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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마녀를 위한 밤 - 2부

“안쓰는 가전 제품, 망가진 물건, 처분이 곤란한 물건 있으시면 바로 불러주십시오. 대형가전 무료 수거, 믿을 수 있는 서비스, 바로 견적 뽑아보세요.”

창밖으로 지나가는 트럭에서 무지하게 촌스러운 뽕짝 음악을 배경으로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메가폰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 시끄러운 소리에 나는 정신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실눈을 뜨고 머리 위를 천천히 올려다 보았다. 천정의 문양이 보이고, 누렇게 변색이 된 형광등 갓이 보이고 그게 다 였다. 여자의 다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꿈이었구나. 기분나쁜 꿈이었다. 하지만 그 여자의 하얀 팬티와 잘빠진 허벅지만큼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시간은 벌써 10시 였다. 아침 9시부터 수업이 있었지만 그 수업은 안나간지 꽤나 오래됐다. 대형강의인데다가 출석체크도 대충대충이니까 나중에 기말 시험볼때나 노트 좀 외워서 쓰면 학점따는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대신 몸이 근질근질했다. 10시는 파칭코 가게들이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오른 쪽 손을 오므렸다 폈다하며 좌우로 돌려댔다. 파칭코 못한지도 꽤나 오래됐다. 돈이 바닥 났으니 하고 싶어도 못한다. 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된다. 여기서 살며 돈 좀 모이면, 다시 파칭코를 할 수 있다. 이불에 주저 앉아 뒷머리를 긁적이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두 손으로 이불을 짚는 순간 흠칫했다. 오른 손 부근이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베갯왼쪽 부분의 이불이 둥그런 모양으로 젖이 있었다. 내가 잘 때 흘린 침인가? 그렇게도 생각해 봤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젖은 부분이 너무 컸다. 난 손가락으로 슬쩍 젖은 부분을 만져봤다. 어젯밤의 꿈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서 몸을 구부려 젖은 부분의 냄새를 맡아 봤다. 난 다시 머리끝이 쭈뼛하고 섰다. 그것은 틀림없는 오줌냄새였다. 반사적으로 내 사타구니 근처를 만져 봤다. 젖어 있지 않았다. 사실 만져볼 필요도 없었다. 내 페니스가 입근처에 달려 있지 않는 한 그 위치에 오줌을 싸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후다다닥.

난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꿈이 아니란 말인가? 그럼 뭐야? 목을 매달은 채 휑한 눈으로 날 내려다 보던 그 여자의 얼굴이 다시 생각났다. 소름이 팔끝으로 쫘악 돋았다. 귀신? 귀신이란 말인가? 그…그런데 귀신이 오줌도 싸나? 난 안절부절 못하며 이불 주위를 맴돌다가 방 주위를 둘러봤다. 낡긴 했어도 별 달리 이상한 구석은 없었다. 난 다시 천정을 올려다 봤다. 끈같은 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면 인간인가? 인간이면, 남의 방에서 목은 왜 매달아? 그 순간 어젯밤 목매단채 흔들리고 있던 그 여자의 두 다리를 안아 올렸을 때의 감촉이 생각났다. 차가웠다. 무지 차가웠다. 그리고 그 여자 거시기에서 오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통 인간의 오줌, 따뜻하지 않나? 그 여자의 오줌, 냉장고에서 막 꺼낸 물처럼 차가웠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더는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얼굴도 씻지않고 외투와 손가방만 들고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어쩐지 방값이 너무 싸다고 했다. 이건 분명 뭐가 있는거다. 예전에 이 방에서 누가 사고로 죽었던지, 자살했던지, 살해당했던지, 뭔 일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난 그 길로 부동산 회사로 쳐들어 갔다.



“이번엔 또 뭔 소리를 하는거야.”

뚱뚱한 마미야 대리는 제발 좀 귀찮게 하지 좀 말라는 듯 두 손을 내젓고 있었다.

“밤에 여자가 방에서 목을 매달고 있더라니깐요. 정말이예요.”

