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파천은 혓바닥을 내밀어 보이고 정당에게 슬쩍 말했다. [그는……그는 알아본 모양이오!] 정당은 재빨리 그 말을 받았다. [누가 쓸데없이 입을 열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가 개잡종이라 한 것 은 반드시 당신이라는 것을 알고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이때 여정평과 범일비는 급히 몇 초를 펼쳐내게 되었고 고삼 낭자는 잇달아 비도를 날려서는 그들을 도왔으며 풍량 역시 이미 채찍이 얽 힌 것을 뽑아낼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다섯 사람은 다시 하께 어우러지게 되었다. 정불사는 급히 소리를 쳐서 자기를 난처하게 한 사람이 누구인가 알 고 싶었기 때문에 손을 쓰는 것이 점점 빨라지게 되었다. 석파천은 관동사호(關東四豪)가 무단히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을 보아 넘길 수 없었고 또한 젊은 사람인 만큼 호사가라 할 수가 있었다. 그 리하여 매번 네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적에는 언제나 미리 때늦지 않게 소리를 쳐서는 위기를 알리곤 했다. 그리하여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되기 전에 그는 여정평을 세번이나 구해 주었고 범일비는 네 번이나 구해 주었으며 풍량도 세번이나 구해주는 결과가 되었다. 정불사는 미칠 것처럼 성이 나서는 갑자기 위험한 수법을 썼다. 금 으로 만든 채찍을 높이 휘두르며 몸을 붕 하니 도약시키더니 고삼 낭 자에게 덮쳐들면서 왼손을 벼락같이 내려치려고 들었다. 이 한 수의 천마행공(天馬行空)의 초식이 펼쳐지게 되었는데 손이 떨어지는 곳이 무척 괴이했기 때문에 석파천은 급히 갈파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고삼 낭자는 간신히 피할 수가 있었지만 오른쪽 어 깨를 역시 정불사의 손가락에 스치게 되어 오른팔을 다시는 들 수 없 게 되었다. 그녀는 오른손이 기운이 빠지게 되자 즉시 왼손으로 칼을 뽑아서는 휙휙 하니 다시 세 자루의 비도를 정불사에게 쏘아보냈다. 정불사는 구절연편을 비스듬히 날려서는 상대방의 비도 두 자루를 맞쳤고 입을 벌려서는 세번째의 비도를 물고서는 즉시 채찍을 떨쳐 두 자루의 비도가 나누어 풍량과 여정평에게로 쏘아져 가도록 만들었 다. 동시에 그는 몸을 솟구쳐서는 허공에서 연편을 위에서 아래로 휘 둘렀다. 고삼 낭자가 허리를 구부리고 연편을 피하려고 했을 적에 뭇 사람들 이 큰소리로 놀란 소리를 내질렀다. 그 순간 고삼 낭자는 머리 위가 바짝 조여드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원래 정불사는 금으로 만들어진 연편의 끝으로 그녀의 상투머리를 휘감아서는 그녀를 허공으로 들어올린 것이었다. 풍량 등 세 사람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네 사람이 함께 손을 쓰는 이 마당에도 적의 핍박을 받아 아슬아슬한 고비를 연신 맞아야 했는 데 고삼 낭자가 만약에 난을 당하게 된다면 나머지 세 사람도 결코 요행을 바라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즉시 세 사람은 자기의 몸들을 돌 보지 않고 정불사에게로 덮쳐들었다. 정불사는 한 가닥의 진기를 끌어모으더니 훅 하니 입에 물고 있던 비도를 고삼 낭자의 배쪽으로 뱉아 보내고 왼손으로는 나(拿), 타 (打), 구(勾), 략(掠)의 수법을 써서는 순식간에 잇달아 살수를 펼쳐 덮쳐드는 세 사람을 물리쳤다. 고삼 낭자는 몸을 허공중에 떠 있었기 때문에 비도가 날아드는 것을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 그 녀의 뇌리에 번개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비도 아래 죽은 마적들이 칠팔십 명은 될 것인데 오늘은 내가 내 자신의 비도 아래에 죽게 되었으니 정말 인과응보로구나!) 정말 공교롭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정불사가 구절연편으로 던져 낸 두 자루의 비도가 나누어 풍량과 여정평의 무기에 얻어맞아 퉁겨 나게 되었는데 퉁겨나는 것이 마침 석파천의 곁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는 정세가 위급한 것을 보고 소리를 쳐서 깨우쳐 준다 하더라도 이미 때가 늦은 상태라 즉시 오른손을 뻗쳐서는 두 자루의 비도를 낚 아채는 즉시 내던졌다. 