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사부님께서 병을 앓고 계시니 옥아를 즉시 처치하지 못할것이 다. 하늘이 불쌍히 여기시어 며칠 지체케 되는구나. 그러다가 장삼과 이사가 오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한바탕 싸움을 벌일 것이 아니겠 는가? 그러면 우리 현소장과 설산파는 생사존망을 함께 하게 될 것이 다.) 그때 죽을지 살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다. 봉만리는 사람을 시켜 술좌석을 마련하게 했다. 그리고 석파천에게 도 자리를 내주었다. 봉만리 외에 설산파 네 사람의 제자가 자리를 같이 했다. 경만종, 가만균 등 중원에서 설산파로 갓 돌아온 제자들은 하나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대접을 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나이고 무척 젊었다. 이름 은 육만통(戮萬通)이라고 하는데 매우 입담이 좋은 듯 연신 술을 권 했다. 그리하여 석파천까지도 한 잔을 비우고 또 한 잔의 따라주는 술을 받아야 했다. 민유는 석 잔의 술을 미신 후 입을 열었다. [술기운을 이길 수 없어 이제 밥을 먹어야겠어요.] 육만통은 말했다. [석 부인께서는 잘 모르십니다. 이곳은 높은 곳이라 날씨가 찹니다. 거기다가 일 년 열두 달 운무가 가려 있어 습기가 심하거든요. 두 분 은 내공이 심후하여 한기와 습기를 물리친다 하더라도 이 삼양옥주 (渗陽玉酒)는 몸에 보가 된답니다. 이 술을 마시면 온몸이 따뜻한 것 이 능소성에서는 하루도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니 두 분은 몇 잔 더 들어두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는 석청 부부와 석파천에게 술을 따랐다. 민유는 이 술이 약간 시고 달콤하며 인삼의 냄새가 매우 짙다는 것 을 느끼고 있었다. 삼양옥주라는 말을 듣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매우 깍듯한 인사치레의 말을 하는구나. 우리들의 내공이 심 후하여 한기와 습기가 침입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와 같이 센 약주를 마시지 않는다면 몸에 해로운가보다.) 이윽고 그녀는 다시 두 잔의 술을 더 마시게 되었다. 별안간 아랫배 쪽에서 뜨거운 기운이 확 위로 솟구쳤다. 가슴팍이 불에 타듯 화끈거려 그녀는 재빨리 운기하여 이를 억누르 려고 하면서 억지로 웃었다. [봉 아우님, 이 술은 굉장히 독하네요.] 석청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봉만리에게 호통을 쳤다. [이게 무슨 술이오?] [이것은 삼양옥주라고 하는데 술이 독하긴 하지요. 그러나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흑백쌍검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외다.] 석청은 날카롭게 외쳤다. [자네는……자네는……] 그러다가 그는 몸을 흔들하더니 탁자 위에 엎어졌다. 민유와 석파천 은 재빨리 손을 뻗쳐 석청을 부축하려 했으나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 워지고 눈이 가물가물해졌다. 온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느끼고 그만 두 사람도 석청의 몸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석파천은 흐릿한 상태에서 천천히 깨어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꿈속인가 생각하고 일어날 생각으로 천천히 손을 뻗쳐 보 았다. 그런데 갑자기 손목에 무엇인가 차갑고도 딱딱한 물건이 끼워있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손과 발은 이미 수갑과 쇠고랑으로 채워져 있지 않은 가! 그리고 눈앞이 캄캄하여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일으켜 두 걸음 옮겨놓았다. 쾅, 하고 이마팍이 딱딱한 석벽에 부딪쳤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손을 뻗쳐 만져보니 사방이 석벽인데 자기가 지금 갇혀 있는 곳은 일 장 두레의 석실에 불과했다. 그리고 땅바닥도 울퉁불퉁한 것이 아 마도 커다란 바윗돌인 것 같았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살펴보았다. 오른쪽 모퉁이에 희미한 빛이 아스라히 스며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 자 둘레의 구멍이었다. 고양이 정도면 출입할 수 있 을지 모르지만 강아지도 기어들어갈 수 없는 그런 구멍이었다. 그는 팔을 들어 수갑으로 그 석벽을 쳤다. 사방에서 무겁고도 둔탁 한 소리가 들렸다. 석벽은 매우 두꺼워 좀처럼 훼손시킬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어떻게 하여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삼양옥주인가 하는 것을 마셨는데 아마도 이상했던가 보다. 몽한약 같은 것을 타지 않았다면 석 장주가 술자리에서 쓰러질 리도 없을 것이다. 