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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시트콤 - 5부 1장

제5부 : PC방 습격사건



“밤 10시되기 전에 철호는 미성년자 내보내고, 재떨이 점검은 강호가 해라.”



문주 김동수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도 어제 왔던 문파 회원들이 심야요금이 시작될 때를 기다리며 쇼파 주변에 웅성거리며 모여있었다.



“웅성거리지 말고 배고픈 사람들은 겜 하기 전에 컵라면부터 챙겨 먹어.”

“먼저 먹어도 돼요?”

“겜 하면서 먹으면 채하잖아. 어차피 먹을 텐데 미리 미리 챙겨 먹으라구.”

“컵라면 보다 심야시간을 땡겨 주시면 안되요?”

“그건 안돼.”

“비싼건 막 주면서 어차피 흘러갈 시간인데 시간 땡겨주는 것은 왜 안되죠?”

“먹는 것은 쥔한테 대신 내주면 되지만 겜하는 것은 각자 책임이니까.”

“맘대로 먹는 파격 서비스도 있는데 그 정도야 참을께요.”

“고마워. 컴퓨터 다룰 줄 아는 사람 있으면 알바 좀 해줘.”

“왜요?”

“잘 되는 컴퓨터랑 안되는 컴퓨터랑 구분 해 놓게.”

“튜닝 말하는거죠? 냅둬요 겜하면서 알아서 해 놓을께요.”

“몫져서 일하면 돈 따로 줄테니까 누가 나서 달라구.”

“겜하다 쉴 때 공짜로 해 드리면 안될까요?”

“쉬엄쉬엄 할 일이 아니잖아. 컴퓨터가 좋아야 겜도 잘 되는것이라며.”

“알았어요. 상의해서 대표 한명한테 그 일을 시켜볼께요.”



PC방을 한바퀴 돌면서 청소년 심야 제한에 걸린 아이들이 강한 불만을 터뜨렸지만 철호는 몇 명을 끄집어 내서 카운터로 데려왔다.



“니들, 밤 열시 넘으면 집에가서 잠자야 되는거 알지?”

“여태 했는데 갑자기 왜 그래요?”

“그랬었니?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야되니까 이제부턴 열시 넘기면 안돼.”

“학생이 아닌데 왜 끄집어 내구 난리에요?”

“민증있어?”

“있어요. 여기.”

“민증은 있지만 아직 생일이 안지났잖아. 열아홉살 미만은 열시 넘으면 안되거든.”

“대학생이라니까요.”

“그래? 담 부턴 딴걸로 데모하지 말구, 만 열아홉살 안된 대학생도 PC방 출입을 허용하라는 구호로 데모를 해 줄 수 있겠니?”

“아쓰불, 이 아저씬 말이 안통하네.”

“난 네가 좋아. 돈 버니까. 어쩌겠니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데...”

“아저씨, PC방이 여기 뿐인줄 아세요? 드러워서 딴 PC방 갈꺼에요.”

“네 판단이 옳아. 하지만 젊어서 골 빼면 늙어서 힘 못쓰니까, 웬만하면 맘에 두지 말고 또 와.”

“쓰블, 존나 안되는 PC방이 더 설친다니까.”

“맞는 말이야. 아무튼 어린이는 어른의 희망이니까, 너희들이 겜하며 보내는 시간이 넘 아쉽거든. 딴 PC방에 쑤셔박힐 생각말구 얼른 집에 들어가서 푸욱 잠을 자란말야.”



학생들을 솟가낸 자리엔 문주 김동수의 패거리들이 하나 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흐뭇할 정도로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쇼파 쪽이 정리되면서 수북히 쌓인 컵라면 빈 그릇도 카운터 쪽에 차분히 쌓여가고 있다.



“행님아, 오늘은 얼마 들어왔노?”

“아직 계산하긴 이르지만 대충 이십육만원돈 될 것 같은데.”

