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77편 (77/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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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77편 (7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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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복했소, 탄복했소!] 그리고 그는 머리를 돌리고 용 도주와 목 도주를 바라보게 되 었는데 우러러보는 감정이 불현듯 치솟아오는 것을 느끼며 속으 로 생각했다. '협객도 문하의 고제자들은 비단 무공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일을 처리함에 있어도 용이주도하고 공정함을 잃지 않는구나! 어떻게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 상을 내리는지 알 수가 없지만 악한 짓을 한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공정하게 벌을 내리는 것을 보면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 상을 내리는 것도 역시 적절한 것 이다.
상선벌악이라는 이 네 글자는 정말 명불허전이로구나.
우 리 설산파의 문하제자들은 사람수가 많다고 해도 장삼과 이사와 같은 인재를 전혀 찾아볼 수가 억지 않은가? 아, 대종사라는 이 칭호를 이 백자재에게 붙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남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용 도주는 마치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본 듯이 미소를 띄우며 입 을 열었다.
[위덕 선생께서는 앉으시지요! 선생께서는 서역에 오랫동안 살 고 계셨기 때문에 중원의 그 의관금수(衣冠禽獸)의 소행을 대부 분 알 수가 없었을 터이니 선생을 탓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요.] 백자재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때 정불사가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협객도에서 과거 수십 년 동안 사람을 죽인 것은 모 두 다 그 사람들의 죄 값을 치룬 것이며 무림의 동도(同道)들을 초청해서 함께 무공을 연구하자는 것이 아니겠소?] 용 도주와 목 도주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소이다!] 정불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섬으로 온 무림의 고수들을 모조리 해쳐 죽였고 그들의 시체마저도 그들의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았 느냔 말이오?] 용 도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불 선생, 그 말은 틀렸소.
길에서 떠도는 소문이란 모두 다 믿을 것이 못되지 않겠소?] 정불사는 반문했다.
[용 도주의 말씀대로라면 그 무림고수들이 하나도 죽지 않았단 말이오? 하하하! 가소롭구나 가소로워!] 용 도주는 앙천대소하더니 역시 똑같은 말을 했다.
[하하하! 가소롭군 가소로워.] 정불사는 아연해져서는 물었다.
[뭐가 가소롭다는 것이오?] 용 도주는 웃으며 응수했다.
[정 선생은 폐도의 귀빈이오.
정 선생이 가소롭다고 말씀을 하 니 불초로서도 귀빈의 말씀에 맞장구를 치자는 뜻에서 가소롭다 고 한 것이외다.] 정불사는 퉁명스럽게 그 말을 받았다.
[삼십 년 동안 협객도로 와서 동지팥죽을 먹게 된 무림고수들 은 삼백 명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백 명은 됨직 할 것이오.
용 도주께서는 감히 그들이 아직도 건재하다고 말씀을 하시니 그야 말로 가소롭지 않소?] 용 도주는 천천히 말했다.
[무릇 사람이라면 천수가 있는 것이외다.
제 수명이 다하게 되 었을 때에 대라금선(大羅金仙)이 아닌 이상에야 어찌 죽지 않을 수가 있겠소? 다만 우리 협객도에서 손을 써서 해쳐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만 분명히 해둘 뿐이오.] 정불사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방고라는 여인이 이십 년 전에 이 협객도로 왔다는 소문을 들었오! 그 여자가 아직도 살아 있소?] 용 도주는 되물었다.
[그 여인은 어느 방파의 장문인이며 나이와 성씨는 어떻게 되 오?] 정불사는 우물쭈물했다.
[성이 무엇인지 잘……모르겠소.
본래……는 정(丁)씨였는데… …] 그러자 그 복면을 한 여인이 갑자기 뾰족한 음성으로 입을 열 었다.
[바로 저 정가의 딸이지! 그 아가씨는 저의 성을 따르지 않고 어미의 성을 따라 매(梅)씨 성을 썼죠] 정불사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지기 싫어하는 성미인지라 정 불사는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흐흐흐……매가면 매가지 왜 야단이야!] 이어 그는 용 도주에게 다시 말했다.
[나이는 약 사십세 정도……] 복면여인은 다시 그 말을 가로챘다.
[약이 뭐야? 꼭 설흔 아홉이에요.] 그리고 어느 문하의 장문인이 아니고 매화권의 명인이라 협객 도에 왔을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목 도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매화권이라? 그렇다면 협객도에 올 자격이 없소.] 복면여인은 뾰족한 음성으로 항의했다.
