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천은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큰형님, 어쩐 일이오?] 그는 황급히 이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둘째 형님……] 그 순간 이사도 스르륵 미끄러져 탁자 밑으로 들어가버렸다. 석파천은 크게 놀라고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우득승은 처음 장삼과 이사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 나 장삼의 얼굴이 시뻘개지고 호흡이 가빠졌으며, 이사는 두 눈을 까 뒤집고 얼굴이 은연중 자흑색으로 물들여지는 것을 보고 극독에 중독 된 것을 알았다. 그는 속으로 크게 기뻐했으나 즉시 어떤 행동을 함부로 할 수 없어 슬쩍 물었다. [두 분은 어떻게 된 것이옵니까?] 그러고 보니 이사는 탁자 밑에서 사지를 부들부들 떨고 있지 않은 가? 석파천은 어쩔 줄을 모르다가 재빨리 이사를 부축해 일으켰다. [둘째 형님, 몸이……편찮으신 것이오?] 조금전 장삼과 이사는 그와 술내기를 하면서 극독을 탄 약주를 아홉 모금이나 마셨던 것이다. 이들 두 사람은 공력 한계는 세 모금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급히 운 기행공하여 대항해야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고 넘길 수가 있었다. 그 런데 잇달아 아홉 모금을 마셔 그들의 양을 초과하고만 것이었다. 당시에 억지로 버티어 낸 두 사람은 속으로 최근에 공력이 크게 증 진되어 많이 마셔도 복통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라고 오히려 기쁘게 생각했다. 두 사람은 해약까지 복용했다. 해약을 먹은 것은 잠시 독기운이 퍼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고, 나중에 내력으로 약기운을 흡수하여 공력을 증진시키려는 것이었다. 사실 약기운을 완전히 해소시키고 나면 얻는 바가 없으니 귀한 약술 을 허비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또 해약은 독기를 진정시키는 효과만 있었지, 완전히 독기를 해소시키는 기능은 없었다. 거기다가 급히 달 려온 탓으로 그만 약기운이 퍼지게 된 것이니 그들 두 사람으로서는 전혀 예기지 못한 일이었다. 그때 장삼과 이사는 급격한 복통을 일으키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 신이 마비되는 것을 느끼고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재빨리 내력을 끌어올려 독주를 한 방울 한 방울 천천히 해소시키기 에 안간힘을 다썼다. 너무 급히 서두르다가는 심장이 멎을 우려가 있 는 것이다. 한데 공교롭게도 이와 같은 시기에 독이 퍼지게 되었으니 독기를 해 소시킨다 하더라도 철차회의 철차에 목숨을 빼앗기고 말 형편이 아닌 가? 두 사람은 똑같이 속으로 죽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우 총 타주와 철차회의 무리들은 장삼과 이사가 갑자기 의자에 나뒹굴며 고 통에 쩔쩔 매는 꼴을 보자 크게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두 사람의 위명에 겁을 집어먹고 천재일우의 기회인데도 감히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석파천은 이때 어쩔 줄을 몰라하며 연신 질문을 던졌다. [두 분 형님, 술에 취한 것이오? 아니면 병이 나신 것이오?] 장삼과 이사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의자에 반쯤 누운 채 급히 운기 행공하여 독기를 해소시키느라고 다른 생각이나 수작을 붙일 여유가 없었다. 잠시후 그들의 머리 위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우득승은 그들의 머리 위에서 김이 나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는 나직이 부르짖었다. [호 형제, 이들 두 사람이 주화입마 된 것이 아니면 독기운이 갑자 기 체내에 퍼진 것일세. 지금 한참 운기행공하고 있으니 모두들 빨리 덤비도록 하게.] 호가라는 사내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감히 다가와 손을 쓰지 못했다. 