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78편 (78/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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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78편 (7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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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삼형, 이십 년간의 생활이 어떠했소? 그런데 어째서 산동 의 집안에다가 편지연락도 하지 않았지?] 온인후는 눈을 부릅떴다.
[자네는 무슨 말을 하는가? 협객행이라는 이 고시의 도해는 고 금이래 가장 광범위하고도 절묘하며 심후한 무학의 비결을 내포 하고 있단 말일세! 우리들이 온갖 지혜를 다 짜낸다 하더라도 이 가운데 열의 한 둘도 깨우치지 못할 형편이 아닌가? 그런데 어느결에 세상의 속된 일에 신경을 쓰겠나……]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그림 중의 이 사람을 보게.
결코 연(燕) 나라와 조(趙) 나 라의 슬프고도 기개높은 노래를 부르는 호걸이 아닐세! 그런데 어째서 조객(趙客)이라고 칭하게 되었을까? 이 한마디를 해석하 는데도 이와 같은 중요한 관건을 먼저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네.] 백자재는 고개를 돌려 벽에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벽에 그려진 젊은 서생의 왼손에는 부채가 들려 있었고 오른손은 휘둘러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매우 우아하면 서도 소탈해 보였다.
온인후는 다시 설명을 했다.
[백 형, 나는 최근에 이 그림의 사람이 우아하고 풍류적이니 본래 음유한 기상이어야 된다고 터득하게 되었는데 주해에는 반 드시 위맹하고 강맹한 수법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하네.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바로 음유를 체(體)로 하고 양강을 용 (用)으로 한다는 것으로 별 어려울 것이 없지……] 이어 그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일세 체(體)로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며 용으로 한다는 것은 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이 가운데는 실 로 지극히 큰 학문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네.] 백자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온 형, 이 젊은이는 나의 손자사위인데 이 사람의 인품 이 어떤가 보게나……] 그리고 그는 석파천에게 말했다.
[이 녀석아 온 셋째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려라.] 석파천은 가까이 다가가 온인후에게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온 셋째 할아버지!] 온인후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아 좋아……] 그리고 나서 그는 석파천을 제대로 한번 쳐다보지도 않고 왼손 으로 그림의 사람 자세를 흉내내었다.
그런가 하면 오른손은 갑자기 뻗쳐 휙 하니 일 장을 후려쳤다.
[왼쪽은 음이고 오른쪽은 양이니 아마도 이런 이치가 아닐까?] 석파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온 셋째 할아버지의 장력이 대단하구나.' 백자재는 벽에 그린 주해를 읽고 있었다.
[장자(壯子)는 검편(劍篇)에서 태자가 말하되 우리 왕이 본 검 사는 머리카락을 흐트리고 있었고 귀밑부리의 머리카락이 불거 져 있었으며 관(冠)을 내려썼는데 만호지영(만胡之纓) 단후지의 (短後之衣)라 하더라.
사마주(司馬注) 가로되 만호지영은 조잡 한 갓끈으로 논하는 것은 문맥이 통하지 않는다 하더라.
온 형 만호(만胡)라는 두 글자는 함께 설명해야 할 것이네……] 그리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정색을 하고 말했다.
[만호(만胡)는 바로 조잡하고 간단하다는 것이며 만호영(만胡 纓)은 그의 머리에 지니고 있는 갓끈이 결코 정묘하고 운치가 없다는 것이지 결코 그가 오랑캐의 갓끈을 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세.
따라서 이 호(胡)자는 멍청하다는 뜻인 호도(胡 塗)의 호자이지 서역의 오랑캐 호자가 아니란 말일세……] 온인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네.
자네는 다시 다음 한 마디의 주해를 보게.
좌사 위도부(左思魏都賦)에서 가로되 만호의 영이라고 했으며 주해에 서는 선(銑)이 만호는 무사의 갓끈이라고 하고 있네……] 그리고 그는 잠시 한숨을 돌린 이후 다시 급한 어조로 말을 이 었다.
[이것은 일종의 무사들이 사용하는 갓끈을 말하는 것인데 조잡 할 수도 있지마는 또한 정교하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일세.
몇 년 전에 나는 양주(凉州) 과의문(果毅門)의 장문인인 강곤 (康崑)에게 가르침을 받았네.
그는 서역의 오랑캐인 즉 호인(胡 人)인데 호인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네.
