 풀어주시는 겁니까?
야쿠자1: 글쎄.. 난 그러고 싶은데 우리 오야붕은 생각이 다르신 것 같다.
와싱턴: 그.. 그게 무슨.....?
야쿠자1: 끌고가...
와싱턴: 이것 보십쇼. 이,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아편을 찾으면 풀어준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야쿠자1: 그 말을 믿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 사과하지....
와싱턴: 이.. 이런... 재갈은.... 놔, 놓으란 말이야!
야쿠자2: 가만 있어!
야쿠자들이 짜증스럽다는 듯 그대로 와싱턴의 뒷덜미를 내리친다. 와싱턴은 신음소리 한 번 못 지르고 혼절해버린다. 야쿠자들이 와싱턴을 질질 끌고 나간다.
씬 그 밖
저희들끼리 히히덕거리며 그곳을 지키던 야쿠자들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우미관패를 발견하고는 바싹 긴장한다. 순간, 예고도 없이 달려온 두한이 동시에 야쿠자 둘을 때려 눕힌다. 이어 문영철과 김무옥들이 잔챙이들을 순식간에 정리해버린다.
씬 동 복도 (첨가)
각 방마다 나누어져있던 야쿠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두한은 나오는 족족 치명타를 먹이며 끝방을 향해 나아간다. 그 뒤로 김무옥과 문영철이 계속 마무리를 하고 있다.
씬 동 사무실
다나까가 상의를 걸치며 일어서는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려온다.
다나까: 웬 소란이야? (부하들에게) 나가서 알아봐!
야쿠자들: 예.
야쿠자들이 문을 열면 곧바로 두한이 모습을 나타낸다. 당황한 야쿠자들이 막무가내로 달려들지만 그들은 두한의 상대가 되지 않는 듯 한 방에 나가 떨어진다.
두한: 와싱턴은 어디에 있나?
다나까: 누구냐?
두한: 와싱턴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다나까: 여기가 감히 어디라구............
그때 밖에서 문영철과 김무옥이 기절해 있는 와싱턴을 들쳐업고 들어온다.
문영철: 두한아.. 조금만 늦었어도 큰 일 날 뻔 했어.
두한은 와싱턴의 비참한 모습에 분노가 끓어오른다. 다나까가 당황해 한다.
다나까: 그, 그 자는 우리 물건을 도둑질한 자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한은 그 자리에서 날아올라 다나까의 턱을 걷어차 버린다. 분노와 겁에 질린 다나까는 두한을 올려다 본다.
두한: 내가 누군지 물었나? 난 김두한이다. 종로의 김두한이야!
그런 두한의 모습에서...(*)
야인시대 대본인데요.
11월4일방송하는 겁니다.
미리알면 재미없지만 성질 급하신분들 보세요.
29회 야인시대 미리보기
지난 회와 연결된다.
상하이가 두한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다.
일촉즉발의 위기감 속에 김영태를 비롯한 김무옥, 문영철들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뿐이다.
두한은 여전히 상하이를 노려보고 있다.
상하이: 같이 가는 거야.. 같이 가면 황천길이 외롭지는 않을 거야.
두한: ........
상하이: 두렵나?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눈앞이 캄캄해지나 보지? 그런 거냐, 김두한?
김영태: 이봐, 상하이..
두한: (제지하고는) 겨우 이 정도였나? 그래도 한 때는
종로에서 알아주는 주먹이라 들었는데.
상하이: 닥쳐!
발끈하며 총을 더 가까이 들이민다. 김무옥과 문영철들이 움찔한다.
상하이: 건방 떨지마, 이 새꺄..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빌어. 목숨을 살려달라구 말이야.
두한: 목숨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네 손에 죽겠다.
상하이: 뭐, 뭐야?
두한: 쏴라..
상하이: .이, 이 새끼가.
두한: 어서 쏴라. 뭐하고 있나, 상하이?
권총을 쥔 상하이의 손이 가늘게 떨고 있다. 두한은 상하이의 두 눈을 타는 듯 응시하고
있다. 숨막히는 정적이 잠시 흐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불안하게 눈동자가 흔들리던 상하이가 그대로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김영태: 안돼, 상하이!
김무옥: 두한아!
총구가 불을 뿜자 몇몇 이들은 아예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두한은 멀쩡하게 앉아 있고 총구는 엉뚱하게도 천장을 향해 있다.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상하이가 힘없이 권총을 떨어뜨린다.
상하이: 지독한 놈.. 내가 졌다.
두한: ........
상하이: (자조적으로 웃으며)흐흐흐흐.. 너를 쓰러뜨리고 영웅이 되고 싶었는데. 난
네 상대가 아니었어.
두한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집히는 대로 돈을 꺼내 놓는다.
상하이: ..?
두한: 떠나라. 넌 더 이상 종로에 남아 있을 자격이 없다.
두한은 싸늘하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상하이는 모멸감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두한들이 나가고 상하이는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그 모습에서...
씬 동 밖
두한과 김영태들이 밖으로 나온다. 상하이의 괴성이 여기에까지 들려온다.
멀리에서 보고 있던 시바루의 부하가 천천히 걸음을 돌린다.
씬 혼마찌깡 서재
마음을 읽어내기라도 하는 듯 하야시는 그렇게 나미꼬를 쳐다보고 있다.
하야시: 김두한을 만나고 왔다..?
나미꼬: 예, 형부.
하야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
나미꼬: 종로에 영업장을 둔 사장으로서 병문안차 갔었습니다.
그리고 형부의 진심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어요.
하야시:(미소).. 그래서 말이 통하던가?
나미꼬: 당장은 아니지만 그렇게 만들겠어요. 굳이 종로와 싸울 이유는 없지 않나요?
하야시: 처제는 사내들을 아직 잘 몰라. 김두한과 우리 혼마찌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있어.
나미꼬: .?
하야시: 그리고.. 처제는 지금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군. 사업은 사업이야.
사업에는 절대로 사적인 감정이 개입돼서는 안 돼. 앞으로는 그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나미꼬: ...?
씬 종로 거리
두한과 부하들이 오고 있다.
한참 동안을 쭉 참고 걷던 김영태가 기어코 한 마디를 던진다.
김영태: 두한이.. 오늘은 너무도 무모했네.
두한: ..
김영태: 이제껏 나는 자네의 결정에 따라왔어. 하지만 이번 일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
두한: 말씀하십쇼.
김영태: 상하이는 자넬 쏠 수도 있었어.
두한: 아닙니다. 상하이는 저를 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김영태: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나?
두한: 상하이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김영태: .....?
두한: 그 자는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절대
쏘지 못할 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김영태는 내심 놀란 듯 다시금 두한을 본다. 두한의 모습은 그렇게 커보인다.
