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노파는 그만 한참동안 멍청하니 넋을 잃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일세를 풍류하는 영웅이었는데 늙어서 이토록 멍청하게시리 혼용(昏庸)해진 것을 보고 그만 눈시울을 붉히더 니 왈칵 눈물을 흘릴 듯한 모습을 하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 다. [만리의 이야기 속에 너무나 과장되거나 사실과 어긋나는 점이 없는지 생각들 해보게.] 그와 같이 한마디 던지고 난 이후에 끝내 참을 수 없다는 듯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뭇 사람들은 더 말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성자학이 겨우 입을 열었다. [형수님, 사실이 확실히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재차 형수 님을 속이게 된다면 그야말로 죄에다 죄를 더하는 것이 아니겠 소이까?] 사 노파는 날카로운 어조로 따졌다. [설령 당신네들 장문 사형의 정신이 혼미해져서 무고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기 때문에 당신네들이 손을 합쳐서 그를 꼼짝 못하게 했으면 되는 것을 어찌하여 만검 등 중원에서 돌아온 사 람에게까지 암산을 하고 해를 입히려고 했소? 어째서 장문 제자 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없애서는 풀을 뽑되 뿌리채 뽑으려는 독 수를 뻗쳤느냔 말이오?] 제자면은 그 말에 나서서 입을 열었다. [소제는 결코 장문 사형과 장문 제자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소이다. 이 일로 인해서 요 사제와 격렬하게 말다 툼까지 했으며 또한 죽고 죽이는 싸움까지 벌이게 되었는데 그 광경은 형수씨께서도 틀림없이 듣고 보았으리라 생각되오이다.] 사 노파는 얼굴을 든 채 넋을 잃고 있었으며 눈물이 끊임없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윽고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 더니 입을 열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아예 내친 김에 어떻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태가 그 지경에 이른 이상 여러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겠지.] 요자려는 백만검에게 한 다리를 잘린 이후 상처에서 샘솟듯 피 가 흘러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요자려 역시 굳건한 사람으로 신 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스스로 혈도를 짚어서는 피를 멈추도록 하고는 애써 자기의 앞섭자락을 찢어서는 상처를 싸매었다. 그런데 그가 친히 가르친 제자들도 화를 입을까 두려워서 감히 다가와 그를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사 노파는 처음 요자려가 백자재 몇 장문 제자들을 죽여 없애 자고 주장하고 나서게 되었을 때에 요자려에 대해서 무척 통한 스럽게 여겼었는데 봉만리로부터 사정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에 야 화근은 자기의 남편으로부터 발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 다. 따라서 그녀는 그만 마음이 약해져서 사지의 뭇 제자들에게 호 통을 내질렀다. [너희 이 짐승 같은 녀석들은 사부님이 중상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도 나 몰라라 구경만 하고 있어서야 사람의 도리를 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사지의 뭇 제자들은 그제서야 서둘러서 달려와서는 요자려의 잘라진 다리를 다투어 싸매주었다. 그리고 나머지의 사람들도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그녀가 요자려마저도 용서를 한다면 우리들의 죄는 더욱더 가 벼우니 큰 벌은 받지 않게 되었구나.' 그 즉시 사람이 나서서 열쇠로 경만종, 왕만인, 화만자 등의 수갑과 쇠고랑을 풀어주었다. 사 노파는 그와 같은 광경을 지켜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장문인이 일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했으면 자네들이 방법을 강구해서 간해야 옳거늘 이와 같이 하 극상의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역시 문규를 크게 어기는 일이 되지 않을 수가 없네. 이번 일을 어떻게 해결 지어야 할 것인지 나로서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군. 우리 들은 첫단계로 먼저 장문인을 풀어주어서는 장문인과 상의를 할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이 드는군.] 뭇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듣자 모두 안색이 크게 변해 서는 하나같이 생각했다. '그와 같은 흉신악살(凶神惡煞)을 뇌옥에서 풀어준다면 모두들 어떻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뭇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며 그 구누도 감히 입을 열 지 못했다. 