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76편 (76/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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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76편 (7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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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 역시 그 뒤를 이어 한마디 했다.
[자네가 이미 동지팥죽을 먹었는데 우리 형들이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들은 죽대접을 깨끗이 비웠다.
이어 그들은 몸을 돌려 두 도주에게 허리를 굽혀보였다.
[죽을 내려주신 두 사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는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군웅들은 장삼과 이사가 결의형제인 석파천과 같이 죽기로 한 것을 보고 퍽 감동했다.
이미 죽기로 정해진 바와 다름 없는 해문표와 정광지보다 더욱 만 배나 드높은 의기를 보여준 것이라고 감탄하고 부러워들 했 다.
백자재는 속으로 생각했다. '잠시나마 주저했다는 것은 설사 끝내 함께 죽는다 하더라도 대협사라는 존칭을 쓰기에는 주제넘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구 나.' 이때 장삼은 석파천을 향해 말했다.
[형제, 이곳에 계신 손님들은 그 죽의 맛을 좋아하지 않는 모 양인데 자네가 먹고 싶다면 얼마든지 더 들게나.] 그렇지 않아도 죽 한 대접으로 고픈 배를 채우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한 대접 먹으나 두 대접 먹으나 결과는 마찬가지가 아니 겠는가 하는 생각에 옆 사람들 몫을 힐끔거리게 되었다.
부근에 앉아 있던 군웅들은 석파천의 시선이 자기네의 죽대접 에 미치자 서로 죽 대접을 들고 그에게 권했다.
[이 죽은 너무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에 나의 입에 맞지 않는 구료.] [요새 입맛이 없던 차인데 소영웅이 들겠다면 가져가서 드시도 록 하구료.] 더구나 석파천이 두 손으로 그 많은 죽 대접을 받을 수가 없고 또 장삼이 허락한 바를 철회하게 될까봐 황망히 석파천의 탁자 에 옮겨주기까지 했다.
석파천은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단숨에 두 대접의 죽을 비웠다.
용 도주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저 해 영웅이 말한 바와 같이 지도에도 없던 황량한 섬이 바 로 지금의 협객도이오.
그러나 이름은 나와 목 형제가 이 섬에 온 이후 붙여준 것인데 우리들이 오만하게 협객으로 자처해서가 아니라 달리 그럴 만한 연고가 있었던 것이오.
그 점 나중에 여 러분들은 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는 찬찬히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며 다시 말을 이었 다.
[우리들은 지도에 지시한 대로 이 섬에서 열여드레를 두고 찾 았는데 끝내 무공비결이 있는 곳을 찾아냈소.
원래 그것은 한 수의 고시(古詩)로 된 도해였으며 숨겨져 있는 뜻이 너무 심오 하고 복잡했소.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크게 기뻐 그 도해에 따 라 무공을 연마하게 되었소.
그런데 수개월 후 우리들은 이 도 해에서 보여주고 있는 무공에 대해 의견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 소……] 갑자기 그는 하던 말을 중단하고 한숨을 쉬었다.
[복이 곧 화라는 말이 있듯이 수일을 두고 논쟁을 벌여 보았지 만 그 누구도 상대방을 설득할 수가 없어 각기 나름대로 무공을 익히기로 약정하되 나중에 어느 누가 옳은가 보자고 벼루게 되 었소.
그리하여 반 년이 지나게 되어 우리들은 서로 몇 초의 대 련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결과 두 사람은 깜짝 놀라고 말았소… …]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침울해졌다.
목 도주 역시 길게 한숨을 불어 냈다.
한참 후에야 용 도주는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 우리 두 사람이 다 잘못 이해한 것이었소!] 군웅들은 그 말을 듣고 흠칫했다.
그의 제자인 장삼과 이사의 무공이 그토록 뛰어난 것을 보면 용, 목 두 도주의 무공이 초범입성(超凡入聖)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틀림없었다.
따라서 연마한 무공이 일반 무공일 수 없고 틀림없이 가장 고 심한 내공인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내공을 잘못 연마하면 작게는 주화입마하게 되고 심하면 죽거 나 불구의 몸이 되는 것이라 듣는 사람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용 도주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즉시 연마하던 것을 중단하고 그 가운데 숨은 이치를 분석하게 되었소.
그런데 우리 두 사람의 자질이 너무나 뒤떨어지는지 아니면 도해가 너 무 심오한 것인지 몇 개월을 두고 연구해 보았지만 의문을 풀 수가 없었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마침 그때 한 척의 난파선이 그 섬에 표류해 오게 되었다.
