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기정무협소설[백상] 소림화상 - 45편 (45/56)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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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기정무협소설[백상] 소림화상 - 45편 (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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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운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제 정식으로 그를 향해 손녀사위로서의 예의 를 차리는 수밖에 없었다.
[예,그렇습니다.할아버님께 삼가 예를 올리겠습니다!] 백리운이 공손히 대답하며 즉시 그 자리에 엎드려서 대례를 올리고 나자 심길 은 그를 바라보며 문득 대견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음......내 손녀딸은 사람보는 눈이 매우 날카로운 편인데,과연 범상치는 않 은 인물이로군!첫눈에 내 마음에 들었네.] 심길이 자애롭게 미소하는 것을 보고,백리운은 다시 한 번 더 공손히 예의를 차렸다.
[미거한 저를 그렇게 보아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허허......] 심길이 가볍게 환한 웃음을 짓자, 이때, 다시 백군악이 눈빛을 기이하게 빛내며 끼어들었다.
[선배님!제가 무엇 때문에 선배님을 이곳으로 모시고 다시 저 젊은이를 이곳 에 데려오게 했는지 아십니까?] 심길은 다소 의외인 듯 가볍게 놀라며 되물었다.
[아니 일부러 그랬었단 말이오? 그래, 거기에는 무슨 특별한 까닭이라도 있는 것이오?] 백군악은 기이한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물론 있지요......원래 저는 어젯밤 저의 기아가 동심인을 박살낸 사람이 있 다고 하길래 궁금한 생각이 들었었지요.그런데......] ......
백군악은 짐짓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허헛,바로 그 저의 기아를 혼내주었다던 젊은이가 알고보니 심선배님의 손녀 사위가 아니겠습니까?생각같아서는 그 젊은이를 불러다가 출신내력을 묻고 또 한 우리 동심각의 동심인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도 싶었지만,헛 헛......어찌 그럴수가 있겠습니까!마침 두분이 미처 대면을 하지못한것 같길 래 기왕에 두분이 만날수 있도록 주선을 해드린 것이었죠.] 지금 백군악의 말은 평상조의 어조로 태연하기 이를데가 없었지만 실로 보통 의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듣는다면, 놀랍고 두려운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의 무시무시한 사연이었다.
즉, 백군악은 원래는 백운기를 시켜서 데려오게 한 후에 자신의 무공으로 혼내주 려고 했었던 것이었는데, 심길의 낯을 봐서 용서해주었다는 은근한 표현이었던 것이었다.
아까 백리운을 이곳까지 유인했었던 백운기의 어리둥절했던 태도가 금새 이해 가 되는 순간이었다 백리운은 물론 그러한 말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즉시 허리를 깊이 숙이며 백군악을 향해 공손하게 예의를 표했다.
[선배님께서 후배의 그러한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이러한 자리를 마 련해 주신 것은 저로서는 감히 바라지도 못했었던 일이었습니다.
재삼 사죄를 올림과 더불어 선배님의 관용에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백리운의 언사는 다소 서생의 냄새를 풍기기는 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상대의 기분을 올려주기에 아주 그럴듯한 말이었다.
백군악은 잠시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대꾸했다.
[그만하면 됐네.내 설마하니 심선배님의 손녀사위를 혼냈었을 것 같은가!그렇 지 않습니까 선배님?] 백군악이 고개를 돌리며 묻자, 심길은 담담하게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겠지만 내 맹주의 고마움은 잊지 않겠소.] 그는 못내 자신의 손녀사위에 대해서 만족하여 기분이 매우 좋은 모양이었다.
백군악은 그를 향해 웃으며 다시 말했다.
[자,그건 그렇고......우리 기왕에 시작한 바둑이니 마저 끝내도록 하지요.대 견한 손녀사위야 나중에 다시 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심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그럼 자네는 돌아가도록 하게!] 백리운에게 간단하게 지시한후 심길은 곧장 백군악과 함께 석탁위의 바둑돌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탁,탁......
가벼운 마찰음이 들리는 가운데 두 사람은 이제 주위에서 벼락이 내리쳐도 끄 덕하지 않겠다는 듯이 시선을 바둑판에서 떼지 않았다.
백리운은 그러한 광경을 보다가 이윽고 그들에게 정중히 예의를 올린 다음에 뒤로 돌아서 왔던 길로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 문득,바둑판을 바라보던 백군악의 시선에 기이한 물결이 한줄기 일렁이는 듯 했다. * * * 스으읏!......