[왜 자격이 없어요? 매화권의 대표격이라고 나를 부른 것이 아 니냔 말이에요?] 목 도주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격이 없소.] 용 도주는 설명하듯 입을 열었다.
[매 여협, 목 형제의 말은 나의 말처럼 수다스럽지 않고 간결 한데 그 뜻은 그대를 초청한 이유가 매 여협의 가전무공인 매화 권에 있지 않고 이년 전 그대가 새로이 창안한 검법에 있다는 것이오!] 복면여인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내가 새로이 창안한 검법을 남에게 펼쳐보인 적이라곤 한번도 없는데 당신네들이 어떻게 아셨죠?] 그녀의 음성은 매우 뾰족하고 날카로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
놀람이 깃든 그녀의 말은 더욱 귀가 따 가울 정도였다.
용 도주는 빙그레 웃고는 두 명의 제자들에게 각기 손가락질했 다.
두 명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황삼을 걸쳤고 한 사람은 청삼 을 걸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몇 걸음 나서더니 허리를 구부리고 영을 받 들 자세를 취했다.
용 도주는 천천히 말했다.
[너희들은 매 여협이 새로이 창안한 검법을 펼쳐보여라……] 그리고 나서 그는 매씨 성의 여인에게 시선을 한 번 던졌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완전치 못한 점은 매 여협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해라.] 두 명의 제자는 즉시 대답했다.
[네.] 그리고 그들은 벽에 붙여놓은 한 탁자 옆을 다가갔다.
황삼의 제자는 탁자 위에서 한 자루 철검을 뽑아들었다.
청삼의 제자는 한 자루 연편을 쥐고서는 매씨 성을 가진 여인 에게 허리를 굽혀보였다.
[매 여협께서는 많은 가르침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세를 가다듬고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싸우기 시작했다.
대청의 군호들은 견문이 넓은 사람들이었으나 황삼의 제자가 펼치는 검법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매씨 여인은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거 이상하군! 당신네들이 언제 훔쳐 배웠지?] 석파천은 몇 초를 본 이후 마음속으로 짚히는 바가 있었다. '청삼인이 펼치는 것은 정불사 할아버지의 금룡편법이 아닌 가?' 아니나 다를까 정불사가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나섰다.
[이것 보시오! 저 검법은 바로 나의 금룡편법을 제압하려고 창 안한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이유요?] 청삼의 제자는 아닌게 아니라 금룡편법을 썼다.
일 초 일 식은 황삼 제자의 신기한 검법에 제압을 받고 있었 다.
복면의 여인은 냉소를 흘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정불사는 보면 볼수록 화가 나서 호통을 내질렀다.
[그까짓 검법으로 나의 금룡편법에 대항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한 수 뒤떨어지는 걸!] 그러자마자 황삼의 제자가 검법을 일변시켰다.
초식마다 야릇하고 이상했으며 매우 매서운 데가 있었다.
그야말로 수법이 약간 비열하다 하겠으며 명가의 풍도를 전혀 엿볼 수가 없었다.
정불사는 다시 부르짖었다.
[이건 엉터리 없는 짓이군! 그게 무슨 검법이냐? 쳇 이거야말 로 암고양이와 같은 여편네의 검법이라고 해야겠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여간 놀라지 않았다. '만약 진짜 그녀와 대적하게 되었을 때 이와 같은 검초를 대하 게 된다면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 같군.' 한데 그와 같은 검법은 악랄하고 음흉한 데가 있어 암습에 사 용한다면 매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광명정대한 싸 움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정불사는 속으로 놀라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기뻐했다. '이와 같은 야비하고 악착같은 초식이 갑자기 나에게 펼쳐진다 면 정말 받아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한번 보고 난 이후에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방문좌도(旁門左道)의 수법이라는 것은 한번으로 들통이 나기 마련이니까.' 풍랑, 고삼 낭자, 여정평, 범일비 등 네 사람은 정불사에게 쓴 맛을 단단히 본지라 금룡편법이 상대방의 무궁무진한 괴초에 제 압당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는 격정에 큰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정불사는 노해 부르짖었다.
[좋긴 뭐가 좋아?] 풍랑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정불사 나으리의 금룡편법이 좋다는 것이외다.] 고삼 낭자는 웃으며 말했다.
