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그 장삼과 이사라는 두 분의 의형이 설마하니……그렇게 악독 한 사람이란 말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많은 문파와 방회를 괴 롭힌 것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요?] 석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삼십 년 동안 그와 같이 큰 일은 시종 제대로 철두철미하게 알아낸 사람이 없었다. 소림파의 묘체 방장과 무당파의 우다 도장이 실종되 기는 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른 이후에 끝내 차례로 소식이 새어나오 게 되고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게 되었는데 두 분 고수는 정말로 협객 도에 억지로 초청을 받아 갔다는구나. 그런데 소림사 밖에서 묘체 방 장은 이레 낮 이레 밤을 두고 싸움을 벌였고 싸움을 벌이기는 했으나 상대방을 이기지 못했다는 소문이었고 무당산에서는 싸움이 없었지만 은 십중팔구 우다 도장이 검을 뽑는 즉시 실수를 했다고 알려졌었다. 이 한 승려와 한 도사는 무공에 있어서 그 고절함이 강호에서는 필적 할 사람이 드물 정도인데도 협객도로 떠나게 되었고, 거기다가 청성 파의 욱산 도인, 서촉의 조노표국사, 오대파의 선본 장로, 곤륜파의 고백 도장 등 네 분이 차례로 독수를 입게 되자 나머지의 무림인물들 은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이 육대 고수들과는 훨씬 떨어진다고 여기 고 있었기 때문에 재차 그 구리패의 초청을 받게 되었을 때에 동지팥 죽을 먹으러 나가겠다고 응낙한 사람이 있었다는구나. 그리하여 그 두 명의 사자들은 상대방에게 귀하가 만약에 협객도로 왕림을 해 주 시겠다는 허락을 내린데 대해 실로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어느 달 어 느 날 어느 곳에서 기다려 주시면 그때 영접해서 귀하를 배에 오르도 록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더라구나. 한데 일 년 동안 에 그들 두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도전을 받게 되거나 남모르게 습격 을 받거나 또는 남모르는 암살을 당하거나 독에 해를 입고 죽어간 장 문인들과 방회의 방주들이 모두다 열네 명이나 되었고 그 밖에도 서 른일곱 명이 초청에 응해서 동지팥죽의 잔치에 참석을 하러 떠났지만 그 서른일곱 명의 사람들은 한 번 떠나자 그만 함흥차사가 되었고 삼 십 년 동안 전혀 그들에 관한 소식을 털끝만치도 들을 수 없었단다.] 석파천은 말했다. [협객도는 남해의 어떤 곳에 있나요? 어째서 여러 사람들을 불러 모 아서는 그 서른일곱 명의 사람들을 구출해 내지 못하는 것이지요?] 석청은 한숨 쉬듯 말했다. [협객도라는 이름에 관해서 항해에 노련한 키잡이나 선원들을 찾아 다니며 물어보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십중팔구 그와 같은 섬은 없는 것이고 그저 그 두 명의 동 자가 멋대로 지껄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와 같 은 상황에서 일 년의 세월이 흘러가게 되고 그 수십을 헤아리는 집안 의 화를 당한 자제들과 친지들도 차츰 차츰 모두다 점점 그와 같은 사실들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게 되었을 때 그 두 조각의 구리패 초청장은 다시 강호바닥에 나 타났단다……]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석파천을 한 번 바라보더니 설명하듯 말을 이어갔다. [그때의 그 두 명 사자들은 무공이 어느덧 크게 증진되어 있어서 열 흘남짓 한 사이에 동지팥죽을 먹지 않겠다는 세 문파와 두 대방회 등 아래 위의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깨끗이 죽여 없앴다. 그렇게 되자 강호에서는 자연히 모든 사람들이 술렁거리게 되었고 그리하여 아미파의 세 장로가 나서서는 삼십여 명이나 되는 고수들을 초청해서 하남(河南)에 있는 홍창회(紅槍會) 총타에 매복을 하고서는 그 두 명 의 흉수(兇手)가 도래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그런데 그 두 명의 사 자들은 홍창회를 기피하는 것 같았으며 심지어는 하남성 경내로 들어 오지도 않았다. 다만 구리패는 여전히 곳곳으로 송달되고 있었다. 그 런데 구리패를 받은 수뇌자가 팥죽잔치에 참가를 하겠다고 하면 그 문파나 방회는 태평무사 했으며 그렇지 않을 때 어떠한 준비를 하더 라도 끝내는 차례로 독수를 입었다……] 이어 그는 막 입을 열고 뭔가 물어보려고 하는 석파천을 손짓으로 저지하고자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느 해 흑룡방(黑龍幇)의 사(沙) 방주 역시도 구리패를 받게 되었 다. 그 당시 그는 대뜸 응낙을 하고 암암리에 배에 오르는 시간과 장 소를 홍창회에 통지를 했다. 그러자 그 삼십여 명이나 되는 고수들이 때를 맞추어 달려오게 되었으나 어떻게 하여 소식이 새어나갔는지 그 때에는 놀랍게도 영접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구나, 그리하여 뭇 사 람들은 그곳에서 며칠간을 지키며 기다리게 되었는데 하나하나 잇달 아 중독되어서는 죽기 시작했다는군. 