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도주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갑자기 몸을 두어 번 휘청 하더니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목 도주 역시 두 손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석파천은 놀라 물었다. [두 분은 어떻게 되신 겁니까?] 그리고 그는 다가가 용 도주를 부축해서 잘 앉히고 목 도주도 부축해서 앉혔다. 용 도주는 고개를 흔들더니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목 도주 역시 두 손을 합장하더니 스스로 운기행공했다. 석파천은 그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용 도주와 목 도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속으로 놀람과 의혹을 금할 수 없었다. 한참만에야 목 도주가 길게 숨을 내쉬더니 벌떡 몸을 일으키고 는 용 도주에게 달려가 얼싸안았다. 두 사람은 함께 얼싸안고서는 소리내어 껄껄 웃었는데 매우 즐 거운 듯했다. 석파천은 두 사람이 어째서 그토록 기뻐하는지를 몰라 그저 멍 하니 따라 웃을 뿐이었다. 또 그 자신은 결코 이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마음을 크게 놓았다. 용 도주는 석벽을 붙잡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입을 열었 다. [석 방주, 우리 형제는 수십 년간 마음속에 품어온 의문을 그 대의 도움으로 오늘 깨우치게 되었소. 그러니 우리는 고맙게 여 기는 바이오.] 석파천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내가 언제……깨우치게 했다는 것입니까?] 용 도주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석 방주, 그렇게 겸손해 할 것은 없소. 그대가 협객행의 석벽 그림을 터득하게 된 것은 당금 무림에서 제일인자가 된다는 그 말과 다름이 없는 것이오. 과거 이 석벽에다 그림과 글귀를 남 긴 선배님 외에는 아마 석 방주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 오.] 석파천은 황송해서 말했다. [불초가 어찌 감히 그와 같은 칭찬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겠습니 까?] 용 도주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석벽의 옛 과두문으로 말하면 불초와 목 형제가 겨우 일성 정 도 이해할까 말까한데 석 방주께서는 아낌없이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지 않겠소이까?] 석파천은 용 도주를 바라보다가 목 도주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에 진지한 빛이 감도는 것이 결코 거짓으로 말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매우 아쉬워하는 표정이 서려 있는 것이 자기가 비밀을 털어놓지 않을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석파천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두 분에게 말씀을 드리지요. 이 올챙이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바로 중주혈(中注穴)이 훌쩍 뛰어놀았으며 저 올챙이를 보자 태 혁혈(太赫穴)이 크게 뛰어놀았지요.] 그리고 나서 그는 한 마리의 올챙이를 가리키며 두 사람에게 설명을 했다. 그런데 그가 한참 동안 설명을 하다가 보니 용 도주와 목 도주 는 어리벙벙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지 않은가! 석파천은 물었다. [제가 말씀을 잘못 드렸나요?] 용 도주는 떠듬떠듬 말했다. [원래……원래……석 방주는 한 마리……한 마리의 올챙이를 보았구료. 글자로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전편의 태현경을 이해 할 수 있었소?] 석파천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불초는 어릴 적부터 글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한 자 도 몰라 부끄러울 뿐입니다.] 용, 목 도주는 일제히 놀라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글자를 모른다구요?]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글자를 모릅니다. 나는 중원으로 돌아가서 수아에게 글자를 가르쳐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글 자를 알아보는데 저 혼자 모른데서야 남의 비웃음밖에 더 사겠 습니까?] 용, 목 두 도주는 그의 얼굴에 진지한 빛이 감돌뿐 조금도 교 활한 빛이 없는 것을 보고 결코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 했다. 용 도주는 머리가 어지럽기만 해서 석파천을 붙잡고 물었다. [글자를 모른다면서 첫번째 석실에서 스물세번째의 석실까지 벽에 써 있는 그 많은 주해를 누가 풀었소?] 석파천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도 풀어준 사람이 없습니다. 백 할아버지께서 몇 마디 풀 이를 했고 관동의 범 나으리께서 몇 마디 설명을 했지만 이해하 지를 못해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는……저는……다만 그림만 보고 아무렇게 생각한 것이지 요. 