그 배는 해적선이었다.
우두머리격인 사람과 조사를 해서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은 모조리 처치하고 협박을 받아 부득이 해적이 된 나머지의 사람 들을 곁에 두게 되었다.
한데 그들은 자기 자신들이 너무나 자기들의 무공을 오랜 세월 에 걸쳐 연마해 왔기 때문에 선입관이 박혀 다른 무공을 연마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 두 사람은 나머지 해적들 가운데서 문자에 비교 적 능숙하나 무공이 아주 약한 여섯 사람을 뽑아 제자로 삼았 다.
이 여섯 사람에게는 내공을 가르치지 않고 일반 권각법만 가르 친 후 그들에게 도해를 연구하도록 했다.
결과 용 도주의 제자 세 사람과 목 도주의 제자 세 사람 등 도 합 여섯 사람 다 다른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용과 목 두 도주는 도해가 이태백(李太白)의 고시인 만큼 별 수 없이 문무에 아주 정통한 사람이 아니면 안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윽고 용 도주와 목 도주는 길을 나누어 중원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일 년 동안을 기한으로 하여 내각 네명의 제자들 거두어들이게 되었는데 거두어들인 제자들은 가슴 가득히 시서(詩書)를 담은 유생이거나 혹은 시재(詩才)에 뛰어난 명사들이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용 도주는 손을 들어 몸에 황의와 청의를 걸치고 있는 칠팔 명의 제자들을 손가락질하며 겨속해서 말했 다.
[솔직히 여러분들에게 말해서 이 몇 명의 제자들이 만약에 과 거에 응하게 된다면 인사가 되거나 한림이 되는 것은 손바닥 뒤 집기보다 쉬운 노릇이외다.
그들이 처음 협객도에 이르게 되었 을 때는 물론 모두 다 기꺼운 마음으로 원해서 온 것이 아니겠 지만 무공을 배우게 되고 다시 도해를 연구하고 익히게 되자 그 야말로 하나같이 죽어라 하고 남아 있기를 원했으며 모두 다 무 공을 배우고 연마하는 것이 글공부를 하고 벼슬아치가 되는 것 보다 훨씬 낫다고들 느끼는 것이었소.] 군웅들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글공부를 하며 벼슬아치가 되는 것보단 훨씬 낫었다는 말이지.' 동시에 그들은 크게 마음에 드는 말이라 생각되어 많은 사람들 이 남들이 보는 것도 개의치 않고 고개를 끄덕여 그렇다는 시늉 들을 했다.
용 도주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여덟 명의 선비 출신의 제자들이 일단 도해를 참고 하고 연구하게 되었으나 각자의 견지는 또 각기 달랐소.
그리하 여 비단 나와 목 형제에게 어떤 계시를 주기는커녕 서로 언쟁을 벌여서 되려 우리 두 사람으로 하여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멍청해지도록 만들었소……] 거기까지 말을 용 도주의 뒤에 이어진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 다.
어느 날 목 도주는 당시 무공에 정통하고 박식한 분은 소림의 묘체 대사이니 그분을 청해오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제의를 했다.
용 도주는 묘체 대사가 십여 년 전 은퇴하다시피 해서 와줄지 의문이라는 뜻을 비췄다.
이에 목 도주는 한두어 장의 도해를 베껴서 그 어르신에게 보 여주자는 제의를 하고 묘체 대사가 전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무공비결이란 것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니 자기들도 포기하자는 의견을 내놓다.
용 도주는 이에 무당의 장문인 우다 도장에게 도해를 한 장 베 껴 줘보기로 했다.
물론 처음 이 비결이 발견하게 되었을 때는 남에게 공개할 뜻 이 전혀 없었으나 연마하면 연마할수록 더 많은 의문을 느꼈고 또 그 당시 그들을 따라올 만한 고인(高人)이 없다는데서 그 비 결을 공개해도 이제 하나도 아까울 것이 없다는 심경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결 제일식을 베껴서 봉투에 넣어서는 소림 사로 찾아갔다.
소림사의 지객승은 묘체 대사가 이미 폐관한 지 몇 년이 되며 외인과 말 한 번 나누지 않는 처지라고 거절했다.
두 사람은 이미 각오를 한 바가 있었던 바이라 방석을 대문 앞 에 깔고 앉아 다른 사람이 통행하는 것을 금해버렸다.
물론 소림사의 승려들과 매일 같이 용쟁호투를 벌인 것도 사실 이었다.