김영태: 어쨌거나 이런 위험한 승부는 피해야 해. 자네 몸은 자네 혼자의 것이 아니야.
다신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겠네.
두한: ....
씬 마포 포구 전경
어둠 속으로 선착장의 모습이 윤곽으로 보여온다.
씬 마포패 사무실
마포패의 심복이 어두운 얼굴로 용식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다. 용식은 꽁초까지 타들어가는
담뱃재를 털지도 않는다.
용식: 멍청한 놈.. 기어이 그 지경이 되고 말았군.
되려 두한이만 더 키워준 꼴이 되어버렸어.
심복: 앞으로의 일이 걱정입니다. 다음 차례는 분명 우리가 될 겁니다. 애초부터
상하이를 받아 들였던 게 큰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용식: 후회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지금은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심복: 예, 형님.
용식: 우미관패는 이 대치상황을 끝내고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겠지. 지금까지 해온
것을 봐서 길게 끌지는 않을 거다.
우리에겐. 무릎을 꿇느냐 싸울 것이냐는 선택만 남았을 뿐이다.
심복: 하지만 형님, 싸운다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서대문이 무너지고 영등포와 노량진은
처음부터 우미관패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더구나 동대문 황소 형님도 이제는 두한이의
눈치만 보고 있는 듯 싶습니다.
용식: ......
심복: 형님께서 제안하신 각 패거리와의 공동 대응은 깨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건 시구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대세는 기울어졌습니다, 형님. 이제는..
용식: 물러서야 한다는 건가?
심복: 예, 형님.
용식: ....
심복: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두한이는 그래도 스스로 항복한 서대문 작두 오야붕에게
형님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용식: 먼저 칼을 뽑은 건 나야. 작두와는 입장이 달라. (사이) 내일 아침 일찍 시구문
짝코에게 애들을 보내. 내가 급히 보잔다고.
심복: ..예, 형님.
용식은 새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용식: 김두한이라.. 김두한.
씬 우미관 외경 (아침)
씬 동 사무실
두한과 부하들이 앉아 있고, 문 앞에 영등포와 노량진에서 보낸 특사들이 와 있다.
노량진: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노량진 점박이 형님께서 보낸 박상두라고 합니다.
영등포: (고개 숙이며) 영등포에서 온 천만호라고 합니다.
두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김영태: 무슨 일들인가?
영등포: 저희 형님께서 지난 번 오야붕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말씀을 전해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노량진: 불쾌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두한: ...
김영태: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왔단 말인가?
영등포: 그리고.
영등포와 노량진의 특사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봉투 하나씩을 내어놓는다.
영등포: 저희 형님께서 보내신 세금입니다. 그 동안 밀린 것을 모두 넣었습니다.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상납할 것입니다.
노량진: 우미관 밑으로 들어오겠습니다. 저희들을 받아주십시오.
김영태: 뭔가 잘못 알고 있구만...
두 사람:........?
김영태: 우리 오야붕의 뜻은 이런 게 아니야. 이깟 돈 몇 푼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란 말일세.
노량진: 그게 무슨...?
김영태: 믿을 수 있는 충성을 보여야지. 충성 말이야.
영등포: ..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영태 형님?
김영태: 두 아우님들에게 할 말이 아닌 것 같네. 그만 돌아들 가.
영등포: (노량진과 시선을 교환하고) 저희들은 전권을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어떠한
조건이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김영태: 전권을 위임받았다?
김영태가 두한의 의중을 눈으로 물으면, 두한은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김영태: 좋아.. 그렇다면 몇 가지 일러두지.. 앞으로는 우미관의 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김두한 오야붕께서 세우신 법 말이다.
영등포: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김영태: 새로운 주먹으로 거듭나야 하는 어려운 일이 될 거야. 조만간 다시 경성 일대의
오야붕 회의를 가질 계획이다. 너희들 오야붕에게 가서 전해라. 만약 우리의 뜻과
어긋난다면 굳이 참석할 필요가 없다고.
노량진: 꼭 오실 겁니다.
영등포: 그렇습니다.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김영태: (두한을 향해) 오야붕,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두한: (봉투를 밀어 놓으며) 이것들은 다시 가져가시오.
두 사람: .........?
두한: 지난 일들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오. 그리고 앞으로 세금은
이제까지 받은 것에 절반만 받을 거라고 당신들 형님들께 전하시오. 나머지는 그쪽
아우들을 위해 쓰라고 하시오.
두 사람: .....?
김영태: 형님 말씀 못 들었나? 어서들 가져가.
영등포: 예. (챙기며)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등포와 노량진의 특사들이 밖으로 나간다.
김영태: 이렇게 기민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꽤나 몸이 달았던 모양이야. 동대문 황소도
편지를 보내 화해의 뜻을 비추고 있어. 이제 마포와 시구문만 남았네.
두한: ....
문영철: 가장 세력이 큰 두 곳만 남았군요.
김영태: 그들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진 않을 걸세. 용식이나 짝코는 주먹도 대단하고
자존심이 센 사람들이야.
두한: 먼저 마포로 가겠습니다. (일어서며) 그들한테 진 빚도 있구요.
김영태: 지금 말인가?
두한: 병원에 잠시 들렀다가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요. 영철이와 무옥이는 그 동안
애들 좀 모으고.
무옥: 잉, 알았구만.
두한이 상의를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씬 박인애의 집 외경
씬 동 거실
박인애와 오빠 미스터 박이 놀란 듯 눈이 커져 있다. 부친과 모친의 얼굴은 만족스러운
듯 밝은 표정이다.
박인애: 그게 무슨..? 저더러 선을 보란 말씀인가요?
인애부: 선이 아니다. 상견례라고 하지 않았느냐? 지체 높은 집안끼리의 혼사다.
이건 요새 흔히들 하듯이 한 번 만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헤어지는 그런 천박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야.
인애모: 그래, 인애야... 우리로서는 과분한 자리다. 네 시아버지가 되실 분은
중추원 참의시고 네 신랑될 사람은 총독부에 근부하는 촉망받는 청년이라는구나.
박인애: 하지만 전 아직..
인애부: 물론 조금은 당황스럽겠지. 하지만 이제 그럴 때가 되었어.
박인애: 하지만 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또 오라버니도 계시는데...
미스터박: 제가 생각하기에도 조금은 이른 것 같습니다.
인애부: 그런 이유라면 문제될 것 없다. 학업을 정 마치고 싶다면 우선 약혼식부터 올리고
학교를 졸업하는대로 식을 올리면 되지 않겠느냐?
박인애: 아버지.
인애부: 싫다는 말은 말거라. 우리에게 그만한 자리 찾기도 쉽지 않아. 이미 나는 결정했다.
