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천중행 - 검 - 15편 (15/46)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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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천중행 - 검 - 15편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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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궁후는 나직한 호통과 함께 우수를 들어 허공에 호선을 그렸다. "물러가라!" 수십 개 한성(寒星)이 한꺼번에 부서져 내리는 듯, 백광이 사방 삼 장내를 휘감았다.
크왁!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한 마리 표범이 불화살에 꿰인 듯, 묵양의 거구(巨軀)는 허공에 기우뚱하더니 피화살을 뿜으며 삼 장 밖으로 날아갔다.
거꾸로 처박힌 그의 가슴과 수염은 온통 검붉은 선혈로 뒤범벅이 었다.
으깨어진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 보는 부릅떠진 호안엔 경악 과 불신의 빛이 가득하였다.
이 짧은 순간에 벌어진 처참한 광경은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오백 여 흑포인들의 혼백을 뒤흔들어 놓고도 남음이 있었다.
벽력천강.
이 엄청난 위세의 절기가 미처 전개되기도 전에 무산되었고 금강 불괴를 이뤘다는 탑천사존의 몸이 일초에 박살나 버리지 않았는 가! 잠시 후, 경악에 질려 멈칫했던 흑포인들은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 고 진세를 가동시키려 했다.
과연 명문정파의 잘 훈련된 고수들임 에는 분명하였다.
헌데 그때 위엄에 찬 일갈이 허공에서 울렸다. "멈춰라! 너희들의 상대가 아니다!" 동시에 허공을 밟고 나타나는 사 인(四人)의 인물들이 있었다. "능공답보!" 흑포인들의 입에서 경탄성이 터져나왔다.
마치 계단을 밟고 내려오듯 천천히 허공을 걸어오는 그들은 한 명 의 화려한 금포중년인(錦抱中年人)과 야인(野人) 차림의 세 명의 인물이었다.
금포중년인의 모습은 실로 범상치 않은 화후를 보여주고 있었다.
비대한 듯 보이는 그의 몸에서는 뜻밖에도 칼날같은 기도가 뻗치 고 있었다.
특히 갈대꽃 눈썹이 계속 꿈틀거리는 것이 인상적이었 고 깊숙한 눈매는 심기가 매우 깊어 보였다.
그는 의외로 상대가 젊은 청년이라는 사실에 놀라는 듯했다.
북궁후는 상대를 직시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신이 금음신창(金蔭神槍) 곡무인(曲武刃)이오?" 금포중년인의 눈가에 언뜻 노기가 떠올랐으나 그의 입가에는 여전 히 여유로운 미소가 감돌았다. "눈이 밝군.
바로 맞혔네." 그렇다면 그가 바로 무황궁의 궁주란 말인가? ■ 검 1권 제11장 무황궁(武皇宮) 무너지다 -3 ━━━━━━━━━━━━━━━━━━━━━━━━━━━━━━━━━━━ ③ - 금음신창 곡무인.
그는 단 한 자루 창(槍)으로써 무림의 넋을 빼놓았던 인물이다.
분광사십팔창(分光四十八槍).
그가 창안해낸 이 기묘한 창법술(槍法術)은 무림 역사상 최강의 기술(奇術)로 꼽히고 있었다.
또한 그는 단 십 년만에 무황궁을 무림의 절대문파로 탄생시키는 신화를 창조해 낸 입지전적인 인물 이기도 했다.
허나 북궁후는 이 새로운 신화의 창조자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 는 듯 했다.
그의 시선이 금음신창을 무시한 채 등 뒤의 세 인물 에게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중원인이 아니었다.
푸른 벽안, 변발의 머리, 어딘지 이국 적인 사이(邪異)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들의 몸에서 풍기는 신위는 비범하기 짝이 없다!' 북궁후의 눈에 이채가 스친다 싶은 순간 그는 문득 허공에 대고 물었다. "소진, 저들의 정체는?" 하늘을 휘감아 오를 듯 웅장한 서쪽 지붕 위에 한 사내가 누워 있 는 것이 보였다.
