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천중행 - 검 - 2편 (2/46)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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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천중행 - 검 - 2편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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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의 줄기 전체는 분명 녹색이었다.
헌데 그 잔줄기는 혈맥이 내비치듯 핏빛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잎(葉)과 꽃봉오리의 형태 또한 기이했다.
한마디로 천하에 존재할 수 없는 괴초(怪草)인 것 이다.
이것이 북궁후의 작품이란 말인가? ■ 검 1권 제1장 황궁서고(皇宮書庫)의 신비소년(神秘少年) -7 ━━━━━━━━━━━━━━━━━━━━━━━━━━━━━━━━━━━ ⑦ '으음! 이것은 내가 지난 십 년 동안 연구해 왔어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헌데 이 아이가? 대체 이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위 사람들을 경악케 하는 북궁후이다.
그런 아들을 북궁천은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치 풀 길이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를 보듯. '이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점점 미궁(迷宮) 속으로 빠져들고 만 다.' 허나 투명할 만큼 맑고 천진무구해 보이는 그의 눈을 대하면 북궁 천은 언제나 불가사의고 미궁이고 다 팽개쳐 버리고 주체할 수 없 는 진한 애정에 몸을 떨곤 했다.
문득 그의 입에서 냉엄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황실 서고에는?" 북궁후는 움찔 하더니 곧 공손히 대답했다.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낮잠만 잤느냐?" 북궁후는 대답 대신 안색이 약간 흐려졌다.
단지 안색이 흐려진 것만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고 있 었다.
허나 그 표정은 금방 회복되었다.
문득 북궁천이 고개를 들었다. "그 황실서고는 황상께서 특별히 네게 개방하신 것이다.
네가 대 과(大科)에 급제한 지 이미 이 년, 헌데도 아직 등용(登用)시키지 않으심은 따로 뜻이 있으시기 때문이었다." 북궁후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 정의 변화도 없었다.
대신 그의 입에서 차분한 음성이 흘러나왔 다. "아버님, 소자는 진정 무공(武功)에 뜻이 없습니다." 일순 북궁후의 짙은 검미가 한 차례 격한 떨림을 일으켰다.
북궁 후가 당당히 말을 이었다. "소자는 오직 학문일도(學文一道)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길을 걸어도 평생 그 진체(眞諦)를 깨닫기 어려운데 어찌 양도 (兩道)에 몸을 담겠습니까?" 실로 십오 세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 치고는 놀랍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북궁천은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이윽고 무거운 탄식과 함께 입을 열었다. "진정한 남아(男兒)의 기상은 문무(文武)를 겸비할 때 우러나는 것이다." "...!" "학문의 힘은 실로 위대하고 무한하다.
허나 현실적인 힘으로 강 한 것은 무(武)다! 너는 그 뜻을 알 것이다." 북궁후는 계속 말없이 부친의 이야기를 들었다.
북궁천은 다시 화 초에 가위질을 하며 잔잔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천의(天意)를 달통한 현자(賢者)의 가슴도 어리석은 자(者)의 무 딘 칼날에 피를 흘린다." 조용한 가운데 거역할 수 없는 힘이 깃든 목소리였다.
일순 북궁 후의 미간에 격동의 빛이 스쳤다.
허나 동요의 빛은 없었다.
문득 북궁후는 확신 어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하늘을 대하듯 한다면 무력으로 서로 다툴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북궁천이 가위질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깊은 눈은 북궁 후의 고집을 부정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가위를 놓고 가슴 앞자락을 풀어 헤쳤다.
북궁후의 눈에 의혹이 빛이 스쳐갔다.
헌데 북궁천의 가슴이 햇살 아래 드러난 순간이었다. "아니 그 상처는?" 북궁후는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북궁천의 가슴 심장 부위, 그곳에 길이 한 자 가량의 검상(劍傷) 이 나 있지 않은가! 상흔(傷痕)은 너무나 깊어 그런 검상을 입고 도 살아난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버님!" 북궁후는 격동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부친을 바라보았다.