그는 한 번도 암기를 던지는 수법을 연마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비 도를 받게 되었을 때의 손놀림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엉터리였으며 비 도를 내던지는 수법 또한 엉망진창이었다. 다만 내력이 웅후해서 비 도가 쏘아져 나가는 기세가 세차게 되었는데 그 순간에 쩡 하는 소리 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한 자루의 비도가 고삼 낭자의 배를 향해 날아 드는 비도를 부딪쳐서 다른 곳으로 날아가도록 만들었고 또 다른 한 자루의 비도는 고삼 낭자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말았다. 고삼 낭자는 몇 장이나 되는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지만 발끝으로 가볍게 땅을 살짝 딛었다가는 뒤로 수 장이나 물러났다. 그 러나 이미 놀란 나머지 얼굴빛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자 정불사마저도 천만뜻밖인지라 즉시 몸을 돌려서는 호통 을 내질렀다. [어느 친구가 이곳에서 나의 일을 그릇치는 것이오? 사내라면 나서 서 삼백여 초를 싸워봅시다. 개꼬리 감추듯 하고서야 어찌 호걸이라 할 수가 있겠소.] 그러면서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석파천을 노려보았다. 다만 석파천은 얼굴에 석탄가루를 묻혀놓고 있었기 때문에 일시 알 아보지를 못했다. 그는 석파천이 잇달아 자기의 살수를 갈파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마 치 자기의 모든 초식을 이미 모두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았을 뿐만 아 니라 조금전 두 자루의 비도를 날려서는 자기가 불어낸 비도를 퉁겨 내게 되었을 때에도 그 실력이 엄청나 자기가 불어낸 비도를 수 장밖 으로 날려보내 눈깜짝할 사이에 그의 시야에서 자취를 감추도록 만든 것을 보고 속으로 울화가 치밀었지만 자기의 공력이 그보다는 훨씬 약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에 말투마저도 결국 좀더 깨 끗해지게 되었고 할아버지 이 녀석이니 하는 말들은 모조리 삼가하고 있었다. 석파천은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마음에서 미처 곰곰히 생각해 볼 여 유도 없이 두 자루의 비도를 던졌던 것인데 뜻밖에도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을 보자 그 자신마저도 놀람과 기쁨에 얽혀들게 되었다. 다만 칼을 받고 칼을 던지게 되었을 적에 비도의 예리한 칼날에 손 바닥 두 곳에 상처를 입게 되어 새빨간 피를 흘리게 되었으나 일시에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차에 정불사가 그토록 기세등등하게시리 자기에게 말하는 것을 보자 이미 정당이 자기의 얼굴에 검정칠을 한 사실을 잊고서는 전전긍긍하며 입을 열었다. [넷째 할아버지. 저……저 나는……나는 커다란 송편입니다.] 정불사는 일순 어리둥절했으나 곧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나는 누구라고. 원래 너 큰 송편이었구나!] 그러나 그는 속으로 궁리를 했다. (이 녀석은 나의 무공을 배운 바 있으니 그가 갈파할 수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 따라서 그는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자 갑자기 노기가 끓어오르는 것 을 느끼고는 소리쳤다. [이런 망할 녀석이 쓸데없이 할아버지의 일을 간섭하다니!] 그리고는 휙 하니 채찍을 들어서는 석파천의 머리를 내려치려고 들 었다. 석파천은 구절연편의 세찬 바람이 뻗쳐오는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서는 뒤로 몸을 날렸다. 머리 피할 수는 있었지만 신법이 보기에 여 간 흉하지 않았다. 