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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 나쁜 여자 - (02)

나쁜 남자 & 나쁜 여자  -  (02)


 


 



4. 착각(錯覺)은 자유(自由)고 제한도 없는 법


 


지금 여기는 어디인걸까, 분명한건 우리 집이 아니라는 건데…, 그럼 여기는 호텔? 호텔이라고 하기에는 평범한 가정집하고 똑같다. 그럼 여기는 다혜의 집? 아니지. 내가 먼저 나왔으니까 다혜 집이 분명히 아닐 거야. 그럼…, 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눈을 뜬 혜연은 여기가 어디인지 몰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문득 자신의 몸이 상당히 홀가분한 게 맨살인 것 같은 불안한 느낌에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자신의 몸을 확인해 보니…,


 


“으아악!”


 


속옷만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처음 보는 옷들이 입혀져 있었다. 여자 옷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박스 티와 반바지. 그럼 이 옷들은 남자 옷이란 말인데…, 경연(혜연의 남동생)의 옷도 아니고…, 그럼…, 설마…?


 


“일어났어요?”


“난 못 살아….”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막 씻고 나오는 태석을 본 혜연은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학교 안가요? 언제까지 이불속에 계속 있으려고 그래요?”


“오, 옷부터 입어!”


“옷 입었는데….”


 


상반신(上半身)을 적나라하게 다 드러내 놓고 다니는 태석을 본 혜연은 얼굴이 시뻘게지고 말았다. 태석이 다 벗은 것도 아니고 반바지 차림에 티 하나 안 입었을 뿐인데 혜연은 쑥스러워 하고 있었다. 평소 집에서 경연이 반바지에 상반신을 드러내 놓고 다녀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가족이 아닌 다른 남자를 봐서 그런 걸까? 아니지 학생이 남자로 보인다니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혼자 뭐라고 그렇게 중얼거려요? 학교 안가요? 학.교.?”


“아! 맞다.”


“얼른 씻고 옷 갈아입으시죠?”


“근데 여기 어디야? 그리고 내 옷 누가 갈아입힌 거야?”


“여기 아는 형 집이예요. 그리고 선생님 옷이요? 물론! 제.가. 직.접. 갈아입혀 드렸어요.”


“으아아악! 나 몰라….”


 


혜연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자신의 남자친구 성진에게도 아직까지 자신의 속살을 보여준 적 없었는데! 아, 아… 저 어린 것에게 내 순결을 바친 것이란 말인가…,


 


“설마…, 그 비쩍 마른 몸매 보고 내가 덮치기라도 했을까봐 그래요? 저… 이래봬도 여자 보는 눈이 꽤 높.거.든.요?”


“뭐…, 뭐라고?”


“바랄 껄 바라시죠, 몸매도 어찌나 이기적(利己的)이게 말랐는지….”


“뭐야?”


“준비 안 해요? 학교 가셔야죠.”


“우이씨….”


 


혼자 좌절해 하는 혜연을 보며 태석은 대놓고 그녀의 몸매의 평을 늘어놓았다. 정말이지, 볼 게 하나도 없는 혜연의 몸매는 정말로 태석을 늑대로 변신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씩씩거리고 있는 혜연과는 달리 태연한 태석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태석의 뒤통수를 말없이 노려보던 혜연은 이러다 지각하겠다 싶어서 씻으러 들어갔다.


 


“아침…부터…, 라면은….”


“그럼 먹지 마요.”


 


직접 라면까지 퍼서 그릇에 담아 혜연 앞에 놔줬다가 혜연의 표정이 영… 맘에 들지 않았는지 태석은 혜연의 라면그릇을 빼앗아 갔다.


 


“아…, 아니야 먹을게!”


“먹을 거면서 투덜거리기는….”


 


태석은 다시 혜연 앞에 그릇을 내려놓았다. 배는 고프니 먹을 수밖에…,


 


“여자 화장품은 저쪽 방에 있으니까 저기 가서 화장하고 나와요.”


“응…, 근데 아는 형 집인데 여자 화장품까지 있어?”


“형 여자 친구 것이에요, 둘이 동거(同居)하거든요.”


“아…, 맘대로 써도 되나…, 근데 두 분은 어디 계셔?”


“두 사람 다 밤에 일을 하다 보니 바빠서 잘 안 들어와요.”


 


태석의 말에 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장을 하러 들어갔다. 화장대에는 기초에서 부터 색조까지 죄~다 명품 화장들이었다. 부담스럽게…,


 


“나 먼저 갈 테니까 넌 나중에 나와.”


