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십니다." 마원이 찬탄을 터뜨렸다. 허공에서 재도약을 위해 줄을 밟았을 때도 마원은 줄을 쥔 손에 천화인의 무게를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다. "무일!" 천화인이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만남이 어색하리라 생각했었다. 사실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는 어색함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색함은 일순간이었다. "화인!" 위무일도 손을 내밀었다. "하하하!" "하하!" 그들이 손을 맞부딪히며 웃었다. 천화인이 이렇게 반가운 이유는 무엇인가? 죽마지우의 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호협함! 위무일은 천화인의 해활(海闊)한 마음을 쉽게 느꼈다. "소문을 들었습니다. 혼자서 황사로를 쑥밭으로 만들었다고." 마원이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말했다. "그 일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정말 대단한 사람은 옆에 있지. 나는 파양호의 성과는 두 번 죽다 깨어나도 이루지 못할 것이야. 하하!" 천화인이 짜랑하게 웃었다. "아버님은 정정하신가?" 위무일이 천태림의 안부를 물었다. "선실에 계시네." "그럼 인사를 드려야지." 이번에는 위무일이 줄을 밟고 오르려 했다. "그만두게." 천화인이 말렸다. "지금 심기가 대단히 불편하셔서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으시네." " .... " 위무일은 찔리는 것이 있는지 천태림이 괴로워 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천화인이 어찌 위무일의 마음을 모를까? "내가 황사로를 쳐 없앴기 때문이다." "아니! 황사로를 쑥밭으로 만든 일이 무슨 문제라고?" 마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가릉강, 상강, 진강! 금사강을 제외한 수채들은 사대행회를 상대로 이렇다 할만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어. 그런데 유독 금사강만 난리를 부렸으니... 어버님은 원래 튀어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 아니신가." 천화인이 실소를 흘렸다. 사실 천태림은 그 때문에 천화인을 이만저만 질책한 게 아니었다. 지금은 아예 말도 건네지 않을 정도... 천태림으로서는 화가 날 만도 했다. 사대행회와의 싸움을 요식적으로 하자고 가릉강, 상강, 진강에 약속을 한 터였다. 그런데 그 약속을 천화인이 찰박 깨뜨렸으니... 가장 맹방(盟邦)인 가릉강, 상강, 진강이 금사강을 어떻게 생각할 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자칫 반 총채를 지향하는 대강들과의 묵계까지 금이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천태림의 속 마음은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천화인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결심을 밀고 가기로 결정한 터! 그리고... 그의 앞에 서 있는 위무일이라는 친구는 그 결심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 생각 않기로 했다. "그래도 계시다는 것을 아는데 내가 어찌... " 위무일이 주춤거렸다. "그만 됐네! 총채에서 인사를 해도 늦지 않아. 아이구! 이게 뭔가?" 천화인이 갑판에 놓인 술과 안주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때 맞추어 왔군." 그가 좋아라 하며 금사강의 유선을 향해 손을 들었다. "황 당주!" 천화인이 외당당주 황평을 불렀다. 황평이 굳은 표정으로 뱃전에 섰다. 그의 안색이 굳어 있는 이유는 물론 위무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황 당주, 지성(枝城)에서 합류하겠소. 먼저 가시오! 이 배를 타고 따라 가겠오!" 천화인이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황평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가 수하들에게 돛을 올리도록 했다. 금사강의 유선이 이물을 꿈틀대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금사강의 배가 민강의 배를 앞서 나아갔다. "마원, 객을 불러놓고 이대로 세워 둘 참인가?" 천화인이 웃으며 말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요 당주! 술과 안주를 새로 부탁하오!" 마원이 소리쳤다. 그는 위무일과 천화인을 자리에 앉게 했다. "현문의 제자들은 술과 음식을 가린다고 하던데... " 마원이 천화인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내가 무슨 도문(道門)의 제자라고... 괜찮아. 마원, 잔이 넘치게 부어라. 무일, 자네를 만나는 것이 몇 년만인가?" "손가락으로 셀 수 있겠나?" 위무일은 제법 농담도 했다. "하하하!