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가에는 의자들이 여기저기 놓여있고 대나무를 통째 엮어 바닥으로 만든 평상이 한쪽에 설치되어 있다.
설향 누나가 혼자 뭘하면서 나를 기다리나 살금살금 다가가던 나는 어두운 나무 그늘에 의지해 몸을 감추어야 했다.
평상 위에는 소향주와 쟁반에 받쳐진 안주 접시, 그리고 설향 누나가 아닌 또 다른 한 사람의 여자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낮에 행사를 다녀오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라도 풀려는지, 은은하게 흩뿌려지는 조각달의 은가루 아래서 술잔을 한 손에 들고 있는 이화 누님.
흑단 같은 긴 머리를 치렁치렁 어깨너머로 흘러내리게 늘어뜨린 누님의 자태. 가느다랗게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턱선 밑에서 찰랑거리는 머릿결이 달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길고 곧게 뻗은 다리와 말라 보이지 않은 적당한 두께의 팔과 완벽한 곡선을 그리는 허리, 저고리를 비집고 솟아 나올 듯 팽팽하게 부푼 젖가슴, 그리고 하얗게 빛나는 목덜미.
화원 귀퉁이에서 비치는 불빛을 등지고 서 있는 누님.
야리야리한 한 겹 천을 사이에 두고 몸의 굴곡이 아스라이 내비치는 그 모습은 정말이지 월궁의 항아리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누님은 얇은 치마 아래로 속곳도 입지 않은 듯 몸매를 여실히 드러내는 실루엣이 내 두 눈에 확연하게 비쳐왔다.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순애에게만 집중해야 할 텐데,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어옴을 느꼈다.
진짜 내 핏속에 바람둥이 유전자가 섞여 흐르는 건지,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세상의 모든 대상과 교감하고픈 욕심이 샘솟는다.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싱그럽고 활력 넘치는 일이다.
그러나 상대는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 보살펴주었던 이화 누님이 아닌가.
겉으로는 늘 초가을 무서리 같은 쌀쌀한 한기를 내게 풀풀 풍기지만, 내면의 숨겨진 마음은 은혜 이모보다도 더 부드럽게 따뜻한 정을 베푸는 그녀에게, 누님 그 이상의 묘한 그림을 연상하다니.
가볍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치마 아래로 굼실거리는 누님의 둔부, 거기에 내 시선은 꽂혀 한참을 떨어지지를 않았다.
도저히 서른 중반의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유혹적인 누님의 모습은, 내 마음속 한구석에 뭔가 뜨거운 흔적을 각인시키는 것 같았다.
길게 숨을 불어낸 후에 천천히 몸을 드러내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내 발걸음은 잔잔한 수면 위를 걷듯 가벼웠고, 두근거리는 가슴속은 마치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처럼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자!"
옷감 천이 얇은 개량 한복으로 몸을 감싼 누님은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나자, 얼른 고개를 돌려 바라다본다.
나는 다시 한번 훅! 숨을 들이마셨다.
선명하게 그려진 붉은 입술은 너무나 도발적이라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누구? 일영이구나.!!”
“어쩐 일이우? 피곤해서 쉰다며...”
“후후. 훼방 놓으려고 나왔지. 너희 둘이 연애질 하는 거.”
깎은 무처럼 하얀 이마, 바람결에 살랑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우아하게 걷어 넘긴 누님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설향 누나는 그 뒤에서 주먹을 쥐고 누님 뒤통수를 때리는 시늉을 해 보이고.
“한잔할 테야?”
“주쇼, 목욕했더니 목이 컬컬하네.”
술병을 쥐어 잡고 기울이는 누님의 작은 움직임.
분명하다. 고쟁이는 물론 속옷도 입지 않은 게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나무 의자에 털썩 주저앉을 때까지 누님의 몸 어딘가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고, 그제야 누님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듯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자세를 고쳐 앉는 설향 누나의 젖가슴에 잔을 내민 내 팔꿈치가 슬쩍 닿았다.
여인들이 상체를 수그릴 때 살짝 드러나는 가슴골의 그 묘한 곡선도 눈을 자극하지만, 이렇게 은연중에 스치는 촉감도 기분 좋은 느낌이다.
"이 여자들이 사전에 작당하고 모의했나."
내가 목욕하는 사이, 옷을 또 갈아입은 누나는 바닷물에서 막 건져낸 듯한 옥빛 원피스를 시원하게 입고 있었고, 둔하지 않은 내 느낌으로는 설향 누나는 분명 젖가리개를 입지 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