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62편 (62/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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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62편 (6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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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 교활한 녀석이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능소성에 도달하 게 되자마자 한 칼에 너를 죽인다는 것은 오히려 너에게 득을 보여주 는 것인데 이제 천벌이 내려 너를 좀더 고통속에 빠져들게 한 것일게 다.
이것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과응보의 조처가 취해진 것 이라고 할 수 있을걸……) 그러나 그는 석청 부부의 앞에서 잘 됐다는 표정을 지을 수가 없어 서 오히려 민유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던지고는 그 방에서 물러나 오고 말았다.
석청은 아내가 약을 달여서 아들에게 한 모금 한 모금 떠 먹여주는 것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밖에다가 커다란 수레를 준비해 놓고 있소……] 그리고 그는 석중옥이 아닌 석파천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중옥아, 사내대장부라면 굳건해야 한다.
조그만 병으로 인해서 남 의 큰 일에 지장을 주면 안되니 우리 떠나도록 하자꾸나.] 민유는 주저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이 애의 병이 이토록 대단한데 억지로 데리고 길을 떠났다가는 아 무래도……아무래도 병세가 더 나빠질 것 같아요.] 석청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상선벌악 두 사자가 동패를 능소성으로 전달하려고 지금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백 사형은 반드시 때늦지 않게 달려가야 한단 말이오.
만약에 위덕 선생께서 그들과 손을 쓰게 되었을 때에 우리가 좀 도와 주지 않는다면 더욱더 그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 되지 않겠소?] 민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해요.] 그리고 그녀는 즉시 석파천을 도와 옷을 입도록 하고는 그를 부축해 서는 객실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남편의 생각과 석청의 위인됨으로는 결코 아들을 데리고 멀 리 도망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협객도의 상선벌악 두 사자가 능소성으로 동패를 전달하게 된다면 백자재는 성격이 열화와 같고 또 언제나 자만심에 쌓여 살아온 만큼 결코 가볍게 동패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고 틀림없이 장삼과 이사를 상대로 한바탕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때 석청이 때늦지 않게 달려가서는 전력으로 설산파를 도와주게 되어 만약에 불행히도 싸우다 죽게 될 때에는 무림에서 흔히 있는 일이 되겠지만 석씨 집안 의 세 사람이 모두 다 능소성에서 목숨을 버렸다는 점에서 아들의 더 럽혀진 이름마저도 깨끗이 씻겨지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 이 뜻밖에도 승리를 얻게 되고 설산파와 현소장의 힘으로 장삼과 이 사를 물리칠 수 있게 된다면 아들은 그야말로 공을 세워 속죄를 하게 되는 셈이라 백자재로서도 어찌됐든 간에 다시 손을 써서 아들을 죽 이지 못하리라고 내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민유는 장락방의 총타에서 장삼과 이사의 무공을 보았기 때문 에 일단 싸우게 되었을 적에는 아무래도 패할 가능성이 많지 이길 가 능성은 적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피와 살로 만들어진 몸뚱 아리는 무공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어찌됐든 간에 약간 소홀하게 생각한 나머지 실수를 할 때가 있는 것인 만큼 한 가닥의 기회는 언 제나 있는 것이라 볼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매일과 같이 조바심으로 애를 태우며 우울하게 세월을 보내느보다는 차라리 죽기를 다해서 한 바탕 싸움을 치루어 요행이나 바라보자는 것이었다.
그들 부부 두 사람은 서로 마음과 뜻이 통하기 때문에 석청이 일단 아들을 능소성으로 데려가겠다고 말을 하게 되었을 적에 민유는 이미 석청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비록 아들을 사랑하고 가볍게(가엽게로 고쳐 읽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책엔 가볍게로) 여기는 형편이지만 어찌되었간에 명성을 떨쳐온 여협으로서 전후의 사태를 생각해 볼 때 역시 남편의 생각이 가장 훌륭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여지껏 반대를 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백만검은 석청 부부가 아들이 악질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떠 나자고 재촉하자 감탄하는 마음 금할 수 없었다.
횡석진의 그 의원은 진정 먹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석파천이 목이 부어오른 것은 종기라고만 진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자 오히려 석청 부부는 조금도 의심을 받지 않게 되었고 백만검도 자연 아무 것도 알아차리치 못하게 되었다.
석파천과 석중옥은 모습이 비슷한 데다가 석파천이 석중옥의 화려한 옷을 입었으니 그야말로 뛰어난 풍채의 공자로 보여 그 누구도 의심 을 할 수가 없었다.
