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ㄸ 시체는 고개를 쳐들고 그 호떡들을 하나하나 주워 들고 먹지도 않고 조각을 내어 땅바닥에 내던지곤 했다. 어린 거지는 그 시체가 점차 담벼락 옆으로 다가오자 깜짝 놀란나머 지 도망을 치고 싶었지만 전신이 와들와들 떨려 도망을 칠 수가 없었 다. 시체의 행동은 매우 느렸다. 스무 개의 호떡을 찢어서 팽개치는데 향 이 한 대 탈 시간이 흘렀다. 그는 땅바닥에서 다시 호떡을 찾지 못하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것 같았다. 어린 거지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감히 그를 쳐다볼 수 없었던것이 다. 별안간 그는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본래 그의 몸은 담벼락 가에 웅크 리고 있었으나 달빛이 등뒤에서 비춰와 그의 봉두난발의 그림자를 시 체의 발옆에 드리워지게 만들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거지는 그 시체의 발이 다시 한번 움직이는 것을 보고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라 하고 도망을 쳤다. 그 시체는 목쉰 소리로 부르짖었다. "호떡....호떡....." 그는 휘청거리며 뒤쫓아 왔다. 급히 도망치던 어린 거지는 땅바닥의 돌에 걸려 곤두박질을 쳤다. 시체는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쳐 그의 등을 누르려고 했다. 어린 거 지는 재빨리 몸을 뒹굴었다. 그는 한옆으로 비켜났다가 다시 일어서서 뛰었다. 시체는 일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잠시 동안 애를 써서야 똑바로 일어 설 수가 있었다. 그 시체는 보폭이 길었다. 성큼성큼 옮겨 디디자 겨우 십여 걸음을 디뎠을 뿐인데도 그 거지의 뒷덜미를 움켜잡고 번쩍 허공으로 높이 들 어올릴 수 있었다. 그 시체가 물었다. "네가 나의 호떡을 훔쳐갔지?" 이런 상황에서 나이 어린 거지가 감히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는 부 득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시체가 다시 물렀다. "너는 벌써 먹었느냐?" 어린 거지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는 손으로 어린 거지의 옷을 쫙, 잡아 찢었다. 어린 거지의 살갗이 드러나자 그 시체는 흉악하게 말했다. "나는 너의 배를 가르고 호떡을 꺼내겠다." 거지는 깜짝 놀라 혼이 달아날 정도였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한 입밖에 먹지 않았어요." 원래 오도통은 주목의 쌍장을 가슴팍을 격파당하고 다시 키 큰 사내 의 괴상한 갈고리에 배를 찔리자 일시 정신을 잃었던 것이었다. 한참 후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배의 요혈을 찍혀 중상은 입었으나 죽지는 않았다. 그가 오로지 집착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호떡밖에 없었다. 그는 정 신을 차리자마자 금도채의 인마가 떠난 것을 알게 되었고 배의 상처를 돌보지도 않고 호떡 속에 숨겨둔 그 물건을 끄집어내려고 했던 것이 다. 그가 호떡 파는 노인으로 변장하고 후감집에서 은거한 지 이미 이 년 이나 되었다. 그 동안 별일이 없었으며 방법을 다해서 그 물건의 원주인을 찾아내 려고 했으나 시종 찾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피리소리가 울려퍼지고 이백여 명이나 되는 산적들이 사방 을 포위하게 되었을 때 그 도적들이 자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는 사 실을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정세가 위험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졸간에 어디 숨길 곳도 없고 하여 그는 그 물건을 호떡 속에 집어 넣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키다리 사내가 나타나자 그는 그 호떡을 달라는대로 내밀었 다. 그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대로 위험한 수를 한번 써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키다리 사내는 크게 노해서 그 호떡을 내동댕이친 것이었다. 오도통은 중상을 입은 후에 정신을 차리자 그 물건을 넣은 호떡이 어 느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모조리 호떡을 찾아내어 쪼개 보았지만 그 물건의 자취가 보이 지 않았다. 그는 그 거지를 잡자 그 거지가 배고픈 나머지 그 물건까지 호떡과 함께 뱃속으로 집어삼킨 줄 알고 그의 배를 갈라서 그 물건을 꺼내려 고 한 것이었다. 일시 그는 날카로운 비수를 찾지 못하자 이를 바드득 갈며 자기의 배 에 꽂혀 있는 한 자루의 강철 갈고리를 뽑았다. 그는 그 갈고리를 돌려서 거지의 배를 그으려고 했다. 강철 갈고리가 자기의 뱃속에서 뽑혀지게 되었을 때 그는 격심한 고 통을 느꼈다. 상처에서 피가 샘솟듯 흘러내렸다. 