기이한 충격같은 전율이 그의 전신을 훑어갔다.
북궁천은 앞섶을 여미며 담담히 말했다. "이 상처가 바로 무공의 힘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십 년 전 황실 에 역모의 움직임이 있었고 바로 그때 얻는 상처인 것이다.
천하 대석학인 내가 일개 우매한 무부(武夫)의 칼에 당했던 것이다." 북궁천은 미미하게 경직되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알겠느냐? 남아는 가슴에 품은 뜻을 펴기 위해서라도 무(武)를 겸비해야 한다!" 북궁천의 말속에는 강한 설득력과 위엄이 내포되어 있었다.
북궁후는 부친이 상처를 보여주는 이유를 깨닫고 알 수 없는 격동 에 잠겨들었다.
허나 그의 눈은 점점 더 음울하고 어둡게 가라앉 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아직은 치기가 남아 있을 십오 세 소년의 가 슴을 지배하는 저 어두운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를 그윽한 눈으로 직시하던 북궁천은 무겁게 탄식했다. "음! 네 의지가 너무나 굳구나." 그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이어 다시 백작약을 손질하기 시작했 다.
동시에 일견 무심하기 이를데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양총관(楊總官)에게 준비시켰다.
내일 날이 밝는대로 천기신궁 (天機神宮)으로 떠나거라." 순간 북궁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말할 수 없 는 놀라움과 당혹(當惑)의 빛이 그 얼굴에 피어올랐다. "아버님! 그곳은?" "천기신궁의 궁주(宮主), 천기신군(天機神君)이 이 아비와 친분이 있다.
마지막으로 너를 그에게 맡겨 보겠다." 북궁후의 눈은 돌연 태산처럼 크게 증폭되어 보이는 부친의 등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눈에는 놀람이 가득해 있었다.
그의 놀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 검 1권 제1장 황궁서고(皇宮書庫)의 신비소년(神秘少年) -8 ━━━━━━━━━━━━━━━━━━━━━━━━━━━━━━━━━━━ ⑧ - 천기신군(天機神君) 모용선학(慕容善鶴).
이 이름은 바로 살아 있는 전설(傳說)이었다.
오십 년 전, 약관의 미청년(美靑年)이 소리없이 무림(武林)에 등 장했다.
중원이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평범한 그의 이름 뿐이었다.
허 나 십 년이 흘렀을 때, 중원 천하는 경악(驚愕) 속에 숨을 죽여야 했다.
황산(黃山) 천도봉(天桃峯)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채가 건립되었 다.
천기신궁(天機神宮), 가히 천하를 굽어볼 화려웅장한 규모에 세인들은 최초의 놀라움을 맛보았다.
허나 세인들은 이내 더 큰 충격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천기신궁이 완공되기 무섭게 대강남북(大江南北)의 삼십 육개(三十六個) 대소방파들이 천기신궁에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아아, 도대체 이 사실을 어떻게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과연 이 불가사의한 일을 해내는 천기신군은 어떤 인물이란 말인가? 천기신군 모용선학은 결코 피비린내를 일으키지 않았다.
또한 세 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림의 혈풍(血風)은 끝났다.
실타래처럼 엉킨 모든 무림 의 은원(恩怨)은 종식되었다.
단지 천기신궁이 존재함으로써 천하 는 더이상의 분란이나 혈풍없이 평화롭고 고요하게 변한 것이었 다.
이후 천기신궁은 무림성역(武林聖域)으로 불리웠으되 오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누구도 깰 수 없는 일대신화(一代神話)로 받아 들여지고 있었으니.... "내가 천기신궁에...?" 잠시 후 북궁후의 입가가 짓궂으면서도 오연한 미소가 피어 오르 기 시작했다.
문득 그의 입에서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 나왔다. "그래.
