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의 사랑(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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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의 사랑(17)
아들의 고백(9)
동네 여인들이 점포로 몰려 와 온갖 악담과 행패를 부리고 난 뒤 집안은 한동안 적막에 싸여 있었습니다.
점포는 셔터가 내려지고 구경꾼들도 흩어 졌습니다. 엄마와 외삼촌은 경찰관과 함께 파출소로 간 것 같습니다.
정말 참담했습니다.
그 여인들은 우리, 엄마와 나에게 "에미 자식이 붙어 먹은 연놈들" "똥보다 더 더러운 족속들" 등등 갖은 욕설과 포악을 떨었는데 엄마도 나도 한마디 변명이나 대항 할 구실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수모와 창피를 겪게 될지 모릅니다. 태어 난 이래 지난번 가출한 것 외에는 험한 꼴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터라 더욱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 홀로 남겨 진 나는 이미 어둠이 에워 싼 집안에 불도 켜지 않은 채 내방에 쳐 박혀 치욕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학원을 가야 할텐데 그 여인들과 얼굴이라도 마주 치면 어쩌나, 내 뒤꼭지를 향해서도 온갖 조롱과 험담을 해 댈텐데 어떻게 견디나, ... 아무 해결책이 없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새삼스레 그 동안 나의 행위들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밀려 옵니다.
애초에 엄마와 그런 관계를 갖지 말았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더라도 남의 이목을 끌만큼 엄마의 배가 불러 오는 것은 막아야 했습니다.
판매원 아줌마가 동네 여인들이 숙덕거린다고 귀띰을 해 줬을 때라도 내가 어떤 조치를 취했으면 이렇게 망신을 당하고 파국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책과 후회를 되씹으면서 내 마음은 더욱 암담해 져 갔습니다.
대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집안이 깜깜하네. 민수는 나갔나? 오빠, 우선 방으로 들어 가세요."
엄마의 말소리로 외삼촌과 함께 돌아 온 것을 알았지만 나는 내방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불을 켜며 내 방에 들어 선 엄마의 표정도 무척 지치고 침통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웅크리고 있는 나를 보자 반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많이 걱정했지?"
"엄마!"
나는 엄마를 안았습니다. 아니, 엄마의 품에 안겼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이 적막과 두려움에서 우선 벗어나고 싶었으니까요.
"괜찮아! 괜찮아! 일단 외삼촌이 수습 해 주셨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내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정말 적절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외로움도 두려움도 좀 걷혔습니다. 그러나 곧 얼굴이 얼굴이 화끈거리며 새로운 치욕과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나는 정말 덜 떨어지고 비겁한 놈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엄마 생각을, 엄마에 대한 걱정을 그 때까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엄마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얼마나 곤란했을까, 얼마나 그 엄청난 치욕 속에 마음이 아팠을까, ... 그런데도 내게 닥친 일만 걱정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미웠습니다.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에 비롯된 것이고, 남자랍시고 페니스를 꼽고 휘두를 때면 위세를 부리던 내가 막상 어려운 일이 닥치자 혼자만 꽁무니를 뺀 격이었습니다.
"민수도 거기 있니? 모두 이리 건너 오거라!"
안방에서 외삼촌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거기들 앉아."
외삼촌을 마주 하며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보통 외삼촌 앞에서 꿇어 앉지는 않았는데 오늘은 이렇게라도 해야 될 것 같았습니다.
외삼촌도 침통하고 굳은 표정이었습니다. 엄마와 나를 둘러보는 눈길은 "이 한심한 것들, 이라고 하듯 경멸과 비난이 담겨진 것 같아 시선을 마주 하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혜숙아. 네가 어쩌다 이렇게 망가져 버렸니?"
외삼촌은 먼저 엄마를 힐책 했습니다.
"죄송해요, 오빠. 그리고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엄마도 고개를 숙인 채 말했습니다. 외삼촌의 얼굴은 나를 향했습니다.
"민수 이 녀석, 너도 법적으로는 아직 성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짓을 벌일 지경이 되면 사리 판단도 하고, 도덕관이나 책임감도 갖출만한 때가 된 것 아니냐? 응?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제가 잘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 했습니다.
"지난 일이야 이제 되돌릴 수도 없고,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이 잘못을 만회하고 사람답게 사느냐 하는 거다. 우선 이런 생활은 청산해야지. 민수는 우리 집에서 묵든지 어떻든 떨어져 살아. 알겠니?"
"네."
외삼촌의 단호한 말투에 나는 여전히 기어 든 소리로 말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달리 어떤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혜숙이도 이 점포는 정리 해야 될 테고, 거처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어차피 가게는 정리할 생각으로 내어 놓은 상태예요. 하지만 지금 민수하고 떨어져 살 수는 없어요."
엄마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뭐라구?"
외삼촌은 눈을 부릅뜨며 언성이 높아 졌습니다.
"너 지금 제 정신이냐? 더구나 그 뱃속의 아기는 ... ?"
"오빠, 제 처지도 좀 헤아려 주세요. 민수는 지금 제 인생의 모든 것, 인생 자체예요. 아기도 아직 태어 나지 않았지만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이예요. 아무리 남들의 비난이나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지금 우리들의 인생을 깰 수는 없어요."
엄마는 당당하다고 할 정도로 자신을 주장했습니다.
그런 엄마의 태도에 놀라면서 나는 또 다시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외삼촌의 한마디 질타에 굴복해 버린 나는 정말 덜 떨어지고 비겁한 놈이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그토록 진지하고 절실했다면 나도 엄마처럼 그것을 지키려는 용기와 노력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아니, 혜숙아. 어쩌면 이렇게 나올 수가 있니?"
외삼촌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곧 차분한 어조로 엄마를 설득했습니다. 기본적인 윤리관, 나와 아기의 장래, 사회의 이목, 외할아버지며 다른 형제들과의 관계 등을 열거하며 조리있게 말하는 외삼촌의 말에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실 반박할 건더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면서도 나와 헤어진다거나, 아기를 남에게 입양시켜야 한다는 말에는 전혀 양보가 없었습니다.
외삼촌과 엄마의 언쟁 같은 대화는 한동안 이어 졌지만 합의점이 없는 평행선을 달리기만 했습니다.
"오빠! 자라면서 나를 제일 귀여워 해주고, 또 나도 제일 따르며 좋아했던 오라버니로서 정말 한번만 제 처지를 헤아려 주시고 도와 주세요. 오빠 앞에서 말하기 낯 뜨겁지만 지금 내가 색정이나 육체적 욕구 때문에 고집을 피우는 것은 아니예요. 이것은 운명이예요. 운명 ... "
엄마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흐느꼈습니다.
"참 내, 이건 원, ... 말이 통해야지."
흐느끼는 누이 동생을 애써 외면하면서 한동안 담배만 피워대던 외삼촌은 마침내 나를 밖으로 불러 냈습니다.
"너 하고는 입씨름 밖에 안 되겠구나. 민수야, 나하고 좀 나가자."
따라 나서며 나는 겁이 났습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처형을 당할 시점에 스승의 예언대로 닭이 울기 전에 3번이나 예수를 부정했다는 성경의 귀절도 떠 올랐습니다.