그는 철차를 쳐들더니 획, 하니 장삼을 향해 내던졌다. 장삼은 그것을 막을 힘이 없었으므로 다만 슬쩍 몸을 틀어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발 늦고 말았다. 그 순간, 철차는 그의 어깨에 푹 박혔다.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석파천은 그 광경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감히 우리 형님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철차회의 무리들은 그의 나이가 어리고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 는 것을 보고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더구나 호가라는 자가 철 차를 던졌으나 상대방이 받기는커녕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 고 모두 용기백배했다. 휙휙휙! 거의 동시에 파공성을 일으키며 세 자루의 철차가 날아들었다. 석파천은 왼손을 들어 두 자루의 철차를 퉁겨내고 다른 한 자루를 오른손으로 받았다. 그는 몸을 장삼과 이사의 앞을 가로 막았다. 혼란중에 다시 다섯 자 루의 철차가 날아들었다. 석파천은 당황 가운데서도 일일이 철차를 쳐서 되날려 보냈다. 그중 두 자루 가운데 한 자루는 되날아가 한 사내의 머리통을 박살 내게 되었고 다른 한 자루는 한 사내의 배에 푹 박혔다. 우득승은 장소가 좁아 제대로 싸우기는커녕 도리어 자기편 형제들만 많은 살상을 입는지라 급히 부르짖었다. [모두들 멈추게. 내가 먼저 이 조그만 녀석을 없앤 후 다시 공격하 도록 하게.] 그는 허리를 구부리더니 두 손을 발목으로 가져갔다. 몸을 폈을 때 그의 양손에는 각기 자루가 짧고 조그만 한 자루의 강차가 들려 있었 다. 철차회의 무리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벽에 붙어서서 고 함을 쳤다. [총타주, 그 녀석을 어서 처치해 버리십시오!] 지하밀실이라 소리가 퍼질 수 없었기 때문에 매우 이상하게 들렸다. 우득승은 몸을 구부리더니 잽싸게 석파천의 곁으로 다가왔다. 두 자 루의 강차를 위와 아래로 나누어서 석파천의 얼굴과 허리를 노리고 찔러왔다. 석파천은 너무나 빠른 상대방의 공격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앗!] 그는 놀라 부르짖으며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허리와 오른팔이 동시에 스칠 듯 두 자루의 강차에 찔리게 되었다. 쨍그라! 그와 동시에 그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철차도 놓치고 말았다. 우득승은 그의 무공이 보잘것없는 것을 보고 크게 마음을 놓을 수 있어서 잇달아 호통을 내지르며 선풍과 같이 재차 달려들었다. 석파천은 오른팔의 상처는 별것 아니었지만 허리의 상처는 꽤 아팠 다. 상대방이 매섭게 찔러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한켠으로 피하는 동시 에 냅다 우득승의 등뒤를 후려쳤다. 바로 정불사에게 가르침 받은 일 초였다. 우득승은 경공신법에 뛰어나고 접근전에 능했다. 그는 석파천의 초식을 펼치는 자세가 별로 능숙하지 못했지만 바람 이 휙휙, 이는 것을 보고 꺼림칙하게 여긴 나머지 함부로 덤벼들지를 못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한평생 연마한 절기를 펼쳐 석파천의 요혈만 노리 고 공격해 갔다. 장삼과 이사는 내력으로 뱃속의 독기를 억압하는 한편으로 석파천과 우 총타주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자기네의 목숨이 바로 석파천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석파천이 절호의 기회를 무수히 놓치는 것을 보고 애석하게 여겼으며 애를 바짝바짝 태웠다. 그러나 너무 신경을 써서 잡념이 들 게 해서는 주화입마될 우려가 있었다. 다시 한동안 싸우게 되었을 때 석파천은 다리를 찔려 비명을 질렀 다. [아이쿠!] 다급해진 그는 장력을 뻗쳐 우득승을 급히 후려쳤다. 휘익, 하니 장 력이 거세게 뻗쳤다. 우득승은 갑자기 짙은 달콤한 향기를 맡았다. 순간, 그는 머리가 띵 해지는 것을 느꼈고, 곧 정신을 잃고 말았다. 석파천은 그가 힘없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하여 뒤로 물러 섰다. 