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날 해변가에서 전송해 주던 수심에 어린 그녀의 모습 이 떠오를 때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돋혔으면 하는 심정이 되곤 했다. 그러나 백자재는 완전히 석벽 의 무학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혼자 내버려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석파천은 별 생각없이 세번째 석실로 들어갔다. 석실에 들어갔을 때 세찬 바람소리가 일었다. 세 명의 경장을 한 노인이 경공신법을 펼쳐 신속하게 달리고 있었다. 너무나 빨리 달리기 때문에 석실 안에는 세찬 바람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것이다. 세 사람은 이와 같은 쫑고 쫓기듯 달음질치고 있으면서도 말을 주고 받았는데 어조가 매우 차분한 것으로 미루어 내공조예가 무척 심후한 듯했다. 문득 첫번째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 한 수의 협객행(俠客行)은 대시인 이백이 지은 것이네. 이 백은 시선(詩仙)이었지. 결코 검술가는 아니거든 어찌하여 한 수 스물 네 구의 시에 무학의 가장 오묘한 이치가 담겨져 있다 는 것일까?] 두번째 노인이 말했다. [이와 같은 무공을 창안한 사람이야말로 천고에 드문 무학의 대종사일세. 그 어르신께서는 다만 이백의 시를 빌려 그의 신기 한 무공을 설명한 것인데 우리들은 외골로만 빠져들어 이백의 협객행이라는 시가 가지고 있는 뜻에 너무 구애를 받고 있는 것 같네.] 세번째 사람은 그 말을 받았다. [기(紀) 형의 말씀이 지극히 옳은 것 같네만 이 은안조백마(銀 鞍照白馬)는 이백의 본 뜻에서 이탈하게 되었을 때 풀길이 없어 지네.] 첫번째의 노인은 말했다. [그건 그래. 비단 그럴 뿐 아니라 네번째 석실의 삽담여유성 (颯담如流星)과 연결되어야만이 올바른 설명을 할 수 있다고 생 각하네. 시와 문장을 해석함에 있어서 단편적으로 뜻을 취해서 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학을 연구 및 토론함에 있 어서도 단편적으로 뜻을 취해서는 안될걸세.] 석파천은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세 사람이 무공을 토론한다면서 어째서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 를 하지 못하고 이렇게 달음박질을 치는 것일까?' 그러나 그는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두번째 노인은 그 말을 받아 물었다. [자네는 그 두 싯귀에 대해서 터득한 바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어찌하여 경공신법의 응용에 있어서 시종 나를 뒤쫓아 오지 못 할 정도로 시시한가?] 첫번째 노인은 그 말을 받아 물었다. [그렇다면 자네는 나를 뒤쫑아 왔는가?] 그러자 세 사람은 더욱더 빨리 달렸다. 그들의 옷자락에서 바람소리가 일었다. 그런데 세 사람의 상호간격은 시종 변하지 않았다. 세 사람의 공력이 비슷해서 그 누가 그 누구를 초월할 수 없었 던 것이다. 석파천은 잠시 그들의 하는 양을 보다가 시선을 옮겨 벽에 그 려진 그림을 바라보았다. 벽에는 한필의 준마가 그려져 있었다. 고개를 번쩍 쳐들고 달 려가는 모습이었다. 발 밑에 구름이 잔뜩 깔려 있어 마치 하늘 을 나는 것 갈았다. 그는 먼저의 방법대로 말이 달리는 기세를 내공의 연마와 연결 시켜 시험을 해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그는 아무래도 이번 그림은 첫번째와 두번째의 석실과는 다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말의 발 밑에 있는 구름송이들을 자세히 살폈 다. 한 무더기가 한 무더기의 구름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한 기 체는 끊임없이 앞으로 밀리어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벽이라도 뚫고 달아날 것 같은 그런 기세였다. 잠시 바라보게 되었을 때 갑자기 진기가 끓어올라 그는 자기도 모르게 달음질을 치게 되었다. 그는 한 바퀴 돌고서는 석벽의 구름송이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러자 진기가 다시 그를 밀어붙이듯 끓어오름에 따라 다시 한 바퀴를 돌았다. 다만 그는 경신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발걸음이 휘청거렸 고 자세가 비틀비틀한 것이 매우 보기에 졸렬했으며 달리는 것 도 또한 그 세명의 노인들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세 명의 노인이 매번 일곱여덟 번의 원을 돌때 그는 겨우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의 귀에 아스라이 세 노인이 비아냥거리는 말이 들려 왔다. [어디서 온 젊은인데 우리들처럼 줄달음을 익히려고 할까? 하 하하! 저게 무슨 꼬락서니인가?] [저같은 경신법으로 감히 석벽의 무공을 파고들어 연구하려고 하다니 흐흐흐……] [다른 사람의 취팔선(醉八仙)이라는 술 취한 사람의 걸음걸이 도 역시 그 자체에 일정한 규범이(規範)이 있는 고명한 무공인 데 저 소형제의 취구선(醉九仙)은 너무나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꼴사납군.] 