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44편 (44/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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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44편 (4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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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화상이 사는 절이 아닙니까? 은자로 밥을 사먹고 싶은데 되겠소?] 그 도사는 노해 부르짖었다.
[이런 멍텅구리 같은 녀석, 내가 화상으로 보이느냐? 우리들은 밥을 파는 사람아 아니니 일치감치 돌아가 ……] 그는 겁을 주듯 다시 엄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서 서성거리다가는 다리 몽둥이가 부러지기 십상이니 그리 알 아라.] 다른 젊은 도사는 검자루에 손을 가져가며 그를 매섭게 노려보는게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 내려칠 것 같은 기세였다.
석파천은 말했다.
[나는 단지 배가 고파서 당신들에게 돈을 주고 밥을 사먹겠다고 했 을 뿐이오.
누가 당신들과 싸우고 싶댔소? 좋은 말로 합시다.
내가 어찌 당신들과 싸우고 싶겠소?] 그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나이가 비교적 젊은 도사가 노호를 터뜨렸다.
[너는 뭐라고 나발을 불었느냐?] 그는 즉시 석파천을 향해 달려왔다.
석파천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 는 철차회의 사람들과 대청에서 한바탕 싸운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 었다.
그는 다시는 남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 도사가 달려오는 것을 보 니 살기가 등등하여 그는 냅다 도망을 쳐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두명의 도사는 껄껄 웃었다.
중년의 도사가 말했다.
[그 멍청한 녀석이 약간 겁을 주니까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치는 군.] 석파천은 두 명의 도사가 따라오지 않자 마음을 놓고 사방을 둘러보 았다.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다.
그는 과일을 따 먹고 허기를 달래야 되겠다고 느꼈다.
그러나 숲속의 나무들은 소나무나 삼나무, 백양나 무 따위로 열매가 열리는 나무는 한 그루도 없었다.
그는 산등성이 위로 올라가 사방을 살폈다.
바로 아래에 그 도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전후 좌우에 수십 칸이나 되는 집들이 서 있었고 뒤의 부엌쪽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다시 다른 집들이 있는가 찾아보았으나 부근에 인가라고는 전 혀 보이지 않았다.
석파천은 밥 짓는 연기를 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도사들이 사납게 싸움부터 벌이려고 하지만 무슨 음식이든지 있으면 집어먹고 은자만 놓아두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그는 도관의 뒤쪽으로 내려갔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대충 가늠하고 담장을 끼고 달려가다가 마 침 옆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재빨리 사방을 둘러본 그 는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 무렵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석파천은 그곳이 바로 마당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음식을 지지고 볶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가 코 를 찔렀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석파천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살그머니 부엌문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침침한 통로에 몸을 숨기고 궁리해보았다.
(저렇게 많은 음식들을 만들어서 어디로 가져갈까? 사람이 없으면 은자를 남기고 한 그릇의 고기를 가져가는 것이 싸움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겠구나.) 잠시후 부엌에서 세 사람이 걸어나왔다.
나이 어린 도사들인데 앞장을 선 사람은 등롱을 들고 있었고 뒤의 두 사람은 목판을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목판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고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 이 놓여 있었다.
석파천은 그만 군침을 삼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발걸음을 죽이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세 도사는 남하를 돌아 이리저리 두어 번 모퉁이를 돌더니 한 청당 (聽堂) 안으로 들어가 탁자 위에 음식을 내려 놓았다.
목판을 든 두 도사는 곧 나왔으나 한 사람은 탁자 위에 젓가락과 잔 들을 놓았다.
가만히 헤아려 보니 세 탁자에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석파천은 창문 밖에서 그 도사가 상을 차리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 다.
잠시 후에 도사가 나갔다.
석파천은 그 틈을 이용하여 안으로 들어 갔다.
그는 냉큼 홍소육(洪燒肉)을 한 점 집어 들고 씹어 삼켰다.
맛이 매 우 좋았다.
그는 허겁지겁 홍소육을 배불리 집어먹고 이어서 두 손으 로 청증계(淸蒸鷄), 즉 백숙의 닭 다리를 들고 들어 올렸다.
한 입 베어 무는데 갑자기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제, 그리고 사매, 이리로 들어오시게.] 발걸음 소리와 더불어 몇 사람이 객청 앞에 이르는 기척이 들렸다.
속으로 야단났다고 부르짖으며 그는 한 속에 닭을 든 채 다른 한 손 으로 한 조각의 은자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그는 뒷문으로 사라지려고 했다.