신화(神話)는 무너지기 위해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더군." 무슨 뜻이란 말인가? 실로 수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이 아닐 수 없 었는데....
봄의 양광은 더욱 눈부시게 화원 가득히 번져가고 있 었다. ■ 검 1권 제2장 작은 하늘 ━━━━━━━━━━━━━━━━━━━━━━━━━━━━━━━━━━━ ① 금릉의 거리는 언제나 붐볐다.
특히 행인(行人)들의 왕래가 많은 저녁 무렵에는 저자거리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예의 번잡하기 이를데 없는 금릉 관도의 수많은 행인들 속을 청의 소년(靑衣少年) 한 명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일견하기로 그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했다.
허나 결코 평범할 수 없는 특이한 기질이 그의 전신에서 풍겨나오고 있었다.
바로 북궁 후였다.
이 순간 북궁후는 쉴새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영락없이 뭔가 흥미거리를 찾아 집을 나선 악동(惡童)이었다.
그 분위기 또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밝아 황실서고에 있을때는 물론이고 부친과 담화를 하던 모습과도 전혀 틀렸다.
이렇게 되자 사람마저 바뀐 느낌을 주고 있었다.
실로 괴이한 일이었다.
단지 분위기만 변한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소년을 보는 듯 했던 것이다.
헌데 이때 돌연 그의 눈은 반짝 이채(異彩)를 발했다. "으응?" 북궁후는 발을 멈추며 전면으로 시선을 모았다. "아니, 저 사람, 경대인(慶大人)아냐? 저 도박왕이 어쩐 일로 용 린의국에서 나오는 거지?" 오 장여 앞이었다.
한 명의 금포중년인이 잔뜩 풀 죽은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우람한 체구에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혈색 좋은 얼굴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의 뒤에는 두 명의 장한이 화려한 가마를 멘 채 뒤따르고 있었 다. - 도왕(賭王) 경자혁(慶子赫).
그는 금릉최대의 도박장을 경영하고 있는 인물로서 그의 두 손은 그야말로 신수(神手)로 알려져 있었다.
금릉 일대의 도박판에 올려진 은자는 대부분 그의 손아귀로 쓸려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며 때문에 그는 상계(商界)의 거물 (巨物)로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다.
실로 천하의 삼할을 살만한 황 금을 갖고 있는 것으로까지 알려져 있는 인물인 것이다. ■ 검 1권 제2장 작은 하늘 -2 ━━━━━━━━━━━━━━━━━━━━━━━━━━━━━━━━━━━ ② 이때, 경자혁은 썩은 돼지간같은 낯색으로 힘없이 머리를 흔들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북궁후가 흥미진진해 하는 눈으로 자 신을 보고 있는 줄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후유! 종대인(宗大人)조차 병명을 모르겠다니 우리 아들 놈이 이 제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야만 한단 말인가...!" 경자혁은 연신 땅이 꺼지도록 탄식을 터뜨렸다.
북궁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들? 경휘천이 병에 걸렸단 말인가?' 다음 순간 어느새 그의 입가엔 의미심장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후후! 그가 아픈 이유를 나는 알지.
천하의 명의라는 천수화타 종의원이라 한들 그가 상사병으로 끙끙 앓고 있는 것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일순 북궁후의 눈이 장난기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가만, 저 구렁이같은 사기꾼을 좀 골려줄까?' 다음 순간 그는 바람처럼 몸을 홱 돌렸다.
마악 스쳐가려던 경자 혁의 앞을 턱 막아선 것이었다. "잠깐! 경대인!" 무겁게 고개를 떨구고 가던 경자혁이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이내 귀찮다는 듯 북궁후의 위아래를 훑기 시작했다. "너는 누구냐?" "나? 소야(小爺)!" 북궁후는 간단히 내뱉았다.
싱긋 웃으면서 살짝 드러낸 치아는 그 야말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희고 깨끗하다. "소야? 흠...! 들은 적이 있다.
