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오직 앞 일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특별한 존재가 아닌 이상은 아무도 지금의 상황에서 단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백리운은 일단 모든 생각을 정리하자 천천히 땅바닥에서 신형을 일으켰다. 가슴의 상처뿐만 아니라 황종의에 의해 입은 치명적인 내상까지도 이미 완벽 하게 치유되어 있어서 그의 몸은 전혀 불편한 점이 없었다. 단지 괴로운 점이 한가지 있기는 했다. 그것은 지금 너무나도 심하게 허기가 져서 의식이 몽롱해질 정도라는 사실이 었다. 기실 그는 무려 사흘밤낮을 전혀 물한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철저하게 굶은 셈 이니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가 있었다. 때는 동쪽에서 뿌연 여명의 햇살이 이 거대한 숲속을 밝히고 있는 중이었다. 백리운은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로 모옥의 안으로 들어가서 서둘러 음식을 만들 었고, 그것으로 배를 채웠다. 지금 그의 음식이라고는 고작 삶은 감자나 산나물정도였는데,평소에음식을 탐하지 않는 성품을 지닌 그로서도 그 순간만큼은 그것들이 그렇게 꿀맛일 수 가 없었다. 주먹만한 삶은 감자를 예닐곱개나 먹어치우고, 다시 근처의 계곡으로 달려가서 맑은 계곡의 물을 한바탕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맑은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내친김에 그는 계곡의 맑은 물속에 들어가서 매우 지저분해진 온 몸을 구석구 석 깨끗하게 씻어냈고,다시 모옥으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떠날 준비를 했 다. 이곳은 그가 이미 오랫동안 살아왔던 정든 터전이었지만 이제는 당연히 더이상 머무를 수가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비록 적도들은 완전히 가버렸지만,혹시 그들이 언제 다시 마음을 돌려 이곳으 로 찾아올 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백리운은 비록 그 적도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가슴에 박혀있었던 나뭇가지와 그 상처,그리고 주위의 분위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예견할 수가 있었다.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자면,그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기위해서는 그는 역시 죽은 사람으로써 시체가 짐승에게 물려간 정도로 해두는 것이 좋은 것이다. 따라서, 백리운은 거의 모든 물품들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고,다만 모옥안에서 옷 가지와 지극히 필요한 물품,그리고 은자만을 챙겼다. 그는 원래 이곳 산속에서 살면서 거의 모든 물품을 자급자족해 왔었기 때문에 가끔 약초등을 캐어서 읍성에 내다팔고 마련한 은자들은 차곡차곡 모아 두었 었다. 그것은 물론 장차 있을지 모르는 어떤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아둘 때는 몰랐는데,지금와서 헤아려보니 무려 백냥도 넘는 거금이었다. 백리운은 그것을 모조리 품속에 단단히 챙기고 나서 마지막으로 황종의가 남 긴편지를 찾아서 그가 남긴 반쪽의 옥패와 함께 역시 품속에 잘 갈무리했다. 백리운은 기왕에 이곳에서 더 이상 살수가 없는 형편이고 마땅히 찾아갈 곳도 없었기 때문에 우선 황종의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어, 백리운은 가장 궁금하면서도 가장 확인하고 싶지 않은 황종의의 생사를 알아 보기 위해 그의 은신처로 다가갔다. 황종의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백리운이 가르쳐 주었던 그 은신처 주위에 황종의는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그러나, 백리운이 발견한 것은, 그의 시신이나 유골이 아니라 다만 근처의 수풀이나 땅 바닥을 검붉게 물들인 짙은 핏자국들 뿐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짙은 허무감의 표상이라고 할까? 백리운은 이미 야수들이나 날짐승들의 뱃속에 들어가서 소화되고도 남음이 있 었을 그의 육신을 생각하며 잠시 망연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는 느닷없이 신형을 돌려 걷기 시작했 다. 이제 강호로 나가는 것이다. 이미 오랫동안 읍성에도 들르지 않고 홀로 살아온 백리운은 자신이 이제 어쩔 수 없이 강호를 주유해야 한다는 사실에 다소 마음이 긴장되기도 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편협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바 로 그의 추악한 외모때문이었다. 백리운은 사람들이 그의 얼굴에 얼마만한 혐오감을 일으키는지 잘 알고 있었 다. 그리고,자신이 타인들의 그러한 시선을 완전히 초연할 정도의 수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또한 알고 있었다. 