갑자기 그림 위에 구름송이 또는 조그만 검과 같은 것이 있 어서 몸안의 뜨거운 기운과 한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용 도주는 황급히 말했다. [혹시 이것이 하늘의 뜻이 아닐까? 이분 석 방주가 바로 하늘 이 내린 기재가 아니겠는가?] 목 도주는 갑자기 발을 구르며 부르짖었다. [아! 알았소이다. 알았소이다. 형님, 원래 이렇게 된 것입니 다.] 용 도주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그도 역시 깨닫는 바가 있 었다. 두 사람은 수십 년간 같이 생활해 왔고 무공도 같이 갈고 닦았 다. 그리고 공력도 비슷했다. 다만 목 도주는 원래 말이 적기 때문에 용 도주보다도 번거로운 일을 접하지 않기 때문에 좀더 빠른 시각에 그 요결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네 손을 서로 마주잡고 꼭 쥐었다. 얼굴에는 처량하면서도 씁쓸한 빛이 서렸고 또한 기뻐하는 착 잡한 빛이 서려 있었다. 용 도주는 고개를 돌리더니 석파천에게 말했다. [석 방주, 다행히 그대가 글자를 모르기에 이와 같은 커다란 의문을 풀 수가 있었소. 이제 우리 형제들은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겠구료.] 석파천은 머리를 긁적긁적했다. [아니……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지요?] 용 도주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이 많은 주석이라고 붙여놓은 글귀를 말하면 일부러 사 람으로 하여금 엉뚱한 기로로 들어서도록 유도를 하고 있는 것 이외다. 그러나 그림과 글귀를 연구하는 사람치고 그 어느 누가 주해를 애써 생각하지 않겠소?] 석파천은 기이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도주께서는 그 많은 글귀가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까?] 용 도주는 대답했다.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크게 해를 끼친 것이외다. 만약에 그와 같은 주해가 없었다면 우리 두 사람이 그토록 많은 심혈을 기울이며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을 걸이외다.] 목 도주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고보니 이 태현경은 진짜 과두문이 아니었군. 겨우……경맥 혈도의 노선과 방위를 가린킨데 불과했으니……] 그리고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사십 년이란 세월을 어디가서 찾는담?] 용 도주는 길게 숨을 불어내며 말했다. [태현경에 머리카락이 허옇게 된다고 하더니 형제, 자네 머리 카락은 정말 하얗게 세어버리고 말았네.] 목 도주는 용 도주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냉소를 흘릴 뿐 더 말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똑같이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뜻은 당신의 머 리칼도 하얗게 세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용, 목 두 도주는 서로 마주보며 장탄식을 불어냈다. 갑작스럽게 그들은 매우 늙어보였다. 그날 동지팥죽을 먹을 때의 위풍당당하고 정신이 또렷해 보이 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석파천은 크게 의혹을 느끼고 물었다. [그렇다면 석벽에 일부러 그와 같이 많은 글자들을 써서는 다 른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로 접어들게 한 것은 무엇 때문일 까요?] 용 도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뭐라고 꼬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소이다. 이 무림 선배는 아마 도 후세의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절세의 무공을 터득하는 것을 싫어했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후에 주석을 갖다붙인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리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탄식하듯 말했다. [그러나 옛날 일을 그 누가 알 수 있겠소?] 목 도주는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 무림의 선배님들은 선비들을 좋아하지 않아 일부러 그와 같은 함정을 파놓은 것인지도 모르오. 그리하여 석 방주와 같이 글을 모르는 중후하고 얌전한 사람이 득을 보도록 한 것이 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오.] 용 도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선배님의 의도는 정말 매우 깊소. 그러니 그 누가 추측이 나 할 수 있었겠소?] 석파천은 두 사람의 표정과 태도가 매우 지쳐 있고 이제 모든 일에 매우 실망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자 속으로 미안하 게 생각했다. [두 분 도주, 만약 제가 배운 재간이 확실히 도해를 터득한 것 이고 쓸모가 있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두 분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곧장 첫번째의 석실로 들어가 일일이 말씀을 드리겠습니 다……저는……결코 털끝만치도 속이지 않겠습니다.] 