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려오도록 해야 할 때이오.] 그리고 그는 둥근 걸상을 두 개나 집어들더니 휙 하니 천정으로 던 졌다. 꽝! 단번에 천정은 구멍이 뻥 뚫렸고 흙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운데 위에 서 뭔가 쿵 하니 아래로 떨어졌다. 연회석 앞에 뚝 떨어졌기 때문에 군호들은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 다. 한데 위에서 떨어진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웅크린 채 바 닥에 엎드려 있었다. 이사는 식지로 가볍게 지풍을 퉁겨냈다. 찍 찍 하는 소리와 더불어 그 사람의 혈도가 풀어졌고 그 사람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두 눈을 부볐다. 그리고 어리둥절하여 사방을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뭇 사람들은 갑 자기 놀람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바로 그다……]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지?] [그 정말 이상한 노릇도 다 보겠네.] 뭇 사람들은 이사가 허공을 격하고 지풍을 뻗쳐내 몇 자 밖 다른 사 람의 혈도를 푸는 고심한 무공은 들어만 보았지 일찍이 본적이 없는 지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듯 나타난 사람은 바로 오관이 석파천과 똑같은 젊은이였다. 그 젊은이는 화려한 비단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더욱 의아한 감을 금할 수 없었다. 한데 그 젊은이는 이때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도대체 당신들은 나를……어떻게 할 작정이오?] 장삼은 웃으며 그 사람에게 말했다. [석 방주, 양주(揚州) 기원(妓院)에 파묻혀 수 개월 동안 보내느라 고 재미가 좋았던 모양이오만 패 선생은 곳곳으로 당신을 찾다가 못 찾자 다른 사람을 내세워 방주 노릇을 하게 한 것이네……] 그리고 그는 똑바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협객도 사자들의 이목은 속일 수 없지. 자, 우리들은 당신 을 협객도로 초청하여 동지 팥죽을 대접하고 싶은데 가시겠는가?] 말을 하는 한편 그는 소맷자락에서 두 개의 동패를 꺼내 손에 들었 다. 젊은이는 얼굴에 두려운 빛을 띠고 급히 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떨 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나는 갈 수 없소……왜 내가 가야 합니까?] 석파천은 의아하여 물었다. [큰형님,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지요?] 장삼은 웃으며 되물었다. [셋째, 이 사람의 모습이 자네와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장락방 에서 이 사람을 방주로 내세운 것은 그로 하여금 동패를 받도록 하자 는 데 목적이 있었네……] 그리고 그는 패해석을 한 번 바라보며 다시 설명을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겁을 집어먹고 숨어버린 것인데 패 선생이 어쩔 수 없어 자네를 속이고 이곳으로 데리고 와 이 사람을 대신케 한 것 이라네……] 이어 그는 약간 정색을 하고 석파천에게 물었다. [진짜 방주를 찾아냈으니 자네는 방주 노릇을 못하게 되었네. 우리 를 원망하지 않겠지?] 석파천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참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머님, 아버님, 쟁그랑때, 패 선생. 난 이미……여러분들이 나를 잘못 보았다고 말하지 않았소이까? 난 방주가 아니고 이 사람이 진짜 이외다.] 민유는 한 걸음 나아가며 떨리는 음성으로 그 젊은이에게 물었다. [네가 옥이냐?] 젊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두 분 다 여기 계시는군요.] 이때 백만검은 한 걸음 나서며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너는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겠지?] 젊은이는 고개를 숙였다. [백 사숙, 그리고 여러……사숙께서도 모두 오셨군요.] 백만검은 싸늘히 냉소를 흘렸다. [우리 모두 왔다. 너를 데려가려고 말이다.] 패해석은 이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을 뿐 말이 없다가 그제서야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모습이 비슷하고 몸매와 나이도 한 틀에서 나온 듯 같으니 어느 분이 본방의 방주인지 나로서는 알아볼 수가 없구료……] 그리고 그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진정 이 세상에는 별 희한한 일도 다 많군. 당신이 바로 석 방주인 가 보구려. 그렇소?] 젊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로 다 말씀 드릴 수 없소이다. 나중에 다 말씀을 드리지요.] 