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천중행 - 검 - 4편 (4/46)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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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천중행 - 검 - 4편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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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인물이며 인품이 괜찮다던데...
더구나 취취가 다 죽어가는 마당이니 우리 가 무얼 가리겠어요!" 펄쩍 뛰던 전백은 주춤했다.
그는 딸의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딸의 얼굴을 보자니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사색이 짙어가고 있었다. ■ 검 1권 제3장 뜻밖에 맺어진 남녀(男女) -2 ━━━━━━━━━━━━━━━━━━━━━━━━━━━━━━━━━━━ ② 결국 전백은 얼굴을 내저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것도 하늘의 뜻이란 말인가?" 바로 이때였다.
파리하게 질려 있는 취취의 입가에 수줍어 하면서 도 은연중에 기뻐하는 듯한 미소가 안개처럼 스치는 것이 아닌가? 다음날 밤(夜), 국원 깊숙한 내실 앞엔 화려한 홍사등롱(紅紗燈籠)이 밝혀졌다.
취취의 내실이 신방(新房)으로 꾸며진 것이다. "끼끼끽! 야화공자, 빨리 들어가지 않고 뭘해?" 악동들, 승소진과 천낭중이 십팔 세 가량의 미공자를 재촉하고 있 었다.
화려한 신랑 차림의 예복을 입고 있는 미공자의 용모는 실로 뛰어 난 것이었다.
힘차게 뻗어 올라간 검미, 정열(情熱)과 호기로운 기상(氣上)을 품은 용목(龍目).
우뚝한 콧날과 비정(非情)과 매혹의 미소를 동 시에 머금은 듯한 입술.
진정 풍류남아의 기질이 전신에 흐르는 예의 미청년은 바로 야화 공자 경휘천이었다.
헌데 경휘천은 지금 신방 앞에서 낯을 붉히고 쩔쩔 매고 있었다. "사실...
내가 풍류공자로 소문나 있긴 하지만 사실은 아직 동정 (童貞)의 몸이었다." 승소진이 키득거렸다. "킥킥, 누가 아니랬나?" 경휘천은 진정 기쁨을 주체치 못하며 그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의 고마움을 나 휘천은 평생 잊지 않겠다." 일순 승소진과 천낭중이 의미심장하게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 다. "이건 우리의 작품이 아니었다." "소야에게 고맙다고 해라." "소야? 북궁후가?" 경휘천의 눈이 커졌다.
그 눈에 점차 감복의 빛이 솟아나기 시작 했다.
소야 북궁후와 그의 악동친구들에게 진정으로 감탄해 하는 눈빛이었다. ■ 검 1권 제3장 뜻밖에 맺어진 남녀(男女) -3 ━━━━━━━━━━━━━━━━━━━━━━━━━━━━━━━━━━━ ③ 동가로(東街路) 끝에는 지난 십수 년간 한 번도 수리를 하지 않은 허름한 폐가(廢家) 한 채가 있었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단조롭게 반복되는 금속성이 예의 폐가로부터 그치지 않고 울려나오고 있었다.
그렇다! 언제부터인지 사람이 살지 않는 이 폐가는 대장간처럼 꾸 며져 있었고, 망치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오고 있는 곳은 바로 그 허름한 대장간이었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구석에서 한 청년(靑年)이 커다란 망치를 들 고 뭔가 작업에 열중해 있었다.
청년이 두드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조심스레 갈아대고 있는 것은 눈에 잘 뜨이지조차 않을 극히 미세한 혈침(血針)이었다.
헌데 청년의 모습은 이 허름한 대장간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빛바랜 낡은 갈삼(葛杉)에 감싸인 몸은 너무나 빈약하다.
허나 용 모만큼은 매우 수려했다.
안색이 파리하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어 딘가 깊은 우수(憂愁)와 차가운 예지(叡智)를 감춘 듯한 얼굴이었 다.
화령(火靈), 이것이 그의 이름이었으되 스스로 지은 이름이기도 했다. ...나는 불(火)을 사랑해, 때문에 나는 눈(目)마저 불에게 주었으 되 이제는 혼(魂)마저 줄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불을 너무 좋아해 그로인해 시력(視力)을 잃어버린 맹인이었다.