이에, 잠시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그는,문득 걸음을 되돌려서 모옥으로 돌아가서 이 미 낡을대로 낡은 죽립하나를 깊숙히 눌러쓰고 다시 나왔다. 그것은 전날 그가 읍성에서 불편함을 없애기위해 구입해서 쓰고 다녔던 것으 로,다소 낡은 것이긴 하나 채양이 넓어서 그의 얼굴을 가리기에는 적합한 물 건이었다. 모든 준비가 완전히 끝이 나자 이윽고,백리운은 잠시 과거를 회상하듯 몇차례 모옥을 되돌아보다가 천천히 읍성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형산, 중원에는 오악이라고하여 천하의 명산으로 치는 다섯개의 거악이 있지만,이곳 은 그것의 하나인 남악 형산이 아니라 음은 비슷하지만 글자는 다른 호북성에 위치하고 있는 형산이었다. 따라서, 비록 그 산세가 웅장하고 거대한 것은 남악 형산에 비할수가 없겠지만,이 형 산은 바로 서북쪽으로부터 거대하게 이어지는 대파산맥의 줄기에 해당되는 곳 으로, 짙은 녹음이 우거진 원시림과,험준한 암봉,영기가 서려있는 절곡들이 많아서 나름대로 특유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산이었다. 뿐만 아니라, 근간에 이르러서는 이 형산이 워낙 험준한 나머지 사람만을 골라서 잡아먹는 다는 식인호랑이가 출몰한다는 소문마저 일고 있었다. 원래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 형산을 가로지르는 길이 뚫려 있어서 북방으로 가 고자 하는 행인들은 그길을 이용하곤 했는데, 요즘에는 산중에 식인호랑이가 나타난다는 소문 때문에 대부분이 그 길을 이 용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 길을 이용하지 않으면 반드시 멀리 동남쪽으로 오백여리나 돌아서가 야하는데도 대부분의 행인들이 굳이 그 길을 택하는 데에는 필시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날 오후 무렵-, 바로 그 형산의 지름길 입구에 허름한 마의와 역시 허름한 죽립을 길게 내려 쓰고 전신에 먼지를 뒤집어쓴 다소 왜소한 듯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다름아닌 이미 한달쯤 전에 석문산의 모옥을 떠나 강호를 주유하기 시작 한 백리운,바로그 소년이었다. 실상 그가 살고 있었던 석문산과 소림사가 있는 숭산까지의 거리는 그의 걷는 속도로는 대략 두달도 더 걸리는 머나먼 여정이었기 때문에 그는 아직 절반의 거리도 도달하지 못한 셈이었다. 허나, 말이 한달이지,그동안 그가 겪은 고초라는 것은 실로 이루말할 수가 없는 것 이었다. 처음 그가 읍성의 부근에 이르렀을 때 그는 문득 읍성에 자신의 행적이 알려 지게 되면 적도들의 의심을 받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여, 단지 근처의 허름한 농가에서 간단한 요기할 것들만 구입한 다음에 길을 재촉 하기 시작했다. 그의 그 뒤의 여정은 바로 그 날과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백리운은 비록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쉽게 죽음을 당하고 싶 지도 않았기 때문에 길을 떠난 이후에는 그 적도들에 대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용모가 특이하게 추악하여 만인의 이목을 끌 소지가 다분하기 때 문에 가능하면 번화한 곳에 가지 않았고,하다못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숙 박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필요한 물품만을 구입한 다음에 잠은 들판이나 깊은 산중에서 잤 고,길을 걸어갈 때에도 되도록 사람들과의 마주침을 피했다. 그러다보니 자연,그의 고초는 일반 여행자들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끔은 길을 잃어서 해매기도 했고 또한 끼니를 굶기도 했다. 만일 그가 산속에서 홀로 살아온 경험이 없었다면 그는 아마도 그러한 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보기보다 강인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숭산으로 가는 길을 포 기 했을런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백리운의 몸은 오랜 여정에서 피로에 찌들은 상태였지만, 유독 그의 마 음만은 얼핏 고요하고 담담해 보였다. 그는 다만 자신이 얼마후에 소림사에 황종의의 편지를 전해주는 일만을 눈앞 에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이 그의 유일한 할 일이라는 듯, 그는 지금 자신이 그 다음에 해야할 일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을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이미 워낙 임기응변식으로 살아오던 습관이 되어서 그는 일부러 그러한 생각 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백리운은 물론 이곳으로 오던 중에 우연히 사람들의 곁을 지나치면서 이 산중 에 식인호랑이가 출몰한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백리운은 차라리 이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차라리 그러한 흉폭한 짐승과 마주치는 것이 오히 려 마음 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렇게 행인들이 전혀 가지못하는 지름길로 걸음을 옮기고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일개 십오세에 불과한 소년으로서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까? 