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호프집 모녀덮밥 - 완 - 8편 (8/9)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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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소설) 호프집 모녀덮밥 - 완 - 8편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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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에 슬리퍼 질질 끌고 소피이모 호프집을 새벽에 가서 거들어 주고 둘이서 섹스를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색욕을 참지 못하던 젊은 날의 20대의 욕정은 40대의 농염한 소피이모를 만나 불 붙었고....
우리는 두고 두고 후회할 위험한 불장난을 저질렀다.
그랬구나...나도 담배를 깊게 빨았다.
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목이 탔다.
다시 소줏잔을 들이켰다. - 그런데 너 왜 나한테 은실이 얘기는 안 묻냐? - 응..
그냥..... - 윤환아, 재형이가 소주를 따라주면서 내 눈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 윤환이 사실 너도 은실이 좋아했잖아. - ........ - 참 내가 많이 미안했다.
철도 없었고..할 말이 없구나. - 됐다, 그 얘기는 그만하자.
지난 일인데... -은실이 지금도 나 연락한다. -그래? - 내 와이프가 은실이 먼 친척이야.
너 몰랐지? - 아, 그랬구나. -야, 내가 진짜 철이 없었지.
은실이한테 나랑 결혼해주면 우리 4층 건물은 명의이전 해 주겠다고도 큰소리 쳤다.
소피이모가 평생 임대료에 허덕이던 분 아니냐.
그런데 은실이가 나한테 뭐라는 줄 아냐? - 뭐라는데? - 야, 나 은실에게 되게 혼났다.
걔 의외로 속이 깊잖아. '오빠, 우리 삶에는 다 자기 몫이 있고 자기 짝이 있는거래.
마음은 감사하지만 오빠는 내 몫이나 내 짝이 아니라고 하더라' -그래? - 그 담에 뭐라는 줄 알아? '오빠는 친한 친구라면서 내가 윤환이 오빠 사랑하는거 여지껏 몰랐냐'면서 막 내 앞에서 울더라고. - ........ - 내가 참 너희 둘한테 너무 부끄러웠다.
미안하다.
재형이는 잘 익은 꼼장어를 하나 덥석 골라 맛있게 씹으며 소줏잔을 입에 털더니 또 말을 이어갔다. - 윤환아, 참 희한한 게 있어.
내가 은실에게 그 얘기 듣고 나서 부터 진짜 갑자기 마음이 변했다.
은실이가 어차피 내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한거야.
그리고 은실이가 소개시켜 준 우리 집사람이 너무 너무 예뻐보이는 거야.
집사람 김천에서 돈 벌러 서울 올라왔거든. - 그래? 그것 참 신기하네. - 너 중국 가고 얼마 있다가 은실이가 울며불며 중국 간다고 난리쳐서 고생한 적 있어. - 그랬어? - 소피이모가 서울 올라와서 은실이 따귀 때리고 그랬다.
평생 은실이 손지껌 한 적 없었는데 처음이래. - 헐...그랬구나.. - 너 임마, 왜 말 안했어.
은실이랑 너네 사귀는 거...
난 진짜 몰랐다.
혹시나 했지..자식... - ..........
이른 가을 밤이 점점 깊어갔다.
꼼장어 집에는 손님들 다 나가고 우리 밖에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새벽 늦게까지 영업하니 상관없다고 하신다.
소주는 벌써 5병이 비워졌다.
나도 중국에서 독주로 술이 늘었고 재형이는 덩치가 있어서 원래 주량이 세다.
참, 가을 밤 하늘 곱구나.
재형이가 소주 한 잔 입에 털면서 또 말을 꺼냈다. - 음, 이 얘기는 굳이 너한테 해야 할지 모르겠네. - 재형아, 얌마, 편하게 다 얘기해...
이제 나 괜찮아.
소피 이모가 사고 나고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 꽂고 12일간 살아 계셨어.
그런데 은실이 얘기 들어보니까 너를 찾았다고 하더라.
