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협 객 행 (俠 客 行) 협 객 행 (俠 客 行) "조(趙)의 나그네 호영(胡纓)이 서릿발처럼 빛나는 오구(吳鉤)를 휘두르며 은빛 안장의 백마에 높이 올라타고 유성처럼 천하를 누비다. 열 걸음마다 한 사람을 죽이고 천 리를 달려도 멈출 줄 모르더니 할일이 끝나면 소매를 떨치고 떠나며 차신의 이름을 숨기다. 신릉군(信陵君)의 식객인 주해(朱亥)와 후영(侯瀛)은 항상 검을 뽑아 무릎 위에 올려 놓고 담소하며 술잔을 기울이더니, 석 잔의 술을 마시며 쾌히 승락하면 그 약속은 오악(五嶽)보다 무겁고 술이 얼큰해지면 그 위엄이 무지개처럼 뻗쳐나다. 조나라를 구하기 위해 금추(金鎚)를 휘두르니 먼저 한단땅이 놀라 진동하다. 천추에 이름을 빛낼 두 장사는 대량성(大梁城)에서 혁혁한 명예를 드날리다. 그 협골(俠骨)의 향기 영원히 남아 후세의 영웅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 누가 그들을 말할 때 머리 숙여 감탄하지 않으리!" 이태백의 이 한 수 <협객행(俠客行)>이라는 고풍(古風)의 시(詩)는 춘추전국시대 위국(魏國)의 명사 신릉군(信陵君)의 식객이었던 후영과 주해의 고사(故事)를 노래한 것이다. 그 시를 읽으면 천 년이 지난 오늘도 영웅의 기상과 호탕한 기개를 금할 수 없다. 이 시에서 거론한 대량성은 황하(黃河)에 인접해 있다. 그 지방은 후 에 변량(卞梁)이라고 명칭이 바뀌었으니 바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이다. 변량은 비록 여러 차례 한 나라의 경성(京城)이 되었지만 민풍(民風) 은 질박했으며 그 옛날 눈부시게 활약하던 호협(豪俠)들의 기개는 여 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변량의 동문(東門)에서 십여 리쯤 떨어진 곳에 작은 시진(市鎭)이 있 었다. 그 시진은 일명 후감집(侯監集)이라고 불리웠다. 이 조그만 고을은 바로 전국시대의 협객 후영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 이었다. 그 옛날 후영은 대량성에서 이문감(夷門監)을 지냈던 것이다. 대량성의 동쪽에는 산이 있었는데 평탄해서 그런지 그 산은 이름이 이산(夷山)이었다. 동쪽 성문을 일명 이문(夷門)이라고도 하는데 그 옛날 후영이 이문감 을 지냈다 함을 바로 대량성의 동문을 지키는 문지기 벼슬을 했음을 의미한다. 이날 황혼 무렵, 사방의 마을에서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지게를 지 고 바구니를 들고 자기의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말했다. "관군(官軍)들이 오는가 봐?" 어떤 사람은 말했다. "빨리 피해야 돼. 관군이 들이닥치면 지게와 바구니의 물건을 차서 뒤엎어버릴 것이고 자칫하면 말발굽에 짓밟혀 죽을 거야!" 그때 말발굽소리와 함께 잇달아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피리소리는 동 쪽에서도 들려왔고 서쪽에서도 들려왔다. 동서남북에서 호응하듯 들려 오고 있는 것이었다. 후감집은 완전히 포위 당한 셈이었다. 이렇게 되자 고을 안의 사람들 은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속으로 꺼림칙하게 여겼으며 혹시 산적들이 들 이닥친 게 아닌가 하고 염려했다. 후감집의 어귀에 있는 잡화상의 한 점원이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아이쿠! 우리 누나와 형님들이 오시는 모양이군. 뭐가 이리 소란스 럽지?" 주인 왕씨는 창백한 안색으로 떨리는 손으로 그 사환의 머리를 후려 치며 말했다. "이 녀석아, 무슨 소리냐? 누나는 뭐고 형님은 또 뭐냐? 아무래도 산 채의 나으리들께서 오는 것 같다. 그렇게 입방아를 찧다가 네 녀석의 목숨이 남아날 것 같으냐?" 그는 새파란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대낮에 산채의 나으리들이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달려오는 것일까?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걸?" 그는 무엇을 봤는지 하던 말을 뚝 그치고 입을 딱 벌린 채 아무 소리 도 하지 못했다. 이ㄸ, 고을 동쪽으로부터 너댓 필의 말이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다. 