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64편 (64/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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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64편 (6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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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무공이 너무 고강하여 싸워도 이길 수 없으니 석 장주와 석 부인을 먼저 구해야겠다.) 이와 같은 생각에 그는 간단히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만 가보겠소.] 그 사람은 노해 부르짖었다.
[빨리 꺼져! 이 할아버지께서는 천하를 종횡했지만 아직 한번도 적 수다운 적수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네 녀석이 나를 구해? 정말 터무니 없는 큰소리를 치다니.
황당하구나, 황당해.
정말 황당해… …] 그리고는 또 무어라고 빈정댔다.
석파천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두 곳의 문을 닫고는 통로로 걸어나왔다.
한쪽 모 퉁이를 돌자 다시 십여 장쯤 나아가서야 통로가 끝이 났다.
좌우 양쪽에 각기 문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그는 왼쪽의 문을 열었다.
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다.
오른쪽 문을 열었을 때 그 문은 소리도 없이 열렸다.
문안으로 들어가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왼쪽에서 무기와 무기가 창 창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였다.
석파천은 석 장주와 석 부인이 싸우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소 리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싸우는 소리는 바로 왼쪽에서 들려왔는데 일시 문을 찾을 수가 없었 다.
그는 석청 부부가 염려되어 마음이 초조했다.
왼쪽의 판자벽이 두껍지 않은 것을 보고 어깨로 힘껏 부딪쳐 보았 다.
판자벽이 즉시 부서져 나가면서 무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일었다.
그 안은 조그마한 대청인데 네 명의 백의 사나이가 각기 장검을 휘 두르며 두 사람을 공격하고 있었다.
석파천은 그 두 사람을 발견하자 자기도 모르게 크게 부르짖었다.
[사부님 그리고 수아!] 두 사람은 바로 사 노파와 수아였다.
사 노파는 손에 칼을 들고 수아는 장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두 사람 은 머리가 산산히 흩어져 있었는데 몸에 각기 몇 곳의 상처를 입어 옷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매우 형세가 위급한 상태인데 갑자기 석파천이 부르는 소리를 듣기 는 들었으나 매서운 공격을 받고 있어 미처 고개를 돌릴 여유가 없었 다.
더욱이 석파천이 나타남으로써 네 명의 사내는 더욱더 맹렬한 공세 를 퍼부었다.
헌데 바로 이때 수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어깻죽지에 일 검을 찔린 것이다.
석파천은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달려들어 수아를 공격하고 있던 중 년인의 등을 움켜잡으려 들었다.
그 사람은 비스듬히 몸을 날려 피하면서 일 검을 찔러왔다.
석파천은 왼손으로 일 장을 후려쳐 장력으로 그의 장검을 밀어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다른 한 노인을 공격해 갔다, 노인은 어느덧 공세를 펼쳐 석파천의 아랫배를 찔러오고 있었다.
검 초는 신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행히 석파천은 사 노파로부터 설산파의 검법이 어떻다고 가르침을 받은 터라 노인이 펼치는 일 초가 바로 영상쌍매(嶺上雙梅)라는 것을 알았다.
영상쌍매는 일 초이기는 하나 무궁한 변화를 지니고 있었으며 두 번 내찌르는 초식이었다.
일 검을 찌르고 난 이후에 곧이어 일검을 내찌 르는 것이었다.
석파천은 즉시 배를 움추리면서 제일 검을 피했다.
동시에 왼손을 내려뜨리며 중지를 구부렸다가 일지의 지풍을 날렸 다.
노인의 다시 내찌르는 장검이 앞으로 뻗치게 되었는데 그 광경은 자 기의 검신(劍伸)을 얻어맞겠다고 내미는 꼴이 되고 그만 석파천의 지 풍에 검을 얻어맞고 있었다.
창, 하는 소리와 함께 검날은 두 동강이가 나고 말았다.
노인은 그 충격에 반신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고 반 토막의 검도 들 고 있지 못했다.
검을 떨어뜨리면서 재빨리 몸을 날려서는 앞으로 피 했는데 놀람에 안색이 크게 변해 있었다.
석파천은 왼손을 뻗쳐 수아를 공격하는 한 사람의 뒷허리께를 덥석 움켜잡았다.
그리고 성큼 들어올려 다른 한 사람의 장검쪽으로 그 잡은 사람을 휘둘렀다.
장검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은 깜짝 놀라 급히 검을 움추렸다.