정불사는 일격이 빗나가게 되자 노기가 더욱더 끓어오르는 것을 느 끼고 휙휙휙 하니 잇달아 세 번 구절연편을 휘둘렀는데 초식은 지극 히 교묘했으나 석파천은 일일이 몸을 날려 피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석파천의 내공 수위는 이마 몸뚱아리가 마음을 따라 돌아가는 경지 에 있었기 때문에 좌우나 위로 또는 아래로 마음 먹은대로 몸을 놀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정불사에게 지난번 크게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 에 아직도 그를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라 피하기만 할 뿐 감히 반격을 하지 못했다. 정불사는 속으로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구절연편의 무공은 내가 이 녀석에게 가르친 바가 없는데 이 녀 석이 어떻게 초식을 알고 있는 것일까?)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구절연편을 더욱더 세차게 휘둘러대 었다. 삽시간에 그의 구절연편은 한 무더기의 금빛이 번쩍이는 노란빛의 구름으로 화해서는 석파천을 그 가운데 가두는 것이었다. 그래도 좀처럼 석파천을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자 갑자기 그는 지난 번의 일을 떠올렸다. (이 송편 녀석은 자연도에서 백만검과 손을 맞잡고 나와 셋째를 공 격해서는 낭패하여 도망치게 만들었다……아니 셋째는 그야말로 체면 이 뭉개질 정도로 대패를 당했지만 이 정 넷째는 후배와 이것저것 따 지고 싶지 않아서 소탈하게 그 자리에서 표연히 물러서서는 내 갈길 을 가고 만 것이었지. 그때 이 녀석은 이 할아버지를 무서워해 감히 뒤쫓아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녀석은 아무래도 약간 이상한 데가 있구나.) 다른 사람들은 석파천이 구절연편이 마구 휘둘러지는 사이에서 이리 저리 몸을 날리며 잇달아 엄청난 위기에 몰렸다가는 종종 실날같은 차이로 간신히 벗어나는 것을 보고는 어느덧 모두다 손에 식은땀을 쥐어야 했다. 그러나 석파천은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넷째 할아버지는 어째서 정말로 나를 때리지 않는 것일까? 그는 나 와 장난을 쳐서 일부러 구절연편을 나의 몸 곁을 스쳐서 지나가게 만 드는 것일까?) 그는 정불사가 이미 십성의 공력을 돋우고 공격을 했으나 시종 실날 같은 차이로 채찍이 빗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석파천은 알턱이 없었 다. 정당은 평소 이 작은 할아버지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크게 위세를 떨치며 매번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석파천의 근골 을 분질러 놓을 것 같은 기세를 보고는 갈수록 걱정이 되어서 부르짖 었다. [천 오라버니! 빨리 반격을 해요. 반격을 하지 않는다면 야단나요!] 뭇 사람들은 이 몇 마디의 카랑카랑한 여인이 부르짖는 듯한 소리가 한 점소이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오자 진정 희한한 일들이 그야말로 끝 이 없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불사와 석파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미친듯이 금으로 만들어 진 채찍을 휘둘러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어지럽게 피하느라 돌아가 는 광경에 온 신경을 돋우고 있었기 때문에 점소이가 갑자기 간드러 진 음성을 낸 데 대해서는 미처 놀라워하거나 의아해할 여가를 가질 수가 없었다. 석파천은 석파천대로 지난번 상청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 다. (어째서 야단난단는 것일까? 그렇구나. 그날 나는 왼팔을 묶고서 상 청관의 도장들과 손을 쓰게 되었는데 그들은 매우 화를 내었으며 내 가 그들을 업수이 여긴다고 했다. 