“김상, 김상, 나도 말이야. 우리 엄마가 재일조선인이라서, 한국 사람들한테는 각별히 잘해주고 있다고. 그거 김상이 누구보다 잘 알잖아. 딱 깨놓고 얘기해서 지금도 한국사람한테 집빌려주기 싫다고 그러는 집주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그런거 다 내가 설득해가지고 지난번 집도 그 가격에 김상한테 내 준거라고. 그런데 며칠전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더 싼집이 필요하다고 갑자기 방빼겠다고. 갑자기 사람이 그러면 안돼지. 그래도 내가 어떻게 했어. 다 해결했잖아. 게다가 16000엔짜리 방까지 찾아주고. 그런데 이제 와서 이게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귀신이라니! 자꾸 이렇게 업무방해 할거야?”

마미야 대리는 쉬지도 않고 속사포처럼 나에게 쏘아붙혔다.

“마미야 대리님이 잘해주시는 거는 아는데요. 그래도, 여자가 나와요. 저 방에서.”

“김상, 밥은 잘 먹고 있어? 돈 없다고 굶고 그러는거 아냐? 너무 굶어 헛것이 보이는 거 아냐?”

“자 그럼 솔직히 말해봐요, 마미야 대리님. 그 집 난바 한복판에 있잖아요. 덴덴타운 바로 옆이라구요. 그런데 왜 그렇게 싸요?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는거죠, 그 집? 그래서 싼 거죠, 그 집?”

저도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사연이고 오연이고 난 모르는 얘기야. 김상이 하는 말은 믿을 수 없지만, 정 그렇게 얘기한다면, 방빼도 돼. 빼도 된다고. 그리고, 다시는 나 찾아오지마. 절교야, 절교.”

마미야 대리는 흘러내리는 안경을 끌어올리며 다시 말을 했다.



“방을 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런 집을 소개한 책임을 져야죠. 다른 집 좀 소개해줘요.”

“내가 몇번을 얘기해. 김상이 가지고 있는 그 예산에 맞출 수있는 물건은 우리 회사에 없어. 좀 상식적으로 행동하라구.”

마미야 대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목소리를 높혔다.



난감했다. 마미야대리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계약기간도 안 끝난 방을 막무가내로 뺀 것도 나였다. 세입자가 그렇게 나오면 그달치 월세를 뜯기는게 보통인데 마미야 대리가 중재를 해 줘서 돈 안뜯기고 나올 수 있었다. 이번 16000엔 짜리 집도 결국은 그가 소개해 준 것이었다. 어젯밤 방에서 목매달고 있는 여자를 봤다고 아무리 강변해도, 그게 꿈이 아니라고 입증할 자신은 사실 나에게 없었다. 그럼 그 오줌은 뭐냐고? 마미야 대리는 날보고 몽유병에 야뇨증 있는거 아니냐고 그랬다. 나 혼자 살고 있으니, 그렇지않다고 증언해 줄 사람도 없었다. 결국 마미야 대리 입장에서 보면, 난 언제나 불쑥 나타나서는 말도 안되는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블랙컨슈머인 셈이다. 난 머리를 북적북적 긁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다.



“그렇다고 뭘 또 그렇게까지 말씀하세요. 죄송해요. 죄송하다구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제가 몸이 허해서 헛것을 본 것 같기도 해요.”

“몸만 허한게 아냐. 욕구불만이라서 그런게 보이는거라고. 머릿 속에서 야한 것만 생각하니까 하늘하늘한 미니스커트 사이로 쭉 뻗은 여자 다리가 보이는 거라고.”

마미야 대리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데 대리님. 그 여자가 하늘하늘한 미니스커트 입고 있다는 얘기를 제가 했던가요? 전 그냥 여자가 목매달고 있더라는 얘기만 한 것 같은데….”

순간 마미야 대리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거야… 남자의 심리가 다 그렇지, 뭐 뻔한거지. 꿈 속에 나오는 여자에게 뭐 제..제대로 된 옷을 입혀놨겠어? 미니스커트 아니면, 수영복이지 뭐.”