그러자 나머지의 사람들이 두려 움을 느끼게 되고 대뜸 왁 하니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그 자리를 떠나 게 되었지만 그들은 미처 집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길에서 전 가족이 살해를 당하지 않으면 바로 전방회의 사람들이 주살을 당했다는 소식 을 듣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 누가 감히 항거를 하겠느냐. 구리패 를 받은 사람들은 명에 따라 두 사자가 가르쳐 준 곳으로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 해에는 모두다 사십팔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서 협객도로 갔지만 이들 또한 한 번 가서는 다시 종적을 찾아볼 수 가 없고 더욱 그 때부터 어떤 소식도 얻어들을 수 없다고 하니 이야 말로 정말 무림의 커다란 액겁으로 생각만해도 가공스럽고 한숨이 절 로 새어나 오는구나.] 석파천은 도저히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심정이었다. 그러 나 비어방의 무리들이 떼죽음을 당해서 널려 있던 배와 철차회의 무 리들이 모조리 섬멸을 당하는 광경은 직접 자기가 목도한 사실이 아 닌가? 더군다나 철차회의 무리들을 주살하게 되었을 때에 자기도 그 럴 뜻은 없었지만 장삼과 이사의 방흉(幇兇)이 되어서는 그들을 도와 주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야말로 춥지도 않은데 몸이 떨릴 지경 이었다. 이때 석청은 차근차근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시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게 되고 다시 강서(江西) 무극문(無 極門)에서 가장 먼저 구리패의 초청을 받게 되었다. 일 년전에 각 대 문파나 방회의 수뇌들은 이미 상의를 한 이후 결정을 내린바 있는데 그 결정이라는 것은 모두가 호랑이 굴로 뛰어들어가지 않는 한 어찌 호랑이 새끼를 얻을 수 있겠느냐 하는 계산으로서 협객도로 가서 도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살펴본 후 모든 사람이 합섬 협력해서 좋든 싫든 간에 이 무림의 공적을 없애자고 결심을 굳혔다는 것이었다. 그 리하여 그 해의 구리패가 이르는 곳마다 한 사람도 목숨을 잃은 사람 이 없었는데 모두 쉰 세 명이 초청을 받게 되고 즉시 쉰세 명의 사람 들이 동지팥죽의 잔치에 참석을 했다는구나. 그런데 이 쉰세 명의 영 웅호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무공이 탁월하고 어떤 사람은 지모가 뛰어났으나 한 번 간 이후에는 역시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이 종적을 감추었으며 그 이후로는 전혀 그들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협객도에서 이와 같이 강호에 화를 안겨다 주게 되는 바람에 무림의 정예들은 그야말로 깡그리 사라지게 되었고 천하의 무림에 몸 을 담고 있는 사람은 속수무책으로 십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액겁으 로 몸이 찢기고 발기는대로 온 몸뚱어리를 내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 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 상청관으로 말하면 그와 같은 사건도 있고 해서 심히 자중하는 편이었고 될 수 있는 한 이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좀처럼 강호에서 나부대는 일이 없었다. 너의 아버지와 어머 니 무공은 바로 상청관에서 전수를 받은 것이지만 밖에서 협의의 길 을 펼침에 있어서는 다만 현소장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너의 여러 사백부들과 사숙님들의 무공이 고강하기는 하나 좀 처럼 남과 손을 쓴 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저 상청관에는 한 떼의 수진양성(修眞養性)에 몰두하나 무공을 모르는 도사들만이 있는 줄로 알고 있단다……] 석파천은 끝내 참을 수 없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협객도를 두려워했기 때문인가요?] 석청은 얼굴에 한 가닥의 겸연쩍은 빛을 띄우고 잠시 주저하는 것 같더니 천천히 말했다. [너의 여러 사백부님들과 사숙부들께서는 모두 다 이 세상과 다툼이 없는 사람이고 출가하여 도를 닦는 도사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본적 으로 무림의 헛된 명성을 부러워하지 않는단다. 그러나 만약에 협객 도를 두려워했다고 한다면 그것도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무림에서 제 아무리 사람의 수가 많고 세력이 크며 무예가 고 강한 대문파나 대방회라 하더라도 협객도라는 석자의 이름만 들으면 그 누가 눈썹을 잔뜩 모으며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 사람이 있겠느냐? 