설산파의 사람들은 석중옥을 죽이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데 석 장주 부부가 대항할까봐 그런 식으로 우리들의 정신을 잃게 만든 것일게다……) 그러나 다시 생각을 돌이켜 보면 그들이 어째서 자기를 죽이지 않았 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마도 백자재 위덕 선생이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자기네들을 며칠 간 감금했다가 그가 병석에서 일어나게 되었을 때 친히 처리하도록 하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위덕 선생이 자기에게 묻게 되었을 때 자기가 개잡종 이며 석중옥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만 하면 아무런 원한이 없는 사 이이니 자기를 놓아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석 장주 부부는 위덕 선생이 놓아주리라고는 볼 수 없었다. 어쩌면 두 사람을 바위로 이루어진 석옥 속에 처넣고 석중옥을 찾아 올 때까지 감금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일이 잘못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석 부인과 같이 얌전하고 의젓한 사람이 햇살도 들지 않는 곳에 감 금되어 있다는 것은 너무나 심한 벌이라 여겨졌다. 어떻게 하든 간에 그녀와 석 장주를 구해야겠다고 작정을 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천천히 백자재와 따져 볼 생각이었다. 한데 사람 을 구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약간 근심이 되었다. (발에는 고랑쇠가 채워지고 손에는 수갑이 채워졌는데 어떻게 나가 서 사람을 구한담? 능소성 안에는 모두가 설산파 사람들인데 또 누가 와서 나를 구해주겠는가?) 그는 두 팔을 나누어서 힘을 주어 쇠사슬을 끊으려고 했다. 그러나 쨍그랑거리는 소리만 연신 들려올 뿐 무쇠로 만들어진 고랑쇠와 수갑 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때였다. 조그만 구멍쪽에서 불빛이 새어들어왔다. 그 누가 등을 들고 가까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구멍 안으로 하나의 뚝배기를 들이미는데 그 뚝배기에는 반쯤 쌀밥 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밥 위에는 소금에 절인 듯한 무우 조각이 있고 한 쌍의 대나 무 젓가락이 밥에 쿡 찔려져 있었다. 석파천은 이제 더 벙어리 노릇을 할 수가 없어 부르짖었다. [이것 보시오! 나는 백 대감에게 말씀드리고 싶소.] 바깥의 사람은 냉소를 흘릴 뿐 등불이 점점 멀어져 갔다. 석옥 구멍 앞에서 떠나가는 것 같았다. 석파천은 밥냄새를 맡게 되자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꼈다. (술자리에서 적지 않은 음식을 먹었는데 어째서 지금 배가 이토록 고플까? 내가 정신을 잃고 있었던 시간이 상당히 길었던가보군.)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뚝배기를 들고 젓가락을 뽑아서는 밥 과 절인 무우를 게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밥을 먹고난 후 그는 뚝배 기를 다시 원 위치에 갖다놓았다. 몇 번 힘을 주어 바둥거려 보았으나 수갑과 발목에 채워진 고랑쇠는 특수한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는지라 내력을 돋우어도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손목과 발목에 찰과상만 입었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문을 더듬어 보았다. 얼마후 그는 석문을 찾게 되었는데 석문과 벽 사이의 틈바구니를 확 인한 후 석문을 어깨로 떠밀어 보았으나 석문도 끄덕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무겁고 튼튼한지 알 수가 있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구나. 그 런데 그들이 석 장주 부부를 괴롭히지 않는지 모르겠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석벽에 등을 기대고 잠을 청했다. 뇌옥 속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꼬박 하루가 지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겨우 밥을 날라온 모양인지 인기척이 있었다. 하나의 손이 그 구멍으로 불쑥 디밀어지더니 뚝배기를 거두어가려고 했다. 갑자기 석파천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 사람이 다시 밥과 찬이 든 뚝배기를 동굴 안으로 디밀 때 벼락같 이 달려들어 쨍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의 손목을 움켜잡았 다. 그의 금라수법은 대단한 데다가 심후한 내력을 쏟게 되자 무림고수 라도 견디지 못할 정도라 그 사람은 돼지 멱따는 듯한 울부짖음을 토 해냈다. 석파천은 오히려 힘을 주어 더욱더 끌어당겨 그의 팔이 구멍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든 후 호통을 내질렀다. [더 고함을 친다면 이 팔을 분질러 버릴테니 알아서 하시오!] 