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장풍파랑 - 56편 (56/61)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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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장풍파랑 - 56편 (5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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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느낌은 있었을 것 아닌가?" "주황보다는 강해 보이더군.
그리고 기파(氣波)가 왠지…… 나와 아주 유사한 느낌이었어." "그 정도로 강한가? 나는 그저 해손왕을 바다의 수괴 중 철중쟁쟁(鐵中錚錚)으로 알았다." 천화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해손왕에 대해 신경이 많이 쓰이는 모양이군." 위무일이 천화인을 바라보며 미소를 흘렸다. "당연한 일이겠지.
주황이 사라지면 앞으로 자네가 가장 신경 써서 다루어야 할 자가 저자이니." 그가 성큼 천화인을 앞서 나갔다.
천화인은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앞으로 자네가 가장 신경 써서 다루어야 할 자……'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천화인은 모르지 않았다.
장강을 맡기겠다는 뜻! 심증으로 느끼고는 있었으나 귀로 듣기는 처음이었다.
천화인은 턱을 매만졌다.
왠지 어깨가 무거웠다.
위무일은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 것인가.
얼만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있어 담청은 전부였다.
그러나 파양호의 일 이후, 그의 마음은 삐걱거렸다.
잠시 시선이 산고에게 간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틈이 생겼다.
그 틈에 몇 줄기 풍파가 부딪치가 간격을 메울 수 없이 벌어져만 갔다.
그리고 이제는 결별!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심영은 한 여자를 미친 듯이 사랑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사랑이 어떤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 그는 아버지를 통해 사랑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해륭도에 그 여자가 도착하고 나서였다.
우수와 피곤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 여자는 아버지가 충분히 빠져들 만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여자는 해륭도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아버지는 그 여자와 많은 시간을 같이했다.
일 때문이라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낼 리 없었다.
오랜 고독…… 아버지는 그 여자를 만남으로써 고독을 잊은 듯했다.
당연한 일이다.
남자는 연륜이 쌓일수록 더욱 멋있어 보이는 법이다.
그사이 여자가 떠날 때가 가까워져 왔다.
아버지는 초조해 했다.
그 여자도 눈가에 아쉬움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의 밤이었다.
심영은 우연히 사자 바위 아래에서 이별을 아쉬워하는 그들을 보게되었다.
아버지와 그 여자의 밀회는 얼마나 뜨거웠는지 아버지는 그의 존재를 느끼고서도 여자의 몸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수로연맹의 무사들이 모두 떠나고 해륭도의 무사들도 떠났다.
심영은 잠시 파랑으로 일렁이던 산길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도 세 자루의 칼이 어떻게 얽히는 가는 바위 틈에 숨어 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자전도도 무색하게 만드는 마타룡의 신위! 상노의 말을 맞았다.
철경의 무공은 절대 경시할 수 없다고…… 더 경시할 수 없는 것이,마타룡은 그 철경의 무공을 곁가지로만 익힌 것이 아니었다.
준비를 다시 해야 했다.
심영은 무사들이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등을 돌렸다.
그가 산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 * * '이런 야만족(野蠻族)들! 이런 놈들과 무슨 할말이 있다고……' 하빈은 얼굴을 찌푸렸다.
술 한잔 권하는 자 없었고 어디 앉으라는 자도 없었다.
저희들끼리 두런두런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일 뿐…… 하빈은 입담도 좋고 사귐성도 좋았다.
그러나 해륭도 놈들에게는 도통 정이 가지 않았다.
해륭도의 무사들도 하빈을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마타룡에 의한 삼십육 타수의 무참한 패배! 자존심이 무척 상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하빈은 한편으로는 마타룡에게 감사한 마음이었다.
이제 완전 길을 달리한 그였지만…… 외인을 초빙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 하빈은 무조건 태부인의 뜻에 추종했다.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의 운명이 태부인과 같이하라는 것은 이미 수채의 동도들이 인정하는 바였다.
주숙예 등은 어떻게 생각하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사면초가에 빠진 총채를 위기에서 건질 방법이 있다면 외인이 아니라 주황과 손을 잡을 방법이라도 강구했을 것이다.
천화인이 총채주가 된다는 것은 그가 장강을 떠나야 한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손왕을 초빙하는 데 찬성했고 지금 해손왕을 만나기 위해 태부인과 이곳에 와 있었다.
그러나 해륭도 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빈은 고개를 들었다.
사오 장여 앞에는 두터운 장막으로 가려진 천막이 있었다.