백리운이 이제 겨우 십오세의 소년으로서 그러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기실 전날의 그의 심적인 고통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백리운은 지름길의 입구를 훨씬 지나쳐서 점차로 깊은 산중으로 들어섰다. 소문그대로 ,이 형산의 산중은 실로 험준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다만 그 험준한 산중으로 일부러 낸듯한 길이 있었는데, 그것도 이미 사람들 이 다니지 않아서 잡초들만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이 산중은 아주 조용했다. 가끔은 짐승들의 포효소리나 산새들의 우짖는 소리,그리고 시냇물이 졸졸거리 며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오긴 해도 매우 조용한 편이엇다. 공포스런 소문과는 달리 다소 한가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과연 이 산중에 식인호랑이가 나타난다는 말은 사실일까? 백리운은 마치 익숙한 듯 걸음을 빠르게 앞으로 옮겨놓으면서 곰곰 과거의 회 상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백리운이라고해서 흉폭한 맹수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기실 그에게 는 한가지 믿을만한 구석이 있었다. 바로 그것은 그의 신체의 기이한 또 하나의 특성이었는데,그의 두 눈에서는 뭔가 알 수 없는 무형의 기운이 발출될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바로 몇차례의 맹수들의 공격을 받고 나서 그 스스로가 어렵게 알게된 실로 기이한 사실이었다. 괴이하게도 맹수들은 그가 일단 의식을 집중하여 뚫어지게 바라보기만하면,설 사 호랑이라고 할지라도 즉시 꼬리를 말고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백리운은 처음에는 몇차례 맹수들의 습격을 받아서 위험을 겪기도 했지만 나 중에는 전혀 맹수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바로 그 점이 그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산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한 요인이 었다. 물론 자신의 그러한 특성이 소문의 그 식인호랑이에게도 먹혀들어갈지 알수가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일단 백리운에게는 별다른 두려움이 일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녹음이 우거진 원시림의 숲속을 지나자,곧장 좌우가 깍아지른 듯한 절벽과 낭 떠러지로 이루어진 거대한 암봉의 소롯길이 나타났으며,그것을 통과하자 다시 험악한 계곡과 산비탈등이 나타나 발길을 느리게 만들었다. 원래 이곳 형산은 식인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던 때에도 행인들이 많이 모인 후에야 무리를 지어서 넘어가곤 했던 곳으로,결코 한낱 어린 소년이 지나갈 수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백리운은 불과 형산의 절반도 지나지 못했는데 이미 서산의 해가 뉘엿뉘엿 기 우는것을 보아야 했다. 어쩔수 없이 오늘밤은 이 험한 산중에서 자고가야 하는 것이다. 비록 아직 식인호랑이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일단 날이 어두워지면 틀림없이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할 것이기 때문에 백리운으로서는 다소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래 산 속의 저녁은 빨리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백리운은 식인호랑이때문에 날이 어둡기전에 우선 잘 곳을 마련하는 것이 급 선무라고 생각하고는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면서 좌우의 나무들을 살폈다. 맹수의 위협이 있는 곳에서는 아무래도 나무위가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 었다. 이 형산에는 수십 수백년이나 묵은 아름드리 거목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물론 백리운이 원하는 그런 종류의 나무들도 있었다. 백리운은 얼마가지 않아서 다소 높게 치솟았으면서도 위쪽이 가지가 넓고 무 성하게 옆으로 퍼져있는 나무를 발견하고는 즉시 그 나무위로 올라갔다. 이어, 그는 이미 숙련된 솜씨로 안전한 잠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런 나무위에 잠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은 사실 간단한 듯 하면서도 그리 쉽지 만은 않은 것이었다. 