석파천은 그만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석벽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었을 때에 자기도 모르게 다시 달 리기 시작했다. 여덟 아홉 번의 바퀴를 돌게 된 이후 온 정신을 가다듬고서는 벽의 구름송이의 기세를 외웠으며 그 세 노인들의 비아냥거리는 말소리는 이미 한마디도 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고 또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가 벽의 그 구름 형세를 모조리 익히고 걸음을 멈추게 되었 을 때 세 명의 노인은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곁에 네 사람이 각기 손에 병기를 들고 말이 달려가는 자세를 모방하며 찌르고 치는 등 검법을 연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네 사람의 검을 뻗쳐내는 기세가 매우 매서웠으며 입으로는 뭐라고 중얼중얼대고 있었다. 석벽에 씌어진 글과 주해를 읊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은빛이 찬란하니 안장이 저절로 평온해지더라(鞍自平穩)]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그 뒤를 이었다. [비추는 것(照)은 높은 데서 아래를 향하는 것이고 하얀 것 (白)은 교결하면서 물이 깊은 것이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천마(天馬)가 하늘을 날으니 순식간에 만리를 달려가더라.] 네번째의 사람도 한마디 했다. [이상은(李商隱)의 글에는 손이 천마이고 마음이 나라지도라 했고 운부(韻府)에서는 도가(道家)가 손을 천마로 알더라 했으 니 원래 천마는 손이고 결코 진짜의 말이 아니었군.] 석파천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와 같은 글귀들은 무척 심오해서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 을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서 검술을 연마한 지는 적어도 십 년 아니면 이십 년은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내 어찌 그토록 오래 기다릴 수가 있겠는가? 어찌 되었든 간에 더 많이 기다릴 여가 도 없고 하니 아무렇게 한 번 훑어만 보고 끝내도록 하자꾸나.' 네번째 석실의 벽에는 삽다여유성이라는 구절의 도보(圖譜)가 그려져 있었다. 그는 역시 조금전에 하던 방법대로 무공을 연마했다. 계속해서 연마해 본 결과 조금 진전이 있는 것 같았다. 협객행은 모두 이십사구절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스물 네 칸의 석실에 도해가 있는 것이다. 그는 석실로 들어갔으나 벽에 씌어 있는 문자를 이해할 수 없 어 그림으로만 내공과 무술을 연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째 글귀인 십보살일인(十步殺一人)과 열번째 글귀인 탈검 슬전횡(脫劍膝前橫) 열일곱째 글귀인 구조휘금주(救趙揮金주) 등은 모두 한 종류의 검법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섯째 글귀인 천리부류행(千里不留行) 일곱째 글귀인 사료불 의거(事了拂衣去) 여덟째 글귀인 심장신여명(深藏身與名)은 각 기 한 종류의 경신술이었다. 아홉째 글귀인 한과신릉음(閑過信陵飮) 열네번째 글귀인 오막 도위경(五막倒爲輕) 열여섯째 글귀인 종사협골향(縱死俠骨香)은 권장법이었다. 열세번째 글귀인 삼배토언낙(三杯吐言諾) 열여덟번째의 글귀인 의기소예생(意氣素霓生) 그리고 스무번째 글귀인 선혁대량성(선 赫大梁城)은 각기 한 종류의 토납술이었다. 그는 매우 빨리 익혔다. 하루에 두세 가지를 연마하는 데 성공 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잇달아 십칠팔 일 동안 한 가지도 익히지 못 하는 수가 있었다. 일단 무학에 온 정성을 기울이게 되자 세월이 흐르는 것도 잊 게되었고 끝내 스물 세 칸의 석실에 있는 도해를 모조리 익히게 되었다. 매번 한 폭의 도해를 익히고 나면 그는 심신이 가라앉게 되어 백자재에게 가자고 재촉을 했다. 그러나 백자재는 석벽의 무학에 갈수록 심취되어 석파천이 가 자고 조르기만 하면 마구 욕을 퍼붓고 방해한다고 야단을 쳤다. 그러다가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옆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만 들었다. 석파천은 어쩔 수 없이 범일비와 고삼 낭자 들과 상의했다. 그 러나 그 사람들 역시 넋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 석벽의 무학에 심취되어 되려 그를 붙잡고 이 구절의 요 결은 어디에 있으며 저 구절의 해석은 어쩌구 하면서 놓지를 않 으려고 했다. 석파천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용, 목 두 도주는 무림 고인들을 데리고 와서는 무학을 연구 하게 했으나 본래 그들이 알아서 돌아가도록 했다. 