사 노파는 그와 같은 광경에 노여움을 띄웠다. [아니 자네들은 그를 한평생 가두어 둘 참인가? 자네들이 저지 른 나쁜 짓으로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가?] 성자학은 입을 열었다. [형수님, 지금 설산파의 장문인은 바로 형수씨이니 백 사형을 필요로 하지 않소이다. 백 사형은 물론 풀어주어야겠지만 어찌 됐든 간에 먼저 방법을 강구해서 그의 병을 치료해 주어야 할 것이외다. 그렇지 않을 때……그렇지 않을 때……] 사 노파는 매섭게 다그쳤다. [그렇지 않을 때 어떻다는 것이오?] 성자학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제는 다시 백 사형의 얼굴을 대할 면목이 없으니 이만 작별 을 고할까 합니다.] 그리고서는 깊이 읍을 했다. 제자면과 양자진 역시도 입을 열었다. [형수씨께서 만약 너그러운 아량으로 모든 사람을 용서해 주겠 다면 우리들은 이대로 산을 내려가겠으며 한평생 다시는 능소성 안으로 한 걸음도 들여놓지 않겠소이다.] 사 노파는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 사람들은 늙은 멍청이가 나와서는 그들에게 복수를 할까봐 두려워 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인지상정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 다. 만약에 모든 사람들이 우르르하니 흩어져버리게 된다면 능 소성에는 그저 한 채의 빈 성만 남게 될 것이니 무슨 설산파를 이룩 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소. 그러나 급히 서두를 것은 없소이다. 내가 먼저 그를 만 나보고 적절한 방법이 없을 때는 결코 가볍게 그를 풀어주지 않 도록 하겠소.] 성자학과 제자면 그리고 양자진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하나 같이 생각했다. '당신은 부부의 정이 깊으니 자연히 그를 감싸고 들겠지. 다행 히 두 다리는 우리의 몸에 매달려 있으니 당신이 정말로 그 늙 은 미치광이를 풀어준다면 뭐 설마하니 우리들은 도망을 치지 못할까?' 사 노파는 아들과 손녀를 불렀다. [검아 그리고 수아……] 그리고 난 후 그녀는 석파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억도(億刀), 너희들 세 사람은 나를 따라오도록 해라!] 그리고 그녀는 다시 성자학 등 세 사람에게 말했다. [세 분 사제는 안내를 하구료. 그래야만 석옥 밖에서 내가 그 와 한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안심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소? 어쩌면 나는 그와 어떤 음모를 꾸며놓고서 당신네들을 일망타진 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소?] 성자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제가 어찌 그토록 의심을 하겠소이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시 죽고 사는 문제는 큰 것이라 제자면 및 양자진과 더불어 따라왔다. 요자려는 자기네들 사지의 한 명 눈치 빠르고 영악한 제자에게 입을 모아 보였다. 그 사람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그 사람들의 뒤를 따랐다. 일행이 복도를 가로지르게 되고 한참 동안 나가게 되었을 때에 석파천이 먼저 감금되었던 석옥에 이르게 되었다. 성자학은 그 늙은이를 감금한 곳 앞으로 다가서더니 입을 열었 다. [바로 이곳이외다. 모든 것은 장문인께서 돌봐주시기 바랍니 다.] 석파천은 대청에서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석옥에 갇혀 있는 늙은이가 바로 백자재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 를까 그의 생각이 들어맞은 셈이었다. 성자학은 몸에서 열쇠를 꺼내더니 석옥의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열쇠를 자물통에 넣고 보니 자물통은 이미 열려져 있지 않은가! 그는 그만 자기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를 내었고 놀라서 얼굴 의 핏기가 싹 가셔지고 말았다. '자물통이 이미 열렸다면 늙은 미치광이가 이미 나온 것이 아 닌가!' 그는 두 손을 벌벌 떨면서 감히 석문을 열지 못했다. 사 노파는 힘주어서 밀어젖히자 석문이 그대로 열렸다. 성자학과 제자면 그리고 양자진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석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성자학은 큰소리로 자기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야단났어. 야단났군! 그가……그가 도망을 쳤군!] 그 말을 해놓고서는 즉시 자물통이 열려 있는 이 석옥은 바깥 석옥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다시 하나의 문을 열어야 만이 백자재가 갇혀 있는 석옥이 되는 셈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오른손을 부르르 떨면서 한 꾸러미의 열쇠를 철 커덕거리고 있었을 뿐 감히 두 번째의 석문을 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석파천은 본래 그에게 이쪽의 문도 이미 자물통을 내가 열어놓 았다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자기가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 했기 때문에 일시 아무말 하지 않기로 했다. 