우선 잘 곳의 나무가 굵고 튼튼한가를 확인해야 하고,그러고 난 다음에 그 위 에 다시 다른 굵고 가는 나뭇가지들을 잘라서 칡넝쿨 따위로 단단하게 고정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일단 튼튼하 자리가 마련되면 그위에 풀잎들을 가져다가 덮어서 부드 럽게 꾸미고,이어 잠을 잘 때에도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자신의 몸을 역시 굵은 나무에 묶어 놓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한 방법들은 물론 백리운이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터 득한 것이었다. 이미 산속에서의 생활에 익숙한 그로서는 그렇게 불편한 잠자리에서도 편하게 잠잘수 있는 습성이 있었다. 그가 나무위로 올라갈 때만해도 사위는 은은한 황혼빛이 물들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가 잠자리를 모두 마련하고나자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마 그믐밤쯤 될 것이다. 백리운은 날이 완전히 어둡기 전에 계곡으로 달려가서 물을 떠오고 모든 볼일 을 마치는등 부산을 떨다가 이윽고 잠을 자기위해 나무위로 다시 올라갔다. 사위는 이제 확실히 어두워졌으나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백리운은 그 별빛을 바라보며 마른음식을 꺼내 물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를 끝내자 그는 이어 잠자리에 길게 누워서 잠시 상념에 잠겼다. 우선 생각되는 것은 소문이 떠들썩한 이곳의 식인 호랑이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다소 긴장을 했지만 사위는 여전히 고요하고 가끔씩 야조의 울음소 리나 짐승들의 울부짖는 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올 뿐 뭔가 나타날 기미가 없자 그 생각도 곧 시들해져 버렸다. 백리운은 다음에는 한달전의 그 그믐밤의 일을 생각했다. 당시는 하늘에 별도 없이 잔뜩 흐려있었고, 또한 그 모옥의 부근은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곳이어서 그곳은 매우 어두웠었다. 마치 그러한 괴괴한 어둠처럼 그날의 일은 무섭게 일어났고,그 뒤로 그의 인 생의 행로는 커다란 전환을 맞게 되었다. (전환......전환이라?......) 백리운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그의 두 눈에는 갑자기 이슬처럼 미미한 물기가 피어올라 있었다. 자연, 그의 시야는 그러한 물기로 인해 뿌옇게 흐려져서 어떤 희미한 두 개의 잔영 을 그려냈다. (어머니,아버지......) 그렇다. 그 두 개의 잔영은 희미하여 분명하지는 않으나 그의 부모의 얼굴이엇다. 그의 부모의 얼굴이 명확하지 않은 것은 이미 그의 부모가 그가 어렸을 때 한 꺼번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은 지금 그의 추악한 용모와도 관계가 깊은 것이었다. 그 고통스러웠던 순간들! 백리운은 문득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전신을 경련으로 인해 가늘 게 떨었다. 일시 무한한 분노와 고통의 빛이 그의 두눈에서 일었고,급기야는 그는 심한 격 동으로 인해 폭발할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것은 단지 일순간이었을뿐 백리운은 문득 한줄기 장탄식을 터뜨리며 전신의 힘을 풀었다. [내가 지금 부질없이 격동하는 것은 어리석은일이다. 나는 아직도 마음의 평정 을 찾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러나, 백리운이 전혀 마음의 평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산중의 그 고독하고 고통스런 생활을 통해 마음의 수양을 거듭했고,이제 는 거의 완전히 마음을 수습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만 지금 그는 문득 별들을 보게되자 잠시 감상에 젖게 되었고,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되었으며 잠시 흥분하 게된 것이다. 과거의 그 일은 오직 그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백리운은 비록 그일들이 영원히 비밀로 묻히게 될 지라도 다시는 생각에 떠올 리지 않기로 했었다. 그것은 그가 현명하기 때문이었다. 백리운은 일단 감정을 수습하고 나자 마음이 다시 담담하게 맑아졌고,고요하 고 맑은 눈빛이 되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 깊은 산중은 다소 기분나쁠 듯한 괴괴한 적막으로 가득차 있었고,가끔 피 를 토하는 듯한 야조의 울음소리와 은빛의 별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백리운은 그러한 상념에 접어들게 되자 마음이 더욱 더 맑아졌다. 그러한 가운데 그는 문득 깊은 잠속에 빠져들어갔다. ......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백리운은 문득 희미한 잠결속에서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괴상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쿠후워어-! 