외삼촌과 나는 한 맥주집 구석에 마주 앉았습니다.
외삼촌은 엄마에게처럼 조리있는 있는 말로 나를 설득해 갔습니다.
"우선 네가 집을 나오도록 해라. 둘 다 아픔이 있겠지만 시간이 약이고,이런 상황일수록 이성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알겠니?"
하지만 이번에는 베드로의 전철을 밟지 않았습니다.
"외삼촌 말씀은 다 옳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떠나면 엄마는 자살을 할 수도 있어요. 아니, 틀림 없이 그런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것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최악의 결과를 얻는 길 아니겠어요?"
"미친년!"
외삼촌은 주위 사람에게도 들릴만큼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보 같은 년! 답답한 년! 머저리! 꽉 막힌 계집애! ... "
소리는 작아 졌지만 외삼촌의 욕설은 이어 졌습니다.
나는 머리로 피가 몰리는 기분을 느끼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잘못을 했고 친오빠라 하더라도 다 큰 아들 앞에서 막욕을 해 대다니 ... 어쩔 수 없이 당하기만 했던 억압과 수모가 지금 울분으로 폭발할 기세였습니다.
울고 싶을 때 뺨 때려 준다는 식으로 나도 막나가는 기분이 되어 외삼촌에게 주먹질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해사한 선비 타입의 외삼촌은 완력으로도 나를 못 당할 것입니다.
"외삼촌!"
숙였던 고개를 들며 나도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곧 멈칫 했습니다.
외삼촌의 침통한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이 외삼촌도 엄마를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중 하나였습니다.
눈물 한방울이 떨어 지자 외삼촌은 잠시 얼굴을 돌려 눈물을 닦더니 처음으로 내 말에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최악의 사태까지 가지는 말아야지."
그러나 외삼촌의 표정은 더욱 침통해 보였습니다.
"불쌍한 년!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았으면 더 없는 현모양처로 사랑과 칭송을 받았을 애가 ... 정말 ... "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외삼촌은 "네 엄마는 이런 여자란다" 라며 퍽 오래 전의 한가지 에피소드를 되살렸습니다.
그것은 엄마가 초등학교도 들어 가기 전인 6살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시골 중학교의 국어교사로 재직중인 김광철(나의 외할아버지)의 가정의 어느날 오후, 여름방학중이라 평소 서예와 문인화를 즐겨하던 김교사는 모시 바지 저고리 차림으로 한참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아내가 다림질을 하고 있고 큰 아들은 방학숙제, 남은 두 아들은 바깥으로 놀러 나간 모양이다.
막내딸 혜숙은 아버지 옆에서 알짱거리다, 쫓겨 나면 큰 오빠의 숙제를 방해하다 핀잔을 받고, 다시 엄마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재잘거리기도 했다.
"현수야. 다락방에서 그 조선백자 좀 가져 오렴."
아버지의 말에 큰 아들이 "네" 하며 일어서려는데 "내가 가져 올거야" 라며 딸이 쪼르르 뛰어 올라갔다. 화선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김교사는 "조심해야 한다" 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잠시 후 사고가 일어 났다.
계단을 내려 오던 혜숙이가 미끄러 지면서 백자는 박살이 나 버렸다. 가족 모두가 경악했고 평화롭던 한 가정의 분위기 역시 깨어 져 버렸다.
도자기는 거의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생활 용기지만 일단 깨어지면 그만이다. 특히 그 백자는 가보처럼 전해지며 김교사가 유난히 아끼던 것이었다.
"현수한테 시킨 것을 네가 왜 나서서 ... "
얼굴이 하얗게 질린 김교사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딸에게 회초리를 들이 댔다. 그러나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가서 꿇어 앉아!" 라고 했다.
집안의 살벌한 분위기는 계속 됐다. 김교사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한탄과 한숨을 연발했고, 가장의 진노에 아내와 아들들도 숨을 죽였다.
그런 긴장은 저녁 식사 때까지 이어 졌다. 평소 식탁에서 정겨운 대화가 습관처럼 오갔으나 가장의 굳은 표정에 다른 가족도 입을 열지 못했다.
혜숙은 밥상 앞에 없었다. 가족들은 오히려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처음으로 크게 혼이 났으니 나름대로 기분이 상해 이웃 친척 집에 갔거나 친구들과 놀고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가장의 눈에 안 띄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어서도 혜숙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가족들도 당황해서 사방으로 찾아 다녔으나 허탕이었다.
이때야 김교사도 막내딸이 없어 진 것을 알고, 하수구나 동네 연못까지 살피게 하는 소동이 계속 되었다.
"아, 다락방!"
큰 아들이 소리치며 2층으로 뛰어 올라 갔다. 이어 혜숙을 안고 계단을 내려 오는데 막내딸은 오줌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내려 놓자 혜숙은 "아이, 발 저려!" 하면서 그대로 고꾸라 졌다.
막내딸은 도자기를 깬 직후부터 근 10시간을 어두운 골방에서 꿇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이구, 아가!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니?"
엄마는 딸을 안고 달래면서도 한마디를 덧 붙였다.
"그런데 너는 맹충이냐, 독한 계집애냐? 어쩜 그럴 수가 있지?"
김교사는 낮에 쓰지 못했던 회초리를 다시 집어 들었다.
"나는 지금껏 교육자를 천직으로 삼고 살아 왔는데 이렇게 잔인하고 무심한 짓을 하다니 ... 내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스스로 자기 몸을 때렸다.
"너의 엄마는 그런 여자란다. 미처 철이 들기 전부터 그랬어."
외삼촌은 회고담의 끝에 이렇게 토를 달았습니다.
"하여튼 걔는 특별했어. 10시간 넘게 어두운 골방에 꿇어 앉아 있었던 것이 아버지가 너무 무섭다거나, 반항심으로 고집을 피웠거나 한 것이 아니야. 그 애로서는 단순했지. 잘못해서 벌을 내렸으니 그냥 벌을 받는다는 것이었어. 그 어린 나이에도 육체적 고통이나 무서움을 무시할만큼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외곬수라고 할까. 정말 평범한 생활을 했으면 더 할 나위 없는 현모양처형인데 ... "
외삼촌이 들려 준 에피소드는 나에게도 엄마를 새롭게 인식하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외삼촌은 더 이상 엄마를 설득하는 일은 체념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마디 덧붙인 말은 나를 약간 혼란에 빠지게 했습니다.
"너와, 친자식과의 그런 관계도 나는 심정적으로 이해가 돼. 네 엄마 말대로 색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아. 그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라면 재혼을 하거나 바람을 피워도 될 일을 ... 그 쪽이 훨씬 손 쉽고 패륜이라는 멍에를 벗을 수도 있는데 ... 네 엄마는 너한테서 첫 남자, 바로 너희 아버지를 느꼈는지 느끼고 싶어서일꺼야. 정말 그 애의 운명인지도 모르지."
