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보다 못한 미횡야가 소리를 쳤다. [맹주, 사질이 팔 초를 피하면서도 저항을 하지 않았소이다. 사질은 방주인 사숙의 신분을 존중한 것인데 그래도 방주께서 다시 살수를 펼친다면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방주를 욕할 것이외다.] 사도 방주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누가 저 녀석에게 손을 쓰지 말라고 했더냐? 어찌되었건 너희들은 저 녀석과 한 통속이니 일제히 달려들어 나를 죽이려므나! 그리고 저 녀석을 방주로 삼는다면 너희들 소원도 풀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사도 방주는 좀처럼 손을 늦추지 않았 다. 삽시간에 석파천은 위기에 몰리게 되었고 비조 아래 곧 죽고 말것 같았다. 이때 전 향주가 부르짖었다. [석 형제, 검을 받으시게!] 그리고 장검을 한 자루 던졌다. 석파천은 즉시 장검을 받아쥐었다. 이어 다시 삼 초를 피했다. 그리 고 석파천은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사숙, 이미 이십 초를 양보했습니다. 그래도 손을 멈추지 않는다면 부득이 손을 써야 하겠으니 그리 아십시오.] 사도 방주는 두 눈에 흉악한 빛을 빛내며 연신 비조를 석파천의 안 면으로 뻗쳤다. 이때 의사청에 모였던 이십 명의 정부(正副) 향주들이 일제히 소리 를 쳤다. [손을 쓰시게, 손을 써! 헛되이 죽음을 당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이렇게 되자 그제서야 석파천은 한마다 던졌다. [그럼 실례를 범하겠소이다.] 그리고 그는 장검을 들어 비조를 밀쳐냈다. 두 사람은 한데 어울려서 싸우게 되었는데 싸움은 진정 격렬한 것이 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은 그래도 석파천이 많이 양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뜨거운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흘러가게 되었을 때 끝내 석파천은 순 수추주(順水推舟) 일 초로 사도 방주의 오른쪽 손목을 찔렀고 사도 방주는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물러섰다. [윽!] 그는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움켜잡고 있었으며 오른 손목에서는 피 가 났다. 비조는 이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석파천은 즉시 뒤로 세 걸음을 물러섰다. 사도 방주는 멍하니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을 하고 뭇 형제들의 얼굴 을 하나 하나 훑어 보았다. 의사쳬 안은 죽은 듯 조용했으며 그의 손목에서 떨어지는 핏방울 소 리만 뚝 뚝 하니 들려오고 있었다. 한참 후 사도 방주는 참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좋아, 좋다!] 그리고 그는 의사청에서 걸어나갔다. 의사청의 사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그를 지켜보았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도 방주는 방에서 떠나고 방주가 하루도 없어서는 안될 형편인지 라 모두들 석파천을 방주로 추대했다. 이때 석파천은 시원스럽게 약속을 했다. [이 몸은 덕과 능력이 없으니 이와 같은 중임을 맡을 수 없으나 삼 년 후에 상선벌악의 구리패가 강호에 다시 나타날 때까지 이 자리를 지키기로 하겠소.] 뭇 형제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한 패해석은 다시 한마디를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방주의 무공은 사도 방주를 이길 정도였으니 무공의 고강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그리하여 뭇 형제들은 승복하게 되 었는데 무공이 고강하지 않더라도 본 방의 재난을 막아 준다는 약속 에 누구나가 할 것 없이 방주님을 옹호했을 것이외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석파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패 선생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럴싸하지만 난 본래부터 언변이 없는 사람인데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구려.] 패해석은 웃으며 그 말에 반박했다. [방주께서 너무나 겸손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리고 그는 위로하는 투로 다시 설명과 격려를 했다. [방주께서 큰 병을 앓으신 후 지혜가 회복되지 않아서 그렇지 이후 에 치유되면 언변이 뛰어나게 되어 본방에서는 물론 강호에서도 방주 님을 따를 자가 없을 것이외다.] 석파천은 그대로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저 반신반의할 정도였 다. [그럼 내가 머리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오?] 