백리운이 펼치는 축지성촌의 절기는 실로 신묘하기 이를데가 없어서,분명히 그의 신형이 안개구름을 헤치고 허공을 날으고 있음에도 전혀 파공음하나 일 지 않았다.
이미 사위에는 짙붉어진 저녁노을 사이로 희미한 땅거미가 몰려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백여장의 공간을 날아서 마악 건너편의 암봉위에 이르렀을 때, 백리운은 문득 눈앞에 예의 그 백운기와 곽씨남매가 아직 그 자리에서 자신을 주시하며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아니, 어느새 지금 장내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언제 소식을 듣고 나타났는지, 백운기의 누나인 홍의낭자 백운하와 좌천상이 그들의 주위에 함께 서 있었던 것이었다.
백리운이 지면에 가볍게 내려서자 백운기는 매우 못 마땅하고 찌푸려진 얼굴 로 잠시 그를 주시하다가 내뱉듯 입을 열었다.
[흥!재수가 좋은 녀석이로군.성수방주의 입김으로 목숨을 연명하다니.......] 아마도 백운기는 아까만 해도 백리운이 이번에 백군악에게 목숨을 잃을 것이 라고 생각했었던 모양이었다.
곽씨남매는 역시 무표정하게 아무말이 없었다.
백리운은 담담하게 미소하며 대꾸했다.
[너역시 재수가 좋은 편이로구나.하지만 이와같은 좋은 환경에서 올바르게 노 력하지 않는다면 별로 좋다고 말할수도 없게 되지.] [......!] 백운기는 그 말에 일순 얼굴가득 극도의 분노한 기색을 떠올렸다.
그러나, 백군악이 이미 용서했기때문에 어쩔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분기를 토하듯 한 숨을 내쉬며 차갑게 말했다.
[좋다,어쨌든 지금은 그냥 보내주지만 나중에는......결코 이렇지는 않을 것 이다!] 백운기는 강조하듯 말을 곱씹으며 눈빛을 기이하게 굴려 보였다.
그때, 문득 이제까지 묵묵히 백리운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던 백운하가 요염한 기 운이 흐르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며 입을 열어 물어왔다.
[백리공자,알고보니 당신은 아주 놀라운 사람이로군요!대체 방금전의 그 신법 은 어떻게 펼칠 수가 있는거죠?] 그녀는 말하면서 사뭇 상대에게 관심이 지대하다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모습은 상대남자의 마음을 휘어잡기에 충분한 기교라고 말 할수가 있었다.
백리운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 그리 대단하지는 않소.당신의 부친께서도 인정을 하셨지만,그것은 무형검 을 터득하게 되면 자연히 시전이 가능한 것이오.아마......낭자도 머지않아 그것을 펼칠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오.] 백운하는 눈빛을 맑고 초롱하게 빛내며 순진무구한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그런가요?하지만 무형검은 결코 아무나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당신 의 겸손은 대단한 것이라고 할수가 있겠군요.저는......반드시 이렇게 겸손한 남자라면 좋아해요,거만한 사람은 보기가 싫거든요!] 이 백운하의 나중의 말은 마치 상대가 자신의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드럽 고 속삭이는 듯 은밀해보였다.
혹시 그녀는 느닷없이 백리운을 유혹해보려고 마음이 일어난 것이었을까? 이때, 백리운의 귓전에 갑자기 한줄기 싸늘한 전음성이 들려왔다.
(이것 보시오,백리공자!행동과 말을 똑바로 하시오!당신이 비록 심낭자를 내 게서 빼앗아간 것은 용납하겠지만,나의 하매마저 취하려고 수작을 부린다면 ......그때는 나도 정말 가만히 있지 않겠소.이것은 나의 솔직한 경고요!) 백리운은 전음을 듣고 천천히 시선을 한쪽에 서 있는 좌천상에게 옮겼다.
바로 방금전에 전음을 날린 사람은 다름아닌 좌천상,그였던 것이었다.
원래, 좌천상은 내심 심옥산을 잃은데 대한 섭섭함이 가슴을 채우고 있었는데다가, 지금 친하게 지내고 있는 백운하가 마치 처음에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백리운 을 유혹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소유욕과 질투심에 불타서 그만 그렇게 전음으로 소리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사실 심옥산은 대단한 여인이었지만,이 백운하 역시 매우 요염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어서 그녀로 인해 섭섭한 마음을 메울수가 있었기 때문에, 좌천상은 이 백운하에 대해서 심한 집착을 갖고 있었다.