강철 갈고리가 어느덧 거지의 배에 닿았으나 갑자기 왼손의 힘이 쑥 빠졌다. 그리하여 그는 그만 다섯 손가락을 놓게 되었고 거지는 땅바닥에 떨 어졌다. 오도통의 오른손에 들린 강철고리가 앞으로 내밀어졌으나 그만 허공 을 찌르고 말았다. 힘이 다 빠지 오도통은 그대로 벌렁 쓰러져 두 발을 바르르 떨다가는 쭉 뻗고 말았다. 진짜 죽은 것이다. 그 거지는 땅바닥에 떨어졌으나 죽어라 하고 몸을 일으키고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조금전 너무나 놀란 나머지 몇 걸음 달려나가지도 못해서 두 다리의 맥이 빠지더니 그만 앞으로 곤두박질치며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인사불성이 되었으나 여전히 오른손에는 한 입 물어 뜯다만 호 떡을 꼭 쥐고 있었다. 담담한 달빛이 오도통의 시체를 비춰주고 있었다. 이 달빛은 나이 어 린 거지의 몸에도 쏟아졌다. 홀연 동남쪽에서 은은한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말발굽소리는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말발굽소리는 삽시간에 가까운 곳에 이 르렀다. 후감집의 주민들은 이미 화살에 놀란 새 꼴이 되어 있었다. 고요한 밤중에 갑작스런 말발굽소리를 듣자 그들은 또 다시 간담이 서늘해져 서 이부자리 속에 몸을 숨기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나 이번에 나타 난 말은 두 필의 말에 지나지 않았으며 피리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 필의 말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새카만 털로 뒤덮여 있었는데 오직 발굽 한 곳은 하얀 빛이었다. 이 말은 오운개설(烏雲蓋雪)이라는 천리마였다. 다른 한 필의 말은 몸 전체가 눈처럼 흰데 네 발굽만 새커맣다. 말의 족보에 의하면 이런 품종을 묵제옥토(墨蹄玉兎)라고 하는 것으 로 중원땅에서는 대단히 보기 힘든 천리마였다. 백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백의 여인이었다. 만약 귀밑에 한 송이의 붉은 꽃을 꽂고 허리에 성홍표대(猩紅飄帶)를 두르지 않았더라면 소복 을 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 붉은 띠에는 한 자루의 백색 검집 의 장검이 매달려 있었다. 검은 말에 탄 사람은 중년의 사내였는데 검은 장삼을 걸치고 있었고 허리에는 검은색 검집의 장검을 차고 있었다. 두 필의 말은 머리를 나란히 하고 달려왔다. 삽시간에 두 사람은 오 도통의 시체와 땅바닥에 훼손되어 널려 있는 집기를 발견하고 동시에 놀람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어!" 흑삼의 사내는 채찍을 휘둘러 오도통의 목을 말채찍으로 휘감아 후딱 들어올렸다. 달빛 아래 시체의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여인은 단번에 알아보고 말했다. "그 사람은 오도통이에요. 아무래도 그 물건은 안금도(安金刀)가 손 에 넣은 것 같군요." 남자는 채찍을 풀어 시체를 길가에 내동댕이쳤다. "오도통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어쩌면 뒤쫓아가면 잡을 수 있겠군." 백의 연인은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필의 말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쪽으로 달려갔다. 이 두 필의 말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쪽으로 달려갔다. 이 두 필의 말발굽이 청석판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달그닥거리며 울 려퍼졌다. 흑백의 두 준마는 마치 한 마리가 달리는 듯 말발굽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한 마리가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오랜 기간 훈련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두 필의 말은 청석판을 깔아 놓은 길을 따라 듣기 좋은 선율을 남기 며 달빛 속으로 사라져갔다. 말은 갈수록 속도를 더하여 순식간에 변량성(卞梁城)의 교회로 빠져 나갔다. 이제부터 길이 좁아 두 필이 다닐 수가 없었다. 남자가 앞장 을 서자 여자가 그 뒤를 따랐다. 명마는 힘이 좋았다. 따라서 오도통이 죽은 시간을 계산하면 이쯤에 서 금도채의 악당들을 따라잡을 수도 있을텐데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 았다. 말은 쉬지 않고 몇 시간을 달렸다. 어느덧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먼 광야에 몇 가닥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둘은 서로 마주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들은 껑충 말에서 뛰어내렸 다. 여자 자기의 말고삐를 나무에 매고 다시 남자의 말고삐를 받아 두 필의 말을 한 그루의 나무에 맸다. 그들은 휙 몸을 날려 불꽃이 피어오르는 곳을 향해 화살처럼 달려가 기 시작했다. 