그 사람은 애걸했다. [소리지르지 않을테니 손을 놓으시오.] 석파천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빨리 문을 여시오! 문을 열어 주어야만 손을 놓겠소.] 그 사람을 선뜻 응낙했다. [좋소. 손을 놓으시오. 그러면 내가 문을 열어 드리리다.] [내가 손을 놓으면 당신이 도망을 칠텐데 어떻게 손을 놓을 수 있겠 소.] [당신이 손을 놓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문을 연단 말이오?] 석파천은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손을 붙잡고 있으면 그 사람이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손을 놓아줄 수도 없었다. 이때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손에 채워진 수갑의 열쇠를 디미시오.] [열쇠라니?……그것은 나에게 없소. 소인은 밥을 날라다 주는 심부 름꾼에 불과할 뿐이오.] 석파천은 그 어조로 미루어 진실이라고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움켜잡은 손목에 힘을 바짝 주며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당신의 손목을 먼저 부러뜨리겠소.] 그 사람은 연신 비명을 내질렀다. [어이구 어이구!] 그러다가 그는 생각을 돌렸는지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열쇠를 밖 에서 안을 향해 던졌다. 이 사람은 매우 교활했다. 열쇠를 멀찌감치 던져 석파천으로 하여금 열쇠를 줍기 위해서는 자 기의 손목을 놓지 않으면 안되도록 했다. 석파천은 일시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의 손을 꽉 잡고서는 왼발로 그 열쇠를 긁어 이쪽으로 끌어오려고 했다. 한데 그 사람의 팔을 모조리 구멍안으로 끌여들였으나 왼발의 끝이 열쇠에 닿지 않았다. 아직도 몇 자의 간격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그만 아픔에 부르짖었다. [그만……잘못하면 나의 팔이 끊어지겠소.] 석파천은 애써 다리를 뻗쳤다. 그러나 손에는 물론 발과 발 사이에도 쇠사슬이 연결되어 있어 발끝 이 열쇠에 닿지를 않았다. 그는 자기가 뻗어낸 그 발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재빨리 왼쪽 다리를 구부리고 신발을 벗어 벽쪽을 향해 내던졌 다. 그 신발은 벽에 부딪쳐서 되돌아오게 되었는데 되돌아 오는 그 기세 에 열쇠마저 이끌려오게 되었다. 석파천은 환호성을 지르며 왼손으로 열쇠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오른쪽 손목의 수갑 구멍에 열쇠를 디밀고 가볍게 돌리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수갑이 풀어졌다. 그는 다시 왼쪽의 수갑을 열쇠로 열어서는 오히려 그 사람의 손에다 그 수갑을 채웠다. 그 사람은 놀라 부르짖었다. [이게……무슨 짓이오?] 석파천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이제 문을 열도록 하시오!] 그리고 쇠사슬을 구멍으로 자꾸만 내보냈다. 그 사람은 그래도 여전히 망서렸다. 석파천은 쇠사슬의 끝을 잡고 잡아다녔다. 그리고 다시 그 사람의 팔이 구멍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기운을 너무 쓴 나머지 그 사람의 얼굴이 석벽에 부딪쳐 대뜸 코가 깨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그 사람은 항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쨍그랑거리는 쇠사슬을 끌면서 석문을 열었다. 그러나 쇠사슬의 다른 한쪽이 석파천의 발목에 묶여 있기 때문에 석 실문이 열렸으나 쇠사슬은 조그만 구멍을 통해 두 사람을 묶게 된 까 닭으로 석파천은 여전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는 쇠사슬을 잡아 끌었다가 놓으며 입을 열었다. [발목 고랑쇠의 열쇠를 나에게 주시오.] 그 사람은 울상을 지었다. [나는 정말 없소. 소인은 땅이나 쓸고 밥을 짓고 일꾼에 불과한데 무슨 열쇠가 있다고 준단 말이오?] [좋소. 그렇다면 나간 후에 다시 봅시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 사람의 팔을 다시 동굴 안으로 끌어들이고 손 목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그 사람은 자유의 몸이 되자 급히 달려가 석문을 밀어 열려지지 않 도록 하려고 했다. 석파천은 몸을 번쩍하니 그보다 먼저 석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 사람은 백포에 매우 다부지게 생긴 자로 설산파의 정식 제자가 틀림없었다. 결코 허드렛 일을 하는 일꾼이 아님을 알고 그는 대뜸 그 자의 뒷덜 미를 잡아올리며 호통을 쳤다. [나의 발목 고랑쇠를 풀지 않는다면 당신의 머리통을 저 벽에다 백 번 부딪치도록 하겠소.] 그리고 나서 그는 그 사람의 머리를 석벽에 가볍게 부딪쳤다. 그 사람은 본래 무공이 약하지 않았으나 석파천의 손에 붙잡히게 되 자 바로 독수리에 채인 병아리 격으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부득이 그는 열쇠를 꺼내 석파천의 발목 고랑쇠를 풀어주었다. 