패해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소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마디를 덧붙였다. [의학적으로 방주와 같은 경우가 많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갑자기 기 억을 되찾기도 했지요.]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또 한 가지 내가 구리패를 받겠다고 약속한 것을 방의 모든 형제들 이 알고 있고 의심치 않는단 말이오?] 패해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사내대장부의 일언은 중천금이라고 했소이다. 더구나 강호에서는 가장 의리를 중시하지 않소이까? 모든 형제들이 방주님을 믿고 있지요.] 석파천은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서 내가 몇 번 밖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당신들은 초조하게 생 각하고 내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겁을 내었구려.] 패해석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방주께서 취임 이후 행하신 일들을 모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소이 다. 형제들에게 좀 엄하긴 했지만 모든 사람들은 방주께서 자기 목숨 을 버리면서까지 뭇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겠다는데 대해 모두들 고맙 게 생각한 나머지 방주께서 하시는 일에는 전혀 개의치 않게 되었지 요.] 석파천은 잠시 생각해본 후 말했다. [패 선생, 과거의 일을 나는 기억하지 못하겠소. 그러니 당신은 속 이지 말고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이야기 해보시오.] 패해석은 미소를 지었다. [잘못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외다. 방주께서는 나이가 젊어 좀 풍류를 즐기는 편이지만 병패가 될 수는 없소이다. 다행히도 그 여자 들은 즐거이 응했고 강요한 일은 결코 많지 않았소이다. 따라서 장락 방의 명성도 그렇게 좋고 높은 편이 아니라서 뭇 형제들은 그 소식을 듣고 모두들 웃고 말았지요.] 석파천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패해석은 몇 마디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이었지만 이 몇 년간 자기 가 풍류죄를 얼마나 지었는지 짐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았지만 정당 이외의 다른 여자와 어떤 애매한 관계가 있었다는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는 수아가 그와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의구심이 솟아올랐다. 패해석은 다시 말을 이었다. [방주, 속하가 한마디 당돌한 말씀을 올려도 되겠소이까?] 석파천은 재빨리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패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던 참이니 말씀을 해주 시구려.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좋소이다.] [장락방에서는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형편이었소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많은 형제들이 어떻게 밥 을 먹고 살아갈 수 있겠소이까?] 그리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들은 본래 백도에서 활약하는 호걸들이 아니니 위선에 찬 예의 같은 것은 지킬 필요가 없었지요. 하지만 방 내부 형제들의 처나 딸 들에게 대해서는 방주께서 역시……서로의 화목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좀 주의를 했으면 좋겠소이다.] 석파천은 그만 얼굴이 시뻘게지고 말았다. 그날밤 전 향주가 자기를 찔러 죽이려고 했을 때 바로 그 이유가 자 기의 처를 유혹했다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그와 같은 일이 있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어쩔줄을 몰라했다. 패해석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불삼 노 선생은 성격이 괴팍하고 무공이 지극히 높소이다. 방주 께서 그 손녀딸과 내왕을 하다가 장래에 버리게 된다면 정 노 선생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외다. 방주께서는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 지만 한 명의 강적을 더 만들게 되는 결과가……] 석파천은 불쑥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정 소저를 저버린단 말이오?] [방주께서는 한 처녀를 좋아하시게 되면 보배처럼 여기나 얼마안가 그 정이 식어버리는 것이 통례였소이다.] 그리고 패해석은 빙그레 웃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방주께서 정말 정 소저를 좋아한다면 별 문제이지만 혼례를 올리는 것 같은 일은 정 노선생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거행할 필 요가 없다고 생각하오이다.] 