혹여나 다른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 이 아비의 말 무슨 뜻인지 알아 듣겠지?
박인애: .......
씬 병원 외경
씬 동안
침대에 누워 있는 진영의 옆으로 개코가 수발을 들고 있다.
개코: 뭐 필요한 건 없어? 먹고 싶은 거든 뭐든 말만 해. 내가 구해다 줄 테니까.
정진영: 네가 무슨 돈이 있다구?
개코: 헤헤헤. 사실은 너한테 잘해주라구 두한이한테 오까네 좀 받았어. 이럴 때, 호강 한번
해 봐.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 보구.
정진영: 난 됐어. 그보다는 우리 어머니는 괜찮으신지 모르겠다? 걱정을 많이 하실텐데.
개코: 걱정하지 마. 내가 잘 말씀드렸으니까. 그리고 애들한테 시켜서 잘 보살펴 드리라고
했어. 너나 빨리 낫으라구.
정진영: 고맙다, 개코.
개코: 그 정도 가지구 뭘. 헤헤헤.
그때 문이 열리며 두한과 김영태가 들어온다. 정진영은 상체를 일으켜 앉는다.
정진영: 두한아..
두한: 아냐.. 그냥 누워 있어.
정진영: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의사선생님 말씀이 조금씩 움직이는 게 오히려 좋대.
두한: 그래..? 아무튼 고맙다 진영아.
정진영: 내가 뭘.
두한: 내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구.. 진영이 네가 죽지 않고 살아서 더욱 고맙다.
정진영: ...
김영태: 정말일세.. 얼마나 자네걱정을 했는지 아는가? 지켜보는 사람이 다 안타까울
지경이었다네. 정말이지 자네 두 사람의 우정에 감탄을 했네.
정진영: ..
두한: ..
김영태: 그나저나 개코가 고생이 많구만..
개코: 헤헤헤. 뭘요? 그냥 옆에 붙어만 있는거죠, 뭐,
두한: 피곤해 보인다. 들어가서 좀 쉬어라.
개코: 아냐.. 그것보다.. 진영이가 너한테 할 말이 있다는데.
두한: 할 말이라니..?
정진영: ..지난 번에 얘기했던 거 말이야. 날 우미관패로 받아줘.
두한: 진영아.
진영: 많이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야.. 허락해줘, 두한아.
두한: ..
김영태: 이미 결심을 굳힌 것 같으니 허락하게. 사실 우리한테는 진영이처럼 똑똑한
친구가 필요해.
개코: 그래 두한아.
두한: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정진영: 물론이야.
두한: ..좋아.. 하지만 다시 공부가 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나도록 해.
정진영: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김영태: 잘 결정했네.. 기회를 봐서 정식으로 우리 식구들에게 소개를 시키도록 하겠네.
개코: 헤헤헤. 이런 날은 축하주라도 한 잔 마셔야 하는 건데.
김영태: 이 친구가 퇴원하면 근사하게 환영연을 해야지.
개코: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형님. (진영에게) 축하한다, 진영아.
정진영: (손을 내밀며) 고맙다, 두한아.
두한은 그 손을 힘주어 잡는다. 그렇게 뜨겁게 맞잡은 두한과 진영의 손에서..
씬 권번 외경
씬 동 설향의 방
설향의 옆으로 모로 누워있던 애란이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애란: 생각할수록 열통이 터져서 못 참겠네. 두한 오라버니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니..
설향: 그 이야기는 그만 하기로 했잖아?
애란: 자꾸 끓어오르는데 어떡하니? 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설향: ..
애란: (한숨) 그래.. 내가 왜 니 속을 모르겠니.. 들여다 보진 않았지만 아마 그 속이 시커멓게 탔을 거다.
설향: 내 걱정 말고.. 너나 앞으로 영철씨한테 잘해.
애란: 잘해주긴 개뿔이나 잘해줘? 마음 같아선 확 걷어차고 싶지만 옛정을 봐서 참고 있는
거야. 그 인간 허우대만 멀쩡해 가지고 쫓아다닌 여급년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어이구 내가 그년들 머리끄댕일 죄다 뽑아놓은 걸 생각하면.
그때 권번 선생 소리가 들려온다.
권번선생: 설향이 안에 있냐?
설향: 예, 어머니..
문이 열리고 권번선생이 보자기로 싼 물건을 들고 들어온다.
권번선생: 무슨 수다들 그렇게 재미있느냐? 어디 나도 한 번 들어보나꾸나.
애란: 아, 아니에요, 어머니.. 근데 어머니 그건 뭐예요?
권번선생: 어떤 손님께서 설향이 네게 주라고 보낸 것이라는구나. 받거라.
설향: .제게요?
권번선생: (끄덕인다) ...
애란: 세상에.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네. 설향이 넌 좋겠다.
권번선생: 그러니까 너도 좀 조신해봐.. 방정맞지 좀 말구
애란: 어머니두 참..
권번선생: 그럼 쉬거라..
권번선생이 일어나 나가고 나면.
애란: 뭐해? 어서 풀어보지 않구..
설향이 풀어보면 편지와 함께 빛깔이 고운 옷 한 벌이 싸여 있다.
애란: 우와.. 곱다.. 이거 엄청 비싸겠는데.. 와.. 이건 또 뭐야? 편지두 있네.. (펼쳐보며)
그대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보내오. 일본에서 정운경
설향: ..
애란: 혹시 그 사람 아니니? 맞지?
설향: ..
애란: 맞구나.. 와.. 그 사람 너한테 완전히 빠져버렸나봐. 이야.. 진짜 곱다. 너무 이뻐..
설향: 그렇게 이쁘니?
애란: 그럼.. 니 눈에는 이게 고와 보이지 않니?
설향: (가만히 옷을 애란 앞으로 밀어 놓으며) 네가 입어.
애란: . 왜? 내가 왜 이걸 가져?
설향: 나한텐 필요 없어..
애란: 듣기 싫어, 이것아.. 왜, 아직도 두한 오라버니 땜에..?
설향: ..
애란: 정신 차려. 너만 그러면 뭐해? 너만 지조를 지키면 뭐하냐구?
설향: .(눈물).
애란: 울긴 왜 울어? 그렇게 속상하면 두한 오라버니한테 가서 따지란 말이야.
그 년 머리끄댕이를 죄 뜯어놓던지. (울먹이며) 울긴 왜 우냔 말이야? 왜?
설향: ......
씬 사쿠라
애절한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나미꼬가 바에 걸터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나미꼬: (술잔을 내밀며) 한 잔 더.
웨이터: 낮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사장님?
나미꼬: 이 정도로 취하진 않아요.