호가라는 사내가 달려와 우득승을 살폈다. 우득승의 얼굴에 시커먼 기운이 떠오른 것을 보고 중독된 것을 직감 했다. 그는 우득승의 콧김을 맡아보았다. 이미 숨져 있지 않은가! 그는 분노와 놀람에 떨리는 음성으로 부르 짖었다. [조그만 녀석이……독으로 사람을 해치다니, 너와 사생결단을 내겠 다. 여러 형제들, 덤비세! 총타주께서는 이 녀석에게 살해를 당해 숨 을 거두셨네.] 철차회의 무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석파천을 마구 찍고 찌르려 들었다. 석파천은 장삼과 이사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관계로 위치를 옮길 수가 없었다. 그가 피한다고 자리를 옮기면 두 형님이 요절날 것 같았던 것이다. 다급한 김에 그는 한 자루의 철차를 빼앗았다. 그리고 그 철차를 분 질러서 금오도법을 펼쳐냈다. 이리저리 휘두르는 그의 철차에 심후한 공력이 실려 있어 그의 철차 와 부딪치게 된 사람들은 모두 철차를 놓치고 말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십여 명의 손에 들린 철차가 튕기듯 날아가 버린 것이다.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사내가 두 손을 갈고리처럼 해서는 석파천의 얼굴을 할퀴려 들었다. 석파천은 그 기세가 흉악한 것을 보고 급한 김에 초식이고 뭐고 따 질새도 없이 왼손을 휘둘러 그의 손을 후려쳤다. 상대방의 열 손가락이 우드득, 하는 소리를 내면서 부러졌다. 그리 고 그 사람도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더니 다시는 일어나지를 못했다. 혼전 중이라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생사를 주의하지 않았다. 예닐곱 명의 사내들이 철차나 맨손으로 석파천을 잇달아 공격해 오 고 있었다. 석파천은 도저히 물러설 수가 없는 입장이라 달려드는 사내가 접근 하기만 하면 오른쪽 손을 들어 후려쳤다. 한데 그가 일장을 휘두르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 즉시 쓰러졌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지만 희한하기 그지 없었다. 잇달아 여섯 명이 쓰러졌다. 누군가가 부르짖었다. [저 녀석의 독장(毒掌)은 매우 무섭다. 모두들 주의해라.] 어떤 사람이 부르짖었다. [왕삼(王三) 형도 독장에 죽었다. 조심……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자 역시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지던 사람의 독이 묻은 철차가 그의 몸을 찔러서 그까지 중독되어 죽은 것이었다. 그 사람은 석파천에게 직접 독장을 맞지도 않았는데 중독이 되어 그 대로 숨지고 만 것이다. 철차회의 무리들은 이렇게 되자 공포에 질리게 되었다. 모두들 다투 어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그런데 독장에서 퍼져나간 독기운에 여 러 사람은 머리가 어지러운 것을 느꼈다. 곧이어 쨍그랑, 쿵, 우지끈, 하는 소리와 신음소리, 그리고 비명소 리가 연이어졌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씩 쓰러지기 시작했 다. 어떤 사람은 도망을 치려고 몸을 돌렸으나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쓰 러졌고, 어떤 사람은 서너 발자국 떼어놓다가 쓰러졌다. 삽시간에 백여 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여기저기에 힘없이 차례로 나 뒹굴었다. 그중에 공력이 가장 높은 네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그들은 일제히 손으로 입을 막고 밖으로 도망을 쳤다. 하지만 그들 역시 대청 입구 에 이르러 네 사람이 한 덩어리가 된 상태로 그만 쓰러져서 일어서지 를 못했다. 