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35편 (35/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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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35편 (3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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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이 말을 자기의 할머니에게 한 것이지만 기실은 석파천의 이 름을 묻고 있는 것이다.
다만 부끄러워서 석파천에게 직접 묻지 못한 것이었다.
사 노파는 그 말에 생각이 나 듯 말했다.
[여보개, 나는 사가인데 자네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석파천은 말을 더듬거렸다.
[나는......잘 모르겠는데 저의 어머니는 저를......] 그는 개잡종이라고 대답하려다가 듣는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는 것 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이 아름다운 아가씨 앞에서 개잡종이라는 아 름답지 못한 이름을 들먹일 수 없어서 그는 즉시 말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나를 다른 한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기실 나는 그 사람 이 아닙니다.
도대체 내가 누군지......나는......제대로 말해 줄 수 가 없네요......] 사 노파는 샐쭉해져서 말했다.
[이야기하기 싫으면 그만두게.
뭐가 대단한 이름이라고 우물쭈물하는 가?] 수아는 급히 말했다.
[할머니, 이 오라버니가 말을 못하는 것을 보면 뭔가 고충이 있을 거 예요.
이름이 없어도 우리들은 그의 은덕을 기억해야 되는 것이 아니 겠어요.] 석파천은 재빨리 말했다.
[사실은 내가 말을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매우 듣기에 거북한 이름 이 되어서......] 사 노파는 그 말을 가로챘다.
[설사 송편이라는 이름보다도 듣기 싫다는 말인가?] 그녀는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면 이후 줄곧 송편으로 부를테니 그리 알게.] 석파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송편이 개잡종이라는 이름보다는 낫겠지) 이렇게 생각을 한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송편이라고 불러도 좋소이다.
그렇게 듣기 거북한 이름은 아니니까 요.] 수아는 석파천의 성격이 대범한 것을 보고 더욱 호감을 느꼈다.
자기 할머니의 말에 조금도 성을 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민망스럽게 생각되어 그녀는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놀리는 말씀은 그만하세요.....] 그녀는 석파천에게도 말했다.
[우리 할머니는 이런 성미이니 오라버니가 양해하세요.] 석파천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소.
정불삼 할아버지나 띵땅에게 붙잡히지만 않으 면 되오.] 그는 배가 고픈 것을 느끼고 말했다.
[여기서 두 분은 잠시 기다려주시오.
어디, 먹을 만한 것이 있는지 가 보고 오겠소이다.] 사 노파는 몇 마디 당부했다.
[이 섬에는 홍시가 많고 또 한창 익었을 무렵이니 좀 가지고 와서 배 를 채우도록 하세.
그리고 잡을 수 있으면 게나 물고기도 잡아오도록 하게.] 석파천은 대답을 하고 정불삼 등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몸을 숨겨 가 며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십여 장을 가지 않아 섬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산 기슭에 십여 그루의 감나무들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빨갛게 익은 감들이 나무 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는 나무 아래로 다가가서 나무를 불잡고 마구 흔들었다.
감은 이 미 익어 있어서 흔드는대로 우수수 떨어졌다.
그는 옷자락을 벌려 떨어지는 감을 받았다.
곧 숲속으로 달려들어가 사 노파와 수아에게 먹였다.
그녀들 두 사람은 걸음을 옮길 수 있으나 손에 경맥이 풀어지지 않 은 상태였다.
사 노파는 간신히 팔을 쳐들 수 있었다.
그러나 수아는 아직 두 팔 을 꼼짝할 수 없는 처지였다.
석파천은 별 수 없이 감의 껍질을 벗겨서 먼저 한 개를 사 노파에게 먹이고 또 한 개를 수아에게 먹여야 했다.
수아는 부끄러움을 느꼈으나 받아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다시 먹여주려고 하자 수아는 사양했다.
[오라버니가 먼저 잡수시고......그리고 주어도......] 이때 사 노파는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서남으로 약 일 마장을 가면 석동이 있으니 날이 어두워 진 후에는 그곳에서 머물도록 하세.
그러면 정불삼 형제들이 찾아오 지 못할 걸세.] 석파천은 기뻐서 말했다.
[매우 좋습니다.] 그는 정불사에 대해서는 별로 꺼리지 않았다.
오직 정불삼 조손은 그를 꼭 죽이려고 서슬이 시퍼렇기 때문에 그는 두려워했다.