사 노파는 그 열쇠 꾸러미를 얼른 빼앗아 들고서는 맞는 열쇠 를 찾아서는 열쇠구멍에 넣고 돌리려다가 어느덧 이 석문마저도 자물통이 따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녀는 남편이 정 말 석옥에서 빠져나간줄 알고 그만 더럭 걱정이 되었다. '그는 정신이상인데 만약에 능소성에서 달아나게 된다면 강호 에서 얼마나 커다란 화를 불러일으킬지 모르겠구나.' 따라서 그녀는 문을 열려고 했을 때 한 쌍의 손이 마구 떨리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석문은 겨우 몇 치 정도 열어젖히게 되었고 그 순간에 늙수그레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다. 뭇 사람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듯 한결 가뿐한 표정이 되었다. 이때 백자재는 한바탕 광소를 터뜨리더니 큰소리로 입을 열었 다. [하하하……소림사는 뭐고 무당파는 뭐냐? 이제부터 우리 설산 파의 무공을 배워! 알겠는가? 다른 문파는 오늘부터 없어진다.] 그리고 그는 기고만장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제 벼슬아치들에게 황제가 제일이고 선비에게는 공자님이 제일인 반면 무공을 하는 사람에게는 노부가 제일이란 말씀이 다. 그 누구든 승복치 않을 때는 당장 목을 자르겠다.] 사 노파는 석문을 몇 치 더 밀어젖혔다. 희미한 빛 속에 영감이 손과 발에 수갑과 고랑쇠를 찼을 뿐만 아니라 온 몸이 쇠사슬로 꽁꽁 감겨서 두 거대한 돌기둥 사이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한데 백자재는 갑자기 사 노파를 대하자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그는 곧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좋아! 당신이 돌아왔군! 이제 천하에서 나를 제왕으로 모시게 되었다네. 설산파는 천하 제일로 군림하게 되었고 다른 문파는 모두 없어졌어. 할멈도 좋지?] 사 노파는 냉랭히 응수했다. [좋기는 좋구료. 하지만 다른 문파들이 왜 없어졌나요?] 백자재는 히쭉 웃었다. [당신은 머리가 잘 돌지 않을 때가 있단 말이야! 그야 설산파 의 무공이 제일이고 다른 문파에서도 도저히 따를 수가 없으니 까 취해진 조처이지.] 사 노파는 수아를 자기 앞에 세우고 물었다. [봐요! 누가 왔는가?] 그녀는 자기의 영감이 손녀딸을 몹시 사랑하고 있으며 이번에 실성하게 된 것도 바로 손녀딸이 벼랑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 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기쁜 일을 당하면 제정신을 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아를 내세운 것이다. 수아는 즉시 조부에게 위로의 말을 던졌다. [할아버지, 제가 돌아왔어요. 벼랑 아래로 떨어졌지만 할머니 께서 구해주셨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어요.] 백자재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잘 되었다. 너는 수아로구나. 죽지 않았다니 이 할아버지는 너무나 기쁘구나. 이 귀염둥이야! 너는 이 세상에서 누구의 무 공이 으뜸가며 무림지존(武林至尊)인 줄 아느냐?] 수아는 나직이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무림지존이죠.] 백자재는 껄껄 웃었다. [하하하……우리 수아는 저렇게 착하단 말이야.] 백만검은 앞으로 나서며 인사를 올렸다. [아버지, 자식이 늦게 돌아와 아버님이 고생을 하셨군요. 아 자식이 아버지의 쇠사슬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문밖에 서 있는 성자학 등은 그 말에 오금이 저렸다. 백자재가 풀려나오면 그저 도망칠 생각부터 하게 되었다. 한데 백자재는 호통을 내질렀다. [비켜! 누가 너보고 쇠사슬을 풀어달랬느냐? 이까짓거야 내가 힘만 주면 토막토막 나버리게 돼! 다만 나는 내 스스로 이곳에 서 수양을 좀 쌓으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는 더욱 큰소리로 호기를 부렸다. [수천 수만 명이 온다해도 이 백자재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 하거늘 누가 감히 나를 이 쇠사슬에 묶어 놓을 수 있겠느냐?] 백만검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아버님은 천하무적이시니 그 누가 아버님을 어떻 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어머니와 수아가 돌아왔으니 모두들 기뻐서 아버님을 모시고 술이나 한 잔씩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 다.] 그리고 그는 열쇠를 들고 백자재의 수갑을 따려고 했다. 백자재는 노해 부르짖었다. [비키란 말이야! 재미있어서 이러는 것이지 이 쇠사슬을 끊지 못해 이러고 있는 줄 알아? 빨리 가서 네 일이나 봐!] 