“쥔 양반 주고 나면 얼마남나?”

“밤샘 해봐야 알겠지만 오늘은 칠만원줄꺼고 과자랑 라면값으로 대충 칠만원 날아갈테니까 십만원 이상은 남겠는걸.”

“근데, 심야시간 땡겨달라는건 왜 싫다했노?”

“아까 알바놈이 받아 놓은 물품수령증 보니까 오백원에 파는 과자가 삼백원에 들어오더라. 음료수도 반값에 들어왔거든. 먹어봤자 절반은 남는 장사잖냐. 이왕이면 싸게 사온걸루 인심 팍팍쓰면 거기서 반이 절약되니까 해 볼만한 일이잖아.”

“행님, 시간은 반값도 안들어가고 공짜로 흐르는건데 그냥 퍼 주질 그랬어.

“언뜻 생각하면 시간 공짜루 주는게 남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시간을 늘려주면 원가 절감이 없잖냐. 받을 것은 확실히 받고 줄 때는 주더라도 싸게 사서 비싸게 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인걸 아직 모르겠니.”

“아구야, 행님아, 머리 아프다. 아무리 그래두 이십육만원 다 챙기구 거기서 칠만원만 뚝 떼주면 십구만원 남는거 아닌가. 근데 과자값 대신 내줬버리면 겨우 십만원 남는건데 그걸 어떻게 잘했다구 할 수 있나.”

“철없는 놈. 저 사람들이 시간 늘려준다고 오냐?”

“왜 안오노. 겜비 싸지는데.”

“심리전이다 이눔아. 시간당 사백원 일때도 안오던 사람들에게 시간당 팔백원꼴로 올려서 겨우 왔는데 다시 시간을 보너스루 줬버리면 저 사람들에게 무슨 감동이 전달되냐구.”

“엉, 정말 그러네.”

“형아가 계산은 정확하거든. 넌 돈 내구 겜이나 열심히 하구 있어.”

“알았어예. 행님 계산이 맞는건진 몰라도 손님은 꽤 많아 졌으니까 믿어봐야제.”



철호가 겨우 이해를 했는지 자리로 돌아갔다. 강호는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자 자꾸 문가에 눈을 주며 식당 아줌마를 기다리고 있다. 문주 김동수는 아이템 사냥에 몰두하는지 아는 척도 않은 채 화면만 뚜러지게 쳐다보며 마우스를 마구 눌러 대고 있다.



“자리 있어요?”

“빈 자리가 없는데 잠시 기다리겠수?”

“웬 손님이 많데요? 예전엔 텅 비었었는데.”

“자주 오셨나보죠?”

“아뇨. 가끔 들르면 뻥 뚫린게 값 싸고 한산해서 좋던데...”

“쥔은 그럴 때 죽을 맛이죠.”

“별안간 손님이 들끓는걸 보니 이벤트를 했나보죠?”

“따로한건 없수. 그냥 요금을 두배로 올린 것 밖엔...”

“요금을 올리다뇨? 그럼 오백원짜리가 아닌가?”

“싸니까 나쁜줄 알고 안오는 것 같아서 천원으로 올렸더니 들끓네. 들끓어.”

“업그레이드 시킨건 아니구요?”

“아무것도 한게 없다니까. 그냥 요금만 올렸을 뿐인걸.”

“암튼 자리나면 알려주세요.”

“자리가 가끔 나니까 쇼파에 앉아계시우.”

“급하니까 제일 먼저 자리나면 저를 주세요.”

“심야 할꺼유?”

“아뇨. 잠깐만 하구 갈껍니다.”

“그럼, 다른 PC방으로 가슈. 여긴 잠깐 겜하려고 기다리면 지루하거든.”

“꼭 해야되니까 기다리죠 뭐.”

“알았수. 잡지책이나 보면서 잠시 기달리시우.”

“신기하네. 쪽박PC방인줄 알았는데 왜 이런거지?”

