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6편 (6/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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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6편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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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청은 입이 열 개 라도 할 말이 없겠으나 염치 불구하고 질문을 던졌다. "백부인께서는 어쩌다가......어쩌다가 심신의 안정을 잃게 되었소?" 왕만인은 대답했다. "댁의 그 귀여운 아들 때문에 울화가 도져 실성을 하게 된 것이 아니 겠소? 사질녀가 죽자 백사형은 아주머니를 나무랐지요.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변명하듯 다시 말했다. "형수님께서는 그렇지 않아도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그와 같은 말을 하자 그만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어미가 너를 죽게 했구나' 하는 소리를 부르짖더니 그 이후부터 정신이 맑지 않게 되었 습니다." 이어 그는 흘끗 석청과 민유를 바라보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형수님께서 실성하자 골짜기 아래로 뛰어내리지 않도록 두 분 사저 가 한 걸음도 떠나지 않고 돌보고 있습니다.
석 장주, 백사 형이 현소 장을 불태우려 하는 것도 지나친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않겠습니 까?" 석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리 부부는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소.
이 세상 끝까지 뒤져서라도 그 못난 녀석을 잡아서 친히 능소성으로 데려가서 백 소저 의 영전에서 능지처참을 하도록 하겠소." 이때 민유는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뱉더니 정신을 잃고 남편의 품속으 로 쓰러지고 말았다.
석청은 재빨리 그녀의 인중혈(人中穴)을 주물러 주었다.
한참 후에야 민유는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왕만인은 다시 계속 말했다. "석 장주, 우리 설산파에는 또 두사람의 목숨을 현소장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석청은 놀라 물었다. "두 사람의 목숨이라니?" 그는 온갖 풍랑을 다 겪어온 사람이었으나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었 다.
과거 둘째 아들인 중견(中堅)이 원수에게 살해당했을 때도 극도의 슬픔을 느꼈지만 오늘처럼 부끄럽고 황송하며 두렵지는 않았다.
따라 서 그는 음성마저 떨고 있었다.
왕만인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설산파에서 그와 같은 변고를 당하게 되자 사부님께서는 십팔명의 제자들을 내려보내게 되었습니다.
한 쪽은 백 사형이 거느리고 강남으 로 가서 현소장을 불태우려고 했지요.
그리고..." 그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만종이 말을 계속 못하도록 눈짓을 보낸 것이다.
석청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왕만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곧 깨닫고 말했다. "그러니까 불초 부부를 대설산으로 잡아가서 백 소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 목숨까지 바쳐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소?" 경만종은 재빨리 말했다. "석 장주, 너무나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감히 그럴 수도 없으 며 그와 같은 담량이 있다 해도 우리들의 얕은 재간으로 어찌 석 장주 부부를 모셔갈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변명하듯 다시 말했다. "저희 사부님께서 자제분을 어떻게 하든 찾아야 하겠지만 그가 나이 는 어리지만 눈치가 빠르니 좀처럼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능소성의 지세가 험악하고 많은 사람들 이 쫓아갔는데 어떻게 종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겠습니까?" 민유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분명히 죽었을 거예요.
반드시 골짜기 아래로 떨어져 죽었을 거예요." 경만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그의 발자국은 눈위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는데 바로 산을 타고 내려온 흔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산등성이에 썰매의 자국도 있었 습니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정말 말하기 부끄럽습니다만 우리 모두 어른들인데 열다섯 살 먹은 소년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사부님은 두 분을 능소성으로 모시고 가서 선후책을 강구하려고 하시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석청은 담담히 말했다. "그러니까 역시 백 소저의 목숨을 잃으데 대해서 우리들이 목숨을 바 쳐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소?" 그는 왕만인에게 물었다. "왕 형은 두 사람의 목숨이 이번 일에 관계가 있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말씀이지요?" 왕만인은 대꾸했다. "방금 저는 십팔 명의 제자가 두 갈래로 나누어 산에서 내려오게 되 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물론 아홉 명은 강남으로 가게 되었고 다 른 아홉 명은 경 사형의 인솔하에 중원 각지에서 아드님을 찾는 것인 데 정말 재수없게도 잇달아 화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경만종은 그의 말을 가로챘다. "왕 사제, 더이상 말할 것도 없네.