그런데 상청관에서도 그토록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가지고 도를 닦는 데만 전념해도 역시 그 액겁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 구나.] 그리고 나서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석파천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함께 상청관의 장문인이 되고자 한 것은 협객도 의 허실을 탐지하기 위해서인데 과거 그 세 패의 재간이 뛰어난 사람 들 가운데 한 사람도 돌아온 사람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일은 아무래도 뜻을 이루기가 매우 어렵지 않겠습니까?] 석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기는 물론 지극히 어려운 곳이지, 그러나 우리는 평소에 위태 로운 사람을 부축해 주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해 왔다. 더군다나 일이 우리의 사문에 떨어지게 되었는 데 어찌 수수방관할 수가 있겠느냐? 나와 너의 어머니는 똑같이 하늘 이 정녕 그토록 눈이 없어 악인이 마음대로 횡행하도록 내버려 둘리 가 있겠느냐 하고 생각한단다.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공은 묘체 방장이나 우다 도장 등과 같은 고인들에 견준다면 물론 퍽이나 떨어 진 면이 있다만 옛날부터 사불승정(邪不勝正)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 쩌면 하늘은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빌어서 협객도의 무리들을 주살하게 되고 그간에 얽힌 일들을 밝혀낼지도 모르겠구나.] 거기까지 말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자기의 처를 한 번 바라보았고 민유 또한 남편을 바라보며 두 부부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기꺼이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그와 같은 커다란 일을 하려는 것은 기실에 있어서 모두 다 너를 위한 때문이다. 너는 간악하고 음 탕한 짓을 누차에 걸쳐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웝사람의 위엄을 거슬 리고 스승을 기만하기까지 했으니 실로 무림에서 용납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우리 부부 또한 강호의 친구들을 대할 면목이 없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두 사람이 협객도로 들어가 도모하는 바를 이루 지 못하게 된다면 물론 목숨을 바치고 말겠지만 만약에 무림의 동도 (同道)를 위해서 커다란 공을 세우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양해를 해줄 것이고 다시는 네가 저지른 죄를 따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자식을 위해 목숨을 버리려는 고심(苦心)을 결코 석파천에게 밝혀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석파천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럼 저의 두 의형인 장삼과 이사가 구리패를 전달하기 위해 협객 도에서 파견된 사자가 틀림없다는 말씀인가요?] 석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석파천은 물었다. [그들이 그렇게 악독한 사람이라면 어째서 저와 형제의 의를 맺게 되었을까요?] 석청은 그만 실소했다. [당시 네가 멍청하게 놀면서 귀찮게 조르니까 거절할 수 없었던 것 이지. 그러나 그들이 한 맹세는 가짜야. 그러니 진짜로 받아들일 필 요는 없다.] 석파천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째서 가짜 맹세가 됩니까?] 석청은 담담한 어조로 설명을 했다. [장삼과 이사는 본래 가짜 이름이고 거기다가 가짜이름으로 이 장삼 이 어쩌구 이사가 어쩌구 한 맹세이니 모든 게 가짜 아니고 무엇이겠 느냐?] 석파천은 두 사람이 자기를 속였다는 사실에 매우 불쾌했지만 부친 의 말씀이 꼭 옳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줄곧 말이 없던 민유는 불쑥 입을 열었다. [옥아, 다음에 만나게 되었을 때 조심해라. 두 사람은 눈 한 번 깜 박이지 않고 사람을 죽이며 남이 보는 데서 이기지 못하면 암살을 하 게 되고 암습을 해서도 안 되면 독약을 쓰는 등 실로 흉악하고 음독 (陰毒)하기 이를 데 없단다.] 석청은 그 말을 받아 말했다. [옥아, 너는 어머니의 말을 거억하도록 해라. 네가 그토록 중후하고 얌전하니 더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설사 너보다 눈치가 백배나 빠 른 사람도 그 두 명의 사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들의 독수에서 벗어나 기가 어렵다. 그리고 방비를 할래야 방비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니 다 음에 그들 두 사람을 만나게 되거든 즉시 살수를 쓰도록 해라. 