말 위에 탄 사람들은 한결같이 흑의를 걸치고 있었으며 머리 위에는 삿갓을 푹 눌러쓰고 있었다. 손에는 각기 시퍼런 칼을 들고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놈들!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서 있거라!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 는 이 칼이 사정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호통을 치며 말을 몰아 서쪽으로 달려갔다. 말발굽이 땅바닥에 깔린 청석을 밟는 요란한 소리가 달그락거리며 들 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는 사람들의 심장을 쿵쿵 뛰놀게 만들었다. 말발굽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서쪽에서 이번에는 칠팔 필의 말이 달려왔다. 말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역시 흑의를 걸치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삿갓을 쓰고 있었다. 그들 역시 호통쳤다. "그 자리에 꼼짝말고 서 있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판도면(板刀麵)을 먹고 싶은 사람들은 앞으로 나서도 좋다!" 잡화상의 그 점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판도면이 무엇일까? 맛은......" 이 사람은 말이 많은 친구였다. 한마디 농담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말위에 타고 있던 한 명의 대한이 말채찍을 휙,휘둘렀다. 채찍의 끝이 뱀의 혀처럼 점포 안으로 날아들어 대뜸 그 점원의 목을 휘감아 버렸다. 곧이어 와락 잡아당기자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점원은 길거리로 나가떨어졌다. 뒤에서 쫓아 오던 말이 발굽으로 그 점원을 사정없이 밟고 지나갔다. 점원은 한 마디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난 후 잠잠해졌다. 아무래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사람들은 대한들의 난폭하고 흉한 기세에 압도당해 감히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점포문을 닫으려고 했으나 두 발이 못박힌 듯 그 자리 에 서서 전신을 와들와들 떨 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잡화상에서 대여섯 칸을 지나 끝쪽에 호떡을 구워 파는 가게가 있었 다. 화덕의 불길은 맹렬하고 기름은 솥 안에서 지글지글 끊고 있었다. 머리가 허옇게 센 한 명의 늙은이가 허리를 굽히고 밀가루를 조그만 공처럼 만들고 있었다. 그는 그 공처럼 만든 것을 다시 넙적하고 둥글게 폈다. 넙적하게 만 들자 깨소금을 대접에서 좀 집어서 호떡 위에 살짝 뿌리더니 쇠집게로 화덕 속에 집어넣었다. 이때 날카롭게 들리던 피리소리와 말발굽소리가 동시에 멈추어졌다. 칠팔백 명이 모인 고을의 시장터는 물을 뿌린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어린애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는 아이가 있다 해도 부모들 이 입을 꼭 막아 울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단지 한 사람이 지르륵, 지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가죽신을 끌면서 서쪽의 큰거리를 따라 이쪽으로 오 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사람의 걸음걸이는 매우 느렸다. 무겁게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는 데 한번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심장이 밟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점차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가죽신 소리가 호떡가게 앞에서 멈추었다. 