나는 그때까지 엄마와 나의 이 패륜적이면서 절실한 사랑이 모두 나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귀소본능으로, 태어난 곳을 향한 나의 유별난 집착이 엄마를 범하게 했고, 떠나려 몸부림을 쳐 보기도 했으나 결국은 다시 그 곳을 찾게 된 모든 과정이 내게서 비롯됐고, 내가 선택하고 주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삼촌은 엄마가 나를 선택하고 주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을까요. 나도 차분히 생각해 보고 언젠가는 엄마에게도 이 문제를 한번 물어 볼 생각입니다.
어떻든 큰 시련을 겪은 뒤 엄마와 나의 생활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여기에는 우리를 떼어 놓으려나 결국 체념해 버린 막내 외삼촌의 도움도 컸습니다.
그 소란이 있던 다음날 엄마와 나는 옷가지와 입시준비에 필요한 내 책들만 챙겨 야반도주하듯 살던 집을 나와 학원이 가까운 여관방을 얻었습니다.
점포도 남에게 넘겼습니다. 여기서 나는 엄마의 여장부 같은 기질을 새롭게 발견 했습니다.
엄마의 "행복슈퍼"는 꽤 장사가 잘 되어 얼마 전부터 꽤 권리금을 많이 주겠다는 사람과 상담이 거의 끝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소란이 일어 나고 우리가 더 이상 그곳에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자 그 작자는 값을 터무니 없이 깎아 내리더라는 것입니다.
엄마는 그 작자가 부른 값보다 20%쯤은 더 싼 가격에 우리집 판매원이었던 돌이 엄마에게 넘겼습니다. 그것도 점포 값의 반쯤은 벌어 가며 갚기로 한 외상으로 ...
그 은헤로 돌이 엄마는 그 후에도 엄마의 인생에 한 동반자가 됩니다.
그 집을 떠난지 일주일 쯤 후 엄마는 20평 남짓한 아파트를 구했습니다. 이삿짐은 외삼촌이 사람을 부려서 모두 날랐습니다.
처음 살아 보는 아파트는 내게 참으로 멋진 공간이었습니다.
철문 하나만 닫으면 완전히 외부와 단절 되며 답답한 듯 하지만 둘이 지내기에는 결코 좁지 않은 무대, 엄마의 배는 자꾸 불러 왔지만 우리는 그전과는 맛도 분위기도 다른 오붓한 섹스를 마음껏 펼쳤습니다.
엄마는 다만 나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점포를 지키거나 손님을 상대할 필요가 없이 ...
이곳에 온지 두달 쯤 후 엄마는 몸을 풀고, 바로 나의 자식이기도 한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한딸 쯤 후 나는 비록 3류대학이지만 대학 입시에 합격 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파트는 뒷날에도 또 하나의 고향처럼 내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곳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가끔 슬픔의 추억으로 남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집이 아기, 딸과 이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동네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았고, 학원 수업이 끝난 후 내가 가보았을 때는 조그만 온돌방에 혼자 누워 있었습니다. 순산이라 이틀만 있으면 집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간호사가 "초유를 먹이라"며 강보로 싼 아기를 데려 왔습니다.
엄마가 앞가슴을 헤치기에 내가 나가려 하자 엄마는 "괜찮아. 그냥 있어" 라고 했습니다.
"아드님이세요?" 라는 간호사의 물음에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나, 터울이 많이 지네요. 하지만 얼굴은 많이 닮았군요" 라며 수다를 떱니다. 나는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간호사가 나간 뒤 나는 아기를 찬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특별한 감회도 없고 오히려 착잡한 기분이었습니다. 첫인상도 솔직히 말하자면 그저 껍질 벗긴 새우 같다 정도였습니다. 나와 닮았다는 점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눈도 뜨지 않은 채 아기는 엄마가 젖을 물리자 빨아 댔습니다.
"민정아. 눈 좀 떠 봐. 아이 참, 얘가 눈을 안 뜨네. 아빠가 오셨는데도 ... "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보고 빙굿 웃었습니다. 나는 또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민정이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딸을 낳게 되면 부르겠다고 미리 지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괜히 기분이 찜찜 했습니다.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퇴원할 때까지 나는 다시 그 병원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파트는 3인 가족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잠자리에서 나는 공부방으로 밀려 났습니다. 아기가 울고 바스락 거리는 것들이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나에게 방해가 된다고 엄마가 주장한 것이고 나도 그것이 편했습니다.
"오늘 외삼촌이 다녀 가셨어."
며칠 후 저녁 식사중 엄마가 말했습니다. 막내 외삼촌은 우리 3인 가족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제3자로 이곳을 방문할 수 있는 유일한 이웃이기도 합니다.
"민정이를 데려 가겠다고 해서 1주일만 더 참아 달라고 했어."
외삼촌이 어떻게 엄마를 설득했는지 아기는 태어 나는 대로 남에게 입양하기로 이미 이야기가 끝 나 있었습니다.
엄마는 지나 가는 말처럼 범상하게 말했지만 물론 마음이 아프겠죠. 과연 엄마의 눈은 젖어 있었습니다. 나는 식탁을 돌아 엄마를 안고 잠시 뺨을 맞대었습니다.
"괜찮아, 민수씨. 이것도 내 운명인걸. ... 자, 빨리 밥먹자."
엄마는 나를 밀치며 방긋 웃었지만 그 미소는 나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그 후 1주일동안 엄마의 모습은 처연하고 애절했습니다. 슬픔을 담거나 찌푸린 표정을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함께 사는 나는 충분히 그 처연하고 애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 수발을 들어 주는 일 외에는 시간만 나면 아기와 얼굴을 맞대고 있었습니다. 아기에게는 엄마를, 또 자신은 아기를 더욱 확실하게 각인 시키려는 듯이 ...
나도 같은 감정을 느껴 보려 했습니다. 안고 눈을 맞혀도 보고 기저귀를 갈아 주기도 해 봤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엄마가 민정에게 베푸는 그런 정감은 우러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며칠 후 학원에서 돌아오니 엄마의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집안도 휑하니 큰 구멍이 나 버린 것 같았습니다.
당연하죠. 아기와 함께 그 애가 쓰던 목욕통이니 기저귀, 옷가지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으니까.
하지만 그 비릿하면서도 약간은 향기처럼도 느껴지는 젖내음은 아직도 집안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그 젖내음을 맡으며 가끔 스산하면서 또 애틋한 감정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대학 입시 필기 시험을 치룬 그날 밤, 나는 엄마와 섹스를 했습니다. 엄마의 출산 후 처음이었습니다.
엄마는 다소 고통스러워 했지만 나를 받아 주었습니다.
합격 발표 날에는 "특별 서비스" 라며 엄마가 나를 리드하며 적극적으로 펠라치오를 해 주었습니다.
그 며칠 후 외할아버지의 생신에 엄마와 나는 외갓댁을 들렸습니다.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외삼촌, 외숙모들이 모두 나의 대학합격을 치하하며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막내 외삼촌을 대할 때는 얼굴이 조금 뜨끔했지만, 아무도 엄마와 나의 관계를 눈치 챈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행복슈퍼"를 쫓겨나듯 떠날 때의 악몽은 정말 한갖 꿈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멋 있다! 꼭 새 신랑 같아!"