백리운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의 그 말을 정말이오?] 좌천상은 일시 얼굴이 붉어졌으나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눈빛 을 차갑게 굳히며 대답했다.
[물론이오.내 한입에 두말을 하고 말한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사내대장부가 아니오.나는 더 이상 심낭자를 생각하지 않겠소!] 백리운은 가볍게 미소를 지은뒤에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럼,여러분 다시 보게 되기를 바라겠소!......] 백리운의 신형은 처음에는 바닥을 걷는 듯 하다가 점차 허공을 밟아가서 미끄 러지듯이 멀어져가 하나의 암봉을 돌아가자 그대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는 암봉위의 사람들은 잠시 복잡한 눈빛으로 할 말을 잊 고 있었다. * * * 백리운이 암봉들의 사이를 돌아 마치 구름이 흘러가듯 유유하게 양양성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느닷없이 그의 귓전에 맑게 부딪치는 아름다운 음성이 있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백리공자!저와 잠시 얘기좀 나누어요.] [......] 백리운이 잠시 신형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보니, 뒤쪽의 암봉의 모퉁이를 돌아나오는 허공으로 지금 마악 신형을 비조처럼 날 려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 수법은 바로 어풍비행이란 경공술로,바로 얼마전에 백운기로부터 시전하는 모습을 보았던 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어풍비행을 자유롭게 시전할 수 있으며 게다가 시전도중 말까지 할수 있 다는 것은 그 사람의 무예가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서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연남빛 장삼을 아름답게 걸친 절세의 미소녀......, 백리운은 물론 이 소녀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녀는 좌천상의 여동생 좌려선인 것이다.
사실상, 이 좌려선은 단순히 좌천상의 여동생이라기 보다는 뭔가 새롭고 참신한,지극 히 절제심이 강하고 영특하다는 면으로 더욱 인상깊은 소녀였다.
그녀는 또한 삼년전에 백리운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었 고,얼마전에는 내심의 감정을 드러냈던 적이 있었었다.
비록 남자가 아닌 여인의 몸이지만, 백리운은 그녀가 자신의 오빠인 좌천상보다 오히려 더욱 훌륭한 면모가 있다 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신형을 날려오고 있는 방향은 바로 백리운이 지나왔던 길이었는 데,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아마도 그녀는 아까 좌천상등이 있었던 그 암봉의 부근 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뒤늦게 급히 뒤쫓아 오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백리운의 근처에 이르자, 좌려선은 신법의 속도를 늦추어 능공허도의 경공술을 펼쳐 서서히 허공을 밟 아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며 백리운에게 친근하게 웃어보였다.
[놀라셨죠?사실 저는 방금전에 그 봉우리 밑에 숨어서 그 광경을 다 보고 있 었어요.당신이 저의 오빠에게 그런 다짐을 받아놓으신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 고 생각해요.그런데......당신이 떠나고나서 그들의 눈을 속이고 당신의 뒤를 쫓아오기가 너무나도 힘이 들었어요!] 말을 하고나서,그녀는 정말로 매우 힘이 들어 못견디겠다는 듯이 몇번 숨을 가볍게 토하며 얼굴가득 아름다운 홍조를 잔뜩 피어 올렸다.
기실, 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심옥산에 대한 연정으로 인해 백리운에게 심한 질투감 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내심 고심하고 있었던 차에, 이번에 그것이 백리운에 의해 의외로 쉽게 풀려버리자,누구보다도 이를 기뻐 하며 기분이 매우 좋아져 있는 상태였다.
백리운은 담담하게 미소하며 대꾸했다.
[하지만 상승경공을 펼치면서 그런 엄살을 부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 소.나는 원래 그대의 오라비가 무공이 높다고 생각해 왔었는데,알고보니 당신 의 무공이 결코 그에 못지 않은 것 같군,] 좌려선은 모처럼 무공을 펼쳐보이다가 백리운에게 칭찬을 받게되자 이번에는 정말로 수줍은 기분이 들어서 얼굴이 완전히 붉어졌다.
[과찬의 말씀이시군요,당신의 경공술에 비하면 저의 경공술은 어린애장난같은 걸요.비록 제가 요 몇 년동안 노력을 해왔었지만,심언니의 경공술만해도 저보 다는 높고......아무튼 쑥스럽고 창피해요.] 백리운은 그녀와 함께 보조를 맞추어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아가며 미소와 함께 물었다.
[그래,내게 무슨 할말이라도 있소?] 좌려선은 잠시 멍하니 백리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예요,저는 한가지 부탁을 드리려고 해요.] 백리운은 담담히 미소했다.