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면 당연히 나도 헤아리지 못하지. 어쨌든 오랜만이야." 천화인이 주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쨍! 위무일이 건배를 했다. 그들이 예전처럼 팔을 엇갈리게 걸고 술을 들이켰다. "옛날부터 형님들의 우정이 부러웠습니다. 제 또래라고는 한수의 이만이 고작 아닙니까? 하지만 이만 조차도 성격이 너무 다르니..." 마원이 부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익은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천화인이 위무일에게 물었다. "그렇군요. 생각해 보니 근자에 담 대주의 소식을 도통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원도 담익의 안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도 소식을 들은 바가 없다. 여행을 떠났다고 하던데... " "이 바쁜 시기에? 팔자가 늘어졌군요." 마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익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아. 자네도 들은 바는 있겠지?" "전혀... " 위무일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오기 전까지 반 술 미치광이로 지냈다고 하더군. 그리고 이제는 종적까지 감추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원래 그런 친구가 아닌데." "생각하니 이상한 일이군." 위무일이 잔을 들었다. 무슨 그렇게 바쁜 일이 있었는지 그의 생각은 친구인 담익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접고 있었다. "곧 만로방과의 일전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돌아오겠지요. 마타룡, 곤룡, 옥룡! 장강의 세 마리 용들이 전후로 날뛰는데 주황이 어찌 그 힘을 당해내겠습니까?" 마원이 기세좋게 소리쳤다. "주황의 목은 내가 가져가야겠네." 천화인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건 안되네. 금사강도 많은 수하들을 잃었겠지. 하지만 나는 더해서 아버님까지 잃었네." 위무일은 실소를 흘렸다. "아! 미안하네. 내가 깜빡했었군." 천화인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위무일은 말을 돌렸다. "자네가 청성파에 입문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나는 머리라도 깎을 생각이었지." "무슨 말인가?" "장강의 무공으로 어찌 세외선경(世外仙境)의 무공을 이기겠나? 청성파의 무공과 겨루려면 천상 소림에 입문할 도리밖에..." "어릴 때 자네는 항상 나를 이겼잖는가? 한 번 져 주면 어때서. 욕심 많은 친구 같으니라고. 쯔쯔... 아! 자네는 조양인의 무공을 익혔다면서?" "하하하! 철경이라도 있었으니 머리를 깎지 않았지." "젠장! 조양인만 아니었으면 나는 친구 덕에 극락(極樂)에 가는 것인데... 자네가 중이 되었다면 친구의 악업(惡業)을 빌어줬을 것 아닌가?" "정말 그렇군요." 마원도 가세했다.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 하니 나는 천상 중이 되어야겠군." 위무일이 주발에 술을 가득 부었다. 그가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생각하니 변황을 떠돌아 다니는 것보다 중이 되는 것이 나을 듯도 했다. "중이 될 때 되더라도 혼인은 하셔야지요. 대가 끊기는 것을 고모부와 고모님이 슬퍼 하실 것입니다." 마원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 화인, 자네는 찍어 둔 여자가 있는가?" 위무일이 문득 물었다. "혼담이 오고 가는 모양인데... 가릉강 도 채주의 딸일세. 자네도 예전에 악양루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을 게야." "마음에 들던가?" "그 여자가 그렇게 모난 성격이라는 것은 듣지 못했다. 마음이야 살아가며 맞추면 되고... " "그럼 지금 마음에 들어 혼인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 하지 않았나. 나도 본 적이 몇 번 없다고. 사랑이야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살아가며 키워가는 것이 더 멋지지. 한 때의 불 같은 사랑은 노류장화에게도 느낄 수 있는 게고." "부럽군." 위무일이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들이 주발을 주고받으며 술을 비워갈 때였다. "자! 자!" 외당당주가 수하들의 양 손에 술과 안주를 들린 채 다가왔다. "목살입니다." 그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돼지고기를 또 한 덩이 내려놓았다. "민강의 돼지는 특별히 맛있는 모양이야." 천화인이 그 자리에서 단도로 돼지고기를 한 점 베어 물었다. "사람이 키운 돼지가 아니라 산이 키운 돼지입니다." 외당당주가 씩, 웃으며 말했다. "멋진 말이군. 자! 다시 시작해 보세." 천화인이 각 자의 잔에 술을 붓고 자신의 잔을 들었다. 