한데 뒷문에서도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사방을 살폈으나 객청 안은 텅비어 있어서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 었다.
(야단났다.
또 싸워야 하겠는데!) 이때 몇 사람이 어느덧 문 앞에 이르렀다.
문득 그는 철차회 지하땅 굴에서 일어난 일들이 떠올랐다.
악귀나 요귀들이 있어서 사람들을 마구 죽게 만들었겠지만 자기의 손에 맞아 죽어간 사람도 적지 않으 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그는 실로 그 누구와도 다시 싸우고 싶지 않았다.
다급해져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대들보 위에 편액이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잽싸게 편액 뒤로 몸을 숨겼는데 엎드리기에 꼭 알맞았다.
곧이어 문이 열리면서 몇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사형제지간에 사형께서 이런 인사까지 차려야 하겠습니까? 이 토록 푸짐한 음식을 차리시다니……] 석파천은 그 음성이 귀에 익어 슬그머니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십 여 명의 도사들 가운데 두 중년의 남녀가 안내되어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 두 남녀는 바로 현소장의 장주 부부가 아닌가? 석파천은 그들 두 부부에게 언제나 고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민유는 그에게 은자까지 주었을 뿐 아니라 일전에 검법까지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대할 때마다 포근한 감을 느끼는 아주머니였 다.
이때 백발에 하얀 수염을 기른 노도사가 입을 열었다.
[사제와 사매가 먼곳에서 찾아와 주니 이 형이 너무나 기뻐서 한 잔 의 술을 대접하려고 할 뿐인데 푸짐하다고 칭찬을 하니 오히려 낯이 뜨겁네.] 말을 하던 그는 음식상이 엉망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홍소육 쟁반은 한 가운데가 움푹 꺼져 있고 탁자 위에 국물이 낭자 하게 흘러 있을 뿐 아니라 청증계의 쟁반은 있는데 음식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조각의 은이 덩그랗게 날좀 보슈, 하는 듯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노도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애들이 잘 지키지 못해 들고양이 종류가 와서 음식을 훔쳐 먹은 모 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손님들이 계신 자리에서 아랫 사람들에 게 꾸지람을 할 수도 없었다.
이때 어린 도사들이 다시 음식을 목판에 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탁자가 어지러워진 모양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빈그 릇을 치웠으며 국이 떨어져 얼룩진 곳은 걸레로 닦아냈다.
그러나 아 무도 그 사실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윽고 노도사는 석청 부부에게 상좌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그 는 그들이 앉기를 기다려서 옆에 앉았다.
이어 그는 슬쩍 소맷자락으로 은조각을 덮고서 한 번에 떨쳤다.
그 리고 곧이어서 소매를 거두자 은조각은 어디로인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서로 인사말을 주고 받는 가운데 중년의 도사가 그들 세 사람과 더 불어 중앙의 탁자가에 같이 앉았고 나머지 십이 명의 도사들은 다른 두 탁자에 나누어 앉았다.
술이 세 순배 돌게 되었을 때 노도사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칠 년 동안 보지 못했지만 사제와 사매의 풍채가 여전하니 기쁘네 ……] 그는 허옇게 센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 형은 이제 늙었네.] 석청은 인사말을 했다.
[사형께서 머리가 좀 세시긴 해도 정신은 전보다 더욱 맑아지신 것 같습니다.] 늙은 도사는 머리를 가볍게 저었다.
[좀 센게 무엇인가? 근심 걱정에 짓눌려 하룻밤 사이에 그만 허옇게 세고 말았네.] 그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사흘 전에만 왔더라도 이 형의 반백인 머리칼과 수염을 대할 수 있 었을 것이네.] 석청은 물었다.
[사형께서 근심을 하는 것이 혹시 상성벌악의 두 사자 때문이 아닙 니까?] 그 늙은 도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맞아.
그 일이 없었다면 아무 걱정없이 살아갈텐데 말이야.
나 상 청관(上淸觀)의 천허 도인(天虛道人)은 그 놈들 때문에 며칠 사이에 수십 년이나 폭싹 늙었지 뭔가?] 석청이 말했다.
[소호(蘇湖)가에서 저번에 저와 사매 두 사람은 들은 이야기가 있습 니다.
이번에 상선벌악 두 사자가 나타났으니 이제부터 무림에는 피 바람이 몰아칠 거라나요.