엄마는 과장끼가 보일만큼 팔을 활짝 벌리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입학식을 앞두고 나는 사양했지만, 엄마는 양복을 마추어 주었습니다. 그 옷을 찾아 온 날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고 정장을 해 본 나의 차림에 보낸 엄마의 찬사입니다.
그 떼 나는 퍼뜩 떠 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나의 음모로 구체화 되고 결국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입학식 날 나는 엄마에게도 며칠전 외할아버지 생신 때 입었던 한복 차림을 요구했습니다.
입학식장에서 우리 커플은 돋보였습니다. 당시 경제적 사정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정장을 한 신입생은 몇명 안 보였고 한복 입은 학부모는 더 적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남매예요?" "아니, 정말 엄마예요? 너무 젊으시군요." "미남에다 듬직한 아들을 두셔서 참 좋으시겠어요" 등등의 말을 걸어 오기도 했습니다. 나는 좀 부담스러웠지만 엄마는 꽤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우리 멋진데 가서 비싼 외식을 할까?"
모처럼 엄마는 그 좋은 기분을 연장하고 싶은 제의를 했지만 나는 거부했습니다.
아파트로 돌아 와 엄마가 옷을 갈아 입으려 할 때 나는 또 제지했습니다.
"아직 벗지 말아요."
나는 엄마를 돌려 세우고 말했습니다.
"멋 있다! 꼭 새색시 같아!"
엄마의 활짝 웃음을 무시하듯 나는 엄숙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우리 오늘 이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려요."
엄마는 의아한 표정을 짓지만 나는 이미 의식의 준비를 해 둔 터입니다.준비래봤자 제과점에서 사 온 케이크와 면사포 한장과 은가락지가 고작이지만.
나는 식탁에 케이크를 펴 놓고 촛불을 켠 뒤 한복차림에다 오늘 미장원까지 다녀 와 더욱 곱상하게 보이는 엄마 얼굴에 면사포를 씌웠습니다.
"아이, 뭐 이렇게까지 ..."
엄마는 더러 주춤하고 망서리면서도 아이의 장난끼를 받아 주는 어른처럼 나의 요구에 응해 주었습니다.
"나 박민수는 김혜숙을 아내로 맞아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진정으로 사랑할 것을 맹세 합니다."
남들의 결혼식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지만 영화나 TV드라마의 기억을 되살려 만든 대사였습니다.
"엄마, 아니 자기도 하세요!"
"아이, 어색 해. 난 못 해."
"나 김혜숙은 박민수를 남편으로 맞아 ..."
이제는 어리광 같은 엄마의 반응을 무시하며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엄마는 따라 했습니다.
"나 김혜숙은 박민수를 남편으로 맞아 ... "
엄마는 아직도 실감을 못한 듯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나는 또 엄마의 그런 반응을 무시하고 나머지 대사를 일러 주었습니다. 엄마도 그제야 차분한 어조로 나머지 대사를 읊었습니다.
그러나 공개 석상이라면 NG를 불러야 했을 것입니다. 끝부분은 울먹이며 제대로 소화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 내 손을 내밀자 엄마도 반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둘만의 의식이라 간편합니다. 나는 신부에게로 닥아 가 면사포를 걷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감았던 눈을 살짝 떠 보았습니다. 엄마의 긴 속눈섭이 바르르 떨립니다. 아니, 나에게 안겨 있는 엄마의 몸 전체도 떨고 있었습니다.
나는 영화에서처럼 엄마를 번쩍 안고 발로 방문을 연 뒤 침대에 눕혔습니다. 그리고 저고리의 고름을 벗기려 했습니다.
"아이, 아직 씻지도 못 했잖아."
"그럼 우리 같이 목욕해요."
서둘러 둘 다 알몸이 된 후 나는 또 엄마를 번쩍 안아 욕실로 향했습니다.
그날의 엄마, 아니 신부는 특별했습니다.
타고 난 교태일까, 뛰어 난 테크닉일까. 엄마는 그날 내게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며 나를 들뜨게 했습니다.
알몸을 번쩍 들어 침대에 눕히자 엄마는 "아이 참!" 하며 얼굴을 붉히고 이불자락으로 앞가슴을 가렸습니다. 입을 맞추어도 혀가 쉽사리 내 입에 들어 오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손이 내려 가자 두손으로 젖통을 모두 가립니다. 그 손을 떼고 젖꼭지를 입에 물었어도 하나는 여전히 굳게 지키려 합니다.
하지만 내 입은 두 젖통을 모두 섭렵하고 배꼽을 거쳐 결국 은밀한 부분까지 진격해 갔습니다.
"아이, 거긴 하지 마."
수풀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엄마는 몸을 흔들며 사정합니다. 몇십번일까, 몇백번일까. 진한 섹스를 할 때에는 이미 우리 사이에 습관처럼 익숙해 진 절차인데 ...
결국 나는 손바닥과 수풀을 헤치고 클리토리스와 꼿잎을 혀로 애무합니다. 엄마의 저항과는 달리 질펀하게 젖어 있는 그곳에 집중 공략을 당하자 엄마는 몸을 비틀며 신음도 참지 못합니다.
나는 잠시 동작을 멈추고 벌떡거리는 페니스를 엄마의 입쪽으로 갖다 대었습니다.
"아이, 못해!"
엄마는 도래질을 합니다. 대신 한 손을 끌어 페니스를 잡도록 했습니다.
"아이, 안돼!"
엄마는 그 손마저 뿌리칩니다.
"아니, 왜 그래요?"
나는 혹 엄마가 기분이 상했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아이 참, 첫날 밤 신부가 어떻게 그런 짓까지 해?"
정말 엄마의 타고 난 교태인지, 뛰어 난 테크닉인지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내 몸은 더욱 뜨겁게 달아 올랐습니다.
그러나 나도 첫날 밤의 신부에게 하듯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페니스를 진입시켰습니다.
"아!"
탄성을 지르면서도 엄마의 수줍은 표정은 가시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질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연속해서 페니스를 조여 옵니다.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그 답례로 엉덩이를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내 참을성은 그다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결국 내 동작이 격렬해 졌고, 엄마도 두 다리로 내 몸을 휘감으며 엉덩이를 내 움직임에 마추어 들썩이고 비명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신부! 아릿따운 나의 신부!"
서로가 땀투성이로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나는 다시 사무치는 감정에 따라 신부의 입술을 찾았습니다.
엄마는 흐느끼면서 내 입술과 혀를 받아 들였습니다.
"고마워요, 여보. 정말 당신의 좋은 아내가 될께요."
목을 껴안고 내 귓볼을 혀로 핥으며 엄마는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내 얼굴을 정면으로 보며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오래 붙잡고 있지는 않을꺼야. 5년? 그래, 그 정도면 돼. 아, 사랑스런 내 신랑님, 앞으로 5년만 내 곁에 있어 줘요."
나는 갑자기 왜 뚱딴지 같이 5년이라는 시한이 나오는가 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와 살았던 세월이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의 내게 그런 시한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영원히, 아니 아까의 맹세처럼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는 변함없이 지속 될테니까요.