다만 삼십 년간 한 사람도 섬을 떠난 것을 볼 수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석벽의 무학이 얼마나 사람의 넋을 빼앗는가를 짐작할 수 있겠 구나! 다행히도 나는 나는 무공이 약하고 글자를 모르니 그들처 럼 빠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범일비 등이 호의로 석벽의 문자를 해석해 주겠다고 해도 석파천은 몇 마디 듣지 않고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 석실에서 나와 버리곤 했다. 뿐만 아니라 감히 고개도 돌리지 못했고 그들이 해준 말을 빨 리 잊고서 감히 생각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따지고 보니 협객도에 온 지도 이미 이개월 반이 넘 어있었다. 다시 며칠만 지나게 된다면 반드시 돌아가야 했다. 스물 네 칸의 석실 가운데 스물 세 칸의 석실을 보았으나 최후 의 석실로 가서 한 이틀쯤 연마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 다. 그러나 만약에 너무나 어려워 시일이 모자라고 할아버지가 마 다할 때는 자기 혼자서라도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고 작정했다. 먼저 돌아가게 된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마음 놓을 수 있도 록 섬의 상황을 사 노파 등 뭇사람들에게 알려줄 참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할아버지격인 백자재가 섬에 남아서 아무리 무공을 파고들고 연구한다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흉악하고 위험 한 일이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는 스물 네번째의 석실로 들어섰다. 용 도주와 목 도주가 비단 방석 위에 앉아서 석벽을 향한 채 애써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석파천은 두 사람에게 대해서 어려워하고 있는지라 감히 가까 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 서서는 석벽을 쳐다보았다. 한데 첫눈에 그는 약간 실망하고 말았다. 스물 세 칸의 석실에는 도형이 있었으나 최후의 석실에는 글자 만 있었고 그림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백자재를 찾아가 오늘 돌아가야겠다는 사 실을 알려야겠다고 작정했다. 수일 후 수아와 석청 부부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광경을 그려 보며 속으로 여간 흐뭇해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즐거운 광경을 그려보며 그는 무릎을 꿇고 두 도주 에게 몇 번 절을 한 후 입을 열었다. [두 분 도주께서 관대하게 대해 주셔서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거기다가 석벽의 무공을 익히게 해 주셨으니 한평생 이 호의는 잊지 않겠습니다. 불초는 이제 돌아 갈까합니다.] 용, 목 두 도주는 그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만 석벽을 향해 넋을 잃고 있었다. 그가 말을 하고 절을 하는 것을 전혀 알아차 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석파천은 고심한 무공을 익히게 되면 사람들이 모두 그토록 정 신을 빠뜨리게 되는가 보다고 생각하고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따라서 그는 두 사람의 시선을 따라 다시 석벽을 바라보았다. 별안간 벽에 씌어진 문자들이 맴돌면서 훨훨 날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는 그는 불현듯 어지러움을 느꼈다. 정신을 가다듬어 그 는 다시 그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띵해졌다. 그는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저 글자들은 어째서 저토록 이상할까? 한번 쳐다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우니……' 호기심이 일어 그는 다시 시선을 석벽에 던졌다. 글자의 획 하나하나가 한 마리의 올챙이로 변하여 벽 위에서 꿈틀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력을 돋우고 바라보면 그 올챙이 같은 획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릴 적에 홀로 황량한 산속에서 살면서 매번 봄철을 맞 게 되었을 때에 종종 산개울에서 많은 올챙이를 잡아서는 봉우 리 위에 물이 고여 이루어진 조그만 연못속에다가 가두어 놓고 는 그 올챙이들이 발이 자라나게 되고 꽁지가 빠지면서 개구리 로 변해서는 연못에서 뛰어나와 개골개골 하는 소리로 온 산 위 를 시끄럽게 하던 광경을 보고 듣고 하면서 적지 않은 외로움을 씻어낼 수가 있었던 터였다. 이때 마치 다시 어릴 때의 소꼽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뻐서 그 는 자세히 한 마리 한 마리의 올챙이 모양을 살펴보았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올챙이들이 위로 뛰거나 아래로 뛰어내리는 자세를 하고 있는데 제각기 그 자세가 틀려 매우 재 미가 있었다. 