이 금릉바닥에서 소문난 악동(惡 童)이라고 말이다." 북궁후의 별명이 금릉 최고의 악동으로 알려진 소야였던가? 문득 경자혁의 얼굴에 짜증스러워 하는 빛이 떠올랐다. "내게 볼 일이 있느냐?" 북궁후는 천진한 얼굴로 낯을 살짝 찌푸렸다. "내가 악동이라고? 경대인의 고민을 해결해 주러 왔는데도 말이 야?" 놀랍게도 북궁후의 입에서는 자연스러운 반말이 불쑥 튀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버릇인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운지라 오히려 듣는 사람은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는 듯했다.
과연 경자혁도 북궁후의 마구잡이식 하대를 의식치 못하고 단지 기대의 빛을 한 채 눈을 크게 떴다.
북궁후가 말을 이었다. "휘천이 아프다는 소릴 들었어.
하지만 그의 병은 아무도 고칠 수 없어.
다만...." "다만 뭐냐?" 경자혁이 허둥대며 반문했다.
잔뜩 풀이 죽어있던 그의 눈이 이 순간 번쩍! 빛을 발하고 있었다.
북궁후는 내심 웃었다. '후후, 저 구렁이도 물에 빠지니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허우적대는 구나!' 이때 북궁후의 눈 깊은 곳에서 솟아나고 있는 어떤 장난기를 읽은 경자혁은 일순 경계의 빛을 떠올렸다. '가만, 소야라는 요놈이 사람을 골탕 먹이는데 귀신이라는데 혹 시?' 그는 재빨리 북궁후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눈부신 햇살에 반 사되고 있는 그의 눈은 차라리 엄숙하기까지 했다.
이어 경자혁은 짐짓 떠보듯 슬며시 입을 열었다. "내 아들 놈의 병을 종의원조차 못 고치겠다는데, 네가 무슨 방도 가 있단 말이냐?" "훗, 종의원이 별거야." 천수화타 종도욱(千手華陀 宗道旭)은 금릉 최대 의국인 용린의국 의 국주로서 황실의 어의를 지낸 바 있는 대단한 명의로 알려져 있었다.
헌데 그런 천수화타 종도욱을 북궁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 하자 경자혁의 눈 깊은 곳에 한가닥 기대의 빛이 솟아났다. "그럼 네가 정녕 내 아들 놈의 병을 고칠 방도가 있단 말이냐?" 북궁후가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천수화타 종도욱보다 더 뛰어난 의술의 대가(大家)를 알고 있어." 북궁후의 말에 경자혁은 반색하며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다가들었 다. "그게 누구냐?" "천낭중!" "천낭중?" 일순 경자혁의 눈에 어이없어 하는 빛이 떠올랐다.
뿐이랴! 어이 없어 하던 그의 표정은 다음 순간 노기로 바뀌고 있었다.
이어 호 통성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 빌어먹을 놈 같으니! 천낭중이라면 용린의국에서 잡일이나 하 고 있는 아이 아니냐!" 허나 경자혁이 자못 속은 듯이 몸까지 떨며 소리치고 있었건만 북 궁후는 태연하기 그지 없었다.
동시에 그는 몸을 돌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뭘 모르는군.
종의원이 못고치는 병을 천낭중이 고치고 있단 말 야! 하긴 휘천이 죽든 살든, 이 소야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 북궁후는 이내 휘적휘적 팔자걸음으로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정 녕 더이상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자 경자혁은 멀어져 가는 북궁후의 모습을 보며 문득 한가닥 불안을 느낀 표정을 머금었다. "이건 도대체가...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을 것 같으니...." 경자혁은 관도 한복판에 선 채 잠시 고개를 이리저리 꼬았다.
그 러다 끝내 결심한 듯 버럭 소리쳤다.
