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는 먼저 성자학의 팔부 터 잘라내려고 들었다. 성자학은 가만히 앉아서 팔을 잘리고 있을 수 없는지라 재빨리 검을 들어 막았다. 공수를 겸한 일 초로 자기도 모르게 설산검법의 절초를 펼쳐내게 된 것이다. 장삼은 그제서야 진정으로 찬사를 보냈다. [이거야말로 진짜 검초 같군.] 석파천은 이때 자기가 내력을 돋우게 된다면 장삼과 이사가 알아볼 것이니 석중옥으로 변장한 자기는 설산검법을 펼쳐야겠다고 작정했 다. 그리하여 그는 비스듬히 칼을 휘둘러 찔러갔다. 바로 설산검법 가운 데 암향소영(暗香疏影)이라는 일 초였다. 성자학은 그의 초식이 평범한지라 별로 꺼리지 않고 몇 초를 상대했 으며 다만 자기의 요혈만 지켰다. 그러다가 석파천의 칼을 유도하여 자기의 다리를 찌르도록 하고 자 기는 일부러 막아내지 못한 듯 아이쿠, 하는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석파천의 칼은 그의 다리에 상처를 내게 되었는데 그는 즉 시 장검을 던지고 처연히 장탄식을 터뜨렸다. [영웅은 젊은이들 가운데서 나온다고 하더니 늙은것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군.] 양자진은 검을 휘둘러 석파천의 어깻죽지를 비스듬히 내려치려고 하 면서 호통을 내질렀다. [너 이 녀석은 무법천지로구나! 사숙조까지도 감히 상해를 입히려고 하다니?] 그는 석파천이 펼치는 검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몇 초가 되지 못해서 그를 유도해서는 황사망망(黃沙 莽莽)이라는 일초를 펼쳐서 자기의 왼쪽 팔을 가볍게 스치도록 만들 었다. 그리고 그 자신은 대뜸 뒤로 세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나다가 왼쪽 무릎을 꿇면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야단났구나 야단났어! 이 한쪽 팔을 하마터면 저 녀석에게 잘릴 뻔 하지 않았는가?] 이어서 제자면과 요자려가 쌍쌍이 석파천을 상대로 싸우게 되었는데 각기 교묘한 초식을 펼쳐서는 석파천의 칼날이 자기의 몸에 살가죽을 살짝 찍어놓는 상처를 입히도록 만들고는 모두들 졌음을 시인하고 뒤 로 물러섰다. 그리고 한 사람은 고개를 내저으며 침울히 처량한 얼굴을 지어보였 고 한 사람은 펄쩍펄쩍 뛰면서 욕지거리를 해대는 것이었다. 사 노파는 일단 싸움이 끝나자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자네들은 이 아이에게 졌으니 기꺼이 이 애를 설산 장문인으로 모 신다는 데 이의가 없으시겠지?] 성자학 등은 석파천이 협객도로 가서 죽게 된다면 장문직은 자연 자 기네들에게 굴러들어온다는 계산에 성자학은 나서서 반대하지 않는다 고 찬동을 표시했다. [두 분 사자 선생께서 우리들이 각기 무공으로 장문 자리를 결정하 도록 했으니 나이가 많지만 재간이 뒤떨어져서 어린 사람을 받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제, 요, 양. 세 사람도 덩달아 그렇다고 인정했다. 사 노파는 다시 다그치듯 물었다. [그렇다면 네 사람 모두 승복한다는 뜻이오?] 네 사람은 일제히 대답했다. [이의 없습니다. 승복하고 말구요.]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네 사람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두 명의 악인이 떠난 후 능소성은 여전히 우리의 천하가 아니겠는 가? 그때 일개의 할망구와 애숭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사 노파는 큰소리로 외쳐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들은 신임 장문에게 절하여 예를 올리지 않 소?] 이와 같이 외치는 그녀는 속으로 한없이 좋아했다. 그녀가 길러낸 제자이고 금오파의 제일 대 제자가 설산파의 장문인 이 되었으니 그녀에게는 그럴 수 없이 흐뭇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한데 그녀는 금오파의 대제자요 설산파의 신임 장문인이 됨으로써 석파천의 어린 목숨이 풍전등화처럼 위태하게 되었다는 사실에는 미 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별안간 밖에서 날카로운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설산파의 신임 장문인이란 말이오?] 그리고 쇠사슬이 쨍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백만검을 선두로 한 떼 의 사람들이 쇠사슬을 두른 채 들이닥쳤다. 백만검을 선두로 경만종, 가만균, 왕만인, 호연만선, 문만부, 화만 자 등 이번에 중원에서 돌아온 장문제자들이었다. 그러나 백만검은 들어서는 즉시 사 노파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부르 짖었다. [어머니 돌아오셨군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어조에는 놀람과 기쁨으로 얽혀 있었다. 