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실 그녀는 일전에 백자안의 앞에 임몽룡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한 번 나타났었떤 그 황의소녀의 진 자 모습이었다. 그 귀래반점에서 워낙에 짖궂게 굴었던 그녀였기 때문 에, 비록 변장을 지우고 있는 상태였지만 백자안은 금방 그녀를 알아 보았던 것이었다. 물로 ㄴ아까 그 황의소녀가 백자안을 알아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도 사실 백자안을 그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백자안은 이어 아국에 그날 귀 래반점에서 있었떤 일에 대해서 대강의 요지를 설명해주었다. 아국은 다름아닌 황의소녀와 악소봉 등이 백자안을 두고 그와 같은 장난을 벌 였다니,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울러 그녀의 얼 굴에는 매우 안심하는 듯한 편안한 기색이 부드럽게 되살아나는 것이 었다.백자안은 이윽고 한 권의 책자를 꺼내어 아국에게 보여주며 물었 다 '너는 이게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책자는 표지가 아주 오래된 양피지로 되어 있었고, 그 표지의 중앙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전자체로 쓰여져 있었다. 역근세수경. 아 국은 잠시 동안 어리둥절하여 생각하는 듯 하다가 돌연 약간 놀란 표 정으로 소리쳐 물었다. '아니, 그럼 그것이 바로 달마역근경이라는 말인가요? 소문에 듣던, 무림삼보의 하나인?' 아국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일순 자신의 음성이 너무 컸음을 의식 하고 급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주위를 지나치는 사람들 은 누구도 그녀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녀는 그 제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곳 북경성내에서 그 무림삼보로 인해 얼마나 많은 혈겁이 벌어지고 있는 지 그녀도 이미 들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들은 북경성문을 지나서 상밖으로 향하고 잇었다. 해가 서쪽 산위에 걸리면서 마악 황혼이 물 들려고 하고 있었다. 백자안은 그 책자들 다시 소매속에 넣고 나서 웃 으며 말을 이었다. '바로 그렇다. 너는 이 무림삼보의 애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느냐?' 아국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예, 저는 잘 모르지만 하나는 저희들이 복용한 천년삼왕이고, 나머 지 둘은 그 달마역근경과 두 자루의 냉월보도라고 알고 있어요.' 백자안은 다시 말했다. '천년삼왕에 대해서는 너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두 자루의 냉월보도는 무림의 이기인데 반해, 너는 이 달마역근경 안에는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는 지 알고 있느냐?' 아국은 대답했다. '저는 그 달마역근경은 가장 오래된 진본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대 단하며, 또한 그 내부에는 그 옛날 달ㄹ마조사께서 직접 써넣으신 유 가비술도 들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진위여부는 아직 잘 몰라요.' 백자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기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외에도 이 책자에는 과거의 달마조 사의 유물을 찾을 수 있는 비도가 새겨져 있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낭 설이다. 하지만, 설령 그 모든 애기들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이 책자 는 우리에게는 필요가 없다. 너는 그 이유를 알겠느냐?' 아국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아마도 달마조사는 너무나도 오래전의 인물이기 때문에, 덩 달아서 그분의 무학도 낡은 것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 아닐까?' 백자안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세상에는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결코 무시될 수가 없는 무학들이 더러있다. 달마역근경상의 무학도 바로 그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무학 의 이치가 매우 충실하게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비록 세월이 흘러 무 학의 이론들이 매우 쉽게 풀이되고 있고, 상대적으로 달마역근경상의 무학은 익히기 어려운 무학으로 통용되고 말았지만, 그러나 그 정통적 인 의미는 결코 무너진 것이 아니다.' 아국은 빙그레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아,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배우고 있는 무학이 있으니까 구태여 남 의 것을 넘볼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백자안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달마역근경이 비록 무림의 보기드문 진경이기는 해도, 정작 많 은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고 보다 속성의 방법을 원하기 때문이 다.' 