석파천은 커다란 수레차에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본래 거짓말도 하지 못하고 그런 척하지도 못했다.
길을 가면서 적지 않은 마각을 드러내기는 했으나 석청 부부는 아들 과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던 만큼 그의 행동거지와 습관이 어떻다는 것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석파천이 빈 구석이 많았지만 입을 열고 말을 하지 않자 그들 부부는 눈치가 빠르기로 이름난 사람들이었지만 아무 것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일행은 길을 재촉하게 되었다.
장삼과 이사가 먼저 능소성 에 도달하여 설산파의 사람들이 위급함을 당하게 될까봐 두려워한 것 이다.
호남성(湖南城) 경내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석파천의 목이 부어 오 른 것은 이미 가라앉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수레를 버리고 말에 타게 되었으나 석파천은 여전히 어어 하면서 말을 못했다.
석청은 그를 데리고 수차례에 걸쳐 지나치게 된 고장의 의원을 찾아 가서 병을 진단받아 보았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따라서 석청은 그만 번뇌가 좀더 가중하게 되었고 민유는 좀더 많은 눈물을 뿌려야 했다.
며칠을 달린 결과 서역 경내로 들어서게 되었다.
설산파의 제자들은 이곳의 지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지름 길만 골라 가게 되었다.
장삼과 이사의 발걸음이 빠르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지름길은 모르 고 있으니 필시 그들이 앞지르지 못하리라고 본 것이었다.
그러나 석청 부부는 위덕 선생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만약에 그가 크게 분노를 터뜨리게 돼서 대번에 석중옥을 죽여버리려고 하고 장삼 과 이사가 결코 그와 같이 공교롭게 알맞게 능소성에 도달하지 못하 게 된다면 매우 자기 자신들의 입장이 곤란해지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정녕 너무 일찍 도달해서도 안되는 것이고 너무 늦게 도달 해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부부 두 사람은 몰래 몇 번이나 상의를 해보았으나 괴롭게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오직 하늘에 운명을 맡기는 수밖에 없고 또 자기네들 이 때에 따라 기회를 보아 일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 다.
다시 며칠을 가자 뭇 사람들은 산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이틀을 가게 되었을 때 지세는 더욱더 높아지게 되었다.
이날 오후 뭇 사람들은 커다란 통나무 집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백만검은 집을 지키는 사람에게 최근에 아무도 낯선 사람이 능소성 에 온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제서야 그는 크게 마음을 놓고 그날밤 그 통나무 집에서 묵게 되 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말들을 그 커다란 통나무 집에 남겨두고 걸어서 산 위로 올라갔다.
서쪽으로 갈수록 산세가 가파르기 때문에 말을 탈 수가 없었던 것이 다.
몇 명의 설산파 제자들은 앞장을 서서 걸으며 중첩된 산봉우리들 넘 어야 했다.
한 시진도 올라가지 못해서 그들은 눈이 쌓여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뭇 사람들은 경공신법을 펼쳐 눈길을 걸으며 기어오르기도 했다.
석파천은 부모의 등뒤에서 걸었다.
앞으로 나서지도 않고 더 떨어지 지도 않았다.
석청과 민유는 그의 발걸음이 힘차고 숨소리 또한 길고 고른지라 똑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애의 내력 조예가 대단한가 보구나.
우리 부부 못지 않다……) 그러나 얼마후 백자재를 만나게 된다면 당장 아들의 목이 떨어질 판 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전전긍긍했다.
해질 무렵에 그들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산봉우리가 앞 에 우뚝 버티고 선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봉우리 위에는 수백 칸이나 되는 집들이 세워져 있고 그 집들 밖으 로 하얀 담장이 쳐져 있었다.
백만검은 그 절봉 위의 집들을 가르키며 말했다.
[석 장주, 저곳이 바로 능소성이오.
외진 곳이라 모든 것이 단촐하 고 누추하기만 하다오.] 석청은 찬탄의 말을 했다.
[절정에 턱 버티고 세워져서는 뭇 산봉우리를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 으니 능소라는 글자가 정말 합당하기 그지없소이다.] 그러고 보니 산허리께에 운무가 가물가물 감돌고 있었을 뿐만 아니 라 점차 위로 떠올라 와서 능소성을 희뿌옇게 뒤덮고 있었다.
뭇 사람들이 그 절봉 아래에 이르게 되었을 때 날이 완전히 어두워 졌다.