이 일은 석장주와 아무 관계가 없 는 것이야." 왕만인은 정색하며 말했다. "어째서 관계가 없습니까? 만약에 그 녀석이 아니라면 손(孫) 사형과 저(楮) 사제가 어떻게 영문도 모르고 목숨을 잃게 되었겠습니까? 더군 다나 원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두 손을 벌려 보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산으로 올라가게 되었을 때 사부님께 뭐라고 변명할 수 있겠 습니까? 사부님께서 화를 냈다 하면 아마 경 사형의 팔도 부지 할 수 없을 것이외다.
석 장주 부부는 친구들이 도처에 많으니 이 두분에게 사고의 원인을 수소문해달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닙니까?"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경만종은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다면 자네가 이야기를 들려주게." 왕만인은 입을 열었다. "석 장주, 삼일 전에 우리들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오가란 사 람이 현철령을 손에 넣고서는 변량성 밖의 후감집에서 호떡을 팔고 있 다는 소문이었지요.
저의 사형제 아홉 명은 상의를 했지요.
석중옥이 라는 그 녀석을 잡을 수 없을 바에는 한번 운에 맡겨 보자고 말입니 다." 그는 변명하듯 다시 설명을 했다. "십년 동안 찾지 못한다면 우리 형제들이 능소성으로 십 년동안 돌아 가지 못하지 않느냐, 그러니 현철령을 손에 넣게 된다면 댁의 아드님 을 잡아가지 못한다 해도 사연객에게 찾아 달라고 할 수 있고, 사부님 에게도 면목은 서게 될 것이다.
이런 상의를 하게 된 것이지요." 이어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한참 상의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가 댁의 아드님이 어린 나이에 그토록 대담무쌍한 일을 저질렀으니 죽어 마땅하다고 했습니 다.
그런데 그 말이 떨어지자 늙수그레한 음성이 소리 내어 웃으면서 '정말 잘한다! 그 소년은 천하에서도 보기 드문 훌륭한 인재로다' 하 고 칭찬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석청과 민유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이 인간 망종인 자기 아들을 칭찬한다는 말이 이와 같은 상황에서 듣자 그야말로 욕을 먹는 것보다 더욱 듣기 괴로웠던 것이다.
왕만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때 우리들은 한 객점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으며 사면이 벽 돌로 쌓아 올린 벽이었지요.
그런데 그 음성이 벽을 뚫고 들려 오는데 말소리는 또박또박 매우 또렷했습니다.
마치 마주 않아 이야기 하는 것과 같았지요."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우리 아홉 명은 큰소리로 떠들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그가 들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순간 석청과 민유는 흠칫했다.
옆방에서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별 로 어렵지 않다고 하겠으나 옆방에서 하는 말이 상대방 사람에게 또렷 하게 들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내공이 깊은 고인이 아니면 될 수 없 었던 것이다.
가만균은 왕만인의 뒤를 이어 그 다음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아홉 명은 그와 같은 소리를 듣자 일시 어리둥절해졌지요.
그 러나 곧이어 왕만인이 호통쳐 물었습니다. '웬놈이냐? 더 살기 싫어졌 나 보구나.
감히 우리 말을 엿듣나니!' 호통소리에 그들은 인기척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늙은이의 음성이 다시 들렸왔지요. '당(當)아야, 이 사람들은 설산파의 사람들이로구나.
그들의 사부는 백 늙은이라고 하는데 이 할아버지가 가장 미워하는 늙은이지.
그런데 그 꼬마애가 설산파의 늙은이를 울화통이 치밀게 만들고 그 집안을 쑥 밭으로 만들었다니 재미있지 않느냐? 헤헤헤......
정말 묘하다 묘 해.' 이와 같은 말을 듣게 되자 설산파의 제자들은 대노하여 금방 그 쪽으로 달려가려고 했지요.
그러나 경 사형이 재빨리 손을 흔들어 여 러 사람에게 잠자코 있으라는 시늉을 해보였지요.
그 늙은이의 말이 끝나자 곧이어 젊은 아가씨의 음성이 들려왔지요. '재미있네요.
아주 재미있어요.
그 늙은 것이 울화통이 터져 죽었으면 더욱 재미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게 애석하네요.' 이어서 그녀는 또 몇 마디 설산파 의 제자들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욕지거리를 해댔지요.
그 늙은 이가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말했지요. '그 늙은이가 울화통이 터 져 죽게 된다면 그야말로 재미있는 일이지.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이 할아버지가 너를 대설산의 능소성으로 데리고 가 구경을 시켜주마.