눈도 없이 무엇을 만들겠는가? 허나 그는 소문난 천하제일의 장인 (匠人)이었다.
그저 단단한 덩어리에 불과하던 무쇠들이 그의 손 을 거치는 순간 그것은 생명(生命)과 혼(魂)을 가진 물체로 변신 하는 것이다.
실로 신비한 능력이었다.
지금 화령의 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이글거리는 불그림자에 비친 창백한 얼굴은 진정 몸서리쳐지도록 진한 감동과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화령은 땀에 젖은 얼굴을 들며 입가에 만족한 빛을 떠올렸다. "후유, 이제야 열두 개의 혈황환영비침(血皇幻影秘針)이 완성되었 군." 화령은 땀에 젖은 얼굴을 들며 입가에 만족한 빛을 떠올렸다.
그 의 손에는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원통(圓筒)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섬뜩하도록 짙은 혈광(血光)을 뿜는 피빛 혈침들이 그 속 에 담겨 있었다.
화령은 초점 없는 눈으로 그것을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허나 그들의 주문보다 열흘이나 빨리 완성된 것이다." 그는 몹시 흡족한 듯 중얼거렸다.
헌데 문득 화령의 땀에 젖은 얼 굴이 소리없이 굳어졌다. "누구?" 보지 못하기에 오히려 전신의 감각이 남들보다 더욱 예민한 그의 감각에 누군가가 가까이 접근해 있음이 감지된 것이었다.
스슷! 순간 작은 그림자 하나가 화령의 앞에 비쳐들었다.
동시에 짤막한 음성이 화령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소야!" 화령에게 다가들고 있는 인영은 바로 북궁후였다.
여전히 남루한 차림이다.
그러나 티없이 맑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 이었으며 허리에는 기이하게도 뭉툭하고 시커먼 반검(半劍)을 차 고 있었다. "검을 갈아 달라고 왔어." 친숙한 말투, 이것은 소야의 버릇이었다.
때문에 누구라도 그를 두 번째 대할 때는 매우 가까워졌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검?" 화령은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일이 었다.
화령은 불(火) 이외에는 아무 것도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헌 데 어쩐지 그는 이미 소야, 이 이름의 주인공을 좋아하고 있는 듯 한 착각을 느끼는 것이다.
북궁후는 허리에 찼던 반검을 내밀었다.
검이라고 부르기조차 쑥 스러운 볼품없는 무딘 검이었다.
헌데 조심스레 검신(劍身)을 쓰 다듬던 화령의 전신이 돌연 격렬히 진동하는 것이 아닌가! "오오! 놀라운 명검(名劍)이다!" 그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탄성이 흘러 나왔다.
북궁후는 무심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그깟 것이 무슨...
녹슬고 부러진 것인데." 화령은 검신을 자신의 창백한 뺨에 대보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 다. "아니야.
이 검은 분명히 웅검(雄劍)이다!" "웅검?" 북궁후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화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숙히 입을 열었다. "전설(傳說)에 천고의 명장(名匠)이 만들어낸 네 자루 명검이 있 다고 전해지고 있다." "...!" "첫째가 귀검(鬼劍)이다.
흐르는 물에 머리카락을 던지고 그것을 베어낼 수 있는 명검이지." '물 위를 흘러 내려가고 있는 머리카락이 베어진다고?' "둘째가 사검(死劍), 사람을 베어도 피 한 방울 묻어나지 않는 명 검이다." 북궁후는 계속 말없이 화령을 응시했다.
화령은 무엇엔가 홀린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검은 그것을 쥐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를 베고 싶은 충 동을 일게 한다고 하더군.
무서운 검이야." "세번째 명검은?" "그건 바로 마검(魔劍)이다." 화령은 문득 몸을 떨었다.
단지 이름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두려운 듯 언뜻 공포의 빛이 창백한 얼굴에 스쳐가고 있었다. "화령, 마검이란 어떤 검이지?" 북궁후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화령의 이런 태도에 호기심을 느낀 때문이었다. "음...