어머님께서는 만약 다른 사람과 손 을 쓰게 되었을 때에 가장 꺼려하는 것은 바로 상대방을 경시하는 것 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리고 내가 상대방을 상대로 싸워서 이기는 것은 관계가 없지만 언행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뜻을 보이게 된다면 상대방은 틀림없이 커다란 치욕으로 알고 그때부터 원 한을 가지게 된다고 하셨으니 내가 피하는기만 하고 손을 쓰지 않는 다는 것은 넷째 할아버지를 경시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두 손을 일제히 뻗쳐서는 정불사의 가슴팍을 움켜쥐 려고 들었다. 그가 사용하는 것은 바로 정당이 전수해준 십팔로의 금 나수법이었다. 이것은 정씨 집안의 조상대대로 전해져 오는 무공이기 때문에 정불 사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고 그 즉시 피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십팔로의 금나수법이 석파천의 웅후한 내력이 돋우어진 상태 에서 펼쳐진 만큼 구(勾), 대(帶), 쇄(鎖), 나(拿), 착(착), 격(擊), 벽(劈), 요(拗)의 모든 수법들이 휙휙 하는 세찬 바람을 일으키는 것 이 위맹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정불사는 그만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대낮에 도깨비를 만난 셈이군. 도깨비를 만났어!] 그리하여 제십이 초를 펼치게 되었을 적에 석파천이 냅다 손을 뻗쳐 서는 봉미수(鳳尾手) 가운데의 다섯번째 되는 변화를 구사해서는 황 금의 구절연편끝을 손에 낚아채게 되었다. 정불사는 기운을 돋우어서 빼앗으려고 들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 다. 그는 일성을 대갈하며 한평생을 쌓아온 힘을 다해서 세차게 끌어당 기며 자기가 남들에게 구절연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만약 내 자신이 구절연편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다면 이후에 무슨 면목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겠느냐 하고 생각했다. 따라서 자기쪽으로 끌어당기게 되었을 적에 그의 온몸에서는 뼈마디 가 우두둑 우두둑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공력을 극도로 발휘한 것 이었다. 석파천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당신이 무기를 잡아당긴다면 내가 손을 놓지 뭐!) 그러면서 그는 손가락을 놓았다. 그러자 쿵쿵 와르르 하는 소리가 크게 일었다. 정불사의 몸뚱아리가 뒤로 날려가서는 꽝 하고 반점의 흙담에 부딪 쳐서 흙담이 반쯤 무너지게 된 것이었고 그 바람에 벽돌조각과 흙들 이 반점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게 되어 탁자와 걸상은 말할 것 없고 탁자 위의 대접과 접시들을 마구 뒤덮고 깨뜨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곧이어 네 마디의 처참한 비명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한 명의 관동에서 온 사대문파의 제자 한 사람과 세 명의 구경꾼이 그만 앞으 로 엎어지게 되었는데 그들의 등심에서는 선혈이 솟아나고 있었다. 석파천은 서둘러 달려가 보았다. 네 사람의 등은 깨어진 대접이나 대나무 젓가락에 적중된 것이었고 정불사는 이미 간데온데 없이 사라 지고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자기가 대적하지 못할 것을 알고는 가슴속에 끓어오르 는 노기를 안고서 떠나게 되었지만 도저히 분풀이를 할 수 없게 되자 손에 잡히는대로 깨어진 대접과 대나무 젓가락을 집어서는 네 사람을 향해 던져 네 사람을 쓰러뜨린 것이었다. 이때 범일비 등도 재빨리 달려와 네 사람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러 나 모든 사람들은 요해(要害)를 적중당해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정불사가 그토록 흉악하고 거칠은 것을 보자 모두들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또 한편으로는 만약에 석파천이 의협심에서 나서주지 않았더 라면 지금쯤 시체가 되어서 땅바닥에 나뒹굴어져 있을 사람은 지금 쓰러져 있는 네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들 사대문파의 장문이었으리라 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일제히 석파천에게 절을 했 다. [소협의 그 높으신 의리와 은덕은 좀처럼 잊을 수가 없을 것 같구 려. 