석파천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그만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 지난 번 자연도에서 시체로 가득찬 배에 올랐을 적보다 더욱 심한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 배는 시체들로 가득찬 것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펄펄 살아 날뛰던 사람들이 바로 자기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로 서는 그들이 급살을 맞은 것인지, 아니면 귀신에 홀린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문득 그는 그 사람들이 자기의 독장이 무섭다고 외친 것을 상기하고 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두 손바닥에는 피빛처럼 새빨간 구름송이 같은 것이 나타나 있었고, 그 주위로 남색의 무늬가 무수히 나 있었다. 매우 선명하고 아름다운 밝은 빛깔이었다. 장삼과 이사와 결의형제로 맺어지기 전에 붉은 반점과 파란 점들이 돋아나 있었다. 그때는 무척 희미했었는데 어느덧 구름송이 모양의 붉은 점과 파란 무늬로 변해 있는 것이다. 잠시 손바닥을 들여다 보던 석파천은 속이 메시꺼워옴을 느꼈다. 자기의 두 손바닥이 독사의 뱃가죽이나 지네의 등줄기로 변한것 같 았다. 거기다가 비릿한 냄새와 더불어 기이한 향내 같은 것도 풍기고 있었다. 그는 독사를 보듯 징그러운 것을 느끼고 손바닥을 내리고 고개를 돌 려 장삼과 이사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차분한 얼굴빛으로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고, 그들의 머리 위로 피어오르는 김 같은 기체는 더욱 짙어져 갔다. 장삼의 어깻죽지에는 여전히 철차가 꽂혀 있었다. (큰형님의 어깨에 박힌 철차를 뽑아드려야겠구나.) 석파천은 급히 장삼에게 다가서며 철차를 가볍게 쥐었다. 이어 기운 을 약간 주어 뽑자 철차는 뽑혀졌으나 새빨간 피가 상처에서 분수처 럼 흘러내렸다. 석파천은 재빨리 상처 부위를 누르는 동시 자기의 옷자락을 찢어 상 처를 싸맸다. 이때 장삼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나직이 말했다. [소형제, 자네는……내 말대로……해 주게나……] 느릿하고도 띄엄띄엄 힘이 없는 한마디였다. 그는 이사와 비슷한 정도로 중독되었다. 그러나 어깨의 상처에서 많 은 피가 흘러 나오자 독기운이 적지 않게 해소되었다. 석파천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큰형님께서는 어서 분부하십시오.] 장삼은 말했다. [너의……왼손을……나의 등뒤에 있는……영태혈(靈台穴)에……갖다 대라.] 그는 숨을 몰아 쉬더니 띄엄띄엄 한참이 걸려 운기행공하는 법과 몸 안에 축척된 독기를 몸 밖으로 몰아내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당부하는 말을 끝내자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고 안 색은 금방이라도 피가 번져나올 것처럼 시뻘개졌다. 석파천은 조금도 망설일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가 분부한 대로 그의 윗옷을 벗기고 오른손은 그의 전중혈(전中穴)에, 왼손은 그의 영태혈 에 갖다댔다. 왼손으로 내력을 주입하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흡수하는 방법을 써야 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차 한 잔이 식는 시간이 지나자 한 가닥 뜨겁고도 실날처럼 가느다란 기운이 자기의 오른쪽 손바닥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한참 독기를 빨아내고 있을 때 갑자기 발자국 소리와 더불어 십여 명이 달려들어 왔다. 모두 철차를 들고 있었다. 이들은 밖에서 지키고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도 소식도 없고 교 대를 하러 오는 사람도 없어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들은 들어온 즉시 총타주와 형제들이 모두 시체가 되어 나뒹굴어 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깜짝 놀란 그들은 그때서야 석파천과 장삼, 그리고 이사가 땅바닥에 앉아 있으며 중상을 입고 운기하여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아차렸다. 다음 순간, 그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세 사람을 향해 철차로 찔 러왔다. 석파천은 몸을 일으켜 그들을 상대하려고 했다. 