마검은 난세(亂世)를 부르는 악마의 검이야!" 화령은 빠르게 말하며 검신을 매만졌다.
검신을 매만지자 그의 얼 굴에서 공포의 빛이 점차 가라앉았다. "마지막 검은 천 년에 하나 만들어질까 말까한 신검(神劍)이다.
이른바 영웅지검(英雄之劍)...
바로 이 검이야." 순간 북궁후의 눈에 짧은 경악의 빛이 스쳐갔다. ■ 검 1권 제3장 뜻밖에 맺어진 남녀(男女) -4 ━━━━━━━━━━━━━━━━━━━━━━━━━━━━━━━━━━━ ④ '황궁보고에 웬 녹슨 폐검(廢劍)이 있나 했더니 이 검이 영웅검이 란 말인가?' 화령은 북궁후를 응시하며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영웅검은 주인(主人)의 마음을 정(靜)케 하고 결국 난세(亂世)를 억누른다 했어." "난세를 억누른다고?" 북궁후는 고개를 갸웃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일순 묘한 반짝임이 그의 맑은 두 동공 속에서 발해졌다.
화령이 보이지 않는 눈으로 북궁후를 쳐다보았다. "소야! 천하에 명검을 다룰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아.
이 영웅검의 진정한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 자는 더욱 드물지." 화령은 짐짓 무언가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북궁후는 가볍게 웃으 며 입을 열었다. "그 검의 주인이 드물다고? 허나 나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쉽 게 그 검의 주인이 되었다.
그냥 주웠으니까!" 실로 진중한 빛이라고는 한 점도 엿볼 수 없는 태도였다.
화령은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뭔가를 말하려다 그만두는 태도였다.
북궁후는 한쪽에 수북이 쌓인 연장통 위에 털썩 걸터 앉으며 말했 다. "화령, 너는 그야말로 천하제일의 장인...
나는 그 검을 완전하게 만들고 싶어." 악동의 기질을 풍기는 말투였다.
헌데 화령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 었다. "못해." "못한다고?" "이 검은 때가 되면 스스로 녹을 벗고 완전해지게 되어 있어.
바 로 마검이 출현했을 때 말이야." 일순 북궁후의 눈이 맑은 신광을 발했다.
허나 그는 연장통을 발 로 툭툭 차며 웃음기 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럼 마검의 출현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야 웅검이 완전해져서 그 난세를 평정시킨단 말이야?" 화령은 진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하는 수 없군.
때를 기다리든가 아니면 내 손으로 녹슨 것 을 벗겨 봐야지." 북궁후는 화령에게서 반검을 받아 옆구리에 찼다.
문득 그의 눈은 화령의 옆에 놓인 붉은 혈침통에 머물렀다. "화령, 뭘 만들고 있었던 거지?" 허나 화령의 대답을 듣기도 전, 그는 그 옆에 펼쳐진 낡은 양피지 를 발견하고 놀람의 빛을 머금었다.
동시 놀람에 찬 어조로 부르 짖었다. "저건 혈황환영비침의 설계도 아냐?" 혈황환영비침이 과연 무엇이기에 천하의 악동 북궁후가 저토록 놀 란단 말인가? 화령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
나는 방금 그것을 완성했어." 북궁후의 얼굴이 미미하게 경직되었다. "화령, 누가 그것을 주문했지?" 화령은 잠시 주저하다 말했다. "무황궁!" ■ 검 1권 제3장 뜻밖에 맺어진 남녀(男女) -5 ━━━━━━━━━━━━━━━━━━━━━━━━━━━━━━━━━━━ ⑤ - 무황궁(武皇宮).
십 년 전부터 돌연 무림에 부상(浮上)하기 시작해 정도(正道) 무 림에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대문파이다.
허나 그 구성원은 일체 신비에 가려져 있었다.