석파천은 망설였다. [하지만 패 선생, 나는 이미 그녀와 혼례를 올렸소.] 패해석은 천천히 말했다. [그때 방주께서는 병이 치유되지 않아 흐릿한 정신에서 정 노선생의 안배와 지휘를 받은 것이니 반드시 지켜야할 필요는 없는 것이외다.] 석파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일시 무어라 대답할 수가 없었던 것이 다. 패해석은 그와 같은 말은 적당히 해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관동 사대문파에서는 기세등등하게 우리 문하까지 찾아온 셈인데 일단 방주님을 대하게 되자 그만 누그러져서는 은공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방주님의 위세와 덕망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일이지요. 방주께서 무공의 진도가 기이하도록 빠른 것은 정말 기쁘고도 축하할 일이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연고인지 모르겠군요.] 석파천이 어떻게 힘써 정불사를 물리쳤으며 또 고삼 낭자 등의 목숨 을 구했는가 하는 일에 대해서 총타로 오는 도중에 관동의 군호들은 이미 간장을 더 붓고 초를 치는 등 과장해서 장락방의 뭇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패해석은 석파천의 무공이 그토록 고강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 던 일이었기 때문에 즉시 말을 슬슬 유도해서는 그 까닭을 알아내고 자 했다. 그러나 석파천 자신도 아리송한 일이라 어떻게 된 까닭인가를 설명 할 수가 없었다. 패해석은 그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 다. [그 사람들은 무림에서 모두다 퍽이나 명성이 있는 인물들입니다. 방주께서는 그들에게 커다란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 기회를 빌어 그들 을 망라하여 본 방을 위해서 힘을 바치도록 해야 할 것이외다. 그들 이 만약에 사도 전방주의 일에 대해서 묻는다면 방주께서는 그저 사 도 전 방주가 이미 은퇴를 했다고만 하십시오. 그리고 속하가 조금전 에 말씀드린 경과는 그들에게 알려주지 마십시오. 그런 말씀을 했다 가는 서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소이다.]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패 선생 말씀이 옳소이다.] 몇 마디의 환담을 주고 받은 후 패해석은 품속에서 한 장의 계산서 를 꺼내 놓았다. 이 계산서는 물론 총타와 각 분타에서 이 몇 달 동안 소요된 비용들 과 들어온 수입을 적은 것이었다. 석파천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고개만을 끄덕 였다. 그런데 장락방에서 행한 어떤 일들은 바로 부모님들이 이 며칠간 말 하는 천리에 어긋나는 짓들이 아닌가! 그야말로 녹림의 산채들이 금은보화를 가져다 주는 것도 알고 보면 도적질한 것을 서로 나누어 먹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사실에 있어서 석파천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어떻게 그러한 사실을 지적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이날 밤 장락방의 총타 대청에서는 큰 연회가 베풀어졌다. 관동의 군호들을 대접하는 연회였다. 석파천과 패해석 그리고 정당이 아랫석에서 그들을 대접했다. 술이 세 순배 돌게 되었을 때 여러 사람들은 서로 인사말을 하게 되 었다. 범일비는 석파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은공의 커다란 재주로 장락방을 이토록 흥왕(興旺)하도록 다스렸으 니 사도 형님께서도 아마 틀림없이 매우 기뻐하리라고 생각이 드는구 려.] 패해석은 그 말을 받았다. [사도 선배께서는 지금 낚시질이나 하고 화초를 심기만 할 뿐 어떠 한 사람도 만나보지 않는 형편이라 정말 여가를 편안하게 보내고 있 지요. 따라서 폐방의 속된 음모에 관해 우리들 역시 감히 그 어르신 에게 품하여 알리지를 못하고 있지요.] 범일비가 정히 다시 말을 만들어내서는 캐어묻고자 하는데 갑자기 호맹당(虎猛堂)의 부향주가 총총히 걸어들어와 패해석에게 무어라고 귓속말을 했다. 패해석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석파천에게 입을 열었다. [방주께 알립니다. 설산파의 뭇 제자들이 우리들에게 사로잡힌 바가 있었소이다. 그런데 능소성에서 달려온 두 사람이 그들을 구하려다가 다시 우리들에게 잡히게 되었다는구료.] 석파천은 약간 놀란 얼굴이 되어 물었다. [설산파의 제자들을 모조리 잡았단 말이오?] 패해석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방주와 백만검이 총타에서 떠난 이후 뭇 형제들은 매우 걱 정을 했소이다. 방주께서는 너무나 순진하여 혹시 그 자들의 수작에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는 관동의 군호들이 있는 자리에서 석파천이 백만검에게 사로잡혀 갔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그와 같이 애매하게 지껄인 것이다. 곧이어 그는 계속해서 설명을 했다. [그리하여 장락방의 모든 형제들이 나서서 방주의 행방을 찾게 되었 는데 당도현(當塗縣) 부근에서 설산파의 제자 몇 명을 만나게 되었소 이다. 