한데 그들은 겨우 세사람이 있는 곳과 일장 쯤 되는 곳에 달려왔을 뿐, 갑자기 몸을 휘청거리더니 맥없이 픽픽 쓰러지는게 아닌가? 쓰러지는 즉시 꼼짝도 하지 않고 일어설 줄도 몰랐다. 석파천은 너무나 놀라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 나올 것만 같은 느낌 을 받았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장삼에게 하소연했다. [큰형님, 이 밀실에……악귀가 있는 모양입니다. 빨리 이곳을 떠나 야지요……] 장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이때 복통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독이 반쯤 해소된 것이다. [너는……똑같은 방법으로……둘째 형님에게……그렇게 해주어야겠 다.] 석파천은 순순히 대답했다. [예, 예……] 그는 여전히 장삼이 가르쳐준 방법으로 이사의 몸안에 있을 독을 빼 냈다. 이때 그의 손바닥으로 스며드는 것은 차가운 기운이었다. 한 식경이 지나자 이사는 몸 안의 독기가 감소되고 복통이 누그러졌 다. 석파천은 다시 장삼의 독을 빨아냈다. 이렇게 하기를 각기 세 번씩 하게 되자 두 사람의 독이 완전히 가셔 진 것은 아니었지만 활동하는데 지장을 없는 듯하였다. 원래 그들은 그 독기로 공력을 증진시키고자 했던 바라 천천히 독을 융화시켜 나 가면 되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일어서서 주위를 살폈다. 온통 시체가 널려 있는 것을 보고 또 조금전의 광경을 떠올리자 새삼 몸이 오싹해지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석파천이 자기네들 몸의 독을 빨아내면서 많은 독이 그의 몸으로 스며들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석파천의 몸에 스며든 독을 제거하려고 했다. 석파천은 겁을 집어먹은 얼굴이었지만 독에 중독된 증상은 전혀 보 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희한한 일이라고 감탄을 하는 반면 여간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철차회의 사람들이 그의 장풍에 맞거나 스치기만 해도 목 숨을 잃는 것은 바로 석파천의 체내에 축척되어 있는 독이 퍼져 나왔 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밀실의 대청에는 독기 로 가득 차게 되었고, 이를 조금이라도 들이마시면 중독되어 쓰러지 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삼과 이사는 웬만한 독에는 견딜 수 있어서 쓰러지지 않은 것이다. 장삼은 대청 안을 한번 살펴보고 모든 것을 짐작했으나 설명하려면 복잡한 일이라고 생각하자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앞장을 서서 밖으로 나갔다. [둘째와 셋째, 우리 가세.] 이사와 석파천도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지하통로를 벗어나자 수십 명의 철차를 든 장정들이 초가집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문득 세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본 그들은 일제하 다가오며 호통쳐 물 었다. [총타주는 어째서 보이지 않소?] 장삼은 웃으며 말했다. [안에 있네!] 앞장을 섰던 사람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어째서 먼저 나왔소?] 장삼은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으니 자네가 들어가 보게나.] 그는 그 장정의 멱살을 덥석 잡고 지하도로 던져버렸다. 나머지 사 람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장삼은 피하지도 않고 오는 족족 붙잡아서는 뒤로 던졌다. 상대방이 아무리 대항하거나 피하려 하더라도 그의 손길에서 벗어나 지 못했다. 석파천은 장삼이 한 번 손을 뻗쳤다 하면 한 사람씩 움켜잡으며 전 혀 실수하는 적이 없자 속으로 여간 놀라지 않았다. (큰형님의 무공이 저토록 고강하구나. 예전에 본 고수 가운데 큰형 님과 같은 사람은 없었다.) 이사는 뒷짐을 지고 서 있을 뿐 앞으로 나아가 도와주려고 하지 않 았다. 