천막 주위로는 해륭도의 무사들이 촘촘히 늘어서 접근을 불허했다.
그 천막 안에는 태부인과 해손왕이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두터운 천막 안으로 가끔 어른거리는 불빛만 보일 뿐이었다.
하빈은 하늘을 우러렀다.
그는 문득 추위를 느꼈다.
시린 겨울밤을 차가운 별빛이 더욱 시리게 했다. '해야 할 말이 무에 그리 많다고……' 달은 중천에 치솟고 태부인과 해손왕의 밀담은 벌써 한 시진을 넘기고 있었다.
용연향(龍涎香)이 가늘게 타오르며 천막 안의 은근한 분위기를 더했다.
해손왕은 침상에 누워 황촉불에 일렁이는 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류요 같은 허리, 그 아래로 도톰하게 펼쳐진 둔덕…… 황촉불 아래 등을 돌리고 앉은 여인은 담청이었다.
해손왕은 그녀와 한 시진 넘게 질펀한 정사를 나눈 후였다.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수하들을 끌고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청은 대담했다.
그녀는 수하를 지척에 두고 몸을 맡겨 왔다.
해륭도 사자 바위 아래에서의 격렬했던 정사 이후, 해손왕은 손꼽아 이날을 기다렸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담청은 미친 듯이 안겨 왔고 해손왕도 가두어 두었던 정염(情炎)을 마음껏 풀어헤쳤다.
어지러운 침상은 그들의 격렬했던 정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흠……" 해손왕은 마른침을 삼켰다.
입 안에 맴도는 향기는 역시 담청의 것이었다.
담청은 해손왕을 등진 채 무엇인가를 몸에 바르고 있었다.
향화분(香花粉)이었다.
무사들의 코는 유별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는 해손왕의 체향을 향화분으로 지우고 있었다. "왕야……" 담청은 해손왕을 불렀다.
해손왕이 침상을 차고 일어났다.
해풍(海風)에 그을린 그의 몸은 검붉었다.
나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단한 체구였다. "등에 좀 발라 주세요.
손이 미치지 않아요." 담청이 해손왕에게 향화분을 내밀었다.
해손왕은 실소를 흘렸다.
천하를 오시하다 못해 해륭도에 몸을 숨긴 그가 한낱 여자의 등에 향화분을 발라 주는 처지가 되다니…… 그러나 그는 그것이 즐거웠다.
해손왕은 담청의 등에 향화분을 천천히 발랐다.
얼음처럼 매끄러운 담청의 살결…… 해손왕은 다시 정염이 치솟았다.
그의 손이 담청의 겨드랑이 사이를 헤치며 젖가슴에 이르렀다. "그만 하세요." 담청이 머리를 틀어 올리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는 모양이었다. "흠!" 해손왕은 헛기침을 하며 담청의 젖가슴에서 손을 뗐다. "제가 한 말을 잊지는 않았겠지요?" 담청이 물었다. "……" 해손왕은 이마를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끌어안고 침상에 누웠을 때 담청이 한 몇 마디 말을 그는 기억해 냈다. "그 일이 전부냐?" "그래요.
이후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해륭도에서 기다리세요." "또 기다려야 한단 말이냐?" 해손왕은 미간을 좁혔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알았다." 해손왕이 맥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담청은 머리를 틀고 내고를 걸쳤다. "그 일은 그 일이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자니 영 체면이 서지 않는구나." 해손왕도 옷가지를 찾으며 말했다. "저를 만나고도 보상이 되지 않던가요?" 담청이 살짝 미소를 흘렸다. "껄껄걸!" 해손왕은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담청은 속옷과 배자를 걸치고 마지막으로 칼을 찼다.
그녀가 몸을 한 바퀴 돌며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그럼……" 담청은 해손왕에게 사뿐히 머리를 숙였다. "주황은 예사로운 놈이 아니다.
조심하라." 해손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담청을 보내는 그의 눈빛이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제 28 장.
북풍취안(北風吹雁).
히히힝! 말들이 투레질을 하며 거세게 발을 찼다.
이세명은 철기대를 나란히 정렬했다.
망루에 적의 출현을 알리는 깃발이 올라간 바로 그 순간이었다. "길게도 기다리게 하더니…… 여 기주, 이번에는 내가 선두를 맡겠다!" 이세명이 소리쳤다.
오장하의 강가를 따라 한 떼의 무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물어 보나마나 수로연맹 무사들이었다. "마음대로……" 여맹이 칼잡이를 툭 치며 어깨를 으쓱였다. "방주께는 연락이 갔는가?" 그가 물었다. "서문 총사가 연락을 했겠지.