마원의 얼굴은 이미 붉었고 위무일도 적지 않은 술을 마신 터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랜만의 강상 주연에 흥이 나 서로 권하는 술을 마다 않았다. 옥로주상풍수림(玉露 傷楓樹林) 무산무협기소삼(巫山巫峽氣蕭森) 강간파랑겸천용(江間波浪兼天湧) 새상풍운접지음(塞上風雲接地陰) ........... - 옥 같은 이슬이 단풍 숲을 시들게 하고 상하게 하느니 무산과 무협 근방에는 가을 기척이 고요하고 쓸쓸히 감돈다. 무협을 흐르는 장강 출렁이는 물결은 하늘도 찌를 듯 하고 요새 부근의 풍운은 땅에 닿을 듯 드리워 주위가 캄캄하다. ............. 대체로 무사들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시가를 읊조리기를 싫어했다. 왠지 경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어찌 풍류를 모르랴? 술 기운을 빌려 마원은 두보(杜甫)의 추흥(秋興)으로 추흥을 돋구었다. 그는 잔을 들며 몇 번이나 '화인, 형님이 총채주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라고 외쳤다. 그 때마다 천화인과 위무일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면 역시 마원은 술에 취했음이 분명했다. 위무일은 외당당주를 불렀다. 그는 외당당주로 하여금 마원을 자리에 눕히도록 했다. 마원은 술을 더 마시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결국 자신이 술에 취했음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마원이 외당당주를 따라 선실로 들어갔다. 위무일과 천화인은 마주보고 묵묵히 술잔만 비웠다. 침묵 속에 주고받는 술맛의 유별남을 아는 그들이었다. 장강의 물빛은 어느 틈에 붉은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장강의 낙조(落照)! 그들은 술잔을 들고 붉게 타는 산하에 넋을 뺐다. 어느 순간, 천화인이 입을 열었다. "무일!" 위무일이 천화인을 바라보았다. 천화인의 시선은 먼산 그대로였다. "무일, 나는.... " 천화인은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툭! 툭! 툭! 위무일은 술잔으로 현측판을 쳤다. 그는 천화인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청성산을 내려오며 꾸었을 꿈, 총채주의 꿈! 위무일은 술기운에 자칫 '알았다.'라고 말할 뻔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부유를 알기에 친구가 원하는 답을 들려줄 수 없었다. 한 줄기 가는 바람에도 뒤바뀌는 자신의 마음이었다. 오늘의 일도 예측하기 힘든 사정인데 내일 일까지 장담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화인!" 이번에는 위무일이 천화인을 불렀다. 천화인은 비로소 위무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는 좋은 친구일세.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 장점을 자네는 가지고 있지." 쨍! 그가 천화인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 지금 위무일이 천화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지강(枝江)에서 성릉기(城陵磯)까지 이어지는 장강의 물길이 형강이다. 구곡회장(九曲回腸) 형강! 물살이 느려 흙, 모래의 퇴적이 심해 걸핏하면 홍수가 나는 곳. 그래서 만리 장강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바로 형강이다. 두 척의 배는 형강으로 들어가지 전에 지성에서 나란히 포구(浦口)에 닻을 내렸다. 물과 먹을 것을 싣기 위해서였다. 물길에서 사는 자들도 물보다는 역시 땅이 좋은 모양이었다. 수하들은 배를 지킬 몇 명만 남기고 우르르 뭍으로 내렸다. 천태림은 선실에서 꼼짝을 않았다. 그는 별반 즐기지 않는 차만 마셨다. 지성에 배를 대는 순간, 아들의 친구가 인사 차 왔었다. 마타룡! 마타룡은 생각보다 온순했다. 속마음이 어떤지 모르지만 그를 대하는 마타룡의 태도는 아주 정중했다. 천태림도 마타룡을 아들의 친구로 반갑게 대하려 했다. 그러나 금사강의 사람들은 자신을 포함 안면 근육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자가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천태림은 가릉강의 도 채주가 부러웠다. 결국 천태림은 냉담한 표정으로 아들의 친구를 보내고 말았다. 생각하니 마타룡은 그가 존경하던 호반영주 단심호의 아들이다. 그리고 아들의 친구... 그런데 천태림은 지금 그 아이를 죽이려는 계획을 밀고 나가고 있었다. 너무도 대비가 되었다. 아들인 천화인과 마타룡은 작금 장강 권력쟁투(權力爭鬪)의 핵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벌어지는 권력 싸움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두 아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우정과 싸움은 별개로 생각하는지... 