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어! 어!" 산고와 호랑이의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적의 노인이 고함을 질렀다. 잠깐 사이에 산고와 호랑이는 서로를 얼싸안고 구르고 있었다. 산고는 호랑이의 등에 달라붙어 목과 등뼈를 부서져라 내리쳤다. 호랑이가 산고를 떨쳐 내기 위해 바둥바둥 굴렀다. 그러나 산고는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커- 항!" 호랑이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내 고양이!" 적의 노인이 화들짝 달려갔다. 그러나 그가 달려갔을 때 호랑이는 이미 어깨뼈가 부셔져 축 늘어지고 있었다. 산고가 이마에 땀을 닦으며 일어섰다. 그녀가 핏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백의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어딜 가? 내 고양이 물어 내!" 적의 노인이 화를 내며 산고의 앞길을 막았다. 산고는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휙! 그녀가 주먹을 내뻗었다. 타탓! 탓! 탓! 적의 노인은 산고와 몇 수 산타(散打)를 벌이더니 이내 금나수로 그녀의 맥문을 잡았다. "물어 내!" 적의 노인이 고함을 지르며 투살기를 쏟았다. 산고의 눈까풀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녀가 있는 힘을 모아 머리로 냅다 들이박았다. 그러나 맥문이 잡혀 있어 제대로 힘이 발휘될 리 없었다. 그녀의 일격은 오히려 적의 노인의 화만 돋구었다. "네년도 어디 한 곳이 부서져 봐라! 얼마나 아픈가?" 적의 노인이 투살기를 팔 성(八成) 끌어올렸다. 산고가 이를 악물었다. "웩!" 그러나 결국 그녀는 피화살을 쏟았다. 그녀의 신형이 휘청 무너졌다. "뭐야?" 백의 노인과 황의 노인이 다급히 달려왔다. "죽였어?" 황의 노인이 눈을 치켜 뜨며 물었다. "해해해! 모르겠다." 적의 노인이 산고를 발로 툭툭 찼다. 하지만 산고는 꼼짝을 않았다. "주황, 그 아이가 죽이지는 말라고 했잖아! 큰일이다!" 황의 노인이 다급히 산고를 진맥했다. 다행히 산고의 맥박은 미세하게 뛰고 있었다. "살았다! 살았어!" 그가 좋아라 소리쳤다. "잉?" 적의 노인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내 힘이 약해졌나?" 그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의아해 했다. "살려 내! 살려 놓지 않으면 주황, 그놈이 더 이상 우리에게 술과 고기를 주지 않을 것 아냐!" 황의 노인이 빽 고함을 질렀다. "알았어" 적의 노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으아!" 적의 노인은 비명을 질렀다. 쾡한 눈, 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늙으면 늘어나는 것이 잠이고 편한 잠은 또한 늙은이들의 유일한 낙이다. 그런데 적의 노인은 근 며칠간 즐거운 잠은커녕 제대로 된 잠 한 번 자지 못했었다. 지긋지긋 하게 달려드는 여자! 산고는 마치 누대의 한이 쌓인 듯 세 명의 늙은이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처음에는 좋았었다. 삭막한 이곳에 메뚜기처럼 날뛰는 계집이 신기하기까지 했으니... 그러나 하루, 이틀이 넘어가자 세 늙은이들은 죽을 맛이었다. 묶어 놓거나 혈도를 점하면 될 일이나 불행히도 세 늙은이들의 생각은 그곳까지 미치지를 못했다. 역시 이만의 말대로 세 늙은이들은 제 정신이 아닌 자들이었다. 산고도 제 정신은 아니었다. 그만하면 될 것을 죽자고 세 늙은이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죽기를 작정했던가 무엇인가에 홀린 것이 분명했다. "죽인다!" 적의 노인이 충혈된 눈으로 소리쳤다. 그는 정말 산고를 죽일 모양이었다. 그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그가 내력을 끌어올려 손바닥을 검게 물들였다. 산고는 눈을 감았다. 그녀도 살기를 느끼고 있었다. 적의 노인이 손바닥을 번쩍 들어 산고를 후려치려 할 때였다. "잠깐!" 백의 노인이 고함을 쳤다. "들어오게!" 그가 황급히 적의 노인을 목채로 끌어당겼다. 쾅! 백의 노인은 산고가 뒤따라 들어올세라 목채의 문을 거세게 닫았다. 