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3편 (3/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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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3편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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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가 어떻게 알아냈지? 내가 신발목에 감추는 것을 목격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사실 석청이 몸수색을 하겠다고 말하자 주목은 자기도 모르게 왼쪽의 가죽신을 힐끔 바로보았던 것이다.
물론 즉시 먼곳을 쳐다보았지만 석 청은 눈치를 채고 그 물건이 그의 왼쪽 가죽신 안에 들어있을 것이라 고 추측했고 과연 단번에 찾아냈던 것이다.
석청은 생각했다. '방금 그의 부하는 오도통의 호떡가게를 수색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물건이 이 자의 몸에서 나왔으니 그렇다면 부하들을 속이고 혼자 독차 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는 왼손의 세 손가락을 조그만 보따리를 몇 번 만져보다 그만 안색 이 변하고 말았다.
주목은 다급해서 어쩔줄 모르고 소리를 질러 구원을 청해야 할지 말 아야 할지 머뭇거렸다.
석청이 말했다. "당신은 안 채주를 배반했소.
내가 그 사실을 공개하여 열 손가락이 잘리는 형벌을 받게 해줄까요?" 이 말에 주목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석 장주, 당신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아셨소?" 석청이 말했다. "알기는 쉽소." 그는 잡았던 두 손을 놔주고 말했다. "안금도(安金刀)가 얼마나 총명한지 당신도 알 것이오.
당신은 나조 차 속이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를 속일 수 있겠소?" 이ㄸ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숲 밖에 당도한 모양이었다.
곧 걸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석 장주께서 과찬을 하시니 이 안 아무개가 먼저 고마움을 표하는 바입니다." 금도채의 안 채주가 온 것이다.
말이 끝나자 세 사람이 숲속으로 들 어왔다.
주목은 그들을 발견하자 대뜸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 세 명은 금도채 의 대(大) 채주 안봉일(安奉日)과 둘째 채주 풍진무(馮振武), 셋째 채 주 윈징 도인(元澄道人)이었다.
주목이 명을 받고 오도통을 잡으로 가자 안 채주는 사람을 보내 그를 접응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몸소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주목은 자기 혼자 이 물건을 독식하려고 한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고 그야말로 패가망신을 당할 처지에 빠지고 목숨마저 보존하기 힘들어지 자 다급해서 재빨리 입을 열었다. "두목님, 그, 그 물건을 그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안봉일은 석청에게 공수(拱手)의 예를 표하고 나서 말했다. "석 장주, 장주의 명성을 이 안 아무개는 평소부터 앙모해 왔소.
그 러나 가까이할 기회가 없어서 안타까워 하던 차에 오늘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영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저희 산채가 이부근에 있으니 아 무쪼록 석 장주님과 석 부인께서 왕림하시어 며칠 묵어 가시면 이 몸 은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석청이 살펴보니 안봉일은 구레나릇을 기르고 있었고 체구가 땅딸하 고 거치른 생김새였다.
그러나 말투가 매우 예의가 바르고 자기가 빼 앗은 물건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금도채로 가서 며칠 묵어 달라고 초청까지 하는 것을 보자 새삼스럽게 그를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일단 산채로 들어가면 그곳에서 가볍게 벗어날 수 없다 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두 손을 잡고 예를 표하고 작은 보따리를 품속에 넣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 채주의 호의는 감사하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푸른 빛이 번쩍이면서 어느새 원징도인이 검을 뽑아들고 검날로 석청의 손목을 겨누고 호통을 질렀다. "먼저 그 물건부터 내놔라!" 참으로 번개같이 빠른 동작이었다.
그러나 석청의 동작은 더욱 쾌속 했다.
석청은 몸을 슬쩍 비키면서 어느새 원징 도인의 옆에 다가가 즉시 그 보따리를 꺼내 그의 왼손에 쥐여주고 웃으며 말했다. "당신께 드리지." 윈징 도인은 크게 기뻐서 석청의 속셈을 미처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 보따리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오른팔이 마비되면서 수중의 장검을 석 청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석청은 장검을 돌려 원징 도인의 왼팔에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먼저 그 물건을 내려 놓으시지!" 원징 도인은 장검이 번뜩이며 떨어지자 곧 자기의 팔이 잘려질 위기 에 처하여 하는 수 없이 보따리를 놓았다.
그 광경을 보고 풍진무가 외쳤다. "훌륭한 무술이다!" 그는 석청이 보따리를 받아들기도 전에 단도를 뽑아 땅위를 데구르르 굴러서 석청을 향해 다가들며 석청의 다리를 찔러 갔다.
