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인님을 사육합니다 - 1부 3장
“멍청한 새끼가.......”
놀란 정훈은 아무 말도 못한다. 그런 폭언은 한 번도 은채에게 들어본 일이 없었다.
언제나 깔끔한 말투와 몸가짐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속살을
드러낸 은채는 냉혹하고 거칠었다. 정훈이 차 뒷자석 남자를 먼저 밀어 넣자
그 옆에 은채가 앉는다.
“출발해.”
#6
은채는 남자의 팔을 등 뒤로 모아 손목에 수갑을 채운다.
모형이나 장난감이 아닌 현장에서 사용하는 단단한 것이다.
발목에도 채우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걷는 게 힘들어지는데다가
이목을 끌까봐 그렇게는 차마 하지 못한다. 핸드폰 홈 버튼을 꾹 눌러
시계를 들여다보는 은채의 표정은 싸늘했다.
“이제 슬슬 깰 때가 됐는데.”
“...그렇게 빨리 깨?”
“전기충격기로는 10분 이상 기절 못 시켜.”
은채의 목소리에는 ‘그런 것도 몰라?’ 같은 류의 비난이 섞여 있었다.
정훈은 운전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귀는 뒷좌석에 열어두고
힘겹게 핸들을 돌리는데,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남자의 것이었다.
“움직이지 말아요.”
은채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나직했다. 그런 은채의 목소리에 남자는 한동안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몸만 계속 움찔거릴 듯 선뜻 말을 하질 못한다.
은채는 계속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이성민 씨죠? 저희는 경찰입니다. 지난주 수요일 이태원 가셨을 때
‘Seven"이라는 음식점 가셨었죠?”
은채가 며칠 동안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파악한 사실이지만, 그런 줄은 꿈에도
모르는 남자는 놀라서 대답한다.
“네....... 와이프랑 갔었는데... 그런데 왜.......”
‘와이프’라는 말에 은채는 가슴이 바늘에 찔린 듯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다.
하지만 목소리에서는 전혀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어찌나 부드러운지 미끄러울 정도다.
“지금 거기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용의자가 되셨어요.”
“용의자요?”
“네. 살인용의자요.”
“살인요? 전 전혀 모르는 일인데요? 와이프랑 밥만 먹고 나왔는데요....... 그날.......”
정호는 운전을 하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숨죽이고 듣고 있다. 아무리 엉겁결에
전기 충격기에 당했다지만 자신을 공격한 여자를 대하는 것 치고는
지나치게 평온한 대화다. 정호는 저 남자가 두 가지 타입 중 하나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멍청하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순진하거나.
“모시는 방법이 이래서 죄송해요. 하지만 아까 전에 골목에서 절 공격하려고
하시는 줄 알고 그만....... 아무래도 살인용의자시다보니.”
“아... 네.......”
남자는 뭔가 석연 쩍은 부분이 해결되었다는 듯 믿는 눈치다.
“근데 경찰서로 가나요? 저 손목 좀 풀어주시면 안돼요?”
“지금 바로 경찰서로 가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현장 하나만 확인해주시면
바로 풀어드릴 수 있거든요.”
“그럼 이태원으로 가나요?”
“아뇨 그 현장 말고 다른 현장이 한 군데 더 있어서요....... 연관이 있는 곳입니다.”
남자는 의외의 상황에 아주 당황해하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지
그 현장이 어디쯤이냐, 여기서 머느냐, 정말 오늘 당일 혐의가 풀릴 수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했다. 남자가 조금만 더 똘똘했다면 당장 경찰 신분증이라도 요구했으련만,
그런 말조차도 없다. 아니면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상대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조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순한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은채의 상대가 될 수 없는 타입이었다. 은채는 남들보다 특출하게 유능했지만,
단지 능력만 가지고 30대 초반의 젊은 여자가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라이벌이 될 만한 선배, 후배, 동기들을 철저하게 밟고 자신의 업적은 최대한 포장하며
전쟁터를 헤쳐 온 열혈 커리어우먼, 은채에게 성민은 속된 말로 밥이나 다름없었다.