마미야 대리는 황급히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어이 어이, 나카부키 군, 어제 신사이바시 점포건은 어떻게 됐어?”

마미야 대리는 눈에 띌 정도로 당황하며 말을 돌렸다.

“역시 뭔가 있는거죠?”

난 나즈막한 목소리로 마미야 대리에게 말했다.

“하이구… 이 것 참….”

마미야 대리는 허둥대고 있었다.



“김상, 우리 딜하자. 김상이 그 집에서 잔말말고 계속 살아 준다면 월세를 1만엔으로 대폭 내려 줄 수 있는데, 어때?”

마미야 대리와 나는 부동산회사 앞에 놓여 있는 캔커피 자판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캔커피를 들고 있는 내 손은 가볍게 떨고 있었다. 듣지 말았으면 좋았을 얘기를 듣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어젯밤 내 방에서 목매달고 있던 그 여자, 몇 년전에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이란다. 난바의 룸살롱에서 일하던 호스티스였는데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목메어 자살을 해다고 한다. 그 이후 몇 사람이 그 집에 방을 얻었는데, 한결같이 어젯밤에 내가 겪은 일과 똑같은 얘기를 하며 방을 뺐다고 한다. 월세가 그렇게 떨어진 대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마미야 대리님, 차라리 저에게 거짓말을 하시던가 끝까지 잡아떼시던가 해야지, 사실대로 다 말해놓고, 이제와서 그 집에 저보고 다시 들어가서 살라고요? 귀신이 안나온다면 모를까, 어젯밤에 그 여자가 제 눈앞에 나왔는데도요?”

“그치? 내가 바보짓 했지? 그래서 지금 딜을 하자는거 아냐. 16000엔에서 만엔이야. 6000엔이 어딘데.”

마미야 대리는 쭈그리고 앉은 채 담배를 피웠다.

“만엔은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긴 한데요…. 그 여자를 도저히 못 이기겠어요.”

“그래서, 나가겠다는거야?”

“제가 퇴마사도 아니고, 강심장도 아니고….”

“그래도, 전직 호스티스인데 이쁘잖아….”

난 마미야 대리를 곁눈질로 째려보았다.

“그리고, 매일 나타나는 것도 아니래. 이제 와서 하는 얘기인데 어제가 사실, 그 여자가 죽은 날이야. 그때만 나타난다는 것 같더라구. 그러니 1년에 한 번이지. 그 날만 밖에서 지내면, 그 여자 마주칠 일이 없어.”

“아이 참, 지금 그걸 무슨 말이라고 하고 앉아 계세요? 눈에 안보일 뿐이지, 그 곳에서 죽은 여자 귀신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게 모른 척이 되요? 마미야 대리님, 아저씨 바보죠?”

“이거 이거 말하는 품새하고는…. 어쨌든 마지막 딜이야. 김상이 콜하면, 1만엔으로 이번달 부터 당장 해줄께. 바로 6000엔 캐쉬백 들어가는 거지. 그래도 싫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그냥, 두번 다시 날 찾지 마.”



난 다시 머리를 긁적였다. 보증인도 없고 돈도 없는 외국유학생에게 사이좋은 부동산 업자 하나 사귀어 두는 건 편한 일본생활의 지름길이었다. 마미야 대리를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월세1만엔도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다. 나의 파칭코 생활 복귀가 계획보다 훨씬 앞당겨질 수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퀭한 검은 눈을 생각하면,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갈 자신이 정말이지 털끝만큼도 없었다.



“으이그…”

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계절이 여름이면 밖에서라도 잘 수 있지. 지금은 가을, 날씨는 점점 쌀쌀해지는데 집 없이 지낼수도 없는 일 아닌가.

“오케이?, 콜? 오아 다이?”

난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생각했다.

“텐진바시 2쵸메에 텐만궁이라고 신사가 있거든? 거기 쪼매 영험한데…. 거기서 부적이라도 좀 사서….”

“좋아요. 부적은 됐구요. 일단 거기서 좀 살아보죠. 캐쉬백은 확실히 쏴주는거죠?”