석파천은 봉만리가 사 노파를 사모님이리고 부를 때 이미 백자재의 부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백만검이 다시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자 의심할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제가 있었다. '사부님이 장문인의 부인이라면 어째서 달리 문파를 세워 금오파라 고 일컫고 금오파의 무공이 설산파의 무공을 압도한다고 주장하는 것 일까?' 이때 수아가 백만검 앞으로 달려나가 불렀다. [아버님!] 사 노파가 백만검의 어머니이니 수아는 백만검의 딸이 되는 것은 자 명한 일이지만 그녀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소리에 석파천은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만검은 크게 기뻐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수아, 네가……죽지 않았더냐?] 사 노파는 냉랭히 그 말을 받았다. [물론 죽지 않았지! 멍청이 같은 너를 닮은 줄 아느냐? 그래도 에미 라고 불러? 너 같은 후레자식을 낳았다는 데에 대해 이 에미는 부끄 러워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죽고 싶은 심정이다……] 느닷없이 욕을 퍼붓더니 겨우 욕을 하게 된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했 다. [에비는 감금당하게 하고 자기 자신은 쇠사슬에 묶여 쨍그랑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으니 그래가지고 무슨 놈의 기한서북이냐?] 말을 하면 할수록 화가 나는 듯 더욱 언성을 높였다. [쇠사슬을 두르고 쨍그랑거리는 것이 고명한 설산파의 무공이냐? 늙 은이도 정신 나갔고 자식도 멍청할 뿐 아니라 제자고 사제이고 모두 멍청이들만 모였으니 문파도 멍청이란 이름으로 바꾸자구나!] 백만검은 사 노파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저는 무공으로 져서 그들에게 잡힌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간계를 쓴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분연히 요자려를 가리켰다. [저 녀석이 아버님으로 변장을 하고 이부자리 속에 기관장치를 숨겨 두었다가 저를 제압한 것입니다……] 사 노파는 고함을 쳤다. [그렇다면 네 녀석이 더 못난 놈이다. 다른 사람을 잘못 보았다면 몰라도 애비를 몰라보다니 그러고도 자식이라고 할 수 있느냐?] 석파천은 그 말에 자신의 경우를 돌이켜 보았다. '아버지를 잘못 알아보는 것도 별 것 아니다. 석 장주 부부도 나를 자기네 아들로 오해했고 나도 그 바람에 아버지를 잘못 알지 않았던 가? 아, 우리 아버지는 누구일까?' 백만검은 평소 어머니에게 욕을 얻어 먹던 터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욕을 얻어먹는다는 것이 창피하기는 했으나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 는 눈치였다. 그는 오히려 부친이 걱정되는 듯 물었다. [어머니, 아버님은 안녕하신가요?] 사 노파는 노해 부르짖듯 말했다. [늙어 망녕이 난 너의 애비가 죽든 살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자 식이 애비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고 있는 판인데 내가 어떻게 알겠 니? 늙은 멍청이가 사제와 제자들에게 감금을 당했으니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백만검은 그 말을 듣고 부친이 본문 반역도들에게 감금을 당하기는 했으나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놓았다. [아버님이 무사하시다니!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사 노파는 다시 고함을 질렀다. [무사해? 앓는 소리가 없어 무사하다더냐?] 그러나 그녀 역시 영감에 대한 걱정이 태산 같아 성자학 등에게 물 었다. [자네들은 대사형을 어디다 감금시켰는가? 그리고 왜 여지껏 풀어주 지 않는가?] 성자학은 변명했다. [대사형은 성질이 아주 못되어져서 그 누구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 소이다. 가까이 다가갔다 하면 맞아죽기 꼭 알맞지요.] 사 노파는 얼굴에 기쁜 빛을 띠었다. [잘 했소. 잘 했어! 그 영감쟁이는 자기의 무공이 천하제일이라고 콧대가 하늘처럼 높아져 있으니 콧대가 좀 꺾어지도록 고통을 당해야 돼.] 이사는 그들이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끝내 입을 열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당신네들 가운데 어느 누가 멍청이파의 장문이오?] 사 노파는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앞으로 두 걸음 내딛으며 손가락으 로 이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멍청이파라니? 당신과 같은 멍청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 하시오? 내 자신이 내 지아비와 아들 새끼를 욕하는 것에 불과한 것 인데 당신이 무엇이라고 감히 함부로 우리 설산파를 욕하는 것이오? 