한가하게 유람이라도 나온 듯이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사내가 학익선(鶴翼扇)을 저으며 몸 을 일으키고 있었다.
승소진은 점잖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학익선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책을 읽듯이 읊어대고 있었다. "대막유유궁의 최강인 삼대고수(三大高手).
그들은 혈웅편(血雄 鞭), 혈부웅(血斧雄), 혈륜웅(血輪雄), 그들의 무공은 초절정이 며...." "됐다.
소진!" 북궁후는 희미한 웃음기를 띄우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중원에 한눈에 우리의 정체를 알아보는 자가 있었다 니!'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붕 위의 승소진을 한동안 바라 보더니 천천히 시선을 북궁후에게 돌렸다.
그들의 안색은 어느새 차갑게 굳어 있었다.
북궁후의 냉소가 점점 짙어졌다. "후후, 무황궁! 바로 대막유유궁의 전초기지였군!" 진정 충격적인 일이었다.
천기신궁이 무너진 이후 무림인들이 정 파의 세력으로 믿었던 무황궁이 대막의 야심에 의해 키워진 괴뢰 문파(傀儡門派)였다니! 대막유유궁의 삼대고수들의 음침한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툰 중원어로 나직하게 내뱉았다. "흐흐흐, 놈! 제법이다." "허나 우리의 정체를 알았으니 죽어줘야 겠다!" 번쩍! 하는 순간 그들은 일제히 신형을 날려 북궁후를 포위했다.
북궁후를 중앙에 두고 품자형으로 에워싼 그들은 즉시 무기를 꺼 내들었다.
혈편웅이 꺼내들고 있는 푸른빛의 채찍은 길이가 족히 열자는 되 어보였는데, 표면에는 송곳같은 돌기가 고슴도치처럼 솟아 있었 다.
혈부웅은 한 자루의 도끼를 들고 있었고, 혈륜웅은 날카로운 이빨이 톱니처럼 솟은 검은 색의 륜(輪)을 양손목에 걸고 있었다.
그들은 병기를 꺼내들고 음침하게 웃어 보였다.
이때 그들이 북궁후를 에워싸자 오백여 명의 흑포인들이 신속하게 몸을 움직여 두 겹, 세 겹으로 네 사람을 둥글게 포진하였다. ■ 검 1권 제11장 무황궁(武皇宮) 무너지다 -4 ━━━━━━━━━━━━━━━━━━━━━━━━━━━━━━━━━━━ ④ 북궁후는 완전히 독 안에 든 쥐의 형태였으며 바람 한 점도 빠져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진세가 구축되었다.
헌데 북궁후의 표정은 마치 이 모든 것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허나 그의 호수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는 눈동자 깊은 곳에는 무서운 분노의 불꽃이 피어오 르고 있었다.
이방인과 결탁하여 그들의 괴뢰가 된 무황성에 대한 분노였다. "차앗!" 혈륜웅의 신형이 번쩍! 날아올랐다.
그의 손목에 걸려 있던 혈륜 이 요란한 쇳소리를 토해내며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북궁후의 머리 위 허공은 수십 개의 눈부신 혈륜의 그림 자로 뒤덮였고, 혈륜웅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뒤미처, 패애앵! 하는 금속성과 함께 허공을 뒤덮고 있던 수십 개 의 혈륜이 일제히 북궁후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북궁후의 대갈일성이 터지며 투 명한 좌수가 백색의 한가닥 섬전을 내뻗었다.
순간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흑포인들은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 운 쇳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방팔방으로 산산조각나서 흩어지는 혈륜의 편린(片鱗)들과 오 장여나 치솟아 오르는 북궁후 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천뢰수!" 북궁후의 우수가 벼락치듯 아래로 내려 꽂히고 있었다. "크아아악!" 혈륜의 조각들이 미처 모두 흩어지기도 전에 혈륜웅의 처절한 비 명이 들리면서 사방으로 피분수가 확 뿜어졌다.