 


화장을 하고 나온 혜연이 시계를 보더니 구두를 신으며 말했다. 태석과 아침부터 같이 등교한다면 선생님들, 학생들 모두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였다.


 


“누가 같이 간데요? 먼저 가세요, 착각도 자유라지만, 선생님은 너무….”


“흠흠! 학교에서 보자!”


 


태석의 말에 당황한 혜연은 태석에게 대충 인사하고 집에서 나왔다. 그나저나 집에다가는 전화도 안하고 외박(外泊)을 했으니, 오늘 집에 들어가면 죽겠다. 어제와 똑같은 옷을 입고 갈 수도 없고…, 혜연은 어쩔 수 없이 경연에게 전화를 했다.


 


“경연아, 누나야.”


“너 어디냐?”


“으응…, 저기 너 나올 때 나 옷 좀 갖다 줄래? 부탁이야.”


“너 엄마한테 죽을 각오 하고 있어라.”


“으응, 옷이나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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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지각하겠다. 빨리 안 나오냐?”


“다 입었어.”


 


경연이 가져온 옷을 집 근처 건물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나온 혜연, 벗은 옷들이 담아져 있는 봉투를 경연에게 준다.


 


“장난해? 내가 이걸 가지고 학교까지 가야겠냐?”


“그럼 어떻게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이 옷 봉투 가지고 학교 갈 수 없잖아. 한 번만 봐줘. 나 먼저 갈게…. 저녁때 맛있는 거 사가지고 갈게…, 싸랑해, 동생….”


“야! 장 혜연!”


 


꼭 이럴 때는 빨리도 도망가는 혜연에게 소리 질러 보지만 택시를 타고 사라져 버렸다. 맘 같아서는 버려 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누나 - 누나 같지도 않고 오히려 어떨 때는 동생 같기도 하지만 - 옷을 버리고 갈 수는 없는지 가방에 쑤셔 넣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착한 동생 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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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했어?”


“뭘?”


“교생 쌤이랑~.”


“그 여자가 쉽게 할 여자 같냐?”


“그럼 정말 잠만 잤어?”


“어!”


“우리 태석 씨가 웬일이래?”


“몸매가 어찌나 이기적(利己的)인지…,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 요즘 초등학생도 그렇게는 살이 안 빠졌는데….”


“푸하하…, 역시 나만한 여자 없지?”


“착각도 자유다.”


“뭐야?”


 


희정과 태석은 체육시간에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빠져나와 양호실에서 놀고 있었다. 양호 선생님이 양호실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는 걸 아는 두 사람은 체육시간에 이곳에 자주 왔다.


 


“희정이 너 요새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부담 된다.”


“학교에서 하는 것만큼 짜릿한 건 없지 않을까?”


 


양호실 침대에 누워 있는 태석의 위로 슬금슬금 올라가는 희정. 태석의 체육복 지퍼를 ‘스르륵~’ 내린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입을 갖다 대며 말한다.


 


“교생 쌤 꼬시는데 며칠이나 걸릴 거 같아?”


“모르지, 쉬운 여자는 아니니까.”


“우선 누가 먼저 교생 쌤 목에다 키스마크 남기나 해보자.”


“그 여자는 키스마크가 뭔지도 모를 거 같은데….”


“그럼 남기기 더 쉽겠네, 호호호! 아무튼 교생 쌤의 하얀 목에 태석이 네 키스마크가 언제 새겨질지 궁금하다.”


 


희정은 태석의 목에 키스마크를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을 탐하려 하는데…, ‘딸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씨!”


 


희정은 재빨리 태석에게서 내려와 누가 들어오는 확인했다.


 


“어머! 쌤!”


“어? 희정아 어디 아프니? 지금 체육 시간 아니야?”


“아~ 배가…, 아파서요. 헤헤! 쌤은 어디 아파세요~오?”


“아…, 사실은 나도 배가 조금 아파서….”


“지금 양호 쌤 없어요! 제가 약 찾아 드릴 테니까 앉으세요!”


“으응….”


 


‘얼굴도 이쁜 애가 마음씨까지 이쁘고, 난 이게 모야? 근데…, 혹시 이상한 약 주는 거 아니야? 그래서 배 더 아픈 거 아니야? 찾아 주겠다는 애한테 됐다고 거절 할 수도 없고, 아휴 근데 배가 왜 이렇게 아프지…, 술도 많이 안 먹었는데…,’


 


“쌤! 이거 드세요!”


