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모텔 6
파라다이스 모텔 6
그날의 이야기는 어찌 되든 좋았다. 그저 불안해 보이는 그와 조금 더 있고 싶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 곱상한 얼굴로 자신의 뚝배기를 호탕하게 비운 뒤 녹색 이쑤시개로 이를 후비며 배를 두드렸다.
“해서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설은 김치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으며 물었다.
“뭘요?”
“돈뭉치요. 꼭 두 번 말하게 하는데.”
“동생, 그렇게 말하면 누가 알아요....... 어제는 그렇게 상냥하게 해주더니 완전 까칠하시네.”
“미안해요. 연장선으로 이야기가 보일 줄로 알았죠.”
“음. 그럼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근데 어디까지 말했죠?”
“무슨 선수? 입장한다고.......”
“아아, 오케이 오케이.”
신 실장의 외침과 함께 단정한 차림의 남자들은 단전에 손을 모으고 우르르 넓은 노래방 안으로 일렬 들어섰다. 수줍게 입을 가린 여성, 흥에 솔직해서 환호성을 지르는 여성, 시큰둥하게 핸드폰을 보는 여성이 있었다.
“난 노래 잘하는 애가 좋은데~.”
“아휴~ 누님, 얘들이 하는 일이 이건데? 하나같이 다 잘해, 다 잘해.”
분명 초면일 흥 넘치는 여자와 신 실장이 만담처럼 죽을 맞췄다.
“얘들아, 자기소개해라.”
신 실장의 말이 떨어지고, 일렬의 남자들은 자기소개를 했다. 보통은 수식어를 동반한 짧은 소개부터 절실하게 보이는 선거 노래 같은 개사에, 참신하고 입담 좋은 농담 한마디씩이었다. 그는 쑥스러움에 대충 웅얼거려서 자신의 데뷔 소개를 까먹었다고 했다.
“나는 얘가 좋아.”
“나는 얘.”
“이리 앉아.”
여자들은 한 명씩 선수들을 픽했다. 그러나 도드라지는 외모의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선택 받지 못했다.
“굿 초이스!!!”
선택 받지 못한 남자들은 엄지를 번쩍 내밀며 그녀들의 선택을 지지한다는 듯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아~ 못생긴 년들이 눈은 더럽게 높아요.”
“안 걸리길 잘했다. 안 걸리길.”
“불쌍하다 불쌍해.”
방을 나오자마자 그들의 열등감 섞인 진심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런 식으로 다시 인력사무소에 나간 실직자처럼 아니, 그보다 못한 기분으로 차에 올라 반짝이는 거리를 날이 밝을 때까지 떠돌았다.
“몇 살?”
5시경에 들어간 룸의 여성이 Y의 나이를 물었다.
“스물셋이요.”
“너무 어리다.”
Y는 또다시 쓰디쓴 “굿 초이스!”를 외치며 나와야 했다.
Y와 선택 받지 못한 이들이 사무소로 돌아왔다. 담배로 구름을 만들며 둥근 테이블에서 지폐를 수북이 쌓아 두고 카드 게임을 하는 무리들과 날카로운 눈매로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스마트 폰을 하는 남자들이 전부였다.
Y는 그들과 거울을 번갈아 보았다. 초췌하고 늘어진 얼굴들과 달리 하얗고 탄탄하게 빛나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무너지는 자존심과 솟아나는 불만스러움에 그는 치를 떨었다.
“첫날은 다 그래 인마.”
마른 다리가 Y의 앞에 서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신 실장이었다.
“하룻밤 정신 없이 놀아보자는 애들만 오는 곳이야. 너처럼 높은데 열린 과실 따먹다 체할까 시도나 하겠냐?”
“무슨 말이에요?”
“좀 더 느슨해지라고. 오늘 밖에 없는 게 아니라, 오늘 딱 하루 그뿐인 것처럼.”
“아.......”
신 실장의 조언을 두를 새도 없이 Y의 스마트 폰이 울렸다.
“저 전화 좀.”
“아. 그럼, 그럼.”
Y는 신 실장에게 허리를 꾸벅 숙인 뒤 찬바람이 드는 조용한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여자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
그녀의 목소리에서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미안함이었고, 아쉬움이었으며, 쓸쓸함과 간절함이었다. 그것을 모두 간파할수록, 이해할수록 그는 더 차가워졌다.
“와주면 안 돼?”
상냥하던 그녀의 말투는 그의 음성에 금세 무너졌다. 떨리다 못해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라는 꽃 한 송이의 상실이, 부재가 그녀에게는 큰 의미였던 것 같다.
“안되지. 네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그는 더 차갑게 자기중심적으로 그가 듣고 싶은 말을 그녀가 꺼낼 수 있게 했다.
“와주면 내가.......”
“뚝.”
그는 무언가에 들리거나 홀린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와~ 개 쓰레기 새끼.”
“이게 왜 개 쓰레기에요. 내 이벤트를 짓밟았다니깐, 그리고 형한테 무슨 말버릇이지?”
“아니 내가 참다 참다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삐쳐서 여친 버리고 모텔 나오고, 여친 아는 동생이랑 섹스하고, 울면서 화해 청하는 전화도 끊는 게 사람 새끼에요?”
“아 일단 들어봐요 좀. 그리고 여기 사람도 많은데....... 나갈까 우리, 어떻게 우리 동생 뭐 좋아하나 케이크 좋아해요?”
“응.”
Y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잠깐 사이에 변함없이 볼품없는 환경에 자신은 무얼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오늘 한 타임도 못 뛴 사람?”
신 실장이 통화 중인 핸드폰을 들고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저요!”
“넌 2시에 두 타임 들어갔잖아.”
“헤헤 들켰네.”
듣고 있자니 노련해 보이던 그가 뛰어든 룸에 무작위의 남자 몇 명을 충원하라는 말이 나온 것 같았다.
“야 Y, 너 첫날이라 들어간 곳 없지?”
신 실장이 확인하듯 다급하게 물었다.
“네. 그렇긴 한데.......”
“그럼 구청 편의점 정면에 노래빠 알아?”
“네.”
“거기로 가. 천천히 걸어갔다가 올 때 애들이랑 같이 오고.”
Y는 번쩍이는 구두로 또각 또각 걸으며 반짝이는 네온사인 사이로 더한 빛을 뿜는 거리로 걸어갔다. 계속되는 가을비로 생긴 물웅덩이를 밟으며 어지러움이 그를 삼킬 때까지 걸어갔다.
번화가의 룸살롱을 연상시키는 과해 보이는 인테리어, 대리석 바닥과 크리스탈 샹들리에를 지나 유리 너머 어둑어둑한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곡인지는 그에게서 듣지 못했지만, 시끌벅적하고 누구나 알만한 90년대 댄스 곡이 울려 퍼졌다고 했다. 그 중심엔 자신과 같은 남자 다섯쯤과 예쁘장한 여자 한 명이 어울려 춤을 추고 노랠 하고 있었다. 그는 신 실장의 조언대로 룸에 몸을 들인 즉시 흥으로 뛰어올랐다 하루 그 뿐인 것처럼.
고품의 가격만큼 부풀려진 싸구려 양주와 안주들, 여섯 남자의 충실함이 담긴 한두 시간, 과한 인테리어의 노래방. 만족한다면 여제처럼, 불만족스럽다면 내일 아침 어제의 자신을 죽도록 미워할 가격, 78만원이 나왔다.
그중에 Y의 몫은 고작. 2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