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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선생의 정복기 - 4부



용식의 말에 유진은 직감적으로 뭔가 안 좋은 일이 시작될거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용식의 어조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겁이 절로 나고,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지만, 그녀는 일단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뭘 하자는 거에요?” 유진은 못 알아들은 척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용식에게 신고하겠다고 협박을 할까? 용식이 그 뒤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무서웠다. 뛰쳐나가서 도움을 청할까? 문도 닫혀 있고 용식이 폭력까지 사용하면 더 큰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용식과 대화를 좀 더 해봐서 설득해볼까? 이렇게까지 준비를 하고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남자가 순순히 말을 들어줄 리가 없다.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일이지만 점심시간 때처럼 손하고 입으로만 용식을 만족시켜 주는 게 최선의 방법일 것 같았다. 분명히 뭔가를 더 요구하겠지만 그 이상은 죽어도 싫었다. 이 정도만 해도 얼마나 양보한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지금 자신의 몸에 이상한 성욕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을 좀 더 쉽게 다루기 위해선 그 약을 먹이는 게 유리할텐데...... 유진은 단순히 용식이 실수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일단은 약의 효과 때문에 이성이 흐려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쇼를 하라니까, 쇼 몰라? 스트립쇼 말야.” 용식의 말에 유진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이런 인간 앞에서 자진해서 옷을 벗을 순 없었다. “점심 때 했던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절대 안돼요!” 유진이 단호하게 말하자, 용식은 능글맞게 물었다. “점심 때 했던 것? 그게 뭔데?” 정말 상대하기 싫은 인간이다. 유진은 용식이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느껴져 그냥 입을 다물었다. “오늘은 황선생 서비스 받을 생각 없어, 다만 내가 황선생에게 서비스를 해주고 싶을 뿐이지.“ 용식의 말에 유진은 소름이 끼쳤다. 아까부터 용식이 자신을 강제로 덮치면 어떡하나 걱정이 자꾸 들었는데, 그 일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용식에게 맞서겠다는 생각은 사그라들고, 그냥 이 방에서 나가고만 싶었다. “걱정말라고 황선생, 오늘은 거기까지 가진 않을거니까. 집에 빨리 가고 싶으면 그냥 순순히 내 말을 따르는 게 좋을거야. 그리고 분명 황선생에게도 기분 좋을 일일테니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라고." 용식이 한층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지만, 유진의 귀에는 그의 말 중 앞부분 밖에 들리지 않았다. 특히 ‘오늘은’이라는 말이 어찌나 거슬리던지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머릿속에는 자꾸만 나쁜 상상만 떠올랐다. 용식이 갑자기 일어나 짐승처럼 자신에게 달려들어 입을 틀어막고 강제로 옷을 벗기는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상상 속의 용식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주저 없이 주먹질, 발길질을 날려댔다.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취급을 받고, 여자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다. 최근에는 연락도 잘 않던 애인 생각이 자꾸만 들고, 거의 의절한 것이나 다름없는 부모님 생각도 들었다. 여러 친숙한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나중에는 평소 관심도 없던 학교 선생님들까지 떠올랐다. 제발 누구든 좋으니 나를 구해줘! 유진은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었다. 그 때, 용식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진은 그런 그의 행동에 놀라, 무의식적으로 가방에 손을 뻗쳤다. 그러나 어느새 번개 같이 유진 쪽으로 다가 온 용식은 그녀의 손에서 가방을 낚아챘다. 유진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그는 숙직실 왼쪽 벽에 달린 문을 열더니 낚아 챈 가방을 그 안으로 집어 던졌다. 용식이 거칠게 문을 닫아버리자, 유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추렸다. 