지금 그의 심정은 영락없이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던 것이 다. "에라! 밑져야 본전이지! 소, 소야! 잠깐 멈춰라! 거기 잠깐 멈추 라니까!" 경자혁의 다급한 고함소리에 휘적휘적 멀어져 가던 북궁후의 걸음 이 멈춰졌다.
허겁지겁 쫓아오는 경자혁의 발걸음소리를 들으며 그는 어느새 씨 익 한줄기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검 1권 제2장 작은 하늘 -3 ━━━━━━━━━━━━━━━━━━━━━━━━━━━━━━━━━━━ ③ 용린의국의 후원의 후미진 곳, 두 소년이 화수림(花樹林) 그늘 속 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소, 소야! 미쳤냐? 휘천의 병은 네 말대로 상사병이란 말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고치냐?" 그중 한 명은 얼굴에 묘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북궁후였는데 그 앞에는 십사 세 가량의 소년이 얼굴이 달아 오른 채 멍청한 표정 을 떠올리고 있었다.
온통 여드름 범벅의 울퉁불퉁한 얼굴에 몸에서는 한약재(韓藥材) 냄새가 푹푹 풍겨 나오는 소년이었다.
소년, 천낭중은 지금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만약 일이 잘못되서 내가 여기서 쫓겨나기라도 하면, 고아(孤兒) 인 나는 갈데도 없고...." "재수 없게! 쫓겨나긴 왜 쫓겨나?" 북궁후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어 자신감에 넘친 음성이 이어졌다. "다 내게 생각이 있으니 넌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북궁후가 너무도 자신있게 말하자 천낭중도 더이상 할 말이 없는 듯했다.
그는 빤히 북궁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좌우간 소야는 귀신이니까 믿어도 되겠지.
저 녀석과 일을 꾸며 서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천낭중은 약간 마음을 놓은 듯 다소 밝아진 음성으로 질문을 던졌 다. "좋아.
그건 그렇고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이 뭐냐?" 북궁후는 생긋 웃었다.
영락없이 악동의 미소였다. "우선 그 돈 귀신이 오거든 큰절을 서른세 번 받아야 고쳐주겠다 고 해라." "서, 서른세 번씩이나?" "임마! 사내는 배짱이 있어야 하는 거야!" 북궁후의 주먹이 천낭중의 이마를 소리나게 쳤다.
동시에 낭랑한 음성이 이어졌다. "거기다 황금 십만 냥을 내라고 해!" 천낭중은 아픈 이마를 감싸쥐고 발끈 화를 내려다가 어이가 없는 지 입을 헤벌렸다. "십만 냥이나? 그러다 못고치면 어쩌라고?" "흥, 고쳐주면 될거 아냐?" "어, 어떻게?" 북궁후는 궁둥이를 툭툭 털고 일어서며 내뱉듯 말했다. "나머지는 승소진, 그 녀석에게 맡겨! 그리고 너는 오줌 못 싸는 약이나 만들어 놓으면 돼!" 천낭중의 눈이 커졌다. "폐뇨음마환(廢尿陰魔丸)을? 그, 그걸 뭣에 쓰려고?" 북궁후는 짐짓 허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 뒷일까지 생각하다간 네 둔한 머리통이 수박처럼 퍽 나갈 거 다" "뭐, 뭐라고?" 천낭중의 얼굴이 벌개졌다.
동시에 그는 벌떡 일어서며 북궁후를 노려보았다.
허나 분명히 무시당한 건 무시당한 건데 어쩐지 화를 낼 수 없는 기분인지라 그는 단지 그렇게 북궁후를 쏘아볼 뿐이었 다. "헉헉!" 헌데 이때 돌연 한 인영이 황급히 그들 쪽으로 달려오지 않는가? 작달막한 체구에 빗자루같은 엉성한 눈썹과 하관이 빠른 뾰족한 턱, 특히 부릅떠진 듯한 동그란 두 눈이 쉴새 없이 좌우의 눈치를 살피며 반짝이고 있다.