잠깐 호전되서 잠시 산소호흡기 뗄 때 ...힘들게 간신히 윤환이 함 보고 싶다고 너 데꾸 오라고 그랬는데..바로 그 담날 돌아가셨어.
너 혹시 소피이모에게 뭐 갚을 돈 있냐? 너랑 소피이모랑 예전에 친했긴 해도...
뭐 임종 직전까지 그렇게 까지 찾을 사이는 아니라는 생각들어서..
그래? 소줏잔을 쥔 손이 내 손이 조금씩..아주 조금씩 바들바들 떨렸다. -근데 너 왜 떠냐? -아, 추워서 그런가보네. -야, 이 정도 밤 공기가 뭐가 추워.
아, 맞다.
너 따뜻한 지방에서 살다 왔지. - 재형아, 소피 이모가 언제 돌아가셨다고? - 올 봄 4월인가 그럴 거다.
예전에 은실이가 내 문제로 소피이모와 자주 싸웠다고 그랬지...
그래, 맞다.
소피이모는 나한테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었을 거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 용기 없어서 꺼내지 못한 그 금기의 말을 먼저 하고 싶었을거야.
소피이모는 은실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왜냐고? 하나 밖에 없는 딸의 엄마니까.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한테 다 잊고...
은실이 행복하게 해주라는 말...
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세상에는 분명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있다.
그건 쉽게 보이지 않는 일련의 흐름이다.
그 흐름은 때로는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하고 때로는 순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 흐름을 거역하면 항상 가혹한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게 신이 디자인 한 우리 삶이다.
나는 안다.
그건 어김이 없다.
난 입에서만 맴돌았다.
나의 친구 재형아...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소피이모가 나와 은실이가 결혼하기를 바라는 순간..
소피이모의 교통사고는 예정 돼 있었을지 모른다.
그게 치러야 할 가혹한 댓가였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래서 내 운명의 궤도는 그렇게 굉음을 내면서 갑자기 바뀐 걸 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피 이모의 영혼은 갑자기 나를 이땅으로 다시 불렀는지 모른다.
가을 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우린 서서히 만취했다.
나도 모르게 내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딱히 이유는 없다.
통한도 아니고...
아쉬움도 아니고...
그리움도 아니다.
그냥 그냥...다만 눈물이 흐를 뿐이다. -재형아, 꺼억..
이 시방새야.
너 행복하지? -넌 내가 지금 얼마나 마누라를 사랑하고 우리 딸 때문에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 걸. -그럼 됐다, 다 됐다.
잘 됐다..이, 시방새.
재형아...오늘 내가 마지막으로 묻자. -그래..네가 먼저 물어야지.
임마.
기다리고 있었어. - 우리..우리 은실이...지금 뭐하냐? 어떻게 살고 있어..
아까부터 흐르는 눈물을 그치지 않았고...난 울먹였다. - 야, 잠깐 기다려라.
안 그래도 너 주려고 했다.
재형이가 지갑에서 작은 빨간 명함을 하나 꺼냈다.
은실이는 무슨 악세사리점 대표였다.
은실이는 소피이모 교통사고 후 보험금으로 대학로에서 악세사리 가게를 하나 차렸다고 했다. - 그 소피이모랑 그 형 부부가 많이 싸웠잖냐.
동반자살로도 의심된다고 보험금 지급 안해 줬는데 나도 보험사에 같이 생난리치고 해서 어찌어찌 나중에 보험금 나왔다.. - 오케이, 고맙다.
재형아.
오늘은 이만 마시자.
나 간다. -얌마, 늦었어...더 먹고 그냥 자고 가... - 아냐.
택시타고 가면 돼. - 야, 택시비 졸라 나와.
윤환아.
알았고..은실이 꼭 만나러 가라.
꼭! 나는 손을 저으며 비틀비틀 졸리운 달빛이 잔잔히 내리는 골목길을 걸었다.