“뾰족한 수 있는건 아니구, 어제부터 붐비기 시작하는구먼.”



사내는 쇼파에 앉아서도 연방 좌석쪽을 향해 손님들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는 것 같았다.



“어, 철민아, 여기서 뭐하니? 뭐야 민수도 있구 영철이두 여기 있잖아?”

“김사장님은 웬일?”

“니들이 안오니까 어디갔나 싶어 와봤지.”

“김사장님 PC방엔 안갈꺼요. 여기가 좋아졌거든.”

“너희들 우리 PC방 죽돌이였잖아.”

“그거? 이젠 여기 죽돌이 할 생각인걸요.”

“우리가 뭘 잘못해준게 있다고 이리로 옮긴거지?”

“한번 와봤는데, 편하니까요.”

“컴퓨터도 우리PC방 보다 형편없는 것 같은데 괜찮아?”

“겜만되면 됐지 컴퓨터 좋다고 겜 잘되나?”

“겨우 이쩜사기가 잖아. 우린 삼기간데...”

“멤버들도 수십명이 한꺼번에 모여서 겜하니까 엄청 재밌는걸요.”

“우리 PC방에서 해두 되잖아!”

“애이, 거긴 사람 많아서 멤버들 우르르 들어오면 자리도 없잖아요.”

“여기두 꽉 찼잖아!”

“여긴 우리 멤버들 뿐인걸요. 딴 사람 거의 없잖아요.”



그 소리를 들은 남자는 순간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열을 올리며 분을 억지로 참고 말한다.



“야, 철민아 니들 우리 PC방에 깔아논 외상값 언제 갚을꺼야?”

“어쉬, 외상값 받으러 온거야?”

“그렇다기 보다는 갑자기 우리 PC방이 썰렁해졌잖아.”

“우린 여기가 좋아서 터 잡기루 했으니까 몇일내루 외상값 갚을께요.”

“외상값이 문제야? 철민이 패거리가 몽창 일루 온게 문제지!”



남자는 철민이라는 손님과 마치 입씨름을 하다 화가 난 듯 쇼파에서 벌떡 있어나서는 PC방을 한바퀴 휙 돌아보다가 카운터 앞으로 와선 말했다.



“이봐요, 우리 손님 다 뺏아가면 어떻해?”

“뭐야, 당신두 PC방 하슈?”

“길 건넌데 이게 뭐야? 우리 손님 왜 데려왔냐구?”

“이 양반이 억지쓰기는...

PC방 선택권은 고객한테 있는거지 무슨 소릴 하는거야?”

“이 따위로 남의 손님 다 뺏어가면 좋은 일 없을줄 알라구!”

“도로 데려갈 수 있음 델구가슈. 안말리니까.”



남자는 씩씩 분을 참지 못한 채 PC방 문을 급히 열곤 사라져 버렸다. 찬바람이 휭하니 들어온다. 나는 애써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며 열린 유리문을 다시 닫고 카운터로 돌아왔다.



“행님요, 뭔일인데?”

“딴 PC방 쥔이라네. 손님 다 뺏겼다구 분해서 나갔다.”

“웃기는 사람이구마...”

“화 날만두 하겠지. 갑자기 손님이 뚝 떨어졌으니...”

“좋은일 없을줄 알라는 말이 뭐꼬?”

“낸 들 아냐? 지 분에 떠들어본게지.”

“암튼 인심 더럽네.”

“몇시지?”

“열한시유.”

“이 안에 미성년잔 없지?”

“아까 다 내 보냈잖우. 이젠 나두 겜 할래.”

“그래, 우리 철호가 기율반장 하느라 애썼다. 사천원 내라.”

“행님요, 이젠 좀 공짜루 시켜주라.”

“원칙엔 변함없다. 나두 겜 배우면 돈 내구 할란다.”

“지독한 양반. 옛수.”