[그 부탁이란 뭐요?나는 그대와의 친분을 생각해서 가능하면 어떠한 부탁이라 도 다 들어줄 용의가 있소.] 좌려선은 다시 얼굴을 붉히더니 대답했다.
[저는 당신과 심언니가 함께 사는 곳을 한 번 구경하고 싶어요.언니의 얼굴도 보고 싶고......그리고 당신과 얘기도 나누고 싶고......] 좌려선이 다소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백리운은 미소하며 흔쾌하게 승낙했다.
[그거야 뭐가 어렵겠소.마침 옥산도 나와 다니기만 하려니 심심할것이라고 생 각하고 있었는데 그대가 가서 말동무가 되어 준다면 나역시 매우 즐거울 것이 오.] 좌려선은 그가 다만 심옥산에 비추어서 대답을 하자 어딘가 섭섭한 느낌이 드 는지 다소 어둡고우울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다가, 이내 밝은 표정으로 돌아선 그녀는 웃으며 다시 말했다.
[참,언니가 빨리 보고 싶어요!우리 거기까지 누가 빨리 달리나 내기하도록 해 요!] 말과 함께, 좌려선은 신법을 최대한 펼쳐서 앞쪽으로 화살처럼 날아가기 시작했다.
백리운은 담담히 미소하며 유유히 그 뒤를 따라갔다. * * * 백리운과 좌려선이 양양선 부근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사위가 제법 어두워 져 있을 무렵이었다.
좌려선이 처음에는 최고의 신법을 펼쳐서 앞장서서 신형을 날렸으나,점차로 쑥스러운 기분이 사라져가자 마악 속도를 늦추고 있는 중이었다.
밤의 날씨가 다소 쌀쌀한 느낌을 주었지만, 그녀는 앞으로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백리운과의 이 고적하고 아름다운 밤을 그냥 지나쳐 버리기가 서운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금방 신법을 거둔다면 뭔가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고, 따라서, 마침 힘이 다한 듯이 서서히 신법의 속도를 늦추어서 그녀는 결국 위에서 다 가오는 백리운과 옆에서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 좌려선은 다소 피곤한 듯이숨을 토하면서도 옆의 백리운의 얼굴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백리운은 전면을 바라보며 담담하고 고요한 기색으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그 유유한 모습이 마치 행운유수와도 같았다.
마침 동쪽하늘에는 둥근 달이 떠오르고 있었는데, 일순 백리운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깊이 일어난 좌려선은 이 부근의 지형이 더욱 운치있게 느껴지는지라, 잠시 이곳에서 쉬어가자고 말하려고 했다.
헌데 그 순간, 좌려선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어디선가 찢어지는 듯한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악!네놈이 정말 이런 짐승같은 짓을 내게 할 수가 있느냐-!] ......
사모하는 사람과 잠시동안 사랑을 속삭이고 싶은 기대는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마치 숙명적인 느낌이라도 받은 듯이, 좌려선은 급히 백리운과 눈길을 맞춘 후에 즉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함 께 신형을 날렸다.
보이지 않는 질긴 운명의 끈이라고나 할까? 소리가 들렸왔던 곳은 백리운등이 지나치던 곳과는 그리 멀지 않은 제법 운치 있어 보이는 작은 계곡의 안이었다. -여인, 가슴팍의 옷이 한자락 길게 찢어져서 앙증맞은 젖가리개가 고스란히 드러난채 땅바닥에 누워 꼼짝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그녀는, 놀랍게도 바로 신녀문의 소문주 운지였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심옥산과 함께 주루에 있었을 것인데 그녀가 어째서 이런 곳에 와서 봉변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 [네놈이 만약 이짓을 멈추지 않는다면 나는 즉시 혀를 깨물고 죽고 말 것이 다!] 운지는 비록 전신혈도가 제압되어 꼼짝할 수가 없는 몸이 되었지만,두 눈에서 는 서릿발과도 같은 독기가 가득 일어나고 있었다.
[흐흐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난 결코 시체와는 놀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음침한 음성과 함께 즉시 지풍을 날려 운지의 아혈을 제압해버리는 백의청년 이 하나 있었다.
어이없게도 그는 바로 천산검문의 문주라던 종리천파였다.
[......!] 운지는 아혈이 제압되어 이제 자결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처지가 되어버리 자 일시 공포와 분노에 전율하며 얼굴을 시퍼렇게 물들이고 있었다.