먼저 손을 쓰는 사람이 강자이니 설사 한 사람만을 죽인다 하더라도 역시 무림을 위해서는 커다란 해를 제거하게 되는고 무궁한 복을 만들어 주는 격이 될 것이다.] 석파천은 주저하며 말했다. [우리들은 의형제지간이니 저를 어쩌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저로 서는 두 형을 어떻게 할 수가 없군요.] 석청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더 말하지 않았다. 속으로 아들에게 반드시 그와 결의를 한 형들을 죽이라고 요구하는 것도 거북살 스러 운 일이라고 느꼈다. 민유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형, 사형마저도 옥아가 중후하고 얌전하다고 하는군요. 우리의 아들이 정말로 착한 사람으로 변했지요.] 석청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 애가 중후하고 정직한 것은 좋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 애를 이용하여 재난을 막으려는 사람이 있는 것이오.] 그리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석파천에게 물었다. [너는 장락방에서 너를 방주로 내세운 것이 무엇 때문인지 아느냐?] 석파천은 본래 우둔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어릴 적에 황량한 산속에서 소년시절을 보냈고 또다시 사연객 과 마찬에에서 외로운 생활을 보냈기 때문에 세상물정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석청의 이런저런 설명을 다 듣고 난 그는 즉시 깨닫는 바가 있어 자기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그건……혹시 나를 대신 협객도로 보내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것이 아닌지요?] 석청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밝혀지기 전에 그런 추측을 한다는 것은 좁은 마음으로 군자 의 도량을 헤아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면 장락방에서는 인재들이 그토록 많은데 어째서 너와 같이 이 세상의 일을 모르는 어린 사람을 방주로 모셨겠느냐? 추측을 해볼 때 장락방은 근년에 이르러 매우 흥 청거리고 있다 하겠다. 방안의 수뇌자들은 협객도의 구리패의 초청이 다시 나타날 기간이 되었으며 이번에는 장락방에서도 틀림없이 초청 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헤아리고 먼저 그들과 별로 깊은 관계가 없는 사람을 물색하여 방주로 내세워서는 그와 같은 일이 들이닥치게 되었 을 때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액겁을 막고자 한다고밖에 생각할 수 가 없구나.] 석파천은 그만 망연해졌다. 실제에 있어서 사람의 마음이 그토록 험 악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부친의 추측은 매우 정리에 합당한지라 그로서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민유 역시 차분한 어조로 설명을 해 주었다. [얘야, 장락방은 강호에 있어서의 명성이 무척 나쁜 편이다. 못된 짓을 마구 저지른다고 볼 수 없겠지만은 흉악한 짓을 곧잘 벌여 사람 을 해치고 자기네들의 힘을 믿고서 남의 물건을 약탈하는 일을 적지 않게 저질렀다. 더욱이 그들이 강호의 도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무림의 인사들로부터 매우 못마땅한 눈초리를 받고 있는 셈이다. 그 리고 그 방안의 타주나 향주들 대부분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의 함정을 만들어서 너로 하여금 뛰어들도록 만든 것은 조금도 희한하게 생각할 것이 없느니라.] 석청은 싸늘히 코웃음을 치며 다시 사태를 논했다. [외부의 사람을 찾아내어서는 방주로 만들려고 할 때 옥아가 가장 합당한 인선이 되었을 것이오. 저 애는 옛날의 일을 잊어버리고 강호 의 풍파나 험악함에 대해서도 그저 흐리멍텅하니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지 않소. 그러나 그들로서는 이 젊은 방주가 바로 현소장의 장주인 석청과 민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오. 따라 서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자기들에게 유리한 주판질만 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오.] 거기까지 말하게 되었을 때 그는 손으로 검자루를 쥐고 멀리 동쪽을 바라보았다. 동쪽에는 바로 장락방의 총타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민유는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들의 간계를 간파한 이상 더 걱정할 것 없어요. 다행히 옥아가 아직도 구리패의 초청을 받지 않았으니까 말이에요. 