갑자기 대청 안은 조용해졌다. 뭇 사람들은 석파천과 석중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두 사람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러나 두 사람을 같이 세워놓고 비교하자니 역시 궁극적으로 크게 다른 점도 있었다. 석파천은 안색이 거무틱틱하고 눈썹이 굵은데 비해 석 방주는 눈썹 이 여자처럼 고울 뿐 아니라 허여말쑥한 얼굴이라 할 수 있었다. 하 지만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좀처럼 분별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이때 갑자기 민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백만검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다리에 있는 검상은 같을 수가 없지. 여기에는 반드시 어떤 곡절이 있을 것이오.] 정당 역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가짜예요. 진짜 천 오라버니는 왼쪽 어깨위에 상처 자국 이 있어요.] 석청 역시 많은 의혹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아들은 어릴 적에 암기를 맞은 적이 있소……] 그리고 그는 석파천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 젊은이의 몸에도 그와 똑같은 상처가 있으니 누가 가짜이고 누 가 진짜인가는 조사해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오.] 뭇 사람들은 석파천을 한 번 바라보았다가 다시 화려한 복장의 젊은 이를 바라보곤 했다. 모두들 의심을 좀처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때 장삼은 소리내어 껄껄 웃었다. [석 방주로 만들 바에야 똑같이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니겠소? 진짜의 몸에 흉터가 있다면 가짜의 몸에도 흉터가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그는 패해석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패 의원은 착수회춘이란 아호를 가지고 있소. 그와 같은 아호가 허 명만으로 얻은 것이 아닐 것이오……그는 바로 우리 셋째가 혼미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을 때 그와 같은 수작을 부려 놓은 것이외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화려한 복장의 젊은이에게 달려갔다. 달 려가면서 젊은이의 왼쪽 어깨와 왼쪽 허벅지 그리고 엉덩이를 한번 쥐었다. 대번에 그 세곳에 구멍이 뻥 뚫리게 되고 하얀 살갗이 드러나게 되 었다. 어깻죽지와 허벅지 그리고 엉덩이에 각기 모양이 다른 흉터가 드러났다. 백만검이나 석청 그리고 정당이 말한 것도 맞아든 것이다. 뭇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더군나 장삼은 살에 상처 하나 내지 않고 옷을 가위로 오리듯 상처 부위만 드러나게 한 데 대하여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당은 앞으로 달려나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대……그대가 정말 천 오라버니인가요?] 진짜 석 방주라는 젊은이는 씁쓸하게 웃었다. [쟁그랑땡, 이 며칠간 당신을 만나보지 못했지만 난 그대를 얼마나 생각했는지 모른다오. 하지만 그대는 나를 깡그리 잊고 있었구료. 나 를 알아보지도 못하다니……] 그리고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난 천 년이고 만 년이란 세월이 흐른다해도 그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오.] 정당은 너무나 기뻐 눈물마저 흘렸다. [그대……그대야말로 진짜 천 오라버니군요. 저 고약한 시기꾼같으 니! 그러니까 어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할 수 있었을라구? 하 마터면 속을 뻔했군요.] 그러면서 그녀는 석파천을 노려보며 자기도 모르게 석 방주의 손을 잡았다. 석 방주는 그녀의 손을 꼬옥 쥐어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당은 그만 둥실 허공에 뜨는 기분이 되어 어쩔줄을 몰라했다. 석파천은 두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쟁그랑땡, 나는 이미 당신에게 내가 당신의 천 오라버니가 아니라 고 말을 했었소. 당신은……당신은 나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오?] 갑자기 철썩 하는 소리와 더불어 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느결에 한 대의 따귀를 얻어맞은 것이었다. 정당은 노기등등해서 외쳤다. [이 사기꾼, 아이구 아야!……] 그러면서 연신 그녀는 손을 떨쳤다. 원래 그녀는 매우 힘을 주어 석파천의 따귀를 갈겼던 것이지만 되려 석파천의 내력이 반탄되어 옴으로서 그녀의 손바닥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것이다. 석파천은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쟁그랑땡! 