석청의 장검이 밑으로 쑥 떨어지는데 풍진무의 단도가 석청의 오른쪽 다리를 미처 찍기도 전에 석청의 장검이 풍진무의 목을 자를 것 같았 다.
위기를 목격한 안봉일이 외쳤다. "검에......" 풍진무는 죽음을 기다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석청의 장검은 더 이상 내리 꽂히지 않았다.
방위와 힘에 있어서 추호의 오차라도 있 었다면 풍진무는 죽거나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석청의 장검은 머리카락 한 올의 차이를 두고 풍진무의 목덜미에서 멈춰 있었다.
그 순간 가벼운 금속성과 함께 석청의 장검이 방향을 틀어 보따리를 받아내고 있었다.
그가 보따리를 손으로 움켜쥐자 그ㄸ서야 안봉일의 입에서 나머지 말 이 튀어나왔다. "사정을 두시오!"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쾌속한 석청의 동작이었다.
석청은 장검을 거두면서 말했다. "실례했소." 그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그제서야 풍진무는 벌떡 일어났다.
칼 끝을 되돌리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
안봉일의 등뒤로 도망치 듯 숨으면서 몇 마디 중얼거렸다.
목숨을 살려준 석청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욕하는 것인지는 그 자신만이 알고 있으 리라.
안봉일은 앞섶의 구리 단추를 풀더니 등뒤에서 칼을 내렸다.
칼집에 서 칼을 쑥 뽑자 마침 아침해가 막 떠오르고 햇살이 나무의 틈바구니 로 비춰들어와 금도(金刀)는 햇빛을 받아 눈부신 금빛 광채를 발했다.
그 칼은 등이 두텁고 칼날이 엷은 보물임을 알 수 있었다.
안봉일은 금도를 세우고 말했다. "석 장주의 무예가 놀랍군요.
정말 탄복했습니다.
이 몸 역시 몇 수 가르침을 받아볼까 합니다." 석청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고명하신 분들을 상대하게 되니 영광입니다." 그는 번쩍 손을 쳐들고 그 조그만 보따리를 내던졌다.
네 사람이 어 리둥절할 때 다시 휙, 하는 소리가 들리며 석청의 손에 들려있던 윈징 도인의 장검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 조그만 보따리가 막 나무줄기에 닿으려고 할 때 그 장검은 어느새 그 보따리를 나무줄기에 못박듯 꽂았다.
칼끝은 주머니의 한쪽 모서리만 꿰뚫었을 뿐이고 그 안의 내용물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았다.
그 신속함과 정확함은 실로 조금전에 원징 도인이나 풍진무를 격퇴한 그 이 초의 무공의 위세를 휠씬 능가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나무줄기에서 석청에게로 옮겨졌을 때 그들은 석청의 손에 한 자루의 전체가 시커먼 장검이 들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석청이 입을 열었다. "묵검이 금도와 겨루게 되었구려.
그러나 승부를 내는 것으로 그치기 로 하고 부상을 입히거나 죽이는 일은 삼가하도록 합시다.
누구라도 승리하면 저 물건을 지니도록 합시다." 안봉일은 석청이 수중에 넣었던 물건을 나무줄기에 못박고 다시 무공 을 겨루어 그 물건의 주인을 가리자고 하는 말을 듣자 석청이 조금도 득을 보려고 하지 않는 마음씀씀이에 속으로 탄복해 마지 않을며 입을 열었다. "석 장주께서 먼저 손을 쓰시오." 안봉일은 평소에 현소장의 석청과 민유 부부의 무예에 대해서 익히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조금전에 원징 도인과 풍진무를 격퇴시키는 것을 보고 과연 그 소문 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안봉일은 조금도 소홀히 여기지 못하고 ㅅ, ㅅ, ㅅ, 세번 허공에 칼질을 하여 위세를 돋우었다.
석청은 칼끝을 땅으로 향한 채 꼼짝도 않고 입을 열었다. "공격하시오." 안봉일은 그제서야 칼을 휘두르면서 공격해 왔는데 그 초식을 끝까지 펼치기도 전에 칼을 홱 뒤집었다.
그는 손을 쓰자마자 평생에 걸쳐 익힌 칠십이로(七十二路)의 벽괘도 (劈卦刀)를 펼쳤다.
벽괘도는 초식 속에 초식이 숨겨져 있었고 변화가 무쌍했다.
석청은 즉시 검을 휘둘러 대응했다.