그 리고 그 늙은이가 울화통이 터져 죽는 꼴을 보여주지.
친히 보아야 더욱 재미있을 것 아니냐?' 이렇게 되자 설산파의 제자들인이상 목숨 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따라 서 우리들이 막 방에서 뛰쳐나오려고 할 때 드르륵 문 여는 소리가 나 면서 객실에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는 기척이 들렸고 이어서 두 사 람이 마당으로 내려서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지요.
우리들은 모두 검 을 뽑아들고 마당으로 달려나가려고 했지요.
그런데 경 사형이 다시 손을 내흔들며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한데 이 때 또 늙은이 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당아, 오늘 우리들은 몇 사람을 죽였지?' 그러자 젊은 여자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사람밖에 죽이 지 못했어요.' 그러자 그 늙은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그 럼 아직 두 사람은 더 죽일 수가 있겠구나.'" 여기까지 듣던 석청이 흠칫하며 말했다. "그 늙은이는 바로 일일부과삼(一日不過三)이다!" 경만종은 줄곧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때 급히 물었다. "석 장주, 그 늙은이를 아십니까?" 석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모르지만 선친에게 들은 바는 있소.
무림에는 그와 같은 인물 이 있는데 일일불과삼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고 했소.
그 사람은 하루에 세사람만 죽인 후 마음이 약해져서 세사람 이상은 죽이지 못한 다는 것이오." 왕만인은 욕을 퍼부었다. "제기랄! 하루에 세 사람을 죽이고도 모자라? 그와 같이 사악하고 악 랄한 늙은 도적이 지금까지 살도록 내버려 두다니!" 석청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 정(丁)씨라는 선배는 정사지간에 놓인 사람이고 또 잔인하여 사 람을 죽이기 좋아하나 크게 나쁜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들었다.
그리 고 죽이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이 말을 설산파 제자들 앞에서 할 수 없었다.
경만종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늙은 도적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느 문파의 사람입니까?" 석청은 담담히 말했다. "그 사람의 성은 정씨이며 진짜 이름은 모르나 별호는 일일불과삼이 라고 해서 윗대의 어른들은 그를 정불삼(丁不三)이라 불렀다고 하더군 요." 가만균은 분연히 말했다. "그 늙은 도적은 정말 엉터리없는 수작을 부리는 늙은이였습니다." 석청은 계속 말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사람에게는 세 사람의 형제가 있었다는구료.
형은 정불이(丁不二)라 하고는 아우는 정불사(丁不四)라고 한다고 합디다." 왕만인은 다시 욕을 퍼부었다. "제기랄, 불이,불삼,불사라니.
꼭 개방귀같은 이름만 붙여놓았군." 이에 경만종은 황급히 타일렀다. "왕 사제, 석 아주머니 앞에서 그런 고약한 말을 쓰면 되겠는가?" 왕만인은 급히 사과하였다. "죄송합니다." 민유는 말했다. "아마도 그 사람의 이름은 별명일 거에요.
그와 같이 괴상한 이름은 지을 수 없을테니까요." 석청은 말했다. "본래 정씨 삼형제는 무림에서 상당한 명성을 떨치고 있었소.
아마도 백 나으리는 그들과 어떤 충돌이 있어서 그들의 이름을 들먹이기를 싫 어했기 때문에 뭇사형들은 모르는 것 같구료.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 소?" 왕만인은 변명하듯 설명을 했다. "그 늙은 도적은 곧이어, '손만년(孫萬年)과 저만춘(楮萬春)이라는 놈들이 있으면 빨리 기어 나와라.' 하고 외쳤소이다.
우리 설산파 제 자들은 그와 같은 호통소리를 듣자 더 참을 수 없어 아홉 명이 우루루 몰려 나가게 되었지요.
그런데 정말 이상한 노릇이었습니다.
우리가 마당에 나갔을 때는 아무도 없었어요.
아무리 사방으로 찾아보았으나 사람의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지요.
심지어 지붕 위를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 사제는 반쯤 닫혀진 그 객실까지도 살 폈으나 탁자 위에 촛불만 켜져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 었지요.
정히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가 있던 방에서 그 누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지요.
바로 그 늙은이의 음성이었습니 다.