사 노파가 숨을 곳이 있다는 말을 하자 그는 여간 기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는 왼손으로 사 노파를 부축하고 오른손으로 수 아를 부축해서 서남쪽으로 나아갔다.
자연도는 사 노파가 와 본 곳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곳의 지리를 자세히 알고 있었다.
일 마장을 나가지 못해서 오른쪽은 산벽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어 번 모퉁이를 돌아 나즈막한 숲을 가로지르자 정말 동굴 이 나타났다.
사 노파는 동굴에 이르자 정중히 당부했다.
[송편, 오늘 밤에는 자네가 밖에서 지켜주어야겠네.
알겠나?] 석파천은 공손히 대답하고 말했다.
[불을 지필 수 있으면 옷이라도 말릴 수 있을텐데 정불삼 조손때문 에 불을 피울 수가 없으니 정말 안타깝군요.] 사 노파는 냉랭히 말했다.
[이것이 바로 호랑이가 평지에 내려와 강아지에게 업신여김을 당하 는 꼴이네.
이후 정씨 형제들에게 이십 배의 보복을 해주겠네.
내가 가만 있을 줄 아는가?] 이튿날 아침, 세 사람은 일어나 먼저 감으로 요기를 했다.
석파천은 다시 그녀들의 경맥을 각기 한 곳씩 유통시켜 주었다.
이 렇게 되자 두 사람은 손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
사 노파가 말했다.
[송편, 이 섬의 호수에는 게가 살고 있을 것이네.
자네는 가서 게들 을 좀 잡아오도록 하게.
게는 비록 살은 많지는 않으나 매일 감만 먹 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석파천은 주저했다.
[게를 잡는 것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구워 먹을 수가 없으니 별 수 없이 생식을 해야 되겠군요.] 사 노파가 말했다.
[사내대장부가 정불삼이라는 늙은이를 그렇게 두려워하다니, 부끄럽 지도 않느냐?] 석파천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정불삼 할아버지는 말할 나위도 없고 띵땅만 해도 무서워 죽을 지 경입니다.
만약 그들에게 사로잡히게 된다면 한 조각의 송편이 되어 강물속에 버려져 물고기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수아가 말했다.
[할머니, 이분 오라버니의 말씀이 맞아요.
우리는 조금만 참도록 해 요.
할머니의 경맥이 완전히 뚫리기를 기다려 무공이 회복되면 우리 가 누구를 두려워하겠어요? 정불삼이나 정불사 따위는 한 주먹 거리 도 안 되지 않겠어요?] 사 노파는 말했다.
[흥! 무공을 회복하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 줄 아느냐? 우리 두 사람 의 경맥이 완전히 타통되려면 최소한 십여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 공이 회복되려면 길면 일년이 걸리고 적게 잡아도 팔 개월이 필요하 다.
우리가 일년 내내 감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마 열흘도 못 되어 감은 다 떨어지고 말 것이다.] 석파천은 말했다.
[그건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가서 많은 감을 주워 오도록 하죠.
곶감을 만들면 우리 세 사람은 일년 반 정도는 먹고 살 수 있 을 것이며 결코 굶어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 며칠 동안 세상의 무서운 일을 많이 당하여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이 동굴 속에서 편안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마음이 놓였다.
사 노파는 욕을 했다.
[자네가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겠네.
다시 말하는데 정불사는 내일이나 모레면 이 섬으로 돌아올 걸세.
그는 이 섬의 곳곳을 샅샅이 뒤질 것이네.
따라서 자네가 아무리 목을 움츠리 고 숨으려고 해도 잘 되지는 않을걸? 이봐 송편,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네가 어떻게 그처럼 심후한 내공을 지닐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무공을 할 줄 모르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군.
궁금증을 좀 풀 어주겠나?] 석파천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저는 누구한테 무예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다만 쨍그랑 땡이 십팔 초의 금나수법을 전수해주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더 있다면 정불사 노인이 배 위에서 가르쳐 준 그 몇 가지 초식이 있을 뿐입니다.] 수아는 말했다.
[할머니, 이 오라버니에게 무공을 전수해주면 어떻겠어요? 할머니의 무공을 배워 정불사를 패배시킨다면 할머니에겐 영광이 아니겠어요?] 사 노파는 갑자기 석파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녀의 눈 동자에 흉악한 빛이 감돌았다.
그녀는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금방이라도 그를 죽이려고 달려들 것 같았다.