그 와중에 차는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한강 OO대교를 넘어 여의도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은채의 집은 지척이다. 은채의 마음은 벌써부터 오랜 꿈을 이룬 것처럼
나른하고 개운하다. 이 정도로 쉽게 일이 풀릴 줄 알았다면 전기 충격기 따위
사용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은채는 생각했다. 조심스레 집게손가락으로 성민의
손목을 채운 수갑 위를 쓸어 본다. 급박한 상황에 창밖과 차 안을 연신 두리번대는
성민은 그런 은채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참동안 눈을 굴리던 성민이 묻는다.
“저기....... 그런데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걱정 마세요. 금방 도착할 거예요.”
방싯 웃으며, 은채가 대답했다.
#7
방 세 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은채의 집은 부모님이 그녀의 서울 취업을 축하하며
사 준 것이다. 지방 출신이었지만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복하게 자란 은채는
그런 부모님의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은채가 가장
큰 안방은 비워둔 채 작은 두 방만 각각 침실과 옷방으로 사용해온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정훈도 은채와 교제했을 때 그 점을 궁금해 했었다.
부모님이 자주 드나드시는 것도 아닌데 굳이 안방을 비워놓을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서야 성민은 은채의 행동을 이해했다.
가느다란 무색의 줄무늬가 입체적으로 들어간 흰 벽의 안방은 사실 그냥 비워놓은
것이 아니었다. 문에서 가장 먼 방 모서리에는 천장과 바닥을 굳건히 연결하는
굵은 파이프 기둥이 있었다. 위아래를 어찌나 철저하게 고정시켜놨던지 천장이
무너지거나 바닥이 꺼지지 않는 이상 그 기둥을 넘어트리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은채는 정훈에게 기절한 성민을 그 곳에 기대놓게 시켰다. 집 안을 현장이라며
유인한 뒤 현관에서 다시 전기 충격기를 써서 기절시켰던 것이다. 은채는 한쪽 수갑을
풀고 기둥을 통과시킨 뒤 다시 채웠다. 그리고 발에도 또 다른 수갑을 채웠다.
정훈은 뜨악한 표정으로 그런 은채의 행동을 모두 지켜봤다. 일 년 가까이 교제했으면서도
그녀가 그런 흉한 물건들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 정훈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은채가 중얼거렸다.
“이제는 걸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죠, 주인님? 흠, 또 뭐가 필요하려나...
아. 그렇지.”
은채는 긴 바를 두툼하고 푹신한 재질로 감싼 재갈을 검은 색 스포츠가방에서
꺼내 기절한 성민의 입에 물렸다. 정훈은 잠시 가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발목에 채운 두 번째 수갑도 이 가방에서 나왔던 것이다. 꽤 묵직해 보이는
그 큼지막한 가방에 어떤 물건이 더 들어있을지는 정훈조차도 추측하기 어려웠다.
은채는 몇 번이나 이리저리 돌면서 성민이 제대로 묶여있는지를 확인했다.
“아주 예쁘게 됐네.......”
정훈은 자리에 못 박힌 듯 그대로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정훈에게,
마침내 은채가 시선을 돌렸다.
“오늘 수고 많았어. 정훈씨.”
“너,”
정훈의 딱딱한 얼굴은 마치 돌덩이같이 보였다.
“너, 이런 짓 하면 안 돼.”
“에이. 다 도와놓고 이제 와서.”
은채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정훈에게 다가섰다. 하얗고 부드러운 팔이
정훈의 허리를 감아든다.
“정훈씨 오늘은 좀 멋지더라.”
정훈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은채의 팔과 가슴이 자신의 몸에 감겨오자
마음이 흔들리는 눈치였다. 은채가 그런 기색을 놓칠 리 없다.
“이런 거 오랜만이네... 그렇지, 자기?”