마지막 한 마디는 너무나 우렁찬 것이어서 백만검은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열쇠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백만검은 부친이 체면상 남의 힘을 빌리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놀란 척하면서 열쇠를 땅에 떨어뜨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성자학 등은 고개를 디밀고 기웃거렸다. 백자재는 그들을 발견하고 호통을 쳤다. [너희들은 나를 보고도 왜 인사가 없느냐? 당금 제일의 대영웅 이요 대호걸이 누구지?] 성자학은 백자재가 풀려나게 되면 어떤 곤욕을 치루게 될지 모 르니 일찍 비위를 맞추어두자는 생각에서 허리를 구부렸다. [설산파의 백 대감께서야말로 전무후무한 검법, 권각법, 내공, 암기에 있어서 제일인자인 대영웅이고 호걸이며 대협사일 뿐 아 니라 대종사입니다.] 양자진도 재빨리 그의 뒤를 이었다. [백 대감께서 설산파의 장문인이시니 소림, 무당, 아미(蛾嵋) 등의 문파는 마땅히 없어져야 하며 이 세상에서 오로지 백 대감 만 유아독존이십니다.] 나머지의 사람들도 일제히 아첨의 말을 했다. 백자재는 득의에 찬 웃음을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 노파는 크게 부끄럼을 느꼈다. '이 늙은이는 실성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다. 나와 검아 그리고 수아를 알아보지 않는가? 다만 구제불능일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니 어떻게 한담?' 백자재는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사 노파에게 물었다. [정 노사가 와서 나에게 자랑을 하더군. 당신이 벽라산에 들어 가서 며칠 묵었다고. 그게 사실인가?] 사 노파는 노해 부르짖었다. [당신은 실성도 하지 않았으면서 어째서 그 녀석의 터무니없는 말을 믿죠?] 수아는 불쑥 입을 열었다. [그 정불사는 남의 몸이 편찮은 틈을 타서 할머니에게 벽라산 으로 가자고 다그쳤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강물에 뛰어들어 자 결을 했으면 했지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백자재는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좋아 좋아! 백자재의 부인이 어떻게 남의 욕됨을 감수하겠는 가? 그래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지?] 수아는 석파천을 가리켰다. [그후 바로 이 오라버니가 다행히 손을 써서 정불사를 쫓아버 릴수 있었어요.] 백자재는 석파천을 곁눈질했다. 석옥 안은 밝지 못해 석중옥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조금전 자기를 구해 나가려던 젊은이라는 것 을 알고 약간 호감을 느꼈다. [음! 이 녀석의 재간은 그럴싸 해. 나에게 비하면 훨씬 떨어지 지만 정불사를 쫓는데는 충분한 편이지.] 사 노파는 참을 수 없어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무슨 큰소리를 치는 것이에요? 설산파가 천하제일이라고 얼토 당토 않는 소리 마시오. 이 애는 내가 친히 키운 제자예요. 나 의 제자가 당신의 제자보다 재간이 뛰어날테니 두고 보시오.] 백자재는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무슨 터무니없는 소리. 당신에게 나를 이길 수 있 는 재간이 무엇이 있겠소?] 사 노파는 핏대를 올렸다. [검아는 당신의 제자예요. 그 많은 제자 가운데 그 놈의 무공 이 가장 고강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녀는 백만검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검아, 네가 너의 사부에게 말해라. 나의 제자가 강한지 아니 면 네가 강한지를 말해보아라.] 백만검은 대답했다. [그건……그건……] 그는 감히 부친이 두려워 부친의 비위를 거슬리는 말을 하지 못했다. 백자재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의 제자가 어찌 나의 제자와 적수가 되겠소……] 그리고 그는 백만검을 향해 내뱉듯 말했다. [검아, 너의 에미가 또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지?] 백만검은 솔직한 사내였다. 이기면 이기고 지면 지는 것을 분 명히 하는 사내였다. 석파천에게 졌는데 어찌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가 무능하여 저 녀석과 조금전 싸운 결과 확실히 이기지 못 했습니다.] 백자재는 펄펄 뛸듯이 날뛰며 전신에 차고 있는 쇠고랑을 마구 쨍그랑거리도록 흔들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이런 터무니 없는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 인가?] 사 노파는 그와 수십 년 간 부부로 지낸 사이라 그의 생각을 십중팔구 짐작하고 있었다. '이 늙은 멍청이는 자기가 천하무적이라 생각하고 능소성에서 내노라 뽐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불사에게 자극을 받자 반실 성하게 되지 않았는가……' 사 노파는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마음의 병은 마음으로 고 쳐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강한 적수를 만나 그의 오만한 기운이 꺾여지면 그와 같은 과 대 망상증이 치유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녀는 장삼과 이사가 이미 떠나간 것을 아쉬워했다. 