세 늙은이들이 사라지자 산고의 몸이 흔들렸다. 그녀의 눈빛이 흐릿하게 풀어졌다. 그녀도 지칠 만큼 지쳐 있었다. 투살기로 인해 기혈은 제멋대로 흐르고 있었다. "나와! 이 늙은이... " 그녀의 몸이 서서히 쓰러졌다. 그녀는 풀썩 땅바닥을 뒹굴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고 음풍곡을 부는 바람은 여전히 찼다. 달빛 아래 비친 나뭇잎들은 붉게 타오르고... 의식이 가뭇가뭇했다. '이대로 죽었으면... ' 그녀가 몸을 새우처럼 구부렸다. 휘-잉! 음풍곡의 세찬 바람이 그녀를 쓸고 지나갔다. "잔다! 자!" 목채의 틈 사이로 산고를 지켜보던 황의 노인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자! 이리들 오게!" 백의 노인이 적의 노인과 황의 노인을 탁자로 불렀다. "마침 잘됐다. 자고 있을 때 목을 잘라 죽여 버리자! 만약 죽였다고 주황이 술과 고기를 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놈을 잡아 먹어 버릴 것이다." 적의 노인이 흉안을 번뜩이며 말했다. "안돼!" 백의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황의 노인도 따라서 고개를 저었다. "왜 안된다는 거야?" 쾅! 적의 노인이 탁자를 치며 화를 냈다. "모르겠어. 왠지 죽이기 싫어." 황의 노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는 좌충우돌로 날뛰는 산고에게 정을 느끼고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 그리고 꿈, 황의 노인은 가끔 저렇게 날뛰던 어린 계집에 대한 애틋한 영상이 있었다. 그 계집이 누군지는 그로서는 정말 모를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산고에게서 그 계집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아니라도 황의 노인은 산고에게 어느 정도의 호감은 가졌다. 꺾이지 않는 투혼! 백의 노인은 물론 산고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 적의 노인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같은 감정이었다. "그런 미친놈의 말이 어디 있어?" 황의 노인의 말에 적의 노인이 더욱 화를 냈다. "조용히 하게! 깨면 어쩌려구." 백의 노인이 '쉿!'하며 밖을 가리켰다. 적의 노인은 산고가 깨는 것이 귀찮았고 황의 노인은 곤히 잠든 산고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적의 노인과 황의 노인이 각자의 생각 속에 입을 합 닫았다. "내 이야기를 잘 듣게." 백의 노인이 근엄한 얼굴로 적의 노인과 황의 노인의 귀를 모았다. "자네들은 저런 계집을 본 적이 있는가?" 그가 물었다. "없네!" "없다!" 적의 노인과 황의 노인이 각기 말했다. "우리들이 누구인가?" 백의 노인이 다시 물었다. "삼악오(三惡烏)!" 적의 노인과 황의 노인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답했다. 백오(白烏), 적오(赤烏), 황오(黃烏), 삼악오! 오십 년 전, 자금성에 침입 황제의 재보를 턴 간 큰 자들. 자금성 뿐만 아니라 고관대작들의 집만 골라 약탈을 일삼다 결국 소림, 무당의 추적대에 잡혀 북진무사에 인계되어 참형에 처해졌다는 자들이 그들이다. 그런 그들이 형산 한 귀퉁이에 아직도 버젓이 살아 있었으니... 그들이 탈옥을 했다는 강호의 소문은 전혀 뜬소문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지. 우리는 삼악오일세." 백의 노인, 백오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적의 노인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물론 적의 노인은 적오고 황의 노인은 황오다. "삼악오에게 함부로 대드는 자를 본 적이 있는가?" "감히 어느 놈이 우리들에게 대들어? 당연히 없지!" "없다!" "그런데 저 계집은 우리들에게 달려들었어. 이상하지 않는가?" "그렇군. 우리는 악명 높은 삼악오인데." "이상하긴 하군." 황오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사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정신나간 자들 답게 허점 투성이었다. 