석파천은 그 기세를 빌어 일 장을 뻗쳐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일 장은 정통으로 그 사람의 가슴팍을 후려치게 되었다.
그 사람은 휘청거리며 잇달아 세 걸음을 물러서더니 몸을 흔들거리 다가 끝내 털썩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석파천은 손에 들려 있는 사내를 네번째 사내에게 내던졌다.
그 던져지는 기세가 너무나 세차 사 노파와 한창 싸우고 있었던터라 그 사람은 미처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날아드는 그 사람과 그만 쾅, 하니 부딪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똑같이 입에서 선혈을 토하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네 사람의 백의 사내들은 순식간에 석파천에게 참패를 당하고 만 것 이다.
그들 가운데 노인만이 상처를 입지 않았다.
노인은 석파천의 기세가 대단한 것을 보고 간담이 찢어질 듯이 놀라서는 말을 더듬거렸다.
[자네는……자네는……]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몸을 날려 문을 박차고 달려나가려고 했다.
사 노파는 꽥 고함을 쳤다.
[놓치지 말아라!] 석파천은 왼발을 들어 쓸어찼다.
정통으로 노인의 하반신을 후려차 게 되고 노인의 두 무릎 관절이 탈골되면서 그 노인은 땅바닥에 나뒹 굴어졌다.
사 노파는 웃으면서 말했다.
[훌륭한 제자이군! 역시 우리 금오파의 제 일대 큰 제자답구나.] 수아는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어깻죽지의 상처를 두 손으로 누르고 있었는데 석파천을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에는 하염없이 기쁜 빛이 서려 있었다.
석파천은 그제서야 인사의 말을 했다.
[사부님 그리고 수아, 이곳에서 만나뵙게 되니 고맙군요.] 사 노파는 급히 수아의 상처를 싸매어 주었다.
다행히 두 사람의 검 상은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었다.
[자연도에서 두 분을 찾지 못해 얼마나 염려했는지 모릅니다.
이렇 게 만나뵙게 되니 정말 잘 되었어요……이후에는 헤어지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수아의 창백한 얼굴이 갑자기 붉게 물들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 를 숙였다.
석파천의 성격이 순박해서 말솜씨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 몇 마디의 말은 바로 폐부에서 우러나온 말임을 잘 알 수 있었다.
할머니 앞이라 좀 겸연쩍기는 했으나 마음속으로는 흐뭇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 노파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헤헤헤……자네가 큰 공을 세운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전혀 가능성 이 없지는 않다.
이 사 노파가 친히 약속한 것으로 해두마.] 수아는 고개를 푹 숙였고 귀밑까지 발그레해졌다.
석파천은 사 노파가 아직도 혼인을 허락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 고 물었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을 약속하신다는 겁니까?] 사 노파는 웃으면서 말했다.
[음, 나는 이 손녀를 너의 마누라로 삼아주겠다는 말이다.
왜 싫으 냐?] 석파천은 놀랍고도 기뻐서 말을 더듬거렸다.
[물론……저는 기쁘지요.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사 노파는 슬쩍 말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자네는 먼저 큰 공을 세워야 한다.
지금 설산파에 조그만 변고가 생겼거든! 한 사람을 구해야 해!]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참 그렇군요.
저도 석 장주와 석 부인을 구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우리 빨리 찾아보기로 하지요.] 그는 석청과 민유가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자 그만 마음 이 초조해졌다.
[석청 부부도 능소성으로 왔단 말이냐? 우리 설산파의 내란이 평정 되면 석청 부부의 일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수아에게 명했다.
[수아, 먼저 저 네 사람을 처치해 버려라!] 수아는 장검을 쳐들었다.
그러나 노인과 벽에 기대어 있는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게 되었을 때 그 눈동자에 애걸의 빛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그만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지금 조모의 혼약을 받은터라 무척 기쁨에 넘쳐 있었다.
따 라서 사람을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할머니, 이 몇 사람들은 주모자가 아니니 잠시 죄를 덮어두었다가 모든 사실을 밝혀내 이후 처리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사 노파는 코웃음을 쳤다.
[흥! 그래도 좋겠지.
그럼 빨리 가자꾸나.
큰일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녀는 앞장 서서 달려나갔다.
수아와 석파천도 뒤를 따랐 다.
사 노파는 마당을 가로지르고 집들 옆을 지나가는데 매우 빠르게 걸 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일단 사람과 부닥치려고 했을 때는 언제나 문뒤 혹은 집 모 퉁이에 숨어서 피하곤 하는데 각처의 집들이나 문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석파천과 수아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면서 나직이 물었다.