처음에는 수비만 철저히 했으나 삼십 여 초(招)를 넘기자 갑자기 길게 휘파람을 불며 공세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석청의 공격이 삼십여 초에 이르자 안봉일은 당황하기 시작했으며 상 대방의 검을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놀 라서 오로지 자신의 급소를 방어하기에 급급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칠십여 초의 공격과 방어를 했지만 칼과 검은 정면으 로 맞부딪히지 않았다.
갑자기 쨍,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묵검이 금도의 칼등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이 일 포는 순류이하(順流而下)라는 수법으로 바로 검으로 칼의 공격 을 분쇄하는 흔한 초식이었다.
이때 안봉일이 칼을 조금만 뒤집었다면 석청의 칼끝은 허공을 찌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봉일이 석청의 검을 밀어내려고 했을 때 검날은 어느새 싸른한 기운을 뻗쳐내며 쾌속 하게 미끄러져 어느새 자기의 식지에 닿는 것이 아닌가? 안봉일은 대경실색하여 속으로 부르짖었다. '나의 네 손가락이 잘리게 됐구나!' 그는 칼을 던지고 뒤로 물러서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데 석청의 장검이 놀랍게도 우뚝 멈췄다.
석청의 잠검은 앞으로 찔러 나오기는커녕 오히려 뒤로 움츠러드는 것 이었다.
그제서야 안봉일은 석청이 손에 사정을 둔 것임을 알고 더 이상 칼을 쥐고 있을 염치가 없어서 슬그머니 칼자루를 놓고 말았다.
그러나 그 순간 석청의 장검이 칼밑으로 돌아가 칼을 위로 떠받쳐 올 려 다시 안봉일의 손아귀에 쥐어주는 것이 아닌가? 석청은 외쳤다. "당신과 나는 막상막하로군요! 승부를 낼 수가 없소!" 안봉일은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다섯 손가락에 힘을 주어 덥썩 칼자 루를 움켜쥐었다.
그는 석청이 승리를 했으나 자기의 체면을 세워준 것임을 알았던 것 이다.
이때 석청이 검을 세우고 공손히 예를 표했다.
이것은 벽괘도의 마지막 초식으로 칼을 거둬들이는 남해예불(南海禮弗)이라는 것이었 다.
이에 안봉일은 놀라 안색이 변했다.
상대방이 남해예불을 펼친것은 자기의 절기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잘 알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다.
더군다나 그 자신이 칠십일로까지 펼쳤을 때 공교롭게도 자기를 제압한 것을 보면 만약 석청이 처음부터 자기를 제압할 생각이 있었다 면 자기는 석청의 십 초도 받아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봉일이 몇 마디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했을 때 석청이 검을 거두고 포권을 하며 말했다. "이 석가는 안 채주라는 친구를 사귀기로 했소.
친구와 더 이상 겨룰 필요를 느끼지 못하오.
언제라도 저희 장원 앞을 지나갈 기회가 있다 면 반드시 방문하셔서 며칠 묵어 가시기 바랍니다." 안봉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땅히 찾아 뵈어야지요." 안봉일은 나무줄기 쪽으로 다가가 원징 도인의 검을 뽑고 떨어지는 작은 보따리를 받아들었다.
그는 한 자루의 칼과 한 자루의 칼집을 모 두 땅에 꽂고 두 손으로 그 보따리를 받쳐 들고 석청의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석 장주, 가져가십시오." 그는 이 중요한 물건을 얻었다가 잃는 셈이었지만 석청이 자신의 체 면을 세워주고 네 손가락을 자르지 않은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 다.
그러나 석청은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그럼 다음에 만납시다." 말을 마치자 그는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안봉일은 재빨리 말했다. "석 장주,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저의 체면을 세워주신 은혜를 제 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안 아무개는 이번에 분명히 크게 패 했습니다.
아무쪼록 이 물건을 가져가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 안 아무개를 옳고 그름을 모르는 무뢰한으로 여기는 것이 됩니다." 석청은 미소를 지었다. "안 채주, 오늘의 시합은 승패를 가리지 못했소이다.
안 채주의 청룡 도(靑龍刀)와 난로단문도(欄路斷門刀)등등의 정묘한 도법을 아직까지 한번도 펼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졌다고 말을 할 수 있게소? 더군다 나 이 작은 보따리에는 그 물건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오.
아무래도 주 세형이 상대방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 같군요." 안봉일은 놀라 물었다. "그 물건이 이 속에 없다구요?" 그는 재빨리 보따리를 벗겨 보았다.
한 겹 한 겹 모두 다섯 겹쯤 벗 겼을까? 그제서야 최후로 세 개의 동전이 나왔다.