산고는 삼악오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당연히 놀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면 삼악오임을 눈치 챘던 채지 못했던 천양지차(天壤之差)의 실력이 남에도 죽을 줄 모르고 달려드는 산고의 태도는 누구라도 충분히 이상함을 느낄만 했다. "바로 이것일세!" 탁! 백오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쳤다. "저 계집이 누구인 줄 아는가?" 그가 돌연 물었다. 적오와 황오가 맹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주황이 데려온 계집이지." "맞았어. 나쁜 놈이 찾으러 올 테니 그때까지 지키고 있으라고 했잖아. 찾아오는 놈은 때려죽이고." 적오와 황오가 말했다. "맞아! 저 계집은 주황이 보낸 계집이야. 주황이... " 백오도 소리쳤다. 적오와 황오가 백오의 입에서 떨어질 다음 말을 기다리기 위해 귀를 세웠다. 그러나 백오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마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잊었음이 분명했다. "죽이자!" "안돼!" 적오와 황오가 다시 실랑이를 벌였다. 그때였다. 백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런 계집을 본 적이 있어?" "없다!" "없어!" "삼악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계집은?" "더욱 없다!" "해해해! 있다면 바로 저 계집이지." 쾅! 백오가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가 뚝 동강나 부러졌다. "대사(大師)가 보낸 계집이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저런 계집이... " 백오는 비로소 자신의 말을 찾은 모양이었다. 그가 안광을 빛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적오와 황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주... 주황이 보낸 계... 계집이잖아." 적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대사께서 주황을 시켜 보냈어! 저 계집을 보낸 사람은 대사! 주황은 심부름꾼!" 백오가 단정적으로 소리쳤다. "왜 보냈을까?" 황오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잊었나? 대사께서는 항상 우리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악행(惡行)을 저지르는가 않는가? 저 계집은 우리가 잘하고 있는가를 감시하러 왔어!" 꼬리를 잘못 잡은 백오의 착각은 끝이 없었다. " .... " 적오가 수염을 부들부들 떨었다. 황오의 전신은 이미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큰일이다!" 삼악오가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소리쳤다. "아이고!" 적오와 황오가 후다닥 목채를 뛰어나갔다. "잠깐!" 백오가 그들을 잡았다. "눈치 채지 못한 척 행동해야 해! 우리는 저 계집이 대사가 보낸 사람인 줄 모른다고! 알았지!" 그가 은밀하게 말했다. 적오와 황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위무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발길을 멈추었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가을빛을 더해 가는 한적한 산길이었다. 그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계류로 향했다. 계류에 비친 그의 얼굴은 초췌할 대로 초췌했다. 군산을 떠나 이곳 계류에 발을 적시기까지 그는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달리기만 했었다. 위무일은 맑은 물로 입을 적셨다. 그가 얼굴을 씻고 넓적한 바위를 찾았다. 위무일은 바위에 앉아 비룡도를 풀었다. 그가 가을 바람을 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가을의 한적한 정취도 그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 주지 못했다. 