석파천은 깜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부르짖었다.
[할머니, 왜......이러십니까?] 사 노파는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수아, 그를 똑똑히 보아라.
닮았지?] 수아 역시 뚫어지게 석파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무척 부드러운 눈빛을 하고 말했다.
[할머니, 얼굴은 닮았지만 절대로......아니에요.
이 오라버니는 심 기가 밝은 사람이라 결코 그런......그런 일은 저지르지 못해요.] 그제서야 사 노파는 얼굴이 흉칙한 빛을 거두어 들이고 코웃음을 쳤 다.
[흥, 그가 아니라지만 얼굴이 이토록 닮다니.
나는 절대로 무공을 가르치지 않겠다.] 석파천은 그제서야 황연히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렇군.
또 나를 그 석 방주인가 하는 사람으로 의심한 모양이구 나.
그 석 방주는 죄를 많이 지은 모양이군.
그를 미워하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으니.......이후 만나게 되면 충고를 해줘야겠다.) 이때 사 노파는 물었다.
[자네도 성이 석가인가?] 석파천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남들이 내가 장락방의 석 방주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소 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믿는 사람이 없군요.] 그는 번뇌스러운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아는 나직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석 방주가 아니라는 것을 믿어요.] 석파천은 기뻐 부르짖었다.
[정말 당신은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믿소? 그거 참 고맙구 료.
당신 한 사람만이 나를 믿어주는군.] 수아는 다소곳이 말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고 그는 나쁜 사람이에요.
당신과 그는 전혀 달 라요.] 석파천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정말 고맙소, 고마워!] 이 며칠간 모든 사람들에게 석 방주로 오인받던 그는 처음으로 그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자 마치 살인죄의 누명을 썼다가 벗은 사람 처럼 감격하고 만 것이다.
이때 그는 눈물마저 흘렸으며, 눈물방울은 그녀의 고운 손등에 떨어 졌다.
수아는 그만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으나 손을 빼지는 않았다.
사 노파는 냉랭히 말했다.
[아니면 아닌거지.
사내 자식이 왜 찔끔찔끔 눈물을 짜? 못나게스 리!] 이 말을 들은 석파천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려고 했다.
이때서야 그는 자기가 남의 처녀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리고 황급히 손을 놓으며 사과를 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는 더듬거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가서 감이나 몇 개 따가지고 오겠소이다.] 수아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횡 하니 동굴 밖으로 달려나갔다.
사 노파는 그가 그렇게 낭패한 꼴을 하자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그가 아니었구나.
석가라는 녀석이 일성(一成) 정도만 저렇게 얌전하고 고지식하였더라면 어찌 그런 일이......아!]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한숨부터 먼저 쉬었다.
얼마 후 석파천이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안색이 창백해져서 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야단났어요......야단났어요......] 사 노파는 물었다.
[왜 그러는가? 정불삼이 자네를 발견했는가?] 석파천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설산파의 사람들이 섬에 도착했소이다.
위험하기 짝 이 없어서......] 사 노파와 수아의 안색이 일변했다.
그녀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 노파는 급히 물었다.
[어떤 사람인가?] 석파천은 말했다.
[백만검이란 사람이 십여 명의 사제들을 거느리고 나타났습니다.
그 들은 저를 잡아서......능소성으로 데리고 가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 노파는 수아를 한번 쳐다보더니 석파천에게 물었다.
[그들이 자네를 발견했는가?] 석파천은 말했다.
[다행히 발견당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백 대협과 정불사 할아버 지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사 노파는 물었다.
[정불삼이 아니고 정불사란 말이지?] [예, 정불사는 양자강에 떠오른 시체가 없으니 이 섬에 있을 것이라 고 말하더군요.
반드시 이곳으로 찾아올 테니 큰일났소이다.
큰일났 어요.] 석파천은 땀까지 뻘뻘 흘렸다.
수아는 그를 위로했다.
[그분들이 잘못 보고 그런 것이 아니겠어요? 오라버니는 그 나쁜 사 람이 아니니 충분히 설명할 수가 있을 거예요.
너무 근심하지 말아 요.] 석파천은 급히 말했다.
[설명해도 알아들을 양반들이 아니오.] 사 노파는 대뜸 힘주어 말했다.
[말로 안되면 싸워야지.
이 세상에 억울한 사람이 어디 자네 한 사 람뿐인가!] 석파천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백 대협은 설산파의 고수예요.