한참 동안 들여다 보고 있을 때 그는 갑자기 등뒤의 지양혈(至 陽穴) 내식(內息)이 절로 훌쩍 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알고보니 이 올챙이들은 함부로 뛰며 헤엄치는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내공조식과 관계가 있구나.'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는 다시 한 마리의 올챙이를 바라 보았다. 그러자 등뒤의 현추혈(縣樞穴)이 절로 툭 튀었다. 그리고 자양 혈에서 현추혈의 한가닥 내식은 이어지지가 않았다. 눈을 들어 다시 세번째의 올챙이를 바라보았다. 내식에 아무런 이상이 없 었다. 별안간 옆에서 냉랭한 음성이 들려왔다. [석 방주께서 태현경(太玄經)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니 과두 문(科斗文)에 정통한 석학이었구료.] 석파천은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목 도주가 형형한 안광을 빛 내며 자기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는 그만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말했다. [불초는 글이라고는 한자도 모릅니다. 다만 저 올챙이들이 매 우 재미있게 느껴져 몇 번 더 보았습니다.] 목 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저 태현경은 옛날 과두문으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석 방주는 나이가 젊 은데도 그와 같이 오래 되고 오묘한 문자를 알아보다니 정말 기 재외다.] 석파천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더 보지 않겠습니다. 두 분 도주에 게 폐가 되지 않도록 그만 물러가지요.] 목 도주는 급히 말했다. [아니 사양할 것은 없소. 이곳에 앉아서 얼마든지 보구료. 그 런다고 해서 우리들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오.] 그리고 나서 그는 두 눈을 감았다. 석파천은 그곳에서 걸어나오려고 했으나 그대로 떠난다면 목도 주에게 대해서 실례가 될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조금만 더 보고 나가자고 작정하고 석벽에다 시선을 던졌다. 별안간 배에 있는 중주혈(中注穴)이 절로 경련을 일으키듯 격 렬하게 떨렸다. 동시에 그의 전신이 함께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올챙이들은 정말 이상하다. 개구리도 되지 않았는데 어떻 게 이토록 크게 뛸 수 있을까?' 크게 동심을 일으킨 그는 한 마리 한 마리 올챙이를 대할 때마 다 몸에 있는 혈도가 맹렬히 약동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었다. 벽에 그려진 올챙이는 수천 수만을 헤아리고 있었다. 때로는 공교롭게 두 곳의 혈도가 경맥이 함께 이어져 전신이 시원해지기도 했다. 그는 볼수록 흥이 솟구쳐서 목 도주에게 한 말은 잊어버리고 스스로 합당한 올챙이를 찾아 각처의 혈도의 경맥들을 연결시키 기 시작했다. 하나 벽의 올챙이들은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전신의 수백 곳이나 되는 혈도를 모조리 내식으로 이어지게 한 다는 것은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석실 안은 햇살도 보이지 않고 등분만이 커져 있어 밤낮을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배가 고프면 석실 밖으로 나가 국수를 먹거나 하면서 여덟아홉 끼니를 먹게 되었을 때 잇게 된 혈도가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올챙이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모조리 그의 몸안 경 맥 혈도속으로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한 마리의 조그만 개구리 가 된 듯 사지백해에서 훌쩍훌쩍 뛰노는 것이 아닌가! 석파천은 재미있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했다. 석파천은 별 수 없이 몇 곳의 혈도를 이었다. 그렇게 여러 곳의 혈도를 꿰듯 연결하자 마구 뛰놀던 내식이 약간 가라앉았다. 하나 한 곳의 혈도가 가라앉게 되면 다른 곳 의 혈도가 또 움직였다. 그는 마치 마귀에 홀린 듯 석벽의 문자를 뚫어지게 바라보게 되었고 피곤해서 도저히 견디어 볼 재간이 없으면 벽에 등을 기 대고 잠을 잤다. 잠을 잔 이후에 다시 수천 수만을 헤아리는 올챙이에게 넋을 빼앗기곤 했다. 이와 같은 흐리멍텅한 의식속에서 배가 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잤다. 그리고 나머지의 시간을 모조리 올챙이를 연구하는 데 소모하게 되었다. 