“오늘 당장 입금 쏜다. 대신 나 한테 들은 얘기 딴 사람한테 절대로 하면 안돼? 알았지?”

“네 알았습니다. 그럼 캐쉬백 잊지 마시고.”



난 집으로 돌아왔다. 안에 행여 누구라도 있을 것 같아 문 열기가 두려웠다. 나도 모르게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 있을 때 엄마따라 성당에 열심히 가 두는 건데, 후회가 정말 밀물 처럼 밀려왔다.

삐그덕….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지만, 다행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미야 대리의 말이 맞다면, 어제가 그 여자가 죽은 날, 그 여자는 죽은 날에만 나타난다. 그러면 오늘부터 내년까지는 그 여자가 나타날 일은 없다라는 얘기가 된다. 기분은 찜찜하고 무서웠지만, 눈에만 안보인다면 못참을 것도 없었다.



끼드드득.

그 순간 집안 어딘가에서 뭔가가 뒤틀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엄마야!!!”

나도 모르게 뒤로 벌렁 넘어졌다.

쿠쿠쿠쿠쿵….

집이 가볍게 떨렸다. 집앞 길로 큰 트럭이 지나가면서 집이 울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무서워진 나는 라디오를 틀었다. 쉴새없이 떠드는 디제이의 멘트를 듣고 있자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일본의 낮시간은 확실히 한국보다 짧았다. 가을 햇볓은 금방 힘을 잃고 사그러들었고, 하늘은 이내 짙푸른 빛을 띄며 어두워졌다. 라디오로도 모자라 나는 불도 켜고 텔레비전도 켰다. 하지만 계속 등줄기가 서늘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데도 꼭 뒤에 누가 서 있는 것 만 같아서 몇 번을 뒤돌아 보곤 했다. 아, 이게 돈에 영혼을 팔아먹은 댓가인가.



난 이불을 벽쪽에 옮겨 놓은 후, 담요를 뒤집어 쓰고 등을 벽에 붙이고 앉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않으면 뒤에서 누가 나타날 것만 같아 안심이 되질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어젯밤의 그 여자의 모습이 다시 떠 오르기 시작했다. 그 여자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다른 걸 머릿속에 떠올리려 애를 썼지만 결국 머릿속을 차지하는 건 그 여자였다. 어제 처음 봤을 땐 미니스커트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미니스커트가 아니라 원피스였다. 하늘하늘하고 풍성한. 대신 밑이 짧아 미니스커트처럼 보였다. 덕분에 아래에서 올려다 보던 내 눈에 그녀의 하얀 허벅지 안쪽과 팬티의 삼각지대가 한 눈에 들어왔던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슬그머니 발기가 되는게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너는 서는 것이냐? 너는 정말 너의 길을 가는구나.



하지만 그녀의 가늘고 긴 다리가 예뻤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실제로 키는 크지 않았지만 몸매의 비율이 좋아고 그래야 하나? 너무 놀라 얼굴도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분명히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던 같았다. 아무렴 호스티스인데 얼굴이 기본은 하겠지. 발기된 페니스는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괜히 멋쩍어졌다.



그런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문득 어젯밤의 그녀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명에 못살고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야 다 가엾겠지만, 한국식으로 생각해보면 어제는 그녀의 제삿날 아닌가? 그 여자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누군가가 차려 준 제삿상을 받았을 텐데. 누가 종갓집 큰아들 아니랄까봐 난 제삿상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년에 문중의 제사가 열두번도 더 돼는 우리집. 천주교신자인 어머니도 맏며느리의 본분인 문중제사만큼의 거부하지 못했다. 아니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제삿상을 차렸다. 그 여자는 자신의 제삿날에 고수레 밥 한술이라도 얻어 먹기는 한걸까? 난 다시 물끄러미 그녀가 매달려 있던 천정을 바라보았다.



“1250엔입니다.”

난 패밀리마트에서 급한대로 주과포의 형식을 맞춰서 간단한 먹거리를 샀다. 컵으로 파는 일본술이랑 비상용 양초, 제사용 향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폰 나침반 앱을 작동시켜 북쪽을 찾은 후, 컵라면 먹을 때 쓰던 작은 테이블을 그 쪽에 놓았다. 그리고 음식을 놓은 후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웠다.