그녀의 마음 속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용식에게 애원하고 싶다는 유혹이 떠올랐다. 용식이 가까이 다가오자 유진은 더욱 더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자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 유진을 용식은 전에 없이 탐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울고 싶거나 소리지르고 싶으면 그래도 좋아. 그게 더 나한테는 즐거울테니.” 용식이 마치 어린 아이 달래듯 말하자, 유진의 가슴 속에 발끈하고 뭔가 치솟아 올랐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전에 없이 위태로운 건 인정하겠지만, 이 남자에게 그냥 놀림이나 당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의 뜻대로 되더라도, 억지로 질질 끌려가는 것처럼 보이기는 싫었다. 자꾸만 자신을 조여 오는 공포와 조롱 앞에 유진은 최대한 타협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따르기로 하되, 더 이상 약한 모습도, 끌려 다니는 모습도 보이지 않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결심을 했지만 실천 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유진은 징그럽게 웃고 있는 용식에게 따귀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겨우 말을 꺼냈다. “하겠어요. 할테니 아까 앉았던 자리에 가서 앉아줘요.” 유진이 그렇게 말하자 용식은 한번 어깨를 으쓱한 후, 소파에 가 앉았다. 용식이 스트립쇼라고 했지만 유진은 춤을 추거나, 아양을 떨 생각은 없었다. 그녀에겐 용식 앞에서 옷을 벗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용식이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어서 시작하라는 듯 등받이에 손을 턱 걸치자, 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폴라부터 벗기 시작했다. 용식 단 한사람만 보고 있지만, 그녀에겐 인파 한 가운데서 옷을 벗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진의 손이 그 때문에 느려지자 보고 있던 용식이 비웃는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에 자극받은 유진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폴라를 훌렁 벗어 던졌다. 바지도 얼른 벗어버렸다. 속옷만 남기고 벗은 그녀를 용식은 감탄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정말 군침이 절로 도는 몸매였다. 남 모르게 많이 훔쳐 본 몸매였지만, 바로 눈 앞에서 바라보니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좀 더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어져 용식은 벌떡 일어나, 유진의 주위를 빙빙돌며 천천히 그녀의 몸을 감상했다. 그런 그에겐 마치 자신이 빚은 도자기의 흠집을 찾아내려는 도공처럼, 노련한 분위기까지 풍겼다. 용식은 그녀의 몸매가 예전에 따 먹은 레이싱모델의 몸매와 많이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쭉 뻗은 긴 다리와, 넓지도 좁지도 않은 어깨, 아름답게 일자로 파인 쇄골, 탄력 있는 허벅지와 군살이라곤 하나 없는 복부, 전체적으로 약간 마르긴 했지만 보기 싫은 데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몸의 전체적인 비율도 한국 여성에게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황금비율이었다. 그러나 세세한 곳에서는 오히려 유진의 몸매가 그 레이싱모델보다 괜찮았다. 아무리 관리를 받더라도 타고나지 않고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피부가 그러했다. 몸 어느 한 구석에서도 쳐지거나, 지저분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가슴은 몸에 비해 큰 편이었는데, 그 약간의 언밸런스함이 용식의 구미를 당기게 했다. 브래지어를 하고 있긴 하지만, 동영상에서 봤던 대로라면, 드러내도 보기 좋은 모양을 유지할 것이다. 서비스로 젖꼭지까지 선홍색이었으니 용식은 유진이 자기 가슴을 잘 관리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이라도 표하고 싶었다. 얼굴까지 비교하자면, 완벽한 유진의 승리였다. 그 레이싱모델은 속된 말로 인조인간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유진은 성형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자연스런 느낌을 유지하면서 눈, 코, 입 어디 한군데 떨어지는 곳이 없으니 이 얼마나 축복받은 몸이란 말인가. 이런 여자가 연예계나 화류계로 진출했다면, 몸뚱아리 하나만으로 많은 돈과 인기를 끌어 모을 수 있었을텐데, 왜 선생질이나 하고 있을까. 세속에 찌들대로 찌든 용식은 그런 유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때문에 나 잡아잡수 하고 그녀가 용식의 품에 뛰어든 것이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봐야 했다. 