그런데 사형, 지금으로서는 마땅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석청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세 사람이 반드시 장락방으로 찾아가서는 이번 일을 파헤치도 록 합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수치가 분노로 변해서는 손을 쓸 것 이 틀림이 없는데 우리들 세 사람의 힘으로는 중과부적이라 하지 않 을 수가 없구려. 따라서 몇 분의 무림에 이름이 알려져진 인사가 옆 에서 견증인이 되도록 모시고 데리고가 훗날 그들이 다시 옥아에게 귀찮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오.] 민유는 잠시 생각해 보고 정색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강남의 송강부(松江府) 은극(銀戟) 양광(陽光) 양 오라버니는 교제 가 넓고 또 우리와는 절친한 사이이니 그로 하여금 앞에 나서서 동도 들을 널리 초청토록 해서는 함께 장락방을 방문하는 것이 어떻겠어 요?] 석청은 기뻐했다. [그 계책은 정말 훌륭하오. 강남 일대의 무림 친구들은 어찌됐든 간 에 우리 부부의 조그만 체면을 살려주리라고 생각이 드는구려.] 그들 부부는 무림에서의 인연이 무척 좋은 편이었다. 이십 년 동안 의협심을 발휘해서 재물을 흩으려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을 부축해 주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출해 주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해서 한 번 소리 높여 호소를 하게 된다면 그들을 도와줄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들 형편이었다. 그렇게 하여 가족 세 사람은 송강부로 향했다. 사흘 째 되는 날. 용구진(龍駒鎭)에 도착해 객점에 묵게 되었다. 석청 부부는 윗방에서 자고 석파천은 마당가에 있는 작은 방에서 자 게 되었다. 아들을 사랑하는 민유는 옆의 큰 방을 빌려 석파천이 자도록 하려고 했으나 마침 손님들이 꽉차 방을 빌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날 밤 석파천은 침대 위에 올라가 운기조식을 했다. 진기가 막힘 이 없어 심신이 상쾌했다. 다시 등불 아래 두 손바닥을 벌려보니 붉은 자국과 파란 무늬는 보 일듯 말듯 없어져 있었다. 그는 독주가 태반 자기의 내력으로 화한 사실을 모르고 최근 내공을 열심히 연마한 결과 독약이 십중팔구 배출되었다고만 생각했다. 속으로 무척 기뻐하며 베개를 베고 자리에 누웠다. 한참 꿈속을 헤 매고 있을 때 누가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석파천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나직이 물었다. [게 누구요?] 그러자 가볍게 다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것이 매우 귀에 익자 석파천은 가슴이 쿵쿵 뛰었 다. [쟁그랑땡이오?] 이윽고 정당의 음성이 들렸다. [물론 나죠. 누구를 또 기다리고 있었나요?] 석파천은 당황했지만 한없이 반가워 일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쫙 하는 창호지 찢어지는 소리와 더불어 손이 불쑥 디밀어졌다. 안 으로 디밀어진 그 손은 창문가에 서 있는 석파천의 귀를 움켜잡더니 힘주어 비틀었고 곧이어서는 정당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도 창문을 열지 못해요?] 석파천은 귀가 찢어지는 것같은 아픔을 느꼈지만 혹시나 부모님들에 게 폐가 될까봐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하고 가만가만히 창문을 열었다. 정당은 안으로 뛰어들어오더니 킥 하고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천 오라버니! 내가 보고 싶지도 않아요?] 석파천은 말을 더듬거리기만 했다. [나는……나는……] 정당은 뾰루통해져 말했다. [좋아요.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새로 천지교배를 한 새색시만 생각한 모양이죠?] 석파천은 어리둥절해졌다. [내가 언제 천지교배를 했다는 거요?] 정당은 웃었다. [내가 친히 보았는데 시치미를 떼요? 좋아요. 그렇다고 탓하지는 않 겠어요. 풍류적인 당신을 오히려 좋아한 나였으니까요. 그런데 그 아 가씨는?] 석파천은 씁쓸히 말했다. [동굴로 돌아갔을 때 그녀는 가고 없었소.]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자기를 바라볼 때 정이 담뿍 담긴 수아의 눈 빛을 떠올리며 그녀를 다시 만나보지 못하려니 생각하니 마음이 허전 해졌다. 정당은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부처님이 보호하시어 영원히 그녀를 만나지 못했으면 좋겠어요.] 석파천은 그렇지 않아도 수아가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허전했는데 그 말을 듣고 반드시 수아를 찾아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뜻을 정당에게 비출 수는 없는지라 화제를 돌려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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