난 당신을 일부러 속인 것이 아니오.] 정당은 다시 쌜쭉한 얼굴이 되어 그를 노려보며 부르짖었다. [흉터를 날조해 놓고서도 고의가 아니라구? 그렇다면 사실을 왜 진 작 말하지 않았느냔 말이에요?] 석파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나도 몰랐소!] 정당은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이 거짓말쟁이 사기꾼! 저리 가요!] 그녀의 고운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되었다. 석파천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는 억지로 눈물을 참고 한켠으로 물러섰다. 석청은 고개를 돌리고 패해석에게 물었다. [패 선생, 저 젊은이는 어디서 데리고 온 것이며 우리 애는 또 왜 강제로 방주 자리에 앉히게 되었는지 많은 무림 친구들이 있는 이 자 리에서 모든 사람이 의구심을 풀 수 있도록 해주시오.] 패해석은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이 젊은 양반은 석 방주와 모습이 똑같았소. 석 방주의 부모님이 되는 현소쌍검도 분간하지 못했으니 우리들이 잘못 알아보았다고 해 서 탓할 수는 없을 것이오.] 석청은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민유는 이에 반박하고 나섰다. [우리들은 우리 애와 헤어진 지 십 년이나 됐어요. 거기다가 한참 자라나는 애들이니 알아보기가 어렵죠……] 그리고 그녀는 힐난하듯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패 선생은 우리 애와 몇 년을 같이 생활했는데도 패 선생과 같이 똑똑하신 양반이 몰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네요.] 패해석은 기침을 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꼭 알아볼 수 있으리라는 법은……없지 않소……] 그날 그는 마천애에서 석파천을 발견한 순간 석중옥이 아닌 것을 알 았다. 석중옥을 찾지 못해 마음이 초조해져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중 문득 묘한 착상이 떠올랐다. 바로 석파천을 대체하자는 영감이었다. 거기다가 석파천이 멍청한데 가 있는지라 안배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지금 그로서는 그와 같은 사연과 의도를 말할 수는 없었다. 패해석은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석 방주가 본방의 방주가 된 것은 무공으로 사도 방주를 이길 수 있었기 때문에 전체 방의 형제들이 추대를 하게 된 것이오. 강제란 말은 부당한 것 같소이다.] 석중옥은 불쑥 입을 열었다. [패 선생, 이 지경이 된 이상 더 속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오이다. 그날 회안(淮安)에서 내가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고 패 선생에게 잡히 게 되었을 때 패 선생은 패 선생의 말대로 행하기만 한다면 나의 목 숨을 살려주겠노라 하면서 장락방에 가입시킨 것이 아니오?] 그리고 그는 패해석이 석파천에게 말해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사도 방주에게 하 향주를 핍박하여 자살토록 한데 대해 따지도록 한 일, 그가 나서서 사도 방주와 대결을 한 것도 모두 패해석이 시킨 것이라 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패해석을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저의 무공으로 어찌 사도 방주의 적수가 되겠소이까? 뭇 형제 들이 와 하니 말린답시고 사도 방주를 제압하는 바람에 그만 분통이 터진 사도 방주가 떠나게 된 것이지요……] 이어 그는 한숨을 쉬며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고 재차 말을 이어갔 다. [그리고 그 후 모든 일에 있어서 나는 패 선생의 분부만 따르게된 것이고 그러다보니 너무나 재미가 없어 양주로 도망을 쳐 인생을 즐 겼던 것인데, 그만 저 두 노형에게 영문도 모르게 채 이곳으로 잡혀 오게 되었소……] 거기까지 말한 그는 똑바로 패해석을 바라보며 부탁했다. [패 선생, 장락방의 방주는 역시 당신이 하는 것이 좋겠소. 허수아 비에 지나지 않는 방주 자리에서 제발 좀 해임시켜 주었으면 하는 것 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소.] 언변이 좋은 그는 청산유수로 거기다가 논리정연하게 설명을 하는지 라 모든 사람들은 똑똑히 어떻게 된 사연인가를 파악할 수 있었다. 패해석은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시퍼래져서는 입을 열었다. [그 당시 방주는 뭐라고 했소? 일이 코앞에 닥치자 그때 한 약속을 번복하다니!] 석중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당시 내가 어찌 패 선생의 분부를 듣지 않을 수 있었겠소? 지금 우리 부모님이 계신 자리에서도 저와 같이 노기등등하여 사람을 다그 치니 다른 것은 생각만해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외다.] 