그런데…… 놈들의 위세가 제법이군." 이세명이 말했다. "핫하하! 자네가 적의 위세를 다 말하다니…… 마타룡이 있기 때문인가?" 여맹이 눈웃음을 치며 물었다. "맞았어! 저기 뒤에서 걸어오는군.
표정도 늠름하시지." 위무일을 바라보며 이세명은 흉광을 쏟았다.
그가 말고삐를 휙 챘다.
서문중은 주황을 초조히 기다렸다.
비장의 무기를 한두 가지쯤은 감추고 있었을 줄 알았는데 적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방주가 내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관부의 압력도.
방주가 몸담았던 흑사회의 지원도…… '좋지 않다.' 서문중의 안색이 흐려졌다.
냉철하게 따져 만로방이 수로연맹에 대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방주는 아무런 지원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대행회를 부르지 않은 까닭을 서문중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이러저러한 생각을 해서 무엇 하랴! 서문중은 자세를 가다듬었다.
덜컹! 방문이 열렸다.
방주는 금포(錦袍)에 쌍백도를 차고 있었다.
좀체 치장을 좋아하지 않는 방주다.
특히 싸움을 앞두고는…… 서문중은 방주의 화려한 치장도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적들은 지금 강가에 정렬해 있습니다." 그가 신발을 신는 주황에게 말했다.
주황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작은 체구를 당당히 세우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 이르렀을 때쯤 주황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서문중!" 그가 서문중을 손짓으로 가까이 오게 했다.
서문중이 허리를 숙인 채 주황의 곁에 섰다. "내가 너에게 마지막 명을 내릴 것이다." "마지막 명이라니요?" "이번의 명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명을 지키지 못할 경우 나를 볼 생각 말아라!" 주황이 카랑카랑하게 소리쳤다.
각 수채들은 금사강을 중앙에 두고 반원형으로 포진해 있었다.
후미에 뚝 떨어져 있는 무사들은 총채의 무사들이었다.
싸움을 앞두고 각 채주들은 자연히 천태림과 천화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바로 들이칠 생각이오?" 도연오가 염려스러운 얼굴로 천태림에게 물었다.
만로방의 무사들은 담장을 끼고 쭉 도열해 있었다.
화살에는 신화전이 먹여져 있었고 노도 예사롭지 않았다.
활짝 열린 대문에는 철기(鐵騎)들이 당장 뛰쳐 나올 자세로 서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오." 천태림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긴 쪽도 상당한 피해를 입으리라는 것은 이미 각오한 터였다. "그럼 별 방법이 없는 듯하니…… 각자 맡아야 할 곳을 정해 봅시다." 한수의 채주 이민이 느릿하게 말했다.
천태림은 담청을 바라보았다.
담청은 시선을 먼 산으로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우리는 배후에서 지원해 갈 테니 싸움은 각 수채들이 알아서 하라는 뜻이 분명했다.
천태림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우리 금사강이 정문을 맡아 나가겟소.
한수와 진강은 우측, 가릉강과 민강은 좌측을 맡아 주시오." 그가 만로방을 노려보며 말했다.
각 채주들이 긴 호흡으로 일전의 결의를 다지며 수하들을 향해 돌아갈 때였다. "아버님!" 팔짱을 끼고 묵묵히 있던 천화인이 천태림을 불렀다.
천화인이 입을 열자 채주들도 발걸음을 멈추었다. "날랜 자들 몇 명만 가려 주십시오.
제가 먼저 나아가 놈들을 흔들어 놓겠습니다." "주황은 무시할 자가 아니다.
황사로의 두억이라는 놈과는 천양지차다!" 아들의 안위를 걱정한 천태림이 천화인의 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무일도 있지 않습니까?" 천화인이 손가락을 들어 위무일을 가리켰다.
대열 사이에 서 있던 위무일은 어느 틈에 만로방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방법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듯하니 좌우 쌍룡에게 선전(善戰)을 당부해 봅시다.
나도 화인에게 날렵한 놈 몇을 붙여 주겠소." 도연오가 말했다.
다른 채주들도 묵묵한 표정으로 동감을 표했다. "쯧…… 그렇게 하기로 하지요." 천태림이 쓴맛을 다시며 말했다.
총채주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위험은 감수해야 했다.
각 채주들이 바쁘게 자신들의 수하들을 향해 돌아갔다.
천태림은 황평을 비롯한 몇몇 날렵한 수하들을 천화인에게 붙여 주었다.