그 늙은이는 우리보고 들으라는 듯이 호통을 쳤습니다. '손만년! 그리고 저만춘, 너희들 두 놈은 양주에서 왜 나의 손녀딸을 희롱했지? 나의 이 손녀딸로 말하면 나이가 어리나 매우 아름답다.
네 두 놈의 짐승같은 녀석이 어떤 더러운 생각을 했을 것인지 짐작할 만 하다.
너 희 두 놈은 어서 기어 나와라.' 이와 같은 호통소리에 손만년 사형과 저만춘 사형은 더욱 울화통이 터져 그만 검을 들고 그 방으로 달려 들 어 갔습니다.
그 때 경사형이 소리쳤지요. '조심해! 모두 함께 들어가 자!' 그 순간, 그 방의 등불이 꺼졌고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습 니다.
저는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손 사형! 저 사형!' 그러나 두 사람의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방안에서는 무기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불안하여 재빨리 화섭자를 꺼내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방안으로 달려 들어가 보니 손만년 사형과 저 만춘 사형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이미 몸이 뻣뻣해진 상태 였습니다.
장검은 그들의 곁에 놓여 있었지요.
경 사형과 저는 두 사 형의 곁으로 다가가 그들을 잡아 당겼습니다.
그런데 손만년 사형과 저만춘 사형은 힘없이 그대로 옆으로 쓰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숨 을 거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전신에 상처 하나 나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늙은이가 어떤 수법으로 그들을 해쳤 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설산파의 제자들은 창피막심한 일이었 지만 그 늙은 도적과 처녀의 그림자도 보지못한 상태에서 그런 사건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가만균은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덧붙였다. "양주에서 우리들은 그런 늙은이와 처녀애를 눈여겨 본 적이 없었습 니다.
손 사형과 저 사제가 아마 그 손녀딸을 몇 본 쳐다본 모양입니 다.
하지만 그게 뭐 대단한 일인가요?" 석청과 민유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석청은 넌즈시 입을 열었다. "경 형, 나의 불칙한 자식놈이 능소성에서 큰 죄를 짓게 된 날이 언 제였소?" 경만종은 기억을 더듬더니 말했다. "십이월 초열흘날이었지요." 석청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삼월 열이틀이니 백 사형은 능소성에서 떠난 지 이미 삼개월 이 되었구료.
그렇다면 지금쯤 현소장은 잿더미가 되었겠소."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경 형, 그리고 왕 형, 여러 형들에게 내가 약속을 하겠소.
우리 부 부는 그 녀석의 행방을 반드시 알아보겠으며 사로잡은 후에 능소성으 로 데리고 가 백 나으리와 봉 사형, 그리고 백 사형에게 사죄를 하겠 소.
그리고 일일불과삼 정불삼의 행방도 알아내어 그때 백 나으리에게 알려 드리리다.
그렇게 된다면 백 나으리가 친히 나서서 일을 처리하 면 될 것이외다.
그럼 이만 실례할까하오." 그는 포권을 했다.
가만균은 급히 말했다. "아니! 당신은......
겨우 그 몇마디 말을 하고 떠나려는 것입니까?" 석청은 아연해서 말했다. "가 사형, 또 무슨 할말이 있으시오?" 가만균은 냉랭히 말했다. "우리들은 당신의 아들을 찾지 못했소이다.
그러니 당신네 부부가 능 소성으로 가서 우리 사부님을 만나 주어야 우리들의 체면이 설것이 아 니겠습니까?" 이 말에 석청은 난감한 듯 말했다. "능소성으로 물론 가야지요.
그러나 모든 일에 어느 정도 단서가 잡 혀야 하지 않겠소?" 가만균은 경만종을 바라보았다가 왕만인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가 그는 성이 난 얼굴로 분연히 말했다. "석 장주 부부를 우리들이 만나 보고도 능소성으로 모셔오지 못했다 는 사실을 사부님께서 아시게 된다면 우리들은 그야말로......" 석청은 그의 뜻을 알고도 남았다.
그들이 많은 사람의 수로 자기네들을 억지로 대설산으로 끌고가려고 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니까 아들을 잡지 못하면 그의 애비라도 잡아가서 목숨으로 보상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석청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 나으리는 덕망이 높으신 분이지요.
불초는 항상 그 분을 존경하 며 윗어른으로 모셔왔소이다.