용 도주는 쓰디쓰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소형제의 호의는 우리 두 사람이 명심하겠소. 소형제는 정말 마음이 인자하구료. 응당 그와 같은 덕을 보아 마땅하다 하겠 소. 이후 무림을 이끌어 나갈 때 중생을 위해 복을 만들어 준다 면 우리는 더욱더 고맙게 생각하겠소.] 목 도주는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바로 그렇소이다. 도해의 수수께끼가 이미 풀어졌으니 우리 두 사람의 소원은 충족된 셈이오. 소형제가 무공을 연마한 것이 나 우리 두 사람이 무공을 연마에 성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오.] 석파천은 간청했다. [그렇다면 이 올챙이와 같은 그림에서 얻은 바를 두 분에게 이 야기 해드리지요.] 용 도주는 처연히 웃으며 말했다. [신공은 이미 적절한 사람에게 전수되었기 때문에 벽의 도보도 공덕을 완만하게 이룬 끝에 이제 사라지게 되었소. 소형제, 저 것을 좀 보시오.] 석파천은 고개를 돌리고 석벽을 바라보았다.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석벽의 올챙이 글들이 씌어 있던 곳에서 돌가루가 천천 히 떨어지고 있었다. 올챙이의 문자도 이곳저곳 지워져서 겨우 칠팔성 정도밖에 남 아 있지 않았다. 그는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노릇입니까?] 용 도주는 담담한 기색으로 말했다. [소형제가 조금전에……] 목 도주는 재빨리 그 말을 가로챘다. [그 일은 천천히 이야기 하기로 하고 우리들은 빨리 뭇 사람들 을 불러 이를 선포하는 것이 어떻겠소?] 용 도주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좋구말구. 석 방주, 갑시다.] 석파천은 감히 앞을 서지 못했다. 용, 목 두 도주의 뒤를 따라 석실에서 걸어나왔다. 용 도주는 즉시 뭇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이도록 분부하고 제자 들을 불렀다. 모두 대청에 모이도록 한 것이다. 원래 석파천은 석벽의 신공을 터득하게 된 이후 자기도 모르게 신이 나서 연습을 했던 것이다. 용, 목 두 도주는 이를 보고 크게 날라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용 도주는 즉시 앞으로 나아가 손을 서서 한번 맞서 보았다. 이때 석파천은 마침 신이 들린 사람처럼 날뛰고 있었는데 그 누가 공격을 해오자 자연스럽게 반격하여 상대를 해주었다. 수 초가 지나게 된 이후 용 도주는 감당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에 목 도주가 즉시 앞으로 나와 협공했다. 두 사람의 무공은 당금 무림에서 이미 버금가는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힘을 합했는데도 석파천이 새로 터득한 신묘 한 무공에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즉시 초식을 거두어 들였더라면 석파천 역시 자연스 럽게 손을 멈추게 되었을 것이지만 두 사람은 벽에 씌어진 무공 이 도대체 얼마만한 위력이 있는지 시험을 해볼 양으로 계속 엄 밀한 공세를 퍼부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강세가 강맹하면 강맹해질 수록 석파천의 반격도 강 해져 갔다. 세 사람의 장풍과 장력이 서로 맞닥뜨리게 되고 소용돌이 치면 서 석벽을 후려치게 되었다. 석벽의 표면은 그만 세차게 휘몰아쳐 오는 장력에 견디어내지 못해 허물어져 나가게 되었다. 용 도주와 목 도주의 장력만 하더라도 석벽을 깎고 훼손시키기 에 충분했다. 더구나 석파천의 내력이 본래 극도로 강한데 새로이 얻은 공력 마저 보탠 것이다. 세 사람의 장력이 모두 무학에서는 최고의 재간에 속하는 것이 고 그 예리함이 금방 드러나는 것이 아니어서 석벽이 망가지기 는 했어도 그 즉시 가루가 되는 것이 아니고 천천히 바삭바삭 모래알처럼 화해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목 도주는 석파천이 무공을 연마하게 되었을 때 마침 꿈속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자기 몸밖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용 도주에게 그와 같은 말을 하지 못하도 록 저지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석파천이 자기도 모르게 석벽을 훼손한 사실에 괴로워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석벽이 훼손된 것은 그들 두 사람이 손을 써서 맞서 보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므로 결코 석파천만을 나무랄 수 없 기도 했다. 세 사람은 나란히 대청에 가서 앉았다. 무림인들과 뭇 제자들이 차례로 도착했다. 용 도주는 각처 석실의 등불을 끄도록 명했다. 다른 사람이 무공에 열중하여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까봐 염려 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다투어 자리에 앉게 되었다. 과거 삼십 년간 협객도에 온 무림의 우두머리들 가운데 수명이 다해 세상을 등진 분들 외에는 모두 다 모이게 되었다. 