이 말을 들은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서 밤을 새워 급히 달려온 것이랍니다.
여러 사형들과 대책을 상의하 기 위해서죠.
우리 상청관은 수십 년 동안 무림을 주름잡아 왔지 않 습니까? 상청관이 너무나 유명하니 어쩌면 두 사자가 건드리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어디 안심이 돼야죠.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한 달쯤 머물면서 놈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할 생각입니다.
만일 놈들이 함부 로 도전해 온다면 저히 부부는 사문(師門)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다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제 생각이 어떻습니까?] 천허 도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땅이 꺼져라 탄식하더니 품 속에서 두 개의 동패를 꺼냈다.
그는 쩡쩡, 소리가 나도록 동패를 서 로 마주치고 나서 탁자 위에 내던졌다.
석파천은 바로 그들의 머리 위에 있었던 관계로 똑똑히 동패의 모양 을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웃고 있고, 다른 하나는 노기를 띠고 있는 조각의 동패가 아 닌가! 바로 두 번이나 본 바가 있는 동패와 다름이 없었다.
동시에 그는 놀람과 의아함을 금할 수 없었다.
(어째서 저 동패가 상청관에도 나타난 것일까?) 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석청은 이때 엇, 하는 소리를 지르더니 한숨을 쉬었다.
[상선벌악의 사자들이 이미 왔었군요.
저희들이 말을 쉬지 않고 달 려왔는데도 한걸음 늦고 말았군요……] 그리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고 똑바로 천허를 바라보며 다시 입 을 열고 물었다.
[그게 언제의 일이었지요? 사형께서는……어떻게 대응할 작정이신지 요?] 천허는 심신이 불안정하여 일시 미처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때 그 의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한 도사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사흘 전의 일일세.
장문사형께서는 대인대의(大仁大義)를 내세워 혼자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시면서 동짓날 협객도로 찾아가 서 팥죽을 먹겠다고 약속을 했다네.] 석청은 두 조각의 동패를 보고 또한 상청관 안의 여러 사람들이 무 사한 것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에 이미 일이 그렇게 되었으리라는 것 은 예측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그는 즉시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천허에게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읍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형께서는 홀로 그 무거운 짐을 지시어 상청관의 모든 사람들의 편안함을 도모코자한 데 대해서 소제는 지극히 고맙게 생각하는 한편 부끄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그리고 그는 허리를 펴고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먼저 고맙다는 인사말을 드리는 바입니다만 이 소제가 부탁할 일이 있는데 사형께서는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천허 도인은 미소를 하고 반례를 했다.
[천하의 모든 사물(事物)들은 지금에 있어서 이 우형에게는 모두다 뜬구름과 같네.
아우님께서 분부할 일이 있다면 이 우형이 모두 받들 도록 하겠네.] 석청은 다짐을 받으려는 듯 입을 열고 물었다.
[그렇다면 사형께서는 응낙을 하신 건가요?] 천허 도인은 고개를 한 번 가볍게 끄덕여보였다.
[물론 응낙을 하는 바일세.
그러나 아우님이 어떤 분부를 할지 모르 겠군.] 석청은 갑자기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사형, 당돌한 말씀같지만 상청관의 장문직을 저희 내외에게 맡겨주 십시오.] 갑작스런 요구에 주위에 있던 도사들은 안색이 변했다.
천허는 잠시 고려해보는 눈치며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석청은 재차 입을 열었다.
[소제 내외가 본문의 장문인이 되어 협객도로 동지팥죽을 먹으로 가 는 것이 좋겠습니다.] 천허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는 비록 웃고 있었지만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아우님의 말씀은 고마우나 이 우형(愚兄)이 상청관의 장문인이 된 지도 어언 십여 년, 강호에서 천허가 장문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 람이 없네……] 이어 그는 고개를 쳐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위험에 부딪쳐 뒤로 물러선다면 장래 강호에서 뭐라고들 하겠나?] 거기까지 말한 그는 석청의 손을 잡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자네는 나이 훨씬 젊고 또 속가(俗家) 제자지만 이 우형과의 교분이 유난히 돈독하고 무공 또한 본파에서 으뜸이라 평소 이 우형 이 탄복해마지 않던 바일세.
동지팥죽 사건이 아니면 진정 기꺼이 장 문직을 양보하겠지만 오늘의 판이해진 형세로 보아 이 우형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하네.
하하하……] 그 웃음소리는 매우 처량했다.