북궁후의 눈가에 미묘한 의혹의 빛이 스쳤다. '무황궁에서 무엇 때문에 저런 가공할 암기를?' 무엇을 떠올린 것일까? 돌연 북궁후가 소리쳤다. "화령, 큰일났다! 너는 곧 죽게 될 거야!" 화령의 낯빛이 급변했다. "왜?" "무황궁에서 이것을 주문했을 때 분명 극비(極秘)에 붙여줄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화령은 놀랍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북궁후가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다급해 하는 음성이었다. "무황궁에서는 아마 네가 그것을 완성시키는 순간 완벽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너를 죽일 것이 분명해!" 순간 화령은 미미하게 몸을 떨며 부르짖었다. "그럴 리가!" 북궁후의 음성이 더욱 진지해졌다. "화령, 어서 숨어야 해!" 이 순간 화령은 북궁후의 말에 거역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 것은 그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모호한 느낌이었다.
이것이 바로 검은 말을 흰 사슴이라고 해도 믿을 것만 같은 소야 북궁후의 마 력인 것이다.
화령은 더듬거리듯 물었다. "어디로 숨지?" "태화루의 승소진을 찾아라.
그가 알아서 해 줄 거야." "승소진을?" "그리고 화령은 앞을 보지 못하니까...." 북궁후는 잠시 눈을 굴렸다.
이어 그는 거침없이 입을 열기 시작 했는데 그 내용이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렇지! 남들도 너를 볼 수 없게 하는 한 가지 무공을 가르쳐 주 겠어." 그는 턱을 괴고 눈을 반짝였다.
천진한 모습이었다.
허나 이 순간 황궁서고의 수많은 무공비급의 진결(眞訣)들이 그의 뇌리에 펼쳐 지고 있었다.
잠시 후, 북궁후는 손가락을 딱! 퉁기며 싱긋 웃었다. "이것은 잠운환허비(潛雲幻虛飛)라는 경공술이야!" 이어 그는 잠운환허비의 구결을 술술 들려주기 시작했다.
아아, 어찌 놀랍지 않은가! 놀랍게도 그는 황궁서고에서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 무공구결을 한구결도 틀리지 않은 채 암기해 두었다 가 지금 화령에게 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 잠운환허비.
절세의 신비 경공술(輕空術)이다.
십이성 경지에 이르면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져 몸을 감출 수 있는 데 천하의 어떤 고수라도 감지할 수가 없다.
또한 그 쾌속함은 가 히 번개를 앞지른다 할 정도였다.
화령의 얼굴에 경외(驚畏)와 감복의 빛이 어렸다.
그의 오성(悟 性) 또한 이미 범인이 아닌 듯 북궁후가 들려주고 있는 구결을 듣 고 잠운환허비의 위력을 알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화령의 깨끗한 미간에 영기(英氣)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방금 북궁후가 들려준 잠운환허비의 구결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외 우려는 듯 정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북궁후는 그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화령은 불을 좋아하니까 마음대로 불을 다룰 수 있는 비 법(秘法)도 가르쳐 주겠어." 진정 북궁후는 황궁무고의 비급들을 이미 모두 외우고 있단 말인 가? 북궁후의 음성이 이어졌다. "태양파라신공(太陽婆羅神功)! 이것을 익히면 힘들여 무쇠를 두들 겨 댈 필요가 없지." - 태양파라신공.
극양무쌍(極陽無雙)의 양공(陽功)이다.
천하에 아무리 단단한 철 강석(鐵剛石)이라도 물처럼 녹여버릴 수 있으며 진기를 장력으로 뿜어내게 되면 스치는 것은 무엇이든 녹아 버리고 타버린다. "소, 소야!" 화령은 기이한 전율에 몸을 떨며 부르짖었다.
북궁후가 방금 구결 로 전해준 양대신공(兩大神功)의 위력이 몸서리쳐지게 실감되었기 때문이다.
북궁후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말했다. "나는 이제 가겠다." 그는 대장간을 나서다 문득 돌아보며 짓궂게 웃었다. "화령, 너는 우리의 형제(兄弟)가 될 자격이 있다." 화령은 무언(無言)의 희미한 웃음을 떠올렸다.
실로 귀한 웃음이 었다.