“아! 고마워.”


 


희정이 준 약을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다 자신을 보면서 밝게 웃는 희정을 보니…, 설마 죽겠어? 라고 생각하며 약을 물과 함께 넘겼다.


 


“쌤 저 그만 가볼게요. 호호호! 즐거운 시간되세요. 쌤!”


“응?”


“푸욱~ 쉬세요. 호호호~.”


 


침대에 누가 있는지 아직까지 모르는 혜연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조금 쉬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눕자 갑자기 커튼이 ‘촤아악~’ 걷혔다.


 


“깜짝이야!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아까부터요.”


“그럼 인기척을 해야지! 아휴~ 진짜 놀랬잖아!”


 


혜연이 벌떡 일어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자 태석은 ‘쿡쿡!’ 하고 웃었다. 정말 별거 아닌 거에 놀라는 여자다.


 


“너도 아파? 어디가 아픈데?”


“머리요.”


“그래…, 근데 너 거기 호프집에서 일하니?”


“네. 왜요?”


“학생인데 그런 일 하는 건 좀 위험하지 않아?”


“위험하긴요, 제일 안전하지, 아는 형이 부탁해서 하는 거예요.”


“그래….”


 


혜연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태석도 별 말 없이 조용히 있었고, 혜연도 조용히 누워 있었다.


 


“의외로 입이 무거우신 것 같네요.”


“으응?”


“어제 봤던 거 담임선생님한테 말할 줄 알았거든요.”


 


왜 이 얘기를 안 꺼내나 싶었다. 혜연은 훔쳐봤다는 게 좋은 건 아니기 때문에 모른 척 넘어가려고 했었다. 허나, 태석이 먼저 얘기를 꺼낸다면! 그럴 땐 시치미를 때는 수밖에….


 


“나 아무것도 못 봤는데? 우리 언제 봤나? 교실에서 처음 봤잖아….”


“아무것도 못 보셨다고요?”


“응, 창고에서 아무것도 못 봤어.”


“그쵸? 창.고.에서 아무것도 못 보셨겠죠?”


“헉!”


 


아뿔싸! 못 봤다고 시치미 ‘뚝~’ 땔 때는 언제고 자기 입으로 봤다고 말해버렸으니! 쪽팔린 혜연은 태석에게서 몸을 돌려버렸다. 등을 돌리고 누운 혜연은 이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끙끙대는 소리를 냈다.


 


“그래서 내가 더럽다고 생각한 거예요?”


“으응?”


“나이는 어린데 여자들한테 그런 짓 하니까, 더러워 보였냐고요?”


“저기, 내가 어제 좀 술에 취해서, 말이 좀 심했지, 미안해….”


“됐어요, 사과는 필요 없거든요?”


“에이…, 그러지 말구, 사과 받아줘….”


 


이제 두 사람의 자세가 바뀌어서, 태석이 등을 돌리고 누워있었고 혜연은 태석을 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사과하고 있었다. 혜연의 애교에도 꿈쩍하지 않는 태석. 혜연의 사과를 받아줄 맘이 전혀 없어 보인다. 마음 여린 혜연은 자신 때문에 화가 난 태석을 풀어주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와 태석이 있는 침대에 걸터앉더니 그의 등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말했다.


 


“한 달 동안 얼굴 볼 사인데 이러지 말자…, 응?”


“저리 가세요.”


“그럼 화 풀어…, 내가 실수 한 거 인정하니까 너도 화 풀어…, 응? 응?”


 


혜연이 계속 등을 콕콕 찌르자 태석이 갑자기 몸을 혜연 쪽으로 돌리더니 그녀의 손을 ‘확~’ 잡아버린다.


 


“왜, 왜 그래?”


“어쩌죠, 선생님이 나 흥분 시켰으니까, 이제 책임지셔야겠어요.”


“뭐…, 뭐라고? 내…, 내가 언제….”


“나 등이 성감대(性感帶)라서요.”


 


등이 성감대라니,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다니…, 몸을 일으켜 자신에게 다가오는 태석을 피해 혜연은 벽 쪽으로 바짝 붙었다.


 


“종 치려면 5분 남았는데, 뭐 5분 정도면 충분하죠.”


 


뭐가 충분 하단 말인가! 상대는 맘의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도망가지도 못하게 양팔로 혜연을 가둬버리는 태석, 놀란 혜연은 입만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태석의 얼굴이 점점 혜연에게 가까워지고, 혜연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쪽!”