그는 호인의 무 사들의 관(冠)에는 갓끈을 달고 있으며 그 모양은 이렇다고 했 네……] 그러면서 그는 약간 무릎을 꿇고 쭈그리고 앉아서는 손가락으 로 땅바닥에다가 그림을 그려보이는 것이었다.
석파천은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듣고 있었으나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석벽에 그려진 주해의 글씨를 한 자도 알지 못하는 터라 반나절 동안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지만 아무런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어슬렁거리며 두번째의 석실로 들어섰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검기가 어지럽게 번쩍이는 가운데 일곱 쌍 의 각기 장검을 쓰는 사람들이 서로 겨루고 있었다.
검날이 마 주 부딪치면서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잇달아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펼치는 검법은 각기 다 다른 듯했다.
그러나 변화가 기묘하기 이를 데 없어 하나같이 지극히 절묘한 검초인 것 같았다.
그런데 두 사람만은 수 초를 겨루더니 즉시 그만두었다.
그리 고 그들 가운데 한 허연 수염의 노인이 말했다.
[노제, 방금 그 일 검은 기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으나 이 검법의 요지가 오구상설명이라는 다섯 글자에 있다는 것을 기억 해야 하네.] 그리고 그는 길게 숨을 내쉬더니 다시 정중한 얼굴을 하고서는 말했다.
[오구라는 것은 구부러진 칼을 이야기 하는 것일세.
검을 뻗쳐 내게 되었을 때에 어디까지나 칼이 구부러졌다는 만도(彎刀)라 는 두 글자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았을 적에는 본 래의 뜻을 상실하게 되는 것일세.
그러니까 도법으로 검을 펼치 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똑바른 검을 구부러진 칼처럼 사용하여 똑바른 가운데 구부러짐이 있고 구부러짐 가운데 똑바름이 있어 야만이 오구상설명이라는 다섯 글자의 종지(宗旨)를 찾을 수가 있는 것이라네.] 그러자 그와 맞섰던 검은 수염의 노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님, 다른 한 가지의 요점을 잊고 있군요.
벽의 주해를 보십 시오……] 그리고 그는 벽쪽을 바라보며 손가락질까지 해가면서 설명을 했다.
[포조악부(鮑照樂府)라고 했고 또한 이가(李가)의 시에서는 남 아하불대오구(男兒何不帶吳鉤)라고 했소.
이 패(佩)자와 이 대 (帶)자야말로 시에서 가장 요긴한 관건이 있는 것이외다.
오구 는 구부러진 칼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되 결코 꺼내서 반드시 사용한다고는 볼 수가 없소.
그것은 검법의 가운 데에 은연중 오구의 기세를 갈무리하고 있어야만 뜻대로 둥글게 휘두르기도 하고 돌려서 휘두르기도 할 수 있으며 결코 정말로 구부러지게 한다는 것은 아니외다.] 그러자 그 허연 수염의 노인은 그 말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네.
오구상설명(吳鉤霜雪明)은 정묘한 광채 가 번쩍번쩍 하는 것이 결코 집에 꽂혀 있는 오구가 아닐세.
예 리한 무기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도 집에 꽂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어찌 도리가 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석파천은 두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았으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 어 다른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때 석파천이 가까이 다가간 두 사람은 매우 빠르게 싸우고 있었다.
한 사람의 검초는 매우 날카로워 연신 공세만 펼치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장검으로 끊임없이 원을 그려대고 있었다.
원을 그려대고 있는 사람은 상대방의 검초를 모조리 밀어내고 있는 판국이었다.
별안간 창 하는 소리와 함께 쌍검이 일제히 부딪치게 되었고 뚝 잘라져 나갔다.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체구가 우람하고 얼굴이 거무틔틔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저 벽의 주해에서 백거이(白居易)가 물경직절검(勿輕直折劍) 하니 유승곡전구(猶勝曲全鉤)라고 했다고 했소.
그러니 내가 검 을 부러뜨린 것이 벽 주해의 원뜻과 크게 부합된다고 생각하 오.] 한데 이 우람한 체구의 사내를 상대로 겨루었던 사람은 늙은 도사였다.
석파천은 그가 바로 상청관의 장문인 천허 도인인 것을 알아보 았다.
석파천은 속으로 흠칫했다.
그가 자기를 발견하게 되면 화를 내게 될까봐 약간 걱정이 된 것이었다.
그런데 천허 도인은 석파천을 발견하지 못한듯 손에 반 토막의 단검을 들고 고개를 저으며 체구가 우람하고 얼굴색이 거무틔틔 한 사내의 말을 반박했다.