석파천은 동지팥죽을 먹는 것이 무슨 일일까 하는 의아심이 일었다.
지난 번 철차회의 무리들과 대면하게 되었을 때도 장삼이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노도사가 동지팥죽을 들먹일 때 안색이 변하는 것으로 미루어 혹시 극독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때 천허 도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우형이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성성한 백발로 변하게 된 것은 결 코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닐세.
내 나이 이미 육십둘이 니 금년에 죽는다고 하더라도 제 수명대로 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이네.
다만 내가 되풀이해서 생각을 해본 것은 어떻게 해야만이 이와 같이 무림에 십년마다 한번씩 나타나는 커다란 액겁을 제거할 수 있 을 것인가 하는 점과 어떻게 해야만이 본파의 위엄을 땅에 떨어뜨리 지 않고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일세.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겠나.
과거 삼십 년 동안 협객도에서는 이미 네 번 이나 동지팥죽의 모임을 가졌었네.
각문 각파와 각방 각회(各幇各會) 에서 초대에 응해 그 모임에 참가했던 영웅호걸들은 하나도 돌아온 사람이 없네.
우형이 죽는다는 것은 조금도 애석할 것이 없는 일이고 하니 이 사후의 대책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대해서 우리들은 적절 한 방법을 생각해내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네.] 석청 역시 껄껄 웃으면서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숨에 술잔을 비 우고서는 입을 열었다.
[하하하, 사형.
저희 부부가 우리의 능력을 가늠해보지 않고 사형에 게 자리를 양보하라 한 것은 결코 사형을 대신해서 두 목숨을 바치자 는 것이 아니고 그곳으로 가서 어떻게 된 사연인가를 알아보자는 것 이지요.
어쩌면 하늘이 보호하시어 그 가운데의 진상을 알아낼 수 있 을지도 모르지 않겠소이까? 비록 무림을 위해서 그와 같은 커다란 해 를 제거할 능력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그 가운데의 비밀을 밝혀내게 된다면 천하의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자리를 함께 해서 대 책을 강구하고 힘을 모으게 될 것이 아니겠소이까? 설마하니 진정으 로 중원의 무림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는데도 협객도의 그 몇 명 되 지 않는 사람들을 이겨내지 못하겠습니까?] 천허 도인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 우형은 저쪽 사람들의 기를 돋우어주고 아우님을 얕보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소림사의 묘체 방장(妙諦方丈), 무당파의 우다 도장(愚 茶道長), 청성파(靑城派)의 청공 도인(淸空道人) 등과 같은 고수들도 한 반 떠난 이후 다시 되돌아오지 못했네.
아우님의 무공이 고강하다 지만 궁극적으로……궁극적으로는 아직까지 결코 묘체 방장이나 우다 도장과 같은 선배고인들에 비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석청은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 점에 대해서 소제도 자기 자신을 헤아리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 나 일의 성공은 반 정도는 재간에 의지해야 하지만 반 정도는 운에 의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커다란 해를 주멸(誅滅)한다는 것은 물론 그럴 만한 재간이 없다고 보겠으나 방법을 강구해서 약간의 비밀을 캐어낸다는 것은 생각을 해 볼 적에 전혀 가망이 없다고는 볼 수가 없지요.] 천허 도인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청관의 장문은 백년 동안 언제나 도류(道流) 쪽에서 집장(執掌) 해 왔네.
이 우형이 죽은 이후에는 충허(沖虛) 사제로 하여금 뒤를 잇도록 한다는 방침을 이미 정해놓고 있다네.
그러니 차후로도 아우 님의 두 내외는 전력을 다해서 본파가 쇠퇴하여 이 무림에서 종적을 감추는 일이 없도록 도와 준다면 이 우형으로서는 그야 말로 이루 말 할 수 없이 고맙겠네.] 석청은 거듭 되풀이해서 요구했으나 천허 도인은 끝내 허락하지 않 았다.
여러 사람들은 술잔을 놓고 술을 마시지 않고 있었으며 또한 안주를 먹을 것도 잊고 있었다.
석파천은 이때 한 조각의 닭고기를 가만히 찢어서는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그러나 씹게 된다면 쩝쩝거리는 씹는 소리가 나게 될까봐 그 만 꿀꺽 삼켰다.
그러나 그의 한 쌍의 눈동자는 여전히 틈바구니를 통해서 아래쪽을 열심히 몰래 살펴보고 있었다.