아국은 백자안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주인님께서는 지금 그 책자를 돌려주기 위해 가시는 것인가요?' 백자안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너는 나의 이 행동에 어떤 잘못이라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냐?' 아국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책자를 주인님게 드린 사람의 원하는 바가 아닐 텐데요?' 아까 그 황의소녀는 잠깐 사이에 어디에서 구했는지 달마역근경의 비급을 백자안의 소매속에 넣어주고 사라졌던 것이었다. 그녀는 소매 치기 기술도 놀라운 반면, 반대로 그것을 넣어주는 기술 또한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자안은 이에 장노 인에게 전음으로 지시하여 그녀를 따라가서 신변을 보호해 주라고 했 었다. 그 어린 소녀가 그와 같은 무림의 보물을 손에 넣었으니 많은 사람들의 표적이 되는 것은 당연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백자안은 문 득 황혼이 짙어가고 있는 벌판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이것을 그 원주인인 소림사에 전해 주려는 것이다. 이 책자가 마당히 그 원주인에게 돌아가는데,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이 냐?' 제11장 신병이기 황혼이 짙어져 가고 있는 저녁무렵의 어느 한 관제묘의 앞이었다. 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어느덧 그 앞에 도달하게 되자, 아국은 손가락 으로 전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기에 있군요!' 그렇다.이 지은지 수백년이나 지나서 금방이라도 전체가 풀석 무너 져 내릴듯한 아주 낡아빠진 그 관제묘의 앞, 지금 무려 수십명의 사람 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고, 게다가 그 묘문의 앞에서는 지금 한 참 소란스런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관제묘의 주위를 둘러싸 고 있는 사람들 이외에도 그 뒤의 산중턱에서 은근히 눈치를 살피는 사람들의 숫자까지 합치면 군웅들이 모두 아마 숩개명은 되는 것 같았 다. 아국은 우선 빠르게 장내의 분위기를 ㅅ피고 나서 이윽고 다시 묘 문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가볍게 놀란 듯이 다시 말했다. '아, 장노인이 싸우고 있어요!' 지금 뜻밖에도 묘문의 앞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다 름아닌 장노인이었다. 장노인은 지금 묘문의 문 앞에서 쭈그리고 앉 아서 앞으로 달려드는 십여명의 군웅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는데, 장 내의 소란스런 광경과는 달리 그의 처지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 다. 군웅들은 각기 흉험하게 장검이나 그밖의 기형병기들을 휘두르며 사방에서 한꺼번에 덤벼들고 있었지만 이내 장노인의 가벼운 손짓 몇 번에 저마다 급급히 물러서곤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군웅들의 무공은 그 수준이 매우 낮고 그 상대자인 장노인의 무공은 반대로 그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일 것이었다.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소란스러운 듯한 싸움도 사실은 자세히 관찰하면 지루하도록 맥빡진 싸움이라는 것을 이내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백명의 군웅들이 계속 해서 떠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장노인의 뒷편에서 그 의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대여섯 명 정도 되었는데, 물론 그 가운데에는 매우 난색을 보이고 있는 황의소녀의 모습도 보였다. 그녀는 안색을 잔뜩 찌푸린 채 거의 아무런 말도 없었 고, 지금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초로의 문사 하나가 열심히 군웅들을 향해 뭐라고 말하고 있었으나, 정작 군웅들 가운데 그의 말을 들어주 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황의소녀는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 도 상당한 고초를 겪은 듯 전신의 의복이 여기저기가 많이 찢겨져 있 었는데, 아국은 문득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자 왠지 일종의 연민의 감 정 같은 것을 깊게 느꼈다. 관제묘의 앞의 수십명의 군웅들 가운데 의 복에 금룡의 무늬를 선명하게 수놓은 열 명의 사내들과, 각기 승도 속 의 복장을 하고 있는 세 명의 사람들이 가장 쉽게 눈에 띄었는데, 아 마도 그들은 혹시 무림맹에서 파견되어 나온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생 각되었다. 