[사부님은 나에게 무슨 큰 공로를 세우라고 하는 것이오? 그리고 그 누구를 구하라고 하는 것이지?] 수아가 정히 대답을 하려고 했을 때에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맞은편에 대여섯 사람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사 노파는 재빨리 기둥 뒤로 몸을 숨겼고 수아는 석파천의 소맷자락 을 잡고서는 문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걸음을 옮겨놓고 있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 었는데 한 사람이 매우 걱정된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두들 합심협력해서 늙은 미치광이를 가두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 숨을 내쉬기는 했지만 이 며칠 동안 나는 정말 밥도 제대로 먹지를 못한다네.
잠시 동안 눈이라도 붙일라치면 그만 악몽을 꾸어서는 깜 짝 놀라 깨어나곤 하지.] 다른 한 사람이 그 말을 받았다.
[늙은 미치광이를 죽여버리지 않는다면 끝내는 커다란 화근이 될 것 일세.
제 사백부께서는 줄곧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번 일은 아무래도 잘못될 것 같네.]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거친 음성으로 그 말을 받았다.
[아예 내친 김에 우리들은 제 사백부마저 함께 해치우는 것이 나을 것 같네.] 한 사람이 나직이 호통을 내질렀다.
[쉿, 조용히들 하게! 어째서 그와 같은 말을 그렇게 떠들어대는가? 만약에 제 사백부의 문하제자들이 듣게 된다면 우리들은 그를 해치우 기도 전에 우리들의 머리통이 아무래도 이사를 가게 될 것이네.] 그 거칠고 음성이 굵직한 사람은 속으로 승복할 수 없다는 듯 말했 다.
[우리가 제 사백부의 문하제자들과 한바탕 겨룬다고 해서 반드시 진 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매우 작아져 있었다.
이 사람들은 점차 저쪽 모퉁이로 돌아가게 되었고 석파천과 수아는 문뒤쪽의 비좁은 곳에 몸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수아가 미미하게 떨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석파천은 나직이 물었다.
[수아, 당신은 두렵소?] 수아는 대답했다.
[나는……정말 두려워요.
그들은 사람이 많아서 우리들이 아무래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아요.] 사 노파가 기둥 뒤에서 번쩍 몸을 날려 나오더니 나직이 말했다.
[빨리 가자!] 그리고 몸을 구부리고서는 앞으로 잽싸게 나갔다.
석파천과 수아는 그녀의 뒤를따라 한 마당을 가로지르고 기다란 복 도를 돌아서 한 채의 커다란 화원에 이르게 되었다.
화원에는 곳곳에 눈이 쌓여 있었는데 아란석(鵝卵石)을 깐 소로 길 이 한 채의 난청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사 노파는 몸을 훌쩍 날려서는 한 그루의 나무 뒤로 몸을 숨기더니 땅바닥에서 한 움큼의 눈덩이를 긁어모아 난청 밖에다가 슬쩍 던졌 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눈덩이가 땅바닥에 떨어지게 되자 난청의 좌 우 양쪽에서 각기 한 사람씩 검을 들고 달려나와 살폈다.
사 노파는 꼼짝하지 않고 그들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 다가 잽싸게 달려나가더니 손에 들고 있던 칼을 휙휙 두 번 휘둘렀 다.
그 칼부림은 기이하도록 빨라 그들 두 사람은 목에 칼을 맞고 멱이 잘라져서는 신음소리 한 번 내뱉지 못하고 즉시 절명하고 말았다.
석파천은 처음으로 사 노파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녀의 손씀씀이가 이를 데 없이 매섭고 악랄한 것을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한 수의 도법이 바로 사 노파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 있으며 적염폭장(赤염暴長)이라는 일 초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물 론 그도 펼칠 줄을 알았지만 한번도 그 일 초로 그토록 깨끗하게 힘 들이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터이 라 그만 가슴이 두근두근 뛰노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가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키게 되었을 때에 사 노파는 어 느덧 두 구의 시체를 가산(假山) 뒤쪽에다가 끌어다 옮겨놓고는 기척 도 없이 다시 난청 밖으로 다가가서는 장창(長창)에 귀를 갖다대고서 는 대청 안의 동정을 엿듣는 것이었다.
석파천과 수아 역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난청 곁으로 다가갔다.