삼십 년 간 이 사람들은 조석으로 스물 네 칸의 석실에서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한번도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본 적이 없었다. 용 도주는 큰제자에게 사람의 수를 파악하도록 했다. 사람들이 모두 참석한 것을 알고 다시 그 제자에게 몇 마디 분 부를 했다. 그 제자는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빠르게 움직이지를 못했 다. 목 도주 역시 자기의 큰제자에게 무어라고 나직이 몇 마디 당 부를 했다. 두 명의 큰제자가 사부들이 똑같이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을 듣 고 무어라고 한마디 여쭌 후에는 십여 명의 사제들을 이끌고 대 청에서 나갔다. 용 도주는 석파천의 곁에 와 나직이 말했다. [소형제, 방금 석실에서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해 서는 안 되오. 아무리 친근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무공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한평생 무 궁한 화근과 무궁한 번뇌가 생기게 될 것이오.] 석파천은 공손히 응수했다. [알겠습니다. 삼가 도주의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용 도주는 다시 당부했다. [또 옛날 속담에도 보물을 지니고 있는 것이 도적을 불러들이 게 되고 화를 도래한다고 했소. 그대가 절세신공을 지니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일이 생 길 것이고 또한 전수해 달라고 강요하거나 청탁을 하러오는 사 람이 생기게 될 것인데 만약 이를 거절한다면그 자들은 온갖 방 법을 다해 그대를 해치려고 할 것이오……] 여기까지 말한 용 도주는 빤히 석파천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대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다 하더라도 너무나 착하고 고지 식해서 강호의 잔꾀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오. 그러니 그 일만은 결코 입밖에 내지 않도록 하시오.] 석파천은 공손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도주께서 염려해 주신 데 대해 이 후배는 감사드 리는 바입니다.] 용 도주는 그의 손을 잡고 나직이 당부했다. [애석하게도 나와 목 형제는 그대가 하늘이 내린 재주를 크게 펼쳐 강호에 위세를 떨치는 웅지를 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구 료.] 목 도주 역시 그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하 고 있는 듯 석파천을 바라보았다. 석파천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관심과 애석하다는 빛이 가 득 서려 있었다. 석파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두 분 도주는 정말 나에게 잘 대해주고 있구나! 내가 육지 로 되돌아가 수아를 만나게 되면 다시 그녀와 함께 섬에 와서 두분 어르신에게 인사를 드려야겠다.' 용 도주는 그에 대한 당부가 끝나자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 앉 았다. 그런 연후 그는 군웅들에게 입을 열었다. [여러 친구들, 우리들이 이 섬의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도 인 연인가 하오. 이제 모든 사람들의 연분이 끝나게 되었으니 헤어 져야 겠구료.] 군웅들은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서는 다투어 질문을 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오?] [섬에 무슨 일이 일어났소?] [두 부 도주는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러는 것이오?] [두 부 도주는 섬을 떠나 멀리 가시려는 거요?] 한데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 우르릉 쾅 하니 우뢰와 같은 폭음이 여러 차 례 들려왔다. 군웅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이 섬에 무슨 괴이한 변고가 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의 빛을 보였다. 용 도주는 재차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을 이곳에 모시게 된 것은 협객행이라는 무학도해(武 學圖解)의 비밀을 풀고자 했기 때문이었소.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월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구료. 이 협객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다속으로 꺼져들게 될 것이오.] 군웅들은 깜짝 놀라 또다시 다투어 질문을 했다. [무엇 때문이오?] [지진 때문이오?] [화산 폭발이오?] [도주께서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소?] 용 도주는 천천히 입을 열고 말했다. [조금전 나와 목 형제는 이 섬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화산의 용암이 분출되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소. 