백자안과 아국이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가면서 정황들을 살 펴보니, 아무래도 군웅들은 황의소녀에게 비급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고 또한 황의소년쪽은 없다고 오히려 열심히 소리치며 해명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비록 이미 십여명의 사람들이 싸움에서 뛰어들 기는 했어도, 아직 무림맹의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것으로 보아 비교 적 아직은 싸움이 격렬해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묘문의 앞부분에는 장노인의 손속 때문에 군웅들이 여기저기 날뒤고 있었으므로 오히려 안으로 가까이 다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백자안은 관제묘의 앞에 이르 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아국을 대동하고 묘문쪽으로 다가갔다. 장노 인이 부저런히 군웅들을 물리치다가 백자안을 보자 그제서야 손을 거 두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이 하나 나타나고 장 노인이 갑자기 손을 멈추었기 때문에 군웅들은 오히려 경계심이 생겼 는지, 이제까지와는 달리 일제히 뒤로 물러서서 사태를 관망했다. 아국 은 자신이 백자안과 함께 군웅들의 가운데 서있다고 생각되자 공연히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아, 백공장!' 초조한 표정으로 난색을 짓고 있던 황의소녀가 백자안을 보자 마치 구원군이라도 만난 듯이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그녀는 이미 장노인을 통해 조금이라도 백자안에 관해서 애기를 들었는지 그 태도가 전날과 같지 않았다. 백자안은 그녀가 마치 자신과 포옹할 듯이 달려오는 것 을 보고 손을 저으며 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낭자, 진정하시오!' 황의소녀는 그제서야 주위의 수많은 시선을 의식한 듯 급히 신형을 멈추고 그의 바로 앞에서 섰다. '백공자, 저는....저기에 있는 당신의 수하로부터 당신에 관한 애기를 이미 들었어요. 당신이 그를 보내서 저를 도와주신 것은 고마워요!' 백자안은 그녀의 안색이 붉어져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 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나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 무였기 때문에 즉시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낭자와 대면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덴, 아직도 낭자의 그런 호쾌한 성품은 여전하구료. 하지만 나는 불행히도 낭자에게 한가지 실 망스러운 것이 있구려.' 백자안이 굳이 두 번째라고 말한 근거로는 처음 그녀와 만났을 때 는 치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러한 것을 인식한 황의소녀는 다시 안색 을 붉히며 대꾸했다. '나, 나의 이름은 바로 임몽청이라고 해요. 헌데 공자께서 제게 실 망하신 점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이죠?' 임몽청. 그녀 역시 생각대로 임몽룡이 아니라 야묘방의 소방주인 소신투 임몽청이었던 것이다. 백자안은 여전히 정색을 한채로 대꾸했 다. '아, 바로 임낭자였구려!헌데 나는 낭자가 뜻밖에도 보물에 눈이 어 두워서 모든 것을 도외시하는 사람인줄은 미처 몰랐었소.' 임몽청은 백자안이 일부러 두사람 사아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을 보고 그것은 그럴수도 있겠거니 했다. 하지만,그녀는 그 뒤의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가 모든 것을 도외시 하다니 대체 그게 무슨 뜻이죠?'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는 임몽청을 보고, 백자안은 이 내 손가락으로 그녀의 구멍난 소매를 가리켰다. '내가 보기에 달마역근경의 비급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은데, 아 니 그래, 그것을 끝가지 감춰두고 자신의 친인척들만 고생시킬 참이었 다는 말이오?' 임몽청은 백자안이 어이없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그만 자신도 모 르게 손짓을 따라 그 곳을 바라보다가, 일순 깜짝 놀라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그녀의 왼쪽 옷소매는 수차례 격전을 치르느라 구멍이 몇 개 가 뚫려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 구멍속으로 한 권의 책자가 얌전히 들 어가 있는 것이 보이는게 아닌가? 그것이 정말로 달마역근경이라는 것 을 알아낸 그녀는 일순 정신이 멍해지고 말았다. (여기에는 본래 비급 이 들어있지 않았는데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지? 누가 여기에 비급을 갖다 놓았을까?) 사실 비급을 갖다놓은 사람을 찾는다면 그 사람은 뻔 한 사람일 것이었다. 그녀가 아까 비급을 백자안에게 주었으니 그 이 외에 누가 또 비급을 갖다 놓았을 것인가? 임몽청으로서는 자신이 전 혀 그의 곁에 다가가지도 않았는데도 그가 무슨 수법으로 비급을 넣어 놓았을까하는 문제가지 의구스러웠다. 급히 고개를 들고 보니, 백자안 은 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유유히 신형을 돌려 사라지고 있었다. '백, 백공자!' 임몽청은 급히 그의 뒤를 따라가려고 하였으나, 이내 그녀의 앞으 로 다가드는 일단의 군웅들에 의해 발이 묶이고 말았다. '아미타불...' '무량수불...' 그들은 무림맹에서 파견되어 나온 열명의 금룡대 무사들과 소림, 무당, 개방의 세 명의 장도들이었다. 