[금룡편법은 정말 절묘하군! 울화통이 터져 죽겠네, 울화통이 터져 죽겠네……] 그녀는 세 번이나 울화통이 터져 죽겠다고 부르짖었다.
지난번 정불사가 반점에서 도전을 해왔을 때 하던 말투 그대로 를 모방한 것이었다.
청삼의 제자는 금룡편법을 태반이나 펼치게 되었는데 별안간 동글게 원을 한 번 그렸다.
황삼의 제자가 즉시 초식을 거두었다.
청삼의 제자가 연편을 탁자 위에 놓고 맨손으로 황삼의 제자와 싸우기 시작했다.
몇 수 보고 나서 석파천은 속으로 다시 한번 의아한 생각을 금 할 수 없었다. '정씨 집안의 금나수법이 아닌가?' 알고보니 청삼의 제자가 펼치는 것은 정불삼의 금나수법이었 다.
봉미수(鳳尾手)니 호조수(虎爪手)니 옥녀점침(玉女점針), 야차 쇄후(夜叉鎖候) 등의 초식이었다.
이것들은 정당이 바로 양자강 배 위에서 그에게 가르쳐 주었 다.
정불사는 이를 보고 더욱더 화가 나서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이 매가야, 우리 형제들에게 도전한 것 같은데 무슨 목적이 있느냐? 이거야말로……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그는 마음속으로 매씨라는 여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 자기에게 자기 언니가 버림받게 된 원한을 갚으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황삼의 제자가 펼치는 검법은 악랄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정파 의 사람들이 공격을 피하는 사타구니나 눈을 쑤시고 엉덩이를 찌르는 등의 수법을 조금도 꺼리지 않고 펼쳐냈다.
청삼의 제자는 급급히 그런대로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별안간 황삼의 제자가 검을 옆으로 들어 아랫쪽을 베어왔다.
청삼의 제자는 번쩍 몸을 날려 피했다.
황삼 제자는 손에 든 철검을 내던지면서 두 손으로 청삼 제자 의 허리께를 껴안고 말았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려서는 그의 목 덜미를 콱 깨물었다.
정불사는 놀라 부르짖었다.
[어이쿠!] 바로 자기의 목을 물린 것 같은 심정이 된 모양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와 같이 껴안고서 콱 깨문다면 자기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초식의 배합이 교묘했던 것이다.
청삼의 제자는 두 팔을 놓고 황삼의 제자와 함께 정불사와 복 면의 여인에게 허리를 굽혀보였다.
[정 노선배님 그리고 매 여협께선 저희들의 잘못된 점을 가르 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 그들은 용, 목 두 도주에게 절을 하고 철검을 집어들고서 는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매씨 여인은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당신네들이 몰래 내가 창안한 검법을 팔성이나 배워가다니 정 말 가상한 노릇이에요.
그러나 그 검법을 저 자가 보는 앞에서 펼쳐보였으니 그것은……그것은……] 정불사는 노해 부르짖었다.
[그와 같은 재간은 진정 검법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엉망진창 이라고 할 수 있소.
도무지 체신머리 없는 검법이라 할 수 있으 며 그 누구라도 배울 수 있을 것 같군!] 백자재는 불쑥 입을 열었다.
[뭐가 체신머리가 없어? 어찌 되었든 간에 너희들 정가가 갑자 기 그와 같은 검법에 부딪치게 되었다면 손발이 어지러워진 나 머지 몸뚱아리에 열대여섯 개의 구멍이 나고 말 걸!] 정불사는 노해 반박했다.
[어디 네가 나와서 시험을 해보아라!] 백자재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너는 매 여협의 적수가 못돼! 그녀가 너의 목을 껴안고 깨물었다면 너의 재간이 십배 더 강하다 하더라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매씨 여인은 날카로운 어조로 따졌다.
[누가 당신보고 칭찬을 해달라고 했나요? 그런데 나와 사소취 를 견주어 볼 때는 어때요?] 백자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멀었어! 나의 부인은 이곳에 없지만 내 부인의 제자는 협객도 에 와 있거든……] 그러더니 그는 석파천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봐 손자사위, 네가 나가서 저 여인과 한번 겨루어 보도록 해라.] 석파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씨 여인은 물었다.
[그대가 사소취의 제자란 말이오?]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매씨 여인은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되어서 저 사람의 손자사위가 되었지? 아래 위 도 없는 쌍놈들처럼 엉망진창이군.