생각같아선 유세차 모월 모일… 하고 읊조리고 싶었지만, 신위가 일본사람아닌가. 한국어로 떠들어봐야 알아듣지도 못할 것 같아. 술을 한잔 올리고 일본말로 혼잣말을 했다.

“어젯밤은 너무 놀라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소. 나 김민수라고 하오. 한국에서 공부 좀 하겠다고 일본와서 이렇게 사는데, 돈 없어서 이집에서 이러고 있으니, 좀 잘 봐주시오. 하루 늦긴 했지만 혹시 어제 제삿밥 못먹었으면 이 밥 드시오. 이승에 무슨 미련이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매듭 풀고 부디 극락왕생하길 빌겠소.”

무슨 박수무당이라도 되는 양, 나는 천연덕스럽게 중얼댔다. 그렇게 엉터리나마 제삿상을 올리고 망자에 대한 인사를 하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무서웠던 기분도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제삿상을 그대로 두고 난 맥주를 마셨다. 오늘 하루 종일 두려움에 시달리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탓인지 술기운이 금방 돌면서 피곤해졌다. 마미야 대리는 약속대로 곧바로 6000엔을 입금시켜 줬다. 6000엔 큰 돈이지, 큰 돈이야. 이불 위로 벌러덩 눕자 차르르르르하는 기계음이 들리면서 불이 번쩍 번쩍하는 파칭코 기계가 눈 앞에 어른거렸다. 파칭코를 처음 시작할 때는 바다이야기라는 녀석을 열심히 했는데 요즘은 AKB48에 빠져있었다. 슬롯 세개의 숫자가 맞으면, AKB의 리더였던 마에다 아츠코가 깜찍한 목소리로 “축하해~”를 외친다. 그 순간 AKB의 히트곡 헤비로테이션이 흘러나오면서 구슬이 그냥

바스락 바스락.

어라, 구슬 나오는 소리는 바스락이 아니라 촤르르다. 소리가 틀려.

바스락 바스락.

오오아타리의 불이 켜지면서 구슬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인데 이상하게 소리는 작은 비닐봉지를 만지작 거리른 소리가 났다. 아이씨… 이 개 꿈.

바스락 바스락, 찌이이이익 바스락. 뭔가 비닐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눈이 떠졌다. 방안은 어두웠다. 분명히 이불위에 누울때 불을 켜두었던 것 같은데.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꺼져 있었다. 분명히 이불에 누웠을 때 텔레비전도 켜져 있었는데.

푸르스름하게 어두운 방안은 밖에서 들어오는 네온 불빛만 내려 앉아 있을 뿐이었다.

예감이 안 좋았다.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을 굴렸다.



“흡.”

순간 난 숨을 멈추었다. 아니 숨을 쉴 수 없었다. 이불이 놓인 자리 맞은 편 저쪽 방 한구석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아니 누군가가 아니었다. 어제 그 여자였다. 그여자는 내가 음식을 놓아 두었던 작은 테이블 앞에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엔 삼각김밥이 들려 있었다. 긴 머리에 가려진 그녀의 얼굴은 어둠속에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삼각김밥을 싸고 있던 비닐 포장을 뜯고 있었다.



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누가 종갓집 장손 아니랄까봐 괜히 미친 짓 해가지고 오늘이 이 사단을 내고 마는구나.가슴이 쿵덕쿵덕 뛰었다. 하지만 눈을 뜰 수 없었다. 만일 저 여자가 내가 깨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뭔 짓을 할 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얼굴쪽에 뭔가 서늘한 느낌이 났다. 뭐야 이건. 혹시 저 여자 이 쪽으로 온거 아냐?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더 무서웠다. 하지만 눈을 뜰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일 눈을 뜨는 순간 코앞에서 그녀의 뻥 뚫린 두 눈이 나를 내려다 보기라도 한다면, 내 심장은 바로 멎어버릴테니깐 말이다.

난 그렇게 두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떨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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