그 용암이 분출하게 되면 이 섬은 즉시 불바다로 화하고 말 것이오……] 그리고 그는 엄숙한 얼굴로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 다. [방금 은연중 들려온 우뢰소리는 큰 천재지변이 들어닥치게 되 는 것을 알린 것이외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빨리 이곳에서 떠나 가도록 하시오.] 군웅들은 반신반의했다. 서로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석벽의 무공에 아직도 미련이 남아 목숨을 잃을지언정 이곳에서 떠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모양을 지켜보던 용 도주는 다시 말했다. [여러분들이 믿을 수 없다면 석실로 가서 구경을 해보시오. 각 석실은 이미 무너져 앉았고 석벽도 망가졌을 게요. 지진이 일어 나지 않고 화산이 터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곳에 남아 있어 보 았자 할일이 없을게요.] 군웅들은 석벽이 이미 망가졌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는 다 투어 대청에서 달려나갔다. 그리고 뒷쪽에 있는 석실로 달려갔다. 석파천 역시 뭇 사람을 따라 함께 갔다. 각 석실은 아닌게 아니라 무너져 내려앉거나 벽이 허물어져 있 었고 석벽에 씌어 있던 그림과 글씨들은 모조리 망가져 있었다. 석파천은 용, 목 두 도주가 제자들을 시켜 일부러 망가뜨린 것 을 알고 미안하게 생각했다. '모두가 나의 잘못으로 이와 같은 큰 화를 불러일으키게 되었 구나!' 한데 어떤 사람들은 석실과 도해가 훼손된 것은 지진에 의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손에 의한 것임을 발견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사실을 떠들어대더니 재차 우르르하니 대청 으로 달려오게 되었다. 그들은 용, 목 두 도주에게 질문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대청입구에 이르게 되었을 때 슬피 곡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지고 있지 않은가! 군웅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용, 목 두 도주는 눈을 감고 앉아 있었고 뭇 제자들은 두 사람 의 주위에 엎드린 채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석파천은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 뭇 사람들을 헤치며 나아갔다. [용 도주, 목 도주 어떻게 된 것입니까?] 두 사람의 얼굴은 이미 굳어져 있었다. 어느덧 그들은 세상을 등진 것이다. 석파천은 장삼과 이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두 분 도주는 조금전까지도 멀쩡하셨는데 어째서 금방……돌 아가시게 되었지요?] 장삼은 흐느끼며 말했다. [두 분 사부님께서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두 분이 품고 있던 커다란 숙원을 이루게 되어 이 세상을 떠나기는 하나 마음만은 그지 없이 평안하다고 하셨네.] 석파천은 여간 괴롭지 않았다. 그만 자기도 모르게 소리내어 울었다. 용, 목 두 도주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은 한편으로 연 세가 많은 이유도 있지만 도해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라 이 세 상에 미련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석실에서 시험해 보느라고 손을 쓴 결과 끊임없이 뻗쳐 오는 석파천의 내력을 막다보니 그만 지쳐서 등불의 기름이 다 한꼴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석파천은 두 도주의 죽음이 자기와 실제로 커다란 관계 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는 무어라고 형용할 수가 없는 가책과 슬픔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황삼을 걸친 큰제자는 눈물을 훔치고 낭랑히 외쳤다. [여러 귀빈들. 저의 은사들께서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 나 여러분들이 한시바삐 이 섬에서 떠나가셔야 한다는 유명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러 군웅들을 돌아보며 다시 힘주어 말했다. [여러분들이 이전에 얻은 상선벌악의 동패는 이후에는 도움될 일이 있을지 모르니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훗날 여러분들에 게 어려움이 있을 때면 남해가의 그 조그만 어촌으로 동패를 가 지고 찾아오십시오. 그러면 저희 형제들은 정성을 다해 조금이 나마 힘이 되어 드리도록 노력하겠소이다.] 군웅들은 크게 실망한 끝이었으나 그와 같은 말을 듣자 다시 기쁜 빛을 떠올렸다. 협객도의 뭇 제자들의 무공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글들은 잘 알 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나선다면 이 세상의 어떠한 화근이라도 막지 않 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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