용식은 이것도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이 아름다운 사냥감을 맛있게 먹어치우기로 마음 먹었다. 용식이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유진은 다만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빌 뿐이었다. 아까부터 용식이 자신의 주위를 빙빙 돌며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알몸으로 맹수우리에 던져지면 이런 기분일까. 유진은 비웃음을 듣기 싫어, 서둘러 옷을 벗은 걸 깊게 후회했다. 용식의 눈길이 멈출 때 마다, 냉혈동물이 자신의 몸을 기어오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꺅!” 갑자기 용식의 손이 자신의 몸에 닿자, 유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저앉을 뻔 했다. 용식의 손은 실제로 차갑진 않았지만, 긴장하고 있던 유진에게는 그 무엇보다 싸늘하게 느껴졌다. 바로 그때, 유진의 등 뒤로 뾰족한 것이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직감적으로 칼이란 걸 알아차린 유진은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용식의 손이 더 빨랐다. 두려움에 몸을 사시나무처럼 떠는 유진을 뒤에서 안은 용식은, 그녀의 귀에 낮고 스산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 지금 엄청나게 흥분하고 있어서 뭔 짓을 저지를지 몰라.황선생이 자꾸 발버둥치고 소리 지르면 내가 당연히 화가 나겠지? 제발 내가 필요한 이상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황선생이 도와달라고. 알아들었으면 고개를 끄덕거려봐.“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용식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소리 내어 웃었다. 유진의 귀에는 악마가 웃는 것처럼 들렸겠지만, 용식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소리 지르고 그래봐야, 이 방 구조상으론 멀리 퍼져나갈 수도 없어. 지금 시간에는 들을 만한 사람도 없고. 오늘은 금방 끝내줄 테니까 얌전히만 따르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자신을 유진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벼랑 끝까지 내몰린 건 자신의 탓이 컸다. 처음부터 옆자리의 용식의 눈여겨봤었다면 어땠을까? 매일 자신이 가지고 오는 생수병을 항상 가지고 다니기만 했었더라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이상한 욕구가 생긴 바로 그날, 병원에 가기만 했었어도 좋았을 것을......왜 그 땐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었을까? 유진은 처음으로 자신이 죽이고 싶도록 미워졌다. 그런 후회감에 젖어 있는 유진을 용식이 갑자기 번쩍 들었다. 놀란 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발버둥치려고 했으나, 공포감 때문인지 몸은 나무토막처럼 뻣뻣이 굳어 있었다. 용식은 그런 유진을 간이침대 위로 옮긴 후, 뒷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유진이 티비 속에서나 봐 왔던 물건, 바로 수갑이었다. 예상치 못한 물건의 등장에 유진은 또 한 번 공포감을 느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심한 폭력이 자신에게 가해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으나, 턱이 덜덜 떨려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싶었으나, 눈꺼풀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용식이 자신의 두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웠지만, 유진은 손가락 하나 움찔거리지 못했다. 자신의 속옷을 벗겨내는 그 순간에도 그녀는 마네킹처럼 굳어 있을 뿐이었다. 깊은 공포감 때문인지 유진은 수치심마저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용식의 능수능란한 손길에 유진은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용식이 마사지 하듯 그녀의 어깨를 아주 부드럽게 어루만졌던 것이다. 소름 끼치는 인간의 손길이었지만, 그런 유진의 마음과는 다르게 마사지를 받는 몸은 기분 좋은 나른함에 빠져들어갔다. 탐욕에 젖어 마구 달려들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용식이 신중한 모습으로 마사지에 열중하자 유진은 당황스러웠다. 당장 멈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용식의 손이 지압하듯 자신의 등을 꾹 누르자 신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프긴 하지만 어딘가 기분 좋은 아픔......지금 자신의 몸을 주무르고 있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조차 잊게 만드는 부드러운 움직임...... 