살짝 조그만 계책을 쓴 결과 그들을 모조리 사로잡아서 총타에 감금시킬 수가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기민하기 이를 데 없는 백만검은 그만 도망을 치고 말았지요.] 정당은 갑자기 불쑥 입을 열었다. [화만자라는 화 소저는 어떻게 되었나요?] 패해석은 즉시 대답했다. [그 여인은 총타에 사로잡혀 있소.] 범일비 등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속으로 깜짝 놀라마지 않았다. 설산파라면 무림에서 혁혁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장락방의 수하들에게 그와 같은 참패를 당했다고 하니 제대로 믿어지지가 않았다. 패해석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설산파의 제자들에게 방주의 행방을 물어보았소이다. 방 주께서는 그날 밤 토지묘에서 스스로 떠나간 이후 다시 만나지 못했 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관동 군호들을 쓸어보고 다시 입을 열 었다. [모두들 방주께서 무사하시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놓았소이다. 이제 이 설산파의 제자들을 어떻게 하실 것인지 방주께서 알아서 처리하도 록 하십시오.] 석파천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설산파의 문하에서 무공을 배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설산파의 제자들은 따지고 보면 나의 사숙뻘이 된다. 그들을 어찌 죽이거나 감금해 둘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생각에 그는 입을 열었다. [우리와 설산파의 사이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지만 역시……] 그는 한마디 주워들은 풍월이 있어 그것을 말해보려고 했으나 일시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패해석은 그 말을 얼른 받았다. [적을 친구로 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적이 되는 것보다는 친구가 되는 것이 낫소이다. 패 선생, 우리들은 그들을 놓아줍시다. 그리고 그들을 함께 불러 술을 마시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는 무림에 이와 같은 규칙이 있는지 모르고 패해석 등이 많은 힘 을 써서 잡은 설산파의 제자들을 자기가 간단히 놓아주라고 하는 것 같으면 좀 전횡을 하는 것같아 패해석에게 묻게 된 것이다. 패해석은 웃으면서 응했다. [방주께서 그토록 너그러우시니 정말 무림에 미담을 남기게 되었소 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호맹당의 부향주에게 명령을 내렸다. [설산파의 사람들을 모조리 데리고 오도록 하게.] 부향주는 대답을 하고 물러갔다. 얼마 후 네 명의 형제가 두 명의 백의 사내를 압송하여 왔다. 두 사 람은 손이 뒤로 묶여 있었으며 흰 옷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한바탕 싸움을 벌인 끝에 두 사람이 상처를 입고 사로잡흰 것 같았다. 부향주는 호통을 내질렀다. [앞으로 나아가 방주에게 인사를 드리도록 하시오!] 그러자 나이가 좀 많은 중년인이 두 눈을 부릅떴고 다른 삼십세 정 도의 장정은 입을 열고 욕을 했다. [차라리 시원하게 이 나으리를 죽여라! 너희들 죄만 저지르는 날강 도 같은 자들은 언젠가 죄값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사부이신 위덕 선생이 이곳에 오시기만 하면 너희들을 모조리 갈기갈기 찢어서 나의 원수를 갚아 주실 것이다.] 그러자 창 밖에서 우렁찬 음성으로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시(時) 사제, 정말 속시원하게 욕을 잘 했네. 저자들은 비열하기 짝이 없는 날강도들이지!] 곧이어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십 여명이나 되는 설산파의 제자들이 손에는 수갑을 차고 발에는 고랑쇠가 채워진 채 대청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경만종, 호연만선, 문만부, 가만균, 왕만인, 화만자 등이 그 안에 끼어 있었다. 경공신법이 매우 뛰어나다는 왕만인도 이번에는 잡히고 말았다. 왕만인은 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날강도니 후레자식들이니 하고 욕 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실력이 있다면 진짜 칼이나 창을 들고 정정당당히 대 결을 할 것이지 몽한약을 쓴 것은 비겁하지 않느냐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범일비와 풍량 등은 서로 한 번 쳐다보았다. (만약 몽한약을 써서 그들을 사로잡은 것이라면 별로 떳떳할 것도 없군.) 