웨이터가 나미꼬의 잔에 양주를 따른다. 잠시 후 시바루가 들어와 외롭게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나미꼬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천천히 다가간다.
시바루: 사장님.
나미꼬: (돌아보며) 어서 와요. 그렇지 않아도 술친구가 필요했는데.. 한 잔 할래요?
시바루: .
나미꼬: 왜 그렇게 빤히 봐요? 아 참.. 시바루상은 술을 마시지 않죠? 내가 깜빡했네요..
시바루: 이런 모습은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나미꼬: 호호호.. 술 마시는 게 뭐가 어때서요?
시바루: ...
나미꼬: 시바루상. 시바루상은 누군가를 사랑해 본적이 있나요? 그 사람만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마냥 행복해지고. 그러다가 갑자기 견딜 수 없이 외로워 지는 그런..?
시바루: ..
나미꼬: (웃으며) 그럴 줄 알았어요. 시바루상의 관심은 오로지 무도 뿐이겠죠.
내 말이 맞죠?
시바루: .
나미꼬: 재미 없어.. 왜 그렇게 사람이 말이 없어요? 하긴 과묵한 게 매력이기는 하지만..
종로는 좀 어떻던가요?
시바루: . 다시 시끄러워질 모양입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나미꼬: 그래요? 무슨 일일까.? (사이) 하여간 대단한 사람들이예요. 김두한 그 사람
말이예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 것인지.. 상하이 같은 독종을 그렇게 굴복
시켰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예요.
시바루: 그건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우리 오야붕께서는 절대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미꼬: 그렇겠죠. 형부는 치밀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김두한은 누가 뭐래도 조선의
오야붕 감으로 손색이 없는 사람이예요. 형부도 빨리 그걸 인정하고 이제는 종로를 포기하는 편이 훨씬 현명한 처사일텐데..
시바루: ....?
나미꼬가 다시 술 한모금 마시고 나서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시바루가 의아한 듯 본다.
나미꼬: 갑자기 그 사람 생각이 나서요. 그 와싱턴이라는 사람 말이예요. 이럴 때 술친구로
제격인데. 참, 그 사람 어떻게 됐죠?
시바루: 아사히마찌 패들이 데려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미꼬: 그럼 그 사람이 정말로 아편을 훔쳤단 말이예요?
시바루: 조만간 밝혀지게 되겠지요. 아마 지금쯤 곤욕을 치루고 있을겁니다.
나미꼬: 그래요..?
씬 아사히마찌패 건물 외경
와싱턴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씬 동 지하 창고
백열등이 희미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와싱턴은 천장에 매달린 채, 아사히마찌의 야쿠자들에게 고문을 당하고 있다.
야쿠자1: 다시 묻겠다. 아편은 어디다 뒀지?
와싱턴: 아.. 아편.. 이라니요? 전.. 그런 거.. 모릅니다. 믿어주십시오.
야쿠자2: 몰라? 그럼 내가 기억나게 해주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야쿠자2가 다시 한 번 사정없이 채찍으로 와싱턴의 등짝을 내리친다.
와싱턴은 죽을 듯 비명을 지르며 그만 기절하고 만다. 야쿠자1이 물을 끼얹는다.
야쿠자1: 피곤하게 굴지 말고 어서 불어. 아편을 내놓기 전엔 넌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가.
와싱턴: 사.. 사람을 잘.. 못 보셨습니다. 전.. 그냥 사업갑니다.
야쿠자2: 아무래도 안되겠군. 더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와싱턴: 제발.. 살려주십시오.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야쿠자1: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할 수 없지.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 준비해..
야쿠자들이 와싱턴이 묶인 줄을 풀면 와싱턴이 무너지듯 쓰러진다. 쓰러진 와싱턴을 일으켜
의자에 앉히는 야쿠자들.. 전기고문 도구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와싱턴의 눈이 점점 공포에 젖는다.
와싱턴: (벌벌 떨며) 안돼.. 안돼..
야쿠자2: 가만 있어.. 네가 아직 상황 파악이 잘 안되는 모양인데.. 여기가 어디인 것 같으냐? 바로 저승이야..
와싱턴: 잠깐.. 잠깐만..
야쿠자1: 뭐야?
와싱턴: 당신들.. 지금 실수하는 거요.. 종로 우미관에서 김두한이.. 내 아우요. 내가..
이렇게 당하는 걸 알면.. 당신들 가만두지 않을 거요.
야쿠자2: 김두한이 네 아우라고? 이 자식 정말 웃기는 놈이구만..
야쿠자1: 시작해..
그러나 야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와싱턴의 두 팔에 전기고문 기구를 끼우고 스위치를 올린다. 와싱턴이 다시 한 번 죽을 듯 비명을 지른다.
와싱턴: 사, 살려주십쇼.. 제발..
야쿠자1: 김두한 같은 거물을 아우로 두신 분께서 왜 이렇게 비굴하십니까?
야쿠자2: 그러게.. 곧 부하들이 큰 형님을 구하러 오실텐데 말이야.. 하하하..
야쿠자들 그런 와싱턴을 한참동안 비웃으며 다시 스위치를 올린다. 와싱턴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뻗어버린다.
씬 종로 전차길
두한이 수십명의 부하들과 함께 전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그
덩치들에 질려 슬슬 눈치를 보며 피해간다. 멀리에서 종소리를 울리며 전차가 다가오고 있다. 전차가 정차하면 두한들이 곧바로 전차에 오른다
씬 마포 포구/어느 음식점 앞
마포패 용식의 심복 부하들이 잰걸음으로 다가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부하들이 인사도
받지 않은 채 급히 안으로 들어간다.
씬 동 안
창 밖으로 포구를 드나드는 고깃배들의 모습이 보여온다. 시구문 짝코와 마포 용식이 시켜놓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무겁게 앉아 있다.
용식: 종로애들이 이리로 오고 있다고..?
심복: 예, 형님.. 종로에 감시를 붙여놓은 애들이 급히 연락이 왔습니다.
용식: ..알았다. 나가봐라..
심복이 대답하고 나간다.
짝코: 두한이놈이 그예 쳐들어오는 모양이구만..
용식: 이미 예견했던 일이 아닌가?
짝코: 이제 어쩔 셈인가?
용식: 가만히 앉아서 당할수야 없지..
짝코: 하지만.. 우리 둘이 힘을 합친다고 두한이를 이길 수 있을까?
용식: 물론 정면 대결은 승산이 없지. 하지만..
짝코: 정면대결이 아니라면? 상하이처럼 치사한 짓을 하자는 것이야?
용식: 그럴 리가 있겠나? 이대로 물러서는 것도 체면이 서지 않으니 한 번 부딪쳐는 봐야
한다는 걸세.