동시에 한 사람의 모습이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퉁겨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흑포인들의 무리속으로 사정없이 처박혔다.
마치 수십 개의 도끼로 짓이겨진 고깃덩이를 보는 것 같은 그는 바로 혈륜웅이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일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혈 부웅과 혈편웅의 눈에 섬칫한 증오의 빛이 떠올랐다. "죽어랏!" "찢어죽일 놈!" 그들의 신형이 좌우에서 무섭게 회전하며 북궁후를 짓쳐들었다.
송곳같은 돌기로 허공을 찢으며 푸른빛의 채찍과 오백 근은 족히 됨직한 예리한 도끼가 북궁후에게 날아왔다.
유람나온 서생처럼 발아래를 굽어보고 있던 북궁후의 입가에 문득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헌데 이때 채찍의 표면에 가시처럼 솟아 있던 수많은 돌기들이 일 제히 폭사되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돌기들은 일종의 암기(暗 器)였던 것이다.
더구나 혈부웅의 도끼가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도끼가 북궁후를 노리고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인 바 설사 암기를 모두 피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흔적이 사라진 도끼의 공 격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이것은 실로 절묘한 합공(合攻)이었다.
북궁후의 나직한 코웃음소 리가 들렸다. "천근추!" 돌연 그의 신형이 마치 폭포에서 추락하는 바위덩이처럼 밑으로 맹렬한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한쪽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금음신창 곡무인의 입에서 경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는 대뜸 북궁후가 적절한 임기응변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안 것 이다.
허공에서 쏜살같이 떨어져 내리던 북궁후의 오른손이 마치 후려쳐 지듯이 허공으로 치뻗었다. "섬(閃)!" 이것은 그가 천뢰수의 요결을 변형시켜 창출해낸 초식이었다.
그의 손끝에서 수십 줄기의 시퍼런 뇌전이 마치 부채살처럼 위로 퍼져나갔다.
그 순간 빠지직! 하는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허공을 뒤덮던 암기 들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천지사방으로 비산하고 있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맹렬하게 떨어지던 북궁후의 신형이 돌연 우측으로 화살처럼 튕겨져 나갔다.
바로 그때, 상상을 뒤집으면서 허공중에 사라져 버렸던 시퍼런 도 끼가 밑에서 위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종적이 묘연했던 도끼는 섬칫하게도 아래로 내려가 북궁후의 하반 신을 노리고 치솟아 올랐던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북궁후를 스치면서 날아올랐던 도끼는 하늘높이 솟 구치고 있었는데 돌연 허공중에 우뚝 멈추어 섰다.
북궁후가 도끼의 머리 위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혈부웅과 혈편 웅은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의 합공이 실패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불 신과, 가볍게 자신들의 공격을 피해낸 북궁후에 대한 공포의 빛이 가득하였다.
마치 생사를 관장하는 판관처럼 혈부웅과 혈편웅을 내려다 보고 있던 북궁후의 오른손이 천천히 들어올려졌다.
대기(大氣)가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북궁후의 손으로 빨려 들었다.
이어 금빛으로 물든 그의 손에서 두 개의 금색광채가 혈 부웅과 혈편웅을 향해 내리꽂혔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멈춰요!" 돌연 허공 한 곳에서 영롱하기 짝이 없는 여인의 교성이 울리지 않는가! ■ 검 1권 제11장 무황궁(武皇宮) 무너지다 -5 ━━━━━━━━━━━━━━━━━━━━━━━━━━━━━━━━━━━ ⑤ 천공을 뒤덮었던 금빛광채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십 성 이상의 공력으로 격풍노도처럼 전개된 공세를 거두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허나 북궁후는 너무도 간단히 공세를 거두며 고개 를 돌렸다.