그러기를 이레, 지객승은 편지를 소림사 장문인에게 전해주겠 다고 나왔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군웅들은 하나같이 생각을 했다. '그는 매우 수월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소림사의 대문을 이레 낮 이레 밤 동안에 걸쳐서 막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정말 이야기처럼 수월한 노릇이 아니었을게다.
그간에 얼마나 많은 용쟁호투(龍爭虎鬪)의 싸움을 벌였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소림 사의 뭇승려들은 틀림없이 그들 두 사람을 쫓아내지 못해서 겨 우 부득이 서찰을 전달하겠다는 응낙을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군웅들은 용 도주의 계속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은 봉투를 전한 후 즉시 대문 앞을 떠나 소실봉 기슭에 서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반 시진이 못되어 도해를 본 묘체 대사는 나타났으며 그들을 보자마자 물었다.
[어디요?] 목 도주는 대답했다.
[한 분을 더 모시고 가야겠습니다.] 묘체 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소! 우다도 모셔가야 하오.] 그리하여 세 사람은 무당으로 향했다.
무당산에서는 묘체가 나섰다.
[나는 소림사의 묘체인데 우다를 만나러 왔네.] 그리고 통보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소림사 장문인이라 무당의 제자들은 감히 막을 생각도 하지 못 했다.
물론 용, 목 두 도주도 묘체의 뒤를 따랐다.
묘체 대사는 우다 도장이 조용히 도를 닦고 있는 고대재에 이 르자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무공비결의 제일 도해에 관한 자세를 모조리 취해 보였다.
그리고 또 한마디 말도 없이 그곳을 나왔다.
우다 도장은 놀람과 기쁨에 엇갈린 얼굴로 역시 더 묻지도 않 고 그들을 따라 협객도로 왔다.
묘체 대사는 소림의 절예에 정통했고 우다 도장은 검법에 있어 신과 같은 존재임을 무림에서 공인하는 처지였다.
그들 두 사람은 협객도에 도착하자 도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첫 달에는 대체로 두 고인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두 번째 달과 세 번째의 달에 이르러서는 이미 명리에 담백한 두 세외고인도 도해에 관한 의견의 충돌로 크게 언쟁을 벌일 뿐만 아니라 싸우기까지 했다…… 군웅들은 크게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며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 은 묻기까지 했다.
[그들 두 분의 고인이 무공을 겨루어 본 결과 누가 이기고 누 가 졌소이까?] 용 도주는 빙그레 웃더니 다시 그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 다.
묘체 대사와 우다 도장은 각기 도해에서 터득한 무공으로 겨루 게 되었는데 겨우 제오 초를 교환하게 되었을 적에 두 사람이 터득한 바는 같았다.
따라서 그들 두 사람은 그 즉시 회심의 미소를 짓고서는 손을 멈추고 겨루는 것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제육 초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다시 서로 의견을 내세 우며 다툼을 벌이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그들 두 사람은 때때로 싸우다가 때때로 손을 멈추 고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수개월이 흘렀다.
결국 일치하는 점이 적고 뜻이 다른 점이 많았으며 그 누가 옳 고 그른지를 단언할 수도 없었다.
이에 용 도주와 목 도주는 도해가 너무나 심오하고 엄청난 것 이어서 묘체 대사와 우다 도장과 같이 조예가 깊은 사람도 겨우 일부분밖에 터득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더욱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천하의 기재와 이인들을 섬으로 모셔 연구토록 해보자 는 결정을 내렸다.
마침 섬의 단장식골부심초가 꽃이 피는 해였다.
이 풀에 다른 약재를 가미하여 죽을 쑤면 무공을 연마하는 사 람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는지라 두 사람은 두 사자를 내보내 명 문대파의 장문인들에게 협객도로 오시어 함께 동지팥죽을 들고 도해를 연구하십사 하고 청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을 때 군웅들은 그만 서로의 얼 굴을 쳐다보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이상야릇하게 변했다.
한참 후 정불사가 큰소리로 외쳐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죽을 먹으러 오라고 한 것은 순전히 호의 에 의한 것이란 말이오?] 용 도주는 빙그레 웃었다.
[순전히 호의라고는 할 수 없소.
사실 우리들은 천하에서 무공 이 뛰어난 분들이 이 섬에 와 우리 형제의 의문을 풀어주고 무 학의 도리를 더욱 높여 무공을 한층 더 증진시키자는 욕심이 없 지 않아 있었소.
그러나 여러분들을 해치려고 한다는 생각은 잘 못된 생각이오.] 정불사는 냉소했다.