당연한 것이 그것은 화령이 이 세상에 태어나 최초로 떠올 린 웃음이었기 때문이다. "고마워!" 허나 북궁후는 이미 특유의 걸음으로 흥얼거리며 저쪽으로 멀어지 고 있어 화령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천하의 대장부(大丈夫)가 간다.
앞을 비켜라.
흥흥!" 녹슨 반검을 장난감처럼 허리에 매단 채 휘적휘적 걷고 있는 그의 이런 모습은 영락없이 악동의 그것이었다.
허나 북궁후의 낙양행은 곧 금릉의 풍운이 낙양으로 옮겨지고 있 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 검 1권 제3장 뜻밖에 맺어진 남녀(男女) -6 ━━━━━━━━━━━━━━━━━━━━━━━━━━━━━━━━━━━ ⑥ 봄(春), 삼월이 지나고 있었다.
삼월에는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침 묵 속에 움트는 소리였다.
얼음이 풀리는 강의 소리와, 겨울 잠에서 깨어난 짐승들의 포 효...
햇살처럼 번져가는 생명의 소리였다.
지층을 뚫고 분출하는 삼월의 소리는 죽은 나뭇가지에 꽃잎을 피우고, 망각의 대지에 기 억을 소생케 한다.
그 삼월의 소리들이 아지랑이와 함께 기어오르는 어떤 산구릉 위 에 언제부터인가 한 명의 노인이 화폭을 앞에 놓고 좌정해 있었 다.
석상이련가? 노인은 일체의 움직임도 없이 멀리 안개에 잠긴 산봉 (山峯)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성성한 백발, 구름같이 늘어진 백염(白髥).
잔잔하고도 깊은 눈매 등이 가히 신선(神仙)을 방불케 하는 용모였다.
노인의 앞에는 화구(畵具)가 놓여 있었다.
몰아지경(沒我之境)이랄까?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눈에는 아무런 빛도 없었다.
그 상태에서 노인은 그야말로 몇 시진이고 그대로 앉아 있었던 게 분명했다.
헌데 이때 돌연 콧노래와 함께 구릉 아랫쪽에서 한 소년의 모습이 나타났다.
일신에 걸친 것은 허름한 청의(靑衣)이다.
그러나 준수한 용모에 맑은 정기(精氣)가 엿보이는 얼굴이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전신에 특이한 기질을 풍기는 소년은 천하에 아무도 그 기질을 흉내낼 수 없는 소야 북궁후였다.
그렇다! 이곳은 바로 낙양의 천기신궁이었다.
북궁후가 이곳에 온 것도 어느새 한 달여가 넘었다.
빈객의 수효만 해도 삼천여 명에 달한다는 무림의 하늘 천기신궁 은 그야말로 넓고 방대해 궁 안에 세 개의 봉우리를 휘감고 있을 정도이며 북궁후가 올라온 이 언덕은 바로 천기신궁의 한곳이었 다.
노인은 북궁후를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여전히 먼 산만 응시하고 있었다.
헌데 돌연, 반개(半開)한 채 먼산을 응시하던 노인의 눈에 기광 (奇光)이 번뜩였다.
다음 순간 노인은 신(神) 들린 듯 필(筆)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북궁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어 그는 뒷짐을 진 채 고개를 길게 빼고 화폭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힘있게 찍어내리는 필(筆)에 의해 어느새 한폭의 산수화(山水畵) 가 완성되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화도(畵道)였다.
노인이 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천기신궁이 있는 천도봉(天都峯)의 맞은편 산인 잠운봉(潛雲峯)이었다.
헌데 그것은 진정 산악이 그 대로 화폭에 옮겨 앉은 듯 생생하고 뛰어난 그림이었다.
이윽고 노인은 반개한 눈으로 지그시 화폭을 내려다 보았다. '아니야! 또 틀렸어!' 갑자기 노인은 머리를 흔들며 그림을 북북 찢어대지 않는가? 옆에 쪼그리고 앉았던 북궁후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할아버지! 왜 찢어버리는 거지?" 노인은 붓을 팽개치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우! 이게 아니야.