철호는 꼬깃하게 구겨진 천원짜리 넉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나는 당연히 돈 내고 겜해야할 철호놈이 끝까지 주저리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지만 사믓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낚아채듯 돈을 받아 챙겼다.



“강호야, 너도 재떨이 정리 다 했으면 인터넷이나 좀 해.”

“특별히 볼 것도 없어유. 이따라두 영자씨 오면 나가봐야지유.”

“이 자슥이 은근히 밝히는 놈일세. 맨날 좆뿌리 흔들면 언제 무역할껀데?”

“형님, 겨우 한번 했잖아유. 델구 살라믄 길 들여놔야잖우.”

“허허, 못하는 소리가 없구먼. 좋다. 내가 네 놈 삼년간 좆대가리 못 휘두른 것 생각해서 몇 번은 돈 대줄테니까 불끈 힘 주고 와.”

“고맙워유. 처녀더라니까유.”

“그랬어?”

“결혼 할라구유.”

“강호야, 사투리 쓰지말아라. 철호놈 사투리에 네 놈 사투리까지 알아듣기 힘들어 죽겠다.”

“형님이 좋아서 쓰는거유.”

“강호 너, 사업할 때두 그렇게 사투리썼냐?”

“알았시유. 인젠 안쓸꺼구먼유.”

“됐다. 됐으니, 쇼파에 앉아서 푹 쉬며 영자씬지 백자씬지 기둘려.”

“형님, 정말 노숙자들한테 컴퓨터 가르킬꺼에요?”

“그럴라구. 아직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럼, 제가 구상해볼테니까 영자씨랑 자꾸 만나는거 트집잡지 않을꺼죠?”

“강호야, 네 놈이 새 장가 간다는데 누가 말리겠냐? 난 좋다.”

“형님, 정말 고마워요. 빨리 돈 벌어서 형님한테 신세진거 다 갚을께요.”

“그런 정신으로 열심히 일꺼릴 찾아봐. 내가 밑도 끝도 없이 네 놈 여자랑 놀아나라구 돈 대줄 수는 없잖냐.”

“알았어요. 몇일 시간 주시면 멋진 계획표를 만들어드릴께요.”



사실 강호에게 거는 기대가 조금 있다. 길거리로 나서기 전까지 무역이라는 걸 했다니 세상 물정도 잘 알테고 머릿속에 든 것도 많을 것이다. 밑바닥 생활에 익숙하며 게으름 조차도 천성인양 받아들인 노숙자들이 쉽사리 PC방으로 나들이 할 것이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다행이 동장군이 기승을 부려 어쩔 수 없이 등짝에 온기를 넣어준다는 핑계로 하나 둘씩 PC방 경험을 쌓게 한다면 조금 가능성은 있겠지만 그런 형편에 놓인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나게 하려면 아무래도 몇 개 PC방을 그런 용도로 운영해야만 될 것이다.



“검문왔습니다.” 경찰복장을 한 사람과 사복차림의 건장한 사내가 PC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복장만 보고도 화들짝 놀라며 무슨 일인지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다 보니, 한 손에 워키토키같은 무전기를 들고 또 한 손엔 검은색 장부와 볼팬을 들고 있으며 “탁탁” 그 장부로 카운터를 두들겼다. 슬쩍 보기만 해도 경찰은 일단 뭔가 트집잡이 하러왔을 것 같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무슨일이슈?”

“여기 금연석에서 담배피우면 벌금 때리는 것 아시죠?”

“모르지만 그렇다고 칩시다.”

“미성년자도 있으면 벌금내야 합니다.”

“당신들 맘대로 하고 뭔 검열을 한다는건데?”



“어이, 김형사, 한바퀴 돌아.”



경찰 복장을 한 사람이 사복차림을 한 사람에게 PC방을 한바퀴 돌아보고 오라고 지시하자 김형사라는 사람이 구석구석을 돌며 한참 게임에 몰두한 손님들에게 일일이 민증을 까 보이라고 건들기 시작했다.