그 러자 난청 안에서는 두 사람이 격렬히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 소리는 그렇게 우렁찬 것이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어조는 매우 분노 에 차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때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호랑이를 잡기는 쉬워도 놓아주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이 속담 에 대해서 자네도 들어본 바가 있을 것이네.
이번 일은 모든 사람들 이 목숨을 떼어붙이고 이미 저지른 것이 아닌가.
또 다른 속담에도 아량이 좁으면 군자가 되지 못하고 마음이 독하지 못하면 사내대장부 가 되지 못한다고 했네.
자네가 그와 같이 우물쭈물한다는 것은 그 늙은 미치광이에게 도망쳐 나올 기회를 주는 것이고 그가 도망쳐 나 오게 되었을 때에 우리들은 그야말로 죽어 뼈를 묻힐 곳이 없게 될 것이네.] 석파천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자꾸만 늙은 미치광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혹시 바로 그 석옥에 갇힌 노인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 사람은 정말 이상했 다.
내가 그를 구해주려고 하더라도 그는 마다한 것을 보면 정말 미 치광인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그 노인은 무공이 매우 무서워서 여 러 사람들이 그를 이토록 두려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것 같구나.) 이때 다른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늙은 미치광이는 이미 짐승을 가두는 우리에 가두었으니 하늘로 통 하는 재간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도망쳐 나오지는 못할 것이네.
이제 우리가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아주 쉬운 노릇이지.
그에게 밥을 갖다주지 않고 여드레나 열흘을 굶기게 된다면 굶어죽지 않겠는 가?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으려면 아예 나쁜 짓을 하지 말 라는 말이 있네.
강호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말이 두렵지 않을 수 없 으며 그와 같이 하극상의 삼강오륜에 역행하는 죄를 자네 요(寥) 사 제는 개의치 않는 모양이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야말로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냐 하는 문제가 있게 되네.
따라서 설산파는 어쨌든 간에 그래도 괴멸시킬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요 사제라고 불리운 사람은 냉소를 했다.
[사형이 하극상의 죄를 책임지기가 두려웠다면 애시당초 또 어째서 앞장서서 그 일을 했소? 지금은 이미 일이 저질러진 형편인데 어떻게 그 저질러진 일을 주워담겠다고 하는 것이오? 세상에 그런 수월한 일 이 있겠소? 제(齊) 사형, 제 사형의 의도를 이 소제가 모르는 줄 아 시오? 모두들 솔직히 탁 털어놓고 이야기할 때 당신은 위군자(僞君 子)로 행세하고 가짜 도학을 주장하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누가 넘어 갈 줄 아시오?] 그 제씨라고 불리운 사람은 그 말을 받았다.
[나에게 또 무슨 의도가 있다는 것인가? 요 사제의 말 속에는 정말 가시가 묻혀 있고 뼈다귀가 너무나 많은 것 같군.] 그 요씨 성의 사람은 그 말을 반박했다.
[뭐가 가시가 있고 뼈다귀가 많다는 것이오? 제 사형, 당신은 그저 좋은 사람인 척하면서 이 역모대죄(逆謀大罪)를 나에게 다 덮어씌우 고 한 대의 화살에 두 마리의 독수리를 꿰듯이 자신이 편안하고도 틀 림없이 대위(大位)에 앉으려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거기까지 말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그 제씨 성을 가진 사람 역시 반박하고 나왔다.
[터무니 없는 소리를 지껄이니 정말 사람 웃기는군.
나에게 무슨 자 격이 있어 대위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인가? 계열대로 말하더라도 위로 는 성(成) 사형이 계시니 내 차례가 되는 것은 아닐세.] 그러자 다른 한 명의 늙수그레한 음성이 불쑥 끼어들었다.
[자네들은 자네들끼리 다투도록 하고 나를 끌어넣지는 말게나.] 요씨 성을 가진 그 사람은 그 말에 즉시 누그러진 어조로 입을 열었 다.
[성 사형, 성 사형은 얌전한 사람이니까 제 사형은 그저 성 사형을 방패막이나 화포바지로 삼으려는 것이오.
성 사형은 꼭두각시가 되고 서도 여전히 까맣게 모르고 있지 않도록 똑똑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 외다.] 석파천은 난청 안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로 미루어 사람의 수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손가락에 다가 침 을 묻혀서는 창호지를 촉촉하게 적셨다가는 가볍게 찔러 구멍을 내어 서는 눈을 그 구멍에다가 갖다대고는 안을 살펴보았다.