정훈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런 은채의 등을 감싸 안는다. 달콤한 은채의 말.
지난 이년 간 얼마나 원했던 것이었나. 그녀가 여러 남자를 전전하며 자기 멋대로
놀아날 때도 정훈은 그저 참고 기다려 왔다. 그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그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은채에게 면전에서 ‘스토커’ 소리까지 들었을 때 그 심정은 또 어떠했는지.
약간 뚝뚝한 목소리로 정훈이 말했다.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그런 얘기 할 필요 없잖아... 응?”
속삭이는 목소리. 정훈은 그만 눈을 감았다. 따듯한 은채의 팔은 이제 숨을 죌 듯
바짝 감겨온다. 어느 새 정훈의 손은 봉긋하고 탄력 있는 은채의 가슴에 닿아 있었다.
등을 감았던 팔을 풀고 양손으로 은채의 가슴을 주무른다.
“아앙.......”
교태어린 소리를 내며 은채가 몸을 튼다. 하지만 그저 의례적인 행동일 뿐이다.
정훈은 은채의 가슴 사이를 통과하는, 배꼽까지 연결된 셔츠 단추를 모두 푼다.
은채는 소매가 없는 넉넉한 연하늘색 셔츠에 딱 달라붙는 스키니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셔츠가 바닥에 떨어졌다. 달라붙는 바지는 은채가 직접 다리를 움직여 벗어 내렸다.
길고 늘씬한 은채의 다리가 한눈에 드러났다. 심플하고 미니멀한 은채의 검은 브래지어
팬티 세트는 하얀 살결과 대비되어 차라리 외설적으로 보였다.
정훈은 은채의 브래지어 후크를 풀었다.
“옆 방으로 갈까?”
정훈의 속삭임에 은채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하자고? 저 사람 깰 거 같은데.......”
은채가 잠시 성민에게 시선을 주었다. 과연 눈꺼풀이 가볍게 움직이는 것이
금방이라도 정신을 차릴 것 같다. 하지만 은채는 외려 손을 뻗어 바지 속에서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성민의 자지를 더듬었다.
“누가 보고 있으면 더 흥분되지 않아.......?”
“뭐라고? 너 대체.......”
은채는 더더욱 몸을 밀착해 왔다. 팬티 한 장만 걸친 알몸에서 달콤한 살냄새가
풍겨나와, 정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흐응... 우리 자기 이렇게 몸은 흥분되어 있는데... 왜 솔직하지 못하게 이럴까.......”
정훈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끊어지는 듯 느낌이 났다. 수치심도 당황한 마음도
모두 일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다. 정훈은 미친 듯이 땀을 흘리며 은채를 품 안에 가뒀다.
목덜미에 키스 세례를 받으며 은채는 감미로운 콧소리를 냈다.
“자기... 어서.......”
정훈은 서둘러 벨트를 끄르고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벗어버렸다. 그리고 온 몸으로
은채를 누르다시피 하여 바닥에 눕혔다. 귀두가 유난히 둥그런 정훈의 자지는
약간 짤막하고 둘레는 두꺼웠다. 은채의 하얀 손이 그런 정훈의 귀두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이미 정훈의 몸은 그런 애무 따위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은채의 보지를 더듬어 젖은 것을 확인한 정훈은 거칠게 은채의
몸을 짓누르며 진입을 시도했다.
“아앙...... 자기 여전히 굵네.......”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온 정훈을 느끼며 은채가 몸을 살짝 뒤챘다. 그리고 기둥에
묶여 있는 성민을 향해 시선을 던진다. 그 사이에 성민은 정신이 돌아온 듯 희미한
눈으로 뱀처럼 엉킨 두 남녀를 바라보고 있다. 짜릿한 쾌감이 은채의 전신을 훑는다.
“자기... 빨리 움직여 주라... 응?”
“벌써?.......너무 서두르지 말고....... 오랜만인데......”