이른 가을 바람이지만...
거리에 벌써 나뭇잎이 쓸쓸히 뒹굴고 있었다.
(계속) --------------------------------------------------------- 그동안 졸필이지만 저의 아팠던 청춘 시절의 고백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은 집사람이랑 딸램이랑 일산 공원 다녀와서 마지막 편 올릴게요.
오늘은 쿨쿨...
중국 광저우에서 곰팡이 썩는 쪽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쓸 때..
매일 매일 절망할 때....둥근 달처럼 환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하얀 얼굴에...살짝 눈웃음기와 함께....
늘 여유 있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
네 생각하면...난 항상 설레고 용기가 났어.
가끔씩 피곤한 밤 꿈결에...네 얼굴이 보였어..
그럴 때면 넌 갈색 빛깔 머리카락 흘러내린 얼굴로 '오뻐야, 오빠는 잘 할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지난 5년 동안 나는 하루도, 한 번도 널 잊은 적이 없어....
너는 어땠니...
햇살 고운 어느 가을 토요일.
난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히 움직였다.
밤새 하스스톤 모바일을 했지만 피곤하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앓던 갑상선 암은 빠르게 호전되어 가고 있었다.
어제 샀던 밤색 정장 삘나는 마이도 입고 향수도 뿌렸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오래된 반지를 찾아 꼈다.
그 옛날 은실이와 함께 꼈던 백금 커플링이다. - 우리 아들, 오늘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꽃단장하고 어디가려고? - 아.
누구 좀..
친구 만나러 가요. - 여자? 그래 잘 됐다.
너 장가 가야지. - 그래야죠.히히..
좋은 일 있겠죠.
맨날 장가가라고 보채던 어머니가 표정이 한결 환해졌다 - 그래? 누구를 만나는데..혹시 엄마가 아는 사람이니? - 아마 기억하실 거에요. - 글쎄, 누굴까.. - 나중에 말해드릴게요.
참, 엄마는 교회 다니잖아? 엄마는 동네 교회에 권사였다. - 엄마가 맨날 기도하면 이뤄진다며? 그럼 오늘 나 위해 기도 좀 해줄래? - 무슨 기도? 그런데 기도도 내용을 어느정도 알고 해야 하는 거야. -응, 오랜 매듭을 풀어야 할 게 있어서.
밀린 숙제를 한다고 할까.
그냥 그렇게만 알고 꼭 기도해줘요. -알았어.
어머니는 이미 짐작 간다는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면 대답하셨다.
난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대학로로 향했다.
떨림이나 설렘은 없었다.
모든 게 그저 담담했다.
어차피 모든 게 예정되서 여기까지 온 거다.
재형이가 준 명함 뒤의 약도를 찾아가보니 대학로 큰 길가는 아니고 약간 길에서 비껴 있는 작고 예쁜 악세사리점이었다.
악세사리만 파는 것이 아니라 인형이나 팬시제품도 함께 파는 것 같았다.
담담했던 마음이 악세사리 점에 가까이 갈수록 가슴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몰래 인형이 주렁주렁 걸려있는 가게 투명유리 속을 들여다 봤다.
안에 예쁘장한 20대 후반의 여자와 알바로 보이는 어린 여자애 한명이 보엿다.
여전히 꽉찬 B컵....아니, 이제는 조금 살이 찐 건지 꽉찬 C 마이너스 급으로 보이는 가슴을 강조한 흰 블라우스에 ...실내에서 입는 것으로 보이는 검정 가디건을 걸치고...하늘색 치마를 입고 있는 늘씬한 여자 사장님.
그저 20대 초반의 앳된 여자아이 였는데..
아, 참 많이 성숙해졌구나....내가 꿈에도 잊을 수 없었던, 바로 은실이였다.
아직 점심도 안된 토요일 오전인데 가게에는 손님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나는 가만히 서서 지켜봤다.