그 사람은 호떡을 만들고 있는 노인의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갑자기 냉소를 날렸다. "흐흐흐......" 호떡 파는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체구가 매우 우람했으며 키도 컸다. 얼굴 피 부가 귤껍질처럼 얽은 곰보였다. 호떡 파는 노인은 반색을 하며 말했다. "나으리, 호떡을 사시겠습니까? 하나에 한 푼입니다." 그는 쇠집게를 들어 화덕 속에서 뜨근뜨근한 호떡을 꺼내 백목판(白 木板)위에 놓았다. 키가 큰 사내는 냉소를 하더니 불쑥 말했다. "이리 내놔!" 그는 왼손을 내밀었다. 노인은 실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예. 그러죠." 그는 막 구워낸 호떡을 그의 손 위에 올려 놓았다. 그 키다리의 사내 는 두 눈썹을 꿈틀거리며 호통을 질렀다. "지금에 와서도 이 나으리를 속이려고 하느냐?" 그는 냅다 노인에게 호떡을 집어던졌다. 호떡 파는 노인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급히 고개를 한 옆으로 기울였다. 호떡은 그의 얼굴을 스치고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기둥에 맞고 튕겨져 나와 길옆 시궁창가에 떨어졌다. 키가 큰 사내가 호떡을 던지는 동시에 허리춤에서 한 쌍의 갈고리를 뽑아 들었다. "이래도 내놓지 않겠느냐! 오(吳)가야, 너는 도대체 분수를 아느냐, 모르느냐?" 호떡을 파는 노인은 급히 말했다. "나으리는 사람을 잘못 보셨군요. 이 늙은이는 성이 왕가올시다. 호 떡 파는 왕 영감이라면 이 후감집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사내는 차가운 냉소를 날렸다. "네 이놈! 우리들은 벌써 네가 변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용케도 일이 년은 숨어 살았지만 한평생 숨어살지는 못해!" 호떡을 파는 노인은 실눈을 가늘게 뜨고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평소 금도채(金刀寨)의 안(安) 채주(寨主)는 돈 있는 사람의 재물을 훔쳐 가난한 사람을 도와준다고 하여 강호에서는 칭찬이 자자할 뿐 아 니라 모두들 협도(俠盜)라고 칭하는데 어째서 파견나온 졸개들은 호떡 파는 늙은이에게 시비를 거는 것인지 모르겠군." 키가 큰 사내는 호통을 내질렀다. "오도통(吳道通)! 정말 내놓지 않을 작정이냐?" 호떡을 파는 노인의 안색이 약간 변하는 것 같았다. 왼쪽 뺨의 근육 을 몇 번 씰룩거리더니 곧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당신이 이 오모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토록 무례한 행동을 하 다니, 너무 담이 큰 것이 아닐까?" 키다리 사내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나으리의 담이 큰 것을 네 녀석은 겨우 오늘에야 알았느냐?" 그는 왼손에 든 갈고리를 쳐들고 수도금래(手到檎來)라는 일 초를 펼 쳐 오도통의 왼쪽 어깨를 찍으려고 했다. 오도통은 오른쪽으로 슬쩍 몸을 날렸다. 키다리는 강철 갈고리가 빗 나가자 왼손을 즉시 안으로 구부리면서 강철 갈고리를 회수하더니 다 시 오도통의 등을 향해 번개처럼 찔렀다. 순간, 오도통은 급히 몸을 움츠리며 피했다. 곧이어 그는 오른발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화덕을 찼다. 화덕의 시뻘건 숯불이 별안간 그 키가 큰 사내에게로 날아가고 동시 에 튀김을 만들려고 준비했던 기름솥의 뜨거운 기름이 와락 그 키 큰 사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키가 큰 사내는 기겁을 하여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새빨갛게 달 구어진 숯덩이들은 피할 수 있었으나 한 솥 가득 끊여 놓은 뜨거운 기 름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어이쿠!" 비명과 더불어 뜨거운 기름이 그의 두 다리 위에 쏟아지자 그는 고통 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오도통은 두 발에 살짝 힘을 주어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더니 맞은편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의 손에는 호떡을 굽던 그 무쇠 집게가 들려 있었다. 