산기슭에는 두 채의 커다란 석옥이 있었는데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두 채의 석옥은 설산파에서 건립한 것으로 봉우리 위로 올라가는 사 람에게 하룻밤 묵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었다.
이튿날 날이 희뿌옇게 밝아오자마자 뭇 사람들은 다시 출발하여 산 봉우리 위로 올랐다.
봉우리는 멀리서 볼 때도 매우 가파른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와 친히 기어오르고 보니 더욱더 험준했다.
뭇 사람들은 무공을 지니고 있었으나 올라오면서 두 번이나 휴식을 취하고서야 봉우리 허리께의 정자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진시 무렵에야 그들은 능소성 밖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성벽의 높이 가 삼 장이나 되었다.
성벽은 모두 다 허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얼음과 눈으로 이루어 진 담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석청은 다시 한 번 감탄을 터뜨렸다.
[백 상형! 성의 담장 위의 눈이 얼어붙었구료.
쇠보다 더욱더 단단 해져서 외부의 사람이 좀처럼 들어갈 수 없소이다그려.] 백만검은 웃으면서 말했다.
[폐파에서는 이곳에서 성을 세우고 설산파의 창립을 세운 지 이미 백칠십여 년이나 되었으나 외적이 침입해온 적은 없소.
다만 한겨울 철 굶주린 이리떼들이 덤벼들기는 했으나 성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 지요.] 그리고 나서 그는 호성구(護城溝)의 조교(조橋)가 여전히 높다랗게 서 있는 것을 보고 화가 치민 듯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오늘의 당번은 누구인가? 우리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그러자 성벽 위로 한 사람이 고개를 내밀더니 말했다.
[백 사백과 여러 사백부 및 사숙들이 돌아오셨군요.
제가 고하지 요.] 백만검은 호통을 내질렀다.
[현소장의 석 장주 부부께서 왕림하셨다.
빨리 조교를 내려라.] 그 사람은 연신 네, 하는 대답을 하며 머리를 움추렸으나 한참 동안 을 기다려도 조교가 내려지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석청은 성 밖으로 그 얼음으로 뒤덮힌 호성구가 삼 장 정도 넓이로 좀처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대개 성 밖에는 성벽을 따라 파놓은 호성하나 호성구가 있었는데 이 곳의 기후가 너무나 추워서 이미 그 냇물은 얼음이 꽁꽁 얼어 있었 다.
그러나 그 냇물은 매우 깊이 파여져 있었고 또 구덩이의 가장자리가 매끄럽기 이를 데 없는 얼음벽으로 이루어져 사람이나 짐승이 한번 떨어지면 올라오기가 지극히 어려웠다.
경만종과 가만균 등은 잇달아 호통을 내질러 성을 지키는 제자들에 게 빨리 문을 열도록 명령하고 다그쳤다.
백만검은 사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어떤 변고가 일 어나지 않았는가 걱정을 했다.
[뭇사제들 조심들 하게, 어쩌면 협객도의 그 두 사람이 먼저 도착해 있을지도 모르네.] 뭇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검자루를 쥐었 다.
바로 이때 끼륵끼륵하는 소리와 함께 조교가 천천히 내려졌다.
곧이어 성 안에서 한 사람이 달려나왔다.
몸에 백색의 장포를 걸치고 있었고 한쪽 소맷자락이 둥실하니 허리 춤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 한 팔이 없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 사람은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알고보니 석 형과 석 아주머니께서 도달하셨구료.
반갑소이다 반가 워.] 석청은 나타난 사람이 바로 봉만리이고 또 그의 팔이 잘라진 것은 바로 자기의 아들 때문인지라 매우 미안스럽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앞으로 나아가 포권을 했다.
[봉 이제(封二弟), 우리 부부가 못난 자식을 이끌고 백 사백부님과 자네에게 사과를 드리려 왔네.] 그러면서 그는 두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명성을 떨친 이래 윗어른을 대하게 되었을 때 무릎을 꿇었을 뿐이지 자기와 똑같은 항렬의 친구에게 이와 같이 큰절을 해본 적이 없는 그 였다.
이는 봉만리가 너무나 큰 해를 입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행해진 절이 었다.
사실 봉만리의 검술은 백만검에 못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오른팔이 잘려져 나갔으니 이십 년간 연마해온 것이 수 포로 돌아가게 되었고 검술이라는 것은 다시 들먹일 수 없는 처지가 아닌가! 민유는 남편이 꿇어 엎드렸으나 아들이 멍하니 한켠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재빨리 아들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남편곁에 무릎을 꿇게 했다.