단지 유일한 위안은 이럴 때면 언제나 그의 화를 조금이라도 풀어 줄 자가 찾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위무일은 바위에서 일어섰다. 그가 수풀 속을 무심히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사박! 사박! 찾아오는 자들은 위무일이 미행을 눈치챘다는 것을 안 모양이었다. 그들은 당당하게 발걸음 소리를 드러냈다. 세 명!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은 모두 오륙십 대의 노인(老人)들이었다. 살기로 가득한 눈, 냉랭한 인상... 수풀 속에서 나타난 자들은 그들의 표정만으로도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증언해 주고 있었다. "내놓아라!" 박도를 든 뾰족한 턱의 노인이 소리쳤다. 위무일의 입가에 냉랭한 미소가 맺혔다. 군산을 떠날 때부터 위무일은 그들이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찾아올 자들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위무일은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가 철경을 빼 들었다. 미행인(微行人)들의 안색이 변했다. 그들의 눈빛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촤창! 미행인들이 품 자 형으로 포진하며 각자의 병기를 뽑았다. "야효(夜梟).... " 위무일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은 열 손가락에 긴 쇠발톱을 단 초로인에 머물러 있었다. 다른 자들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자만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강호에서 응조공(鷹爪功)을 사용하는 자는 흔하지 않았고 손톱에 쇠발톱을 끼워 사용하는 자는 더욱 흔하지 않았다. 야효! 삼사십 여년 전, 한때 강호를 시끄럽게 하던 녹림(綠林)의 괴수(魁首)! 쇠발톱으로 시신을 갈기갈기 찢는 것을 낙으로 삼아 더욱 흉맹을 떨쳤던 인물이다. 위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부와 강호인들에게 쫓기던 야효가 결국 귀착한 곳은 벽부였다. 철경을 찾는 자들, 벽부의 잔당... 역시 호반영채를 불지른 흉적들은 벽부의 잔당들이 분명한 듯 했다. 그러나 위무일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대답할 자들도 아니었다. 그가 팔짱을 꼈다. 야효를 비롯한 미행인들이 서로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들의 눈빛은 탐욕과 긴장으로 가득했다. 조양인의 비전을 이어받은 위무일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게 찾던 철경이 눈앞에 있었다. 그들이 천천히 위무일을 포위했다. 팟! 먼저 공격을 가한 자는 박도를 든 자였다. 뒤이어 월아산(月牙 )이 날았다. 위무일이 뜀박질하듯 가볍게 뛰며 아버지의 절예 무영각을 날렸다. 발 그림자가 박도와 월아산을 뚫고 바람을 일으켰다. 위무일이 펼치는 무영각은 엽광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버지인 호반영주도 따르지 못할 경지! 하지만 벽부의 잔당들은 역시 벽부의 후예였다. 박도를 든 자와 월아산을 든 자가 천변만화로 몸을 비틀며 위무일을 육박했다. 타당! 탕! 탕! 위무일이 선 바위는 잠깐 사이 칼자국으로 가득했다. "하핫!" 야효가 쇠발톱을 휘두르며 가세하자 위무일은 비로소 팔짱을 풀었다. 파파팟! 그가 연이어 무영각을 펼치며 신형을 솟구쳤다. 쐐액! 위무일이 허공에서 홍운산수를 번뜩였다. 월아산을 든 자가 홍운산수를 피해 다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야효는 위무일을 따라가며 쇠발톱을 번뜩였고 박도를 든 자는 위무일이 신형을 착지할 지점을 미리 점하러 달려갔다. 야효를 비롯한 벽부의 후예들은 홍운산수에도 전혀 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쉬쉭! 쉭! 박도를 든 자가 껑충 몸을 솟구치며 허공을 날아오는 위무일에 맞섰다. 박도가 연검(軟劍)처럼 흔들리며 수십 가닥의 도영을 뿌렸다. 월아산을 든 자는 월아산과 몸을 일 자로 세워 뇌전처럼 쏘아 왔고 야효는 쇠발톱을 암기로 뿌렸다. 