그는 상선벌악의 두 사자가 와 있는 것을 보고 방주 자리에서 물러 나지 않으면 목숨을 건질 수 없다는 점과 부모님이 옆에 계시기 때문 에 강경한 태도를 취한 것이었다. 이때 여지껏 말이 없었던 미횡야가 입을 열었다. [방주, 그와 같은 말은 시비를 전도하는 것이오. 방주 자리에 앉은 것이 불과 이삼 일로 끝난 것이 아니지 않소? 평소 모든 거드름과 위 세를 떨쳤을 뿐 아니라 양가의 부녀들까지 짓밟지 않았소? 그게 모두 패 선생이 시켜서 한 짓이오?] 그리고 그는 더욱 언성을 높여서 따져갔다. [그때 당신이 말끝마다 자기가 책임진다고 가슴까지 쳐가며 협객도 에서 보내온 동패를 받겠다고 맹세했소. 그런 맹세까지 하지 않았더 라면 뭇 형제들이 어떻게 당신의 못된 짓을 용납했겠소?] 석중옥은 듣기 거북한 이야기가 나오고 변명할 여지가 없자 못들은 척하고 있다가 패해석을 향해 웃으며 딴청을 떨었다. [패 선생은 정말 재간이 뛰어나구료. 내가 은거하고 나타나지 않자 나와 모습이 똑같은 녀석을 찾아내느라고 수고도 많았겠소……] 그리고 그는 석파천을 쳐다보고 말을 이어갔다. [저 녀석의 모습이 나와 똑같고 그가 위장하기를 즐겨한다면 끝까지 그에게 방주 노릇을 시킬 것이지 왜 나를 잡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소?] 이어 그는 석청과 민유를 향해 정다운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우리들은 빨리 이 시비의 장소에서 떠나가 는 것이 좋겠어요.] 무척 말재주가 좋은 그였다. 석파천은 도저히 흉내도 낼 수가 없었 다. 말을 시켜보니 천양지차가 있다는 것을 모두 알 수가 있었다. 미횡야와 진충지 그리고 전비 등은 일제히 날카롭게 외쳤다. [모든 것을 내몰라라 하고 가버릴 작정이지만 그렇게 쉽게 떠날 수 는 없을걸!] 그리고 그들은 일제히 허리에 찬 칼과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장삼은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석 방주 그리고 패 선생, 우리 솔직히 털어놓고 이야기 를 합시다. 사도횡이나 석 방주의 무공과 명망으로서는 협객도로 가 동지 팥죽을 먹을 자격이 없소……] 그리고 그는 여전히 싱글거리는 얼굴로 여러 사람들을 훑어보며 다 시 말을 이었다. [장락방에서는 이 몇 년간 못된 짓을 많이 했소. 그래서 우리들도 악을 벌주려고 찾아온 것이며 석 방주가 동패를 받는 것을 원하지도 않소. 다만 통례에 따라 한 마디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오… …] 이어 그는 석중옥을 향해 재차 말을 이었다. [석 방주는 동패를 받지 못하겠다고 말했소? 좋소, 매우 좋소. 당신 이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은 우리들에게는 천만다행한 일이오.] 패해석과 장락방의 군웅들은 속으로 크게 움찔했다. 석중옥이 동패를 받지 않는다면 협객도의 두 사자인 뚱보와 홀쭉이 가 틀림없이 크게 살계를 범할 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뚱보의 말을 들어볼 때 이미 장락방을 몰살시킬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 지 않는가!] 방금 두 사람이 보여준 무공으로 미루어 볼 때 장락방에서는 대적할 사람이 결코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삽시간에 대청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은 석중옥을 바라보았다. 석파천은 이때 겸연쩍은 표정이었으나 의연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패 선생, 우리 큰형님……은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오이다. 사람 을 죽인다면 영락없이 죽이고 말지요. 비어방과 철차회의 사람들도 깨끗이 몰살당했소이다……] 그리고 그는 석 방주와 패해석을 번갈아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 다. [내가 보기에 누가 방주가 되든 우선은 저 동패를 받아두는 것이 좋 을 것 같소이다. 쌍방이 다 나와는 다정한 형제라 할 수 있어 정말 싸우게 되면 어느 쪽을 도와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패해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 동패를 받지 않을 수 없지.] 석파천은 석중옥에게 말했다. [석 방주, 동패를 받도록 하시구료. 동패를 받아도 죽고 받지 않아 도 죽는 것이지만 동패를 받으면 방의 전 형제들이 당신과 항께 죽는 것을 면할 수 있지 않소? 다같이 죽는다해서 좋을 것이 뭐 있겠느냐 하는 것이외다.] 석중옥은 냉소했다.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홀가분한 태도로 쉽게 말하지 마시오. 당신 이 그토록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어째서 당신이 장락방의 재난을 막아 주지 못하오? 흥 가소롭군.] 석파천은 한숨을 쉬고 석청과 민유를 바라보더니 다시 정당을 한번 쳐다보았다. [패 선생, 여러분들이 줄곧 나에게 잘 대해준 것은 내가 장락방의 바로 이와 같은 재난을 해소시켜 달라는데 있지 않았소? 진짜 석 방 주가 못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받으리다.] 