“왜이래? 얼굴 보면 미성년잔지 아닌지 몰라?”

“요즘 얼굴보고 나일 구분할 수가 없어. 빨리 민증 꺼내구 없으면 미성년자야.”

“아 쓰블. 이 얼굴을 미성년자라구?”

“아니면 빨랑 민증까던지.”



나는 조용하던 PC방에 갑자기 나타나선 한명씩 민증을 까보이라며 게임을 방해하는 김형사라는 사람이 의심스럽기도 하고 웃기는 짓꺼리라는 판단이 서자 얼른 그 사람에게 다가가선 어깨를 잡아챘다.



“당신, 뭐하는거야?”

“미성년자 검사하잖아.”

“너 병신이니? 머리 희끗한 사람한테 민증까라구 그럴 수 있는거야?”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죄루 잡혀가는거 아슈?”

“몰라. 하지만 당신들 행위가 영업방해라는 것은 알지.”

“비켜서요. 난 민증 검사를 다 해야 직성이 풀리니까.”



어이없는 처사였지만 절차상 필요한 것이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라 다시 카운터로 돌아왔다. 김형산가 뭔가하는 사람이 겜하는 손님들을 한명씩 어깨를 건들며 민증을 까내려가는 장면에 능청스런 만족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경찰복장을 한 남자의 얼굴을 보니 울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이봐요. 당신들 공무집행하는건 이해 되거든.”

“그런데?”

“신분증 좀 보여줘.”

“정복에 빠찌 붙어 있잖아.”

“난 몰라. 당신 경찰공무원증 꺼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이 양반이 누굴 의심하구 그래?”

“남의 영업장에서 검문하려면 어차피 신분증 제시해야 하는거 아냐?”

“반말하지마. 나이 좀 먹었다고 뵈는게 없어?”

“한 다리 건너면 청와대인 세상인거 알지?”

“그래서?”

“신분증 안까면 당장 112에 전화해서 진짜 경찰 불러온다.”

“웃기는 놈일세. 진짜 경찰인데 또 누굴 부른다고?”

“경찰 맞는 것 같아. 이까짓 PC방 검문하려고 설마 남대문시장에서 경찰 옷을 사입지는 않았을테니까.”

“뭐? 남대문 시장에서 옷을 샀다고?”

“아니, 안 샀을꺼라고.”

“그럼 됐는데 뭔 신분증을 보이라는거야?”

“미성년자 아닌걸 뻔히 알면서도 민증 보자고 손님들 귀찮게 했잖아.”

“절차야.”

“당신들 신분증 보는게 내게도 절차거든. 얼른 보여줘.”



경찰 복장을 한 사람이 윗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슬쩍 보인 후 다시 집어 넣는다.



“늙어서 눈이 침침해. 천천히 소속이랑 계급이랑 이름 좀 봐야겠어.”

“뭐?”

“정말 공무집행한건지 시위한건지 낼 본청에 확인할려구 그래.”

“본청?”

“관등성명을 알아야 본청에 민원 널꺼아냐.”



완강하게 항변하는 내 태도가 불편했던지 신분증을 꺼내는 대신 겜하는 손님들을 상대로 검문하던 김형산를 카운터 앞으로 불렀다.



“경찰양반.”

“왜?” 김형사라는 사람이 윽박지르듯 말했다.

“경찰 맞는 것 같아. 인정해요.”

“경찰한테 경찰인 것 같다니 우습네.”

“쿠린내가 나서 하는 말인데...”

“뭐?”

“복명 받고 검문하는건지 그냥 딴 PC방 쥔한테 부탁받고 하는건지 알아야겠어. 만약 공무가 아닌데 와서 영업방해한거면 쉽게 끝나지 않을꺼요.”

“협박하는거야?”

“협박? 난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은 좋아하지만 어딘지 어거지가 있는 경찰은 철저하게 싫어하거든.”