어느새 허벅지까지 손이 내려와, 자신의 비부와 가까운 곳을 주무르는데도 유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종아리를 따라 내려온 손이 마지막으로 발을 어루만지자 단 한숨이 절로 터져나왔다. 살결을 부드럽게 스치는 그 손길에, 자신이 원하는 곳을 가장 알맞게 지그시 눌러주는 그 손가락에, 더 하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그 야속한 어루만짐에......유진은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었다. 갑자기 목에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용식이 혀를 갖다 댄 것이다. "뭐......뭐......하......으음......아......!" 뭔가 말하려고 했으나, 유진의 혀는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용식의 혀가 닿은 목 쪽에서 열기가 피어올라 귀까지 빨개진 것이다. 곧바로 용식의 혀가 귓불을 핥고, 귓구멍까지 유린하자, 귀에서 전기라도 오른 듯, 짜릿한 느낌이 퍼져나갔다. 마......말도 안돼...... 유진은 예전에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바로 자위를 하기 전 바로 그 느낌. 머릿속으론 계속 부정했지만 몸은 정직하게 그 느낌을 말해주고 있었다. 혹시 나도 모르는 새 약을 먹은 것인가? 유진은 얼른 자신이 마지막으로 물을 마신 게 언제인지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용식이 자신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하자, 그녀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용식은 물풍선 가져놀듯, 유진의 부드러운 가슴을 조심스레 매만졌다. 그러다 점점 뭔가를 반죽하듯, 힘을 가해 주무르고, 돌리고, 유두를 손가락 끝으로 꾹 누르기까지 했다. 집요한 그 손길에 유진은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다 용식이 그녀의 가슴을 받쳐들고, 혀를 길게 빼어 얼굴을 가까이 해오자 유진의 머릿속에 위험하다는 신호가 떠올랐다. 더 이상 했다가는 위험해......하지만 그런 의사와는 상관 없이, 젖꼭지는 기대감에 잔뜩 솟아 있었다. 저 혀가 닿으면, 닿으면......! "아! 하악! 윽......" 가슴의 첨단에서부터 빠르게 쾌감이 번져나가자, 유진은 신음을 토해냈다. 고개가 저절로 위로 쳐들어지고, 눈 앞이 아찔아찔 했다. 만약 손이 자유로웠다면, 무의식적으로 용식의 머리를 껴안았을지도 모른다. 용식이 내뿜는 뜨거운 숨길이 가슴골 사이를 계속 달궜다. 가슴 사이에 뜨거운 자극제라도 집어넣은 기분이다. 용식의 혀가 젖꼭지는 물론 그 주위까지 핥아오자, 거부할 수 없는 쾌감이 가슴을 메워왔다. 마무리로 용식이 젖꼭지를 머금고, 앞니로 살짝 깨물자 유진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안돼!......아......안......돼......” 칼로 위협을 당했을 때조차 비명을 지르지 않았는데, 견딜 수 없는 자극에 드디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어느새 유진의 하복부는 따뜻한 물이라도 부은 것처럼 흠뻑 젖어있었다. 전신이 쾌감 때문에 움찔움찔 거렸다. 지금까지 어떤 일을 당해도 이성을 잃지 않던 자신이, 지금은 바보처럼 순수하게 전율하고 있었다. 처음 자위를 했을 때가 문득 생각났다. 그때도 위험하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했었지만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와 같다......자신은 거부의사조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쾌감 때문에 그런 것이다. 유진의 마음속에 새로운 두려움이 느껴졌다. 폭력을 당할까봐 두려운 게 아니었다. 협박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계속 이어질 쾌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그녀 자신도 평생 모르고 있던 어떤 욕망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약 때문이야! 이건 분명 약 때문이야! 점심시간 때 자위를 끝내지 못해서 그런 거야! 정신차려!‘ 유진은 이 말도 안되는 쾌감에 저항하기 위해, 마치 거부의사를 나타내는 듯이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예상치도 못한 곳에 용식이 혀를 갖다 대자 유진은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용식이 그녀의 발가락을 핥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설마 했지만 발을 직접적으로, 그것도 혀로 애무하다니. 유진은 순간적으로 발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까 하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강제로 옷을 벗을 때 느낀 것이 수치스러움이라면 지금 느끼는 것은 뭔가 소녀적인 감성의 부끄러움이었다. 발가락을 오므려 나름대로 저항을 해봤지만 용식은 상관없다는 듯 발가락 전체를 집어삼키듯이 입에 넣었다. “흐......흐윽......” 