이쁜 은실이는 손님들 보고 환하게 웃기도 하고 ...실랑이를 하기도 한다.
가격 흥정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부분 손님들은 기분 좋게 악세사리나 팬시제품을 사들고 나간다.
은실이는 장미숲 HOF 에서 일할 때도 항상 환하게 웃고 기쁨을 주는 친절한 아이였다.
화내는 것을 거의 못 봤다.
난 심호흡을 크게 했다.
딸랑딸랑! 입구에 걸린 방울소리가 났다.
알바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먼저 인사했다. - 어서오세요.
진열된 제품을 만져보던 은실이가 힐끗 쳐다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제품 정리를 한다.
그러다가 잠깐 갸우뚱 하더니....천천히....
아주 천천히...
곁눈질 하며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린다.
마치 그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 은실아, 잘 있었어? 은실이는 나를 보더니...
눈이 커졌다.
한동안 멍하니 말을 잊지 못했다.
은실이 사귀면서 그런 멍한 표정은 내가 <빨간 당나귀>에서 반지를 꺼내면서 헤어지자고 했을 때가 유일했다.
그게 벌써 거의 6년 전 일이다.
오늘도 그 때처럼 멍하니 나를 쳐다본다. - 오...오빠! 오랜만이네. - 그래, 은실아.
참 오랜만이지? - 오빠, 언제 한국 온거야? 미리 연락이라도 좀 하지. - 응, 몇 달됐어. - 오빠, 얼굴 많이 탔네.
은실이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가 싶더니..
곧 평정을 되찾았다. - 응, 나 좀 더운 지방에 있었거든.
근데 은실이 넌 예전 그대로야. -오빠, 나 살 좀 쪘어요.
은실이가 약간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냐, 그대로인데...
잠깐 적막이 흘렀다.
은실이도 말이 없었고....나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 주말이라서 오늘 바쁘겠네? - 엉, 그냥..조금...
힐끗 옆을 보니 한쪽에 정수기와 노랑 봉지커피, 그리고 종이컵이 보였다. - 은실아, 나 커피 한잔만 줄래? - 어머, 내 정신좀 봐.
희정씨.
여기 커피 한 잔만 타줘.
난 여자 알바가 주는 종이컵 커피를 조심스레 받았다. - 나 조금 둘러봐도 되지? - 응, 오빠 들러봐.
난 커피를 마시면서 둘러 봤다.
평소에 은실이는 팬시제품을 좋아했고 귀여운 것만 보면 나한테 선물 하곤했다.
작고 귀여운 악세사리도 좋아했다.
역시 은실이다운 가게였다.
장사가 괜찮게 되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또 손님이 벌써 두서넛 왔다 갔다.
그런데 뭔가 좀 서먹서먹했다.
어딘가 잘못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난 은실이가 눈물을 쏟으며 나한테 와락 포옹하는..영화 속 장면을 내심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영화일 뿐이다.
한쪽에서 태연히 장부를 펼치고 있는....
은실이를 보는데....손가락의 반지가 눈에 띄었다.
어...어? 그런데...
백금이 아니라 황금반지였다.
응? 저...저건 전형적인 커플링이다....
내 다리가 갑자기 후들후들 떨렸다.
아니, 내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 오빠는 요즘 뭐해? 은실이가 말을 거는데...
갑자기 은실이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 아, 오빠.
잠깐..
은실이가 전화를 받는데 '여보세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엉, 오빠~ 은실이가 전화 속의 주인공을 다정스럽게....
오빠라고 불렀다.
머리가 갑자기 막대기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어지럽더니 눈에 노란색 아지랑이가 일었다.
난 자리를 피해줘야 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요? 난 여자 알바에게 화장실을 묻고 가게를 나와 건물에 딸린 화장실에 들어갔다.
으웩...!!!! 갑자기 헛구역질도 났다.
세수를 했다.
난 담배를 한 대 꺼내 피웠고 가능한 깊게 빨았다.