아들의 고백(9)
동네 여인들이 점포로 몰려 와 온갖 악담과 행패를 부리고 난 뒤 집안은 한동안 적막에 싸여 있었습니다.
점포는 셔터가 내려지고 구경꾼들도 흩어 졌습니다. 엄마와 외삼촌은 경찰관과 함께 파출소로 간 것 같습니다.
정말 참담했습니다.
그 여인들은 우리, 엄마와 나에게 "에미 자식이 붙어 먹은 연놈들" "똥보다 더 더러운 족속들" 등등 갖은 욕설과 포악을 떨었는데 엄마도 나도 한마디 변명이나 대항 할 구실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수모와 창피를 겪게 될지 모릅니다. 태어 난 이래 지난번 가출한 것 외에는 험한 꼴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터라 더욱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 홀로 남겨 진 나는 이미 어둠이 에워 싼 집안에 불도 켜지 않은 채 내방에 쳐 박혀 치욕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학원을 가야 할텐데 그 여인들과 얼굴이라도 마주 치면 어쩌나, 내 뒤꼭지를 향해서도 온갖 조롱과 험담을 해 댈텐데 어떻게 견디나, ... 아무 해결책이 없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새삼스레 그 동안 나의 행위들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밀려 옵니다.
애초에 엄마와 그런 관계를 갖지 말았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더라도 남의 이목을 끌만큼 엄마의 배가 불러 오는 것은 막아야 했습니다.
판매원 아줌마가 동네 여인들이 숙덕거린다고 귀띰을 해 줬을 때라도 내가 어떤 조치를 취했으면 이렇게 망신을 당하고 파국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책과 후회를 되씹으면서 내 마음은 더욱 암담해 져 갔습니다.
대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집안이 깜깜하네. 민수는 나갔나? 오빠, 우선 방으로 들어 가세요."
엄마의 말소리로 외삼촌과 함께 돌아 온 것을 알았지만 나는 내방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불을 켜며 내 방에 들어 선 엄마의 표정도 무척 지치고 침통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웅크리고 있는 나를 보자 반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많이 걱정했지?"
"엄마!"
나는 엄마를 안았습니다. 아니, 엄마의 품에 안겼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이 적막과 두려움에서 우선 벗어나고 싶었으니까요.
"괜찮아! 괜찮아! 일단 외삼촌이 수습 해 주셨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내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정말 적절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외로움도 두려움도 좀 걷혔습니다. 그러나 곧 얼굴이 얼굴이 화끈거리며 새로운 치욕과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나는 정말 덜 떨어지고 비겁한 놈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엄마 생각을, 엄마에 대한 걱정을 그 때까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엄마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얼마나 곤란했을까, 얼마나 그 엄청난 치욕 속에 마음이 아팠을까, ... 그런데도 내게 닥친 일만 걱정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미웠습니다.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에 비롯된 것이고, 남자랍시고 페니스를 꼽고 휘두를 때면 위세를 부리던 내가 막상 어려운 일이 닥치자 혼자만 꽁무니를 뺀 격이었습니다.
"민수도 거기 있니? 모두 이리 건너 오거라!"
안방에서 외삼촌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거기들 앉아."
외삼촌을 마주 하며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보통 외삼촌 앞에서 꿇어 앉지는 않았는데 오늘은 이렇게라도 해야 될 것 같았습니다.
외삼촌도 침통하고 굳은 표정이었습니다. 엄마와 나를 둘러보는 눈길은 "이 한심한 것들, 이라고 하듯 경멸과 비난이 담겨진 것 같아 시선을 마주 하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혜숙아. 네가 어쩌다 이렇게 망가져 버렸니?"
외삼촌은 먼저 엄마를 힐책 했습니다.
"죄송해요, 오빠. 그리고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엄마도 고개를 숙인 채 말했습니다. 외삼촌의 얼굴은 나를 향했습니다.
"민수 이 녀석, 너도 법적으로는 아직 성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짓을 벌일 지경이 되면 사리 판단도 하고, 도덕관이나 책임감도 갖출만한 때가 된 것 아니냐? 응?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제가 잘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 했습니다.
"지난 일이야 이제 되돌릴 수도 없고,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이 잘못을 만회하고 사람답게 사느냐 하는 거다. 우선 이런 생활은 청산해야지. 민수는 우리 집에서 묵든지 어떻든 떨어져 살아. 알겠니?"
"네."
외삼촌의 단호한 말투에 나는 여전히 기어 든 소리로 말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달리 어떤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혜숙이도 이 점포는 정리 해야 될 테고, 거처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어차피 가게는 정리할 생각으로 내어 놓은 상태예요. 하지만 지금 민수하고 떨어져 살 수는 없어요."
엄마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뭐라구?"
외삼촌은 눈을 부릅뜨며 언성이 높아 졌습니다.
"너 지금 제 정신이냐? 더구나 그 뱃속의 아기는 ... ?"
"오빠, 제 처지도 좀 헤아려 주세요. 민수는 지금 제 인생의 모든 것, 인생 자체예요. 아기도 아직 태어 나지 않았지만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이예요. 아무리 남들의 비난이나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지금 우리들의 인생을 깰 수는 없어요."
엄마는 당당하다고 할 정도로 자신을 주장했습니다.
그런 엄마의 태도에 놀라면서 나는 또 다시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외삼촌의 한마디 질타에 굴복해 버린 나는 정말 덜 떨어지고 비겁한 놈이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그토록 진지하고 절실했다면 나도 엄마처럼 그것을 지키려는 용기와 노력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아니, 혜숙아. 어쩌면 이렇게 나올 수가 있니?"
외삼촌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곧 차분한 어조로 엄마를 설득했습니다. 기본적인 윤리관, 나와 아기의 장래, 사회의 이목, 외할아버지며 다른 형제들과의 관계 등을 열거하며 조리있게 말하는 외삼촌의 말에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실 반박할 건더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면서도 나와 헤어진다거나, 아기를 남에게 입양시켜야 한다는 말에는 전혀 양보가 없었습니다.
외삼촌과 엄마의 언쟁 같은 대화는 한동안 이어 졌지만 합의점이 없는 평행선을 달리기만 했습니다.
"오빠! 자라면서 나를 제일 귀여워 해주고, 또 나도 제일 따르며 좋아했던 오라버니로서 정말 한번만 제 처지를 헤아려 주시고 도와 주세요. 오빠 앞에서 말하기 낯 뜨겁지만 지금 내가 색정이나 육체적 욕구 때문에 고집을 피우는 것은 아니예요. 이것은 운명이예요. 운명 ... "
엄마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흐느꼈습니다.
"참 내, 이건 원, ... 말이 통해야지."
흐느끼는 누이 동생을 애써 외면하면서 한동안 담배만 피워대던 외삼촌은 마침내 나를 밖으로 불러 냈습니다.
"너 하고는 입씨름 밖에 안 되겠구나. 민수야, 나하고 좀 나가자."
따라 나서며 나는 겁이 났습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처형을 당할 시점에 스승의 예언대로 닭이 울기 전에 3번이나 예수를 부정했다는 성경의 귀절도 떠 올랐습니다.