짝코: ......?
용식: 내게 생각이 있네. 밤새 고민을 많이 했지.
짝코: 뜸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봐.
용식: 자네 식구 중에서 쓸만한 애들로 열 명만 추려보게.
짝코: 애들을...?
용식: 그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야..
짝코: ...?
씬 비너스 외경 (첨가)
씬 동 안
김이수와 최동열 맥주 두어병을 놓고 앉아 있다.
김이수: 그래서 그 어른이 자네를 만나러 오셨던 게로구만.. 두한이 때문에 상심이 크셨던 게야..
최동열: .
김이수: 허긴 왜 아니겠는가? 그 가문이 어떤 가문인가? 하지만 말이야.. 하는 한편으론 그런 아이가 종로에 있어 마음이 놓이네.
최동열: 마음이 놓이다니..?
김이수: 백야의 아들이 일본놈들이 판치는 경성 한 복판에 떡 버티고 있다니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최동열: 허허허. 하여간..
김이수: 이 사실을 떠들고 다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조선 백성들에게도 그런 작은 희망이나마 줄 수 있다면 말이야.
그때 임동호가 다가온다.
임동호: 또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는가?
김이수: 이게 누구야? 돌파리 의사 선생이 납시셨구만 그래..
최동열: 앉게.
김이수: (노래하듯) 아.. 조선의 희망이여.. 조선의 희망이여.. 부디 그 불빛을 꺼뜨리지 말아다오..
임동호: 이 친구 몇 병 마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또 취했구만.. 중독이야. 알코올 중독이라구.
최동열: ...
씬 삼청동 마당
오씨가 물을 길어다 배추를 씻고 있다. 배추라고 해 봐야 시들이 김치를 담글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잠시 후 오무라와 김서태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무라: 안녕하시오? 그 동안 잘 계셨소?
오씨: .. (싸늘해지며) 무슨 일이오?
오무라: 요시찰 집안이 아니오. 달리 이유가 있겠소? (둘러보다가 배추를 보고) 이런이런..
아니 이런 걸 어떻게 먹을려구 씻는단 말인가? 긴또깡이 이놈 알고보니 참으로 못됐구만..
저는 부하들을 데리고 허구헌날 술을 퍼마시고 다니면서 가족들에겐 이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단 말인가? 에잉..
그 때 조모의 호통소리가 집안을 울린다.
조모: 무슨 망발을 지껄이고 있는 게냐? 네 놈들이 무엇을 안다고?
김태서: 뭐라?
오무라: 오 긴또깡의 할머니가 아닌가? 그 성미는 여전하시구만..
조모: (내려와) 예가 어디라고 함부로 더러운 발을 들이미는 게냐? 내 집에서 썩 나가거라.
오무라: 아아.. 너무 그러지 마시오. 우리라고 뭐 좋아서 여길 온 줄 아시오?
조모: 내 집에서 나가라고 했느니라.
오무라: 긴또깡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소. 요사이 긴또깡이 통 다녀가지 않은 모양이오..
하긴 뭐 싸움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겠지..
조모: 듣기 싫다. 어서 썩 나가지 못하겠느냐?
오무라: (이리저리 둘러보며 마당을 거닐며) 그 때문에 우리가 편해지긴 했소. 조선팔도의
오야붕이 되었으니 따로 감시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오. 그런 불량배들은 우리 고등계가 아닌 사법계에서 알아서 다 처리해 주니까.. 하하하..
조모가 물 한 바가지를 그대로 오무라의 얼굴에 끼얹어 버린다.
오무라: 이.. 이런..
조모: 이제 좀 정신이 드느냐?
오무라: 이런 미친 할망구를 보았는가? (조모를 때리려고 손을 치켜 드는데)
김태서: 참으십쇼. 정신 나간 노인넵니다. 미와 경부님께서도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공연히 일을 만들지 말라구요. 그만 가시죠.
오무라: .. 빠가야로. 두고보자.
오무라 분함을 누르고 돌아서 나간다. 조모는 여전히 의연하다.
오씨: 어머님..
조모: 잡귀들이 다녀 갔느니라. 소금 내다 뿌리거라..
그렇게 조모도 돌아서 안으로 들어간다. 오씨의 모습에서.
씬 마포 포구
두한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포구로 들어선다. 그물을 손질하던 어부들이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며 불안하게 쳐다본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경계를 서던 마포와 시구문의 졸개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 앞을 막아선다.
김영태: 비켜라..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마포와 시구문 패거리들은 상대가 되지 않음을 직감하면서도 길을 내주지는 않는다.
두한은 그대로 그들을 향해 나아간다. 마포, 시구문패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싸울
태세를 갖추는데, 그때 뒤에서 낮지만 위압적인 일성이 들려온다.
심복: 멈춰라! (다가와 인사하고는) 어서 오십쇼.. 저희 아이들의 무례를 용서하십쇼.
김무옥: 그려.. 진작부터 이렇게 나왔어야제.. 손님을 맞는 태도가 영 글러먹었당께..
심복: 저희 형님께서 김두한 오야붕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가시죠.
김영태: (예리하게 눈을 빛내며) 우리가 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심복: 시구문 짝코 형님께서도 와 계십니다. 저를 따라 오십쇼.
김영태: 감히 누구를 오라 가라 하는 것인가? 이 분은 우미관의 오야붕이시다. 두 분 형님께서도 예의가 무엇인지는 알고 계실텐데..
심복: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김영태: 지금 당장 두 분 형님께 직접 나오시라고 전해.
심복: (움직이지 않는다)
김영태: 어서!
두한: 그만 두십시오. 누가 오고, 누가 가면 어떻습니까? (심복에게) 지금 어디에들 계신가?
심복: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심복의 안내를 따라 두한과 우미관패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하지만 김영태는 왠지 개운치 않은 표정이다.
씬 어느 창고 앞
두한들이 그 곳에 이르고 있다. 문 앞에는 마포 패거리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심복이 다가가자 그들이 문을 연다. 김영태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창고 안을 살핀다.
심복: 여깁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두한이 성큼성큼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김영태와 그 부하들도 그 뒤를 따라가려는데
심복이 손으로 제지한다.
심복: 오야붕들의 자립니다. 다른 분들은 여기서 기다리십쇼.
김영태: ......?
두한: 그렇게 하십쇼.
김영태도 어쩔 수 없이 한 발 물러선다. 두한이 안으로 들어가면 마포패들이 조심스럽게
문을 닫는다. 두한이 조금은 어두컴컴한 창고 안으로 몇 발짝 다가서려는데 순간 창고문이 잠기며 동시에 그곳에 숨어있던 이십 여명의 마포와 시구문 패거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제서야 두한은 사태를 짐작하고 표정이 굳어진다. 짝코와 용식도 한쪽에 서서 두한을 지켜보고 있다.