같은 순간 뜻밖의 교성으로 목숨을 구한 혈편웅과 혈부웅은 사 장 밖으로 맹렬하게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여전히 공포에 가득한 눈으 로 자신들의 생존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북궁후를 바라보고 있 었다.
북궁후의 눈에 한 줄기 신광이 스쳐지나갔다.
북쪽의 내전(內戰)쪽에 마치 한 덩이 오색찬란한 구름(雲)인 듯, 한 명의 아름다운 소녀가 미태를 드러내고 있지 않는가.
영롱한 푸른 눈, 나부끼는 금발, 푸른 경장 차림의 소녀는 바로 대막유유궁의 소궁주 아유라였다.
천마협 사마기와 함께 태호 호 반의 주루에 나타났던 그 매력적인 소녀인 것이다.
일순 장내는 환히 밝아진 것 같았다.
그녀의 뛰어난 미모는 이 암 울한 날씨 속에 눈부신 햇살처럼 빛났던 것이다.
어디 한 점 흠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미(美)였다.
해풍(海風)에 날릴 듯 섬약한 몸매, 꽃잎같은 입술에 머금어진 오만하면서도 매 혹적인 미소에 북궁후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연화공주 령령이 황실의 우아한 꽃이라면, 이 소녀는 청초하면서 도 강한 향기(香氣)를 지닌 한 떨기 야생화(野生花)같다.' 아유라는 사뿐 옥보를 내딛어 그의 앞에 섰다.
그녀는 푸른 눈을 반짝이며 달콤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우리는 또 만났군요." 너무나 매혹적인 음성이었다.
누구나 한 번 들으면 영원히 잊지 못할 달콤한 교성이었다.
무엇보다도 북궁후에 대해 한 점 적의도 없는, 일체의 가식없는 음성이었다.
북궁후의 입가엔 예의 담담하고도 신비로운 미소가 감돌고 있었 다.
허나 그의 눈만은 웃지 않고 냉혹하게 굳어 있었다.
그녀의 달콤한 미소가 스며들만한 구석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어 보 였다.
북궁후는 어느새 넓은 광장을 빽빽이 메운 무황궁의 무사들을 쓸 어보다가 아유라를 돌아보면서 차갑게 웃었다. "후후, 소녀답지 않게 강한 야망이 엿보인다고 느꼈더니 내 짐작 이 맞았군." "야망이라구요?" 일순 아유라의 붉은 입술꼬리가 가늘게 물결쳤다.
북궁후의 말이 이어졌다. "아유라, 당신이 사마기가 마검을 갖고 있다는 소문을 낸 것은 따 로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오?" 아유라의 낯빛이 급변했다. "당신은...
마검으로 인해 무림이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뒤집히길 기다린 것이오.
그 틈에 대막유유궁은 무황궁을 통해 강호제패의 야심을 달성하고, 내 짐작이 틀렸소?" 북궁후의 차가운 반문에 아유라의 얼굴엔 짧은 순간 복잡한 빛이 스쳐가고 있었다.
허나 다음 순간 그녀의 오만한 얼굴엔 조금 전 보다 더욱 짙고 화사한 미소가 번지지 않는가.
그녀는 함초롬히 흑요석같은 눈을 치켜뜨며 달콤하게 웃었다. "알고 계셨군요.
북궁공자께서는!" 그녀는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공자(公子)의 추리는 정확히 본궁의 허(虛)를 찔렀어요.
하지 만...." 북궁후가 짧게 반문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연한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 "본 대막유유궁의 힘은 천하무적(天下無敵)임을 모르시나요?" 순간 북궁후의 얼굴은 한겹 얼음막을 두른 듯 냉막해졌다.
묵직하 고도 거역할 수 없는 호통이 그의 굳게 다물린 입술을 떨치고 나 왔다. "돌아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이 중원 땅에 차가운 고혼(孤 魂)을 묻게 될 것이오!" 아유라의 두 벽안이 가늘게 파문을 일으켰다.