소협의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시오?] 석파천은 이미 어머님으로부터 강호에서 갖추어야 할 예절같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즉시 그 역시 절을 하며 반례를 하고는 말했다. [감당할 수가 없소이다. 조그만 일을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는지요. 불초의 성은 석씨이며 이름은 중옥이라 하오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네 사람의 성명과 문파를 물어보았다. 범일비 등이 자기네들의 신분과 성명을 밝히더니 다시 정당의 이름 을 물었다. 석파천은 그 말에 단순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쟁그랑땡이라 하지요. 바로……나의……나의……] 잇달아 나의 라는 말을 했을 뿐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다음말을 잇지 못했다. 범일비 등은 경험이 많고 온갖 풍상을 겪어온 사람들이라 한 쌍의 젊은 남녀가 변장을 하고 동행을 하게 되었을 적에는 자연히 어느 정 도 겸연쩍고 말 못할 사정이 있으리라고 생각을 했다. 따라서 석파천 의 안색이 부자연스러워져서는 말을 못하는 것을 보고는 더 묻지를 않았다. 정당은 옆에서 재촉을 했다. [우리 빨리 가도록 해요.]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그리고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뭇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범일비 등은 끊임없이 사의를 표하면서 고을 밖까지 전송을 했다. 여러 사람들은 다시 석파천에게 사문 내력을 가르침 받으려고 했으 나 정당이 옆에서 자꾸만 석파천에게 눈짓을 하는 것을 보고 다른 사 람에게 알리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인사말만했다. [석 소협이 오늘 베푸신 커다란 은혜는 한평생 보답하기가 어려울 것 같소이다. 차후에 명령만 내린다면 우리 관동의 뭇 형제들은 끓는 물속이 아니라 타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마다하지 않겠소이다.] 석파천은 어머님이 그에게 가르쳐준 바 있는대로 응수를 했다. [모두가 무림의 일맥(一脈)이니 의당 서로 도와야 하지요. 여러분들 이 이토록 겸손해 하시니 불초가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외다. 오늘 이 렇게 친구로 맺어지게 된 것을 불초로서는 실로 그지없이 기쁘게 생 각하는 바이올시다.] 범일비 등은 그에게 목숨을 구원받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매우 고마워하던 차인데 젊은 나이에 무공이 그토록 고강하면서도 또 한 사람됨이 겸손하고 온화한지라 더더욱 우러러 보게 되었고 그대로 헤어지는 것이 섭섭했다. 옆의 정당은 그의 언변이 제법 있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좋아했다. (누가 우리 천 오라버니를 백치라고 했는가? 천 오라버니의 무공은 이미 넷째 할아버지를 뛰어넘게 되고 머리 쓰는 것마저도 더더욱 분 명해지게 되었다.) 속으로 기쁜 나머지 그녀는 얼굴에 대뜸 화사한 웃음을 떠올리게 되 었다. 그녀는 얼굴에 석탄가루를 묻혀놓아 엉망이 되었으나 뭇 사람들은 자세히 살펴본 결과 정당이 아름다운 소녀라는 것을 알아볼 수가 있 었다. 다만 머리에 다 헤어진 전모를 쓰고 있었고 몸에는 가슴팍의 기름때가 거울처럼 번지르르하게 묻어 있는 시중배의 옷차림을 하고 있어 모두들 속으로 웃었다. 고삼 낭자는 손을 뻗쳐 그녀의 팔을 잡으며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와 같이 예쁜 점소이가 이 세상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군. 귀에는 또 한 쌍의 명주(明株) 귀거리를 달았구만. 강남의 점소이는 역시 우리 관동의 점소이와는 다른 데가 있구려.] 