용식: 반갑네, 두한 아우님. 내가 마포의 용식일세.
두한: 마포는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하십니까?
용식: 하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그럼 어디 실력을 좀 구경해볼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패거리들이 두한을 조여든다. 그들 중에는 몽둥이를 든 자도
있고, 체인을 손에 감고 있는 자도 있다. 두한은 싸울 자세를 갖추며 예리하게
눈빛을 빛낸다. 어느 순간 패거리들이 기합을 지르며 두한을 공격하면서 일대 접전이 펼쳐진다. 두한은 치고 받고 날으며 그들을 하나씩 잠재우기 시작한다. 짝코와 용식이 그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씬 동 밖
김영태가 안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당황한다.
김영태: 뭔가? 지금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거야?
문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창고 문은 단단히 잠겨 열릴 줄을 모른다. 김영태는 그대로 심복의 멱살을 쥔다. 그곳을 지키던 마포의 졸개들은 벌써 뒷걸음질치며 달아난다.
김영태: 문을 열어. 어서 열란 말이다.
심복: 안에서 열기 전에는 나도 어쩔 수 없다.
김영태: 이런.. 비열한..
김영태가 심복의 턱을 날려 버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김영태: 뭣들 하고 있어? 어서 저 문을 부숴라.
동시에 문영철과 김무옥들이 문을 향해 몸을 던진다.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순간 김영태의 눈에 한쪽으로 쌓아 놓은 거대한 통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김영태: 저 통나무를 가져와. 어서..! 시간이 없다.
우미관패들이 정신없이 통나무를 향해 달려간다. 당황한 김영태의 모습에서...
씬 다시 창고 안
접전이 계속되고 있다. 벌써 여럿이 나가 떨어졌고, 나머지 패거리들은 비로소 상대의 무서움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온다. 그러나 두한도 땀을 비오듯 쏟으며 무척 지친 모습이다. 아무리 두한이라지만 전문 싸움패 20여명과 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용식과 짝코가 신음처럼 탄성을 터뜨린다.
용식: 대단하구만... 정말 대단해.
짝코: 구마적을 쓰러뜨렸다고 했을 땐 그저 운이 좋은 놈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저런 괴물은 처음 보는구만.. 하지만 더 이상 버티기는 어려울 거야.
용식: ................
다시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다. 이제 두한도 얻어맞는 횟수가 늘어난다. 그러나 두한은 이를 악물고 최후의 힘을 다해 사내들과 맞서 싸운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온전한 패거리들은
서넛 정도 밖에는 남이 않았다. 용식이 지긋이 이를 악문다. 다시 한 판에 싸움이 벌어질 찰라.......
용식: 그만들 해라.
패거리들: (행동을 멈추고 용식을 본다)
용식: 그만 해.
패거리들이 조용히 물러선다. 용식과 짝코가 두한에게 서서히 다가온다.
용식: 마포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네.. 인사가 지나쳤다면 용서하게. 우리는 자네가 진정한 오야붕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알아보고 싶었네...
두한: ...........?
그때 와장창 문이 부서지며 쏟아져 들어오는 김영태들이 용식과 짝코를 향해 달려들 태세를 취한다. 두한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한다.
용식: 두한이 자네가 우미관의 오야붕일세. 조선 최고의 주먹이야. 우릴 받아 주겠나?
두한은 대답없이 잠시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만 본다. 짝코와 용식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무릎을 꿇는다. 모두들 어찌된 영문인지 의아한 표정이다. 두한은 그들을 그렇게 내려다 보고 있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씬 어느 고급 레스토랑 외경(낮)
씬 동 안
박인애의 가족과 이군의 가족들이 둘러 앉아 상견례를 하고 있다. 이군은 지적이고 다소
날카로운 용모로 은테 안경을 쓰고 있고, 그의 부친은 중추원 참의라는 지위에 걸맞게
여유로운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모친 역시 귀부인다운 치장을 하고 있다.
인애부: 참으로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각하... 총독부 내에서도 전도가 유망한 청년이라 들었습니다.
이군부친: 하하하. 박회장이야말로 아리따운 따님을 두셨소이다. 볼수록 참해 보이는구려...
박인애: ..........
인애부: 아직 어린 아입니다. 앞으로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이군부친: (흐뭇하게 보다가) ... 잘 어울리는 한 쌍이오. 안 그렇소? 허허허....
이군모친: ........네...(미소)
이군 역시 박인애의 미모에 반한 듯 미소를 머금은 채 박인애를 본다. 그러나 박인애의 시선은 아래를 향한 채 움직일 줄 모른다. 그 모습들에서.....
씬 종로 회관 앞
출입문 좌우로 우미관의 어깨들이 도열해 있다. 그 앞으로 경성 일대의 오야붕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김무옥과 문영철이 차에서 내리는 오야붕들을 안내하고 번개, 삼수, 병수, 털보들은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김영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삼수를 부른다.
김영태: 삼수야.
삼수: 예, 형님...
김영태: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다. 오야붕을 모셔오너라...
삼수: 예, 형님... (달려가면...)
김영태: 우리도 그만 들어가자....
그들 모두 안으로 향하면.....
씬 동 안
용식과 짝코, 작두를 비롯한 경성 일대의 모든 오야붕들이 자리해 있다. 상석은 아직 비어 있다. 김영태를 비롯한 우미관패들은 다소 상기가 되어 있는 표정들이다. 그 때 삼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삼수: 김두한 큰형님께서 오셨습니다.
그 소리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난다. 두한은 말끔한 정장 차림에 상의 포켓에는 하얀 손수건이 꽂혀 있다. 두한이 상석으로 가 선다.
두한: 반갑습니다, 김두한입니다.
그러자 박수 소리가 터져나온다. 당당한 두한의 모습이다.
두한: 앉으십시오. 모두들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어려운 말은 할 줄 몰라서 솔직하게 털어 놓겠습니다.
오야붕들: ............
두한: 오늘 여러 선배님들께 무례를 무릅쓰고 모이시라고 한 것은 화해를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은 어제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오늘부터는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이제가지 제가 건방지게 굴었던 점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의 욕심이나 단순한 세력 확장 때문에 이런 싸움을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
두한의 말을 듣고 있는 용식과 짝코, 작두들의 표정이 자뭇 진지하다.
두한: 조선 주먹의 한 사람으로서 호시탐탐 종로를 노리고 있는 일본 주먹패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여러 선배님들께서는 자존심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일본주먹패에게 종로를 내준다는 것은 그 자존심을 파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김영태: ...........