천화인은 그들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만로방도들을 오시하는 위무일에게 다가갔다. "의외군." 다가서는 천화인에게 위무일이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주황은 자신의 제보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어.
이번 싸움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야.
우리는 건곤일척의 승부라고 모두 떠들어댔는데…… 주황을 도와 주러 온 놈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은자를 뿌려댔더라면 흑사회 정도는 끌어들일 수 있었을 텐데." "그렇군." 천화인이 만로방을 굽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각 수채의 정예들이 날렵하게 위무일과 천화인의 뒤에 도열했다.
사오십 명은 되어 보였다. "어디서부터 손을 봐줄까?" 천화인이 물었다. "철기대의 기세가 가장 등등하군.
저놈들부터 박살을 내야 할 것 같군." 위무일은 장도(長刀)를 풀었다.
비룡도를 버린 후 마원이 구해 준 칼이었다. "알겠어." 천화인은 손을 들었다. "첫 목표는 철기대다!" 그가 손을 좌우로 흔들어 촘촘히 서 있는 무사들의 간격을 넓히며 소리쳤다.
위무일은 마치 산책을 하는 듯한 느린 걸음으로 만로방을 향해 걸어갔다.
천화인이 뒤따르고 각 수채의 정예들은 간격을 넓히며 그의 뒤를 따랐다.
타타타타탁! 만로방의 무사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노에 쇠뇌를 장치하는 소리, 흥분한 말들의 울음…… 적막하던 오장하의 강변이 삽시간에 어수선해졌다.
위무일은 칼을 뽑아 들었다.
그는 이세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세명도 흉광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가 쌍창을 치켜 들고 말고삐를 거세게 잡았다.
여맹도 어느 틈에 담장에 올라서 있었다.
만로방 수하들의 시선은 모두 여맹의 손끝으로 모아졌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여맹의 손끝이 까딱 움직였다.
그때였다.
여맹이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정문에 도열해 있던 철기대가 길을 열었다.
금포에 쌍백도를 걸친 왜소한 노인…… 서문중과 함께 정문에 모습을 드러낸 자는 주황이었다.
수로연맹의 무사들은 긴장감에 본능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황은 위무일을 바라보며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위무일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서문중과 여맹, 이세명이 황급히 그를 따랐다.
주황은 손짓으로 여맹과 이세명을 물러나게 했다.
여맹과 이세명은 주춤거리며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황이 미간을 좁히며 노한 표정을 짓자 비로소 그들은 뒷걸음질을 쳤다.
주황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거느린 자는 서문중뿐이었다. "화인, 수하들을 물리게." 위무일이 주황을 무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천화인은 손을 저었다.
수로연맹의 정예들이 우르르 물러났다.
주황은 위무일과 반 장여를 마주보고 섰다. "오랜만이군." 그가 옅은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 위무일은 무심한 눈빛만 빛냈다. "칼로 이야기하면 됐지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으냐고? 껄껄껄! 너야 그렇지만 나는 아니다.
나의 등뒤에는 만로방의 숱한 식솔들이 있지." 주황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쌍백도를 매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일전에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을 것이다.
네 아버지를 죽인 것은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 아니라고…… 수로연맹과 싸운 것도……" "그러나 결과는 당신이 본 바와 같소.
장강의 물은 당신이 흘리게 한 피로 아직도 붉소." 천화인이 냉랭하게 말했다. "결과를 비켜 가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쓸데없는 감정으로 오장하의 물을 핏빛으로 물들이기 싫어 하는 말이지.
수로연맹도 좋을 것이다.
싸우지 않는다면…… 서로의 피는 그 이전으로 충분히 족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젊은이?" "교활한…… 만로방의 힘이 넘칠 때 그 같은 말을 들었다면 한번쯤 생각할 여지라도 있었을 것이다." 천화인은 코웃음을 쳤다. "수로만으로 상로를 열 수는 없다.
육로와의 연결을 원한다면 어차피 우리 만로방이 필요하지.
원하지 않는가? 우리 만로방의 능력을……"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천화인은 한광을 쏟으며 소리쳤다. "마타룡…… 이전의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내가 책임지겠다.
그리고 이후의 일은 모두 너에게 맡긴다.
만로방을 해체시키든 아니면 남기든…… 나는 남겨 두는 것이 만로방과 수로연맹 모두를 위해 득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무슨 소리입니까, 방주?" 이번에는 서문중이 소리쳤다. "마타룡에게 만로방의 전권(全權)을 맡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명이다.