별안간 푸른 빛 광채가 번쩍이는 가운데 한 자루의 칼이 오도통의 머리 위로 떨어 졌다. 오도통은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렸는지 무쇠 집게를 들어 막았다. '창',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의 무쇠 집게는 시커먼 것이 대수롭게 보이지 않았지만 기실 강철 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오히려 칼을 밀쳐내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ㄸ 왼쪽에서 한 자루의 짧은 창이 불쑥 디밀어졌고 오른쪽에 서는 쌍칼이 동시에 공격을 해 왔다. 원래 사방의 지붕 위에도 사람들 이 가득 있었던 것이다. 오도통은 싸늘히 코웃음치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이 염치없는 것들! 많은 사람의 힘으로 나를 이길 작정인가?" 그는 몸을 휙 날렸다. 두 손으로 무쇠 집게의 양쪽을 잡고 한데 붙어 있던 무쇠 집게를 두 쪽으로 쪼개어 두 손에 나눠 잡았다. 그는 왼쪽의 쇠집게로 단창을 막고 오른쪽의 쇠집게로 쌍칼을 밀어냈 다. 그는 그 한쌍의 쇠집게를 마치 판관필(判官筆)처럼 구사하고 있었 다. 오도통은 쇠집게를 휘두르며 상대방의 혈도를 노리고 공격했다. 그는 혼자서 세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별안간 그는 호통을 내질렀다. "받아라!" 단창을 쓰던 사내가 왼쪽 허벅지를 감싸쥐고 데굴데굴 땅바닥으로 굴 러 떨어지고 말았다. 이ㄸ, 서북쪽의 지붕 위에 한 왜소한 늙은이가 세 사람이 싸우고 있 는 모양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얀 광채가 번쩍이는 가운데 단칼을 쓰던 사내가 오도통의 오른발에 차여 곤두발질치며 거리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되자 쌍칼을 쓰던 사내가 그만 겁을 집어 먹었다. 두 자루의 칼을 마구 휘둘러 자기 자신만을 보호할 뿐 공격을 하지 못했다. 이ㄸ 왜소한 늙은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점차 다가가던 그는 오 른손의 식지를 벼락같이 내질렀다. 그가 노린 곳은 바로 오도통의 눈이었다. 이 일 초는 신속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전광석화 같았다. 오도통은 무기를 휘둘러 그 늙은이의 손가락을 후려쳤다. 그 늙은이 는 손을 움츠리고 쇠집게를 피하면 이번에는 오도통의 인후를 찔렀다. 오도통은 쇠집게를 끝까지 뻗쳐냈기 때문에 중도에서 초식을 변화시 킬 수 없어 부득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늙은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오른손 의 한 손가락을 뻗쳐서 오도통의 아랫배를 찔러 갔다. 오도통은 오른쪽의 쇠집게를 쳐들어 상대방의 머리통을 후려치려고 했는데 그 늙은이는 앞으로 곧장 달려들어 오도통의 품안으로 뛰어들 었다. 그 늙은이는 바짝 뛰어들어 상대방의 쇠집게를 피하려고 하면서 두 손을 일제히 뻗쳐서 오도통의 가슴팍을 움켜 잡으려고 했다. 오도통은 깜짝 놀라 급히 뒤로 물러섰다. 다음 순간 쫙,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팍의 옷이 한 조각 크게 찢겨져 나갔다. 오도통은 급히 피하려 했으나 약간 늦어 그만 일지를 맞은 것이다. 오도통은 재차 쇠집게를 휘둘러 환포육합(環抱六合)이라는 필살의 초 식으로 노인의 양쪽 태양혈을 후려치려고 했다. 그러나 노인은 피하지 도 않고 막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앞으로 달려들며 두 손으로 정확하게 그리고 번개같이 상대방의 가슴팍을 찔러갔다. 순간 정통으로 얻어맞은 오도통은 그만 지붕 위에서 데구르르 굴러 아래로 떨어졌다. 한편 키 큰 사내는 두 다리를 뜨거운 기름에 데이자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두 다리에 상처를 입어 몸을 날려서 지붕 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 왜소한 노인 주목(周牧) 은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라 그가 나선 마당에 다른 사람이 옆에서 거 들라치면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키다리 사내는 고개를 쳐들고 두 사람이 싸우는 광경을 구경하고 있 었다. 