유진의 입에서 비음이 섞인, 어딘가 애달픈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물고, 빨고, 핥고 하는 입으로 하는 애무는 전부 지저분하다고 생각 했을텐데,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혐오스러운 인간이 자신의 몸 곳곳에 더러운 침을 묻히고 있는데, 유진은 지금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약점을 마구 맞아 그로기 상태가 된 권투선수처럼, 자신도 몰랐던 성감대를 사정없이 공략당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힘이 빠져 발가락 사이가 펴지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용식의 혀가 들어왔다. 간지러웠지만 종아리까지 벌벌 떨릴 정도로 짜릿한 느낌...... 유진은 잠시 그 느낌을 아무 생각 없이 즐기다가 어느새, 자신의 두 다리가 꼴사나울 정도로 벌어진 걸 알아채고 기겁을 했다. 이런 인간 앞에서 보란 듯이 자신의 비부를 드러내다니! 유진은 서둘러 발을 빼낸 다음, 빠르게 몸을 일으켜 벽과 맞붙은 침대 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용식에게 그만하라고 소리치려는 그 순간...... “앗......!” 유진의 허벅지를 타고 그 곳에 고인 물이 흘러내렸다. 남 앞에서 실례를 해도 지금보단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이건 이 파렴치한의 애무에 자신이 흥분했다는 증거 아닌가? 손이라도 자유로웠으면 얼른 가렸을 것인데,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무릎을 세워 앉을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들자 용식이 다 봤다는 듯이 야비하게 웃는 게 눈에 들어왔다. 유진은 화가 벌컥 났지만, 그보다 이성을 따라주지 않는 자신의 몸이 원망스러웠다. 분명히 여기에 올 때까지는 멀쩡했는데, 용식의 애무에 약기운이 오른 것 일까? 소재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약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다른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용식의 애무가, 약에 취해 자위하기 전 자신이 직접 하는 애무 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짜릿했던 것이다. 아무리 약기운이 올라왔다고 해도 이런 혐오스러운 인간의 그런 더러운 짓을 기분 좋다고 느끼다니......유진은 그런 자신이 한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유진이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동안, 용식은 흥분한 자신을 조금씩 가라앉히고 있었다. 오늘은 간단하게 맛보기 정도만 하려고 했었는데, 유진의 몸을 애무하다보니 생각보다 더 흥분되었던 것이다. 더 이상 계속하다간 첫날부터 선을 넘을 것 같아 용식은 최대한 빨리 냉정함을 찾으려 했다. 보통 남자라면 이런 경우에 절대로 참지 못하고 바로 달려들었을 것인데, 그는 오히려 이성을 잃을 뻔한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하마터면 계속 맛볼 뻔 했잖아, 어린애처럼 이게 뭐하는 짓거리람...... 즐거움은 나중에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데......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어느 정도 머리를 식힌 용식은, 아직도 여러 감정에 휩싸여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유진에게 친절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그렇게 기분이 좋았어, 황선생?” 유진은 발끈했지만 차마 뭐라고 대꾸 하지 못했다. 아까부터 용식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이 놀아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계속 했다가는 황선생 완전 보내버릴 것 같구만, 처음이니까 이번엔 이 정도만 하자고, 나중에 더 즐겁게 해줄테니......“ “나중이라뇨? 내가 그렇게 하도록 놔둘 것 같아요?” 나중이라는 말에 유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용식에게 소리쳤다. 지금 자신의 꼴이 말이 아니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볼썽사나운 모습만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말에 안도감도 느꼈지만, 유진은 도저히 오늘 같은 일을 또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설마 내가 황선생만 실컷 즐겁게 해주다가 끝낼 줄 알았어? 내가 짜놓은 계획대로만 얌전히 따라주면 나중에 황선생에게 어떤 일로도 귀찮게 하지 않겠다 약속하지. 하지만 황선생과 나 사이에 있던 일을 발설하거나, 나에게 무슨 해코지를 하거나, 도망치려 한다면 그땐 정말로 가만히 있지 않을 꺼야.“ 용식이 갑자기 정색하며 말하자 유진은 가슴이 꽉 메이는 것 같았다.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말하는 게 도저히 허튼 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반박하고 싶은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괜히 말을 꺼냈다가 용식을 자극할까 두려워졌다. 