허나 그녀는 이상하 게도 북궁후의 호통이 조금도 노엽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호통에 아련히 가슴이 저려오는 이상한 고통같 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고통은 알 수 없는 야릇한 희열을 동 반한 것이었다.
그녀는 꽃잎같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물었다. "본궁이 순순히 응하리라고 믿나요?" "그것은 나와 겨뤄보겠다는 뜻이오?" 북궁후의 차가운 반문에 아유라의 눈에는 일순 원망의 빛이 떠올 랐으나 그것도 잠시 그녀의 얼굴은 이내 차갑게 굳어져 가기 시작 했다.
그녀는 주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섬섬옥수를 허리로 가져가 요대를 풀기 시작했다.
요대는 일종의 병기인 것 같았다.
그것은 여인들이 주로 애용하는 금편(金鞭)이었는데 어느새 아유 라는 금편을 손에 감아쥐고 있었다.
예리할 정도로 가는 금편에선 휘황한 금광이 발산되고 있었다.
첫눈에 보기에도 여느 금편과는 다른 신기막측한 기병이 분명했다. ■ 검 1권 제11장 무황궁(武皇宮) 무너지다 -6 ━━━━━━━━━━━━━━━━━━━━━━━━━━━━━━━━━━━ ⑥ 당장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듯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에 뒤덮여 있 었다.
벌건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주위는 초저녁처럼 어둑어둑하였 고 세찬 바람이 누각들 사이를 스치면서 음산한 소리를 내고 있었 다.
넓직한 광장의 중앙에 북궁후와 아유라는 삼 장여의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수백여 군웅들은 물결처럼 오십여 장 밖으로 물 러나 숨을 죽이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동안 질식할 것 같은 정적이 광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한줄기 음풍이 불어와 아유라의 어깨를 덮고 허리에까지 늘어진 금발을 허공에 흩날렸다.
마치 세상에 그녀 혼자만이 존재하는 듯 이 그녀의 자태는 진정으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북궁후는 아유라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동쪽 하늘에서 몰려오고 있는 먹장구름을 바라보면서 마치 아유라라는 존재 자체 를 망각이라도 하고 있는 듯 그렇게 석상처럼 서 있었다.
아유라 역시 북궁후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북궁후의 발끝을 보고 있었는데 북궁후의 무심한 눈빛과는 달리 어두운 그늘이 드 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흐릿하던 눈빛은 점차 초점이 잡 혀 가면서 생기를 발하기 시작했다.
아유라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이 순간 차디차면서 도 정순한 광채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인으로서 최적 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 는가.
그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북궁후의 시선이 아유라에게 돌려지고 있었다. "이제 준비가 되었소." 아유라는 아무런 반응이 없이 그저 정광이 가득한 눈으로 단지 그 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고마워요.
기다려 주어서.' 하지만 그녀는 입밖으로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죽여야 할 적에게 사의를 표한다는 것은 명경지수처럼 맑아진 마 음에 또다른 혼란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북궁후는 아유라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는 최적의 상태가 되어 자신과 대결해 줄 때를 기다리고 있었 던 것이다.
더구나 그 상황이 자신때문임에야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북궁후의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희미하게 스쳐가고 있었다.
어느 한순간 불꽃이 작렬하듯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맞부딪쳤 다. "핫!" 아유라의 입에서 짤막한 기합성이 터지면서 그녀는 돌연 잡아당기 듯이 북궁후의 앞으로 쏘아져 왔다.
그 순간 북궁후는 보았다.
아유라의 손에서 마치 살아 있는 한 마 리의 금사(金蛇)처럼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맹렬하게 날아오는 금편(金鞭)을! 공격은 단조로웠다.
허나 그 기쾌무비한 빠름과 쇄도해 오는 예기 는 실로 전율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금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금편과 혼연일체가 되어 날아 오는 아유라의 모습은 정녕 심혼이 떨리도록 아름다웠다. '가공할 편법(鞭法)이다!' 그가 아는 바 무림엔 저토록 절묘하고도 날카로운 위세를 조화시 킨 편법이 없었다.