그런데 오도통이 지붕 위에서 떨어진 것이다. 키다리 사내는 크게 기뻐하며 급히 다가들었고 한 쌍의 갈고리로 오 도통의 배를 푹 찔렀다. 그와 동시에 그는 통쾌하게 광소를 터뜨렸다. 이ㄸ 주목이 급히 부르짖었다. "죽이면 안 된다! 사로잡아라!" 그러나 이미 늦고 말았다. 한 쌍의 갈고리가 이미 오도통의 뱃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히히덕거리며 웃고 있던 키다리 사내가 비명을 내질렀다. "으악" 그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가슴팍에는 두 자루의 쇠집게가 꽂혀 있었다. 쇠집게는 그의 가 슴 팍을 꿰뚫고 등뒤로 끝이 삐쭉 나와 있었다. 선혈은 앞뒤의 상처에서 뿜어지듯 철철 흘러나왔다. 키다리 사내는 몸을 두어 번 휘청거리더니 즉시 쓰러졌다. 중상을 입은 오도통은 사력을 다하여 일격을 가하게 된 것인데 키 큰 사내는 전혀 방비를 하지 않은터라 그만 가슴팍을 꿰뚫리게 되었던 것 이다. 금도채의 형제들이 재빨리 손을 뻗쳐 그를 부축하려고 했으나 이미 숨을 거두고 만 후였다. 주목은 키 큰 사내의 생사를 상관하지 않고 입가에 경멸에 찬빛을 띄 우며 오도통의 몸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오도통 역시 숨이 끊어졌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호통을 내 질렀다. "이 자의 옷을 벗기고 자세히 조사를 해보아라!" 네 명의 졸개가 대답했다. "예!" 그들은 일제히 달려들러 오도통의 옷을 볏겼다. 옷을 벗기자 그의 등 뒤에 보따리 한 개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두 명의 흑의대한이 재빨리 그 보따리를 펼쳤다. 보따리 속에 또 보 따리가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인가가 기름 종이로 겹겹이 싸여 있었다. 그들이 한겹 한겹 기름종이를 펼치고 있을 때 주목의 얼굴 위에는 기 쁜 빛이 떠올랐다. 모두 열 겹의 기름종이를 펼치게 되자 그 보따리는 점점 작아졌다. 주목은 점차 의혹의 표정을 띄었다. 기름종이 안에는 지름이 세치 정 도 되는 조그만 물건이 싸여 있었다. 그는 대뜸 손을 뻗쳐 그것을 집어들고 손가락으로 눌러보더니 노해 부르짖었다. "제미랄! 우리를 속였다. 더 볼 것도 없다. 빨리 집 안을 뒤져라!" 십여 명의 흑의사내들은 그 소리를 듣고 점포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앞쪽은 호떡을 파는 가게였고 뒤쪽은 방이었다. 십여 명이 안으로 뛰어들어가자 우지끈 뚝딱하는 소리와 함께 그릇은 말할 것 없고 도마,탁자,의자,그리고 옷가지 등을 모조리 길가로 내던 지는 것이었다. 주목은 단지 밖에서 커다란 음성으로 명령만 내리고 있었다. "자세히 조사를 해보아라. 어떠한 곳도 누락시켜서는 안된다!" 한참 동안 소란을 피우게 되자 어둠이 온누리를 뒤덮었다. 물건을 제 대로 살펴볼 수가 없었다. 뭇사내들은 횃불을 켜 들었다. 가게의 벽까지 허물어보고 화덕까지 박살을 냈다. 이ㄸ 황혼빛 아래서 조그맣고 더러운 손이 시궁창가에 떨어진 호떡을 집어들더니 천천히 손을 움츠렸다. 그는 열두어 살쯤 된 꼬마 거지였다. 하루를 꼬박 굶은 그는 힘없이 담장가에 앉아서 키 큰 사내가 팽개쳐 시궁창가에 버려진 호떡을 죽어든 것이었다. 꼬마 거지의 눈동자는 시종 그 호떡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벌써부터 그 호떡을 줏어먹고 싶었으나 거리에 흉신악귀와 같은 사내들이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고 있기 때문에 놀라서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을 뿐이 었다. 더군다나 잡화상 점원의 시체와 오도통과 키 큰 사내의 시체가 호떡 과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 있지 않는가? 날이 어두워지고 횃불이 켜졌지만 그 빛이 시궁창에까지 미치지 않게 되자 어린 거지는 비로소 용기를 내어 호떡을 집어들었던 것이다. 허기에 지친 그는 흙이 묻은 것도 상관하지 않고 가볍게 한 입 호떡 을 베어 물었다. 그러나 그는 감히 소리내어 씹지를 못했다. 