흡사 원숭이같은 용모였다.
헌데 그 기괴한 용모와 왜소한 체구에 실로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화복(華服)을 입고 있어 그것이 오히려 더욱 우습게 느껴지고 있 었다.
화복소년은 단숨에 달려온 듯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소, 소야 무슨 일인데 이 바쁜 때에 느닷없이 부른 거냐?" 나타난 화복소년은 승소진이라는 이름을 지닌 금릉 최대의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태화루(太華樓)의 점소이였다.
그가 점소이에 어울리지 않는 이토록 화려한 의복을 걸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놀라운 수완과 말재주, 게다가 비상한 머리로 손님의 입맛과 취향 은 물론, 주머니 사정(?)까지 기막히게 알아낸다.
그가 항상 점소 이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의복을 입고 있는 것도 처음 대한 손 님에게 강한 인상을 주며 흥미를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인 것이다.
쉽게 말해 태화루에 한 번 들어선 손님들은 모두 이 승소진이라는 나이어린 점소이때문에 단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뿐이랴! 그뒤 부터는 아예 음식 주문마저 그에게 맡기곤 했다.
그 옛날의 소진을 능가하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
해서 태화루의 주인조차도 그를 무시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 검 1권 제2장 작은 하늘 -4 ━━━━━━━━━━━━━━━━━━━━━━━━━━━━━━━━━━━ ④ 북궁후가 승소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소진! 네가 나서야 할 일이 생겼다." "뭔데?" 그쯤에서 대충 북궁후가 꾸미고 있는 음모의 전말을 눈치챈 듯 천 낭중이 미소하며 끼어들었다. "흐흐! 누워서 도왕의 황금 십만 냥을 버는 일이다." 북궁후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엄지 손가락을 딱 퉁겨보였다. "거기다 그 돈귀신의 절을 서른세 번을 받는다.
어떠냐?" "휘휴!" 대번에 승소진의 입이 쫘악 찢어졌다.
동시에 그는 의미심장한 눈 빛을 빛내며 북궁후와 천낭중을 둘러 보았다. "이번엔 꽤 괜찮은 건수같은데 누가 낚았냐?" 천낭중이 짐짓 심드렁하니 손으로 북궁후를 가리켰다. "또 소야다!" "흐흐흐!" 승소진은 왜소한 어깨를 흔들며 괴이하게 웃었다.
그의 이런 태도 는 영락없이 원숭이에게 옷을 입혀 놓은 것만 같았다. "헌데 경대인의 일이라면...? 아하! 그 야화공자(夜花公子)의 상 사병이로구나!" 야화공자, 이것은 경휘천의 별호인가? 천낭중이 이죽거렸다. "녀석, 눈치 한번은 기막히게 빠르구나!" "헤헤...! 천하의 풍류공자인 그가 국원(菊院)의 취취 아가씨를 연모하고 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그까짓 것도 눈치 못채서야 승소진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겠느냐." 승소진이 두 팔을 휘둘러 비대한 경자혁의 모습을 흉내내며 다시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그 살찐 구렁이는 둔해서 아들의 애타는 마음을 모른단 말씀야!" 천낭중이 혀를 차며 말했다. "야화공자가 불쌍하다.
츳! 여자를 너무 밝혀서 탈이지 성품은 좋 아서 암중에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는 친구이거든!" 승소진이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불안 해 하는 표정을 머금었다. "그래, 사람 좋고 사랑도 좋고 다 좋은데...
우리가 무슨 수로 남 의 상사병을 고친단 말이냐? 내가 취취 아가씨가 될 수도 없고 말 이야?" "이그! 그런 끔찍한 소린 마라!" 천낭중이 몸서리치며 부르짖었다.
동시에 그는 물론이고 승소진 역시 북궁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소야 북궁후, 실로 귀신도 속여먹고, 황제의 뺨이라도 너댓 대는 탈없이 두드려 댈 수 있다는 천하제일의 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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