패해석은 즉시 그들의 그와 같은 눈치를 알아차리고 자리에서 일어 나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당도현에서 싸우게 되었을 때 우리들은 확실히 몽한약을 쓰기는 했 지만 여러분의 무공이 뛰어나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석 방주와 여러 분과는 옛날에 어느 정도 인간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해치 고 싶지 않아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 뿐이오……] 그러고 나서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말씀을 한다는 것은 아마도 승복할 수 없어 그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한 사람씩 나서서 불초와 한 번 겨루어 봅시다. 어느 분이든지 불초의 십 초를 받아낸다면 장락방의 사람들이 모두 다 비열한 날강도라고 인정을 하겠소. 어떠시오?] 지난번 패해석의 오행육합장(五行六合掌) 아래 가만균 등은 이 삼 초도 견디지 못하고 혈도를 짚혀 쓰러지고 말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들이 십 초를 받아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었 다. 새로이 잡혀온 설산파의 제자 손만년은 패해석의 재간이 얼마나 뛰 어난지를 몰랐다. 그는 오히려 얼굴이 싯누렇고 비쩍 마른 패해석의 병약자와 같은 모 습에 조금도 꺼리낌이 없이 큰소리를 쳤다. [당신네들 장락방은 많은 사람의 수를 믿고 이길 뿐이지 뭐가 대단 하다고 그러시오? 십 초가 아니라 백 초라도 받아줄 용의가 있소] 패해석은 냉소를 날렸다. [좋소, 좋아! 이 분은 정말 담이 뛰어나군. 우리들은 이렇게 내기를 하도록 합시다. 당신이 십 초를 받아낸다면 장락방은 모두 비열한 날 강도가 되지……] 그리고 나서 그는 좀더 엄한 어조로 물었다. [만약에 노제가 십 초 안에 지게 된다면 설산파가 바로 비열한 날강 도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러면서 그는 손만년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슬쩍 떨쳤다. 그러자 손만년의 몸에 감겨 있던 몇 가닥의 손가락처럼 굵은 삼베줄 이 뚝뚝 끊어지고 말았다. 패해석은 웃으면서 차분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자, 손을 써보시지!] 손만년은 자기가 몇 번이나 끊으려고 힘을 주어보았지만 꼼짝도 하 지 않던 밧줄이 병약자 같은 패해석의 아무렇게 하는 손짓에 간단히 끊어지자 그만 깜짝 놀라 안색이 홱 변하고 말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으며 감히 패해석과 손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그 누가 낭랑히 외쳤다. [좋소! 그 내기는 나와 합시다!] 뭇 사람들 가운데 설산파 제자들은 대뜸 얼굴에 기쁜 빛을 띠었다. 장락방의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고 패해석은 약간 안색이 변했다. 대청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한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그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헌칠한 키 위엄이 가득 서린 얼굴로 바로 기한서북 백만검이 아닌가! 그는 포권의 예를 하더니 입을 열었다. [불초는 무공이 미흡하나 패 선생에게 십 초를 받아보도록 하겠소.] 패해석은 빙그레 웃었다. 안색은 여전히 침착했으나 속으로는 여간 겸연쩍은 것이 아니었다. 백만검의 무공을 두고 논하게 될 때 패해석이 이긴다고 할 수 있으나 백 초 정도 싸워야만 승부가 날 정도였다. 그러니 십초 안으로 이긴 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실력을 정확히 헤아리는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십 초의 내기는 백 대협의 뭇 제자들을 상대로 할 때만에 통용되는 것이외다. 백 대협께서 친히 나선다면 우리들은 내기의 내용을 반드 시 고쳐야 할 것이오……] 그리고 그는 다시 엄숙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백 대협이 만약 불초와 겨루겠다면 손이 상대방의 옷에 닿는 것으 로 끝내는 조건이라면 이삼백 초 안으로 승부를 낼 수는 없을 것이 오.] 백만검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원래 패 선생은 한 번 말한 것을 지키지 않는 분이시구료.] 패해석은 소리내어 웃었다. [핫하하……내가 무공이 약하고 건방지며 무지한 젊은 사람들을 상 대로 했을 때 조건이외다. 설마하니 백 대협도 그런 사람이란 말이 오?] 백만검은 무뚝뚝한 어조로 그 말을 받았다. [만약 장락방에서 비열한 날강도라고 인정한다면 불초는 무공이 형 편없고 오만하며 무지한 자가 된다고 해도 상관이 없소.] 그는 대청 안으로 들어서자 석파천이 위풍당당하게 자리에 앉아 있 고 뭇 사제들은 수갑을 채인 채 초췌한 안색으로 묶여 있는 것을 보 고 그만 속에서 불덩이 같은 것이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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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는 패해석의 한마디에 꼬투리를 잡고는 비열한 날강도라 는 것을 인정하도록 다그친 것이었다. 이때 문 밖에서 갑자기 그 누가 낭랑히 외쳤다. [송강부의 은극 양광과 현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