 


일어나고야 말았다. 놀려주는 걸로만 끝내려고 했던 태석은 혜연의 당황하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고 키스를 하면 어떻게 나올지 그녀의 반응이 궁금해 져서 잔뜩 허리를 구부리고 혜연의 입술에 충동적(衝動的)으로 입을 맞췄다. 태석이 입술이 닿자 혜연의 눈은 두 배로 커졌다. 입술이 닿은 것도 모자라 입술 안으로 태석의 혀가 들어오자 놀라서 숨도 못 쉴 지경이 되어 버렸다. 태석이 혜연을 더욱 끌어안았고 그 바람에 워낙 키 차이가 나는 태석으로 인해 혜연은 태석의 품에서 잔뜩 고개를 들고 심지어 발뒤꿈치를 들고 키스를 받아들이기 되었다. 잠시 키스를 받던 그녀가 고개를 떼려고 하자 이번에는 태석이 혜연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밀어내지도 못하는 혜연을 뛰어난 테크닉으로 리드하는 태석, 많은 여자들과 키스해봤지만, 이렇게 키스를 못.하.는. 여자는 처음이라고 태석은 생각하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못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대체 나이는 어디로 먹은 건지 모르겠다.’


 


혜연 또한 이런 키스는 처음이었다. 성진과 키스는 언제나 부드러웠고, 자신을 배려해준 게, 느껴진다는 게 느껴졌는데, 태석은 성진과 너무 틀렸다. 거칠고, 아픔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이 짜릿함은 도대체 뭘까…,


 


그때 수업을 마치는 학교의 차임벨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학교의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태석은 혜연을 놔주었고, 막혔던 숨이 트이자 혜연이 숨을 쉬었다. 지금 그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런 건지, 정말 짜릿함을 느꼈던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걸로 사과 받을게요.”


“뭐…, 뭐야?”


“키스 좀 많이 하셔야겠어요, 후후….”


 


태석이 침대에 일어나며 혜연을 놀리듯 말했다.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태석이 사라지자 혼자 남은 혜연은 넋이 나간 상태로 침대에 앉자있었다.


 


‘태석을 밀어내야만 하는데, 그대로 당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라고 머리로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석의 강한 힘을 핑계로 그 품에 안긴 채 그냥 키스를 받아들였다.


 


‘그럼 내가 잘못한 걸까….’


 


혜연은 군대에서 열심히 훈련 받고 있을 성진과, 방금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던 태석, 두 사람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그녀의 마음까지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


 


“장 혜여어어언~!”


“헉~ 엄마…, 엄마 지금…, 뭐 뭘 든 거야!”


 


학교에서 태석에게 당한 것 때문에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던 혜연은 집에 들어오면 엄마한테 죽을 것이라는 걸 까먹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들어왔다. 그런 그녀를 주방에서 양파를 썰다가 발견한 혜연의 엄마는 그녀의 딸을 본 순간 흥분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식칼을 손에 그대로 쥔 채로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러 나오셨다.


 


“나 너 그렇게 안 키웠다. 연락도 없이 외박이야…, 아빠 출장 갔다고 엄마를 만만하게 보는 거니!”


“어, 엄마! 제발! 칼은 저리 치워!”


“친구들 집에서 자고 왔다는 그런 말 하지 마! 미영이, 명선이, 다혜한테 다 전화 해 봤으니까! 다른 친구네서 자고 왔다는 말도 하지 마! 네 친구가 미영이, 명선이, 다혜 밖에 없다는 거 엄마도 다 아니까! 그럼 이제 솔직히 말해 보시지? 우리 예쁜 딸…, 어디서 주무시고 오셨나? 딸 걱정에 엄마는 밤을 ‘홀~딱’ 지새웠는데… 내가 이 나이에 다크 써클까지 생겨서 고운 얼굴 흉칙하게 만들어야겠니?”


“어, 엄마…, 제, 제발 진정하세요. 네?”


“하하하! 진정? 너 지금 나보고 진정하라고 했니? 옷까지 갈아입으셨네? 착한 경연이 그런데다 부려먹지 말라고 했지!”


“엄마…, 우선 카, 칼…, 그 칼부터 치워…, 응? 우리 소파에 앉아서 이성적(理性的)으로 얘기하자.”


 


지금 혜연은 구두를 막 벗고 들어오려고 했었는데 엄마 때문에 스타킹만 신은채로 입구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너 지금 앉아서 얘기 하자고 했니?”


“그럼 이대로 서서 얘기 할 거야? 제발 진정해….”