이 무렵 석 부인 민유는 남편과 천허 도인이 이러쿵저러쿵 따지는데 대해 아무런 의견이 없는지 끼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천천히 손을 뻗 더니 두 조각의 동패를 집어들고 한 번 살펴보더니 그대로 자기의 품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천허 도인은 나직이 말했다.
[사매, 이리 내놓게나.] 민유는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사형을 대신해서 갈무리해 놓고 있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천허 도인은 말로써 그녀를 저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자 손을 뻗쳐서 는 빼앗으려고 들었다.
바로 이때 마침 석청 역시 젓가락을 뻗쳐서는 한 쟁반의 장어구이를 잡으려고 하고 있었는데 정히 오른팔로 천허 도인의 손바닥을 막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석 부인의 아랫쪽에 앉아있던 충허가 손과 팔을 한 번 움츠 렸다가는 다시 뻗쳐내면서 동패를 낚아 채려고 하면서 입을 열었다.
[역시 내가 갈무리를 해두기로 하겠네.] 석 부인은 왼손을 쳐들고 네 개의 손가락으로 마치 비파를 타듯이 그의 손목을 할퀴려고 들었다.
충허는 왼손마저도 뻗쳐내면서 손가락으로 석 부인 민유의 오른쪽 속목을 짚으려고 했다.
석 부인은 오른쪽 손목을 가볍게 쳐들면서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퉁겨서는 한 가닥의 세찬 기운을 충허의 가슴팍쪽으로 쏘아보냈다.
충허는 이미 천허 도인의 명령으로 상청관의 관주자리를 계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바로 그들 이 한 파의 도인이 나 속인이나 웃제자들의 장문인이 된 것이었다.
그는 석청 부부가 어려운 일을 당해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나서겠다 는 것이 원래 호의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조각의 동패로 말하면 전체 상청관 도사들의 목숨과 관 계있는 일이며 천허 도인이 이미 그 두 조각의 동패를 받아들인 이상 다시 다른 사람의 손으로 들어가게 했다가는 전 상청관의 도사들이 목숨을 잃을 우려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석 부인 민유와 쟁탈전을 벌이게 된 것이었다.
이때 그는 상대방의 손가락이 가슴팍을 향해 지풍을 날려오자 즉시 손을 휘둘러 장풍을 내쏟아 막아내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자리에서 앉은 상태에서 삽시간에 칠팔 초를 교 환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본래 한 스승에게서 무공을 전수받았기 때문에 펼치는 것 이 모두다 본문의 금나수법이었다.
비록 상대방을 해치겠다는 뜻이 없었으나 손을 쓰는 것이 명쾌하면 서도 깨끗했으며 한 자 둘레라는 범위 안에서 전력을 다해 겨루고 있 었다.
이들 두 사람이 과거 함께 무예를 배우게 되었을 때에 서로 무공을 절차(切磋)한 바가 있었지만 사문에서 무예를 다 익히고 헤어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수차에 걸쳐 서로 상면을 한 적이 있었지만 줄곧 상대방이 손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던 터였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손을 쓰게 되자 마음속으로 똑같이 상대방의 정 묘하고도 심후한 무공에 속으로 갈채를 보내마지 않았다.
세 식탁가에 앉아 있는 나머지의 열여섯 명 역시 모두다 눈 한번 깜 박이지 않고 두 사람이 무공을 겨루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다 본문의 고수들로서 석청 부부가 근 십여 년간 강호에서 지극히 쟁쟁한 명성을 날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와 충허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서로 동패를 차지하 려고 하는 마당에 본문의 무공의 묘지(妙지)를 그야말로 여지없이 발 휘하는 것을 대하게 되자 하나같이 찬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십여 초를 겨루게 되었을 때에 두 사람의 세력은 막상막하였 다.
그러나 석 부인 민유는 오른손으로 두 조각의 동패를 거머쥐고 있었 기 때문에 오른손으로는 겨우 주먹질만 할 수 있었을 뿐 구(勾), 나 (拿), 탄(彈), 조(操) 등 본문의 금나수법 절기를 제대로 발휘할 수 가 없어서 크게 약화된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가 있었다.
그와 같은 상황하에서 다시 몇 초를 겨루게 되었을 때에 충허가 왼 손으로 공력을 돋우고 석 부인의 왼팔을 눌러서 아래로 누르는 동시 에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은 어느덧 동패에 닿도록 하는데 성공을 하 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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