장삼은 십여 명을 내던진 후 여러 장정들의 등뒤로 돌아가더니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을 잡으면서 차츰 뭇장정들을 지하땅굴 쪽으로 몰았 다. 누군가 외쳤다. [후퇴하라.] 이어 그들은 급히 지하도 안으로 도망을 쳤다. 석파천은 다급하여 부르짖었다. [아니, 그 안으로 들어가지 마시오! 위험하오!] 그들은 석파천의 말을 곧이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철차회의 장정들은 순식간에 땅굴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장삼과 이사가 중독되어 복통을 일으킨 일을 위시해 서 지금 철차회의 남은 무리들을 지하땅굴로 몰아 넣는 일등, 처음부 터 잇달아 의문을 느끼고 있던 석파천은 입을 열었다. [큰형님, 그리고 둘째 형님.] 이때 장삼이 갑자기 부르짖었다. [어, 저기 누가 오고 있군.] 석파천은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누가 온다고 그러시지요?] 장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머리를 돌렸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장삼과 이사는 간곳도 없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둔갑술이라도 부려서 사라진 것 같았다. 그는 놀란 음성으로 외쳤다. [큰형님, 둘째 형님, 어디 계십니까?] 몸을 숨기 사람이 대답을 할 리가 없었다. 그는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초가집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찾아 다녔 다. 예닐곱 집을 뒤져보았으나 장삼과 이사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해가 중천에 떠올라 있어 응당 따뜻한 감을 느껴야 하겠으나 마을 곳곳에 시체만 널려 있으니 참담하고 으시시하기만 했다. 썰렁하니 혼자 남게 된 그는 그만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끼고 소리 를 지르며 줄달음쳐 그 마을에서 빠져나오고 말았다. 곧장 십여리 길을 달려나온 후 속도를 늦추었다. 그리고 다시 손바 닥을 펴서 살펴니 손바닥의 붉은 구름과 같은 흔적과 남색 무늬는 이 미 반쯤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처음처럼 구역질이 심하게 나지 않자 약간 마음이 놓인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내공을 돋우지 않아 약주로 인한 독기가 경맥을 따라 체내에 스며들게 되었고 이후부터는 매일 내공을 연마하는 데 따라 극독이 점차 감소되면서 그의 공력으로 화하게 되어 사십구 일을 지낸 이후 에야 독성이 모조리 사라진다는 사실을 그는 물론 모르고 있었다. 반나절을 걸어 그는 양자강 가에 도달했다. 그는 양자강 가의 대로를 따라 하류 쪽으로 걸어갔다. 정오에는 한 조그만 고을에서 국수를 사 먹고 다시 동쪽으로 나아갔 다. 그는 산천구경을 하듯 천천히 걸었다. 해질 무렵에 그는 어느 숲가 에 이르게 되었다. 숲속의 나뭇가지 사이로 누런 담장이 드러나 있는 것이 아마도 도관 (道館)이나 절이 있는 것 같았다. 석파천은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 도관이 있 었다. 웅장하게 세워진 도관인데 문앞에 넓다랗고 잘 가꾸어 놓은 청석을 깐 길이 있었고, 산문 앞에는 두 도사가 검을 메고서 지키고서 있었 다. 도사들은 누런색의 도관을 쓰고 있었다. 두 도사는 석파천을 보자 급히 그에게 다가왔다. 한 명의 도사가 그에게 물었다. [무엇하러 온 녀석이냐?] 옷차림이 남루한 데다가 좀 모자라는 듯 보이고 또 나이가 젊은 사 람이 사방을 기웃거리자 반말로 다그친 것이다. 석파천은 그런 말투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저 산책을 하고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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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화상이 사는 절이 아닙니까? 은자로 밥을 사먹고 싶은데 되겠소?] 그 도사는 노해 부르짖었다. [이런 멍텅구리 같은 녀석, 내가 화상으로 보이느냐? 우리들은 밥을 파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