휴...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은실이 흰 손가락에는 우리가 끼던 백금 커플링은 없고....대신 황금커플링이 있구나.
난 슬그머니 백금 커플링을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다면 금방 전화 온 남자 목소리의 주인공은 은실이의 새 애인일지 모른다.
차라리 재형에게 미리 물어보고 올 걸 그랬나.
아니지, 재형이도 은실 애인 존재를 잘 모를 수 있다.
그래, 시발...은실이랑 헤어진 지 무려 5년이다.
황금 같은 20대 젊은이에게는 천년 같이 길고 긴 세월이다.
군대 2년에도 고무신 거꾸로 신는 여자애가 헬조센에 수두룩 하다.
게다가 난 은실이게 기다리라고 한 적 조차 없다.
지금 저 밖 대학로 거리에서 가을 햇살 아래 도란도란 속삭이는 젊은 커플들을 봐라.
인생에 제일 꽃피고 아름다운 20대 여친을...그렇게 기약없이 방치한 놈이 뭘 기대한다는 게 말이 돼...
서울 거리에서 은실이처럼 꽉찬 B컵 가슴을 가진 예쁘고 고운 애가...
설마 아직도 애인이 없으리라고 생각한 거냐.
내가 참 어리석었다.
그저 옛날 생각만 했다.
내 머리는 과거에서 정지 되어 나 혼자서만 상상의 나래를 펼친 거다.
사실 오늘 드라마처럼 멋지게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은실이를 <빨간 당나귀>로 데리고 가서....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제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다.
그래, 다 부질없구나..
몸은 떨렸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냥 마음 한구석이 무너질 뿐이다.
전에 주갤의 김동민 부장님도 말씀하셨다.
삶에는 대차대조표가 있다고.
난 지금 그걸 치르는 거다.
부채를 갚는 거다.
아픔을 준 자, 너도 아픔을 느껴봐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을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
은실이는 공항에서 헤어질 때 보다..
훨씬 얼굴이 좋아 보였다.
그럼 반지 주인공은 아마 좋은 남자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처럼 속썩이거나 덜 떨어진 놈은 아닐거다.
그럼 됐다.
그래, 은실아, 차라리 잘 되었다..... -어디 아픈 데는 없지? - 응, 오빠는? -나도 그래.
또 말이 끊겼다. -은실아, 저녁에 시간 좀 되니? -오빠, 미안해..나 오늘 저녁에 약속 있는데...
그렇겠지.
토요일 밤에 약속 없는 게 이상한 거지.
아, 아까 그 남자와 저녁 약속 잡았나 보네.
은실이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알던 그 옛날의 다정하던 은실이가 아니다.
나는 빨리 여기를 벗어 나고 싶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응, 너한테 좀 할 얘기도 있고...
전해줄 것도 있어서. - 오빠, 나한테 뭐 할 얘기 있으면 지금 해.
조금 있으면 손님 많이 오고 바빠.
섭섭했다.....
야속했다. ..사실4 술이라도 한잔 하며 지난 얘기 하고 싶었는데.... -그럼 잠깐 가까운 찻집이라도 가자.
오랜 안 걸릴거야. -오빠, 그럼 요 앞에 가다보면 20미터 거리에 지하 카페하나 있어.
거기 가 있어.
나 금방 갈게.
카페에서 혼자 기다리며....
난 하스스톤 모바일을 할까 하다가 그냥 눈을 감았다.
게임도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은실이는 눈 화장만 살짝 고치고 온 것 같았다.
그래, 술 마시면 감정이 과장된다.
맑은 정신으로 5년 동안 속에 담았던 얘기 털어놓고 빨리 집으로 가자.
집에 가서 울면서 하스스톤 모바일이나 하자.
난 사실 더 서 있을 힘...버틸 힘도 없었다.
아까부터 무너져 내린 마음으로 이미 몸의 평정도 잃은 것 같았다. - 그래? 오빠가 나한테 할 말 있다는게 뭐야? '은실이...너 많이 차가워졌구나.