파파팟! 위무일의 소매에서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음이 울렸다. 그와 함께 위무일의 손 그림자가 천지를 메웠다. 타닥! 탁! 탁! 위무일이 절묘한 접도술(接刀術)로 월아산과 박도를 쳐냈다. 손등으로 펼친 접도술이었다. 야효가 오른 손을 소매에 재빨리 찔러 쇠발톱을 다시 끼우고 왼손의 쇠발톱을 연이어 뿌리려 할 때였다. 위무일이 신형을 거꾸로 떨어뜨리며 소매를 뿌렸다. 피핑! 핑! 야효를 향해 섬전처럼 날아가는 물체는 그가 뿌린 쇠발톱이었다. 야효가 헛것을 쫓듯 허공에 다급히 두 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야효는 섬전처럼 날아오는 쇠발톱을 모두 막아내지는 못했다. 그가 다급히 이를 깨물었다. 딱! 입 속으로 날아오던 쇠발톱이 그의 이를 동강내며 떨어졌다. "찢어 죽일 놈!" 야효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정작 찢겨 죽을 자는 월아산을 든 자였다. 위무일은 어느 틈에 월아산을 든 자를 바짝 육박해 가고 있었다. 월아산을 든 자는 감히 월아산을 휘두를 생각도 못하고 수비에만 급급했다. 박도를 든 자가 개산열석(開山裂石)의 수법으로 월아산을 든 자를 응원했다. 위무일은 마치 이번의 싸움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했다. 그가 우수로 월아산을 든 자를 공격하며 좌수로 박도에 대응했다. 위무일의 손에서 치솟는 붉은 그림자는 초식을 더해 갈수록 더욱 신바람을 일으켰다. 야효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위무일의 무공이 자신이 모시던 세 명의 소부주(少府主), 조양인의 아들들 이상으로 높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과 두 명의 동료면 충분히 위무일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장담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위무일의 무공은 당시의 소부주가 상대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지. 부주께서는 소부주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으니 무공을 제대로 전수해 주셨을 리 없지.' 야효가 미간을 좁혔다. 문득 야효는 서둘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쫓겨다닌 녹림도의 직감이 빨리 후퇴를 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철경의 유혹이 너무도 컸다. '젠장! 이렇게 된 바에야... 저들은 어차피 죽을 놈들!' 야효의 머리가 재빨리 돌아갔다. 그가 품속을 뒤지며 바람을 등질 자리를 찾았다. 그의 품속에는 한 모금의 호흡으로도 폐부가 녹아 내리는 염백음분(炎魄陰粉)이 들어 있었다. 위기에서 몇 번 목숨을 구해 준 바 있는 고마운 물건이다. 야효가 쇠발톱으로 위무일을 공격하며 자신이 설 자리를 잡았다.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염백음분을 뿌리려 할 때였다. 위무일의 쌍수가 야효를 노렸다. 그는 야효의 행동에서 이미 이상한 점을 읽고 있었다. 녹림도들의 비열한 수법을 한두 번 들은 그가 아니었다. 타타타타탓! 위무일이 산타를 벌이며 야효의 양팔을 후려쳤다. 야효가 쇠발톱으로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가 주르르 밀려나 원래 위무일이 서 있던 바위까지 후퇴했다. 위무일의 공세는 너무도 빨라 박도를 든 자와 월아산을 든 자가 응원할 틈을 주지 못할 정도였다. "허헉!" 야효가 헛신음을 삼켰다. 그의 발은 바위에 막혀 더 이상 후퇴를 못했다. 쉭! 그가 혼신의 힘을 모아 달려드는 위무일의 심장에 쇠발톱을 찔렀다. 위무일이 홍운산수로 쇠발톱을 쳐내며 야효의 팔뚝을 자신의 팔로 휘감았다. 뚜둑! "윽!" 팔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야효가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섬전 같은 빛이 야효의 목줄을 자르며 그의 목에서 피를 솟구치게 했다. 바위에 있던 비룡도가 도신을 드러내며 뿌린 빛이었다. 휙! 위무일은 목에서 피를 콸콸 쏟고 있는 야효를 밀쳤다. 그가 비룡도에 내력을 실었다. 비룡도의 도신이 불에 달군 듯 달아올랐다. 