불빛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흘러 나오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수 마장이나 떨어져 있었다. 두 남녀는 초원 위를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한 떼 의 사람들이 십여 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몇 떼로 나누어 모닥불가에 둘러 앉아 국수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두 남녀는 일단 몸을 숨기고 염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방 이 초원이어서 몸을 숨길 곳이 마땅치 않았다. 두 남녀는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부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놓으며 나란히 걸어갔다. "누구냐? 무엇 하러 왔느냐?" 그 사람들 중의 한 명이 그들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두 손을 모으고 웃으면서 말했다. "안 채주 계시오?" 작고 깡마른 노인 주목이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불빛에 일남일녀(一 男一女), 일흑일백(一黑一白), 두 남녀가 드러났다. 두 남녀는 중년의 나이였다. 남자는 풍채가 준수하고 여인은 우아하 고 청순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옷자락을 바람에 나부끼는 그들의 허리춤에서 장검을 드러났다. 주목은 그 순간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 히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강남(강남) 현소장(玄素莊)의 석(石)장주(莊主)부부셨군 요. 영접하지 못한 점,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이 누추한 곳까 지 왕림하셨는지요?" 그는 큰 소리로 명령했다. "여러 형제들, 빨리 인사드리게. 이 두 분은 대강남북(大江南北)에서 명성이 자자하신 석 장주 부부이시네." 주목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 다. 주목은 속으로 생각했다. '석청(石淸)과 민유(閔柔), 이들 부부는 우리 금도채와 아무런 원한 이 없는데, 우리를 이렇게 쫓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 그 물건 때 문에 온 것은 아닐테지?" 그는 사방을 둘러 보았다. 사방은 광활한 초원이고 아무도 보이지 않 았다. 주목은 약간 마음이 놓였다. '이들 부부가 검술에 있어서 천하무적인 것은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 렇더라도 단 둘이서 우리에게 덤벼든다는 것은 중과부적이다. 이들 부 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ㄸ 석 장주의 아내인 민유가 남편에게 나직이 물었다. "사형(師兄),이 분이 바로 웅조문(鷹爪門)의 영웅이신 주목이라는 분 이신가요?" 이들 부부는 원래 사형 사매의 관계였다. 따라서 결혼을 한 후에도 습관이 되어 사형, 사매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음성이 나직했으나 주목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의기 양양해서 속으로 생각했다. '빙설신검(氷雪神劍)이 나의 이름을 알고 있구나!' 그는 즉시 입을 열었다. "영웅이라니 감당할 수 없습니다. 금도채의 주목이 삼가 석 장주와 석 부인에게 인사드립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 한번 더 허리를 굽혔다. 석청은 웃으면서 말했다. "여러분, 아침 식사를 하고 계신데 이렇게 불쑥 나타나 죄송하오. 계 속 식사를 하십시오." 이어서 그는 주목을 향해 말했다. "주 친구, 너무 겸손할 것은 없소. 우리는 귀문(貴門)의 일비충천(一 飛沖天) 장진중(莊震中) 장 형을 몇 번 만난 인연이 있으니 서로가 남 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목이 말했다. "일비충천은 저의 사숙(師叔)이 되십니다." 그 말을 하는 그는 내심 불쾌했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놈이 장(壯) 사숙(師叔)을 장 형이라고 부 르다니, 나의 윗어른이라고 자처하는 셈이 아닌가?' 주목은 석청의 말버릇을 보니 호의로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알고 마음 을 굳게 먹고 싸울 각오를 했다. 무림(武林)에서는 배분을 매우 중시한다. 후배가 선배를 만나면 공손 하게 인사를 올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 다. 이 계율을 어기면 하극상이 되어 만인의 지탄을 받게된다. 석청은 주목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 었다. "이거야말로 제가 실수를 범했군요. 지난날 숭산(嵩山)에서 장형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귀문에 대해 이야기해 주더군요. 우리 부부는 그의 말을 듣고 정말 감탄했지요. 