“너 같으면 이 험한 세상에 딸이 연락도 없이 외박을 했는데 진정 하겠어?”


“그래도 나 이렇게 무사히 왔잖아. 헤헤! 엄마 한 번만 봐줘 응? 아무 일 없었어. 진짜로!”


“그래~? 아무 일 없었으면 밤새 뭘 했는지 다 말해 줄 수 있지? 육하원칙으로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나 한 번 말씀해 보시지?”


“그, 그래…, 그럼 우리…, 우선 앉아서…, 응?”


“좋아! 그럼 우선 들어오시지!”


 


혜연은 소파로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 이 육하원칙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 날 리가 없었다. 큰일이다. 정말 큰일이다. 솔직히 정말 사실대로, 실습 나간 학교 남학생이 일하는 호프집에 우연히 갔다가 술이 취했는데 그 남학생 아는 형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왔다고 말한다면, 그녀의 엄마는 남학생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한 다음, “자네, 우리 혜연이를 책임지게!” 라고 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누가….”


“내가, 그러니까 제가요.”


“언제?”


“어젯밤에….”


“어디서….”


“아는 사람 집에서….”


“어디서!”


 


뭐라고 대답해야 한단 말인가! 자기도 모르는 사람 집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실습나간 학교 있잖아요, 담당 선생님 반 학생 중에 태, 태혁이라고 있는데요!”


 


태석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혜연의 대답을 끝까지 다 들은 그녀의 엄마는 정말 태석에 대해 알아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 태혁이 학생 아는 형 집에서….”


“어떻게.”


“침대에서 잤어요.”


“왜!”


 


눈을 지그시 감고 혜연의 대답을 듣고 있던 엄마는, 남학생이 아는 형 집에서 잤다는 말을 듣자 감고 있던 눈을 치켜뜨며 소리를 버럭 지르며 왜 라고 물어봤다. 그 기세에 눌려 쫄아버린 혜연은 대답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술 취해서 다른 집에서 잤다고 하면 그녀의 엄마는 당장 동사무소 가서 호적에서 그녀의 이름을 파달라고 할 사람이었다. 여자가 술 취해서 다니는 걸 제~일 싫어하는 혜연의 엄마, 그래서 그녀는 대답을 얼버무리고 있었다.


 


“왜라고 내가 묻잖아!”


“그러니까요, 그게, 엄마, 그냥 나 죽지 않을 만큼만 때려줘! 나 엄마 딸 계속 하고 싶어!”


“뭐? 그 뜻은 지금 대답을 안 하겠다는 거야?”


“으응….”


“이, 이년이!”


 


말을 안 하겠다는 건 그만큼 큰 죄를 저질렀다는 뜻, 다른 집에서는 이게 큰 죄가 아닐지 몰라도 혜연의 집안에서는 사형(死刑)감이었다.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살아보자!”


“으흐흑! 엄마, 살살 때려줘! 흑흑!”


 


손에 쥐고 있던 식칼을 소파 한쪽에 내려놓고, 양팔의 옷소매를 걷어 올린다. 혜연은 양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 안고 방어태세를 취했다.


 


“엄마!”


 


그때…,


혜연의 구세주(救世主)인 경연이 나타났다. 딱 봐도 지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이해를 한 경연은 뛰어 들어와 엄마의 팔을 붙잡았다.


 


“이 새끼! 너 안 비키냐!”


“엄마! 제발 진정해!”


“너도 똑 같애, 이 새끼야! 누나 옷이나 갖다 주고….”


“엄마!”


 


경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엄마를 말리면서 혜연에게 방으로 들어가라고 눈치를 줬다. 혜연은 우선 살고 봐야 했기 때문에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궈 버렸다. 정말…, 이럴 때는 행동이 무지 빠르다.


 


“장 혜연 안 나와?”


“엄마! 누나 나이가 몇 개인데 외박 한 번 한 거 가지고 이렇게 소란이야?”


“어쭈? 이 새끼, 내가 너 고 3이라고 봐 주면서 오냐오냐 했더니 이제 바짝 바짝 기어오르기까지 하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엄마 누나한테 너무 그러지마, 아무 일 없었데, 나한테 다 말했어, 응? 진짜 별 일 없었어, 봐~ 저렇게 무사히 돌아왔잖아. 응? 누가 지금 교생 실습 때문에 많이 힘들 텐데 우리까지 그러지 말자. 네…?”


“어휴, 내가 못 살아! 정말!”


 


이렇게 장 씨 집안은 서서히 평화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03부와 04부를 게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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