석파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석중옥의 사부이니 사부를 만나면 자연 큰절을 올려야겠지.) 그는 혹시나 의심을 받을까봐 바닥에 머리가 꿍꿍 소리가 나도록 조 아렸다.
설산파의 제자들은 길을 오면서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무시했으나 그가 큰절을 올리는 것을 보고 당장 목숨을 잃게 되는 판국이니까 큰 절을 하는 모양이나 목숨을 구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 각했다.
봉만리는 오히려 어쩔 줄을 몰라했다.
[석 형 그리고 석 아주머니, 이거야말로 소제로 하여금 십 년 감수 케 하는 일이외다.] 그러면서 그는 재빨리 무릎을 꿇고 반례했다.
석청 부부와 봉만리가 몸을 일으킨 이후에도 석파천은 여전히 땅바 닥에 꿇어 엎드려 있었다.
봉만리는 그를 한번 쳐다보지도 않고 석청에게 말했다.
[석 형 그리고 아주머니, 과거 황산에서 만나뵈온 지도 이미 십이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구료.
그런데 두 분의 풍채는 여전하니 정말 반 갑소이다.
세제는 이 외딴 곳에 살고 있으나 두 분이 무림에서 의협 의 길을 걷는다는 소문과 위명(威名)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소이다.
정말 기쁘고도 축하할 일이외다.] 석청은 겸손해했다.
[이 못난 형이 자식을 잘못 두었으니 허명을 조금 쌓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제 아우님을 이렇게 만나게 되니 정말 부끄럽게 그 지없구료.] 봉만리는 소리내어 웃었다.
[핫하하하……우리들은 의리에 입각하여 사귄 친구가 아니오이까? 두 분이 이 몸을 어여삐 여기시고 아들까지 맡겼으니 피차간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마음 쓰실 것 없다고 생각하오이다.
멀리 서 오시느라고 수고하셨는데 빨리 성 안으로 들어가 쉬도록 하십시 오.] 석파천은 그의 앞에 꿇어 엎드리고 있었으나 그는 석파천을 전혀 보 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석청과 봉만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성 안으로 들어가자 민유는 아들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봉만리의 그와 같은 태도로 미루어 입으로는 그럴싸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나 마음속으로는 지극히 증오하고 있으며 조금도 아들의 잘못을 용서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걱정이 되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 것이다.
이때 백만검은 성문 가에 서 있는 한 명의 제자를 불러 나직이 물었 다.
[아버님께서는 괜찮으시냐? 내가 나간 이후 성 안에 무슨 사고가 생 겼느냐?] 그 제자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장문 대감께서는……성질이 좀 거칠어졌을 뿐입니다.
사백부님께서 떠나신 이후 달리 변고는 없었습니다.
다만……] 백만검은 얼굴이 굳어져서 물었다.
[다만 무어냐?] 그 제자는 깜짝 놀라 부르르 몸을 떨며 말했다.
[저 닷새 전에 대감님께서 크게 성질을 부리시어 육(陸) 사백부님과 소(蘇) 사백부님을 죽였습니다.] 백만검은 깜짝 놀라 재빨리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 제자는 송구한 듯 허리를 구부렸다.
[제자도 잘 모릅니다.
그저께 대감님께서 연 사숙을 죽이고 또 두 사백부의 한 다리를 잘라내었습니다.] 백만검은 놀라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육, 소, 연, 두 네 분 사형은 모두 본파의 고수들이다.
부친은 평 소 그들을 매우 총애했는데 어째서 갑자기 독수를 쓰게 되었을까?)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는 그 제자를 한켠으로 데리고 가 민유 와 석파천이 저만치 걸어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냐?] 그 제자는 여전히 전전긍긍했다.
[제자는 잘 모릅니다.
능소성 안에는 세 분의 사백부님과 사숙부님 들이 돌아가신 이후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께 밤 장(張) 사숙부와 마(馬) 사숙부가 인사도 없이 떠나고 말았는데 다만 편지 한 장만을 남겨놓았을 뿐입니다.
산을 내려가서 백 사백부님을 찾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백만검을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더듬거리면서 말을 이 었다.
[백 사부님께서 오늘 돌아오셨으니 천만 다행입니다……대감님을 잘 타이르도록 하십시오.] 백만검은 몇 마디 물어보았으나 어떻게 된 노릇인지 알 수가 없었 다.