외삼촌과 나는 한 맥주집 구석에 마주 앉았습니다.
외삼촌은 엄마에게처럼 조리있는 있는 말로 나를 설득해 갔습니다.
"우선 네가 집을 나오도록 해라. 둘 다 아픔이 있겠지만 시간이 약이고,이런 상황일수록 이성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알겠니?"
하지만 이번에는 베드로의 전철을 밟지 않았습니다.
"외삼촌 말씀은 다 옳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떠나면 엄마는 자살을 할 수도 있어요. 아니, 틀림 없이 그런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것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최악의 결과를 얻는 길 아니겠어요?"
"미친년!"
외삼촌은 주위 사람에게도 들릴만큼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보 같은 년! 답답한 년! 머저리! 꽉 막힌 계집애! ... "
소리는 작아 졌지만 외삼촌의 욕설은 이어 졌습니다.
나는 머리로 피가 몰리는 기분을 느끼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잘못을 했고 친오빠라 하더라도 다 큰 아들 앞에서 막욕을 해 대다니 ... 어쩔 수 없이 당하기만 했던 억압과 수모가 지금 울분으로 폭발할 기세였습니다.
울고 싶을 때 뺨 때려 준다는 식으로 나도 막나가는 기분이 되어 외삼촌에게 주먹질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해사한 선비 타입의 외삼촌은 완력으로도 나를 못 당할 것입니다.
"외삼촌!"
숙였던 고개를 들며 나도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곧 멈칫 했습니다.
외삼촌의 침통한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이 외삼촌도 엄마를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중 하나였습니다.
눈물 한방울이 떨어 지자 외삼촌은 잠시 얼굴을 돌려 눈물을 닦더니 처음으로 내 말에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최악의 사태까지 가지는 말아야지."
그러나 외삼촌의 표정은 더욱 침통해 보였습니다.
"불쌍한 년!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았으면 더 없는 현모양처로 사랑과 칭송을 받았을 애가 ... 정말 ... "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외삼촌은 "네 엄마는 이런 여자란다" 라며 퍽 오래 전의 한가지 에피소드를 되살렸습니다.
그것은 엄마가 초등학교도 들어 가기 전인 6살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시골 중학교의 국어교사로 재직중인 김광철(나의 외할아버지)의 가정의 어느날 오후, 여름방학중이라 평소 서예와 문인화를 즐겨하던 김교사는 모시 바지 저고리 차림으로 한참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아내가 다림질을 하고 있고 큰 아들은 방학숙제, 남은 두 아들은 바깥으로 놀러 나간 모양이다.
막내딸 혜숙은 아버지 옆에서 알짱거리다, 쫓겨 나면 큰 오빠의 숙제를 방해하다 핀잔을 받고, 다시 엄마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재잘거리기도 했다.
"현수야. 다락방에서 그 조선백자 좀 가져 오렴."
아버지의 말에 큰 아들이 "네" 하며 일어서려는데 "내가 가져 올거야" 라며 딸이 쪼르르 뛰어 올라갔다. 화선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김교사는 "조심해야 한다" 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잠시 후 사고가 일어 났다.
계단을 내려 오던 혜숙이가 미끄러 지면서 백자는 박살이 나 버렸다. 가족 모두가 경악했고 평화롭던 한 가정의 분위기 역시 깨어 져 버렸다.
도자기는 거의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생활 용기지만 일단 깨어지면 그만이다. 특히 그 백자는 가보처럼 전해지며 김교사가 유난히 아끼던 것이었다.
"현수한테 시킨 것을 네가 왜 나서서 ... "
얼굴이 하얗게 질린 김교사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딸에게 회초리를 들이 댔다. 그러나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가서 꿇어 앉아!" 라고 했다.
집안의 살벌한 분위기는 계속 됐다. 김교사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한탄과 한숨을 연발했고, 가장의 진노에 아내와 아들들도 숨을 죽였다.
그런 긴장은 저녁 식사 때까지 이어 졌다. 평소 식탁에서 정겨운 대화가 습관처럼 오갔으나 가장의 굳은 표정에 다른 가족도 입을 열지 못했다.
혜숙은 밥상 앞에 없었다. 가족들은 오히려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처음으로 크게 혼이 났으니 나름대로 기분이 상해 이웃 친척 집에 갔거나 친구들과 놀고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가장의 눈에 안 띄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어서도 혜숙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가족들도 당황해서 사방으로 찾아 다녔으나 허탕이었다.
이때야 김교사도 막내딸이 없어 진 것을 알고, 하수구나 동네 연못까지 살피게 하는 소동이 계속 되었다.
"아, 다락방!"
큰 아들이 소리치며 2층으로 뛰어 올라 갔다. 이어 혜숙을 안고 계단을 내려 오는데 막내딸은 오줌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내려 놓자 혜숙은 "아이, 발 저려!" 하면서 그대로 고꾸라 졌다.
막내딸은 도자기를 깬 직후부터 근 10시간을 어두운 골방에서 꿇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이구, 아가!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니?"
엄마는 딸을 안고 달래면서도 한마디를 덧 붙였다.
"그런데 너는 맹충이냐, 독한 계집애냐? 어쩜 그럴 수가 있지?"
김교사는 낮에 쓰지 못했던 회초리를 다시 집어 들었다.
"나는 지금껏 교육자를 천직으로 삼고 살아 왔는데 이렇게 잔인하고 무심한 짓을 하다니 ... 내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스스로 자기 몸을 때렸다.
"너의 엄마는 그런 여자란다. 미처 철이 들기 전부터 그랬어."
외삼촌은 회고담의 끝에 이렇게 토를 달았습니다.
"하여튼 걔는 특별했어. 10시간 넘게 어두운 골방에 꿇어 앉아 있었던 것이 아버지가 너무 무섭다거나, 반항심으로 고집을 피웠거나 한 것이 아니야. 그 애로서는 단순했지. 잘못해서 벌을 내렸으니 그냥 벌을 받는다는 것이었어. 그 어린 나이에도 육체적 고통이나 무서움을 무시할만큼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외곬수라고 할까. 정말 평범한 생활을 했으면 더 할 나위 없는 현모양처형인데 ... "
외삼촌이 들려 준 에피소드는 나에게도 엄마를 새롭게 인식하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외삼촌은 더 이상 엄마를 설득하는 일은 체념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마디 덧붙인 말은 나를 약간 혼란에 빠지게 했습니다.
"너와, 친자식과의 그런 관계도 나는 심정적으로 이해가 돼. 네 엄마 말대로 색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아. 그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라면 재혼을 하거나 바람을 피워도 될 일을 ... 그 쪽이 훨씬 손 쉽고 패륜이라는 멍에를 벗을 수도 있는데 ... 네 엄마는 너한테서 첫 남자, 바로 너희 아버지를 느꼈는지 느끼고 싶어서일꺼야. 정말 그 애의 운명인지도 모르지."