두한: 조선 주먹은 이제 단결해야만 합니다. 선배님들께서 이 김두한이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목숨을 내놓고 종로와 여러 선배님들의 자존심을 지켜드릴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 열띤 연설에 오야붕들이 박수가 쏟아지고 있다.
씬 혼마찌깡 정원
하야시가 정원을 거닐고 있다. 미우라와 가미소리가 조용히 뒤를 따르며 보고를 올리고 있고, 무사들이 그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다.
미우라: 경성 일대의 모든 오야붕들이 지금 종로에 집결해 있습니다. 이것으로 김두한은 사실상 조선 주먹계를 완전히 통일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야시: ............
가미소리: 그 동안 강하게 반발하던 마포나 시구문패도 이제는 김두한을 명실상부한 오야붕으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하야시: 내 예상보다도 훨씬 빨랐군.
가미소리: .........예?
하야시: 김두한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바이다. 하지만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그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야. 그것은 힘만 가지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두한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한데 그것이 뭘까?
가미소리: ...........?
하야시: 김두한이라는 사내가 점점 더 궁금해지는구만.
미우라: 어쨌거나 종로로 진출하려던 사업 계획이 더욱 어렵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영업장인 사쿠라도 본격적인 도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야시: .............
가미소리: 만일 종로와 전면전을 벌여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 오게 되면 사람이 더 필요할 듯 싶습니다. 본토에 연락을 취해 미리 쓸만한 무사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야시: 가미소리....
가미소리: 하이 오야붕.
하야시: 너는 혼마찌의 2인자다. 겨우 이만한 일로 당황해서야 되겠는가?
가미소리: 죄송합니다.
하야시: 더 보고할 것이 있는가?
미우라: 예. 아사히마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쪽에서 제공한 단서로 아편을 강탈했던 범인을 잡았다고 합니다. 오야붕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하야시: 그 사안은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보고를 할 것도 없다.
미우라: 예.
하야시는 다시 평온한 모습으로 정원을 둘러본다. 그 모습에서....
씬 아사히마찌 지하창고
처참한 몰골의 와싱턴이 의자에 묶여 계속 기침을 해댄다. 곧 죽을 것처럼 그의 동공은 희미해져 있다. 야쿠자1이 담배 한 개피에 불을 붙여 와싱턴의 입에 물려준다.
야쿠자1: 너같은 조센징 하나쯤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야. 알아?
와싱턴: ...............
야쿠자1: 이렇게 죽는다는 게 억울하지 않나? 나는 너한테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 살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자백하면 목숨을 보존해 준다고 하지 않았나?
와싱턴: 정말로..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
야쿠자1: (혀를 차며 도리질)정말 끝까지 가보자는 건가? 엉? 좋아. 원하는 대로 해주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와싱턴: (공포에 떨며) 제발....사.. 살려 주십쇼....
그 때 야쿠자들이 창고 문을 열고 누군가를 끌고 들어온다.
야쿠자2: 잘 봐. 이 자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와싱턴이 보면 중국인 아편 밀매업자가 역시 만신창이가 되어 비틀거리고 있다. 와싱턴이 절망적으로 고개를 꺾는다.
씬 종로 여관 (밤)
아사히마찌의 야쿠자들이 입구로 들어닥친다. 영문을 모르는 여관 조바가 그들을 막아선다.
조바: 누.. 누구세요? 누구시냐구요?
야쿠자1: 샅샅이 뒤져라..
야쿠자들이 대답하고 그대로 조바를 밀치고 여관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방에 있던 투숙객들이 모두 밖으로 쫓겨 나오고 여관 복도는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한다. 지긋이 나이를 먹은 여관 주인이 입구에 서있는 야쿠자1에게 거칠게 항의한다.
여관주인: 이게 무슨 짓이오? 당신들 누구요?
야쿠자1: .........(아무런 대꾸도 없다)
여관주인: (다가오며) 이보시오, 당장 그만 두지 못하겠소?
그러자 야쿠자 2가 여관 주인을 밀쳐버린다. 주인이 벌러덩 자빠지며 죽는 소리를 한다.
여관주인: 어이쿠.. 이 놈들이 사람을 치네....
조바: (여관주인을 부축하며) 아저씨, 괜찮으세요?
잠시 후, 야쿠자 한 명이 검은 가방 하나를 들고 나온다.
야쿠자사내: 찾았습니다.
야쿠자1: 그래?
야쿠자1이 가방을 건네받는다. 가방을 열면 아편이 빼곡이 들어 있다. 야쿠자 1이 그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씬 종로 회관 앞
길가에는 택시가 대기해 있고 두한들이 용식과 짝코 일행을 배웅하고 있다.
용식: 이렇게 헤어지기는 좀 아쉬운 걸... 이보게 두한 아우님, 어디 가서 딱 한 잔만 더하는 게 어떤가?
짝코: 그래.. 지금 들어가기엔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아.
두한: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이들 드셨습니다.
용식: 아니야, 아니야... 아직은 멀쩡하다구. 자, 보라구...
두한: (미소) 다음에 제가 다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들의 부하들에게) 뭐하고들 있나? 어서 형님들 모시지 않고.
용식: 허 아직은 괜찮다니까 그러는구만.. 허허.. 이거야..
짝코: 아우님께서 뭔가 일이 있으신 모양일세. 우린 그만 가세.
짝코와 용식이 아쉬운 표정으로 택시에 오르면... 곧바로 택시가 출발한다.
김무옥: 저 양반들이 얼마 전까지만 혀도 우리를 못잡아 묵어서 안달을 했던 사람들이 맞냐?
문영철: .....(미소)..그러게 말이다.
김영태: 어쨌든 큰 산 하나를 넘었네... 이제 두한이 자네는 명실상부한 조선 최고의 오야붕으로 인정을 받은 것일세.
두한: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질 겁니다.
의미심장한 두한의 표정에서.........
씬 우미관 앞
극장은 이제 문을 닫았다.
번개와 삼수, 병수, 털보들이 그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
번개: 이거 우리만 쏙 빼놓고 형님들끼리 한잔 하고 계시는 거 아니야?
삼수: 임마, 형님들이 그렇게 의리 없는 분들이시냐?
그 때 누군가 저만치에서 뛰어오고 있다. 종로여관 조바다.
조바: 형님들.. 형님들..
병수: 뭐야?
털보: 글쎄..종로여관 조바 아이 같은데... (다가오면) 임마, 호떡집에 불이라도 났어? 왜 호들갑이야?
조바: 형님들, 쪽바리 야쿠자 놈들이 우리 여관에 쳐들어왔어요. 방이란 방은 죄다 뒤집어 엎고, 주인 아저씨도 그 자식들한테 얻어 맞으셨어요.