정훈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은채의 시선을 알지 못하고 은채의 가슴을 빠느라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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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써질때도 있고 안 써질때도 있고 하네요^^
놀란 정훈은 아무 말도 못한다. 그런 폭언은 한 번도 은채에게 들어본 일이 없었다.
언제나 깔끔한 말투와 몸가짐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속살을
드러낸 은채는 냉혹하고 거칠었다. 정훈이 차 뒷자석 남자를 먼저 밀어 넣자
그 옆에 은채가 앉는다.
“출발해.”
#6
은채는 남자의 팔을 등 뒤로 모아 손목에 수갑을 채운다.
모형이나 장난감이 아닌 현장에서 사용하는 단단한 것이다.
발목에도 채우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걷는 게 힘들어지는데다가
이목을 끌까봐 그렇게는 차마 하지 못한다. 핸드폰 홈 버튼을 꾹 눌러
시계를 들여다보는 은채의 표정은 싸늘했다.
“이제 슬슬 깰 때가 됐는데.”
“...그렇게 빨리 깨?”
“전기충격기로는 10분 이상 기절 못 시켜.”
은채의 목소리에는 ‘그런 것도 몰라?’ 같은 류의 비난이 섞여 있었다.
정훈은 운전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귀는 뒷좌석에 열어두고
힘겹게 핸들을 돌리는데,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남자의 것이었다.
“움직이지 말아요.”
은채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나직했다. 그런 은채의 목소리에 남자는 한동안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몸만 계속 움찔거릴 듯 선뜻 말을 하질 못한다.
은채는 계속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이성민 씨죠? 저희는 경찰입니다. 지난주 수요일 이태원 가셨을 때
‘Seven"이라는 음식점 가셨었죠?”
은채가 며칠 동안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파악한 사실이지만, 그런 줄은 꿈에도
모르는 남자는 놀라서 대답한다.
“네....... 와이프랑 갔었는데... 그런데 왜.......”
‘와이프’라는 말에 은채는 가슴이 바늘에 찔린 듯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다.
하지만 목소리에서는 전혀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어찌나 부드러운지 미끄러울 정도다.
“지금 거기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용의자가 되셨어요.”
“용의자요?”
“네. 살인용의자요.”
“살인요? 전 전혀 모르는 일인데요? 와이프랑 밥만 먹고 나왔는데요....... 그날.......”
정호는 운전을 하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숨죽이고 듣고 있다. 아무리 엉겁결에
전기 충격기에 당했다지만 자신을 공격한 여자를 대하는 것 치고는
지나치게 평온한 대화다. 정호는 저 남자가 두 가지 타입 중 하나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멍청하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순진하거나.
“모시는 방법이 이래서 죄송해요. 하지만 아까 전에 골목에서 절 공격하려고
하시는 줄 알고 그만....... 아무래도 살인용의자시다보니.”
“아... 네.......”
남자는 뭔가 석연 쩍은 부분이 해결되었다는 듯 믿는 눈치다.
“근데 경찰서로 가나요? 저 손목 좀 풀어주시면 안돼요?”
“지금 바로 경찰서로 가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현장 하나만 확인해주시면
바로 풀어드릴 수 있거든요.”
“그럼 이태원으로 가나요?”
“아뇨 그 현장 말고 다른 현장이 한 군데 더 있어서요....... 연관이 있는 곳입니다.”
남자는 의외의 상황에 아주 당황해하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지
그 현장이 어디쯤이냐, 여기서 머느냐, 정말 오늘 당일 혐의가 풀릴 수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했다. 남자가 조금만 더 똘똘했다면 당장 경찰 신분증이라도 요구했으련만,
그런 말조차도 없다. 아니면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상대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조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순한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은채의 상대가 될 수 없는 타입이었다. 은채는 남들보다 특출하게 유능했지만,
단지 능력만 가지고 30대 초반의 젊은 여자가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라이벌이 될 만한 선배, 후배, 동기들을 철저하게 밟고 자신의 업적은 최대한 포장하며
전쟁터를 헤쳐 온 열혈 커리어우먼, 은채에게 성민은 속된 말로 밥이나 다름없었다.