지는 한 쪽은 깨끗이 물러날 준비도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보기 좋은 모습이다. 하지만 자신은 아들의 친구를 죽여서까지 아들을 총채주에 앉힐 야심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늙은이들은 추잡한 권력욕이 지금 장강을 어지럽히고 있는 이유인가?' 천태림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과정보다 결말이다. 이길 수 없다면 쟁투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조건 이겨야 했다. 천태림은 찻잔을 들고 생각했다. '차이가 있다면 저 아이들은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나는 결말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 뿐! 젊은 것들이야 잘못된 결말을 나이로 보상 받을 수 있지만 우리 늙은이들이야 무엇으로 보상 받는 단 말인가?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다.'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위무일도 배에서 내리기는 싫었다. 그러나 마원이 하도 설쳐 그는 결국 천화인과 함께 기성의 저자를 걷고 있었다. 주루에서 요기도 하고 술도 한 잔 한 후였다. 그들은 다시 나루터로 걸어왔다. "자네는 바로 군산으로 가겠지?" 천화인이 물었다. "자네는 어디 갈 곳이 있는 모양이군." "강릉에서 도 채주를 만나기로 했다." 위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쌍십절을 앞둔 터라 대강들이 자주 회맹을 할 것은 뻔했다. 그런데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도 채주의 딸과 혼담이 오간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 소저를 이번에 강릉에서 보기로 했네." 천화인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가? 잘됐군." 위무일이 미소를 지었다. "일이 잘 풀린다면 내가 총채까지 데려가 소개를 시켜주지." 천화인이 위무일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위무일은 고개를 저었다. "쌍십절에 나를 보지 못할 것일세." "왜? 무슨 일이 있는가?" 천화인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쌍십절의 회맹은 춘절 만회의 전야제(前夜祭)와 같다. 심중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백흥악을 총채주에 앉히려는 위무일의 입장에서는 쌍십절의 회맹에 반드시 참가해야 했다. 그 진영(陣營)의 중심 축은 위무일이었으므로... "집사당주 하빈이 영채를 새로 짓는다고 했었는데 다 지어졌는지 모르겠군. 어쨌든 영채에 있을 것이네. " " .... " 천화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도저히 위무일의 심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위무일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무슨 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갔다. "주황과 일전을 벌일 때 보도록 하지." 위무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유를 물어볼 수 없음이 천화인의 처지였다. 그가 갑갑한 심중을 감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보세." "그렇게 하지." 위무일과 천화인이 손을 들었다. "형님, 총채에서 뵙겠습니다." 마원도 천화인에게 포권을 했다. 그들이 각자의 배로 향할 때였다. "소채주!" 누군가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숨을 헐떡이며 천화인의 앞에 서는 자는 금사강의 외당당주 황평이었다. 그는 볼에 커다란 검은 점이 박힌 사내를 동행하고 있었다. 안면이 없는 자였다. "어디를 갔었습니까? 급히 찾았습니다." 황평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무슨 일이오?" "우선 이 자의 말을 먼저 들어보십시오. 한수 내당 소속의 향주입니다." 황평이 얼굴에 점이 있는 자를 가리켰다. "한수 내당당주 휘하 제 삼향주(三香主) 모영화(毛榮華)라고 합니다." 얼굴에 점이 박힌 자가 머리를 꾸벅 숙였다. "천 공자님과 위 공자님을 찾기 위해 한수의 전 동도가 나섰습니다. 이곳에서 이제야 천 공자님을 만나게 되었군요." 모영화라는 자가 재빠르게 말했다. "무일, 형님까지 찾았다고?" 배에 오르려다 갑자기 나타난 사내에 관심을 보이고 있던 마원이 소리쳤다. "들으셨습니까? 원강, 예수, 신강, 수강... 모두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모영화라는 자가 초조한 안색으로 말했다. 강호의 소문도 삼협은 쉽게 거슬러 오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천화인은 고개를 저었다. 전혀 금시초문이 이야기였다. "동정호계에서 파양호계로, 파양호계에서 동정호계로... 어쩌면 그놈들은 이번에는 상강을 치고 총채까지 밀려올지 모릅니다. 