박도와 월아산을 든 자들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홍운행파도법! 부주에게 눈동냥으로 배운 소부주들이 가끔 끙끙대며 펼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 박도와 월아산을 든 자들은 달아나기에도 때가 이미 늦었음을 알아챘다. 그들이 긴장으로 호흡을 삼키며 위무일의 공격에 대비했다. 쐐액! 비룡도가 뇌전처럼 번뜩였다. 박도와 월아산도 기다렸다는 듯이 비룡도에 화답했다. 챙! 챙! 챙! 박도와 월아산은 제법 비룡도에 몇 수 어울리는 듯 했다. 그러나 홍운행파도법에 더해 비룡도의 날카로움... 박도와 월아산은 종내 비룡도를 견뎌 내지 못했다. 쨍캉! 박도가 동강나고 월아산이 날아갔다. "커악!" 뒤이어 월아산을 든 자의 목이 날았다. 박도를 든 자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달아날 때를 놓쳤음을 알고서도 그의 발은 출행랑을 치고 있었다. 위무일이 동강난 박도를 들었다. 쉭! 박도가 바람을 가르며 작자의 등을 쏘아 갔다. "큭!" 작자가 짧은 비명을 삼켰다. 그가 풀밭 속에 풀썩 몸을 눕혔다. 위무일은 원래 자신이 앉았던 바위에 올랐다. 월아산을 사용하던 자의 목에서는 아직도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고 야효의 목에서도 피는 멈추지 않았다. 적들의 피는 비룡도에도 흘렀다. '별 것 아닌 것들이... ' 위무일이 비룡도에 묻은 피를 털었다. '누구도 나를 이길 자는 없다!' 그가 포효했다. 지금 그의 칼은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스윽! 위무일이 비룡도를 칼집에 넣었다. 그가 발걸음을 서둘렀다. * * * 휘-잉! 수룡채에 부는 바람도 소슬한 가을 바람이었다. 담청은 찻잔을 들고 수룡채의 뜰을 거닐었다. 오동나무 잎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오랜만에 찾은 한가(閑暇)! 쌍십절에 대한 준비도 만로방을 칠 준비도 모두 끝낸 상태였다. 그러나 뜰을 거니는 그녀의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위무일! 군산을 훌쩍 떠난 그는 아직도 소식이 없었다. 쌍십절의 일도 만로방의 일도 모두 위무일에게 달려 있었다. 그런데 소식도 없이 훌쩍 사라졌으니... 그녀는 자신이 위무일을 너무 믿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오라버니는 자신의 길을 찾아 갈 것이다.' 끝없는 회의가 그녀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만약 위무일이 제멋대로 자신의 길을 고집한다면 그녀가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결과는 뻔했다. 당장 코앞에 닿은 쌍십절의 준비와 만로방에 대한 공격도 문제가 되겠지만 자신의 아이, 흥악이 총채주가 된 후에도 문제는 생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위무일에게 모든 것을 기댄다는 것은 불안한 행동이었다. '결국 그를 불러야 하나?' 담청은 발걸음을 멈추고 찻잔을 입에 댔다. 그녀에게는 누구도 모르는 우군(友軍)이 있었다. 절대 믿음을 배신하지 않을... '그를 우측에 앉혀 무일, 오라버니의 반란을 대비한다.' 오래 전부터 줄곧 해 온 구상이었다. 담청은 아미를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그렇게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먼저 장강 동도들의 반발! 장강 물길의 사람들은 외인에 대해 엄격하다. 내내 치고 받고 싸우다가도 외인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 한 줄 댓글
0
비회원 · 이 글에 하루 1개만 등록 가능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 비슷한 글
현재 34편 →
35편부터
35편
[무협] 장풍파랑 - 35편 (35/61)
장강 동도들의 반발 없이 자연스럽게 장강에 합류한 자가 있다면 추운객과 단심호 뿐! 그들이 한 식구로 대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수룡왕과의 친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장강에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