당신의 무공이 고강하다면 일 장으로 이 늙은이를 때려 죽여 보시오. 그러나 내 앞에서 욕을 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소.]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그와 같이 이사에 대해서 매섭게 다그치는 언 행을 보자 그만 하나같이 손에 식은땀을 쥐게 되었다. 이사가 만약에 노해 손을 쓰게 된다면 사 노파는 만에 하나라도 요행을 바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석파천은 대뜸 몸을 훌쩍 날려서는 사 노파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는 만약에 이사가 손을 써서 사 노파를 해치려고 들 때에 자기가 대신 막아낼 작정이었다. 백만검은 손과 발에 쇠고랑이 묶여 있는 것을 한탄하며 속으로 야단 났다고만 부르짓을 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사가 그저 빙긋이 웃더니 입을 열었다. [좋소이다. 내가 실언을 한 모양이니 사과를 드리리다. 백 노부인께 서는 용서를 해 주시지요. 그리고 설산파의 장문인은 도대체 어느 분 이 되시는 것이외까?] 사 노파는 옆에 서 있는 석파천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 젊은이가 성, 제, 요, 양 네 사람을 이겨 그들로부터 설산파의 장문인으로 받들어졌는데 어느 누가 승복할 수 없다면 말을 하게.] 백만검은 큰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 제가 승복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그와 한 번 겨룰 수 있 게 허락해 주십시오.] 사 노파는 명령을 내렸다. [좋다. 여러 사람들의 수갑이나 풀어주도록 하오.] 성, 제, 요, 양 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똑같이 생각을 했다. '만약에 장문 제자들을 풀어놓아 준다면 그 한 떼의 커다란 호랑이 같은 자들을 다시는 제압할 수 없을 것이다. 윗사람을 범하고 난리를 일으켰던 우리 사지(四支)의 문하제자들은 죽어도 뼈를 묻힐 곳이 없 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형세를 볼때에는 풀어주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가 없구나.' 이때 요자려는 시선을 백만검에게로 옮겼다. [자네는 내 손아귀의 패장이 아닌가? 나마저도 승복을 했는데 자네 가 무엇을 믿고 승복을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백만검은 노해서 부르짖었다. [윗사람을 범해서 난리를 일으키는 역적 같은 당신을 나는 그야말로 갈기갈기 발겨놓지 못해서 한탄할 뿐이오. 당신이 암암리에 비열한 행동을 하고서도 감히 나에게 말할 얼굴이 있다는 말이오? 당신은 무 엇을 보고 내가 당신의 손아래 패했다고 하는 것이오?] 장문의 뭇 제자들이 산으로 되돌아오게 되자 요자려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대로 백자재의 침대 위에 누워서는 백자재의 첩으로 하여금 백만검을 유인해 들어와 아버지의 문병을 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러고 나서는 느닷없이 백만검의 의표를 찌르고 백만검을 사로잡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중원에서 돌아온 장문의 뭇제자들은 수뇌자가 사로잡히게 됨 으로써 나머지의 사람들은 계책에 의해 사로잡히거나 또는 힘에 의해 굴복을 하거나 해서는 모조리 뇌옥에 갇히는 꼴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 백만검은 요자려를 대하게 되자 진정 이가 근질 근질할 정도로 증오심이 북받쳐 올랐던 것이었다. 이때 요자려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 [자네가 만약에 내 손아래에 패하지 않았더라면 어째서 자네의 두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있는가? 나에게 암기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미 혼약을 쓴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사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반나절을 겨루어도 제대로 밝히지를 못하니 빨리 그 사람의 손에 채워진 수갑과 쇠고랑을 풀고서 두 사람이 한바탕 멋지게 싸워 보도 록 하시오.] 그러나 요자려는 머뭇거리며 망설였다. 그러자 이사가 왼손을 뻗치더니 대뜸 요자려의 손에 들린 장검을 낚 아채서는 휙휙 휘둘렀다. 창! 창! 창…… 잇달아 울려퍼지는 소리와 함께 백만검의 쇠사슬이 그대로 잘려나가 고 말았다. 이 쇠사슬은 정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요자려의 장검은 예리하기는 했으나 쇠를 무우자르듯 하는 보검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사가 내력을 주입하여 내려치자 쇠사슬은 마치 썩은 나무토막처럼 잘려나가 버렸으며 백만검의 손발에 상처 한 곳 나지 않았다. 