꼭 개잡종들이 하는 짓 같 군!]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나는 개잡종이오.] 매씨 여인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런데 곧이어 우습다는 듯 날카로운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목 도주는 무뚝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젠 되었소!] 단 한마디였으나 매우 위엄에 찬 어조였다.
매씨 여인은 흠칫하더니 대뜸 웃음을 멈추었다.
용 도주는 곧이어 천천히 말했다.
[매 여협의 그 검법은 솔직히 말해 정씨 집안의 무공처럼 절묘 하지는 못하오.
하지만 스스로 새로운 초식을 창안해낼 수 있었 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자질이 특출한 것만은 사실이오……] 그리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 초식들 가운데는 희안한 검초가 있었소.
그렇기 때문에 우 리들은 고시의 도해에 새로운 의견을 제출해 주시길 바라는 뜻 에서 폐도로 모셔온 것이외다……] 이어 그는 웃으면서 끝을 맺었다.
[매화권에 대해서는 가전지학이니 논평은 그만두기로 하지요.] 매 여협은 약간 궁금하다는 투로 물었다.
[그렇다면 매방고(梅旁姑)는 협객도에 오지 않았나요?] 용 도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오지 않았소이다.] 매 여협은 맥없이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나의 언니는……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바로 하나밖에 없는 딸 을 걱정했었는데……] 용 도주는 오른쪽 첫번째에 서 있는 황삼의 제자에게 물었다.
[네가 저 매 여협 대신 한번 알아보도록 해라.] 그 제자는 즉시 대답하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몇 권의 장부를 가지고 나왔다.
몇 장 펼쳐보더니 손가락으로 한 줄을 가리키며 읽어내렸다.
[매화권의 장문인 매방고의 친아버지의 성은 정씨이다.
즉 정 ……] 거기까지 읽던 그는 갑자기 얼버무렸다.
모든 사람들은 정불사의 체면이 서지 않을까봐 그가 얼버무린 것을 물론 알고 있었다.
[어릴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무공을 익히게 되었으며 십팔 세 되는 해에……그후 하남성 서쪽에 있는 노씨현(盧氏縣) 동쪽에 위치한 웅이산(熊耳山) 고초령(枯草嶺)에 은거하고 있음.] 정불사와 매 여협은 동시에 몸을 일으키며 일제히 부르짖었다.
[그녀가 웅이산에 있단 말이오? 어떻게 알고 있소?] 황삼의 제자는 말했다.
[본래 나는 모르나 장부에 그렇게 적혀 있소.] 정불사는 말했다.
[나도 모르는 사실이 어떻게 그 장부에 기록되었느냐 말이오?] 용 도주는 낭랑히 말했다.
[협객도에는 적지 않은 인재가 있소.
모두 다 무림정의를 지키 겠다는 것이 소임으로 되어 있고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상 을 내리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벌을 내려 공평무사하게 조처 하고 있소……] 그리고 그는 근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무림친구들이 하는 행위를 우리들이 자세히 기록하여 훗날에 참고가 되도록 한 것이오.] 매씨 여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알고보니 그랬었군! 그렇다면 그 에는……웅이산의 고초령에 있겠군……] 이어 그녀는 정불사를 바라보았다.
정불사 역시 기쁜 빛을 띄웠으나 곧 침울한 표정이 되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매씨 여인 역시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매방고의 행방을 알게 되었으나 한평생 다시는 그녀 를 만나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용 도주는 그와 갈은 그들의 기분을 아는지 다시 좌중을 돌아 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마음속에 어떤 의문이 있으면 솔직히 털어놓아 보도 록 하시오.] 백자재는 입을 열었다.
[용 도주, 고시의 도해를 우리에게 보이기 위해 우리들을 초청 해 온 것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물건이오? 우리들에게 보여주실 수 없겠소이까?] 용 도주와 목 도주는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용 도주는 일어서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고명하고 박식한 여러분들에게 가르침을 받으 려고 하던 첨이었소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네 명의 제자가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병 풍 양쪽 가장자리를 잡고 한 옆으로 천천히 밀었다.
그러자 기다란 통로가 나타났다.
용, 목 두 도주는 일제히 말했다.
[자,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그리고 나서 그들은 앞장을 섰다.
군웅들은 속으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통로 안에는 반드시 살인기관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안색이 변했다.
백자재는 몸을 일으켜서는 석파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손자사위, 우리 두 사람이 선봉을 설까?]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요.] 이윽고 백자재는 그의 손을 잡고 앞장을 서서 나아갔다.