유진이 뭐라 대답도 못하고 아랫입술만 꼭 깨문 채 자신의 시선을 피하자, 용식은 금새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꺼냈다. “하고 싶은 말은 많겠지......하지만 오늘 집에 가서 찬찬히 생각해보면 황선생이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달게 될 꺼야. 내 뒷조사를 해서 역으로 내 약점을 캐낸다?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내게 살해 협박이라도 한다? 일단 신고해서 나를 경찰에 넘기고 멀 리 도피한다? 뭐 방법은 많겠지......하지만 사람은 말이야. 각자 각오할 수 있는 한계란 게 있어. 지금까지 내가 겪어 온 바로는 말야.“ 이번엔 마치 풀 죽은 제자를 타이르는 듯한 말투였다. 거기다 지금 용식이 말한 것들은, 협박당한 후에 유진이 생각한 몇 가지 대응책 이었다. 이런 짓은 몇 번이라도 해봤으니 사냥감이 하려는 것은 뭐든 꿰뚫고 있다는 것인가? 용식이 뭐라고 떠들던 간에, 차분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보려던 유진에겐 맥이 풀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용식의 태도에 소름이 확 끼쳤다. 지금까지 질질 끌려오기만 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걸까......유진은 지금까지 자신을 간신히 지탱해 준 자존심마저 서서히 무너져 가는 걸 느꼈다. 유진이 고개를 떨구는 걸 보고 용식은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유진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한 후 이렇게 속삭였다. “그냥 받아들이면 편해. 아니......편한 것보다 훨씬 즐거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까 처럼 황선생을 즐겁게 만들어 준 사람이 지금까지 황선생 인생에 있었나?“ 단지 속삭인 것 뿐 이었지만, 유진에겐 그 어떤 말보다 크게 들렸다.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고 용식의 얼굴에다 침이라도 뱉고 싶었으나,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용식의 애무에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쾌감을 느낀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위를 했을 때보다도 오히려 더 깊고 다채롭게 느껴진 쾌감......만약 자신의 비부까지 용식이 건들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까부터 흘러넘치다 못해 앉은 자리까지 적시고 있는 자신의 분비물을 생각하니, 그 결과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분명하게 자신은 쾌감을 느꼈다. 그것도 아주 짜릿하게. 하지만 이 인간에게 느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자신이 세운 마지막 보루마저 스스로 무너뜨리는 꼴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자니, 무언의 긍정을 하는 것 같아 유진은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즐거움은 모르겠지만, 혐오감은 확실히 드네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용식은 그런 대답을 듣고도 별로 개의치 않는 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앞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더니 유진이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의 나체를 찍기 시작했다. 유진은 서둘러 몸을 잔뜩 웅크리고 얼굴을 무릎뒤로 파묻었다.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였다.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지만 지금 울었다간 겉 잡을 수 없이 약해질 것 같아, 속으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만족할만큼 사진을 찍었는지 용식은 휘파람을 불며 다시 카메라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뒷주머니에서 자그만 열쇠를 꺼낸 그는 유진의 손을 구속하고 있는 수갑을 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수갑이 풀리자 용식은 친절하게 유진이 벗은 옷가지까지 가져와 그녀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 유진 앞에 용식이 무슨 수첩 같은 걸 내밀었다. 한 장이 9칸으로 나누어져 있고, 칸마다 숫자가 차례대로 적혀 있는 수첩이었다. 용식이 몇 장 넘기자 딱 100번째에서 칸이 끝나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제일 앞에 있는 1이란 숫자가 적혀 있는 칸에 사인 같은 게 적혀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일수놀이 하는 사람이 쓰는 수첩 같았지만, 유진은 그 수첩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뭐죠?” “앞으로 황선생이 나를 만족시켜줘야 하는 횟수야. 