검법이 매우 훌륭한데 내가......내 가 어떻게 그를 이길 수 있겠소이까?] 사 노파는 냉소했다.
[그건 잘못 아신 겁니다.
백 대협의 검술은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 로 무섭습니다......] 이렇게 말한 그는 자기가 본 바를 이야기했다.
[손에 들린 장검을 이렇게 한 번 휘두르니까 사람의 몸이나 나무 기 둥에 여섯 개의 자국이 나더군요.
믿지 않습니까?] 이어 그는 자기의 바짓가랑이를 들치고 자기의 허벅지에 있는 여섯 개의 자국을 그들에게 내보였다.
그와 같은 행동은 상스러운 짓이었지만 산에서만 자라온 그로서는 그런 것을 알 턱이 없었다.
사 노파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흥, 믿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았네......] 그녀는 분연히 외치듯 말했다.
[설산파의 무공이 뭐가 대단해? 이 사소취가 볼 적에 한푼의 가치도 없네.
백자재라는 늙은이로 말하면 능소성에 앉아서 자기가 천하 제 일이라고 우쭐대고 있지만 하늘이 얼마나 높은 줄을 모르는 못난이에 불과해......] 이어 그녀는 더욱 감정이 복받치는 듯 재차 비웃음에 찬 말을 이어 갔다.
[그 못난이가 설산파의 검법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금오파 (金烏派)의 도법(刀法)은 설산파의 극성(剋星)이야......] 그녀는 새삼스럽게 석파천에게 물었다.
[자네는 금오파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가?] 석파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릅니다.] 사 노파는 신이 나서 말했다.
[금오는 바로 태양을 말하는 거네.
햇살에 녹지 않는 눈이 어디 있 는가? 그러니까 금오파의 무공 앞에는 설산파의 무공은 눈녹듯 한다 는 뜻일세......] 사 노파는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웃어댔다.
[그러니까 금오파의 무공은 바로 설산파의 극성이 되는 것이고, 설 산파의 사람들이 우리 금오파의 사람을 만나면 무릎을 꿇는 일밖에 없는 것이네.] 설산파의 검법이 어떻다는 것을 석파천은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사 노파가 금오파의 무공을 이 세상에서 다시 없는 것으로 설명하자 반신반의하게 되었다.
노파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다는 표정이 그대로 그의 얼굴에 드 러났다.
사 노파는 근엄한 얼굴로 반문했다.
[자네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인가?] 석파천은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어느 토지묘에서 백 대협에게 사로잡힌 적이 있었지요.
그리 고 그들끼리 대련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진정으로 대단하던데 요.......] 사 노파는 핀잔 주듯 말했다.
[자네는 그들 사형제들끼리 대련을 하는 것을 잠시 보았을 뿐이니 어찌 좋고 그릇됨을 짐작할 수 있겠는가? 흥,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 다면 나에게 펼쳐 보여주게나.] 석파천은 말했다.
[제가 보고 익힌 것은 백 대협의 것만큼 무섭지 않은데요?] 사 노파는 소리내어 웃었다.
수아도 방긋 웃었다.
[백만검이란 녀석은 자질이 뛰어나고 또 열심히 수련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검법을 익힌 지가 이십 년이나 되는데 하룻밤 훔쳐 배운 자네가 그와 견주려고 하다니, 웃다가 이빨이 빠질 노릇이 아닌가? 어쨌든 나에게 자네가 알고 있는 검초들을 한 번 펼쳐서 보여주게.] 석파천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땅바닥의 나뭇가지를 주워서 잎들과 필 요없는 군더더기를 잘라내어 장검으로 삼았다.
그는 호연만선과 문만부 등이 펼쳤던 초식을 흉내내 일 검을 휘둘러 보았다.
사 노파는 소리내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첫번째 초식에서 벌써 틀렸는걸?] 석파천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려뜨렸다.
사 노파는 다시 당부했다.
[계속 연마해 보게.
자네가 무섭다는 설산파의 검법이 어떤 건지 두 고 보아야겠네.] 석파천은 부끄러워서 나무토막을 던져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힐끗 보니 수아의 두 눈에 격려와 간절히 바라는 빛이 서려 있지 않은가? 결코 사 노파에게서 볼 수 있는 비웃는 것 같은 태도는 볼 수 없었 다.