석파천은 다시 호통쳐 물었다. [석 장주와 석 부인은 어디에다 가두어 두었소? 빨리 안내하시오.] 그 사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산파에서는 현소장과는 아무런 원한이 없어 석 장주 부부는 이미 보내드렸소.] 그 말에 석파천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시선이 자꾸만 통로 끝쪽에 있는 석문으로 쏠리는 것을 보고 석파천은 석 장주 부부가 바로 그 석실에 갇혀 있을 것이 라고 판단했다. 이어 그는 그의 뒷덜미를 잡고 성큼 성큼 그 석문 앞으로 다가가 외 쳤다. [빨리 문을 여시오.] 그 사람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나는……나는 열쇠가 없소이다.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은 사람이 아 니외다. 한 마리의 사자와 두 마리의 호랑이니 문을 열면 큰일이오.] 석파천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귀를 석문에 갖다댔다. 그러나 안에서는 호랑이나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사람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제 석문에서 나왔으니 빨리 도망이나 치도록 하십시오. 이곳에서 다 지체했다가 남에게 발견된다면 다시 잡히게 될 것이오.] 석파천은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자는 나의 친구도 아닌데 어째서 나에게 관심을 가질까? 처음에 수갑을 풀고 석문을 여는 것도 마다하더니 이제는 나보고 빨리 도망 치라고 하니 틀림없이 무슨 곡절이 있는 모양이다. 혹시 석 장주 부 부가 이곳에 갇혀 있기 때문에 하는 수작이 아닐까?) 이와 같은 생각이 들어 그는 그 사람의 머리통을 다시 석벽에 부딪 치도록 하고 말했다. [도대체 열거요. 열지 않을거요? 나는 사자와 호랑이를 좀 구경해야 겠소.] 그 사람은 놀라 부르짖었다. [안에 갇힌 사람은 호랑이나 사자보다 더욱더 흉악하다오.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사람을 보기만 한다면 즉시 덮쳐들것이오.] 그러나 급히 사람을 구하고 싶은 생각에 그의 쓰잘데 없는 군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냉큼 그 자를 들어올려서는 발목을 잡고 거꾸로 세운 채 흔들어댔 다.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에서 두 개의 열쇠가 떨어졌다. 석파천은 크게 기뻐하며 그 사람을 내던지고 열쇠를 주워 들었다. 그는 석문의 열쇠구멍에 밀어넣어서는 틀었다. 철커덕하는 소리가 나면서 자물통이 열려지게 되었다. 그 사람은 그만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을 쳤다. 석파천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 자가 도망쳐서 연락이라도 하게 된다면 여러 모로 불편한 점이 많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에 그는 덥석 그 자의 목덜미를 잡아 먼저 자기를 감 금했던 그 석실안에 처박았다. 그리고 기다란 발고랑쇠와 수갑마저 던져놓고는 석문을 닫고서 쇠를 채웠다. 그런 연후에 그는 통로 끝쪽의 석문 앞에 이르러 고개를 내밀었다. [석 장주, 석 부인, 이곳에 계십니까?] 두어 번 불렀으나 석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석파천은 즉시 문을 열었다. 안쪽에 문과 일 장 쯤 되는 곳에 또 하 나의 석문이 있었다. (아마도 두 개의 열쇠가 있는 것으로 보아 두 곳에 문이 있나보구 나.) 그리하여 그는 다른 열쇠로 두번째 석문을 열었다. 그는 석문을 몇 치 정도 열며 급히 불렀다. [석 장주……] 그런데 그 석실안에서 대뜸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이 후레자식! 내 너희들을 천갈래 만갈래 찢어죽이고 말겠다. 결코 너희들로 하여금 곱게 죽도록 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쇠사슬이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곧장 울려퍼졌다. 그 욕지거리는 매우 둔탁했고 또 목이 쉬어 있었는데 결코 강남지방 출신인 석청의 맑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석파천은 석청 부부가 아니더라도 설산파에게 갇힌 사람이라면 구해 야겠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당신은 욕지거리를 할 필요가 없소. 내가 당신을 구해내겠소.] 그러나 그 사람은 계속해서 욕지거리를 했다. [네까짓 것이 무어냐! 감히 이곳에 와서 이 늙은이를 속이려고? 나 는……너의 개 모가지 같은 목을 비틀어 놓고 말겠다!……] 석파천은 빙그레 웃었다. (이 사람은 성질이 매우 급하군. 햇살이 비추지 않는 석실 속에 갇 혀 있으니 성질을 부릴만도 하겠다.) 그리하여 그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당신도 수갑과 고랑쇠를 차고 있소?] 그 말을 하게 되었을 때 어둠속에서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것 이 자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석파천은 재빨리 왼쪽으로 피했다. 