그 와중에 차는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한강 OO대교를 넘어 여의도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은채의 집은 지척이다. 은채의 마음은 벌써부터 오랜 꿈을 이룬 것처럼
나른하고 개운하다. 이 정도로 쉽게 일이 풀릴 줄 알았다면 전기 충격기 따위
사용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은채는 생각했다. 조심스레 집게손가락으로 성민의
손목을 채운 수갑 위를 쓸어 본다. 급박한 상황에 창밖과 차 안을 연신 두리번대는
성민은 그런 은채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참동안 눈을 굴리던 성민이 묻는다.
“저기....... 그런데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걱정 마세요. 금방 도착할 거예요.”
방싯 웃으며, 은채가 대답했다.
#7
방 세 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은채의 집은 부모님이 그녀의 서울 취업을 축하하며
사 준 것이다. 지방 출신이었지만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복하게 자란 은채는
그런 부모님의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은채가 가장
큰 안방은 비워둔 채 작은 두 방만 각각 침실과 옷방으로 사용해온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정훈도 은채와 교제했을 때 그 점을 궁금해 했었다.
부모님이 자주 드나드시는 것도 아닌데 굳이 안방을 비워놓을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서야 성민은 은채의 행동을 이해했다.
가느다란 무색의 줄무늬가 입체적으로 들어간 흰 벽의 안방은 사실 그냥 비워놓은
것이 아니었다. 문에서 가장 먼 방 모서리에는 천장과 바닥을 굳건히 연결하는
굵은 파이프 기둥이 있었다. 위아래를 어찌나 철저하게 고정시켜놨던지 천장이
무너지거나 바닥이 꺼지지 않는 이상 그 기둥을 넘어트리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은채는 정훈에게 기절한 성민을 그 곳에 기대놓게 시켰다. 집 안을 현장이라며
유인한 뒤 현관에서 다시 전기 충격기를 써서 기절시켰던 것이다. 은채는 한쪽 수갑을
풀고 기둥을 통과시킨 뒤 다시 채웠다. 그리고 발에도 또 다른 수갑을 채웠다.
정훈은 뜨악한 표정으로 그런 은채의 행동을 모두 지켜봤다. 일 년 가까이 교제했으면서도
그녀가 그런 흉한 물건들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 정훈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은채가 중얼거렸다.
“이제는 걸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죠, 주인님? 흠, 또 뭐가 필요하려나...
아. 그렇지.”
은채는 긴 바를 두툼하고 푹신한 재질로 감싼 재갈을 검은 색 스포츠가방에서
꺼내 기절한 성민의 입에 물렸다. 정훈은 잠시 가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발목에 채운 두 번째 수갑도 이 가방에서 나왔던 것이다. 꽤 묵직해 보이는
그 큼지막한 가방에 어떤 물건이 더 들어있을지는 정훈조차도 추측하기 어려웠다.
은채는 몇 번이나 이리저리 돌면서 성민이 제대로 묶여있는지를 확인했다.
“아주 예쁘게 됐네.......”
정훈은 자리에 못 박힌 듯 그대로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정훈에게,
마침내 은채가 시선을 돌렸다.
“오늘 수고 많았어. 정훈씨.”
“너,”
정훈의 딱딱한 얼굴은 마치 돌덩이같이 보였다.
“너, 이런 짓 하면 안 돼.”
“에이. 다 도와놓고 이제 와서.”
은채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정훈에게 다가섰다. 하얗고 부드러운 팔이
정훈의 허리를 감아든다.
“정훈씨 오늘은 좀 멋지더라.”
정훈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은채의 팔과 가슴이 자신의 몸에 감겨오자
마음이 흔들리는 눈치였다. 은채가 그런 기색을 놓칠 리 없다.
“이런 거 오랜만이네... 그렇지, 자기?”
정훈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런 은채의 등을 감싸 안는다. 달콤한 은채의 말.