[오구상설명이 주가 되고 유승곡전구라는 글귀는 객(客)에 해 당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러니 중뿔나게 손님이 주인자리를 배 앗아 차지한다는 것은 결코 정도가 아니오.] 석파천은 다시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고 서쪽 머리의 일남일녀를 바라보았다.
이 일남일녀는 검으로 겨루고 있었는데 두 사람 다 매우 느릿 하게 초식을 펼치고 있었다.
매번 초식을 펼치는 것이 그저 시 늉만하는 꼴이었다.
그런데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한동안 생각해보기도 했다.
여자는 때때로 일 초의 검법을 여덟 아홉 번이나 펼쳐본 후에 도 쉬려고 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두 사람은 부부가 아니면 남매지간이거나 사남매가 되는 사이였다.
서로의 정분이 지극하여 합심협력하여 연구를 하는 까닭에 전 혀 언쟁을 벌이지 않는 것 같았다.
석파천은 그들 두 사람에게서 어느 정도 절묘한 검법을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이때 남자는 온갖 정신을 모으고 검을 찔렀다가 비스듬히 내려 쳤다가 했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가로저으며 맥빠진 얼굴이 되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안 되는군.] 여자는 그를 위로했다.
[원(遠) 오라버니, 오 개월 전보다 그 일 초는 크게 진보가 있 어요.
우리는 다시 주해의 오구라는 것은 오왕(吳王) 개로(개 盧)의 보도(寶刀)라고 한 말을 연구해 보아야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오왕 개로의 보도가 다른 사람의 보도와 어떻게 다르 다는 것인지요?] 남자는 장검을 거두고 벽의 주해를 읽어 내려갔다.
[오월춘추(吳越春秋)에서는 개로가 보검 막사(莫邪)를 만들어 내자 백성들에게 다시 금구(金鉤)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고 상 금으로 백 냥의 금을 하사한다고 공포하게 되었다.
나라에서는 금구를 만드는 자가 무척이나 많았다.
그런데 왕의 중상(重賞) 에 욕심을 낸 자가 있어 두 아들을 죽이고 그 피로 달구고 달구 어 두 금구를 만들어서 개로에게 받쳤다고 하더라……] 구절을 다 읽고 난 남자는 얼굴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청(청) 누이, 이 고사(故事)는 너무나 잔인해 왕이 내리는 백 냥의 상금을 노리고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이다니 말이야.] 여인은 침착하게 말했다.
[저의 짐작으로는 잔인이라는 두 글자가 바로 이 일 초의 요결 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손을 쓰게 되었을 때 사정없이 손 을 쓰되 친아들이라 하더라도 죽여야 한다 하는 뜻인가봐요.] 그러나 그녀 역시 자신이 없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렇지 않을 때 벽의 주해가 어째서 그와 같은 부분만 특별히 강조했겠느냔 말이에요.] 석파천은 이 여인이 사십여 세밖에 되지 않으며 용모가 매우 청수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친아들을 죽인다는 대목에 이르러서 전혀 처연해지는 표정이 엿보이지 않아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 않아서 얼 구을 돌려 석벽쪽을 바라보았다.
벽에는 촘촘하니 글자로 가득 차 있었다.
수백 수천 자는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떤 획은 한 자루의 장검을 연상케 하고 있었으며 장 검을 연상케 하는 획이 이삼십 획은 되었다.
그와 같은 검의 모양은 바로 놓이거나 세로로 놓이기도 했으며 옆으로 또는 반대편으로 뻗는 상태가 되어 있기도 했다.
글을 아는 사람들은 글자 한 가운데의 획에 불과하다고 생각하 겠지만 글자를 모르는 석파천은 그 획들이 한 자루 한 자루 길 고 짧은 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떤 검은 끝은 위를 향하는가 하면 어떤 것은 아래를 향하게 되었고 어떤 것은 비스듬히 날이 세워져 있었으며 어떤 것은 옆 으로 쓰러질 듯한 형세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하여 석파천은 한 자루 한 자루의 검을 눈여겨 보았다.
열두 자루의 검을 보게 되었을 때 갑자기 오른쪽 어깨에 있는 거골혈(巨骨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한 줄기의 뜨거운 기운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꿈틀대 지 않는가! 재차 열세 번째의 검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을 때 그 뜨거운 열기는 경맥을 따라 오리혈(五里穴)에 이르렀다.
열네 번째의 검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 열기는 곡지혈(曲池 穴)에 으르렀다.