일격을 피하기는 했으나 미처 자세를 가다듬기 전에 그 누가 등심에 있는 요혈을 움켜잡았다. 곧이어 큼직한 손이 그의 목을 잡더니 힘주어 조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힘은 매우 대단해서 석파천은 대뜸 숨쉬는 것마저 힘드는 것을 느꼈다. 귀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잇달아 그 사람의 후레자식이라 고 욕지거리하는 소리가 연신 들려오고 있었다. 석파천은 호의에서 사람을 구해주려고 했는데 뜻밖에 해를 입게 된 형편이라 어이가 없었다. 더구나 이 석실 안에서 그토록 무서운 고수를 대하게 되었으니 당장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죽었구나!) 어찌할 수 없이 그는 목에다 진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상대방이 조여오는 힘과 맞섰다. 목의 근육은 부드러워 팔의 근육과 비교할 수가 없었으나 그의 내력 이 웅후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에 힘을 주자 그 사람의 팔이 몇 푼 정도 풀어지게 되었다. 그는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사람의 팔이 다시 조여오게 되었을 때 석파천은 오른손을 위로 들어올려 그 자를 밀쳐버리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당신을 구해내려고 하는데 어째서 나에게 손을 쓰는 것이오?] 그 사람은 어, 하더니 매우 놀랍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 못난 녀석! 너는 누구지?] 석파천은 말을 더듬거렸다. [나는……나는……] 일시 자기가 개잡종이라고 불려졌던 사실을 인정해야 할지 아니면 석중옥으로 자칭을 해야 할지 결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람은 노해 부르짖었다. [너는 물론 너겠지. 너에겐 이름도 없단 말이냐?] 석파천은 대답했다. [나는 먼저 당신을 구해내겠소. 그리고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그 사람은 냉소를 흘렸다. [흐흐흐. 네가 나를 구해? 세상 사람의 배꼽이 모조리 빠져 나가겠 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너의 그 고양이 발톱만한 재간으로 나를 구 하겠다는 것이냐?] 이때 두 개의 석문이 반쯤 열어젖혀 있었기 때문에 빛이 스며들어와 주위를 약간 밝혀주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그 사람은 하얀 구레나룻에 체구가 우람한 노인이 아닌 가! 마치 그 조그만 석실에서는 몸을 똑바로 세울 수 없다는 듯 등을 약 간 구부리고 있었는데 두 눈에서는 맹수와 같은 안광이 번쩍번쩍 빛 나고 있었다. 정말 위맹하기 이를 데 없이 생긴 노인이었다. 석파천은 노인이 자기의 얼굴을 자꾸만 똑바로 쳐다보자 그만 간이 조마조마해졌다. (조금전 설산파 제자가 사자와 호랑이를 가두었다고 했는데 이 사람 의 모양은 정말 한 마리의 맹수와 비슷하구나.)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담담히 한 마디를 했다. [내가 열쇠를 찾아올테니 당신은 스스로 발목의 고랑쇠와 수갑을 풀 도록 하시오.] 그 사람은 노해 부르짖었다. [누가 너보고 아첨을 하라고 하더냐? 나는 이곳에 남아서 조용히 수 양을 쌓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 사람 가운데 그 누가 있어 나를 이곳에 가둘 수 있겠느냐……] 그리고 그는 매우 의젓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네 녀석은 눈을 뜨고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흐흐흐…… 오늘 이 할아버지께선 기분이 매우 좋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한마디에 네 녀석을 열두 토막을 내고도 모자랐을 것 이다.] 이어 그는 두 손을 마구 흔들었다. 쇠사슬이 쨍그랑거리는 가운데 그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이 할아버지는 부화가 나게 된다면 이 쇠사슬을 대번에 끊어버릴 수 있다. 이까짓 발목 고랑쇠와 수갑은 나의 눈에 두부와 다름없다.] 석파천은 믿어지지 않았다. (이 사람의 말을 하는 표정은 정말 미치광이와 비슷하구나. 자기를 구해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 내가 억지로 그를 구하려 든다면 오히 려 나를 죽이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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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편
협객행(김용) - 64편 (64/82)
이 사람은 무공이 너무 고강하여 싸워도 이길 수 없으니 석 장주와 석 부인을 먼저 구해야겠다.) 이와 같은 생각에 그는 간단히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만 가보겠소.] 그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