지금 상강의 분타들이 불타고 있다는 급전이 각지로 날고 있습니다." 모영화라는 자가 침을 삼키며 조잘댔다. "무슨 소리오?" 천화인이 안색을 찌푸린 채 황평을 바라보았다. 황평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기랑대! 아니 삼악오라면 혹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놈들이 나타났습니다!" 모영화라는 자가 소리쳤다. "삼악오!" 천화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님, 삼악오라는 자가 누구입니까? 원강, 예수, 신강, 수강을 박살낼 정도면 예사 놈들이 아닐텐데." 마원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음... " 천화인은 신음을 흘렸다. 삼악오! 조양인, 생사무영필과 더불어 백 년 내 현문의 무공과도 견줄만하다던 사파의 고수... 천화인은 청성산에서 들었던 사부의 말을 쉽게 기억해 냈다. "천 공자, 도와주십시오! 우리 채주께서 천 공자를 찾으라고 한 이유는 놈들에게 우리 소채주가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모영화라는 자가 울상을 지으며 매달렸다. "이만이 놈들에게 잡혔다고? 이만은 만로방에 잡혀가지 않았느냐?" 마원이 다가서며 물었다. "전후 사정은 저도 잘 모릅니다. 어떻게 해서 우리 소채주가 놈들의 수중에 들어갔는지... 채주께서 소채주를 구하러 가셨으나 놈들의 실력은 이미 사람이 실력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채주는 우리들에게 천 공자님과 위 공자님을 찾아라고 했습니다. 장강에서 놈들을 상대할 만한 분은 두 공자님들밖에 더 있겠습니까? 추운객 어른은 종적을 찾을 수도 없고... " "한수의 이 채주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마원의 얼굴은 놀람에 놀람을 거듭했다. 한수의 채주, 이민은 아버지와 금사강의 천 채주를 제외하고는 십팔 물길의 채주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다. 그런데 그가 당했다고 하니... 천화인은 미간을 좁혔다. 상대도 상대 나름! 이민이 패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무일!" 천화인이 뱃전을 오르는 위무일을 불렀다. "무슨 일인가?" 위무일이 등을 돌리고 천화인을 마주보았다. "삼악오라는 자들을 아는가?" "들어 본 적이 없네." "그자들이 지금 각 수채에 난입,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나 혼자로는 그들의 상대로 부족하다!" 천화인이 소리쳤다. " .... " 위무일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당금 강호에 천화인이 두려워 하는 자가 있다니... 그가 뱃전을 내려왔다. "누구인가?" "오십 여년 전의 사파 고수! 그들을 잡기 위해 소림, 무당까지 동원 되었었네." "그런가?" 위무일의 무심한 눈빛에 한줄기 빛이 번뜩였다. 무당, 소림까지 동원 되었을 정도면 엄청난 고수! 호승지심이 발동되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천화인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천화인의 얼굴에도 흥분된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껏 벌인 만로방과의 싸움이야 우르르 떼거지로 몰려가 떼거리로 벌인 싸움 뿐! 칼 끝에 앉은 먼지 하나까지 신경을 쓸 정도로 심력을 기울이며 싸워야 할 적들은 아니었다. "같이 가겠나?" "물론!" 위무일이 호쾌하게 소리쳤다. "황 당주, 아버님께서 총채에서 뵙겠다고 전해주시오." "그렇게 강한 고수라면 위험합니다. 채주께 승인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강릉에서 기다리고 있는 도 채주의 딸은 어떻게 하려고... " "사정을 말씀해 주시오!" 천화인이 황평의 말을 잘랐다. "가세!" 휙! 천화인이 신형을 날렸다. 위무일은 마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만로방과의 일전에서 보도록 하자." 그도 마원과 작별을 고한 후, 천화인을 따라 신형을 날렸다. 그들이 준마(駿馬)처럼 치달으며 잠깐 사이에 까만 점으로 사라졌다. 제 22 장. 상강풍파(湘江風波). 쾅! 쾅! 쾅! 자욱한 먼지와 함께 수채의 담장이 일시에 날아갔다. 콰직! 현판과 정문도 산산이 조각 난 채 허공을 날았다. 돌담과 나무의 파편들이 빗줄기 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상강의 채주, 담웅은 주저하지 않았다. "쏴라!" 그가 흙먼지 속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핑! 핑! 핑! 쇠뇌가 어지럽게 날고 겸도가 춤을 추었다. 쏟아지는 쇠뇌와 겸도, 투삭은 산이라도 평지를 만들 듯했다. 오늘의 일전을 위해 분타의 지원 요구도 모른 척 했었다. 웅! 웅! 웅! 소매에서는 이는 바람 소리가 날카로운 쇠뇌의 파공음에 맞섰다. 삼악오는 두 손을 맹렬하게 휘두르며 벌떼처럼 쏟아지는 쇠뇌와 겸도를 막아냈다. 산고는 삼악오의 뒤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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