그 뜨거운 기운은 갈수록 강해졌으며 단전에서 끊임없이 올라 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석파천은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무로 깎은 인형의 경맥도를 본 이후 내력이 크게 증대되었 지만 오늘과 같이 세찬 기세를 보인 적이 없다.
배꼽이 마치 불 타는 것처럼 화끈거리는 것을 보면 아마도 동지팥죽의 독성이 퍼졌기 때문인가 보다.' 그만 그는 겁이 약간 났다.
다시 석벽에 그려진 검의 형태를 바라보며 내력을 끌어올려서 는 경맥을 따라 운행을 시켰다.
그러자 뱃속의 뜨거운 열기가 차츰 온몸의 혈도로 흩어졌다.
그는 곧이어 첫번째의 검부터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검의 형태를 따라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내 력이 끊임없이 흐르게 되어 시냇물처럼 사방으로 뻗쳤다.
첫번째의 검으로부터 스물 네 자루까지 보게 되었을 때 내력 역시 영향혈(迎香穴)에서 상양혈(商陽穴)로 한 바퀴 빙도는 것 이 아닌가! 그는 속으로 생각을 해보았다. '알고보니 이 검의 형태는 내력을 연마하는 것과 관계가 있구 나.
애석하게도 나는 벽의 문자를 몰라 그 법대로 연마할 수가 없구나.
하지만 한 가지 검법을 익히게 될 것 같다.
그렇지! 백 할아버지가 제일 첫번째 석실에 계시니 설명을 들어보아야겠 군.' 그리하여 그는 첫번째 석실로 갔다.
백자재와 온인후 두 사람이 각기 한 자루의 목검을 들고 몇 초 겨루어 보다가 언쟁을 벌이고 또 석벽의 문자를 가리키며 자기 의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
서로 상대방의 잘못이 있다는 것이었다.
석파천은 백자재의 옷자락을 잡고 물었다.
[할아버지, 그 글자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백자재는 몇 마디의 설명을 해주었다.
온인후는 불쑥 그 말을 반박했다.
[아닐세.
잘못되었어! 백 형, 자네의 무공이 높기는 하나 나는 이 석실에서 이미 십 년 동안 연구해 왔네.
십 년이라는 세월이 헛되이 보내어질 리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자네는 아직도 터득 하지 못한 것일세.] [무학이라는 것은 불가(佛家)의 선종(禪宗)과 같은 것이라네.
십 년 동안 고된 수련을 한다고 반드시 득도하는 것은 아니야.
나는 저 한 마디가 바로……] 온인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크게 잘못된 생각일세.] 석파천은 두 사람이 끊임없이 다투기만 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벽에 씌어진 문자들의 주해가 그토록 어려워 용 도주가 말한 것처럼 무수한 고수와 학문있는 사람들을 데리고와 수십 년간 연구해 보았지만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한 자도 모르는 내가 그들처럼 머리를 썩힐 것이 무엇이냐?'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는 석실에서 서성거렸다.
그러자니 자연 동쪽에 한 무리가 떠드는 것을 들을 수 있었고 서쪽에서 한 무리가 떠드는 것을 또 들을 수 있었다.
제각기 자기의 의견을 고집할 뿐 상대방의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판국에 그 누구를 붙잡고 농담도 주고 받을 수가 없었다.
혼자 무료하기도 해서 그는 석벽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는 두번째 석실에서 스물 네 자루의 검 모양을 보고 장검이 가리키는 방향이 체내의 경맥과 암암리에 부합된다는 사실을 깨 달았던 바가 있었다.
그런데 첫번째 석실의 그림에는 다만 한 사람의 젊은 서생이 그려져 있을 뿐 다른 그림이라고는 없었다.
한참동안 보니 그림속의 사람의 오른쪽 소맷자락을 떨쳐내는 자세가 무척 날렵하고 멋이 있어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몇 번 더 그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 기 오른쪽 옆구리의 연액혈(淵腋穴)이 꿈틀했다.
곧이어 한 줄기의 뜨거운 기운이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을 따 라 일월(日月)과 경문(京門) 두 요혈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아 닌가? 그는 속으로 기뻐하며 다시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사람의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윗옷의 접혀진 곳으로부터 얼굴, 부채의 선을 따라 하나하나 힘차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 연결된 부분을 따라 보아 내려오자 자기 체내의 내력도 그 선을 따라 운행하는 것이 아닌가! '그림 속의 필법(筆法)과 체내의 경맥이 서로 부합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천박한 도리이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심한 무학을 나로서는 터득할 길이 없고 또 지금 여간 무료하지 않으니 과거 인형의 경맥의 선을 보고 내공을 연마한 것처럼 이곳에서 조잡하고 미천한 재간이나 마 연마하면서 무료함을 달래어 보자.