오늘은 그럭저럭 첫날이니 서비스로 한번 체크해줬지.“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라 말인가. 유진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100번이라니, 거기다 만족시켜야 하는 횟수라니. 만족감에 기준이란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용식이 만족하지 않았다고 하면,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헛짓거리를 한 거나 마찬가진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란 건지......유진은 대체 무엇부터 이 부당함을 얘기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런 유진은 신경 쓰지도 않는지, 용식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기준은 너무 엄격하게 잡지 않으니까 걱정말라고.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하지도 않을거고 말야......만약 순순히 나를 만족시켜준다면 여름방학? 그쯤이면 황선생을 놔주지. 아무 일 없었던 듯이......황선생이 마음만 연다면, 물론 나도 오늘처럼 황선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거고, 그럼 둘 다 즐기는 일이 될테니 얼마나 괜찮은 일이야, 안그래?“ “말도 안되는 말 하지 말아요! 내가 그런 요구 받아들일 것 같아요!” 유진이 분노에 휩싸인 얼굴을 하고, 소리를 지르자 용식은 오히려 작게 껄껄대며 웃었다. 그녀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싸늘히 자신을 노려보았는데도, 웃음을 그치질 않았다. 잠시 후, 웃음을 딱 그친 용식은 차갑게 말을 꺼냈다. “집에 가서 잘 생각해보라고. 나에게 벗어날 방법으로 뭘 택할건지. 지금 내가 나간 다음 에 바로 신고해도 좋아. 그 다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엄청나게 끔찍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유진은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까보다 훨씬 더 심한 한기를 느꼈다. 도저히 용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 그녀는 말 없이 고개만 옆으로 돌렸다. “그럼, 내일 출근 잘 하라고 황선생, 아픈 척 하고 병가 내거나 해도 황선생이 어디있는지 알아내는 건 금방이니까. 허튼 생각말고......난 100번 다 채울 때까지는 몇 년이 걸려도 황 선생 물고 늘어질거니까, 그냥 빨리 빨리 해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알아들었으면 나 먼저 가볼게. 좀 있다가 황선생도 나와서 집에 가라고.“ 용식은 그 말을 끝으로 숙직실을 나갔다. 하지만 용식이 나간지 한참이 지난 후에도, 유진은 오늘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지옥 같던 하루가 끝났다는 실감보다,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더 크게 들었다. 그냥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까는 그렇게 울고 싶었는데, 지금은 눈물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그저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렇게 서 있던 유진은 천천히 소파 쪽으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집에까지 갈 기력도 하나도 없고, 그냥 여기에 누워 잠들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유진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아까까지 자신이 앉아있던 간이침대의 끝자락......그 부분만 작게 뭔가가 묻은 흔적이 있었다. 무엇이 묻은 건지는 유진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유진의 머릿속에 용식이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그냥 받아들이면 편해. 아니......편한 것보다 훨씬 즐거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까 처럼 황선생을 즐겁게 만들어 준 사람이 지금까지 황선생 인생에 있었나?“ 왜 하필이면 그 수 많은 말 중에 이 부분이 떠올랐을까. 유진은 그 생각을 지워버리려는 듯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으나, 그럴수록 더욱 또렷해질 뿐이었다. 자신의 머릿속을 울리는 악마의 속삭임.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바로 저 앞에 있는데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한단 말인가. 유진은 결국 울고 말았다. 하루에 두 번이나 운 것은 그녀 기억으론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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