그는 대막유유궁의 독문무공에 눈이 번쩍 뜨이 는 느낌이었다.
금강철벽이라도 단숨에 궤뚫어 버릴 듯이 쏘아져 오던 금편은 돌 연, 팽! 하는 요란한 파공음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휘어지면서 북 궁후의 몸을 휘감아왔다.
쾌(快)와 섬(閃)! 그 무엇으로도 이 한 자루 금편의 쾌속무비함을 표현할 수 없다.
금편은 실로 몸서리쳐지는 살기(殺氣)를 뿜으며 북궁후의 몸 두 치 거리에까지 날아왔다.
동시에 그녀의 흰 옥수가 강맹무비한 무 형의 경력을 뿜으며 허공에 뻗어나갔다.
헌데 바로 이때 도저히 두 눈으로는 믿을 수 없는 경이적인 일이 벌어졌다.
살벌하도록 무섭게 휘감아 오던 금편이 돌연 북궁후의 손아귀로 쾌속하게 빨려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아앗!" 허공에서 아유라의 자지러지는 듯한 경악성이 터졌다.
순간적으로 아유라는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한 극렬한 통증을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게 금편을 놓치고 말았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뿜어낸 무형 의 경력이 바다에 빠진 모래알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느꼈 다.
더불어 가슴이 질식할 듯한 압박감을 느끼고는 대경실색을 하 였다. '이 사람이 진짜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그녀는 정신이 아찔하였다.
헌데 돌연 천년거암처럼 밀려오던 압 박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 검 1권 제11장 무황궁(武皇宮) 무너지다 -7 ━━━━━━━━━━━━━━━━━━━━━━━━━━━━━━━━━━━ ⑦ 그녀는 그 의문의 해답을 찾을 겨를도 없이 황급히 몸을 뒤틀어 허공을 차면서 도약하더니 삼 장 밖으로 몸을 날렸다.
옷자락을 나부끼면서 아유라는 조금 전 자신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환영처럼 내려섰다.
그녀의 희고 아름다운 옥용에는 온통 경악과 당혹감이 가득하였다.
순간 장내는 극도의 충격의 파동에 휘말려 들었다. "아아! 맙소사!" "믿을 수 없다!" 북궁후는 어느새 자신의 손에 감겨 있는 금편을 내려다 보면서 미 소를 흘리고 있었다. "후후, 끊어 버리기엔 너무 예쁜 채찍이 아닌가." 그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태연한 표정이었다.
조금 전 대막유유궁의 삼대고수들을 상대할 때보다 더욱 여유로운 모습 이었다.
아유라의 무공이 그들보다 몇배는 높았을 것이건만 그는 오히려 가벼운 손체조라도 한 듯한 태도였다.
아유라는 넋 빠진 얼굴로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때 북궁후의 눈에 차가운 미소가 스치는가 싶자 그의 손이 금빛 으로 물들었다.
그러자 치이익!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피어 오르더니 손아귀에 감겨 있던 금편이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있지 않은가! 금편이 녹아내리는 것을 본 아유라의 안색이 흑빛으로 변했다. "아아! 구유마황금편이 녹아내리고 있다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내뱉으면서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금편은 전설 속의 병기로 본래 이름은 구유마황금편(九幽魔皇金 鞭)이었다.
단단한 만년금정(萬年金精)을 십 년 동안 정련(精練) 시켜 천잠사(天蠶絲)와 함께 만들어 낸 것이었다.
헌데 그것을 북궁후가 간단하게 손바닥 안에서 녹이고 있는 것이 다. '아아, 도대체 저 사내는 사람인가? 신(神)인가?' 아유라는 불현듯 조금 전 자신이 북궁후에게 도전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가슴에 한기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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