그 동전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깥쪽이 둥글고 안쪽으로 사각형의 구멍이 나 있는 것이 납 작하고 엷었다.
일반적인 세 닢의 엽전에 불과했다.
안봉일이 주목을 보며 말했다. "주 형제, 도대체 무슨 장난인가?" 주목이 말했다.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도통의 몸에서 겨우 그 보따리를 찾아 냈을 뿐입니다." 안봉일은 그제서야 사건의 진상을 알았다.
오도통이 그 물건을 매우 은밀한 곳에 숨겼거나 아니면 이미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고 생각 한 것이다.
이렇게 되니 공연히 헛고생을 한 셈이고 오히려 금도채의 위신만 땅 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세 닢의 엽전을 내동댕이치면서 말했다. "석 장주, 제가 어리석다고 비웃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석장주 께서는 어떻게 그 물건이 이 보따리 속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셨는지 요?" 석청은 조금전에 주목으로부터 주머니를 빼앗자 즉시 손가락으로 눌 러 보았으며 그때 이미 세 개의 둥근 물건이 들어 있음을 알수 있었 다.
반드시 동전이라고 확신은 없었으나 손에 넣으려던 물건이 아님을 단 정할 수는 있었다.
석청이 웃으면서 말했다. "불초 역시 아무렇게나 추측해 보았을 뿐이지요.
우리는 남의 우롱을 당한 셈이니 안 채주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 바라오." 그는 풍진무, 원징 도인, 그리고 주목을 향해 포권의 예를 표하고 서 둘러 숲을 빠져나갔다.
석청은 모닥불 곁으로 다서 민유에게 말했다. "사매!이만 갑시다." 두 남녀는 즉시 말 위에 올라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서 달려갔다.
민유는 남편의 안색을 보고 더 물어보지 않고서도 이번 일이 실패로 끝났음을 알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석청이 말했다. "금도채의 안 채주도 이번에 속았소.
우리는 오도통의 시체를 뒤져 봅시다.
어쩌면 금도채의 졸개들이 수색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도 모 르니까." 민유는 희망이 없다고 느꼈지만 남편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서 낮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예." 검고 하얀 두 필의 천리마는 발걸음이 무척 빨라 정오 무렵이 되자 그들은 다시 후감집에 이르렀다.
후감집의 주민들은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어느집도 점 포의 문을 열지 않았다.
강도들이 살인을 하고 약탈을 자행했다는 사 실을 이미 지방의 보갑(保甲)이 변량의 관부에 알렸으나 현감 나으리 께서는 아직도 대책만 강구하고 있을 뿐이지 감히 달려와 조사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일각 늦게 오면 그만큼 안전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두 부부가 오도통의 시체 곁으로 다가갔을 때 저쪽 담벼락에 한명의 나이가 열 두세 살쯤 돼 보이는 어린 거지가 한 명 있는 것을 보았다.
꼬마 거지를 제외하고 어떤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석청은 오도통의 시체를 샅샅이 뒤졌고 심지어 머리카락을 헤치고 살 펴 보았고 신발 속도 들여다 보았다.
민유는 호ㄸ가게를 세밀하게 뒤지고 있었다.
한참 동안 찾아 보았으 나 두 부부는 아무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두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민유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사형, 아무래도 이번의 원한을 갚기는 틀렸나 봐요.
운명인지도 몰 라요.
며칠 동안 정말 수고가 많았어요.
우리들은 이만 그만 두고 변 량성 안에 들어가 마음을 좀 가다듬을 겸 몇 토막의 연극을 보고 이야 기꾼의 얘기나 들어보자구요." 석청은 아내가 평소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연극을 보거나 음악을 듣 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한 것은 석청을 위해 한 소리임을 알고 있었다.
석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도 좋겠지.
이왕 하남성까지 왔으니 변랴성 안으로 들어가 구경 을 한번 해봐야 되겠지.
소문에 들으니 변량의 은장(銀匠)들의 솜씨가 좋다고 하니 몇 가지 은으로 만든 장식품을 좀 삽시다." 민유는 아름다운 미녀였으며 원래 치장을 하기를 좋아했다.