그는 즉시 정신을 가다듬고 틀리지 않도록 일일이 세심한 주의를 기 울이며 일 초 일 식을 펼쳐보았다.
칠팔 초를 펼쳐보이자 그날 토지묘에서 석 부인과 한 번 대련을 했 던 검초가 되살아나게 되어 펼치는 자세나 요령이 더욱 익숙해졌다.
파공성 바람소리도 점차 커졌다.
사 노파는 약간의 조롱하는 빛을 띠고 있었고, 수아는 구경을 하면 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소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은 안색이 변하게 되었고 얕보는 마음이 없 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오히려 존경하는 표정을 띄우게 되었다.
한참 후에야 석파천은 앞뒤가 전도되고 산만한 칠십이 초의 설산검 법을 겨우 다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겨우 육십 초밖에 펼칠 수 없었다.
나머지 아홉 초는 잊어 먹고 만 것이다.
이때 사 노파와 수아는 서로 쳐다보았다.
그녀들은 석파천이 설산검법을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웅후한 내 력이 실려 있어 검법의 위력이 더욱 돋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 을 수 없었다.
석파천은 다 펼치고 나자 두 사람이 아무 말 없는 것을 보고 겸연쩍 게 나무토막을 내던졌다.
[두 분께서는 웃었을 것이외다.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 우둔해서 본 지 며칠이 지나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답니다.] 사 노파는 진지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는 토지묘에서 남이 연마하는 것을 보았다고만 말했는데 이제 보니 훔쳐 배운 것이군.] 석파천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남의 무공을 훔쳐 배우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인 줄 압니다.
저를 산 으로 데리고 간 노백부님도 남의 물건을 훔치면 도적이라고 했으니까 내가 설산파의 무공을 훔쳐 배운 것은 도적의 행위와 같지요......] 그는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망설이다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날 밤 너무나 훌륭하게 보였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몇 수 기억하게 된 것이지요.] 사 노파는 기쁜 얼굴로 말했다.
[하룻밤 사이에 그와 같이 훌륭한 검법을 배웠다면 자네는 총명하기 이를데 없다고 할 수 있네.
그러니 자네는 충분히 나의 금오도법도 배울 수 있을 것이네......] 그녀는 잠시 생각해본 후 다시 말했다.
[이렇게 하지, 자네는 나의 제자가 되어서......] 수아는 갑자기 불쑥 입을 열었다.
[할머니, 그건 좋지 않아요.] 사 노파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왜 좋지 않다는 것이냐?] 수아는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면 제가 오라버니를 사숙(師叔)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 어요?] 사 노파는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사숙이 되면 되었지 어쨌다는 것이냐? 정불사가 여기까지 찾아오고 우리 두 사람이 벽라도로 끌려가지 않으려면 다시 강물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할 판이 아니냐?] 그녀는 석파천을 향해 다시 말했다.
[이 사 노파는 오늘 문파를 세울 것을 선언하겠네.
그리고 자네를 금오파의 첫번째 제자로 삼을 것이니 빨리 스승에 대한 예를 갖추도 록 하게!] 석파천은 성격이 소탈하여 사 노파를 스승으로 모시는 것 쯤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절을 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수아가 반대하는 것을 보 자 그만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 노파는 그 모양을 보고 다시 재촉을 했다.
[빨리 인사를 올려야지.
절만 하면 자네는 금오파의 직계제자가 되 고, 금오파의 창시자인 나의 제자이니까 제이대 수제자가 되네.] 수아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금오파를 세운 것을 축하해요.......] 그녀는 석파천에게 다시 말했다.
[오라버니는 할머니를 사부로 삼도록 해요.
나는 금오파의 제자가 아니니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배분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어요.] 사 노파는 빨리 문파를 세우고 제자를 두고 싶은 마음에서 수아에게 더 말하지 않고 석파천에게 재촉을 했다.
[빨리 무릎을 꿇고 큰절 여덟 번을 올리게.] 석파천은 수아가 아무런 반대를 하지 않자 사 노파의 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이마가 땅에 부딪치도록 여덟 번 절을 했다.
사 노파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됐다! 됐어! 착한 제자야,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이제 한 집안 사 람이니 정분이 전과는 달라져야지.
우리 금오파로 말하면 오늘 창립 을 하게 되었으니 열심히 나의 무공을 익히도록 하거라......] 그녀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이후 금오파가 강호에서 명성을 날리게 되고 안 되는 것은 너의 손 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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