“싫어하면 어쩔껀데?”

“신고해야지. 민원 넣어서 정당한 공무였다면 사과할테고 아니었다면 물어 뜯어버릴꺼야.”

“이 양반이...”

“정말 공무였다면 영업방해 안되게 상식선에서 검문하시우.”



경찰이 나가자 강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형님, 건드려서 좋을게 뭐 있다고 빡빡하게 그랬어요?”

“정당한 공권력 행사엔 마땅히 따라줘야겠지만 비정상적인 공권력엔 목숨 걸고 저항해야만 사회가 온전할 수 있는 법이잖니.”

“형님이 혼자 버틴다고 사회가 달라지겠어요?”

“큰 일은 아니지만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씩 부딪히며 굽히지 않는 마음이 필요한게야.”

“그래봤자 형님이나 우리는 민촙니다. 그냥 거부하지 말고 적당히 꺽이세요.”

“알았다. 괜히 네 놈 걱정하게 했구나.”

“그건 아니지만 너무 아슬아슬해서 맘 졸였다구요.”

“그랬구나. 나도 첨엔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뻔히 얼굴만 봐도 성년인지 아닌지 알만한 사람들이 겜하는 사람들 방해하려는 듯 개별검문을 하는게 이상해서 말야.”

“형님이 잘 한건지 잘못한건지 전 판단이 안서지네.”

“강호가 부도내곤 도망다니느라 경찰이 무서웠던게구나. 경찰은 좋은 분들이다. 사회를 건강하게 지키는 파수꾼이지. 그분들이 애쓰는 모습을 숫하게 봐왔다. 다만 오늘은 느낌이 이상해서 그랬던거야.”

“괜히 걱정되서 말씀드린거에요.”



동전을 두 개 꺼내 자판기에 넣고는 밀크커피 두잔을 꺼내 강호에게 건냈다. 뜨거운 커핏물이 목젖을 넘어가며 잠시 과격했던 마음이 사르르 가라앉기 시작하자 쇼파에 걸터 앉아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한 때는 박사였었지. 완전히 상거지구만.”



번뜩이는 눈 빛을 가진 젊은 신사가 내 앞에 서 있었다. 햇살이 반사될 정도로 광을 낸 구두 끝에서 짧고 단정하게 손질한 머리끝까지 바라볼 때 그 사람이 하늘과 같아 보였다.



“내가 뭐랬어. 그냥 돈이나 벌자니까.”

“누구시죠?”

“당신을 아는 사람.”

“전 댁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생각날 리가 없겠지. 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 기억이 더 악화됐을테니까.”

“병원에서 우왁스럽게 쫒겨났었는데 혹시 이유를 아시나요?”

“완전히 맛탱이가 갔구만...”

“혹시 제 이름은 아세요?”

“김갑수. 당신 이름이 갑수였어.”

“제가 박사였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많이 알면 또 병원엘 들어가야되걸랑?”

“알면 또요?”

“옛 정을 생각해서 이름만은 알려준다만 더 알려고 하지는 말아.”

“이름을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이름도 없었단말야?”

“우리들 세계에선 이름 대신 이봐라고 부렀죠.”

“내가 당신 이름을 선물한 셈이군.”

“김 갑수, 갑수, 갑수,,, 감사합니다.”



웃음이 나왔다. 이름조차 없이 호칭되던 때가 있었다. 어느날 선물받은 이름으로 십년을 살로 있었다. 김갑수가 정말 나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다.



“강호야, 인터넷 할 줄 알지?”

“약간...”

“김갑수라고 십년전, 아니, 십여년전의 자료를 찾을 수 있겠니?”

“너무 흔한 이름이라 자료가 나올지 모르겠네.”

“한번 찾아볼래? 내가 기억을 되찾기 위해선 그게 필요할 것 같거든.”

“맞다. 형님 기억을 되찾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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