종리천파는 그녀를 향해 마치 우리안에 갇혀있는 토끼를 보듯 다가서며 음흉 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얼굴만 허여멀건 백리운이 뭐가 좋다고 이런 고집을 부리 시오?나 역시 억지로 이런 짓을 하고싶은 마음은 없소.이제는 그만 마음을 돌 리는 것이 어떻겠소?] 아마도 그들은 이미 이곳에서 서로 많은 논쟁을 했었던 것 같았다.
다만 운지의 무공이 결코 종리천파에 못지 않은데도 그녀가 이렇게 어이없게 당하고 만 것은 아무래도 종리천파가 기습적으로 그녀의 혈도를 제압해버렸던 모양이었다.
운지는 혈도가 제압되었으니 물론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지만, 그 태도에는 변함이 없어서 두 눈에서 시퍼런 원독의 광채만을 쏘아낼뿐 그 흔한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있었다.
이에, 종리천파는 문득 눈빛을 악독하게 고치더니 음산하게 소리쳤다.
[흐흐,경주는 마다하고 굳이 벌주를 마시겠다고 하다니!네가 지금은 이러지만 쌀이 익어서 밥이 되고 난 뒤에도 이런 고집을 부리는지 두고 볼 것이다!] 악독하게 소리친 후, 종리천파는 먼저 자신의 장삼을 벗어버린 뒤에 운지의 앞으로 달려들어 이미 한쪽이 찢겨나간 옷을 모두 찢어버리려고 했다.
그때였다.
종리천파는 무심코 고개를 들다가 문득 자신의 앞쪽에 한 사람의 절세준미한 백의서생이 나타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름아닌 바로 백리운이었다. ......! 종리천파는 일시 눈이 휘둥그래 지다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깜짝놀라 몸 을 벌떡 일으켜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네,네가 어떻게 여길......] 그는 몇번이고 눈을 부비면서도 백리운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가 없는 표정이었다.
백리운은 그를 내려다보며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전에 한번 그대를 구해주었듯이,이제는 그대가 그녀를 용서해주고 물러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 종리천파는 무슨 말인지 그 뜻을 몰라하다가 급히 대답했다.
[물론입니다,제 제발 저를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백리공자!......] 백리운은 고개를 돌려 아직 땅바닥에 누운채 멍하니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운지를 내려다 보았다.
종리천파는 내심 극도로 초조해하다가 그것이 곧 자신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급히 신형을 날려서 어두움 속으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
이미 운지의 전신혈도는 완전히 풀려진 상태였다.
그녀는 백리운의 얼굴을 쳐다보자 일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고 있 었다.
백리운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주위에서 좌려선이 다가와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운지의 몸에 걸쳐주며 그녀 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래도 다행이예요.아직 당하지 않았으니......] 좌려선은 미소하며 운지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비록 몸의 순결은 파괴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한순간 치밀어 오는 이 고통어 린 절망적인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위로받을 수가 있겠는가! 운지는 잠시 고개를 숙여 흐느끼다가 이윽고,그대로 신법을 날려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
백리운은 담담한 시선으로 그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좌려선에게 입을 열었다.
[자,우리도 이만 갑시다!] * * * 예상대로 심옥산은 주루에 있지 않았다.
주루에 들러서 그녀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자,백리운은 좌려선과 함께 용문객 점의 이미 예약해놓은 객방으로 찾아갔다.
심옥산은 바로 거기에서 백리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마,선매도 왔군요?어서 들어와요!] 매우 반갑게 맞이하는 심옥산을 보며 좌려선은 백리운보다도 먼저 방안으로 들어섰다.
[호호,언니!혹시 제가 이렇게 찾아와서 두분에게 방해가 된 것은 아닌가요?어 머나!여기는 정말로 대단히 근사한 곳이로군요!] 좌려선은 심옥산의 손을 반갑게 맞잡고 호화로운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다소 호들갑을 떨었다.
백리운이 방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자, 좌려선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심옥산의 손을 잡은채로 물었다.
[참,혹시 언니는 요즘 강호에 새로 나온 신녀문의 소문주 운지라는 아가씨를 알고 있나요?] 확실히 이 좌려선은 총명하고 강호사에도 밝은 일대기녀였다.
심옥산은 다소 의외인 듯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그럼 그 얘긴 우리 자리에 앉고 나서 시작하도록 할까?] 심옥산이 백리운을 돌아보며 그렇게 제안하자, [좋아요!언니.] 좌려선은 즉시 찬성하며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넓고 호화로운 탁자가 있는 곳 으로 먼저 다가가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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