내가 더 담담해야 한다.' 은실이 오른 손에 황금 빛 커플링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격동되었다.
흔들리지 말자, 좋은 모습 보이자. -응...기억나니?.내가 5년 전에 중국으로 떠날 때 너한테 했던 약속.
은실이는 나를 쳐다보고 별 대답이 없었다. -내가 너한테 약속한 거, 나 그거 지켰다고 말하고 싶었어.
두 가지 약속말야. -약속? 오빠가 나한테 약속한게 뭔데..
그래, 이제 이 모든 게 너한테는 그다지 관심사가 아닐 수 있지..... - 넌 다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
그치만 꼭 말해주고 싶었어. - 응, 오빠, 말해봐. -응, 첫째는 나 아주 건강하게 잘 있다는 거.
지난 주에 건강 검진 받았는데 뭐 온 몸이 아주 튼튼하다더라.... -다행이네.
은실이가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 또 하나는? - 내...내가 너 잊지 않기로 했잖아.
나 너 잊지 않았어.
나 중국으로 떠났지만 공항에서 너랑 헤어진 이후로 한 번도 너 잊은 적 없었어.
그 말...그 말은...그냥...꼭 해주고 싶었어.
내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떨리면 안돼..시발....
은실이가 가만히 알 수 없는 눈길로.....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다가 눈을 다시 내리깔더니 잔을 들어 모카 커피를 조용히 입에 댔다.
또 아무 말 없다....
그치, 이제 와서 이따위 그 시절 약속이 너한테 무슨 감흥과 감동을 주겠니.
어쩌면 기껏해야 네가 저녁에 만날 애인과의 술 안주거리일지도 모르지.
난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서고 싶었다.
섭섭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때, 불현듯 소피이모 얼굴이 떠올랐다.
여전히 내게 따스한 얼굴이다.
소피이모는 마치 나보고 침착하고 아름답게 마무리 지으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그냥 일어설까 하다가..난 마지막으로..진짜 젖 먹던 힘을 다 내서....가까스로 용기를 냈다. - 은실아, 그리고 이거 받아. - 이게 뭐야? 내가 은실에게 종이 쇼핑백을 건냈다. "은실아, 내가 중국 북경에서 회사를 나와 광저우로 가서부터 고생 좀 했다....힘들었고..술도 많이 마셔서 잘못하면 몸과 마음이 망가지겠더라.
그때 네 생각했다.
그때부터....
너 보고 싶고....
생각날 때마다 편지를 썼다.
너처럼 내가 매일 쓰지는 못하고....워드로 친 거지만 ...그래도 너한테...언젠가 만나면..
꼭 전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출력해 왔다...
나 어떨 땐 자포자기 하고 싶었는데...
네 생각하면서 용기냈다.
오빠가...너....너 ..아니었으며 진짜 무너질 뻔 했다.
별거 아냐.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
그래도 너한테 이 말은 해주고 싶었어.
네 얼굴보니까 건강하고 좋아 보이네.
너도 나한테 약속 했었어.
밥 잘 먹고 건강하겠다고....
그럼 너도 나한테 약속 지킨 거고....자, 그럼 됐다..
이제 다 된 거야....." 이런 낯 뜨거운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 내가 놀랐다.
그때까지 태연하던 은실이의 표정에 조금씩 미동이 왔다.
고개가 숙여지고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우리 참 먼 길을 돌아 왔는데..또 이렇게 어긋나는구나...다시 먼 길 가야 하나 보다..' 지난 5 년간의 긴 폭풍의 여정이 끝났다.
마지막 비바람이 오늘 이 자리에서 그쳤다.
난 눈을 감았다.
눈시울은 뜨거워졌으나...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내 마음은 고요해졌다.
이제 가야 한다.
다 끝났다, 자, 일어서자.
신은 야속하지만...그런대로 내 운명을 잘 설계해줬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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