저는 장 형과 친구로 사귀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그러니 주 세형(世兄)이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해서 탓할 수는 없지요." 그가 '주 세형'이라고 불렀으니, 자기가 선배임을 노골적으로 강조한 셈이다. 주목은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두 분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두 분의 존귀하신 얼굴을 뵈오니 영 광일 뿐입니다. 제 자신의 일이라면 분부만 내리시면 능력껏 도와드리 죠. 그러나 저희 산채의 일이라면 말단인 저로서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널리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석청은 생각했다. '이 늙은이는 노련하기 짝이 없구나.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미리 발뺌을 하는구나.' 그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야 물론 귀채(貴寨)와 전혀 관계 없는 일이지요. 나는 주 세형에 게 한 가지만 물어보겠소. 우리 부부는 지금 한 사람을 찾고있소. 그 사람의 성은 오(吳), 이름은 도통(道通)이라고 하오. 한쌍의 판관필을 잘 쓰는 사람이며 키가 매우 크지요. 소문에 의하면 그는 근년에 노인 으로 변장하고 성명을 바꾸고 변량 부근에서 잠복하고 숨어 지낸다고 합디다. 주 세형은 그런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소?" 그가 오도통의 이름을 말하자 금도채의 무리는 즉시 긴장했다. 몇 명은 들고 있는 국수 그릇을 내려 놓았다. 주목은 생각했다. '네가 동쪽에서 왔으니 당연히 오도통의 시체를 보았겠구나. 내가 모 르는 척하면 오히려 의심을 받을 것이다.' 주목은 하하,웃더니 대답했다. "하하하! 그것 참 잘 되었군요. 석 장주, 그리고 석 부인, 정말 공교 롭군요. 이 주가가 비록 무예는 형편없으나 두 분을 대신해서 공로를 세운 셈이 되었습니다. 저희 금도채에서 두 분을 대신해서 이미 그를 처치했습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석청의 반응을 살폈다. 석청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오도통이라는 사람과 평소에 내왕이 없었습니다. 서로 알지 도 못했으니 그 자가 우리 부부에게 죄를 지었다는 말은 당치도 않습 니다. 우리가 그를 쫓는 이유는 주 세형께서 웃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 이 지니고 있는 한 가지 물건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자 주목의 표정이 홱 변했다. 그러나 즉시 안색을 바로잡 고 억지로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두 분은 소식에 밝군요. 그 소식을 저희 금도채도 진작부터 듣고 있 었지요. 솔직히 말씀드려 불초가 이번에 형제들을 데리고 나온 것도 바로 그 일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개새끼가 소문을 퍼뜨렸는지 오도통이 헛되이 목숨을 잃고 말았지요. 아마 안(安)채죽께서도 저를 무능하다고 문책하실까 걱정입니다. 강호에는 원래 유언비어가 난무하 는 법이니 만일 그 물건을 우리가 입수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모두들 우리를 겨냥하고 달려들테니 이야말로 억울한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이보게, 장(張) 형제, 우리가 어떻게 오도통을 죽이고 그 호떡 가게를 뒤졌는지 석 장주와 석부인께 상세히 고해 드려라." 작달만하고 다부지게 생긴 사내가 말했다. "사실 그 오가는 무척 대단했죠. 우리 이대원(李大元) 두령께서 그 놈의 손에 죽었으니까요. 나중에 주 두혈께서 쌍장(雙掌)으로 그를 후 려쳐 지붕 위에서 밑으로 떨어뜨렸는데 그 놈은 전신의 뼈가 부러지고 오장육부까지 박살이 나서......" 그 자는 구변이 좋아서 사실을 침소봉대해서 뭇도적들이 어떻게 가게 의 벽돌을 헐고 어떻게 벽을 허물고 어떻게 가재 도구를 옮기고 어떻 게 구들장을 뒤집어 놓았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주목이 오도통이 등에 메고 있던 보따리를 가져온 데 대해서 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석청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 주목이라는 자는 우리를 보자마자 잔뜩 경계를 하며 불안한 눈치 를 보이고 있다. 현소장과 금도채는 아무런 이해 다툼도 없으니 만일 이 주목이라는 자가 그 물건을 얻지 못했다면 어찌 이토록 우리 부부 를 경계할 까닭이 있겠는가?" 그는 만일 이 자들이 그 물건을 입수하지 못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 다면 그 물건을 주목이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훑어보니 이백여 명이나 되는 금도채의 무리는 하나같이 사납고 건장 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일류의 고수는 없었지만 수효가 많으 니 싸우기는 무리였다. 