서문중!" "……" 서문중은 입을 딱 벌렸다.
방주의 마지막 명이 이런 것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적에게 만로방을 송두리째 넘기다니…… "서문중, 너는 머리가 잘 돌아가니 이번 싸움의 결과를 잘 알 것이다.
수하들의 시신 위에 패배의 쓰라림까지 남긴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지." 주황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서문중, 가라! 여맹과 이세명이란 놈은 모두 미련한 놈들이라 내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 그들에게 내 뜻을 전하라!" 팟! 주황이 쌍백도를 뽑으며 소리쳤다. "방주……" 서문중은 돌변한 사태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총사의 자질이 있다면 어떤 방법이 현명한지 알 것이다." 주황이 쌍백도를 치켜 세웠다.
서문중은 고개를 떨구었다.
여맹이나 이세명이라면 피를 토하며 싸움을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문중은 결국 방주의 뜻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가슴이 아니라 머리고 생각하느 자였고 항상 이해타산의 저울추 위에서 머리를 굴리는 자였다.
백만번 생각해도 방주가 제시한 방법이 최선이었다.
문제는 전권을 쥔 마타룡이 만로방에 어떤 요구를 할 것인가 하는 것뿐…… 서문중은 그제야 방주가 한 말을 이해했다.
수로연맹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마타룡뿐이라던 말을…… 사대행회를 부르지 않은 것을 포함, 방주는 머릿속에 이미 오늘 이같이 행동할 것을 굳히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문중은 방주의 고집을 꺾기에도 늦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결국 최선의 방법에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서문중이 주황에게 깊게 머리를 숙였다.
그가 축 늘어진 발걸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주황은 서문중이 수하들을 잘 설득하리라 믿었다.
문제는 역시 마타룡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것! '피를 원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타룡, 너를 믿겠다." 주황이 위무일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당부였다.
만로방의 수하들이 술렁대고 있었다.
서문중이 주황의 뜻을 전한 모양이었다.
여맹과 이세명의 격분한 목소리는 천화인의 귀에까지 들렸다.
순간. "핫!" 주황의 쌍백도가 빛을 뿌렸다.
때를 같이하여 위무일의 칼도 초겨울의 햇살을 갈랐다.
챙! 챙! 챙! 초겨울의 날씨로 공명(共鳴)이 잘되어서인지 칼 부딪치는 소리는 중인들의 귀를 멍하게 했다.
파파팟! 주황의 왜소한 체구는 쌍백도와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였다.
위무일도 도막으로 이미 자신을 둘러싼 상태였다.
그들은 한 덩이로 얽혀 오장하의 강변을 바쁘게 치달았다.
격분을 참지 못해 달려나오던 여맹과 이세명은 주춤 발길을 멈추었고 천화인도 경기를 피해 몇 걸음 물러났다.
천화인은 검미를 꿈틀거렸다.
치고, 자르고, 비틀고…… 주황의 칼질은 세상의 잡다한 초식들을 모두 모아 놓은 듯했다.
그러나 그의 쌍백도는 마치 두 명이 연수 합격을 하는 것처럼 기묘하게 움직였다.
위무일이 인정해 줄 만한 실력자였다.
더해서 주황은 전신이 암기였다.
소매, 각반, 비구…… 가리지 않고 움직일 때마다 암기가 폭사되었다.
선기는 분명 주황에게 있었다.
그러나 천화인의 표정은 그렇게 염려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삼악오와 싸울 때 그는 위무일의 무공을 직접 보았었다.
그들과 싸울 때와 비교하면 위무일의 손속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첨벙! 첨벙! 첨벙! 오장하의 물결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위무일과 주황은 오장하의 얕은 물가를 달리고 있었다.
물살이 분수처럼 치솟는 것은 그들의 하체에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튀겨진 물로 주황의 전신이 흠뻑 젖었다. "이만하면 전희(前戱)로 충분하다!" 주황이 돌연 고함을 질렀다.
카칵! 그가 쌍백도를 부딪치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물방울이 화려하게 반짝이며 허공 중에 흩날렸다.
주황은 허공에서 몸을 빙글 회전하며 쌍백도를 번뜩였다.
쌍백도에 앞서 소매에서 두 줄기 은광(銀光)이 위무일을 먼저 덮쳤다.
천련은사(天鍊銀絲)였다.
뒤이어 쌍백도에서 쏟아지는 초식은 잔풍비화(殘風飛花), 개산열석(開山裂石)으로 이어지는 강호의 평범한 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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