때로 그는 용, 목 두 도주가 자기에게 기이한 눈빛의 시선을 던지는 것을 알아차렸으나 부끄러운 감정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 리게 되었고 차츰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갑자기 체내의 진기가 거세게 들끓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일곱 여덟 곳의 정체된 혈도를 뚫고 양자강의 냇물처 럼 급속히 온몸의 경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단전에서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가 머리 위에서 다시 단전으로 내려갔다. 자꾸만 그 속도는 빨라졌다. 그는 놀람과 당황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사지백해에서는 어떻게 내쏟아버릴 수도 없는 기운이 넘쳐 흐 르는 것 같았다. 그는 그 기운을 주체할 수 없어 그 바람으로 오악도위경[五악 倒爲輕)이라는 장법을 펼쳐냈다. 장법을 펼쳐냈으나 내력이 더욱더 끓어올랐다. 오른손으로 검을 쥐는 자세를 취하고 십보살일인(十步殺一人) 이라는 검법을 펼쳤다. 손에 검이 없었으나 검초는 잇달아 펼쳐지고 있었다. 십보살일인의 검법이 미처 다 펼쳐지기 전에 전신의 근육이 마 치 터질 것처럼 팽창되었다. 그리고 진기는 자기의 뜻과는 달리 조객만호영이라는 경맥 운 행을 가리킨 도보(圖譜)를 따라 흐르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는 손과 발을 춤추듯 놀리게 되었다. 매우 기뻐서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고 고뇌에 휩싸여 어쩔 줄 모르는 행동 같기도 했다. 조객만호영이 끝나자 곧이어 오구상설명(吳鉤霜雪明)으로 이어 지게 되었다. 그는 생각해볼 여지도 없이 석벽의 도보들이 한폭 한폭 뇌리에 절로 떠올랐다. 은안조백마(銀鞍照白馬)에서부터 스물세번째 글귀인 수능서각 하(誰能書閣下)까지 단숨에 펼쳐내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검법과 장법은 말할 것도 없고 경공신법과 내공이 모조리 하나로 뭉쳐지게 되고 어느 것이 장법이고 어느 것이 검 법인지 분간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능서각하라는 재간까지 모조리 펼쳐내게 되자 진기 는 거꾸로 흐르게 되었다. 스물두번째 글귀인 불참세상영(不참世上英)에서부터 거꾸로 펼 쳐져서는 첫번째 글귀인 조객만호영이라는 글귀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장법을 모조리 펼쳐낸 순간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만 휘파람을 길고 우렁차게 내불었다. 삽시간에 사연객이 전수해 준 염염공과 인형의 몸뚱아리에서 배우게 된 내공, 설산파의 제자들이 검술을 연마할 때 본 설산 검법, 정당이 전수해 준 금나수법, 석청 부부가 전수해 준 상청 관 검법 그리고 사 노파가 전수해 준 금오도법 등이 모조리 뇌 리에 떠올랐다. 그는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마구 손짓을 했다. 이미 순서고 뭐 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장자담주해(將炙啖朱亥)도 좋고 탈검슬 전횡(脫劍膝前橫)도 좋았다.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되었고 운기 조식도 할 필요가 없었으며 초식을 기 點 필요조차 없었다. 석벽의 수천 수만이나 되는 초식은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속에 서 손발로 전해지는 것이었다. 그는 연마하면 연마할수록 기쁨이 넘쳐 흐르게 되어 그만 껄껄 웃고 말았다. [하하하! 정말 묘한데!] 그러자 두 사람이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정녕 절묘하오.] 석파천은 그만 깜짝 놀라 손을 멈추었다. 용 도주와 목 도주가 각기 석실 한모퉁이에서 서 있었다. 얼굴 가득 놀라움과 기쁨 빛을 띄우고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석파천은 재빨리 말했다. [불초가 그만 함부로 소란을 피우게 된 것을 용서하십시오.] 그는 속으로 멋대로 움직이고 멋대로 부르짖어 두 분 도주의 무공을 연마하는데 방해가 되었다고 생각해 그만 황송해졌다. 두 도주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으며 전신의 옷이 모조리 젖 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이 서 있는 석실의 모퉁이에도 땀방울이 흘러 질퍽했다. 용 도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석 방주는 정말 하늘이 내린 기재외다. 축하하오! 나의 절을 받으시오.] 그리고 나서는 그는 절을 했다. 목 도주 역시 절을 했다. 석파천은 깜짝 놀라 재빨리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 다. [두 분께서 이러신다면……불초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용 도주는 말했다. [석 방주……아무쪼록 일어나십시오……] 석파천은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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