[너무나 멀쩡한 거짓말이 아니오? 남을 초청해서 무공을 연마 하자는 것이면 왜 오기 않으려는 사람의 전가족을 몰살했더란 말이오? 그런 억지의 초청이 어디 있소?] 용 도주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손뼉을 쳤다.
[상선벌악의 장부책을 가져오너라.] 여덟 명의 제자들은 즉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각기 한 아름의 장부를 안고 나왔다.
한 꿰미의 장부책은 약 두 자의 두께였다.
용 도주는 다시 분부를 내렸다.
[여러 손님들에게 보여드려라.] 뭇 제자들은 장부를 손님들 탁자 위에 나누어 주었다.
장부마다 노란 실로 어느 문파라고 수를 놓듯 꿰매 놓았다.
정불사는 자기 앞에 놓인 장부를 보자 바로 겉장에 육합 정씨 (六合丁氏)라 씌어 있는 것을 보고 움찔했다. '천하에서 우리가 육합 정씨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 문데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냈을 까?' 뒤적거려보니 모년 모월 모일 정불삼이 무슨 짓을 했으며 정불 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시시콜콜하게 적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가 이십 년 동안 저지른 큰일들은 모두 다 적혀 있는 셈이었다.
정불사는 그만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을 곁눈질해보니 역시 겸연쩍은 표정들을 짓고 있 지 않은가? 오로지 석파천만이 장락방이라고 씌어진 장부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서 죽만 퍼먹고 있었다.
밥 한끼 먹을 시간이 되었을 때 용 도주는 분부를 내렸다.
[상선벌악 장부를 거두어라.] 뭇 제자들은 그 분부에 따라 장부를 모조리 거두어 갔다.
용 도주는 빙그레 웃고 입을 열었다.
[우리 형제가 아래 사람들을 시켜 수소문케 한 것은 은밀한 비 밀을 캐내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있었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 즉시 기록하곤 했던 것이오.
그리하여 무릇 협객도에 의해 소멸된 문파나 방회는 대개 극악무도한 자들임을 밝혀두려는 것 이었소……] 그리고 그는 잠시 여유를 두고 여러 사람들을 돌아본 후에 다 시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좋은 일을 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시시비비를 분 명히 가리고 있었소.
불초와 목 형제는 이 섬에 살고 있는 협객 이란 한마디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 고 있었소……] 이어 그는 길게 탄식하고 재차 말을 이어갔다.
[애석하게도 협객도의 능력에 한도가 있어 천하의 악한 무리들 을 모조리 없애지 못했던 것이 아쉽소.
따라서 여러분들은 협객 도에서 명문정파나 의로운 일을 한 사람들을 죽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시오.
있다면 서슴치 마시고 말씀을 해보시오.] 한참 기다렸으나 그 누구도 응수하지 못했다.
용 도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죄값을 받은 것이 지요……] 위덕 선생은 불쑥 입을 열었다.
[하북 통주(通洲) 섭가권(攝家拳)의 섭립인(攝立人)은 별 악한 짓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 집안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소?] 용 도주는 한 권의 장부를 꺼내더니 가볍게 한 번 던지면서 말 했다.
[위덕 선생께서는 한 번 보시지요.] 그 장부는 천천히 백자재에게로 날아왔다.
백자재는 손을 뻗쳐서 그 장부를 잡으려고 했을 적에 뜻밖에도 그 장부는 갑자기 허공에서 순간적으로 멈칫하더니 별안간 곧장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는데 백자재의 가운데 손가락 두 자 밖에 서 탁자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백자재는 급히 손을 뻗쳐서는 덥썩 거머쥠으로써 겨우 장부를 받아들게 되어 그 장부가 탁자 위의 죽대접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엷은 책자가 손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퍽이나 묵직 한 감을 안겨주어 불현듯 그는 속으로 치솟는 놀라움을 금할 수 가 없었다. '저 사람이 한 권의 두께가 몇 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장부를 아무렇게 던지는데도 날아드는 기세가 무척 느리면서 힘이 지극 히 세찰 뿐만 아니라 멀고도 가까운 거리를 마음대로 조종하며 변화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드니 실로 전설중에서 듣던 꽃을 날려 적을 공격하고 잎을 따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재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저와 같은 손힘으로 암기를 내던진다면 그 누가 피하거나 막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암기에서 제일이라 고 자처했지만 암기 제일이라는 칭호도 반드시 떼어놓아야겠구 나.' 그런데 그 장부를 보니 그 위에는 하북통주섭가권(河北通洲攝 家拳)이라는 일곱자가 씌어 있었다.