나는 그때까지 엄마와 나의 이 패륜적이면서 절실한 사랑이 모두 나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귀소본능으로, 태어난 곳을 향한 나의 유별난 집착이 엄마를 범하게 했고, 떠나려 몸부림을 쳐 보기도 했으나 결국은 다시 그 곳을 찾게 된 모든 과정이 내게서 비롯됐고, 내가 선택하고 주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삼촌은 엄마가 나를 선택하고 주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을까요. 나도 차분히 생각해 보고 언젠가는 엄마에게도 이 문제를 한번 물어 볼 생각입니다.
어떻든 큰 시련을 겪은 뒤 엄마와 나의 생활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여기에는 우리를 떼어 놓으려나 결국 체념해 버린 막내 외삼촌의 도움도 컸습니다.
그 소란이 있던 다음날 엄마와 나는 옷가지와 입시준비에 필요한 내 책들만 챙겨 야반도주하듯 살던 집을 나와 학원이 가까운 여관방을 얻었습니다.
점포도 남에게 넘겼습니다. 여기서 나는 엄마의 여장부 같은 기질을 새롭게 발견 했습니다.
엄마의 "행복슈퍼"는 꽤 장사가 잘 되어 얼마 전부터 꽤 권리금을 많이 주겠다는 사람과 상담이 거의 끝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소란이 일어 나고 우리가 더 이상 그곳에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자 그 작자는 값을 터무니 없이 깎아 내리더라는 것입니다.
엄마는 그 작자가 부른 값보다 20%쯤은 더 싼 가격에 우리집 판매원이었던 돌이 엄마에게 넘겼습니다. 그것도 점포 값의 반쯤은 벌어 가며 갚기로 한 외상으로 ...
그 은헤로 돌이 엄마는 그 후에도 엄마의 인생에 한 동반자가 됩니다.
그 집을 떠난지 일주일 쯤 후 엄마는 20평 남짓한 아파트를 구했습니다. 이삿짐은 외삼촌이 사람을 부려서 모두 날랐습니다.
처음 살아 보는 아파트는 내게 참으로 멋진 공간이었습니다.
철문 하나만 닫으면 완전히 외부와 단절 되며 답답한 듯 하지만 둘이 지내기에는 결코 좁지 않은 무대, 엄마의 배는 자꾸 불러 왔지만 우리는 그전과는 맛도 분위기도 다른 오붓한 섹스를 마음껏 펼쳤습니다.
엄마는 다만 나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점포를 지키거나 손님을 상대할 필요가 없이 ...
이곳에 온지 두달 쯤 후 엄마는 몸을 풀고, 바로 나의 자식이기도 한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한딸 쯤 후 나는 비록 3류대학이지만 대학 입시에 합격 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파트는 뒷날에도 또 하나의 고향처럼 내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곳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가끔 슬픔의 추억으로 남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집이 아기, 딸과 이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동네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았고, 학원 수업이 끝난 후 내가 가보았을 때는 조그만 온돌방에 혼자 누워 있었습니다. 순산이라 이틀만 있으면 집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간호사가 "초유를 먹이라"며 강보로 싼 아기를 데려 왔습니다.
엄마가 앞가슴을 헤치기에 내가 나가려 하자 엄마는 "괜찮아. 그냥 있어" 라고 했습니다.
"아드님이세요?" 라는 간호사의 물음에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나, 터울이 많이 지네요. 하지만 얼굴은 많이 닮았군요" 라며 수다를 떱니다. 나는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간호사가 나간 뒤 나는 아기를 찬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특별한 감회도 없고 오히려 착잡한 기분이었습니다. 첫인상도 솔직히 말하자면 그저 껍질 벗긴 새우 같다 정도였습니다. 나와 닮았다는 점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눈도 뜨지 않은 채 아기는 엄마가 젖을 물리자 빨아 댔습니다.
"민정아. 눈 좀 떠 봐. 아이 참, 얘가 눈을 안 뜨네. 아빠가 오셨는데도 ... "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보고 빙굿 웃었습니다. 나는 또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민정이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딸을 낳게 되면 부르겠다고 미리 지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괜히 기분이 찜찜 했습니다.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퇴원할 때까지 나는 다시 그 병원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파트는 3인 가족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잠자리에서 나는 공부방으로 밀려 났습니다. 아기가 울고 바스락 거리는 것들이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나에게 방해가 된다고 엄마가 주장한 것이고 나도 그것이 편했습니다.
"오늘 외삼촌이 다녀 가셨어."
며칠 후 저녁 식사중 엄마가 말했습니다. 막내 외삼촌은 우리 3인 가족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제3자로 이곳을 방문할 수 있는 유일한 이웃이기도 합니다.
"민정이를 데려 가겠다고 해서 1주일만 더 참아 달라고 했어."
외삼촌이 어떻게 엄마를 설득했는지 아기는 태어 나는 대로 남에게 입양하기로 이미 이야기가 끝 나 있었습니다.
엄마는 지나 가는 말처럼 범상하게 말했지만 물론 마음이 아프겠죠. 과연 엄마의 눈은 젖어 있었습니다. 나는 식탁을 돌아 엄마를 안고 잠시 뺨을 맞대었습니다.
"괜찮아, 민수씨. 이것도 내 운명인걸. ... 자, 빨리 밥먹자."
엄마는 나를 밀치며 방긋 웃었지만 그 미소는 나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그 후 1주일동안 엄마의 모습은 처연하고 애절했습니다. 슬픔을 담거나 찌푸린 표정을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함께 사는 나는 충분히 그 처연하고 애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 수발을 들어 주는 일 외에는 시간만 나면 아기와 얼굴을 맞대고 있었습니다. 아기에게는 엄마를, 또 자신은 아기를 더욱 확실하게 각인 시키려는 듯이 ...
나도 같은 감정을 느껴 보려 했습니다. 안고 눈을 맞혀도 보고 기저귀를 갈아 주기도 해 봤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엄마가 민정에게 베푸는 그런 정감은 우러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며칠 후 학원에서 돌아오니 엄마의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집안도 휑하니 큰 구멍이 나 버린 것 같았습니다.
당연하죠. 아기와 함께 그 애가 쓰던 목욕통이니 기저귀, 옷가지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으니까.
하지만 그 비릿하면서도 약간은 향기처럼도 느껴지는 젖내음은 아직도 집안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그 젖내음을 맡으며 가끔 스산하면서 또 애틋한 감정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대학 입시 필기 시험을 치룬 그날 밤, 나는 엄마와 섹스를 했습니다. 엄마의 출산 후 처음이었습니다.
엄마는 다소 고통스러워 했지만 나를 받아 주었습니다.
합격 발표 날에는 "특별 서비스" 라며 엄마가 나를 리드하며 적극적으로 펠라치오를 해 주었습니다.
그 며칠 후 외할아버지의 생신에 엄마와 나는 외갓댁을 들렸습니다.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외삼촌, 외숙모들이 모두 나의 대학합격을 치하하며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막내 외삼촌을 대할 때는 얼굴이 조금 뜨끔했지만, 아무도 엄마와 나의 관계를 눈치 챈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행복슈퍼"를 쫓겨나듯 떠날 때의 악몽은 정말 한갖 꿈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멋 있다! 꼭 새 신랑 같아!"