말이 끝나자 그는 장삼 앞으로 나아가 동패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 다. 뭇 사람들은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장삼은 손을 움추렸다. [잠깐!] 그리고 그는 패해석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협객도에서는 진짜 우두머리에게 동패를 건네주고 동지 팥죽을 먹 자고 청하려는 것이오. 도대체 귀방에서는 어느 분을 방주로 받드시 겠소?] 패해석은 석파천이 자기네들의 간계를 간파한 후에도 장락방을 위해 나서겠다는 말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흉악하고 교활한 무리들이었지만 이때만큼은 고맙다는 정이 새삼 우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 석파천을 향해 절을 했다. [기꺼이 대협을 본방의 방주로 모시겠으며 방주의 호령을 받들어 어 김없이 실천을 하겠습니다.] 이 말만은 퍽이나 진지했다. 석파천은 반례했다. [황송한 말씀이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오. 그리니 혹시 무 슨 잘못을 저질렀을 때라도 탓하지만 않는다면 고맙겠소.] 패해석은 공손히 대답했다. [황송합니다.] 장삼은 껄껄 웃으며 석파천에게 물었다. [형제, 도대체 자네의 성이 무언가?] 석파천은 망연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정말 모른다오.] 그러다가 그는 석청과 민유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들이 여전히 자 기에게 정이 가득 담긴 시선을 던지고 있는지라 다시 입을 열었다. [나……날 역시 석가로 알아주시구료.] 장삼은 호쾌한 어조로 말했다. [좋아! 장락방의 석 방주, 금년 동지날에 협객도로 오셔서 팥죽을 드시도록 하십시오.] 일방의 우두머리에게 하는 말이라 반말을 하지 못했다. 석파천은 쾌히 승낙을 했다. [마땅히 두 분 형님을 찾아뵈야지요. 꼭 가겠소이다.] 장삼은 불만인 듯 말했다. [형제의 무공으로는 동지 팥죽을 먹을 자격이 충분히 있지. 그러나 애석한 것은 이후 장락방이 제멋대로 놀아나는 것일세.] 이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석하다, 애석해!] 장락방의 무리들을 없애지 못하는 것을 애석해 하는지 아니면 장락 방을 위해 목숨을 버리게 된 것을 애석해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패해석 등은 고개를 숙이고 감히 장삼과 이사를 마주 쳐다보지도 못 했다. 장삼과 이사를 서로 마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장삼 은 오른손을 들었다. 두 개의 동패가 천천히 석파천에게로 날아갔다. 쏜살같이 날아가야 할 무게가 있는 동패였건만 그 무엇이 떠받들 듯 천천히 날아가는 것을 보면 장삼의 내력이 얼마나 심후한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 뭇 사람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석파천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민유가 부르짖었다. [받지 말아라!] 석파천은 태연히 말했다. [어머니, 이미 응락한 걸요.] 그리고 두 손을 뻗쳐 한 손에 하나씩을 받았다. 이어 그는 석청에게 다시 말했다. [아버지……아니 석 장주님……께서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 청관을 대신하여 협객도로 가시려고 한 점 제가 본받은 것입니다… …]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진정 의협심이 강한 호걸이야. 역시 우리가 결의형제를 맺은 것은 헛되지 않았네.] 그리고 그는 정색하고 다시 말했다. [한 가지 미리 말해두겠는데 협객도에서는 자네를 다른 사람과 똑같 이 취급하고 특별히 봐 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네.] [그거야 물론이지요.] [여기 또 관동의 범, 풍, 여 세 분 대협을 초청하는 동패가 있는데 세 분은 받겠소? 안받으시겠소?] 범일비는 고삼 낭자를 한 번 쳐다보았다가 대답을 했다. [협객도에서 그렇게 우리들을 높이 사시니 이 범가가 어찌 사양 할 수 있겠소이까?] 그는 같이 온 고삼 낭자까지도 이미 받았는데 자기만 몸을 도사릴 수 없다는 뜻에서 그와 같이 말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사로부터 두 쪽의 동패를 받았다. 그러자 풍량 역시 껄껄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하하하! 동짓날까지는 대략 두 달쯤 남았는데 설사 그때 가서 반드 시 죽는다 하더라도 한두 달 정도는 더 살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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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편
협객행(김용) - 60편 (60/82)
] 그리고 그는 즉시 여정평과 동패를 받았다. 장삼과 이사는 포권의 예를 했다. [여러분들이 응해주신데 대해 먼저 사의를 표하는 바이외다.] 그리고 그들은 석파천을 향해 다시 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