임몽청은 그들의 무쇠를 녹일 듯 한 눈빛을 대하자 그만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부친인 야묘방주 야묘자 임화금이 나서서 비급을 받아 들더니, 이윽고 군웅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림맹의 여러분! 만일 이 임모가 고스란히 지금 비급을 돌려준다 면 앞으로 내 딸아이의 이번 잘못에 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소이 까?' 아국은 백자안의 뒤를 따라서 성안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내심 그 의 이번 행동이 약간 짓궂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돌아오는 길에 멀리서 그 임씨부녀가 무림맹에 용서를 받고, 또한 비급이 안전하게 소림장로의 손에 넘겨지는 것도 보았다. 일은 그리하여 모두 원만하게 처리된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전에 다소 넋나간 듯 하던 임몽청의 표 정을 상기해 보면서, 백자안이 굳이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국은 그 임몽청과 비슷한 나이의 같은 민 감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때였기 때문에, 문득 그녀의 그 당시의 절망 적인 심정이 어떠했으리라고는 대강 짐작이 가는 것이었다. 이미 사위 가 상당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백자안이 그 관제묘를 떠날 때부터 장노인은 자동적으로 두 사람의 뒤를 따르고 있는 중이었다. 날이 어 두워지기 전에 성안에 들어갈 작정으로 백자안은 아국과 나란히 경신 술을 펼치고 있었는데, 장노인은 백자안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놀라거나 뜻밖이란ㄴ 기색도 없이 묵묵히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오 늘의 관제묘의 사건이 있은 이후에 장노인은 전보다도 더욱 묵묵해지 고 음흉해진 것 같았다. 마치 하나의 어둡고 묵직한 철산이 뒤를 쫓아 오고 있는 듯한 껄미칙한 느낌을 받으면서, 아국은 은근히 계속 장노 인의 태도를 의식하다가 이윽고 전음을 펼쳐 백자안에게 물었다. ' '그 임낭자는 제가 보기에도 매우 용모가 아름답고 총명해 보이던 데, 주인님께서는 오늘 그녀에게 약간 너무하신 것이 아닌가요? 백자안은 고개를 돌려, 아국이 신법을 펼치면서도 전음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는 것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듯 하다가. 이윽고 약간 정 색을 하고 대꾸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으니, 그녀를 위해서라도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아국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어째서 그것을 단지 쓸데없는 짓이라고만 생각하시는 거 죠? 이를테면 장래에 그녀가 주인님의 부인이 될 수도 있는 일이 아닌 가요?' 백자안은 고개를 돌려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 다. '너의 그 말은 매우 황당하구나. 그렇다면 너는 내가 천하의 모든 여인들에게도 그처럼 잘 대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국은 잠시 대꾸할 말을 잃고 곰곰히 생 각에 잠기는 동안 왠지 갑자기 ㅅ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게다가 얼굴 마저 갑자기 심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이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주인님은, 그렇다면 주인님은 어째서 우링게는 이토록 잘 대해 주시는 것일까?)아국은 혼자서 그러한 말을 속으로중 얼거리면서, 혹시 자신의 마음을 들키기라도 할까봐 다시 질문을 던지 지 못했다. (혹시 아난이 이미 객점에 돌아와 있는 것이 아닐까?) 아국은 내심 으로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백자안의 곁에 바싹 붙어서 계속해서 빠르 게 나아갔다. 그들 일행 세 사람이 마악 다시 성안으로 들어섰을 때엔 느 이미 골목길들이 상당히 어두워지고, 길거리에는 등불들이 무수하 게 밝혀져 있는 상황이었다. 백자안은 이에 다소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서인지 객점으로 향하는 지름길인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이미 성안으 로 들어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세사람은 더 이상 경신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서로 가까이 모여서 천천히 나아갔다. 본래 이곳 북쪽 성문 근 처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이 넓게 자리하고 있는 상태 였다. 장노인이 이 즈음에 두사람의 곁으로 바싹 다가선 것은, 그러한 빈민촌의 좁은 골목길에서 흔히 당하기 쉬운 숩격사고를 미연에 방지 하자는데 목적이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일행이 채 골목길을 두어 구 비밖에 돌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의 으슥한 곳에 느닷없이 한 사람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국 은 그것을 보자 다소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제풀에 크게 놀 라서 소리를 지를뻔 했다. 