엄마는 과장끼가 보일만큼 팔을 활짝 벌리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입학식을 앞두고 나는 사양했지만, 엄마는 양복을 마추어 주었습니다. 그 옷을 찾아 온 날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고 정장을 해 본 나의 차림에 보낸 엄마의 찬사입니다.
그 떼 나는 퍼뜩 떠 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나의 음모로 구체화 되고 결국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입학식 날 나는 엄마에게도 며칠전 외할아버지 생신 때 입었던 한복 차림을 요구했습니다.
입학식장에서 우리 커플은 돋보였습니다. 당시 경제적 사정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정장을 한 신입생은 몇명 안 보였고 한복 입은 학부모는 더 적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남매예요?" "아니, 정말 엄마예요? 너무 젊으시군요." "미남에다 듬직한 아들을 두셔서 참 좋으시겠어요" 등등의 말을 걸어 오기도 했습니다. 나는 좀 부담스러웠지만 엄마는 꽤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우리 멋진데 가서 비싼 외식을 할까?"
모처럼 엄마는 그 좋은 기분을 연장하고 싶은 제의를 했지만 나는 거부했습니다.
아파트로 돌아 와 엄마가 옷을 갈아 입으려 할 때 나는 또 제지했습니다.
"아직 벗지 말아요."
나는 엄마를 돌려 세우고 말했습니다.
"멋 있다! 꼭 새색시 같아!"
엄마의 활짝 웃음을 무시하듯 나는 엄숙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우리 오늘 이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려요."
엄마는 의아한 표정을 짓지만 나는 이미 의식의 준비를 해 둔 터입니다.준비래봤자 제과점에서 사 온 케이크와 면사포 한장과 은가락지가 고작이지만.
나는 식탁에 케이크를 펴 놓고 촛불을 켠 뒤 한복차림에다 오늘 미장원까지 다녀 와 더욱 곱상하게 보이는 엄마 얼굴에 면사포를 씌웠습니다.
"아이, 뭐 이렇게까지 ..."
엄마는 더러 주춤하고 망서리면서도 아이의 장난끼를 받아 주는 어른처럼 나의 요구에 응해 주었습니다.
"나 박민수는 김혜숙을 아내로 맞아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진정으로 사랑할 것을 맹세 합니다."
남들의 결혼식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지만 영화나 TV드라마의 기억을 되살려 만든 대사였습니다.
"엄마, 아니 자기도 하세요!"
"아이, 어색 해. 난 못 해."
"나 김혜숙은 박민수를 남편으로 맞아 ..."
이제는 어리광 같은 엄마의 반응을 무시하며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엄마는 따라 했습니다.
"나 김혜숙은 박민수를 남편으로 맞아 ... "
엄마는 아직도 실감을 못한 듯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나는 또 엄마의 그런 반응을 무시하고 나머지 대사를 일러 주었습니다. 엄마도 그제야 차분한 어조로 나머지 대사를 읊었습니다.
그러나 공개 석상이라면 NG를 불러야 했을 것입니다. 끝부분은 울먹이며 제대로 소화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 내 손을 내밀자 엄마도 반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둘만의 의식이라 간편합니다. 나는 신부에게로 닥아 가 면사포를 걷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감았던 눈을 살짝 떠 보았습니다. 엄마의 긴 속눈섭이 바르르 떨립니다. 아니, 나에게 안겨 있는 엄마의 몸 전체도 떨고 있었습니다.
나는 영화에서처럼 엄마를 번쩍 안고 발로 방문을 연 뒤 침대에 눕혔습니다. 그리고 저고리의 고름을 벗기려 했습니다.
"아이, 아직 씻지도 못 했잖아."
"그럼 우리 같이 목욕해요."
서둘러 둘 다 알몸이 된 후 나는 또 엄마를 번쩍 안아 욕실로 향했습니다.
그날의 엄마, 아니 신부는 특별했습니다.
타고 난 교태일까, 뛰어 난 테크닉일까. 엄마는 그날 내게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며 나를 들뜨게 했습니다.
알몸을 번쩍 들어 침대에 눕히자 엄마는 "아이 참!" 하며 얼굴을 붉히고 이불자락으로 앞가슴을 가렸습니다. 입을 맞추어도 혀가 쉽사리 내 입에 들어 오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손이 내려 가자 두손으로 젖통을 모두 가립니다. 그 손을 떼고 젖꼭지를 입에 물었어도 하나는 여전히 굳게 지키려 합니다.
하지만 내 입은 두 젖통을 모두 섭렵하고 배꼽을 거쳐 결국 은밀한 부분까지 진격해 갔습니다.
"아이, 거긴 하지 마."
수풀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엄마는 몸을 흔들며 사정합니다. 몇십번일까, 몇백번일까. 진한 섹스를 할 때에는 이미 우리 사이에 습관처럼 익숙해 진 절차인데 ...
결국 나는 손바닥과 수풀을 헤치고 클리토리스와 꼿잎을 혀로 애무합니다. 엄마의 저항과는 달리 질펀하게 젖어 있는 그곳에 집중 공략을 당하자 엄마는 몸을 비틀며 신음도 참지 못합니다.
나는 잠시 동작을 멈추고 벌떡거리는 페니스를 엄마의 입쪽으로 갖다 대었습니다.
"아이, 못해!"
엄마는 도래질을 합니다. 대신 한 손을 끌어 페니스를 잡도록 했습니다.
"아이, 안돼!"
엄마는 그 손마저 뿌리칩니다.
"아니, 왜 그래요?"
나는 혹 엄마가 기분이 상했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아이 참, 첫날 밤 신부가 어떻게 그런 짓까지 해?"
정말 엄마의 타고 난 교태인지, 뛰어 난 테크닉인지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내 몸은 더욱 뜨겁게 달아 올랐습니다.
그러나 나도 첫날 밤의 신부에게 하듯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페니스를 진입시켰습니다.
"아!"
탄성을 지르면서도 엄마의 수줍은 표정은 가시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질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연속해서 페니스를 조여 옵니다.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그 답례로 엉덩이를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내 참을성은 그다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결국 내 동작이 격렬해 졌고, 엄마도 두 다리로 내 몸을 휘감으며 엉덩이를 내 움직임에 마추어 들썩이고 비명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신부! 아릿따운 나의 신부!"
서로가 땀투성이로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나는 다시 사무치는 감정에 따라 신부의 입술을 찾았습니다.
엄마는 흐느끼면서 내 입술과 혀를 받아 들였습니다.
"고마워요, 여보. 정말 당신의 좋은 아내가 될께요."
목을 껴안고 내 귓볼을 혀로 핥으며 엄마는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내 얼굴을 정면으로 보며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오래 붙잡고 있지는 않을꺼야. 5년? 그래, 그 정도면 돼. 아, 사랑스런 내 신랑님, 앞으로 5년만 내 곁에 있어 줘요."
나는 갑자기 왜 뚱딴지 같이 5년이라는 시한이 나오는가 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와 살았던 세월이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의 내게 그런 시한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영원히, 아니 아까의 맹세처럼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는 변함없이 지속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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