그리하여 급히 대청 안으로 들어섰다.
봉만리는 이미 석청 부부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백만검은 석청 부부에게 말했다.
[두 분은 잠시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 계십시오.
소제는 안으로 들어 가 가친을 만나본 이후 그 어르신이 직접 손님을 만나뵙도록 하겠소 이다.] 봉만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부님은 갑자기 그저께부터 몸져 누웠소.
아마도 며칠 휴식 해야 만이 손님을 뵈올 수 있을 것이외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르신께서 석 형에 대해서는 매우 애지중지하시는데 여지껏 나오지 않고 계시겠 소이까?] 백만검은 마음이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가 들어가 보고 옴세.] 그리고 그는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거실 문 밖에 서서 기침을 하고 말했다.
[아버지, 제가 돌아왔습니다.] 휘장이 들춰지고 이삼십 세의 아름다운 부인이 걸어나왔다.
바로 백 자재의 첩인 요랑(窈娘)이었다.
요랑은 안색이 초췌해서 말했다.
[어이구! 큰서방님께서 돌아오셨군요.
잘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그 야말로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답니다.
영감님께서는 그저께 밤 갑자기 정신이 흐릿해지고 말았어요.
저는……부처님에게 빌었으 나 아무런 효험이 없군요.
큰서방님께서……] 그러다가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백만검은 의아하여 물었다.
[어째서 아버님이 그토록 크게 화를 내시게 되었소?] 요랑은 울면서 말했다.
[어느 제자가 무슨 실언을 했는지 모르지만 영감님께서는 크게 화를 내시며 몇 사람의 제자들을 잇달아 죽였습니다.
그러고도 치미는 화 를 참지 못해 온몸을 떨며 방 안으로 들어가셨는데 얼굴의 근육을 부 들부들 떨며 입가로 침을 흘리면서 말씀도 제대로 하시지 못했습니 다.
어떤 사람은 중풍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군요……] 그러면서 그녀는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다.
백만검은 중풍이라는 한마디를 듣자 마치 얼음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버님!] 그는 크게 부르짖으며 침실로 들어갔다.
부친은 방 앞에 휘장을 드리운 채 누워 있었다.
방 안에는 옹기로 만들어진 약그릇들이 있었고 약탕관에는 부글부글 약이 끓고 있었다.
백만검은 부르짖었다.
[아버님!] 그리고 나서 그는 휘장을 들추었다.
부친은 안쪽을 향해 누워 있었 는데 몸을 꼼짝도 않고 있었다.
숨마저도 멈추어진 듯 기척이 없었다.
백만검은 깜짝 놀라 재빨리 그의 코에 손을 갖다대어 보았다.
그의 손이 막 그의 코 밑에 이르게 되었을 때 이부자락 속에서 갑자 기 한 물건이 나와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오른손을 꽉 조였다.
바로 가시고 돋혀 있는 강철집게가 아닌가? 백만검은 놀라 부르짖었다.
[아버님, 접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그는 갑자기 가슴팎에 두 손가락을 뻗쳐와 요혈을 짚는 것을 느꼈을 뿐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한편 석청 부부는 대청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봉만리는 맞은편에서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석파천은 부친의 곁 에 서 있었다.
봉만리는 중원무림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 시종 석 중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석청은 능소성의 사람들이 아래 위 할 것 없이 모두 다 커다란 걱정 에 휩싸여 있는 것을 보고 상선벌악의 두 사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설산파의 존망성쇠가 결정되는 고비라 인심이 흉흉해져서 그런가 보 다고 생각했다.
잠시 기다려도 백만검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없어 궁금히 여기고 있 는데 봉만리가 입을 열었다.
[저의 사부님께서 이번에 크게 병을 앓고 계신데 정말 걱정이 되는 군요.
백 사형이 아마도 옆에서 약을 시중들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공이 심후하시고 몸이 항상 건강하셨으며 이십여 년간 기침 한 번 하시지 않았는데 뜻밖에 병을 얻어 심하게 앓으시니 걱정이 됩니다.
아무쪼록 어르신이 빠른 시일내로 일어나시기를 바랄 뿐이지요……] 석청은 정중히 입을 열었다.
[백 사백부님께서는 내공 조예가 천하에서 보기 드물 정도이고 연세 도 그렇게 많지 않으시니 며칠 조리를 하게 되면 약의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니 아우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구료.] 그러나 그는 속으로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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