난청 안에 앉아 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 등 모두 이삼백 명이나 되 었는데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으며 늙은이도 있었고 젊은이도 있 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몸에는 백포(白袍)를 걸치고 있는 것이 모두 다 설산파의 제자들 옷차림이었다.
대청 위 바깥쪽을 향해 다섯 개의 태사의가 놓여 있었으나 지금은 가운데의 태사의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세 개의 태사의에 앉아 있는 사람이 서로 논쟁을 벌이 고 있었는데 그들의 호칭으로 미루어 왼쪽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성 씨와 요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른쪽의 태사의에 앉아있는 한 사람이 제씨였으며 오른쪽의 또 한 사람은 청수한 얼굴이었으나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서 매우 못나 보였다.
이때 요씨라는 사람이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양(梁) 사제, 별로 말이 없는데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이야기를 해보게.] 양씨라고 불리운 사내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가로저을 뿐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제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무말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찬성할 수 없는가보군.] 요가라는 사내가 부르짖었다.
[당신은 양 사제의 뱃속에 든 회충도 아닌데 찬성하지 않는 것을 어 떻게 알아? 우리 네 사람이 함께 힘을 합해 한 것인데 이제와서 발을 뺀다고 누가 알아줄 줄 알아?] 제가는 싸늘히 말했다.
[모두들 죽음이 두려워서 한 짓이거늘 어떻게 알아주기를 바라겠는 가? 이거야말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저지른 일이지.] 요가라는 사내는 앞쪽에 있는 무리들 쪽을 향해 외쳐 물었다.
[만리,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람들 틈에서 봉만리가 나섰다.
그는 허리를 굽혀보이고 입을 열었다.
[제자가무능하여 이 일을 해결짓지 못해 이와 같은 참변이 일어난 것이니 죽을 죄를 지은 것입니다……] 이어 그는 음성을 높여 다시 말했다.
[거기다가 시역을 하다니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는 제 사숙의 방법에 찬동합니다.
이제는 다시 더 독수를 쓸 수 없 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중원에서 돌아온 장문(長文)제자들은 어떻게 처리한단 말 인가?] [사숙, 저의 의견을 물으시니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우선은 그들을 감금해 두었다가 나중에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흐흐흐……방법을 천천히 강구하라구? 내가 너희들 생각을 모를 줄 알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들 장문 제자들은 수가 많고 무공 또한 고강하여 장문자리를 차지하려고 별지(別支)인 우리들에게 죄목을 뒤집어 씌워서 깨끗이 죽여없애면 태평할 것이고 또 자네들 마음도 편안해질 것이라 자기들 좋을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요가는 싸늘히 코웃음치더니 음성을 높여 다시 부르짖었다.
[무릇 장문 제자라면 똑같이 화근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지의 제자들은 내친 김에 일제히 손을 써서 장문 제자들을 모조리 없애도 록 하세.] 삽시간에 그는 장검을 뽑아들었다.
삽시간에 대청 안의 사람들은 두 패로 갈라졌다.
봉만리 주위에 이삼십 명이 모여들어 장검을 뽑아들었고 다른 육칠 십 명은 각기 장검을 뽑아들고 봉만리 등 이삼십 명을 에워쌌다.
석파천은 봉 대협이 중과부적인 모양이니 자기가 나서서 도와야 되 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때 봉만리는 소리 높여 외쳤다.
[성 사숙, 제 사숙 그리고 양 사숙께서는 요 사숙이 날뛰도록 내버 려둘 참입니까? 제 사지의 제자인 그들이 장문 제자들을 죽이고 난 후 곧 제 이지, 제 삼지, 제 오지 제자들 차례가 될 것입니다.] 요가가 외쳤다.
[뭣들 하느냐? 손을 써라!] 말이 끌나자마자 그는 달려나와 봉만리의 가슴께를 노리고 찔러 왔 다.
봉만리는 왼손으로 검을 뽑아 막았다.
이때 창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고 곧 이어서 쫙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봉만리의 오른쪽 소맷자락이 길게 잘려져 나간 것이었 다.
봉만리는 백만검과 함께 명성을 날릴 정도로 본래는 설산파의 제이 대 제자들 가운데 첫번째나 두번째로 꼽히는 인물이었으며 검술의 정 묘함은 성, 제, 요, 양 네 사숙보다 뛰어난 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오른팔을 잘려나간 몸이었기 때문에 왼손으로 장 검을 휘두르자니 자연히 불편한 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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