지난 이년 간 얼마나 원했던 것이었나. 그녀가 여러 남자를 전전하며 자기 멋대로
놀아날 때도 정훈은 그저 참고 기다려 왔다. 그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그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은채에게 면전에서 ‘스토커’ 소리까지 들었을 때 그 심정은 또 어떠했는지.
약간 뚝뚝한 목소리로 정훈이 말했다.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그런 얘기 할 필요 없잖아... 응?”
속삭이는 목소리. 정훈은 그만 눈을 감았다. 따듯한 은채의 팔은 이제 숨을 죌 듯
바짝 감겨온다. 어느 새 정훈의 손은 봉긋하고 탄력 있는 은채의 가슴에 닿아 있었다.
등을 감았던 팔을 풀고 양손으로 은채의 가슴을 주무른다.
“아앙.......”
교태어린 소리를 내며 은채가 몸을 튼다. 하지만 그저 의례적인 행동일 뿐이다.
정훈은 은채의 가슴 사이를 통과하는, 배꼽까지 연결된 셔츠 단추를 모두 푼다.
은채는 소매가 없는 넉넉한 연하늘색 셔츠에 딱 달라붙는 스키니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셔츠가 바닥에 떨어졌다. 달라붙는 바지는 은채가 직접 다리를 움직여 벗어 내렸다.
길고 늘씬한 은채의 다리가 한눈에 드러났다. 심플하고 미니멀한 은채의 검은 브래지어
팬티 세트는 하얀 살결과 대비되어 차라리 외설적으로 보였다.
정훈은 은채의 브래지어 후크를 풀었다.
“옆 방으로 갈까?”
정훈의 속삭임에 은채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하자고? 저 사람 깰 거 같은데.......”
은채가 잠시 성민에게 시선을 주었다. 과연 눈꺼풀이 가볍게 움직이는 것이
금방이라도 정신을 차릴 것 같다. 하지만 은채는 외려 손을 뻗어 바지 속에서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성민의 자지를 더듬었다.
“누가 보고 있으면 더 흥분되지 않아.......?”
“뭐라고? 너 대체.......”
은채는 더더욱 몸을 밀착해 왔다. 팬티 한 장만 걸친 알몸에서 달콤한 살냄새가
풍겨나와, 정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흐응... 우리 자기 이렇게 몸은 흥분되어 있는데... 왜 솔직하지 못하게 이럴까.......”
정훈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끊어지는 듯 느낌이 났다. 수치심도 당황한 마음도
모두 일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다. 정훈은 미친 듯이 땀을 흘리며 은채를 품 안에 가뒀다.
목덜미에 키스 세례를 받으며 은채는 감미로운 콧소리를 냈다.
“자기... 어서.......”
정훈은 서둘러 벨트를 끄르고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벗어버렸다. 그리고 온 몸으로
은채를 누르다시피 하여 바닥에 눕혔다. 귀두가 유난히 둥그런 정훈의 자지는
약간 짤막하고 둘레는 두꺼웠다. 은채의 하얀 손이 그런 정훈의 귀두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이미 정훈의 몸은 그런 애무 따위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은채의 보지를 더듬어 젖은 것을 확인한 정훈은 거칠게 은채의
몸을 짓누르며 진입을 시도했다.
“아앙...... 자기 여전히 굵네.......”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온 정훈을 느끼며 은채가 몸을 살짝 뒤챘다. 그리고 기둥에
묶여 있는 성민을 향해 시선을 던진다. 그 사이에 성민은 정신이 돌아온 듯 희미한
눈으로 뱀처럼 엉킨 두 남녀를 바라보고 있다. 짜릿한 쾌감이 은채의 전신을 훑는다.
“자기... 빨리 움직여 주라... 응?”
“벌써?.......너무 서두르지 말고....... 오랜만인데......”
정훈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은채의 시선을 알지 못하고 은채의 가슴을 빠느라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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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써질때도 있고 안 써질때도 있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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