그들 두 사람을 이용하여 백자재의 병을 고치면 안성맞춤이 아 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데 갑자기 그녀에게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제자의 무공은 그렇게 고강한 편은 못되지만 내력이 이 늙은 멍청이보다 훨씬 뛰어난 편이니 그의 화를 북돋아볼까?'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녀는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천고에 드문 무공을 지녀 천하제일이고 내력 또한 제일이라 하지만 당신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내력만 가지 고 말하더라도 나의 제자에게 훨씬 떨어져요.] 백자재는 광소를 터뜨렸다. [우하하……설사 달마나 장삼풍이 재생한다 하더라도 이 백대 감의 적수가 못되거늘 저 비린내 나는 녀석이 나를 당할 수 있 다고? 나의 내력을 그가 삼성만 지닌다 하더라도 무림에 위명을 떨치기에 충분할거다.] 사 노파는 냉소했다. [정말 부끄러운 줄 모르고 큰소리치는군! 남들이 들으면 모두 비웃겠소? 어디 그렇다면 당신이 저 애와 한번 내력을 겨루어보 구료.] 백자재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 녀석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을까? 좋아 단지 한 손을 써서 그로 하여금 세 번 곤두박질하도록 만들어 주지.] 사 노파는 남편의 무공이 대단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겨루었다가 석파천이 상처를 입으면 큰일이라 싶었는데 그와 같이 나오자 잘 됐다고 생각하고 부채질을 했다. [이 젊은이는 나의 제자이고 수아와는 정혼을 한 사나이니 당 신의 손자사위가 되는 셈이요. 그러니 겨루어도 결코 피차간에 서로 상처를 입혀서는 안돼요.] 백자재는 재빨리 말했다. [그가 나의 손자사위가 된다구? 그만한 자격이 있을까? 좋아. 그렇다면 그의 목숨을 빼앗지 않지.] 바로 이때였다. 발걸음 소리와 더불어 한 사람이 총총히 달려들어와 급히 외쳤 다. [장문인, 장락방의 방주 석파천이 사연객을 데리고 와서 석청 부부를 구해내고는 겨루어 보자고 대청에서 기다리고 있습니 다.] 바로 경만종의 음성이었다. 백자재와 사 노파는 동시에 어,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천거사 사연객이라구!] 석파천은 석청 부부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크게 놓 였다. 석중옥이 돌아왔다면 자기가 가짜라는 사실이 들어날테고 또 오랫만에 사연객을 만난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다. 사 노파는 궁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우리와 장락방 그리고 사연객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 어째 서 이곳에 나타났을까? 석청 부부가 데리고 온 사람들인가?] 경만종은 분하다는 듯 말했다. [석파천은 정말 무례합니다. 그는 우리의 능소성이 마음에 든 다고 하면서 우리들보고 모두 나가달라는 것입니다.] 백자재는 노해 부르짖었다. [개방귀 같은 소리! 장락방이 무엇이고 또 석파천이 무엇인데 감히 그런 소리를 해! 장락방에서 몇 사람이나 왔느냐?] 경만종은 대답했다. [그들은 모두 다섯 사람입니다. 석청 부부와 사연객 그리고 석 파천 이외에 한 젊은 소저가 있었는데 정불삼의 손녀라고 하더 군요.] 석파천은 정당도 왔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수아를 바라보았다. 수아는 아름다운 눈동자로 석파천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석파천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나에게 석중옥으로 가장하여 석 장주 부부의 목숨을 보호하라고 하더니 어째서 석중옥과 같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 까? 아마도 나를 걱정해서 사연객 선배를 모시고 나를 구하러 온 것인가보다.' 백자재는 대뜸 큰소리를 쳤다. [겨우 다섯 사람을 보고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능소성 의 성주, 설산파의 장문인 백자재로 말하면 천하에서 검법이 제 일이며 권각법에서도 따를 자가 없고 내공은 물론 암기에도 제 일인 대영웅, 대호걸, 대협사, 대종사라는 말을 하지 않았느 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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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만종은 말을 더듬거렸다. [그건……그들이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 사부님의 위 명을 들었으리라고 생각하고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백자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