번개: 뭐야?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그때 두한들이 다가온다. 모두들 고개를 숙여 맞는다.
김영태: 무슨 일이냐?
병수: 형님, 큰 일 났습니다. 일본패 녀석들이 이 아이가 있는 여관에 쳐들어와 난장판을 만들어 놨답니다.
두한: ............?
김영태: 그게 무슨 소리야?
번개: 어서 자세히 말씀드려...
조바: 그게.. 어떤 쪽바리 놈들이 우리 여관에 쳐들어와.. 주인 아저씨를 때리고, 상해에서 오신 와싱턴이라는 손님방에서 가방을 훔쳐 갔습니다.
김영태: 가방을 훔쳐가?
조바: 예, 순사들에게 신고를 하려다가 그 놈들도 한통속일 것 같아.... 여기로 온 겁니다.
두한: ...........?
씬 우미관 사무실
두한과 부하들이 모여 있다. 조바아이도 한 구석에 앉아 있다.
김무옥: 가방이라, 가방.. 그 속에 뭔가 중요한 것이 들어 있었던 게 틀림없는디.....
김영태: ... (뭔가 짚히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와싱턴은 지금 어디 있나?
조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요 며칠 여관에 들어오시지 않았어요.
김영태: 그래...?
털보: 저기.. 실은 저희들이 얼마 전에 중국인촌에서 봤습니다. 그 때 어떤 일본놈들한테 끌려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두한: ...............?
김영태: 뭐야? 그걸 왜 이제 얘기하는 거야?
털보: .........
번개: 죄송합니다, 형님........ 요즘 워낙 정신이 없어서..... 저희들이 보고 드린다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두한: ...........
김영태: ......... 대충 감이 잡히는구만. 그 가방속엔 아마 아편 덩어리가 들어 있었을 게야.
김무옥: 그걸 워떻게 아신다요?
김영태: 내 짐작이 맞을 거야. 그리고 와싱턴을 납치하고 여관에서 가방을 가져간 자들은 아사히마찌 패들이 분명해....
두한: 아사히마찌 패라고 하셨습니까?
김영태: 경성에서 아편을 밀거래하는 조직은 그 자들밖에 없어.
두한: 어딥니까? 그 자들이 있는 곳 말입니다.
김영태: 섣불이 나섰다간 낭패를 볼 수가 있네... 잘못하면 일이 커질 수도 있어.
두한: 이 김두한이 종로에 있는 한 그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김영태: 두한이... 이건 아사히마찌의 일이야. 그들과의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곧 전면적인 전쟁을 의미하네.
두한: 경계를 넘은 건 그 자들이 먼저였습니다.
김영태: 문제는 혼마찌 패들이야. 나와바리는 다르지만 그들은 뿌리가 같은 야쿠자들이야.
하야시 또한 가만 있지 않을 걸세.
두한: (일어나며) 상관없습니다. 아사히마찌로 안내해 주십시오.
김영태: 두한이.....
씬 아사히마찌 패거리 사무실
아사히마찌의 두목 다나까가 가져온 아편을 보며 흡족해하고 있다.
다나까: 수고들 했다. 물건을 되찾았으니 본토에서도 이제 좀 마음을 놓겠군 그래.
야쿠자1: 그렇습니다, 오야붕.
다나까: 그 동안 하는일마다 신통치 않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이번 일로 체면이 좀 서겠어.
하하하. 혼마찌의 하야시 오야붕에게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해라. 쓸만한 선물을 하나 준비해서 말이다.
야쿠자1: 알겠습니다. (사이)
그런데 와싱턴이라는 그 자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다나까: 조용히 없애버려. 혹시라도 이 일을 떠들어 대기라도 하면 골치를 썩을 테니까.
야쿠자1: 하이.
씬 동 창고
와싱턴이 의자에 묶인 채 앉아 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야쿠자들이 들어온다.
야쿠자1: 데리고 나와...
사내들이 묶인 줄을 풀고 와싱턴을 데리고 나온다.
와싱턴: 아, 아편은 찾으셨습니까?
야쿠자1: 물론...진작 불었으면 그런 고생은 안 해도 됐잖나?
와싱턴: 그럼 이제 풀어주시는 겁니까?
야쿠자1: 글쎄.. 난 그러고 싶은데 우리 오야붕은 생각이 다르신 것 같다.
와싱턴: 그.. 그게 무슨.....?
야쿠자1: 끌고가...
와싱턴: 이것 보십쇼. 이,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아편을 찾으면 풀어준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야쿠자1: 그 말을 믿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 사과하지....
와싱턴: 이.. 이런... 재갈은.... 놔, 놓으란 말이야!
야쿠자2: 가만 있어!
야쿠자들이 짜증스럽다는 듯 그대로 와싱턴의 뒷덜미를 내리친다. 와싱턴은 신음소리 한 번 못 지르고 혼절해버린다. 야쿠자들이 와싱턴을 질질 끌고 나간다.
씬 그 밖
저희들끼리 히히덕거리며 그곳을 지키던 야쿠자들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우미관패를 발견하고는 바싹 긴장한다. 순간, 예고도 없이 달려온 두한이 동시에 야쿠자 둘을 때려 눕힌다. 이어 문영철과 김무옥들이 잔챙이들을 순식간에 정리해버린다.
씬 동 복도 (첨가)
각 방마다 나누어져있던 야쿠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두한은 나오는 족족 치명타를 먹이며 끝방을 향해 나아간다. 그 뒤로 김무옥과 문영철이 계속 마무리를 하고 있다.
씬 동 사무실
다나까가 상의를 걸치며 일어서는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려온다.
다나까: 웬 소란이야? (부하들에게) 나가서 알아봐!
야쿠자들: 예.
야쿠자들이 문을 열면 곧바로 두한이 모습을 나타낸다. 당황한 야쿠자들이 막무가내로 달려들지만 그들은 두한의 상대가 되지 않는 듯 한 방에 나가 떨어진다.
두한: 와싱턴은 어디에 있나?
다나까: 누구냐?
두한: 와싱턴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다나까: 여기가 감히 어디라구............
그때 밖에서 문영철과 김무옥이 기절해 있는 와싱턴을 들쳐업고 들어온다.
문영철: 두한아.. 조금만 늦었어도 큰 일 날 뻔 했어.
두한은 와싱턴의 비참한 모습에 분노가 끓어오른다. 다나까가 당황해 한다.
다나까: 그, 그 자는 우리 물건을 도둑질한 자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한은 그 자리에서 날아올라 다나까의 턱을 걷어차 버린다. 분노와 겁에 질린 다나까는 두한을 올려다 본다.
두한: 내가 누군지 물었나? 난 김두한이다. 종로의 김두한이야!
그런 두한의 모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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