주목은 공손하게 인사를 차리는 것 같았지만 전혀 두려운 빛을 드러 내지 않고 있었다. 이는 물론 사람수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석청은 미소를 지으며 좌측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 세형과 단 둘이서 한마디 상의할 말이 있으니 잠깐만 저쪽에 보 이는 숲으로 가서 이야기를 좀 나눌까요?" 주목이 어찌 그런 위험을 자초하겠는가? 그는 즉시 말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절친한 형제들이고 친구들이니 감출 것 도 없소. 나는 귀하와 함께 저곳으로 갈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니오. 다 만......" 미처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왼팔이 꽉 죄어드는 것을 느꼈다. 석청이 그의 왼팔을 움켜쥔 것이다. 즉시 반신이 마비되면서 오른팔 까지 기운을 쓸 수가 없었다. 주목은 놀라고 분노했다. 석청과 민유 부부가 나타나자 그는 잔뜩 조 심을 했으며 경계심을 늦춘 적이 없었는데 뜻밖에도 석청이 전광석화 와 같이 손을 쓰자마자 그의 손목을 움켜잡은 것이었다. 그는 자기자 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금나수법(擒拿手法)은 원래 응조문에서 내세우는 재간이었 다. 하지만 변변히 싸워 볼 겨를도 없이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요혈을 제압당하자 이마에서 비지땀을 쏟아냈다. 석청은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주 세형이 허락했으니 참 잘 되었군요." 그는 민유에게 말했다. "사매(師妹), 이야기가 끝나면 즉시 돌아올 것이니 사매는 여기서 좀 기다려 주시오." 말을 마치자 주목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민유가 얌전히 말했다. "사형의 마음대로 하세요." 금도채의 부하들은 석청이 웃으면서 주목을 데리고 걸어가자 일이 어 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았다. 석청의 부인이 이곳에 남아 있으니 더욱 그러했다. 주목 같은 고수가 기척도 없이 인 질로 사로잡힐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석청은 주목의 손목을 쥐고 점점 속도를 빨리했다. 주목은 조금이라 도 걸음을 늦추면 즉시 쓰러질 판이라 부득이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 다. 모닥불이 있는 곳에서 숲까지는 일 마장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 람은 삽시간에 숲속에 도달했다. 숲속 깊숙이 들어서자 석청은 비로소 주목의 팔을 놓아 주면서 웃었 다. "주 세형." 주목이 노성을 질렀다. "당신, 이게 뭐하는 짓이오?" 그는 순간 오른손을 독수리의 발톱처럼 세우고 석청을 움켜잡으려고 했다. 박사수(搏獅手)라고 하는 수법이었다. 석청은 왼손을 한번 가볍게 휘둘러 어느새 주목의 팔을 한쪽으로 밀 어내고 주목이 비틀거리는 틈에 주목의 두 팔을 비틀어 등뒤에서 수갑 을 채우듯 두 손을 열십자로 교차시키고 한손으로 교차된 부분을 꽉 움켜 쥐었다. 주목은 놀라고 화가 나서 오른쪽 발로 뒤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석청은 웃으면서 말했다. "주 세형, 굳이 화를 낼 필요는 없지 않소?" 주목의 오른쪽 다리에 있는 복토(伏兎)와 환도(環跳)의 두 혈도가 이 미 마비되면서 다리에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주목은 왼쪽 발로 땅을 짚고 서야 했다. 만약 다시 뒷발질을 했다가 는 앞으로 고꾸라질 판이라 온얼굴이 붉에 상기된 채 성이 나서 말을 더듬거렸다. "너는, 너는, 너는......" 석청은 말했다. "오도통이 갖고 있던 물건을 주 세형께서 이미 손에 넣었다면 한번 구경 좀 합시다. 어서 꺼내 보시오." 주목은 여전히 화난 어조로 말했다. "그 물건을 얻은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내 몸에 지니고 있지는 않 소. 석 장주께서 보고 싶다면 우리는 저쪽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오." 그는 모닥불 곁으로 돌아감 속셈이었다. 그곳에서는 자기의 호령 한 마디에 부하들이 벌떼처럼 덤벼들테니 석청 부부의 무공이 아무리 고 강해도 중과부적일 것이다. "나는 믿지 못하겠소. 주 세형의 몸을 뒤져봐야겠소. 죄를 지으니 용 서하시오." 주목이 노성을 질렀다. "내 몸을 수색하겠다고? 나를 어떻게 보고 감히 이런 짓을!" 석청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주목의 왼발 가죽신을 벗겼다. 주목은 당황하여 소리를 질렀다. "아!" 그러고 보니 가죽신 안에서 조그만 보따리가 나왔다. 오도통이 지니 고 있던 바로 그 물건이었다. 주목은 놀람과 분노, 그리고 의혹에 휩싸여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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