그것은 늑대의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호랑이의 웅후한 포효소리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 두가지를 모두 갖춘 중간 정도의 소리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 소리는 워낙 커다란 소리였기 때문에 백리운은 금방 잠에서 깨게 되었다. 백리운은 절로 정신이 번쩍드는 것을 느끼며 놀라 생각했다. 대체 이것은 난데없이 무슨 소리일까? 호랑이의 소리도 아니고 늑대의 소리도 아니라면 이것은 혹시 어떤 괴물,특히 식인호랑이의 소리가 아닐까? 백리운의 뇌리에는 문득 소문에 의해 심하게 과장된 식인호랑이의 모습이 그려 졌다. 그것은 실로 크기가 작은 집채만하고 흉폭하기 이를데없는 괴물같은 모습이었 다. 과연 그러한 거대한 괴물이라면 이러한 커다란 소리를 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괴이한 점은 그 소리가 한곳이 아닌 여러곳에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마구 들려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소리는 결코 하나의 소리가 아니었고 또한 소리마다 들려오는 거리가 달라 서 필시 귀신이 아닌한은 그 소리의 임자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했 다. 그렇다면, 지금 혹시 그 식인 호랑이의 떼가 수십마리나 몰려들어서 이 부근에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울부짖고 있는것이란 말인가? 백리운은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내심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식인호랑이는 드물게 나타나는 것인데 이렇게 그 숫자가 많은 수가 있겠는 가? 그리고, 아무리 식인호랑이라고 해도 그 포효하는 소리가 이렇게 괴이한 것이라고는 실로 믿어지지 않았다 백리운은 누운채 그 금속성이 섞인듯한 아주 거칠고 포악한 듯한 굉렬한 포효 소리를 마치 음미하듯이 듣고 있다가 눈을 들어서 하늘의 천색을 살폈다. 보아하니 아마도 자정을 조금 지난 무렵인 것 같았다. 그것을 알고나자,백리운은 서서히 소리를 내지 않고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켰 다. 그는 이 괴상한 소리를 다소 수상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그중 몇몇의 소리는 괴이하게도 그가 있는 부근으로 점차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백리운은 자연 일어나 앉아서 소리가 나는 쪽을 주시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만,그러나 아래로 내려가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만일 그 괴상한 소리의 임자가 혹시 진짜 식인호랑이이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는 허리에 묶은 줄을 풀어서 만일의 사태에 대처할 준비를 했다. 헌데 이때 그 괴상한 소리가 그의 지척에 이르러서 갑자기 뚝 끊어졌기 때문 에 백리운은 아연 긴장하여 숨을 죽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실로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느닷없이 가까운 곳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제기랄!우리 채주님의 생각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빌어먹을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소리를 내다가는 졸지에 우리의 정체가 탄로날 수도 있 는 것이 아니겠어?] 백리운은 일시 그 느닷없는 말소리에 크게 흠칫했다. 허나,그가 미처 다른 생각을 굴릴 여유도 없이 다른 사람의 음성이 뒤를 이었 다. [하긴......그렇긴 해! 육씨랄! 원래는 매일밤 각 초소에서 한 번씩 돌아가며 불게 되어있는 것인데 이렇게 한꺼번에 사방에서 동시에 불어댄다면 어느 미친 놈이 이걸 호랑이의 포효라고 생각하겠느냔 말이야?하지만......하지만 지금은 한밤중이고,또한 지나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상관이 없겠지.] 그자는 처음에는 다소 화가난 듯 소리치다가 나중에는 뭔가 꺼리는 것이 있는 듯 어물어물 넘겨버렸다. 그러자, 처음의 사람이 다시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쓰팔! 그러나 재수가 없으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오늘 밤 이 일로 인해 혹시 관가에서 우리의 정체를 알게 되지 않을까? 빌어먹을, 지금 우리가 이런 호랑이놀음을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관가녀석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닌가 말이야?이 썩을! 관가놈들은 정말 귀찮기 짝이 없단 말이야!] 이에, 두 번째의 사람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이건 채주의 엄명인데 어쩌겠나?설사 우리가 관가에 의해 이곳을 쫓 겨나는 일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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