이에 설산파의 모든 사람들은 갈채를 보냈다. 몇 명의 아첨꾼들은 이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더욱 우렁차고 길게 소리치기도 했다. 백만검도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그와 같은 실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탄복했소. 탄복했어!] 그러자 장문 제자 가운데 장검을 백만검에게 갖다주려는 사람이 있 었다. 백만검은 퉤 하니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발로 걷어차 그 제자로 하 여금 곤두박질치도록 만들었다. [이 반역자!] 장문 제자이면서 무사한 것은 바로 역모에 참여한 것을 나타내는지 라 그와 같은 욕과 발길질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에 수아가 검을 거꾸로 잡고 디밀었다. [아버님.] 백만검은 빙그레 웃고 칭찬했다. [오! 착하다.] 그는 수차 역경을 당하기는 했으나 어머님과 딸이 무사한 것을 보고 무척 기뻤던 것이다. 한데 그가 고개를 돌리게 되었을 때 다시 그의 얼굴에 증오의 빛이 떠올랐다. 두 눈에 불을 내뿜듯 하면서 요자려에게 호통을 내질렀다. [이 반역도! 이제 당신은 나의 윗어른이 아니오. 일 검을 받아보시 오.] 그리고 그는 휙 하니 일 검을 내찔렀다. 이사는 아직도 이르다는 듯 장검을 거꾸로 들고 가볍게 뻗쳐내 백만 검의 그 일 검을 밀어내더니 검의 자루를 요자려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하여 백만검과 요자려는 일단 검초를 펼쳐 싸우기에 이르렀는데 이번에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진짜 대결이라 각자가 평생에 쌓아 온 절예를 펼치는 것이 조금전 성, 제, 요, 양 등 네 사람이 장난치 듯 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설산파의 제일대 인물중에 백자재를 제외하고는 요자려의 무공이 가 장 고강한 편이었다. 그런 만큼 요자려는 백만검이 자기를 죽이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무렵에 초식을 펼침에 있어서 조금도 소흘히 할 수가 없었다. 한 자루의 장검을 그야말로 민첩하고도 날렵하게 펼쳐서는 초식마다 매서움을 드러냈었다. 백만검은 급히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으려고 서둘렀기 때문에 약간 침착함을 잃고서 공격을 탐내었다. 그 결과 삼십여 초 싸우게 되 이 후 일 검을 곧장 찔러갔는데 힘을 너무나 끝까지 써서 뻗쳤기 때문에 슬쩍 몸을 날려 피한 요자려가 일 검을 반격하게 되자 짝 하는 소리 와 함께 백만검의 소맷자락이 한 조각 잘려져 달아나게 되었다. 수아는 자기도 모르게 아, 하고 놀란 소리를 내질렀다. 사 노파는 욕을 했다. [작은 멍청이는 그 애비와 똑같구나! 늙은 멍청이가 가르쳐 낸 아들 이니 본래 그렇게 쓸모가 없었지.] 백만검은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여기게 되자 검초는 더욱더 산란해지 게 되었다. 요자려는 속으로 기뻐하며 흉칙한 웃음을 띄우고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자네가 내 손아래에 패한 패장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설 마하니 그게 거짓말이란 말인가?] 그의 이 한마디의 말은 본래 상대방의 심신을 뒤흔들어놓고 이를 빌 미로 해서 승리를 얻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자기의 얕은 꾀에 자기가 속아넘어간다는 말이 있듯 이 백만검은 이번 중원으로 갔다가 잇달아 좌절을 당했기 때문에 삼 푼 정도 근성이 더 강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자 화를 내지 않고 되려 깊이 자기 자신을 가다듬었 다. 그리하여 그는 잇달아 칠 초의 수비를 취하는 검법을 펼쳤고 그와 같은 수비의 초식을 펼치게 되자 대뜸 전세를 막상막하의 상태를로 끌어올리게 되었다. 이제 백만검의 검초 역시 면밀하고도 온건한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 다. 요자려는 그의 몸 주위로 급히 돌아가면서 입으로 조롱을 하거나 욕 을 끊임없이 해 대었다. 검의 광채가 번쩍이고 있는 가운데 백만검은 길게 휘파람을 내불더 니 휙휙 하니 잇달아 삼 검을 펼쳐내었다. 곧이어 제 사검이 펼쳐지려는 그 순간에 푸른 빛이 번쩍하더니 싹 하는 소리가 났고 요자려는 왼쪽 다리가 무릎 있는 곳으로부터 잘려 지면서 요자려는 크게 처참한 비명소리를 내지르는 가운데 피바닥속 에 쓰러지고 말았다. 백만검은 장검을 비스듬히 세우고 성자학을 손가락질했다. [당신이 나서시오.] 검날에 묻은 핏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땅바닥에 떨어졌다. 성자학은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손으로 검자루를 쥐었으나 검을 뽑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간신히 입을 열고 말했다. [자네가 장문인이 되고자 한다면……스스로 그 자리에 앉으면 될 것 이 아니겠는가? 