뭇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는 모두 다 하나같이 소리내어 웃었다. 정당 역시 훗 하고 웃음소리를 내었으며 자기의 실수한 바를 떠올렸 다. (조금전에 넷째 할아버지를 만나는 통에 그만 당황한 나머지 변장을 하면서 귀거리를 떼는 것을 깜박했구나.) 고삼 낭자는 수백 명의 고을 백성들이 멀리 서서 구경만 할 뿐 감히 다가오지 못하는 것을 보고 조금전 한바탕의 격전이 매우 흉악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정불사는 이 고을 백성을 세 명이나 죽였으니 이 고을 백 성들은 틀림없이 자기네들을 노략질이나 하는 녹림의 호걸로 생각을 할 것 같았다. 따라서 그녀는 동료들에게 제의를 했다. [이곳은 오래 머물 수가 없을 것 같으니 우리들도 모두 떠나도록 하 지요.] 그리고 그녀는 다시 정당에게 말했다. [소매(小妹), 이와 같이 옷을 바꿔 입느라고 아마 속옷마저도 더럽 힌 것 같구려. 우리가 바꾸어 입을 양으로 가져온 옷들이 많으니 나 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객점으로 찾아들어서 먼저 목욕을 하고 몇 가지 갈아입도록 하구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정당을 바라보며 말을 이 었다. [소매와 같이 이토록 아름다운 강남의 미녀는 이 늙은 언니가 한 번 도 본 적이 없구려. 여장으로 소매가 되돌아간 이후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미녀의 모습을 이 늙은 언니는 정말 보고싶구려. 그래야만 이후에 관동으로 돌아갔을 적에 이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한 친척이 나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겨나지 않겠소?] 고삼 낭자가 이토록 달콤한 말로 칭찬을 하자 정당은 그만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흐뭇해져서는 방긋 웃었다. [제가 치장을 할줄 모른다 하더라도 언니께서는 웃지는 마세요.] 고삼 낭자는 그녀의 그와 같은 말을 듣자 이미 허락한 것을 알고는 왼손을 들어 내저으며 외쳤다. [모두들 떠나도록 하지요!] 뭇 사람들은 모두 우렁차게 그러자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말을 끌 고 와서는 석파천과 정당이 말에 오르도록 기다려서는 각기 다투어 말을 타고는 그 관동의 제자 시체를 싣고서 질풍과 같이 말을 몰아서 는 그 고을을 벗어났다. 이 일행들 가운데 나이로 따지나 무공으로 볼 때에 하나같이 범일비 가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 중원에 오는데 있 어서 모든 비용은 만마장에서 출자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삼 낭자는 성격이 호방하고 흥청망청하는 편이라 돈을 물쓰듯이 하기 때 문에 자연스럽게 이 한 떼 사람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된 것이었 다. 여러 사람들은 각기 요동의 건마를 타고 삽시간에 수십리를 달려나 가게 되었다. 석파천은 살그머니 정당에게 물었다. [이 길이 송강부로 가는 길이오?] 정당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송강부는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여러 사람들은 서북쪽으 로 달려가고 있어 석청 부부와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었다. 땅거미가 지게 되었을 적에 그들은 한 커다란 고을에 이르게 되었 다. 이곳은 평양채(平陽寨)라고 하는 곳이었다. 뭇 사람들은 곧장 이 고장에서 가장 큰 객점으로 찾아들게 되었고 그 죽은 제자는 쾌도문 의 문하생이었기 때문에 여정평이 제자들과 후사를 처리했으며 의식 을 차린 이후 화장을 해서는 재를 갈무리했다. 고삼 낭자는 이때 방에서 정당을 도와 여장을 갖추도록 하고 있었 다. 그녀는 정당이 젊은 부인의 옷차림을 하고 있으나 행동거지에서는 처녀라는 것이 완연히 드러나는지라 속으로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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