만약에 백 사형이 이 곳에 계시어 백 나 으리께서 명을 내려 불초에게 능소성으로 가자고 한다면 불초는 반드 시 명을 받들어야 하겠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이렇게 하기로 합 시다." 그는 자기의 허리에서 검은 검집의 장검을 풀며 민유에게 다시 말했 다. "사매, 그대의 검도 푸시오." 민유는 검을 풀어 석청에게 건네주었다.
석청은 두손으로 쌍검을 받 쳐 들고 경만종에게 내밀었다.
그들 부부가 생명처럼 아끼는 흑백쌍검을 맡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설 산파의 체면을 크게 세워주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 라서 그들은 이들 두 부부가 이 보검을 찾기 위해서도 능소성으로 반 드시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경만종은 몇 마디 사과의 말을 하고 흑백쌍검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가만균은 달랐다.
가만균은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사질녀의 한 목숨과 봉 사형의 한쪽 팔, 사모님이 산에서 내려 가시고, 백 사형의 형수님께서 실성을 하시고, 손 사형과 저 사형이 비명횡사한 것을 어찌 당신네의 두자루 무쇠로 만든 칼과 맞바꿀 수 있다는 거요? 경 사형이야 당신과 교분이 있어서 당신의 체면을 봐주 겠지만 이 가 아무개는 당신을 모르오.
당신은 오늘 능소성으로 가야 하오.
가기 싫어도 가야하오." 석청은 미소지었다. "내 아들놈이 귀파에 큰 죄를 지었으니 불초는 사죄를 하는 것 외에 더 무슨 할 말이 있겠소? 가 형이 설산파의 고수로서 무공이 고강하다 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소.
비록 만나 보지는 못 했지만 평소 앙모 해 왔소." 그는 두 손바닥 위에 장검을 받쳐들고 경만종이 그 두자루의 검을 받 아가기를 기다렸다.
가만균은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들이 이 두사람을 데리고 대설산으로 가려면 한바탕탕의 큰 싸 움이 벌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가 스스로 무기를 바치려고 하니 오히려 잘 되었다.
무기를 빼앗은 후에 처치하면 될 것이다. "실례를 범하지 않으면 내가 살지 못한다" 는 속담도 있지 않느냐?' 그는 석청이 검을 거둬들일까봐 신속히 앞으로 나오며 두손을 일제히 뻗쳐내어 설산파의 금나수법으로 석청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두자 루의 장검을 힘주어 움켜쥐고 말했다. "그럼 먼저 당신의 무기를 바치시오." 팔을 와락 잡아당겨 장검을 빼앗으려고 하는데 두 자루의 장검은 석 청의 손바닥에서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가만균은 깜짝 놀라 두 팔에 힘을 불끈 주고 일갈했다. "떨어져랏!" 힘껏 잡아당겼다.
그 순간 두자루의 장검에서 세찬 힘이 쏟아져 나와 그의 두 순목으로 밀려들었다.
뚝, 하는 소리가 나며 대뜸 그는 손목 관절이 탈골되고 말았다. "아이쿠!" 그는 신음을 내뱉으며 검을 놓고 물러섰다.
두 자루의 검은 여전히 석청의 손바닥 위에 얌전히 놓여져 있었다.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석청이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은 것을 똑똑히 보았으므로 그 누구도 석청에게 따질 명분이 서지 않았 다.
가만균은 고통과 울화를 참을 수 없어 오른 다리를 들어서 맹렬하게 석청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경만종은 급히 외쳤다. "무례를 범하지 말게!" 즉시 손을 뻗쳐서 가만균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가만균 의 발길질은 허공을 걷어차고 말았다.
경만종은 석청의 내력이 무서운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가만균의 발길질이 석청의 몸에 격중되었다면 가만균의 다리뼈가 부러지고 말았 을 것이다.
경만종은 무공이나 견식이 가만균을 훨씬 능가했다.
그는 열 손가락 에 힘을 주입하고 조심스레 손을 뻗쳐서 석청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장검을 움켜쥐려고 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막 검집에 닿는 순간 그는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손을 움찔 떨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뜨거운 기운이 가슴 속으로 침 투해 들어왔다.
석청의 내공이 장검을 통해서 자기에게 전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경만종은 내심 부르짖었다. "야단났구나!" 그는 석청이 이와 같은 함정을 파 놓고 자기를 끌어들여 자기와 내공 을 겨루려는 속셈을 지녔음을 직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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