그러다가 백 할아버지께 서 상승의 무학을 터득하시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함께 돌아가면 된다.' 그리하여 그는 그림속의 필법을 눈여겨 관찰했다.
필법이 처음 시작되는 곳을 찾아 그 의세(依勢)를 따라서 그는 내공을 연마했다.
이 도형의 필법은 세상의 그림들과는 전혀 달랐다.
필획의 순 서가 퍽이나 이상야릇했다.
다행히도 그는 글자를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는 아랫쪽 에서 위로 향하는 등의 선들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그림속에는 아래에서 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간 직선의 필획이 무척이나 많았다.
일반의 서화를 그리는 붓의 뜻과는 종종 전혀 상반되었으며 졸 렬하면서도 비범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석파천은 조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연 마를 했다.
만약에 열흘이라도 서화를 배운 어린 아이였다면 결코 그와 같 은 필로(筆路)대로 생각을 갖지 못했을 것이리라.
그림 속의 필획은 상하가 도착된 공이 팔십 한 군데나 있었다.
석파천은 삼십여 곳의 필획을 익힌 후 배가 고픔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석실 네 모퉁이 탁자 위에 국수나 떡조각 그리고 물들이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그곳으로 가서 배를 채웠 다.
그런 연후에 석실 바깥쪽의 변소에 가서 소피를 본 후 그는 다 시 석실로 돌아와 그 필획을 따라 내공을 연마했다.
석실 안은 휘황찬란하게 밝혀져 있어서 그는 피곤해지면 벽에 등을 기대고 잠을 잤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마련된 음식을 먹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첫번째 그림의 팔십 한 곳이나 되는 필획의 내공을 모조리 익 숙하게 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백자재를 찾았으나 백자재는 이미 그 석실에서 찾 아볼 수가 없었다.
석파천은 약간 당황해서 불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그는 두번째 석실로 달려갔다.
백자재가 목검을 들고 동안학발(童顔鶴髮)의 노도사와 싸우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검법은 모두 다 둔하고 졸렬한 것 같았다.
그러나 두 자루의 검에서는 찍찍 하는 파공성이 일었다.
각기 상승의 내력을 검초에 주입한 것이었다.
이때 휙 하는 커다란 음향이 울려퍼지면서 백자재의 손에 들린 목검이 그의 손을 떠나 날아가고 그 도사 수중의 목검마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두 걸음씩 물러섰다.
노도사는 빙그레 웃고 입을 열었다.
[위덕 선생, 당신의 하늘에서 받은 신력에는 이 늙은 도사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구료.
하나 우리들이 겨룬 것은 검법이 었지 내공을 겨룬 것은 아니오.] 백자재는 그 말을 받았다.
[우다 도장, 당신의 검법은 확실히 나보다 더 고명하오.
나는 탄복하는 바이지만 당신은 당신네 무당파의 무학을 펼친 것이지 석벽에 씌어진 검법의 본 뜻대로 펼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 오.] 우다 도장은 웃음 빛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해 보인 후 입을 열 었다.
[그렇다면 위덕 선생의 생각은 어떠시오?] 백자재는 대답했다.
[첫번째 구절인 오구상설명의 명(明)자에 커다란 이치가 도사 리고 있는바……] 석파천은 백자재 옆으로 다가가서는 물었다.
[할아버지, 우리 돌아가는 것이 어때요?] 백자재는 이상하다는 듯 반문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석파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곳의 용 도주께서는 우리들이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떠나 라고 했으며 해변에 많은 배가 있으니 우리 떠나도록 해요.] 백자재는 노해 부르짖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어째서 그렇게 서두르는 거냐?] 석파천은 그가 성을 내는 것을 보고 약간 두려운 마음이 생겼 다.
[할머니는 저쪽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이월 말까지만 기다리겠 다고 말했어요.
만약 이월 말까지 돌아오시지 못한다면 바다에 뛰어든다고 하셨어요.] 백자재는 어리둥절해졌다.
[이월 말까지? 우리는 동지 전날에 이곳에 온 것이 아니냐? 겨 우 이삼 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무엇이 걱정이냐? 천천히 돌 아가도 돼!] 석파천은 수아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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