소리를 냈다가는 칼을 든 대한들에게 들켜 어떤 화를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한 조각의 호떡을 입에 무는 순간 삼키기도 전에 뱃속이 한결 뿌듯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ㄸ 사내들은 호떡가게를 발칵 뒤집어 놓다시피 했다. 주목은 자신이 찾는 물건이 나오지 않자 호통을 내질렀다. "모두 자기 위치로 돌아가도록 하라!" 피리소리가 다기 울려퍼졌다. 곧이어 말발굽소리가 달그닥거리며 들리더니 금도채의 산적들은 떼를 지어 후감집에서 물러갔다. 두 명의 졸개가 키다리 사내의 시체를 말 안장 위에 걸쳐 놓았다. 삽시간에 그들은 후감집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말발굽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을 때야 후감집에서는 겨우 인기 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을 사람들은 도적들이 갔다가 다시 되돌아 올까봐 큰소리로 말을 하지 못했다. 잡화상의 주인과 다른 한 명의 점원이 죽은 시체를 가게 안으로 옮기 고 급히 가게문을 닫았다. 그런 후에 그들은 감히 다시 나오지를 못했다. 동쪽에서 탕탕거리는 소리가 나고 서쪽에서도 지쿵지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게문을 닫는 것이 아니면 문을 걸어잠그는 소리였다. 얼마 후에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고 어떠한 기척 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이 어린 거지는 오도통의 시체가 여전히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 을 보고 약간 두려움을 느꼈다. 가볍게 그는 입안에 물고 있던 호떡을 몇 번 씹었다. 그리고 나서 꿀 꺽 삼켰으며 다시 호떡을 한 입 뜯으려고 했을 때였다. 별안간 죽은 줄만 알고 있던 오도통이 꿈틀거렸다. 조그만 거지는 깜 짝 놀라서는 눈을 부비고 다시 바라보았다. 시체가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나이 어린 거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시체는 두 발로 버티고 섰다. 그 거지는 두려움으로 인해 이빨을 딱딱 소리가 나도록 마주치며 떨 었다. 몸이 떨려오며 온몸이 추워 견딜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시체는 고개를 돌렸다. 다행이 그 거지는 담벼락 쪽에 웅크리고 있어 서 그 시체의 눈에 띄지는 않았다. 이ㄸ 차가운 초생달이 온누리를 비춰주고 있었다. 어린 거지는 그 시체의 입가에 한가닥 선혈이 흘러내린 자국이 있음 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두 자루의 강철갈고리가 여전히 그의 배 에 꽂혀 있었다. 어린 거지는 죽어라 하고 이빨을 깨물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 다. 시체는 다리를 굽히더니 손으로 땅바닥을 더듬거렸다. 하나의 호떡을 들어 만져보더니 두 손으로 찢어서 확 제쳐보고 집어 던졌다. 그는 다시 하나의 호떡을 찢어보고 다시 던졌다. 어린 거지는 그만 놀라서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 시체는 끊임없이 땅바닥을 더듬었다. 어떤 다른 물건이 손에 닿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떡만을 잡아서 찢 고 던지곤 했다. 그는 차츰차츰 시궁창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산적들이 호떡가게를 뒤집게 되었을 때 백목판 위의 스무 개나되는 호떡을 모조리 땅바닥에 내던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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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2편 (2/82)
이ㄸ 시체는 고개를 쳐들고 그 호떡들을 하나하나 주워 들고 먹지도 않고 조각을 내어 땅바닥에 내던지곤 했다. 어린 거지는 그 시체가 점차 담벼락 옆으로 다가오자 깜짝 놀란나머 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