하지만, 장노인이 먼저 그쪽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고 그녀는 저으기 마음을 놓았다. 이제는 장노인의 무서운 실 려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아 까 장노인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 수백명의 군웅들이 모두 달려들었어 도 그를 어쩌지 못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장노인은 그 엎드려 있는 사람을 조사ㅎ니 이어 고개를 돌리고 백자안에게 말했다. '죽었습니다.' 아국은 그 애기를 듣자 내심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본래 빈 민가의 좁은 골목길은 번화한 대로상보다는 훨씬 어둔 곳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시체가 방치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어딘 가 이상한 일인 것이었다. 백자안은 그러나 장노인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장노인은 다시 시체를 바라보더니 이어 말했다. '치명상은 일도에 인후가 잘려나간 것입니다. 허나....조금 이상합니 다.' 아국도 이제 금새 어둠에 익숙해졌으므로 그 시체를 잘 볼 수가 있 엇다. 장노인에 의해 옆으로 돌려진 시체의 인후부를 보니 분명히 잘 려나간 듯한 흔적이 엿보였다. 이상하게도 그 시체의 목에서는 거의 피가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만일 장노인이 시체를 옆으로 돌리느 라고 약간 그 틈이 벌어져 핏물이 배어 나오지 않았다면 아국으로서는 거의 그 치명상을 모를 뻔 했다. 백자안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군.' 장노인은 이윽고 다시 시체의 우수에 들려져 있는 절반박에 남지 않은 장검과 이어, 바로 그 앞쪽의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남은 반족의 검날을 묵묵히 가리켜 보였다. 문득 보니 그 부러진 두 개의 검날은 어둠속에서도 은근히 유난히도 빛을 발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시체는 죽으면서도 그 장검의 자루를 움켜쥐고 놓지 않고 있엇다. 장노인은 잠시후에 다시 말했다. '이것은 바로 용천검이로군요.' 용전검. 그것은 대대로 명검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했던 용천이라는 마을에서 탄생시켰던 명검중의 명검으로, 강호에 불과 몇 개밖에 전해 지지 않는다고 하는 보물과도 같은 장검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국은 그 말을 듣자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자세히 보니 그 장검은 마치 무처럼 베어진 것이지 결코 부러지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잘려진 면이 광택가지 돌고 있으니 그것이 얼마나 매끈하게 잘려졌는가를 알 수가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잘려진 장검이 다름아닌 명검중의 명 검인 용천검이라니 그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인 것이었다. 용천검이 만일 이처럼 쉽게 무처럼 베어질 것이라면 결코 명검이라고 는 불리우지 않을 것이다. 대개 장검의 예리함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재질의 강도와도 커다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용천검에는 그 것을 표시하는 특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아국은 지금의 상 황에서 일부러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체의 코앞까지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장노인의 그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백자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소.' 아국은 이제 겨운 내심으로 생각을 굴려보았다. (아, 그래서 저 자 는 죽는 순간까지도 장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꽉 잡고 있 는 것이로구나!) 백자안은 문득 다시 입을 열어 장노인에게 물었다. '장노인은 이 자를 아오?' 장노인은 다시 한 번 시체의 얼굴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소인은 지난 십년간 강호와 인연을 끊고 있었기 때문ㅇ에 그 간에 어떤 신진들이 출현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백자안은그 말을듣자 이내 먼저 다시 꼐속해서 걸음을 옮겨가지 시 작했다. 그리고, 급히 뒤따라 오는 아국에게 문득 고개를 돌리며 육성 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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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국, 너는 저 시테가 어떤 무공에 의해 죽었는지 알겠느냐?' 아국은 아까 장노인이 말한 것을 상기하여 생각해 보다가 문득 대 답했다. '그것은 아마도 일종의 쾌도법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