나는 자네들과 다투지 않겠네.] 백만검은 눈길을 돌려서는 제자면과 양자진 두 사람의 얼굴을 훑어 갔다. 제자면과 양자진 두 사람은 똑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갑자기 사 노파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까짓 반역도를 몇 이겼다고 해서 대단할 것 없다……] 이어 그녀는 석파천을 향해 당부했다. [제자야, 네가 가서 겨루어 보아라. 늙은 멍청이의 제자가 잘났는가 아니면 나의 제자가 더 뛰어난가 알아보아야겠다.] 뭇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석중옥은 분명히 봉만리의 제자인데 언제 자기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일까?' 석파천은 백만검과 무공을 겨루고 싶지 않았다. 백만검은 수아의 부 친이니 더욱 그럴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입을 열고 거절을 하면 장삼과 이사가 자기의 신분을 간파할 것 같아 우물쭈물했다. 사 노파는 그 모양을 보고 다시 외쳤다. [빨리 나서! 검을 사용하지 말고 칼을 사용하라는 말이다. 늙은 멍 청이의 검법은 형편없어. 우리의 도법이 더 뛰어나니 염려할 것은 하 나도 없다.] 재촉을 받게 되자 그냥 있을 수 없어진 그 칼을 들고 사 노파 앞으 로 나섰다. 瀏 그로서는 여간 겸연쩍은 것이 아니었다. 사 노파는 다시 호통을 내질렀다. [조금전 내가 응낙한 일을 너는 포기할 생각이냐? 네가 큰공을 세워 야 나의 응낙도 효력을 발생한단 말이야!] 그리고 그녀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멍청이 제자를 이겨야지 그렇지 않을 시엔 내 곁에서 멀리 떠나 도록 해. 그리고 영원히 나를 볼 생각도 말아. 물론 수아도 마찬가지 야.] 석파천은 왼손으로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나보고 큰 공을 세우라 한 것이 바로 자기의 친아들을 패배시키라 는 것이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그는 얼굴에 의혹의 빛을 띄웠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아들을 죽이지 않으려고 그를 설산파의 장문인 으로 내세워 협객도로 보내려고 하는 것이구나 하고 지레짐작을 하고 있었다. 오로지 수아와 백만검만이 참된 그녀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사 노파와 백자재는 모두 성질이 열화와 같은 사람이었다. 평소 사 노파는 남편에게 어느 정도 양보는 했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감정이 쌓이고 쌓이게 되었다. 그런데 수아가 벼랑으로 뛰어든 사건이 일어나고 봉만리가 한 팔을 잃는 참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보다 못한 사 노파는 백자재를 충고하다가 언쟁이 벌어지게 되었는 데 그만 백자재에게 따귀를 얻어맞고 말았다. 화가 날 대로 난 사 노파는 집을 떠나게 되었는데 마침 산골짜기의 깊은 눈속에서 수아를 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동안 강호를 떠돌아다니게 되었던 것이고 석파천을 만나 제자로 삼게 되었던 것인데 오늘까지 그녀는 남편에게 따귀를 맞은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 자신은 남편에게 도저히 당할 수가 없어 제자를 시켜 자 기의 아들이자 남편의 제자를 꺾음으로써 남편에게 한번 이겨보자는 심산이었다. 이때 백만검은 자기 어머니와 석파천 사이의 이런저런 사정을 몰랐 고 상대가 석중옥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멸시에 찬 표정으로 석파 천을 노려볼 뿐 싸우려 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 노파가 백만검에게 역정을 냈다. [아니 너는 내 제자를 업수이 여기는 모양이로구나! 그러나 이 젊은 이는 나를 사부로 모신 이후 전과는 딴판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선포하듯 말을 이었다. [이제 무공을 겨루는데 있어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네가 이겼을때 너의 사부인 늙은 멍청이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게 되고 이 젊 은이가 이겼을 때 수아는 이 젊은이의 색시가 되는 것이다. 알겠느 냐?] 백만검은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어머니, 그건 안됩니다. 우리 수아를 어떻게 저런 녀석에게 시집을 보낸다는 것입니까?] 사 노파는 웃었다. [물론 네가 이기면 수아가 시집을 못가는 것이지. 하나 네가 진다면 네가 반대한다고 해서 내가 그 일을 성사시키지 못할 줄 아느냐?] 백만검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은근히 화가 끓어오르는 것을 금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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