중년에 이르자 용모와 치장을 더욱 중시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처연히 웃 으며 말했다. "견아(堅兒)가 죽은 후로 십삼 년 동안 당신이 나한테 사준 노리개만 해도 금은방 한 채를 차릴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견아가 죽을 후'라는 말을 하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때 그녀는 나이 어린 거지가 담벼락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초라한 모습을 힐끔 보고 연민의 정을 느꼈다. "너의 어머니가 어디 계시냐?어떻게 거지가 되었느냐?" 어린 거지는 말을 더듬거렸다. "저는, 저는 어머니를 찾지 못했어요." 민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품속에서 조그만 은덩이를 꺼내 그 의 발밑에 던지며 말했다. "호떡이나 사 먹도록 해라!" 그녀는 떠나려다 재차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얘야, 너의 이름이 뭐지?" 거지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는,저는 개잡종이라고 해요." 민유는 어리둥절하여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아니, 그런 이름도 있느냐?" 이ㄸ 석청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아마도 백치인 것 같군." 이 말에 민유는 나직이 대꾸했다. "그런가 보군요.
정말 불쌍하나요." 두 사람은 말을 몰아 변량성 쪽으로 달려갔다.
그 조그만 거지는 오도통의 시체에 놀라 정신을 잃었다가 날이 샐 무 렵에야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그는 실로 무서운 충격을 받았다.
그는 감히 일어나 도망치지도 못했다.
바로 오도통의 피와 살이 엉켜 붙은 시체가 자기의 곁에 쓰러져 있지 않은가? 그래서 감히 몸을 일으 켜 도망치지 못한 것인데 그때 정신이 흐릿해서 다시 잠들게 되었고 잠이 들었다가 깨곤 했다.
그러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게 되어 막 떠 나려는 순간에 석청 부부가 나타나서 오도통의 시체를 뒤적거리는 것 을 보고 또 다시 놀라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 붙어 있었던 것이 다.
그는 그 여자가 자기에게 은덩이를 던져 주는 것을 보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호떡이라구? 나에게도 있는데 뭘.' 그의 손에는 여전히 먹다 남은 호떡이 들려져 있었다.
놀람과 당황함 이 점차 가셔지자 그는 갑자기 허기를 느꼈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호떡을 황급히 깨물었다.
순간 딱, 하는 소리 와 함께 앞니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돌을 깨문 모양이었다.
그는 재빨리 물었던 호떡을 뱉아냈다.
호떡을 뱉고 보니 입안에 딱딱 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재빨리 그는 입안에 든 물건을 왼손 손바닥에 뱉었다.
그것은 한 조각의 시커먼 쇠조각이었다.
거지는 그 쇠조각을 보고 호떡 속에 어째서 그 쇠조각이 들어갔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는 던져버릴 생각도 하지 않고 호떡 속에 또다시 이런 물건이 들어 있지나 않나 조심조심 살펴가며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한 개의 호떡을 어느새 다 먹고 말았다.
그는 오도통의 시체 곁에 떨어져 있는 호떡들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귀신이 찢어 놓은 호떡을 먹어도 괜찮을지 모르겠군'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대갈 일성 이 터져나왔다. "사면에서 포위하라!" 거지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지붕 위에는 백포를 걸친 세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곧이어 등뒤에 서 획획, 하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가까이 다가왔다.
거지는 몸을 돌렸다.
네 명의 백포를 걸친 사람들이 각기 장검을 든 채 좌우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별안간 말발굽소리가 다시 울려퍼지면서 나는 듯 달 려왔다.
삽시간에 한 필의 누런 말이 들이닥쳤다.
말 위에는 구레나룻을 기른 땅딸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는 말을 멈춰 세우지도 않고 별안간 말안장에서 뛰어내렸고 그 누 런 털의 말은 비스듬히 달려나가 한바퀴 빙글 돌더니 멀찌감치 서서 기다렸다.
아마도 훈련이 잘 된 것 같았다.
지붕 위 세 명의 백포 남자들은 동시에 땅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자루를 쥐고 있었다.
그 가운데 사십여 세 되어 보이는 우람한 체구의 사내가 입을 열었 다. "아니 금도채의 안 채주가 아니시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소이 다.
정말 반가워요." 그러면서 그는 자기편 사람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구레나룻을 기른 사내는 물론 금도채의 안봉일(安奉日)이었다.
안봉일은 석청에게 패하자 의기소침했으나 곧 생각을 돌렸다. '석 장주는 또 후감집으로 갔을까? 그들 부부는 틀림없이 후감집으로 갔을 것이다.
그가 찾아낸다면 나는 감히 빼앗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가 찾아내지 못했다면 내 차지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오도통은 그 물건을 매우 은밀한 곳에 숨겨 놓았을 것이니 계속해서 찾아보면 단서 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즉시 황마(黃馬)를 타고 후감집으로 달려왔다.
그의 말은 석씨 부부의 흑백쌍구(黑白雙駒)에 비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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