장부를 들추자 첫번째 줄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엄청난 것이었다.
[경신(庚申) 오월 초이틀 섭종태(攝宗台)는 창주(滄州) 학가장 (학家莊)에서 두 사람을 간음한 후 살해했으며 서찰을 남겨 화 를 흑호채(黑虎寨) 도적들에게 전가시켰다.] 그리고 두번째의 줄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경신 십월 열이레 날 섭종봉(攝宗峯)은 제남부(濟南府)에서 조그만 일로 유문질(劉文質)의 큰아들을 때려 상처를 입혔고 바 로 그날 밤 유씨 온 집안 열세 사람을 죽여 입을 봉했다.] 섭종태와 섭종봉은 모두 다 섭 노권사의 아들로서 강호에서는 퍽이나 의협심이 높다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는데 남모르게 온 갖 못된 짓을 하였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백자재는 그와 같은 글을 읽어본 이후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러한 일들은 당사자가 죽고 없으니 증인이 될 사람이 없는 이상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없지 않소이까? 불초는 감히 두 분의 도주가 일부러 무고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였다는 것 이 아니라 협객도에서 밖으로 내보낸 제자가 사람들의 말을 잘 못 들을 수도 있지 않으냐 하는 것이외다.] 장삼은 갑자기 입을 열고 말했다.
[위덕 선생께서는 믿을 수가 없다면 아무쪼록 다시 한 가지의 물건을 더 보아주시지요.] 그리고 몸을 돌려서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나왔는데 나오는 즉시 오른손을 번쩍 쳐들어서는 한 권의 엷은 책자를 천천히 백 자재에게 던졌다.
그 책자 역시 백자재를 향해 날아오더니 백자 재의 몸 앞 두 자쯤 되는 곳에서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는데 그 수법이 용 도주와 다를 바가 없었다.
백자재는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라 즉시 손을 뻗쳐서는 낚아챘는데 손아귀로 들어올 때의 그 무게는 조금전 용 도주가 장부를 던졌을 때보다 훨씬 가벼운 느낌을 주었다.
백자재는 그 책자를 받아서는 펼쳐보니 섭씨 집안에서 사용하 는 한 권의 장부였다.
백자재는 젊었을 적에 섭 노권사와 친했던 관계로 그의 필적을 알아볼 수가 있었는데 그 장부는 확실히 섭 노권사가 친히 쓴 것인데 모든 조항은 은자가 들어오고 나간 것을 기록하고 있었 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가살(可殺)이라는 두 주사로 쓴 글씨의 주해가 달려 있는데 그 주해가 달린 항목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 다.
[초여드레 주가촌(周家村)의 밭 팔십세 마지기 이푼을 사들이 게 되었는데 가격은 은자 칠십 냥이었다.] 백자재는 속으로 생각했다. '칠십 냥의 은자에 팔십여 마지기의 밭을 산다는 것은 이 밭값 이 너무나 싼 것이다.
이 가운데는 틀림없이 강요해서 사들인 사정이 있을 것 같구나.' 그리고 그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다른 한 항목에도 가 살이라는 두 주사로 쓴 글씨의 주가 달려 있었는데 그 항목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보름날에 통주 장현존(張縣尊)이 은자 이천오백 냥을 보내왔 다.] 백자재는 속으로 고개를 내둘렀다. '섭립인은 정말 명성이 자자한 협의도의 사람인데 어째서 관부 (官府)의 돈과 재물을 받아들이는 것일까? 이것은 십중팔구 탐 관오리와 결탁하여 선량한 백성들을 압박하고 천리를 거슬리는 짓거리를 한 것이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는 계속 장부에 적힌 내용들을 훑어보게 되었는데 가 살이라는 붉은 주사의 글씨로 주를 단 것이 오육십 곳은 되었 다.
백자재는 이 두 자의 주를 단 사람이 바로 장삼이 아니면 이사 가 한 것으로 보고 불현듯 장부를 덮으며 장탄식하며 입을 열었 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그 얼굴은 알 수 있어도 그 마음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이 섭립인은 정말 죽어 마땅하구료! 이 백가 가 만약에 일찍 몇 년 전에 이와 같은 장부를 보았더라면 협객 도에서 설사 그에게 손을 쓰지 않고 사정을 두었다 하더라도 이 백가가 그의 전 집안 사람을 죽였을 것이외다.] 그러면서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장삼 앞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장부를 들어서 건네어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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