이것은 산의 껍데기일 뿐, 생명이 없어!" "생명(生命)?" 북궁후는 반문하며 안개에 휩싸여 있는 잠운봉을 쳐다보았다. "삼 년(三年)....
저 잠운봉을 그리기 시작한 지 벌써 삼 년이나 지났거늘...." 노인의 음성은 처연하다 못해 가엾게 느껴질 정도였다.
노인의 자 조어린 음성이 나직이 이어졌다. "천화제일화(天下第一畵)로 불리는 나 도중향이 아직도 산 하나를 그려내지 못하다니, 부끄러운 일이야.
부끄러운 일이야!" - 화선(畵仙) 도중향(圖中香).
화도제일인(畵道第一人), 이른바 일필휘지에 가공할 신기가 담겨 있다는 전설적인 대화가.
꽃을 그리면 화향(花香)이 진동하고 노송을 그리면 백학이 날아든 다는 천하제일의 화가였다.
도중향은 바로 천기신궁의 빈청을 차지하고 있는 수천여 명의 빈 객들 중 한 명이었다.
천기신궁은 그야말로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는 곳으로서 아무나 원하기만 하면 아무런 제한없이 머무를 수가 있었다.
해서 천기신 궁에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빈객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그 수효가 삼천에 이를 정도였고 그 중에는 실로 괴이한 인물도 적지 않았다.
이 도중향 역시 괴인에 드는 인물로 천기신궁의 십대괴걸로 꼽히 고 있었다.
그는 천기신궁의 빈객으로 들어온 지난 삼 년 이래 해 가 뜨는 즉시 매일 이곳에 앉아 잠운봉만을 그려왔던 것이다. ■ 검 1권 제3장 뜻밖에 맺어진 남녀(男女) -7 ━━━━━━━━━━━━━━━━━━━━━━━━━━━━━━━━━━━ ⑦ 잠시 후 도중향은 화구를 챙겨 힘없이 산중턱을 내려가기 시작했 다.
이때 골똘히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북궁후가 중얼거렸다. "산(山)....
억겁(億劫)의 세월을 흘려보낸 산을 일백(一百)에도 못미치는 인간이 어떻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일까?" 순간 도중향의 어깨가 몸서리치듯 격렬히 떨리기 시작했다.
북궁 후의 나직한 중얼거림을 듣는 순간 불현듯 한 가지 영감이 그의 뇌리를 스쳐간 것이었다. "그, 그것은!" 도중향은 이내 몸을 홱 돌리며 부르짖었다.
희열에 떨리는 음성이 었다. '아아! 바로 그거였다!' 그는 불을 뿜는 듯한 눈으로 북궁후를 바라보았다. '이, 이럴 수가! 일백이십 년을 참오하고도 깨우치지 못한 화도를 저 어린 녀석이 한마디로 깨우쳐 주다니!' 도중향은 격동에 차 더듬거리듯 물었다. "아이야, 네 이름은?" 북궁후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소야!" "소야? 네가 바로 악동이라는 소야?" 북궁후는 대답 대신 눈을 기이하게 반짝였다. "할아버지는 천기신궁의 빈객이지?" "그렇다.
아무튼 고맙다.
소야!" 도중향은 황급히 다시 화구를 펼쳐놓고 산을 그리기 시작했다.
헌데 화필(畵筆)의 휘두름이 실로 절묘했다.
차라리 신기(神技)에 가깝다고나 할까.
긋고, 삐치고, 가르고, 찍고, 흡사 무공초식(武 功招式)을 방불케 하는 손놀림이 현란하게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 다.
이 순간 북궁후의 맑은 눈이 무섭게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것은 지금까지의 악동의 눈빛도 아니었고 일개 소년의 천진한 눈 빛도 아니었다.
문득 도중향이 화필을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나는 어리석게도 항상 저 산의 과거(過去)와 현재(現 在), 미래(未來)를 염두에 두고 그렸으니 오히려 진실한 산을 그 리지 못했다." 그는 왼손으로 이마의 굵은 땀방울을 훔치며 계속 손을 놀리고 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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