먼저 통로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는 소리내어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그러나 웃음속에는 약간 두려운 듯 떨리는 기미가 보였다.
나 머지 사람들도 에라 모르겠다 이제 액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차례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십여 명은 여전히 탁자 옆에 앉아서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협객도의 제자들과 하인들도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버려두 었다.
백자재 등은 십여 장쯤 나아가게 되자 한 석문 앞에 도달했다.
문 위에는 커다란 글씨로 석자가 씌어 있었다.
바로 협객행(俠客行)이라는 석 자였다.
한 명의 황삼 제자가 앞으로 나와 석문을 열었다.
[이 동굴 안에는 스물 네 곳의 석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음 내키는대로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보기에 역겨우시면 동굴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도록 하십시오.
음식 등은 석실에 모조리 준비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잡숫도록 하시고 사양하지 마십시 오.] 정불사는 냉소했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라니! 정말 겸손하기 짝이 없군.
하지 만 마음대로 섬을 떠날 수는 없겠지? 그렇지 않소?] 용 도주는 소리내어 껄껄 웃었다.
[하하하……정 선생은 어째서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시오? 여러 분들은 협객도에 온 것은 스스로 원해서 온 것이 아니겠소? 따 라서 떠나려 할 때 그 누가 억지로 붙잡을 수 있겠소……] 그리고 그는 매우 엄숙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해변가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갖추어져 있으니 언제든지 떠나 고 싶으면 떠나도록 하시오.] 군웅들은 어리둥절해졌다.
협객도에서 이토록 점잖게 나오리라 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 몇 사람이 일제히 질문을 던졌다.
[우리들이 당장 가겠다면 어쩌시겠소?] 용 도주는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상관이 없소.
여러분들은 나와 목 형제가 어떤 사람인 줄 아시오? 우리들이 손님에 대해서 대접이 소홀한 것만 생각해 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판인데 어찌 귀빈을 억지로 붙잡아 둘 수 있겠느냔 말이오.] 군웅들은 그 말을 듣자 마음이 놓였다. '그렇다면 고시의 도해가 무엇인지 보고 즉시 떠나도록 하자.
억지로 귀빈을 붙잡아 두지는 않겠다고 했으니 그의 신분으로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뭇 사람들은 석실 안으로 줄지어 들어서게 되었다.
동쪽에는 거울처럼 촛불이 주위를 환희 밝혀주고 있었다.
벽에는 그림과 글자가 있었다.
석실에는 이미 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벽을 주시한 채 깊 은 생각에 잠겨 있고 어떤 사람들은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두 눈을 감고 입속으로 무어라 중얼중얼했다.
그런데 서너 사람이 큰소리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백자재는 별안간 한 사람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놀라 부르짖었다.
[온 삼형(溫三兄), 자네가……어째서 이곳에 계신가?] 석실 안에서 왔다갔다하며 서성이고 있는 흑삼의 노인은 온인 후(溫人厚)라는 사람이었다.
산동 팔선검(八仙劍)의 장문인인데 백자재와의 교분은 대단히 돈독한 편이었다.
한데 그는 백자재를 발견하더니 그렇게 놀라워하는 빛도 없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아니? 어째서 오늘에야 이곳에 왔나?] 백자재는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십 년 전 자네가 협객도의 사람에게 팥죽을 대접받는답시고 끌려갔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자네가……이미 세상을 등진 것으 로 알고 크게 한바탕 운 적이 있었네.
그런데 지금……] 온인후는 어리둥절해져서 말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상승(上乘)의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데 언 제 죽었다는 것인가? 애석하게도 자네가 늦게 왔어.
저것 보라 구! 첫번째의 구절인 조객만호영(趙客만胡纓)이라는 글귀 가운 데 호(胡)자의 주해(注解)를 보게.
호라고 하는 자는 서역의 사 람인데 신당서(新唐書) 승건전(承乾傳)에서는 수백 명이 호인의 말을 배우고 상투를 틀고서 비단을 잘라 무의(舞衣)를 만드니… …] 그러면서 그는 석벽의 조그만 글씨를 가리켰다.
조그만 글씨는 바로 주해였다.
백자재는 갑자기 다정한 친구를 만나게 되자 매우 기뻤다.
그 간의 사정을 묻고 싶었고 또한 섬의 생활이 어떤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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